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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대해서 미세한 현미경을 들이대고 자세히 살피는 책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 과거에 대해 어떻게 이런 두터운 책을 쓸 정도로 철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탄성이 나오지 않을수가 없지만.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나고도 이런 세세한 연구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자료들이 남겨져 있었다는 것도 참 부러운 일이 아닐수가 없을 것 같다. 문외한이라 자신있게 말할수는 없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의 해방직후에 필명을 날리던 문인들에 관한 연구를 한다면 이 책만큼 풍부한 내용을 가진 연구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 두사람을 다루는 내용이 나에게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카뮈와 샤르트르라는 두 사람이 비록 내가 그들의 저작을 많이 접하지 못했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두 사람에 대해서 막연하게 안다고 생각하던 것이 사실은 형편없었지만, 레지스탕스기를 거쳐서 동서 냉전이 시작될때부터 일이나기 시작한 생각의 갈등이 우리나라 문단이나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경험한 그 갈등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 때문이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하에 처한 우리나라에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지식인들 사이게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문학과 철학적 입장의 갈등, 그리고 그런 갈등으로 인해 실제적인 삶과의 관계에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팽팽한 긴장이 이 두 프랑스의 거장에게서도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참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 두 천재들의 우정과 교감 그리고 갈등과 대립은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큰 관심사이기도 하겠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 놓인 지식인들에게는 더욱 많은 관심을 끌수 밖에 없는 사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틱하게 바뀌어가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특정한 역사적인 조건하에서의 각자의 선택과 갈등. 그리고 그들의 선택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신념과 우정의 괴리. 그런 아픔들이 시대와 삶과 마찰하면서 울려나는 파열음.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상황에 대입해보면서 느끼는 특유의 경험들. 그런것들이 이 책이 문학과 실존주의와 문학과 삶의 갈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우리나라의 모든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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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내 삶이 거의 부조리와 실존을 부르짖고 있으니, 굳이 이 책들은 보지 않아도 되겠다. 하지만 두 거장의 만남과 헤어짐은 왠지 내 흥미를 끌었다. 작품 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작가들을 실생활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기쁨과 그들이 만나고 서로에서 영향을 주고 끝내 결별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여러 행보들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 중에는 어느 누구 하나 완벽할 수는 없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이렇게 다시 소화된 글을 남기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일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글을 잘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이때까지 한 번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나 소망을 가진 적 없이 살아온 터여서 그런 욕망이 참 낯설게도 느껴지지만 글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참 많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 많은 사람들 무리 중에 나도 끼어보고 싶단 욕망이 불쑥 치고 올라왔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습작을 하는 등의 노력은 전혀 하고 있지 않으니, 이것은 완전 공짜로 얻으려는 놀부 심보이렷다. 어쨌든 이렇게 글을 잘 쓰는 능력을 가진, 특별하게만 보이는 작가들의 내면이나 생김새, 고민과 욕구 등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만은 솔깃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소설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쓴 그 작가에게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소설이라는 허구적인 공간 안에서 하나의 생명체를 창조하고 그것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사람들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능력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하고.
게다가 이 두 거장, 카뮈와 사르트르는 단지 소설 나부랭이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사르트르는 몇 년간 하이데거와 후설의 현상학을 연구하여 철학교수 자격까지 갖춘 사람이고, 카뮈도 철학을 전공한 아마추어 철학가였기에 그들이 말하고 싶은 ‘실존주의’에 대해서 얼마든지 소설적 언어로 요리할 수 있는 천재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행보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지도 모르겠다. 카뮈가 1960년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현재 사르트르의 주장에 비중이 더 많이 실린 것에 대해 확실한 방어를 할 수 있었겠지만 역시 죽은 자는 말이 없는 터라 현재로서는 사르트르에게 쏠린 비중을 어찌할 수 없다. 카뮈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사르트르는 비평적 명료함으로 여럿 사람들을 울린 전적이 있다. 특히 카뮈 자신이 그가 자신보다 논리적인 명석함이야 물론 인정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그에 의해 평가받을 때는 그의 신랄한 비평에 좋지 않은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은 상대방의 작품, 즉 <이방인>과 <구토> 등을 통해 서로를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미 유명한 대가의 반열에 올랐던 사르트르가 열한 살이나 어린 열정적인 소설가인 카뮈의 사상에 반색을 하며 그를 대가의 반열로 이끌어주기도 했다.
