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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는 멸시의 대상인가?-『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겁쟁이는 멸시의 대상인가?-『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내용보기
「 이렇게 말하자 용감한 메노이티오스의 아들이 그를 나무랐다. “메리오네스여! 그대같이 용감한 자가 왜 그런 잡담을 하시오? 친구여! 욕설한다고 해서 트로이아인들이 시신에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며, 그전에 많은 사람들을 대지가 붙들게 될 것이오. 전쟁의 결말은 손에 있고 말의 결말은 회의에 있소. 그러니 우리는 말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하오.”」 -『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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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말하자 용감한 메노이티오스의 아들이 그를 나무랐다.

“메리오네스여! 그대같이 용감한 자가 왜 그런 잡담을 하시오?

친구여! 욕설한다고 해서 트로이아인들이 시신에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며, 그전에 많은 사람들을 대지가 붙들게 될 것이오.

전쟁의 결말은 손에 있고 말의 결말은 회의에 있소.

그러니 우리는 말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하오.”」

-『일리아스』 제 16권 625~631행

 

『일리아스』에서는 수많은 전사가 등장하는데 그 많은 전사들은 하나같이 용기로 똘똘 뭉쳐있다. 특히 용기의 상징 같은 인물은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였는데 그는 전장에서 한 번 물러난 적이 있다. 물론 공포심에 그런 것이 아니라 아가멤논에게 여자 문제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킬레우스가 전장에서 물러나자 전세는 급격히 무너지게 되었고 아가멤논은 결국 아킬레우스에게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진심 어린 사과와 선물에도 불구하고 아킬레우스는 전장에 돌아가길 거부했다는 데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고뇌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 사회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용기를 숭상해왔다. 특히 남성의 세계에서는 명예나 용기가 생명의 무게보다 더 무거웠고 명예나 용기를 잃게 되는 경우에 가족에게까지 배척당해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문제는 이 죽음을 겁내지 않는 용기란 것은 실존적인 고민을 방해한다는 데 있다. 용기란 미덕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게 만들고 의심을 희석시킨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게 만든다. 한자에서 의심을 나타내는 ‘의(疑)’란 한자는 칼(匕)과 화살(矢), 창(矛)이 날아다니는 한 가운데서 옳은 길을 의심하는 것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아킬레우스는 전장에서 물러나서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어 트로이 전쟁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 그 의심의 순간에 과연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고민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는 실존적 고민이 싹텄을 것이고 비겁함과 용기, 만용, 명예란 개념이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지 깨닫게 됐을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용기를 잃은 사자가 등장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사자를 용기의 상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가 가능했을 것이다. 성경을 포함한 동서양의 고전들에서도 사자는 용기의 상징이며 그 용기와 담대함이 사람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에서의 사자는 절대로 용기로 똘똘 뭉쳐있지 않다. 우리가 섣불리 말하는 용기란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에 두려움 없이 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자 같은 맹수들은 단 한 번의 실수와 상처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면 엄청나게 신중해진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는 한 익숙하지 않은 상대를 먹잇감으로 노리지 않는다. 물론 완벽한 힘의 차이를 느낀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그 완벽한 힘의 차이는 자연계에서는 크기로 표현되기 때문에 큰 먹잇감을 다룰 때 맹수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살아남는 것이 곧 이기적임을 천명했다. 즉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오래 살아남는 것, 그리고 자신의 종을 계속 유지시키는 것이 지상목표임을 밝힌 것이다. 이런 명제를 인정한다면 ‘지배’라는 개념에 대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렇다면 개미나 바퀴벌레, 잠자리는 어떤 위치인가? 우리는 보통 공룡을 말할 때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멸망한 ‘멍청한’ 생물체 취급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공룡은 무려 1억 7천만 년이나 지구를 ‘지배’했다. 우리 인간은 길게 잡아도 300만 년을 살았고 지구를 ‘지배’한 것은 불과 5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에너지나 전쟁 문제 따위로 인류의 멸망 운운한다. 개미 같은 생명체는 2억 년이나 생존해 왔다. 인간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멸종하지 않을 것인지 감히 예측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그러나 거의 확실한 것은 공룡보다는 더 오랜 기간을 살아남지는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만 있는 용기란 것은 정말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정말 옳은(?) 것일까?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세계에서는 도덕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다. 정의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고 고매한 정신세계도 인간에게만 있다. 그러나 그런 정의나 고매한 이상이 인간을 멸종의 길로 인도한다면 우리는 용기를 예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입장에서 동물행동학을 사용하여 비겁함을 옹호한다. 특히 저자는 독일인의 입장으로서 나치의 제 3제국의 용기와 희생정신으로 무려 6000만 명을 죽인 행위에 대해 분노한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데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세계를 관통하는 신념도 아니며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가 요구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인간을 위태롭게 하며 용기를 최고의 덕목으로 만든다고 한다. 결국 평화롭고 조화로운 지구를 원한다면 도덕적 개인주의자가 되어 상대적 진리를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 관심을 가진 겁쟁이가 되어 아무 것도 모른 채 군중에 휩쓸려 용기를 찬양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데 삶을 치중하면 세상은 좀 더 안전해지고 결국 인류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런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데는 수많은 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 그 영웅들이 꿈꾸던 삶도 바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평화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할까? 아니면 비겁함이 필요할까? 아킬레우스가 전장에서 물러나서 한 고민이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전장으로 돌아가 목숨을 잃게 되었다. 아직도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을 내놓지 못 했고, 이 책도 해답을 내어 놓지는 못 했다. 단지 용기가 최상의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 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한 번 읽어볼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m*****a 2011.09.30. 신고 공감 12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는 비겁하고, 평범하다. 그러기에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비겁하고, 평범하다. 그러기에 삶은 계속된다." 내용보기
우리는 비겁하고, 평범하다. 그리고 살아 남는다. 인류는 용기를 찬양하고, 비겁함을 부끄러워한다. 왜 그럴까? 대부분 그러지 못하기에, 영웅은 작고, 일반인은 많다. 작은 것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진정 강자는 살아남는 자다. 이제는 비겁함을 예찬할 때이다. 우리에게는 죽은 영웅들은 너무나 많고 살아있는 겁쟁이는 너무나 적다. 이 책의 주제는 폭넓은 자연의 역사에서 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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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겁하고, 평범하다. 그리고 살아 남는다.

