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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페미니즘은 중요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페미니즘 차이와 사이』
"왜 페미니즘은 중요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페미니즘 차이와 사이』" 내용보기
MCM의 김성주 회장은 독특한 이력과 발언으로 유명한데 특히 패션업계의 전설 쯤 되는 사람이 여자들 중 아무도 관심이 없는 대한민국의 군대 문제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자기 회사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군 가산점 문제로 논의가 촉발되면 여자들은 군 가산점을 반대하고 남자들은 군 가산점을 찬성한다.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 페미니즘은 중요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페미니즘 차이와 사이』" 내용보기

MCM의 김성주 회장은 독특한 이력과 발언으로 유명한데 특히 패션업계의 전설 쯤 되는 사람이 여자들 중 아무도 관심이 없는 대한민국의 군대 문제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자기 회사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군 가산점 문제로 논의가 촉발되면 여자들은 군 가산점을 반대하고 남자들은 군 가산점을 찬성한다.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국가 서비스와 헌법에 관련된 문제가 성 차별에 관한 문제로 변질되어 남녀 대결의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문제를 인권이나 국가 체제의 문제로 토론을 시작하면 김성주 회장의 발언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뛰어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주 회장은 여자들도 이스라엘의 키부츠 같은 공동농장 같은 곳에서 노동을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김성주 회장의 발언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시작한다면 군 가산점 같은 남자들에게도 거의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혜택이 아니라 좀 더 놀랄 만한 혜택이 국민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

 

국방의 의무는 남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에게 다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물건에는 세금이란 것이 붙어 있고 결국 그 세금 중 일부는 국방비로 지출된다. 우리가 잘 알지 못 하는 사실 중에 하나는 전 세계 GDP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무기와 국방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마약이다. 즉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일에 가장 많은 비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무기와 마약을 없앨 수는 없고 이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국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국가가 이렇게 너무 많은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생기는 폐해는 불을 보듯 빤하다. 하지만 국가가 없었을 때 생기는 재앙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국가에 이렇게 무한대에 가까운 권력을 주면 국가는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데 우리가 소위 ‘4대 의무’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 4대 의무 중 국방에 관련되어 남녀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페미니즘 쪽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한 쪽은 이 현격한 차이를 무시하는 전략이다. 이미 세상은 여자한테는 불리하다. 굳이 이 불리한 현실에서 남자에게 불리한 것 하나가 있다고 해서 여자 쪽에서 굳이 남자의 그 불리함을 해결해 주기 위해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입장은 페미니즘 진영이 아니라도 일반적인 여자들의 사고일 수도 있다. 다른 한 쪽은 국가 서비스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일이다. 일부 무정부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국가에게 무한 권력을 양도하는 것을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는데 남자든 여자든 군대라는 심각하게 부조리한 조직에 의무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남자든 여자든 군대에 안 가면 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언뜻 남녀평등에 근접한 이론인 듯 보이지만 이는 이론적인 논의와 실제적인 국가나 폭력집단의 위협이 전혀 통합되지 않기 때문에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아나키즘적 사고는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 남녀평등이라는 커다란 틀을 말장난으로 격하시켜 버린다. 그러나 이런 말장난이 세간에 통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국민들에게 의무는 종용하면서도 제대로 된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국민이 국가에 제공하는 서비스와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남자든 여자든 국가에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분리해서 지배하기(divide and rule)’가 남녀 간에도 통한다. 국가에 대한 서비스가 남녀 간에 차이가 발생함으로써 분리 지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다. 국가는 국민들에 대해 충분한 서비스를 못하지만 우리 사회가 남녀로 분열되어 있으므로 그 서비스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가는 자신이 할 일을 방치하며 국민들은 고스란히 그 부담을 스스로 지게 된다. 좀 더 쉽게 접근해보자면 당장 군대에 가는 남자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 생기게 된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군대를 가라마라야. 여자들은 군대도 안 가잖아. 나한테는 필요도 없는 군 가산점이지만 여자들은 군 가산점도 폐지시키고 거기에 대해 한단 말이 애 낳고 키우는 고통이 군대 가는 것보다 더 심하다는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잖아!”