서로에게 공통된 화제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실존주의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실존주의를 드러내기 위한 여러 장치에 대해 서로 칭찬하고 호의를 보여주었던 그들의 동행은 냉전시대를 맞이하여 끝날 수 밖에 없게 된다. 혹자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가진 배경으로 인해 모순을 안고 끝날 수 밖에 없는 관계를 지속시켰다고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둘의 사상은 비슷했다. 정치적인 성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던 카뮈는 2차 세계대전 중에도 나치군에게 반발하는 신문의 편집을 맡으며 자신의 비폭력주의적인 정치 노선을 드러냈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훨씬 명성이 컸던 사르트르는 전쟁 중에는 그다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성적이고 이론적이기만 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그의 행동은 굼떴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파리떼>라는 희곡 작품을 통해 정당한 이유가 전제된 폭력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던 것이 아마도 카뮈와의 결별이 된 이유였을 것이다. 카뮈는 전쟁이 끝난 후 큰 반향을 일으켰던 <한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프랑스인들이 폭력을 싫어하며 전쟁에서 독일에게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지런히 소개하고 있다. 목적이 있다면 폭력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사르트르와는 달리, 카뮈는 폭력이 야기할 수 있는 금전적이고 정신적인 부정적 영향에 대해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드러난 관점의 차이는 냉전이 지속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서로의 관점을 인정하면서 서로에게 배울 수도 있었던 동맹이었지만 그들의 결별은 자기 기만적인 주장에 대해서 포기할 여지를 두지 않았던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존주의계의 거장들의 만남이 오히려 그들에게 독이 되었을까. 그것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투쟁도 그들 자신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카뮈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의 나중에는 서로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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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구토라는 책을 읽었던 어린시절의 아련한 시간에서였다. 그리고 카뮈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뫼르소가 등장하는 이방인이었다. 그 둘이 우정을 나누었고 냉전을 지나면서 결별하였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이다. 사르트르와 카뮈의 우정과 결별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 20세기의 지성인 두 거장이 어떻게 우정을 나누었고, 무슨 말다툼을 그리 격렬하게 했었다는 것인지 자못 궁금해졌다.
한 시대의 유명한 지성들인 사르트르와 카뮈가 서로 친분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 재밌고 들뜨는 일이다. 나도 유명인과 친분을 쌓고싶은 맘이 간절하기에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리고 뭐 원래 친구사이라는 것이 형제처럼 싸우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아 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20세기의 유명한 지성이었던 두 사람이기에 그들의 절교와 논쟁은 떠들썩한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대충 싸우고 다시 화해를 했으면 좋으련만 카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가버리고 만다.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1943년 [파리떼]의 공연장에서였다. 알제리 출신의 잘생긴 청년 카뮈는 <이방인>으로 화제를 일으킨 작가였고 전쟁때문에 알제리로 돌아가지 못한채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문학적, 철학적 생각들이 비슷했고 그래서 우정을 쌓아가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르트르와 카뮈였는데, 둘이 결별을 하게 된 것은 서로 다른 정치적 폭력에 대한 입장 차이때문이었다. 사르트르는 폭력에 대한 잠재적인 동의 상태였고 카뮈는 혐오에 가깝게 생각했던 것이다. 한때 공상당원이었던 카뮈였지만 그는 공산주의를 살인자 집단과 같은 것으로 보았고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을 거부했다. 냉전을 거부한 카뮈는 미.소 두 진영 사이에서 제 3의 길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참여 의무와 사회주의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를 이야기했고 1949년에서 51년까지 사르트르와 카뮈는 서로 대립되는 노선을 따라가게 된다. 카뮈는 [반항적 인간]을 냈고, 이를 사르트르가 있는 현대지에서 장송이 혹평을 하게 된다. 카뮈는 편집위원도 아닌 병아리 기자에게 자신의 책에 대한 서평을 맡긴 사르트르가 자신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행동을 한 것이라 생각했고, 이 서평 사건은 사르트르가 자신과 관계를 끊기 위한 선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카뮈는 장송의 서평을 보고 그에 대한 답변을 했고, 사르트르 역시 맞대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카뮈와 사르트르의 논쟁사를 다룬 이 책은 그 분석의 시간을 들려 주어 그들 사이에 오간 생각들을 이해하는 일을 도와 주었다. 