인류는 용기를 찬양하고, 비겁함을 부끄러워한다. 왜 그럴까? 대부분 그러지 못하기에, 영웅은 작고, 일반인은 많다. 작은 것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진정 강자는 살아남는 자다. 이제는 비겁함을 예찬할 때이다. 우리에게는 죽은 영웅들은 너무나 많고 살아있는 겁쟁이는 너무나 적다. 이 책의 주제는 폭넓은 자연의 역사에서 생물들이 어떻게 생존하는 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특정한 행동을 미덕의 지위에 올려놓고 또 어떤 행위는 부덕으로 격하한다. 그러나 비겁함은 생존의 중요한 동력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다 나름 비겁하기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대부분 비겁하다. 그러기에 이렇게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용기나 영웅적인 행동은 특별한 행동이기에 우리는 찬사를 보내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안전한 삶을 추구한다. 보편적으로 모든 생물은 안전함을 최우선시한다. 여기서 비겁함은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행복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 많은 잘못된 상식들, 먼저 상어를 보라. 흔히 죠스라는 강력한 이미지가 만든 오해, 무조건 겁 없이 인간을 공격하는 괴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상어들은 두려워한다. 단지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인류가 영원히 살아남으리라는 믿음이야말로 진정한 오해일 수 있다. 지구에서는 수많은 생물들이 탄생하고, 거의 대부분이 멸종되었다. 보통 작은 동물일수록 살아남는데 더 큰 성공을 거둔 것이 지구의 역사이다.

 

영웅과 영화와 영예 그리고 두려움과 비겁함, 영웅은 두려움이 없다. 일종의 생물학적(심리학적)인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범죄자들의 정권 밑에서 군복무한 것을 의무를 다한 것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터무니없이 뒷북을 치는 노릇이다. 현대사회의 문제 자살은 생물학적으로 비생산적이고 변칙행위로서 어떤 사회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죽음에 연관된 두려움과 공포는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대상이나 사건과 연관되고, 불안은 추상적인 영역에 기인한다. 죽은 영웅은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에 불과하다.

 

다윈의 진화론. 그의 진화론은 어떤 이론보다 이 세계와 인간에 관한 우리 관념을 확실하게 바꿔놓았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오해(?). 자연선택설은 겁쟁이를 옹호하는 이론이다. 그리고 문화도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비슷하다. 자연은 낭만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자연은 과장하지 않으며 계속적인 자기 파괴의 과정으로 도덕적 기준이 없는 자연이다. 유기체는 스스로 주위 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적자생존에서 적자는? 부끄러움이나 죄의식과 비슷한 감정은 살아남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거짓말과 속임수, 기만과 조작이 판을 친다. 생존에서는 상대를 속이는 기술이 장점이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위장과 속임수를 쓰기는 하지만, 도덕적 체계가 이것의 사용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동물이다. 의태(생존할 가능성), 몸부풀리기, 주위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 그러나, 오늘의 장점이 내일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진화는 지그재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불행하게 진화에는 필요할 때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없다. 인간의 과시는 일종의 몸 부풀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생물체는 자신이 처한 특정한 환경에 맞추어 살아남기 쉬운 전략을 택한다. 인간에게 있어 과시의 방식은 여러 가지이며 자신의 과시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할 때도 많다. 그리고 자연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전략에는 모두 대항 전략이 뒤따른다. 모든 존재는 가능한 한 길게 살고 유전자를 대물림 하는 것, 오직 이 하나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오직 이상적인 삶을 갈망하는 사람은 익숙한 방식대로 단순하게 살아온 사람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기 쉽다.

 

겁쟁이 생존행동양식, 먹이가 되지 않으면서 먹이를 찾아내는 것이 생존에서 중요하다. 한마디로 위태로운 삶의 연속이다. 흔히 집단에서의 희생은 무리의 이익이 개체에게도 동시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영리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을 위해 일을 꾸려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교활함과 영리함은 살아남는데 유용 기술이다.

 

비겁함과 도덕, 모든 종교가 개인의 행복을 찾는 대신 굴종과 겸손을 앞세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국가기관은 지배자의 입맛에 맞추어 개인에게 공공의 안녕을 중시하고 더 높은 곳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여 전쟁터에 보내 죽음을 맞이하도록 내몬다. 자기희생을 강조한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쉰들러는 자신에게 찾아온 사업 기회를 이용할 줄 안 기회주의자였다. 하지만, 일하는 노동자(유태인 등)을 인간적으로 대했다는 점이 다름이다. 그것이 그의 성공의 요인이었다. 개인의 삶에도 고정된 원칙이나 독단에 따른 것이 아닌, 주어진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더 권장될만한 일이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경쟁과 겨루기는 놀이나 스포츠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종당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다. 사람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명예나 신의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명예로운 행동은 그것을 누릴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죽음으로써 명예를 보존하고 새로 정립한다는 태도야말로 비극이다. 자연에서는 모욕감 때문에 싸우는 동물은 없다. 자연선택은 위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능력을 주었다. 보통 교육이 비겁자들에게 수치를 준다. 그리고 다른 집단 사이의 적대감을 조성한다. 하지만, 이것은 세계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하라. 그리고 생존게임에서 낯선 것에 무조건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는 당연하고, 적절한 생물사회적 본성이다.

