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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벌써 1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서기 2000년. 새 밀레니엄의 시작을 알리는 이 해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물론 21세기는 2001년부터 시작이니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꼭 맞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제일 큰 천의 자리 숫자가 1에서 2로 바뀐다는 사실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보다 더 충격적인 의의를 가진 사건일수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전에없이 부풀렸고, 이 일이 계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1호 노벨상의 영예를 누렸으며,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가수 백모양의 비디오 유출사건이 있어, 당시 젊은 남자들의 눈을 벌겋게 충혈시켰던 한해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도 미국의 부시와 러시아의 푸틴이 나란히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유럽에서 광우병이 발발해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한 해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이들 사건보다 더 인상깊게 뇌리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이벤트는 광고와 길거리 곳곳마다 붙어있던 '선영아 사랑해'라는 문구. 아마 현재 스므살 이상에서 마흔살 정도까지 당시를 청소년이나 젊은이로 보냈던 분들은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이실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모 인터넷 포털의 티저광고임이 밝혀지면서 이는 오히려 사람들의 부푼 기대감에 찬물을 껴얹은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그 광고는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는 성공했지만, 기업홍보에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전히 이 광고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겠지만, 그게 무슨 광고였는지를 기억하는 이는 이제는 아마 거의 없지 싶다. (이 포털은 지금도 존재하는고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포털의 존재를 알고 있는 분 역시 얼마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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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당선된 2011년 제35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루저 문학의 최고 극단"이라는 찬사와 함께 루저라는 익숙한 소재를 새로운 형식으로 전달한 작품 <철수 사용 설명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물을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자본주의 엘리트사회를 풍자한 소설이다. 우리의 주인공 철수는 신장 173cm에 29살 대한민국 청년으로써 평균 몸매를 조금 밑도는 취업 준비생이다. 본인은 ‘적어도 평균쯤은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와 그녀들 심지어 가족모드들조차 철수를 비정상 내지는 불량품 대하듯 취급한다. 그리하여 철수는 불량품이 되지 않기 위해 사용 설명서를 만들기 시작하지만, 문제는 철수에게 있는 게 아니라 철수를 잘못 사용해 온 주변 인물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애초에 고장이나 비정상 또는 하자가 발생했던 게 아니라 사용설명서를 숙지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였던 것에 의문을 품는다. 사람마다 회사마다 선호하는 모델이 있지만 그들은 맘에 들지 않는 제품을 사서 고쳐 쓸 생각 같은 건 애당초 하지 않는다. 완벽한 모델이 세상에는 넘쳐나기 때문에, 철수와 같은 제품은 고배의 쓴 잔만 연거푸 마시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철수는 사용설명서를 쓰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던 일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마치 세탁기에게 냉장고의 기능을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상품을 소개하듯이 사용하기 전에, 제품 규격 및 사양,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를 목차로 두고 있는 <철수 사용 설명서>는 생소한 소설 기법을 도입해서 철수 자신을 소개했다는 것이 다소 익살스럽다. 하지만 문제 국면으로 들어가면 심각해진다. <철수 사용 설명서>는 우리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스펙, 소위 구직자들 사이에서 학력과 학점, 토익토플이라는 영어 점수 외에도 각종 관련 자격증들을 총칭하는 이 단어가 우리들의 일상에 뼈 속 깊이 침투하면서 구직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스펙은 곧 구직자를 평가하는 잣대요, 대한민국 대학생들 사이에 하나의 부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010년 3월,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의 수렁에 빠져든 한 명문대생의 이유 있는 항변은,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더 거세게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했던 그 여대생의 울분은 국가와 대학이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임을 증명한다. 인간은 자고로 일정한 자기 위치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역할을 수행하여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어쩌다가 우리네 잘난 젊은이들이 자기 자리를 꿰차지 못하는 사태까지 왔을까? 적어도 우리 세대에선 평균 안에 든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적당한 선에서 적절한 노력으로 꿈도 꾸고 그 꿈을 이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의식을 개인만이 떠안기엔 그 한계를 넘었다. 언제까지 국가가 뒷짐을 쥐고 서있나? 