누가 옳고 그르다를 떠나서 그들 사이에 오간 논쟁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재밌었고, 저자를 통해 그 이해를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카뮈와 사르트르를 알아갈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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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友情), 친구와 친구사이의 정을 뜻한다. 역사속에는 수 많은 우정관계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후세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좋은 우정도 있었고 안타깝게 깨지고 만 우정도 있었다. 우정이란 좋은 감정이다. 또한 시너지의 효과도 있다. 때문에 그 우정의 관계가 깨어질때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많이 안타까워 하고 슬퍼한다. 그 당사자들이 희대에 영향을 미쳤던 유명한 인물들이였다면 그 관계는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프랑스의 유명한 현대 철학자였던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우정과 투쟁에 대하여 다룬 책이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당시 프랑스에서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였다. 논문, 사설등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피력했고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우정을 쌓게 된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들의 사상적 차이는 점차 이들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었고 흔히 말하는 언론플레이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의 관계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카뮈가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끝이 나게 된다.
이 책은 이들의 우정과 투쟁의 관계를 시기별로 정리하고 상세히 분석한 책이다. 이들의 우정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만 우정이 깨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세계대전, 냉전체제 같은 분열의 시기가 아닌 평화가 존재하는 시기에 이들이 만났더라면 진실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이들은 이 사회의 피해자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 관계를 뛰어넘은 국가와 국가의 관계, 이념과 이념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지식인이였기에 행복할 수 있었던 관계가 불행으로 끝이나 버린 것이다. 그들도 관계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이 3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성공했다고 하는데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주었기에 서로에 대한 미움도 그 만큼 컸으리라..
이들의 논쟁은 허구가 아니다. 현실 속에 살아있는 역사의 산 증거이다.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우정과 투쟁은 우리가 알아야만 한다.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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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희생되고 고생을 하게 되었다 나와 우선 이념과 사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내려고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여 승리한것이 옳은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역사는 승자들의 방식에 의하여 패자들은 잘못되고 옳지 못한 모습으로 기록되어지면서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말았고 또 그렇게 알고 지내고 있다. 사르트르와 카뮈 둘다 노벨상을 받으면서 역사적으로나 업적으로나 누구하나 그 기록자체를 인정하려 들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사르트르가 카뮈를 이끌어 자신의 동지로 만들었지만 사소한 오해일수도 아니면 큰 오류일수도 있지만 죽기 전까지 그 전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였다는 점이 더 많은 발전을 저해하였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있지만 한분은 양보하고 받아들일수 있었겠지만 너무 위대하신 분들이지 승부욕을 자극하였을 수도 있었을것이다. RDR 을 중심적이된 정치활동의 실패의 실패가 사르트르에게는 충격이었겠지만 그렇다고 정치활동을그만둘만큼 이지는 않았을것이다 또 공산주의를 따르면서 냉전시대를 보내야 만 했을까하는 그런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미소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이였겠지만 비판을 감수할수있는 그런 큰 분들이 그랬다는 것이 사람은 다 같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티베트의 지도자 또한 같은 인간이니 같은 결정을 할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여자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을 이야기 에서 넣었어야 하는것도 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 별것이 아닐수도 있지만 여자때문에 질투심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느데 정말인지 아닌지는 사실 짧게 나와서 잘 모르겠다. 