 

이데올로기를 위해 우리는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인간이 지출한 전쟁비용을 합산한다면, 우리의 가난과 굶주림은 벌써 사라지지 않았을까? 인간이 지닌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왜 세상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이 모두 전쟁을 반대한다면 시민적 용기, 용기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일상적 용기가 필요하다. 겁쟁이는 자신의 목숨이 달아날까 무서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두려움을 알기에 다른 이의 두려움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돕고자 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다. 우리는 선동가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삶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 자신에게는 유일하게 올바른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광신에 맞서,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내고 그 관념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한번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것들을 개선하기는 쉽지가 않는 일이다. 대부분 민족중심주의 우월에 사로잡혀서 다른 문화나 인종을 폄하하는 것을 보라,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런 교육과 더불어 다양한 매체에서 생산되는 이데올로기나 다양한 광고가 우리를 세뇌하고 있다. 보통 광고가 노리는 것은 결국 우리를 속이고 개인을 하잖은 존재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 선전하는 제품을 소비하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음이 강조된다. 또한 정치가들은 국민과 가까움을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본 모습은 권력이나 정권을 쟁취하는데 있다. 대중매체의 광고, 자기중심적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병리적 이기주의를 부추긴다.

 

삶의 철학, 다른 사람이나 주변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 사회적 삶 속에서도 개체의 이익이라는 목적이 명확하다. 도덕은 인류의 사회적 진화를 위한 일정한 조건에서 진행되어왔음을 늘 인식해야 한다. 과연 사회가 우선인가? 개인이 우선인가? 우리가 지나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미래의 재앙은 피할 수 있다. 비겁함은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삶이 재앙에 내 몰리는 것을 막아주므로 하나의 미덕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적 방종까지 허락하지는 말이 아니다. 분명 도덕적 개인주의나 윤리적 이기주의로의 사회 속에서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이 책이 필요한 이유, 우리는 대부분 한 방향으로 배워왔다. 그렇기에 고정관념과 잘못된 개념들도 많이 자리하고 있다. 교육은 사회적 분위기이다. 그리고 교육이나 사회에서 말하는 것 이렇게 해야 한다. 같은 세상은 없는지 모르겠다. 세상일과 삶이란 것이 이렇게 일방적이지 않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 볼 필요도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 필요도 있다. 세상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일들은 적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렇게 해야 한다. 라고 배워왔다. 조금은 변화할 필요와 필요한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의 교육이 만든 사회, 우리는 항상 그 그늘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사회적 분위기나 시대적 흐름을 거슬리는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살아가는 개인들이 많은 사회가 되면 저절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비겁함은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적 침묵과 일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획일적인 전진이 아닐까 생각한다.

 



p*******t 2012.01.26. 신고 공감 8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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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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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에는 용기라는 것이 살아가면서 갖춰야할 성품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용기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같은 것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다.그도 그럴것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접한 대중매체들은 절대 죽지 않는 영웅들이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007시리즈에 나오는 제임스본드같은 영웅을 꿈꾸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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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에는 용기라는 것이 살아가면서 갖춰야할 성품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용기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같은 것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다.그도 그럴것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접한 대중매체들은 절대 죽지 않는 영웅들이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007시리즈에 나오는 제임스본드같은 영웅을 꿈꾸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하지만 현실은 영웅을 흉내내다 죽는 사람들도 간혹 보게  되고 얼토당토 않은 무모한 도전으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무모함이 바탕이 된 용기는 절대 미덕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과도하게 발달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특히나 용기있는 행동으로 생명을 잃는  행위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이 방해받거나 위협받지 않는 한 타인에게 적대감을 품지 않고,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을 감수하며 삶과 생존을 누릴 권리가 있는 자아의 주체로서  겁쟁이가 되어야 함을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결국은 인류가 생존법칙에 의해서 오랫동안 자연과 공존하며 인류의 역사를 써 왔듯이  인간이 인류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생존에 근거한 역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삶과 생존의 문제, 바로 이 두가지 키워드가 우리에게 당면한 재앙으로 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과거 겁쟁이로 간주되었던 도덕적 개인주의(윤리적 이기주의)가 우리의 삶을 생존하게 할 것이다. 

 

이어 저자는 용기라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없는 이유와 용기가 무모함으로 변질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이 땅에 살아온 동물들이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서 생존을 위한 행동들을 통하여 생존과 멸종의 이유를 보여주고 있으며  인류 최초 존재하였던  먹이사슬 가장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육식동물 중 티라노사우스는  멸망한 반면에 가장 온순한 포유류 흰긴수염고래는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는 이유를 바로 흰긴수염고래의 온순함, 겁쟁이 기질을 예로 들고 있다. 흰긴수염고래뿐만이 아니라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 생존하고 있는 동물들은 모두 겁쟁이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다윈의 적자생존의 법칙을 통하여  진화의 법칙을 제시하고 있음을 말하는데 한 개체가 멸망하지 않고 생존을 유지해온 이유가 바로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사회가 자연을 통하여 배워야하는 단 한가지가 명시된다. 바로 '생존'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생존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진화를 거듭해왔고 과학적인 문명이 발달해왔지만 모든 인류의 소망은 될수 있는 한 오래 사는 것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몸과 마음은 병들어가고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며 자연재해와 인재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자연의 위대한 법칙 '생존'하기 위한 법이 제시되는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전쟁가운데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인류가 심각한 생존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럼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왜  윤리적이기주의자인  겁쟁이가 되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모든 개체는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개체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갈등의 불씨를 안고 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적인 관계는 우리가 이기주의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기주의를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의 개체로 받아들인 후 도덕이 바탕이 되는 것을 책에서는 윤리적 이기주의자라고 말한다.

