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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충고는 “자신의 본능을 따를 것,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것, 자신의 결론에 이를 것”뿐이라고 말한다. 독서에 대해 이토록 간명하면서도 모든 핵심을 꿰뚫는 정의라니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세 가지뿐인 것이 얼마나 이상적인 독서를 의미하는지도 잘 안다.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보통 이상의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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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을 읽고 내 자신 솔직히 고백하자면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에세이 류이다. 소설이나 시는 꽤 어렵거나 많이 부담이 가기 때문에 조금은 기피해 온 분야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조금 변하기는 하였지만 역시 에세이는 저자의 살아 온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펼쳐가기 때문에 특별히 많은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전문 지식이 없이도 편하게 대할 수 있어 내 자신 에세이를 더욱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편하게 여러 사람이 쓴 에세이들을 많이 읽고 있는 편이다. 물론 에세이는 오랜 경륜과 체험의 바탕위에서 쓰여 지는 글들이다. 그래서 그 글들을 통해서 간접적인 경험 습득과 함께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자기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분야의 사람들이 쓴 에세이들은 아주 중요한 멘토 역할을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의 작가이면서도 세계적인 여류 소설가이다. 특히 페미니즘과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저명한 평론가이며 학자였던 아버지인 레슬리 스티븐 경의 딸로서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로부터 감성적으로 글을 읽고, 훌륭한 글을 감상하는 법을 배운다. 스물다섯 살 때부터 신문에 에세이를 기고하기 시작하여, 서평 연재를 하였고, 소설 <출항>을 시작으로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자기만의 방> 등을 출간하여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은 평탄하지 않아 제2차 대전 후에는 런던에서 교외의 강 근처 별장으로 옮기게 되었고, 평소 신경증을 앓더니 점점 더 예민해지고 불안 증세가 심해지더니 결국 강가로 산책을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저자가 2편의 에세이류를 출간하였는데 1925년에 간행된 첫 번째 수필집에서는 시대적으로 14세기부터 20세기를 아우르면서 고대 그리스의 희곡,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작가,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 현대 수필 등 다양한 문학과 당시 사회 모습 등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수필집인 이 책에서는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 특히 페미니스트로서 널리 알려진 그녀의 명성답게 여성의 권리까지 다루고 있어 저자의 관심 영역을 엿볼 수가 있다.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에 대한 묘사,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 속에서 셰익스피어를 불러내는 멋들어진 솜씨가 빛을 발휘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영국 역사의 한 단면을 보통의 독자로써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에세이류 작품을 자주 대하여 다양한 분야에 있어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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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입니다.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렸을 때 여러 지면에 서평을 기고한 것을 묶는 것이 <보통의 독자>(원제로는 THE COMMON READER, FIRST SERIES)로 나왔습니다. 이후 <보통의 독자 버지니아 울프의 또다른 이야기>(원제: THE COMMON READER, SECOND SERIES)입니다. 유명한 소설가인줄 알았던 그녀가 에세이를 썼다고 하니 눈길이 갔던 것이 사실이고요, 또 하나는 <보통의 독자>에 쓰인 표지가 또 다른 이야기에 또 쓰였다는 사실만으로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탑이 쌓인 그곳에 달과 별이 총총박힌 표지가 묘하게 <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과 잘 어울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의 독자> 첫번째 이야기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두번째 이야기는 어렵지만 재밌다는 느낌이 든 책이었는데요. 재밌었던 이유는 배경지식이 없지만 책 속에서 언급되는 이야기가 오호! 흥미롭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한 '우리가 엘리자베스 시대의 글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시대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며, 엘리자베스 시대의 생활을 상상하는 것이 우리의 큰 기쁨이라는 사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야비한 즐거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p.9)라는 문장이 어려움을 떨쳐내고 즐겨보시오! 라는 문구와 같이 들렸습니다. 사실, 그녀가 지은 책의 제목이 중학교 때 친구와 쓴 교환일기와 제목이 비슷해 깜짝 놀랐습니다. 2권의 교환일기중 첫번째 노트는 친구가 갖고, 두번째 이야기는 제가 나눠 가졌는데 제가 갖은 두번째 노트 제목이 '○○○ ○○○ 또다른 이야기' 였거든요. 그 친구가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버지니아의 울프의 흥미로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어렵다는 이유는 그 시대의 배경지식이 보통이 넘기 때문입니다. 훗날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비평을 읽으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지역이나, 배경,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누구지? 하는 인물들이 대거 설명되다보니 책을 읽지 못한 공백이 설명되는 지식과 맞물려 보통의 독자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라고 하소연을 하게 됩니다.