 

그러나 만약 국가가 전 국민에게 양육 수당을 주고 일부 사립대학을 진학하는 것을 제외하고 대학까지 무상으로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해주며 직업을 선택할 때 국가가 강력하게 개입해서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지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만들어 준다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국가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게 될 것이고 국방의 의무와 같은 ‘4대 의무’에 훨씬 덜 저항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회가 되려고 하거나 되었을 때 여자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이다. 남녀 모두 징병제를 사용하여 군대를 가는 것은 이 문제의 근본 해결 방안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여자를 더 열등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굳이 군대 같은 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정치적 소양을 쌓을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는 완전히 다르다. 여자도 공동생활을 통해 정치적 소양을 쌓고 리더가 되어야 한다. 즉 굳이 총을 들고 싸우는 군대가 아니더라도 공동 조직을 통해 국가에 대한 서비스를 해서 국가와 국민들 간의 서비스의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남자가 군대를 가는 일은 사실 시간 낭비만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실질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공동생활의 체험이라는 정치적으로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의 지도층과 지도층 자녀들은 군대를 가지 않거나 ‘꽃보직’을 받음으로써 이런 공동생활을 통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올바른 인식에 기초해 정책을 펼칠 수가 없다. 만약 남자든 여자든 이런 공동생활의 경험을 통해 정치적 감각을 익히고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면 이들이 지도적 위치가 되었을 때 좀 더 훌륭하고 균형 있는 대안을 창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페미니즘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이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남성의 가부장적 지위가 너무 높았을 때는 당연히 가부장제를 공격하고 억압 받는 여성의 목소리를 외부로 표출시켜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가부장제가 충분히 나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을 때이다. 만약 페미니즘이 여기에서 멈춰버리게 되면 페미니즘이란 단순히 여성의 이기주의적 욕구의 산물로 여기게 된다. 20년 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여성은 평생 동안 립스틱 14개의 분량을 먹고 남성들은 평생 동안 7개의 립스틱을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의 정확성을 차치하고라도 이 이야기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남녀평등이 되려면 여성이 화장하는 대신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성의 상품화에 반대하고 여성이 외모에 신경 쓰는 대신에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여성이 충분히 노출하고 킬 힐을 신는 것과 성범죄와는 상관없다는 집회에 찬성하는 일이나 하고 있다. 나는 페미니즘 진영이 이런 일들에 의사를 제대로 표시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페미니즘이 거대 담론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납득할 만하게 내놓은 적이 있는지가 문제다. 페미니즘이 중산층 백인 여성들의 불평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흑인 인권 운동이 로자 팍스의 ‘버스에서 앉아 가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흑인 인권 운동의 훌륭함이 격하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얼마나 정신적 수준이 높았냐는 데 있다. 여성 운동이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해서 수많은 남성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꿔 놓았다. 물론 현실은 아직도 집안일은 여자들의 몫이며 양육부담 또한 여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의 남자들은 그런 것에 대해 미안해한다. 블라이의 남성성에 관련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남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균형 있는 남성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때 페미니즘 이론은 여성들조차도 관심이 없었으며 단지 여자들을 이기적인 존재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었다.

 

페미니즘 이론은 10년 전에도 젠더였고 지금도 젠더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물론 사회학이나 정치학 같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문 틈바구니에서 젠더만이 살 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은 전부 영문학에 관련되어 있다. 세상에! 여성학을 이제는 영문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헨리 제임스를 읽지 않고는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익히 알려진 사회학과 철학을 현실에 적용해서 페미니즘적 사고가 아직도 이 사회에 유효한지 알려주지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궁금한 것은 20세기 초 미국의 페미니스트 혁명가 엠마 골드만이 한 말 “나를 춤추게 하지 않는 혁명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지금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군 가산점 문제나 양육의 국가 서비스 문제인 것이다. 지금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좀 더 이론을 갈고 닦아서 ‘그들만의 리그’에 안착하면 안 된다. 치열한 논쟁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내 놓고 여자들도 인정할 만한 논의를 통해 페미니스트란 표현이 사회학도나 철학도 정치학도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m*****a 2011.09.07. 신고 공감 11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이 아닌 소외된 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이 아닌 소외된 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내용보기
생각할만한 많은 꼭지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기존의 페미니즘이 여성을 위한 여권 운동이었다면, 현재의 페미니즘은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인권 운동으로 확대된 것이 느껴졌다. 여자 여(女)자가 아니라, 같을 여(如)자를 사용한 것이 여성부이듯, 여성중심으로 일견 배타적이었던 페미니즘 집단이 조금 유해진 느낌이다.  여러 꼭지가 많았지만 인상깊었던 것은 요즘 한참 논란이 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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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할만한 많은 꼭지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기존의 페미니즘이 여성을 위한 여권 운동이었다면, 현재의 페미니즘은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인권 운동으로 확대된 것이 느껴졌다. 여자 여(女)자가 아니라, 같을 여(如)자를 사용한 것이 여성부이듯, 여성중심으로 일견 배타적이었던 페미니즘 집단이 조금 유해진 느낌이다.