 

러셀이 인간에게는 두종류의 재앙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자연재앙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는 데서 오는 재앙이다. 자연 재앙에 대하서라면 그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안전하게 대피하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

 

여기에 저자가 이 책을 펴낸 핵심이 있다.바로 인류가 인간에게서 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겁쟁이가 되어야만 생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아가 숨 쉴수 있는 자리를 발견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며 무조건 남의 일에 동참하지도 말며 자신의 관심사를 살피는 것이 먼저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겁쟁이가 다가오는 미래를 지배할 것을 말이다. 처음 겁쟁이란 비유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읽었던 반면에 겁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듣다보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많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급변하고 있는 사회,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문명사회에서는 이제 과거 사회가 요구했던 영웅이라는 개념보다는 개개인이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사회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의 문제, 인류의 재앙에서 생존하기 위한 생존전략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1.09.17. 신고 공감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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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영웅들, 누가 그들을 겁쟁이라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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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가 영웅들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을 닮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마음 한 켠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영웅적인 행동을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이클 샐던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인
"숨겨진 영웅들, 누가 그들을 겁쟁이라 하랴" 내용보기

생각해보면 우리가 영웅들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을 닮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마음 한 켠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영웅적인 행동을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이클 샐던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인용한 브레이크가 파열된 기관차가 달리는 선로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선택문제에서 옆에 있는 사람을 밀어 선로에 떨어트릴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왜 스스로 뛰어내릴 수 있는가는 묻지 않았는지 궁금했던 기억도 있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2749935). 세계적으로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 푸란츠 부케티츠교수는 이런 제 생각을 꿰뚫어 본 것 같습니다. 부케티츠교수는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에서 인류가 지금에 이른 것은 영웅적인 행동을 한 선조 덕분이라기보다는 겁쟁이가 되어 치열하게 생존의 길을 모색해온 선조의 덕이 더 크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을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는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살아온 생물의 하나라고 볼 때, 다윈의 진화론에서 담긴 자연선택에 따른 적자생존의 개념에서 말하는 "적자(適者)"란 가장 용검하거나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자생존의 법칙은 강하고 용감한 자의 생존법칙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겁쟁이의 생존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현재에 만족하고 머물렀던 선조보다는 미개척지를 향해 한발 내디뎠던 선조가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지음 나무 위가 아니고 두발로 땅위를 걷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에 용감하고 진취적인 선조의 업적을 굳이 깍아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오로지 자신의 용기로 살아남아 여러 사람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준 영웅이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51쪽). 

에리히 프롬이 “영웅이란 두려움이란 의심이 없이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했지만, 죽은 영웅은 아무리 칭송을 많이 받아도 전설에서든 현실에서든 별로 쓸모가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57쪽) 아마 저자가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우리 옛말을 알았더라면 분명 인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이미 부덕(不德)한 것으로 밀어두었던 비겁함이야말로 재평가를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죽은 영웅이 너무 많은 반면 살아 있는 겁쟁이는 극소수이다. 이런 점이 이 책을 쓰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174쪽)”고 하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살폭탄테러와 같은 폭력적 행위가 특정사회를 위한 영웅적 행동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을 우려한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이 미국 항공기를 납치하여 뉴욕의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여 무너뜨려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911테러가 발생한지 1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자신을 포함한 타인을 폭사시킨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하여 대다수의 세계인들이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을 담보로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살 폭탄테러범은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가 자신의 행위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그 행동이 동정을 얻을지는 몰라도 예찬을 받을 가치는 없다. 정치적 현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고자 하는 사회가 더욱 구렁텅이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6쪽)”
고 말하면서, “범죄적 이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는 지나치게 겁이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며 이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위해 선행을 할 가능성이 많다,(7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죽는 것보다 조롱받는 것이 낫다는 소제목의 글(185쪽)에서 조롱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옳습니다. 조롱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롱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한신의 고사가 이를 증명한다고 하겠습니다. 한신(韓信)은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전쟁영웅인데 명성을 얻기 전에 동네 건달이 가랑이 아래로 기어가라고 하자 한신은 망설이지 않고 기어 나와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을 굽힐 줄 알았던 그를 지금은 비겁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가랑이를 기어나갈 수 있었던 한신은 겁쟁이가 아니고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부케티츠교수는 우리가 흔히 겁쟁이라고 알고 있는 숨겨진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펼쳐내다 보니 자연계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동물들의 생존전략을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어 쉽게 이해가 되는 점도 짚어야만 하겠습니다.



y*****2 2011.09.14.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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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개인주의와 윤리적 이기주의의결합, 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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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우리는 루저라고도 부른다. 이와 같은 믿음은 인간의 오랜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것은 불확실한 현실에 대한 그림자와 같다. 누구나 신념으로부터 오는 용기의 순간을 겪는다. 그 과정을 어떻게 수용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방향은 바뀐다. 비열할 것인가 아니면 용감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이러한 믿음은 관념이 되었고 부동의 가치로 작용한다. 비겁함의 그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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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우리는 루저라고도 부른다. 이와 같은 믿음은 인간의 오랜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것은 불확실한 현실에 대한 그림자와 같다. 누구나 신념으로부터 오는 용기의 순간을 겪는다. 그 과정을 어떻게 수용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방향은 바뀐다. 비열할 것인가 아니면 용감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이러한 믿음은 관념이 되었고 부동의 가치로 작용한다.

비겁함의 그 수치스러움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쉽게 와 닿지 않는 거리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생경한 주장을 하는 프린츠 M. 부케티츠의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호기심의 촉수를 자극한다. 그는 빈 대학교의 생물과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진화ㆍ인지생물과학의 전문가다. 그가 펴낸 이 책의 골자가 제목에서 드러나듯 소위 겁쟁이예찬론 정도 되지 않을까. 겁쟁이에 대한 새로운 시선, 그 패러다임을 풀어 나가는 이 책은 의구로 시작해 동감으로 변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진화의 웅장한 프레임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자연계의 험난한 투쟁의 과정을 뚫고 반복과 학습의 쳇바퀴를 진화라는 물결을 흐르고 또 흐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살아 남은 진화의 법칙,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환경에 친밀하고 빠르게 적응하고 뒤쳐진 종은 자연도태된다는 H.
스펜서의 이론이다. 때로는 돌연변이라고 하지만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경제적 효용성의 결과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더 정확하게 따져 보면 판을 보는 관점의 차이다.
적자適者로 비유되는 종은 강하고 빠르다는 현상에만 치우쳤지 평균적인 수명이 긴것과는 대체로 무관하다.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혁신적인 관념의 시작이다. 살아남은 동물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재능을 획득했다는 논거다. 실제 동물의 세계에 거짓말과 속임수, 기만과 조작이 만연한다는 사실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는 윤리적 잣대나 감정의 기준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세계로 국한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인간은 윤리적이고 감정의 지배를 받는 호모
사피엔스다. 윤리는 도덕적 관념을 낳고 기만과 거짓을 배척한다. 이러한 잣대는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과 진화의 상관관계는 더 복잡하고 미묘해진다. 인간의 유전자에 기록된 그 틀은 고정된 부동의 역사인지 모른다.