평소 신경증을 앓았다던 그녀지만, 이번 에세이는 편안하면서도 말을 할 때 뒤끝을 올려주는 것처럼 어떤 부분에서는 꽤 경쾌한 음악을 내는듯 산뜻하게 들려옵니다. 어려운 것과 별개로 말이지요. 그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첫 책으로 이 책을 택했는데 결과는 좀더 내공을 쌓자라는 생각과 함께,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대표적인 작품을 읽어보고 다시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드네요. 에세이라고 만만히 봤다면 큰코다치는 녀석이라 준비를 단단히 하고 책을 펼쳐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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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독자』를 힘겹게 읽었다. 그럼에도 그 두 번째 이야기인 『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을 선택한 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아니,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지 모른다. 도전의 결과는 실패다. 『보통의 독자』에서 멈춰야 했다. 왜냐하면 보통의 독자와 마찬가지로 보통 이상의 수준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에서는 소설보다는 수필, 편지를 다룬 글이 많았다. 소설보다는 일상 생활과 생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산문과 편지는 훨씬 흥미로웠다. 안타깝게도 ‘토머스 하디’나 ‘크리스티나 로세티’를 제외하면 내게는 대부분이 낯선 작가였다.
산문이 주는 즐거움은 아마도 그 시대에 대한 자세한 배경과 작가의 솔직한 감정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가 소개하는 글을 통해 나는 몇 몇 작가에 대한 글을 특히 흥미로웠고 즐겁게 만났다. 스위프트의 <스텔라에게 보내는 일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와 비평가이지 수필가인 ‘윌리엄 해즐릿’이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은 오직 가면이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인간적인 면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멀리 떨어진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부분적인 표현 혹은 짐작은 단순하며 혼합되지 않은 관념이고, 그것은 실제적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에서 끌어내는 것은 혼합된 방식이며 유일하게 참된 것이자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방식이다.’ p. 279
그녀가 인용한 윌리엄 해즐릿이 쓴 수필의 일부다. 이 글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가면을 쓰고 살고 있을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 상대의 내면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어떤 경우라도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녀는 그의 수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의 수필은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수필이 아니라 큰 책에서 떨어져 나온 단편, 즉 인간의 행위에 대한 이유나 인간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성질에 대한 탐구처럼 여겨진다.’ p. 287
책을 읽다 문득 버지니아 울프가 이 글을 무척 즐겁게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소설이 아니라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경쾌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란 글에서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정말이지 독서에 대해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충고는 자신의 본능에 따르라는 것,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라는 것,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 등이다.’ p.415
이 글대로라면 『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를 선택한 건 본능에 충실한 것이며, 읽으면서 이성의 한계를 느꼈고, 역시나 내게는 버거운 책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는다면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도 있겠다. 여전하게 책의 내용은 어려웠으나 『보통의 독자』보다는 한결 편하게 다가온 건 사실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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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천한 독서 체험 목록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리하고 있지 않다 어디 버지니아 울프뿐이랴 조셉 콘래드,헨리 필딩,조지 오웰,에밀리 브론테,샬롯 브론테,제임스 조이스,마르셀 프루스트,도스토에프스키 등등 거장과 위대한 문인들이 아직까지도 미개봉의 처녀지로 나를 맞이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실은 부끄러운 일임에도 나는 기분이 좋기도 하다 이 모순된 상황은 아직 더 읽을 것이 남아 있다는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복잡한 상황이다 ㅋㅋ 고전들은 특별하기에 그 특별한 것들과 만나는 첫 순간을 아껴 두고 먹는 음식처럼 미래를 위하여 저장하는 것이다 하긴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들 중 의외로 첫 만남이 밋밋하고 아무 감흥이 없었던 작품도 없지 않아 있었다 로리타,시계태엽오렌지,위대한 개츠비 등등...아마도 명작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특수한 취향까지도 포섭하는 일반적 효용성을 가지기엔 나의 취향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나의 과문한 목록 속에는 아직 들어 있지 않은 버지니아 울프 울프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활발히 사용한 일군의 의식의 흐름의 작가들 중 한 명이며 작품 내용적으로는 여성의 자아 확립과 여성의 자각을 주제로 선두에 서서 페미니즘의 토대를 다진 선각자적 작가로 알고 있었다 이 수필 이상한 엘리자베스시대 사람들에서는 여성의 정체성 탐구라는 울프 고유의 주제의식은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울프가 주제로 삼았던 것이 엘리자베스시대 사람들의 기이한 정서 탐구여서 여성의 의식을 파고드는 작품들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엘리자베스 시대 라면 영국의 번영을 구가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엔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버지니아 울프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인 1920년대에도 꽤나 먼 200년이나 300년 쯤 된 그러니까 영광스러운 기억이 있다고는 하여도 과거였던 시대이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이 버지니아 울프가 활동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의 정신에 남겨 놓고 새겨 놓은 정서적 정신적 의식적 흔적들이 어떻게 상호교호하고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문학적 보고서이자 탐구서가 이 책의 큰 대강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관습 그리고 