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마음 속에는 작고도 큰 바람이 분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읽고
해마다 태풍의 북상 소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대체로 한결같다. 모쪼록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심정으로 창밖을 지켜보며 기상속보에 귀를 기울인다. 태풍은 지나가고, 소멸하고 다시 생성됨을 모르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개별 태풍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지만 하나의 자연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쩐지 태풍이 ‘가족’의 습성과 닮은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사이에 만들어진 수많은 일들은 서로에게 기쁨과 슬픔을 안겨주며 사라지고 다시 발생하지 않는가. 동시대를 살면서 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이 시대의 가족을 자기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하 고감독)이 몰고온 ‘태풍’ 때문에 독자의 머리와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고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아버지로, 『걸어도 걸어도』에서 아버지이자 아들로 나왔던 ‘료타’를 소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 그는 '탐정'이 되어 누군가의 뒤를 미행하고 있다. 그 대상은 바로 전처인 ‘교코’다. 새 남자친구 ‘후쿠즈미’와 함께 아들 ‘신고’의 야구시합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남몰래 바라보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탐정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관찰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도대체 그에게는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료타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한다. 본업의 취재를 위해 잠시 아르바이트하는 것일 뿐이라고. 십오 년 동안 글을 쓰지 못한 ‘소설가’였으니 그렇다고 해두자.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곧 태풍이 온다는데 그 대비를 해야지.
태풍이 오건 말건 료타는 제 버릇 남 주지 못하고 도박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탐정 일로 번 돈과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지는 이중거래로 얻은 돈 모두를 집세와 양육비에 써도 모자랄 ‘판’이지만, 이번 한 ‘판’만 더, 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이끌려 날마다 경륜장 가는 길로 향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 그는 『무인의 식탁』이라는 작품으로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열린 소설가의 길 위에서 경로이탈을 감행한다. 아버지로부터 대물림을 받은 것인지 도박에 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렇게 아버지가 된’ 것이다. 교코와 같이 아이를 낳고 살다가 예금통장이 텅(빈 통)장으로 되자 마지못해 소설에 쓸 소재를 찾겠다며 탐정 사무소에서 일해보지만, 그 수입마저 고스란히 도박 자금으로 탕진함으로써 끝내 두 사람의 태풍 같았던 결혼 생활도 소멸되고 만다.
태풍의 영향권에 들수록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마련인데, 묘하게도 소설 속 인물들의 사연을 듣노라면 마음 한편이 뭉클하면서도 왠지 뭉근해진다. 얼마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일상을 이어가는 어머니 '도시코'의 집에 한 사람씩 방문하는 료타네 가족들을 보면서 마치 태풍이 그들을 한 공간으로 불러 모은 건 아닐까, 아울러 어머니의 집이 그들에게 ‘태풍의 눈’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본인이 자처했든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든 인생을 살면서 온갖 풍파를 겪게 되지만, 우리집이라 부르는 가족의 울타리만큼 마음의 위로를 주는 곳은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료타를 비롯한 가족들이 품고 있는 생각과 감정은 저마다 다르기에 그만큼 오해와 감정의 골도 깊다. 그럼에도 소설은 료타를 중심으로 도시코(어머니), 지나쓰(누나), 교코(전처), 신고(아들)와의 잔잔하면서도 위트있는 대화를 통해 평범하지만 범상치 않은 한 가족의 일대기를 풀어내면서 가족이란 무엇이며, 나아가 독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을 행간마다 넣어둔다.
그들의 말을 잠시 엿들어 보자. 먼저 태풍이 몰아치는 밤, 도시코는 료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행복이라는 건 말이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잡히지 않는 거야.(180쪽)” 그에게는 평생 곁을 내주어도 밖으로 겉돌기만 한, 포기하려야 포기할 수 없는 남편과 아들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자신보다 먼저 간 남편은 가슴에 묻고, 이제는 오랜 시간 아들과 아들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도시코, 그는 과연 행복할까? 료타에게는 신고에게 사준 복권이나 경륜장 배팅과 같은 도박이 아닌, 훗날 멋진 소설로 승화시킬 심산(心算)으로 쌓아둔 장작더미, 즉 타인의 말들을 적어 벽에 붙여둔 포스트잇이 희망이지만, 아직 현실은 성냥개비의 꿈으로 남아 있다.
다음으로 야구 경기를 진 후 왜 타석에서 적극적으로 타격하지 않았느냐는 어른들의 물음에 신고는 “……그냥 난, 포볼을 노렸던걸.(85쪽)”이라고 답한다. 포볼이든 안타든 타자가 살아서 1루를 밝는 건 마찬가지인데, 근사한 베팅을 요구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신고는 아버지 료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도박에서 흔히 배팅(타격)한다는 표현이 겹쳐지면서 말이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태풍이 몰아치는 밤의 모험’을 떠나기 전, 료타와 교코는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을 담아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정말 그렇지. 이러려는 게 아니었는데.(192쪽)”라며 한 마디씩을 짧게 주고받는다. 누구나 바라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록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지만,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다 이뤄지지 않는 것 역시 인생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렇게 태풍은 지나가고, 료타와 가족들은 지난밤과 같은 듯 조금은 달라진 듯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치워야 할 것들과 치워져 없어진 것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들을 더듬어 보다가 문득 소설 속 인물들의 작고도 ‘큰 바람(太風)’이 곧 태풍(颱風)의 다른 의미로 읽힌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아 고약하게만 느껴지는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그 안에 묵은 때를 씻어주길 바랐을 것 같아서다. 오늘도 우리 마음 속에는 태풍이 분다. 이 태풍 같은 나날들을 헤쳐 나가고 있는 독자에게 <태풍이 지나가고>가 든든한 우산 혹은 안온한 집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