일거리 개수만 창출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도 고급학력이 비정규직이거나 “88만원 세대”라는 저평가로 인해 상처입지 않을 만큼 객관적이고 타당하게 책정된 임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지 않게 웅변조로 되어버린 서평이지만 가볍게 읽힌 소설과 달리 마음이 착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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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재작년에었나, 잠깐 한국에 들어갈 일이 있었다. 여름 방학에 맞춰 간 거라 학부에 다니는 대학생들 몇몇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열심히 준비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국내 대기업인 S에서 치른다는 직무적성검사라는 거였다. 자기네 회사에 적합한 사람을 뽑기 위해 만든 시험이라는데, 웃긴 건 이 시험에 붙기 위해 모의 시험도 치르고 심지어 학원에도 다니고 스터디도 한다는 거다. 그 회사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절할 뻔했다. 자기 자신을 뜯어 고쳐서까지, 자기가 아닌 모습을 꾸며서까지 들어갈 만큼 그 회사가 가치 있고 위대한 것인가는 차치하고라도, 그런 문제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그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는 소위 수험생들이라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찬 밥 더운 밥 따질 때가 아니라구요." "안 들어가면 나만 손해인데요." "누구나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라구요." 등등이 그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비슷비슷한 반응이었다. "원하는 기준에 맞추는 게 뭐가 문제죠?") 한국 사회에 대한 절망감이랄까? 이 수준으로까지 전락하고 말았구나 하는 비애감 같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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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라는 상당히 독특한 제목의 소설이 나왔다. 사람에 대한 사용 설명서라니 이 얼마나 발칙한 상상인가. 게다가 내용도 요즘의 88세대 희망없는 젊은이에 대한 내용이란다. 게다가 오늘의 작가상까지 받은 작품이라니 겉포장은 나에게 매력을 내뿜기 충분한 작품처럼 보였다. 그래서 집어들은 이 책 철수사용설명서. 그러나 중간쯤부터 나의 이러한 기대치는 바닥을 치다 못해 작가에 대한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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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는 2011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입니다. 오늘의 작가상은 민음사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으로 많은 문학상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권위있는 상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민음사가 우리나라의 문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중있는 출판사라는 점도 큰 이유일 것입니다. 오늘의 작가상이 나오기 시작한 아주 오래전부터 주옥같은 수상작들을 보면 제 기억에 심취하고 소설속으로 빠져든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이문열, 박영한, 한수산, 조성기 등 저의 사춘기 시절에 시작되었던 문학에의 심취에 큰 비중을 차지한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있었고 그뒤부터 최근까지 다소 생소한 신예작가들의 작품들도 오늘의 문학상으로 선정되면서 대부분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것 같습니다.
철수 사용 설명서의 후기를 쓰면서 이렇게 서론이 긴 이유는 예전에 오늘의 작가상 작품을 읽으면서 기대하고 만족하였던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낙오된 청춘으로 등장한 철수를 기계에 비유하여 취업모드, 학습모드, 연애모드, 가족모드, 그리고 관리하기 위한 전원공급과 청소모드로 그의 덜떨어진 재능을 오류와 사용후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제품들의 박스에 들어있는 주의사항과 애프터서비스를 요청하기전에, 제품보증서로 SF소설이나 로봇처럼 철수라는 인간에 대해 철저하게 전자제품화 시킨 작가의 능력이 심사위원들로 부터는 호평을 받아 수상작으로 선정이 되었지만 저는 책을 읽는 내내 불쾌하고 마음에 거슬리는 거북함이 계속 되었습니다. 저보다 문학적으로 비교가 되지않을 만큼 권위있는 전문가들이 선정한 수상작이 잘못되었다고 하기보다 저 개인의 취향에 맞지않는다는 것이지요. 전자제품처럼 사용자인 부모의 생각대로 조립하고 쓰고 고치는 행위들이 실제 요즘의 부모들이 자식들에 대한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자로 성장하는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책에 나온 철수일 수 있습니다. 작가는 혹시 자신의 아이가 있다면, 아니면 실지 철수같은 사람을 보고 책에 나온 것처럼 조립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철수부모와는 좀 다른 부모가 되어야 하고 철수같은 사람을 우리사회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된다는 의미로 오늘의 작가상에 선정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영희 사용 설명서는 안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개인적 희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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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물건을 구입해도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편이 아니다. 실은 대충도 잘 안 읽는다. 그냥 대고말고 막 만져본다. 그러면 대개는 잘 작동이 된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설명서를 잘 안 읽게 된다. 뭐.. 그래도.. 대충 잘 쓰는 편이니까~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철수 사용 설명서>를 읽고 보니, 가끔 원인 모를 고장으로 폐기처분된 것들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내 안일했던 마음이 그들의 고장과 폐기처분을 앞당겼던 것은 아닐까? 뭐.. 그렇다고 해도 이미 사라져버린 그들을 다시 되돌릴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꽤나 난감하고 미안함 가득이다. 앞으론 어떤 무언가를 만나도 설명서부터 꼭 읽어보고 써야겠다.