정신적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여러 문학적 저술의 형태를 통해 울프는 빅토리아시대를 형성하고 있는 원주춧돌같은 엘리자베스 시대를 해부한다 교구의 목사들이 남긴 숨김없는 솔직한 일기들,무척이나 괴짜였던 기인의 생애를 다룬 전기문,로빈슨 크루소가 잉태될 당시의 자본주의 중산층의 고유하고 단단한 윤리관을 보여주는 디포우의 소설 등등 다양하고 여러 분야에 걸친 저술들을 해석하고 분석하며 그 요소들을 흥미있고 유려하게 절개하여 그 내부의 구조를 울프는 보여 준다 그러나 그 구조의 형상화 작업이 문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서 대화하듯이 혹은 수업 시간에 발표 하듯이 친절하고 소탈하며 쉽게 애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들이다 울프가 목적으로 했던 것은 아마도 일반독자가 자신들의 조상들인 몇 세기전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정신의 특질들을 이해하여 아직도 조상들로부터 자신들에게 면면히 흐르고 있던 정신적 유산들의 총체적 구조의 정합을 알 수 있기를 기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부족한 소견이다 울프가 기도했던 그 과거와 이 책을 쓸 당시의 현재 사이의 대조와 총체적 가감은 아쉽지만 내가 영국에 대해 아는 것이 영국인의 정신 구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점 아래에서 뚜렷이 감지할 수가 없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아는 것이 무척이나 미미하고 한정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안타까운 체험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쉽고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울프가 어느 여자의 서간집을 다루면서 그녀가 속해 있던 사회의 사교계의 관습과 가족의 구속을 말하고 있을 때에도 그런 상황이 어떤 분위기인지 일반적인 것인지 특수한 것인지 내게 분별한 밝은 눈이 없음에 약간의 좌절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 나갔을 때 곧바로 내가 무척이나 즐겁게 잘 읽을 수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독서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지적인 책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예감은 비록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이나 대목이 나왔을 때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큰 맥락의 전개에는 아무 오해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행복한 결과를 가지고 다가왔다 이 책은 문학 속의 정신의 변천을 통해 지난 시대와 현시대의 대화를 유도하는 즐겁고 기쁜 의미에서 학술적인 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영국인들의 정신 세계와 기질 그리고 문화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의 반이라도 이해했는지 의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는 동시에 비평적 욕구를 충족시키져 주는 친절하면서도 일반적이고 그러면서도 전문적인 보기 드문 이 책을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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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릴 때 작가로서의 면모보다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페미니스트 작가로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법인 ’의식의 흐름’을 이용한 소설 <댈러웨이 부인>으로 평단과 대중의 큰 호응을 얻는다. 버지니아는 미혼시절부터 신문에 지속적으로 에세이를 기고했고, 결혼 후에는 <타임즈>에 서평을 기고했다. 정식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문학적인 집안 분위기와 독학으로 당시의 지식인층과 교류했는 데, 여성의 사회적 권리에 관심이 많던 그녀였기에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당시의 사회상들이 책 곳곳에 담겨져 있다. 책에는 문학과 문학가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여성의 권리와 사회참여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한 묘사가 아주 사실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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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책장 한 장을 넘기기 어려운 책들이 존재한다. 읽으면서 흥미를 잃게 된다는 사실이 정답이겠지만, 흔히 이런 책들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쳐다보게 되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던 이야기가 그저 여유가 없던 시절, 메말라버린 이성에 억지로 읽으려하니, 무미건조하게 읽혀진 건 아닌지. 책 속에서 사상을 찾고 나와 다른 성향을 책을 만나더라도 읽다보면, 그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가 연상이 되기 시작하면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이야기는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들려주면서 주관적이 입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귀족들의 일상,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히 표현해주었다. 그것도 고풍스런 언어를 사용하던 그 시대 사람들의 운문은 가슴이 미어질도록 감동적이었고, 단순히 소설로써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기품 있는 문체 위에 그 어휘들을 사용한 이유라든가 그 어휘를 사용하는 방법들, 소설을 일부분을 스스로 쓸 수 있게끔 알려주는 독백적인 문장들은 더욱 마음을 흔들었다. ‘별다른 효과가 없는 일에 이런저런 불평을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일이며, 제멋대로 하려는 기질을 나타내는 나쁜 조짐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사상가였으며, 철학가였으며, 낭만파였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시점으로 다르지 않은 조언을 해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증오하고 싶을 정도로 싫어지는 사람은 분명이 한명쯤 생길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라고? 솔직하게 혹평하는 그녀의 담백한 독백은 꾸미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어느 지침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단편 이야기 하나에서 그 많은 주인공들의 고민들을 독백으로 일러준다. 현재, 지금의 어려운 일들은 쉽게 인정하고 싶지도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천지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치유를 목적으로 쓰여 진 소설이 아닌데도 우스꽝스런 표현이 재치 있는 발상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단편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하나의 이야기에 무미건조해지다가 하나의 이야기에 사랑에 빠지고, 그 어느 장편소설에 비교할 수 없이 가벼운 책이었다. 왜 그녀의 이야기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이다. 책 속에 풍자에 정말 즐거웠고, 그 신선한 충격이 온 몸으로 느껴지면서 작가 본인인 그녀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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