문학적 논쟁 1950년대의 복잡한 세상 그리고 죽음이 넘어드는 사선 모든것이 그 시대에는 삶이라는 것에 더 절실하였기 때문이겠지만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죽은지 20년이 지난후에 화해를 한다는 모습에 김대중대통령이 죽을쯤에 김영삼 대통령이 가서 화해를 했다는 모습이 겹쳐지는 이유는 잘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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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사르트르와 카뮈에 대한 자세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간단하게 이념으로 서로 등돌린 사실만 알고 있습니다. 이둘 의 사상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인것 같습니다. 20세기에는 사르트르와 카뮈가 당연했지만 소비에트의 붕괴로 21세기에는 카뮈와 사르트르로 바뀌었도 되지 않을까 한다는 점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서로의 입장으로 갈라선 두사람은 결국 화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시대에 변화에 따라 평가는 반전을 이루고 카뮈는 사르트르에게 버림 받았습니다.
이 둘의 관계에서 더 집중할것은 바로 카뮈가 쓴 반항적 인간입니다. 이로 인해서 서로에게 비평을 하고 응대를 하면서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근데 전 이대목에서 왜 그런지 두사람의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이라는 우정이 이렇게 한순간에 막을 내릴수 있을까 였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그저 간단하게 응대를 하거나 평을 할수 있는데 각자가 가진 이념하나로 인해서 헤어지다니 한편으로는 바보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사람의 인연은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 니다. 가까운 사이였지만 냉전시대라는 그 배경이 이둘의 운명을 이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전 이책을 그렇게 쉽게 읽을수 없었습니다. 제가 인문학에 대해서 취약한 부분도 있지만 이념이나 정치문제는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르트르와 카뮈에 대한 내용의 서적으로는 유일하게 등장했고 시대가 변함에 있어 둘의 평가도 반전을 이룬다는 내용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두사람의 서적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 문제점을 그렇게 심각하게 찾지는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만큼 서로에 대한 평가를 감정깊이 했다는 점입니다. 당대의 지성 이라는 두사람이 현대인에게 남기는 메세지는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전 책을 읽기전에는 두사람의 관계에 대한 포괄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개인적인 부분도 보이고 인간이다 보니 보이고 싶지 않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두사람에게 더 아쉬운 점은 서로에게 귀를 더 깃들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둘은 역사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았을 것입니다.
전 마치 어른이지만 성장하기 위한 필요단계를 피할수 없었던 두사람의 운명을 본 느낌입니다. 정치적이념을 떠나서 인간적 으로 두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이념적으로는 서로 양보할수 없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주 내용은 이런 부분을 강조하고 인간적인 면을 살짝 드러나서 역시 인문서는 좀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칠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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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를 손꼽으라고 하면 사르트르와 카뮈를 찝어서 이야기 할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의 대표자인 그들은 서로 경쟁자이면서도 우정을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우정과 투쟁을 통해서 그들의 사상과 학문적 업적을 더욱 깊게 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프랑스와 대표적인 철학자인 그들은 우리나라의 다른 철학자들과는 달리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했었다. 아마도 시대적인 비극인 2차세계대전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철학자로서 운동가로서 그리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각자로서 여러방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었다. 서로가 서로의 사상에 대해서 비판과 함께 서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었고, 그로 인해 아마도 프랑스의 철학이 어느나라 못지 않은 유명세를 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1951년 이후로 협력관계에서 대립관계로 돌아서게 된다. 카뮈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알제리에서 이주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한편으로는 이방인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철학은 부조리의 철학으로 알려져있다. 반면에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시작한다고 볼수 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입장에서 전개한 존재론은 그의 대표적인 철학이라고 할수 있다. 