근데, 져니 사용 설명서는.. 어디에 있는 거지? 으흠..ㅡㅡ;;
p.40 철수는 지금도 헛갈렸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데, 노력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고장인 채로, 쓸모없는 제품인 채로 나아 있게 된 것일까. 아니면 철수가 정말 다른 제품이었는데 사람들이 잘못 사용한 것일까. 사용 설명서에는 노력해서 되는 것과 노력해도 안 되는 걸 구분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철수 자신도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p.50 며느리 모드나 아내 모드에서는 종종 실수가 있어도 잔소리 모드에서는 몇 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엄마였다. 아마도 그것이 엄마의 주요 기능인 게 틀림없었다. 누가 잔소리를 목적으로 엄마를 구입했다면, 심지어 애프터서비스 한번 맡기지 않고 평생을 사용할 것이다.
p.107 사용법을 익힌 후 제대로 사용해야 최상의 기능을 누릴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 모드에서는 여러 가지 역할이 한꺼번에 만족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남편과 효자 기능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여,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효자니까 당연히 좋은 가장이겠지, 돈을 잘 버니까 아이에게도 자상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모두 개별 기능입니다. 하나의 기능만 보고 다른 기능도 좋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후, 만족스럽지 않으면 고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p.135 게다가 최고 등급도 썩 유쾌하지만은 않을지도 몰랐다. 신제품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쏟아질 테니까. 올라갈 곳이 없다는 건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걸까.
p.186 잘하는 걸 하나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철수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취미와 특기는 엄연히 달랐다. 뭘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쉬웠지만, 그걸 갖추는 일은 어려웠다. 몇 개의 특기를 더 갖춰야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아득하기만 했다. 철수가 아이였을 때는 어른들이 다 올바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이 들고 보니, 어쩌면 아이들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완제품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p.196 사용 설명서에는 일체 개조하지 말라는 내용을 넣는게 좋을 듯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개조되어, 철수도 자신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걸 알아야만 사용 설명서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모습이 아니라, 심지어 철수가 되고 싶은 모습도 아니라, 진짜 철수가 어떤 제품인지, 바로 그것을 알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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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사람 자체를 보던 시대는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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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은 항상 이런 저런 불만을 품어낸다. 왜 설명서의 외관과 달라요? 일은 왜 제대로 못해요? 손은 왜 이렇게 빨리 잡고 입술은 왜 이렇게 늦게 훔치나요? 할 줄 아는게 있긴 있나요? 왜 손만 닿으면 몸이 따끈한 군밤마냥 뜨거워져요? 생긴건 멀쩡한데 왜이리 부족해요? 철수는 낙오된 청춘으로서, 에너지 소비효율 최저의 제품으로서 팔려나가되 반품되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철수는 항상 최선이었다. 여자를 사귀어도 최선을 다했고, 회사의 면접도 최선을 다해 임했다. 그저 자신의 사용 설명서에 쓰여있는대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2011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전석순의 철수 사용 설명서는 이렇듯 낙오된 청춘의 대표 주자 철수의 고군분투기를 그려낸다. 어떤 기승전결의 형태가 아닌 준비하기,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의 순서는 생뚱맞지만 흥미롭게 다가온다. 작가는 준비하기에선 철수의 제품 규격 및 사양을, 사용하기에선 취업모드와 연애모드 그리고 가족모드의 철수를 묘사하는 둥 가벼운 이야기들로 낙오된 청춘을 그려낸다. 토익 490의 지방제 4년대 졸업자이자 백수인 철수. 29세 173cm 65kg의 철수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불량품일 뿐이다. 두툼한 문제 투성이의 사용 설명서와 함께 포장된 불량품 말이다. 이러한 철수는 결국 우리 세대 이십대의 자화상일 뿐이다. 어딘가 부족하고 뒤틀린 혹은 과잉된 존재들, 완성되기 위해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백지를 걷는 불완전한 존재들 말이다. 나는 문득 자존감이 가득한 나의 설명서를 읽고 싶어졌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가족에게, 혹은 나를 구매하는 시장에게 어떤 제품으로서 어떤 설명서와 함께 보여지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모든 철수처럼 어설프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나는 책을 덮으며 결점 투성이의 철수 또한 덮어버린다. 나의 사용 설명서는 나 자신이 써내려가는 것이기에. 철수는 조금 더 자 두려고 눈을 감다가 문득 깨다든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그걸 가장 먼저 읽어햐 하는 사람도 결국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p.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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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의 사용 설명서