문제는 윤리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에 있다. 저자가 밝혔듯 회의적인 시각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또한 비겁함의 옹호를 차치하고라도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스스로 고립된 섬처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오늘날의 사회진화의 영향도 물론있겠거니와 감정의 기준점이 허락하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비겁한 겁쟁이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개인적 이기주의자는 정치적 조직 또는 이기적인 단체의
이합 형태와 자기 사이에 놓인 분명한 선을 구분짓고 다양한 자유주의를 사랑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논거의 핵심이다.(P-228)


분명한 것은 자아우선주의와 배타적 감정의 충돌에서 오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자아우선이 사회문화적 동력이 될 것이고 혁신을 구동하는 매개가 된다는
의미겠다. 그러나 이기적 행태와의 구분은 중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병리현상은 심각하다. 대중매체와 매개된 광고의 힘은 자기중심적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자텔베르거의 이념처럼 '신봉건주의의 범람' 또는 '신병리학적 자본주의 현상'의 욕망의 뒤틀린 깨달음 현상을 맛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도덕적 개인주의자에 대한 패러다임을 달리 쓰고자 한다. 그들이 개인적 이익을 중요시하는 반면 다른 사람도 그 자신의 이익을 따른다는 상호연관성을 수용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만의 개인적 삶의 방식을 선호하며 '자아발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회에 통용되는 법을 따른다. 그 속에는 타인을 배려하고 통념의 가치를 이끄는 행동규범으로서의 선이 존재한다. 그들에게서 삶은 목적에 충실한 작은 물결에 미동하지 않는 의연함을 작은 모욕을 물리치는 안정된 삶을 견지한다.


이와 같이 저자의 겁쟁이예찬은 오랜 통찰과 고민의 흔적이 빗은 결과물이다. 그가 이론이 생경하고 낯선 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만 그 발상의 전환은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방식이나 견해를 학계에
보고한다는 것은 오히려 보수의 고착화된 사고를 허무는 계기가 된다. 그의 도덕적 근본바탕에 버무려진 진화의 패러다임, 곱씹어 볼 주제다.


비겁자란
여러 상황 속에서 숨거나 도망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며 용기를 증명하려 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가능한 한 오래 살아남으려 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자신이 방해받거나 위협받지 않는 한 타인에게 적대감을 품는 일이 없으며 국가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보복조차 묵묵히 감수하며 그 결과 세속에서 물러난 삶을 사는 사람이다.(p-239)


물론 도덕적 이념이 바탕이 되지 못하다면 한낱 겁쟁이를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을 지배하던 이념의 허구 앞에서 애써 외면한 숨겨진 가치를 발견한 것과 같다. 쉽게 동요하지 않고 생물학적 생존경쟁의
불가피성을 떠올린다면 도덕적 개인주의와 윤리적 이기주의의 이상은 진화의 경계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미덕이란 지속적인 실천이 모여 구축된 삶의 태도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a******e 2011.08.31.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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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함, 교활함, 위장과 같은 가치에 명예회복을!
"비겁함, 교활함, 위장과 같은 가치에 명예회복을!" 내용보기
프란츠 M. 부케티츠(Franz M. Wuketits)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오해는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통견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에 따른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말하는 적자는 가장 용감하거나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인이다. 즉 적자생존의 진정한 의미는 최후에 웃는 자가 승리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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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M. 부케티츠(Franz M. Wuketits)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오해는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통견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에 따른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말하는 적자는 가장 용감하거나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인이다. 즉 적자생존의 진정한 의미는 최후에 웃는 자가 승리자라는 말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재능이 있고 가장 힘이 세고 가장 용감한 이가 후손을 남겨야 하지만 머리가 좋은 이들은 종종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종종 무식하고 약하고 비겁한 이가 살아남아 후손을 남긴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 순위에 두며 쓸데없는 모험이나 만용을 부리지 않는 동물이 바로 다윈이 말한 진정한 적자이다.

 

우리는 과거 살아있는 겁쟁이들의 후손들이다. 비겁함과 교활함, 위장처럼 부정적인 가치들이 실은 인간의 생존 전략일  따름이다. 저자는 비겁함이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강조한다. 비겁함이 부덕으로 간주되는 것은 여러 이념이 개인의 자기희생을 부추기고 무욕과 함께 어느 정도 자기부정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을 낭만적인 대상이 아니면 잔인함의 표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저자는 자연의 중립성, 진화의 무선무악을 강조한다. <동물의 왕국>은 동물의 야성을 아무런 여과없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적자생존의 법칙은 가치중립적이다. 선악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진화에 의도된 목적은 없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보편적인 목적론이나 합목적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덕적 엄격주의와 이상화된 인간상에 반대한다. 영웅의 자기희생이나 이타적 자살 모두 자연을 거스리는 행위다. 저자는 자살은 인간화 과정에서 발달된 행동전략의 하나로 그 사회에 적합한 구성원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되었다고 추측한다. "가장 겁 없는 용사는 가장 부도덕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바칠 수도 있다"는 애덤 스미스의 통찰이 옳다. 자유주의자, 방법론적 개인주의자로서 저자는 전체주의와 독재에 반감과 혐오를 표시한다.
 