사르트르는 카뮈와 달리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자란 프랑스인이다. 그러나 카뮈는 알제리 출신이라는 부분을 나름의 알킬레스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래서 누구못지 않은 프랑스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이 든다. 사르트르와 카뮈는 어느부분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깊은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가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카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고 나서 그들의 투쟁은 막을 내린다. 아마도 짝잃은 외기러기 갚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그들의 고집과 생각은 굽히지 않았던것 같다. 그들의 우리나라의 학자들과 다른 점은 사회문제 있어서 냉소적이지도 무관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문제에 깊이 파고 들어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함께 고통을 같이 느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하나의 철학을 만들어내고 국민들의 아픔을 같이 공유할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가 선진국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카뮈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사망은 사르트르에게는 커다른 슬픔과과 함께 상실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았다기 보다는 그들 사이의 이념과 논쟁이 결국 그들을 갈라놓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념이 무엇이었기에 나이와 출신을 넘어선 그들의 우정을 갈라놓았을까?? 이 책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들 사이의 우정과 투쟁, 그속에서 그들이 생각해왔던 이상과 신념의 갈등을 깊게 느껴볼수 있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의 대표주자인 그들, 철학이라는 학문을 떠나서 시대를 이끌어나갔던 그들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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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와 카뮈:우정과 투쟁』을 읽고 20세기 세계 지성계의 두 거인을 들라면 당연히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카뮈를 드는데 큰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 만큼 사르트르와 카뮈는 세계 철학 계뿐만 아니라 사회에 기여한 바가 컸기 때문이다. 이 책 ‘사르트르와 카뮈’는 20세기 프랑스 지성계의 두 거목이던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와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우정과 투쟁을 다룬 책이다. 카뮈와 사르트르의 저작들을 제외하고는 막연하게 알고 있는 지라 두 사람이 나눈 우정과 투쟁이라는 것이 생소하게 다가오기는 하였지만 여러 관계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두 지성인이 우정을 다루었다는 데에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치적으로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웨인 주립대학교 교수이면서 미주 대륙의 사르트르 전문가로 사르트르와 관련한 저술이 상당수이며 사르트르에 천착하고 들(憑)려서 연구를 계속하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신중하고도 공정하게 카뮈와 사르트르 사이에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즉 두 사람 사이의 경쟁을 그들의 정치, 사회적 배경과 전기적 일화, 그들의 우정과 그들 상호간의 영향과 증오, 그리고 20세기를 특정짓는 수많은 주제들의 흔적을 그리고 있고, 전후 프랑스 인텔리겐치아의 삶을 통해 추적하고 있는 것이 매우 돋보인다. 철학적 차원에서는 아주 맹렬했고, 인간적 차원에서는 아주 격렬했던 논쟁 속에서 전후 프랑스 지식인들의 삶을 대표했던 이 두 철학자의 목소리는 10년 이상 지속된 우정을 공개적으로 일거에 백지화하면서 서로 갈라서서 서로를 헐뜯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어떻게 보면 정말 아쉬운 점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상황이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르트르와 카뮈 두 지성이 이념이 충돌하는 컨템포러리를 살며 우정과 투쟁을 다룬 책을 읽으며 지적 발육에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내 자신에게는 솔직히 조금 어려운 면도 없지 않았으나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내 자신도 조금이나마 지적인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저자는 특히 지배계급에 대한 사르트르의 투쟁과 기독교적 휴머니즘 쪽으로 경사된 카뮈 사이의 극복 불가능한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조금 급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 책 ‘사르트르와 카뮈’ 책은 책상 책꽂이에 항상 꽂아 두면서 시간 있을 때마다 즉시 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중요 선물로 활용할 책으로도 아주 좋을 것 같다. 20세기 세계 문화와 역사의 한 증인으로서의 사르트르와 카뮈의 역할을 공부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유익한 독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