1. <철수 사용 설명서>를 사용(독서)하기 전에 반드시 사용 설명서(서평)를 읽고 상황에 맞게 정확히 사용해 주십시오. 2. <철수 사용 설명서>는 국내용입니다. 사용 환경이 다른 국외에서는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3. 읽고 난 뒤에는 <철수 사용 설명서>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4.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홍보용일 뿐 작품의 품질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5.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아서 생기는 뒤늦은 후회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 사용하기 전에
<철수 사용 설명서>를 사용하기 전에 일단 본인에게 적합한 모델인지, 선택한 모델이 맞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철수 사용 설명서>의 올바른 사용 및 장기간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본 사용 설명서를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작품의 재미와 의미는 읽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독서 중 별다른 의미도 없는 말들이 나열되어 있다거나 재미가 없다고 느낄 때는 사용 설명서를 참고하면 유용합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다른 사용 설명서(서평)도 참고해 주십시오.
제품 보증서(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가 함께 들어 있으므로 잘 보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제품 보증서는 우리 시대 작가들의 수준이 어떤지 말해 줄 뿐, 작품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품명 : 철수 사용 설명서 크기 : 143mm*213mm 분량 : 227쪽 발행일 : 2011년 7월 1일 가격 : 11,000원 회사 : 민음사
* 재미 모드
<철수 사용 설명서>의 재미 모드를 사용하려면, 전원 버튼을 누른 후 원하는 재미를 입력하십시오. 드라마의 재미, 스릴러의 재미, 멜로의 재미, 판타지의 재미, 교양의 재미 등이 있습니다.
* 재미 모드의 사용 후기
"<철수 사용 설명서>를 처음 보았을 때,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재미 모드에 여러 기능이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눌러지는 버튼은 '말장난의 재미'밖에 없었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식이죠. "엄마는 한국부모협회에서 지정한 자식의 기능이 시원찮을 때 할 수 있는 말 중 23번째 "내 속으로 나온 자식인데 누굴 탓해."를 두 번이나 연속해서 말했다."(141쪽)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말장난 만으로 시종일관한다는 겁니다. 세상에, 비슷한 말장난만으로 어떻게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나요? 상품을 구입한 것에 후회가 되었죠. 그렇지만 누굴 탓하겠어요.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제 잘못이죠."
* 의미 모드
<철수 사용 설명서>의 의미 모드를 사용하려면, 전원 버튼을 누른 후 원하는 의미를 선택하십시오. 취업 모드, 학습 모드, 연애 모드, 가족 모드가 있습니다. 의미 모드를 사용하려면, 끈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 의미 모드의 사용 후기
"의미 모드를 처음 보았을 때,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그런 것들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했지요. 오늘날 20대는 자신이 쓸만한 상품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인정받아야만 하는 세대가 되었기에 정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적절한 풍자라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모두 읽고 난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취업 모드, 학습 모드, 연애 모드, 가족 모드 모두 '자학 모드'로 일관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죠. "철수는 어떻게 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불량품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200쪽) 이토록 단조롭다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품질 보증서는 대체 왜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더군요. 상품이 아니지만, 철저히 상품으로 인정받아야만 하는 오늘날의 20대. 그들은 스스로 상품이 아니라고 외치지 않기에 스스로 불행을 더 키우고 있죠. 말장난과 자학으로 얻을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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