"나는 우리가 수상쩍은 이념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요구하고 재앙의 씨앗을 퍼트리려는 수많은 음험한 시도를 무시했으면 좋겠다. 또한 이 책으로 싸움 잘하는 전사와 희생양을 필요로 하지 않는, 현세적이고 진화적인 인본주의와 인본주의적 가치가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여 우리가 자신의 삶을 즐기고 타인도 동참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9쪽)

 

진화는 맹목적이고 근시안적인 건축이다. 진화에서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자연선택과 종의 진화는 가장 강한 발톱과 이빨을 지닌 개체가 승리한다고 하는 자연의 잔인한 투쟁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다윈의 공식인 '적자생존'의 의미는 한 종의 개체들 가운데 다른 변이체들이 갖고 있지 못하거나 그다지 두드러지게 갖고 있지 못한 특정한 성질을 소유한 변이체들의 생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영웅은 두려움이나 의심이 없이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죽은 영웅은 아무리 칭송을 많이 받아도 전설에서든 현실에서든 별로 쓸모가 없다. 진화의 관점에선 자살을 어떻게 설명할까?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생존전략 대신에 죽음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하찮은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없다. 자살에는 영웅적인 의미가 없으며 그저 삶의 비극적인 한 형태일 뿐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같은 종에 속한 모든 개체는 서로 경쟁하며 살아간다. 즉 생존을 위한 투쟁은 같은 종에 속한 개체 사이에서 가장 치열하다. 사자의 싸움 상대는 가젤이 아니라 다른 사자이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경쟁과 겨루기는 놀이나 스포츠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종당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다. 사람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명예나 신의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명예로운 행동은 그것을 누릴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죽음으로써 명예를 보존하고 새로 정립한다는 태도야말로 비극이다. 자연에서는 모욕감 때문에 싸우는 동물은 없다. 자연선택은 위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능력을 주었다. 

 

저자는 도덕적 개인주의의 옹호자로 집단적 가치 때문에 개인이 희생당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는 건전한 도덕적 개인주의자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도덕적 개인주의자는 개인적 이익을 중요시하며 다른 사람도 그 자신의 이익을 따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만의 개인적 삶의 방식을 따르며 '자아발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회에 통용되는 법을 따른다. 하지만 통념을 따르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얼마나 중요한지 인정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타인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할 줄 안다.

그는 자신에게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며 어떤 종류든 집단적 압력에 굴복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정당의 선전행사나 함성을 내지르는 광적인 축구팬 틈에서 도덕적 개인주의자를 찾아보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개인적인 삶의 목적에 충실하며 하찮은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작은 모욕을 받고 분노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위협하는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적으로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신의 개인적 삶의 방식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인정하고 내버려둘 줄 안다.(230-1쪽)

 

지금까지 저자의 저서는 세 권 읽었다. 내가 느낀 저자의 철학적 입장은 명확하다. 그는 언제나 도덕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의 편에 선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저자가 도덕적 개인주의자이지만 개인적 이기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도덕적 개인주의란 자기중심적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병리적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어떤 외부적인 힘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중요시 하되, 타인 역시도 그 다신의 이익에 따른다는 점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며, 또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상처 받지 않도록 배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창조론과 같은 미신이나 설계론과 같은 사이비 과학이 아니라 진화론과 같은 자연과학의 편에 선다. 그는 진화생물학에 기반한 윤리학, 즉 진화윤리학을 지지한다.

z***a 2013.05.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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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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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늘 대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 솔선수범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배웠다. 자신감을 가지고 권력이나 불의에 대응하는 사람들은 비록 과정이 힘들지만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고 현실에서 달아난 사람들은 평생 비겁하다는 욕을 듣거나 스스로 자책하며 살게된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런 영웅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경험으로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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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늘 대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 솔선수범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배웠다. 자신감을 가지고 권력이나 불의에 대응하는 사람들은 비록 과정이 힘들지만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고 현실에서 달아난 사람들은 평생 비겁하다는 욕을 듣거나 스스로 자책하며 살게된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런 영웅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경험으로 터득하게 된다. 현실은 교육에서의 올바른 가치관, 영웅으로서의 역할이 무의미할 때가 있다. 빠른 승진으로 승승장구 하는 사람들은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때론 잘못을 보고도 먼저 나서서 꾸짖거나 하지 않는다. 보복을 당하거나 자신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생길까봐서다.

이 책에서의 겁쟁이가 의미하는 바는 현실에서의 많은 사람들을 얘기하는 것 같다.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들이 카리스마를 가지고 책임 운운하는 사람보다 오랫동안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육과 현실에서의 괴리감 때문에 그동안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 같다.

용기있는 자의 최후가 어떤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다는 것을 직시하라는 언급부터 시작된 이 책은 부조리에 불평불만만 가지고 입밖에 내지 못했던 내 맘을 속시원히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이제는 비겁함이 조금 더 존중받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영웅이 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서 이 때문에 너무 많은 희생이 일어났다. 민족의 우수성을 과하게 드러내는 결과로 전쟁이 일어나고 일부 민족들은 이유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 만약 조금 겁쟁이였다면 주변의 부추김에 휘둘리지 않고 제 몸을 사리면서 전쟁통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길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 삶동안 나를 좀더 사랑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즐길 권리가 있다. 대의도 중요하지만 나부터 안전한 보살핌 속에 있을 때 삶의 소소한 즐거움과 의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웅이 되는 것도 여전히 내겐 매력적인 일이다. 남들에게 존경받고 훌륭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역사에 길이 남을 그런 사람, 그렇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엄청난 용기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난 겁쟁이일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은 겁쟁이라도 괜찮다고 내게 말을 해준다. 세상을 이끄는 사람은 죽은 영웅이 아니라 살아있는 겁쟁이 들이다.

r*****1 2011.09.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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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내면의 소리를 듣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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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느린 아이는 생각이 많은 아이라고 한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자신이 하는 행동으로 인해 올 결과까지를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행동이 느릴 수 밖에 없다라고 하는데,이는 현직 아동상담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행동이 느린 아이들 모두를 생각이 많은 아이로 일반화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생각이 많은 아이는 행동부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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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느린 아이는 생각이 많은 아이라고 한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자신이 하는 행동으로 인해 올 결과까지를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행동이 느릴 수 밖에 없다라고 하는데,이는 현직 아동상담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행동이 느린 아이들 모두를 생각이 많은 아이로 일반화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생각이 많은 아이는 행동부터 하고 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겠는데 좋게는 신중한 아이로, 나쁘게는 겁쟁이로 불리울 소지가 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겁쟁이로 불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특히 사내 아이이의 경우, 행동부터 덥썩 저지를 때 신중하지 못하다고 나무라기는 하지만, 사내아이답다 라고 은연중에 칭찬 아닌 칭찬을 하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 생각이 많아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아이는 겁이 많고, 더 나쁘게는 비겁하게까지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느린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부모의 이런 노심초사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관습의 결과로 자신의 아이가 남들 눈에 비겁자로 보이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이 책에서는 겁이 많고, 비겁하게까지 여겨지기는 신중한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용감한 사람들에 비해 생존률이 높다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용기란 위험하다라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피할 줄 아는 지혜라고 말한다. 비겁함은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본성이다.

