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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2. 백마 탄 왕자의 또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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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몰래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일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도움을 받는 처지에서는 절박한 사정을 헤쳐나갈 수 있기에 더할나위 없는 일이며, 도움을 주는 처지에서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선행을 한다는 뿌듯함에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쁨의 대명사가 바로 '키다리 아저씨'다.     고아 소녀인 주디 에봇은 열일곱 살이 되어 고아원을 떠나야만 하는 처지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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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 몰래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일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도움을 받는 처지에서는 절박한 사정을 헤쳐나갈 수 있기에 더할나위 없는 일이며, 도움을 주는 처지에서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선행을 한다는 뿌듯함에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쁨의 대명사가 바로 '키다리 아저씨'다.

 

  고아 소녀인 주디 에봇은 열일곱 살이 되어 고아원을 떠나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는 점에서 주디에게 놓여진 미래는 온통 불확실한 까닭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아원 원장님이 전해준 말은 그런 불안을 한 방에 날려버릴 기쁜 소식이었다. 주디에게 대학에 다닐 수 있는 '기부금'이 전달되어 꿈에 그리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더욱 부풀게 했기 때문이다. 조건은 별 것 없었다. 성실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것과 후원자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써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주디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후원자를 떠올렸다. 주디가 기억하는 그의 첫인상은 이제 막 고아원 문을 나서는 참이었고,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춰진 후원자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서 '키다리(원작에선 '대디-롱-렉(장님거미, '키다리'라는 뜻도 있음)'로 보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디는 그날 이후부터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낸다.

 

  편지의 내용은 주디의 일상이었다.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며, 친구와 있었던 일, 가난으로 불편하지만 부유함이 결코 부럽지 않다는 생각, 그럼에도 고아소녀가 경험할 수 없었던 가족과 집안에 대한 뒤늦은 경험으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소녀의 관점에서 본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편지들을 '존 스미스 귀하'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보내졌다. 독자인 우리들은 '소녀의 편지'를 읽으면서 다양한 감성에 빠지게 되고 말이다. 그 감성들은 퍽이나 아름답고 다정하고 때로는 추억을 불러오는 매혹적인 감동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마치 <빨간머리 앤>이나 <작은아씨들>을 읽을 때처럼 말이다.

 

  그런데 '불편한 진실'이 이 감동스런 문학작품에 도사리고 있다. 하나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관음증이며, 또 하나는 후원했던 고아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중년(?) 남자라는 설정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지던 시기에는 '편지형식의 문학'이 유행을 하였으며, 10살 이상의 나이차이는 쉽게 넘을 수 없는 국경도 넘나들게 만드는 마법같은 사랑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였기 때문에 큰 문젯거리가 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투 운동'이 흔해진 시대에는 '성범죄의 한 유형'으로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에 금기시 되는 부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소녀들에게는 로망을 심어주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 책으로 논술수업을 하면 소년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데 반해서, 소녀들은 '저비 도련님'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선행을 베풀어준 이가 '노령의 할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젊고 잘생긴 옵빠'였다는 반전이, 흡사 '백마 탄 왕자님'이 짜잔~하고 나타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라고 소감을 나타내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액의 후원을 미끼로 젊은 여자를 꼬여 내기 위한 범죄수법(?)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더니, 소녀들은 자신들의 환상을 깨지 말라고 야유를 보내곤 했다.

 

  과연 '키다리 아저씨'에 얽힌 소녀들의 환상이란 어떤 것일까? 난 이 작품을 당찬 소녀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대단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것이 많은 고아소녀이지만 밝고 명랑하며 수동적이지 않고 남성 위주의 사회분위기에서도 진취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멋진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엔딩 장면'에서 이런 감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사랑의 결실'을 맺으며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갈 준비가 다 된 듯한 '연애편지'로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호동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조국을 지켜주는 '자명고'를 손수 찢어버리는 낙랑공주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 <키다리 아저씨>가 '열린 결말'이라면, 뒷이야기는 웬지 비극적일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팬들턴 가문에 입성한 고아소녀의 악몽같은 시집살이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소녀들에게는 마냥 즐거운 작품인 모양이다. 자기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엄청난 거액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나타났데, 그런데 매달 편지 한 통씩 보내는 수고만 하면 온갖 명품선물도 받을 수 있고, 방학 때면 어마어마한 별장으로 초대를 받아서 신 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데, 그리고 그 별장에는 잘 생기고 돈 많고 젊은 남자가 있다는 거지. 근데 알고 보니까 그 젊은 남자가 자기를 도와주었던 후원자였다는 거지. 완전 '백마 탄 왕자님'이 따로 없지 않니?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야... 아마도 이런 식으로 읽히는 모양이다.

 

  하긴 누구에게나 로망은 있다. 그런 로망을 꿈꾸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읽는 '추억의 명작'에 불편함 한 토막이 담겨 있고, 시대가 달라져서 '달라진 관점'으로 다시 한 번 투영을 하니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부족함'이 엿보이게 되니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당연한 진리로 <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면 안된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나 할까? 키도 작고 못 생겼고 돈도 없어서 '젊은 여자'를 꼬실 수 없게 된 늙은 총각의 자격지심이 폭발한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 나이에 '백마 탄 왕자'를 시샘하면 안 되는 건데...

YES마니아 : 로얄 z******8 2021.04.04. 신고 공감 7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