헐리우드판 영화는 한사람의 영웅이 다수의 많은 사람들을 구한다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그 한사람의 영웅은 겁쟁이인 대다수의 대중을 구하고 자신조차도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대다수의 겁쟁이인 우리는 영화를 보며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 하며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불사신과 같은 영웅은 영화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을 초개와 같이 던져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이타성이란 체제가 그를 유지하기 위해 설파하는 헛된 믿음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신의 생명을 잃고서 얻은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인가?

2001년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 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던 고 이수현 씨는 달려오는 지하철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남은 아랑곳없이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더군다나 한국인이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희생된 이 사건은 인간애의 귀감이라며 높이 치켜지고, 기념비가 세워지는 등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기려지고 있으나, 사망 당시 자신의 꿈은 피워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이었던 고 이수현 씨는 지금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의 이름만이 남은 자들 사이에 가끔씩 기억될 뿐이다. 목숨을 잃은 자에게 명예나 보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이수현 씨의 희생은 영웅담으로 인간사에 오래오래 화자될 것이다.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용기는 아름답지만 쉽지 않고, 쉽지 않기에 아름답다.

이 책의 저자는 위와같은 영웅담은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결국 살아남는 것은 이타적인 영웅이 아니라, 이기적인 비겁자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게 들리는데,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하는 자가 살아남는 다는 것이다. 진화에서 적자는 강자가 아니라 겁쟁이 혹은 비겁자, 즉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행동하는 생명체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이 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저자의 계속되는 주장, 진화의 과정에서 '정의' '옳음' 따위는 필요치 않으며 모든 생명체는 그저 길게 살고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길 원할 뿐이라는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에게 학습되어오고 마땅히 지켜져야 할 미덕으로 여겨지는 이타주의, 인간애, 살만한 세상의 이야기가 모두 거부되어야 한다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두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만 행동한다면 지금보다 더 까칠한 이기적인 세상, 고 이수현 씨와 같은 자발적 희생자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세상이어야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저자의 주장이 거북스러웠다. 도대체 저자는 이 책을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이런 주장을 펼치는가 싶을 정도였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맞서 많은 유대인들을 구했던 쉰들러는 영웅이나 이타주의자라기 보다는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회주의자 였다(이 책의 주장에 의하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한 일인 쉰들러의 이기적 행동이 결과적으로 많은 유대인을 살렸을 뿐이다. 만일 쉰들러가 나치에 맞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용감히 맞선 사람이었다면 다른 사람의 생명은 물론 자신의 목숨조자도 지키지 못했을지 모른다.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그 자신은 물론 다른사람들 조차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영웅이란 기회주의자여야 하는가.

저자는 이 질문에 개인적 이기주의자, 도덕적 이기주의자로 답한다. 정치나 종교의 지도자들은 다수 혹은 전체를 위해 개인은 마땅히 희생되어야 한다라고 강요해 왔다. 전체 속에서 개인을 주장하는 자는 배신자이고 이단이다. 다수의 대중은 지도자의 독재에 맞서기 보다는 굴종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자신과 자신의 삶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타인과 무리로 부터 벗어나지 않기 위한 생존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에 저자는 "자신만의 정신적 달팽이집을 구축하여 이 세계에 재앙을 불러오는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종교적 열광과 온갖 종류의 광신에 맞서"(222쪽)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지나온 역사에서 보듯이 모두가 찬양하는 영웅적 행동과 용맹성은 사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채워줄 수단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제는 알아야 할 때다. 사적인 정치와 결탁한 온갖 종류의 대중매체는 개인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않으며, 개인은 마땅히 집단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라는 이념을 설파한다. 그러나 개인적, 도덕적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이익을 중요시하며, 또한 타인의 이익을 존중한다. 나를 방해하지 않고,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사회적 통념을 따른다. 그는 엄격한 도덕적 원칙을 필요로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개인적으로 타협하고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도덕적 원칙을 중요시하는 타인 또한 인정하고 배려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매우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거칠게 표현하면 도덕적 이기주의자는 상황에 따라 이기주의자 일수도 이타주의자 일수도 있는 기회주의자이다. 어감이 좋지는 않지만 말이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권리가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길줄 알아야만 타자의 소중함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개인주의자는 무엇보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자, 생각이 많은자, 조심스러운 어린아이와 같다. 그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며 오래도록 생각한 후 행동한다.

한 사람의 영웅은 수많은 겁쟁이들의 대리만족의 대상일 뿐이며, 수많은 겁쟁이는 결국 수많은 용기있는 자라는 저자의 주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되는 이야기다. 모두가 서는 줄에 서는자야 말로 진정한 비겁자이다.

저자가 이런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5장까지를 읽으며 나 또한 이 책의 목적이 불순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도덕적, 개인적 이기주의자가 답이라는 결말을 읽으며, 대부분의 겁쟁이인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주장을 곡해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a*****0 2011.09.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비겁함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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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두려움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이에 당당히 맞서는 것을 용기라 부르고, 그동안 이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하며 실천할 것을 강조해왔고, 반면에 이런 용기의 행동과는 달리 비겁한 행동이나 행위에 대해서, 그것은 기회주의적이거나 혹은 바보스러운 것으로 여겨 마치 부도덕인 것인 양 지금껏 치부해왔다. 그래서 목숨을 무릅쓰고 용기 있는 행동을 보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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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두려움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이에 당당히 맞서는 것을 용기라 부르고, 그동안 이를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하며 실천할 것을 강조해왔고, 반면에 이런 용기의 행동과는 달리 비겁한 행동이나 행위에 대해서, 그것은 기회주의적이거나 혹은 바보스러운 것으로 여겨 마치 부도덕인 것인 양 지금껏 치부해왔다. 그래서 목숨을 무릅쓰고 용기 있는 행동을 보인 사람들에게는 대개 영웅적인 인물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이며, 상대적으로 용기를 내지 못한 비겁한 자에게는 많은 비난의 화살을 퍼붓곤 한다. 인류역사 이래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용기 있는 행동을 보인 사람들은 많았다. 그리고 사후에 그들의 존재는 남아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우상으로 남았지만 정작 그렇게 용기의 희생으로 사라진 그들에게 있어서나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엄밀하게 이야기 한다면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들이 남겨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러한 행위는 자신의 삶을 존재를 부인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표면에 내보임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어찌 보면 가치 없는 행동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반대로 타인에게 어떠한 해를 입히지 않았음에도, 단지 용감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행동양식인 것인지는, 우리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위를 두고, 이에 대해 일부 동정의 여지는 있을지 모르지만 박수 받을 만한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행위들은 대부분 일부 지도자들이나 정치가들의 선동에 의한 것은 아닌지 예의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한 현실을 고려할 때,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고자 하는 사회가 오히려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진화론의 선구자 다윈이 주장했던 자연선택에 따른 적자생존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우리 사회에서 적자라는 의미는 가장 용감하거나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인으로 인식되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즉 살아남은 동물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지,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서 언제나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전쟁터에서 용감무쌍한 활약을 보였지만 결국 죽어간 병사들은 다윈의 주장한 적자의 관점에 보면, 이들의 행위는 그가 말한 적자라는 의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예는 오늘 우리의 사회에도 얼마든지 많이 존재한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린다든지, 혹은 가파른 협곡을 올라가거나 거센 물길에서 급류 타기를 하는 행위, 아무런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격투를 벌이는 행위 등, 심한 경우 자신의 목숨을 잃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는 무모한 그런 행동을 하는 자들은 결코 적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그릇된 행위가 단지 용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일반 사람들에게 오도되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한다면, 이는 차라리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일은 아닐까 싶다. 결국 적자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지, 무서움을 회피한 겁쟁이로 손가락질 받아야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이성적인 힘에 의해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누구든 목숨을 담보하는 무모한 행위를 부추기고 이에 응하는 것에 대해, 그러한 행위가 합리적인 것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며, 한편으로 용기라는 것으로 치장하여 이를 두둔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설사 그것이 다수의 타인을 구하기 위한 행위라 한다 해도 말이다. 따라서 그런 경우라면 우리는 철저한 겁쟁이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점에 있어 반드시 구별되어야 할 것은, 겁쟁이가 된다 하더라도 불의를 보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해서 이를 외면하라는 것은 아니며, 또한 누군가에 의해 강압적인 힘에 의해 자신의 삶을 보존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굴욕적인 복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정도에서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결론으로 우리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이기주의자가 아닌, 자아우선주의에 따른 도덕적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병리적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어떤 외부적인 힘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중요시 하되, 타인 역시도 그 다신의 이익에 따른다는 점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며, 또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상처 받지 않도록 배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일부 무장단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유로, 어린 아이들을 자살폭탄 특공대로 내몰고 있다고 한다. 극단적이지만 그와 같은 아이들의 용감한 행위가 아무리 애국심에 의한 자율적인 것이었다 해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영웅으로 떠받들고 칭송해야 하는 미덕이 아닌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반대로 그런 일을 거부한 어떤 아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를 겁쟁이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한대로 도덕적 개인주의에 따른 하나의 미덕으로 받아 들여져야 할 것이다.



p*******3 2011.09.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말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할까?
"정말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할까?" 내용보기
예전에 <위험한 생각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역사를 읽으며 (혹은 역사드라마를 보며), 대의를 위하여 장렬히 산화한 조상들을 존경하며, 억울하게 죽어간 선조들을 안타까워하며 대의를 짓밟으며, 무고한 이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간, 이른바 악인(惡人)들을 힐난하며 욕을 한다.  그리고, 저들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 말하자면, 우리는
"정말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할까?" 내용보기

예전에 <위험한 생각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역사를 읽으며 (혹은 역사드라마를 보며), 대의를 위하여 장렬히 산화한 조상들을 존경하며억울하게 죽어간 선조들을 안타까워하며 대의를 짓밟으며무고한 이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간이른바 악인(惡人)들을 힐난하며 욕을 한다.  그리고저들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

 

말하자면우리는 악인의 후예라는 것인데 만약 사극에 나오는정의를 위해 싸우다 사약을 받는 이라면 그 후손은 존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비겁하거나 무관심한 이들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게 그 때의 생각이었다

 

프란츠 M. 부케티츠의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도 비슷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용기란 이른 죽음에 다름 아니란 게 저자의 생각이고자신의 생명을 온전시키면서 자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자연선택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저자의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여러 예들을 들고 있는데,  사실은 깊이 있는 학술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몇몇 서적과 개인적인 경험그리고 몇몇의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물론 무모한 용기가 자연선택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넘기기 불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일면 인정할 만한 것이 없지 않지만 최근의 진화 이론이를테면 이타성의 진화에 대한 것은 전혀 고려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반쪽에도 훨씬 못 미치는 개인적인 사유에 그치지 않나 싶다

 

그리고병역에 대한 얘기에서는 상당히 우려스럽기만 한데비록 독일의 상황에서 해당되는 얘기이겠지만 그냥 그것을 우리 상황에서 받아들여버린다면 어떻게 해서든 군대를 가지 않는 것이 선()이 되어버리는 것으로 해석될 여기가 있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당연히 사고란 특수한 것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이 인정받기 위해선 보편성을 얻어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는 적지 않게 흠을 가진 책이라 할 수 밖에 없다.


(2011. 8)

YES마니아 : 로얄 n*****m 2016.02.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