 여러 꼭지가 많았지만 인상깊었던 것은 요즘 한참 논란이 된 아랍 여성의 부르카였다. 아랍 여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 새까만 외투인 부르카는, 페미니즘 초기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의복으로 부르카를 벗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었다. 역사적으로도 부르카를 걸칠 수 있는 여성과 걸칠 수 없는 여성을 구별함으로써 차별에 대한 가시적인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 스스로 부르카를 입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페미니스트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부르카를 입었을 때와 벗었을 때의 남자들의 태도 차이가 확연하고 부르카를 입지 않았을 때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다면, 부르카를 벗어도 불이익이 없도록 여권을 신장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또한, 아랍인에게는 부르카는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예전의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서구를 중심으로 ‘정답’을 향해 급하게 달려나가는 것이 보였다면, 최근에는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페미니즘의 단계를 거쳐 나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실 수학이나 과학 문제와 달리 사람과 관련된 문제들은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설령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해도 중간과정을 무시한 채 정답으로 달려나가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심리치료를 통해 분노의 마지막 단계가 용서라는 것을 알고 잇지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하는 용서는 오히려 더 큰 분노와 억압을 가져온다.

 또 다른 흥미로운 꼭지는 노인에 대한 연구였다. 여성의 소외에 대해 논하면서도, 페미니스트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노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시대를 풍미한 페미니스트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노인에 대한 연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같이 소외를 당하는 처지였음에도 역지사지가 쉽지 않음을 느낄 수가 있다.

 천부인권이라고 하여, 인권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사상이 서민들의 생활에까지 내려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노예제도는 인간의 역사에서 오래 버텨왔으며, 아동의 인권이 논의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노인, 그중에서도 여성인 노인의 추함은 중세의 예술작품에서 희극으로 묘사되며 그 추함을 즐겼다. 노파의 추함을 비웃은 사람 중에는 젊은 여성들도 다수인데, 그들이 세월의 흐름이 누구에게나 공평함을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린 것인지 의문이다.

 어렵고 학문적인 얘기가 아니라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오늘을 조명하는 시도가 좋은 책이었다. 모성 서사의 불만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봤던 ‘엄마를 부탁해’와 영화 ‘마더’가 분석되어 있어 신선했다. 책의 출간에 시간이 걸리니까 대개 과거의 얘기를 보게 되는데, 현재를 조망한 점이 좋았다. 물론, 이 책을 내년에 보게 되면 이 책 역시 과거의 얘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4부, 18개의 꼭지에 걸쳐서 이어지는 다채로운 내용에 대해 한 번쯤 사색에 빠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a***a 2011.08.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페미니즘: 차이와 사이] 오늘날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왔을까
"[페미니즘: 차이와 사이] 오늘날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왔을까" 내용보기
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이 날 '페미니스트' 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내 성향이나 그 비슷한 걸 드러내는 발언이 페미니스트 같았던 게 아니라, 내 복장이 문제였다. 문제의 그 날 복장이 뭐였는가 하면 올리브색 투피스였는데 모양새가 꼭 단호하고 진취적인 태도로 여성 권위를 주창하는 페미니스트 같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별로 납득은 안 되지만, 덕분에 며칠 동안 생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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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이 날 '페미니스트' 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내 성향이나 그 비슷한 걸 드러내는 발언이 페미니스트 같았던 게 아니라, 내 복장이 문제였다. 문제의 그 날 복장이 뭐였는가 하면 올리브색 투피스였는데 모양새가 꼭 단호하고 진취적인 태도로 여성 권위를 주창하는 페미니스트 같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별로 납득은 안 되지만, 덕분에 며칠 동안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페미니스트로 불렸었다. 내가 극도로 거부하며 며칠 만에 페미니스트 시대는 끝이 났지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그저 김조교, 김교수, 하다못해 김투사 정도로 불렸다면 그리 거부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도 싫었던 이유는 페미니스트들이 마치 이익집단처럼 군다고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최근까지도 여성 권리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져서 역차별을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또 최근 여성부의 만행도 마치 페미니스트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그저 '여성'과 '정치'를 연결 짓는다는 이유로 모두 별 차이 없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내가 여성임에도 말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 바로 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여성임에도 불쾌감이 드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거론되는 페미니즘 관련 담론을 살펴보는 것이 최선인 듯했다. 이 책에는 수차례 변모되어 온 페미니즘의 현재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맞닿아있는 여러 가지 문제 의식을 쟁점으로 다루고 있다. 모두 한국 대학교수들의 글이지만, 외국 사상가들의 주장을 많이 옮겨오긴 했다. 한국 사회에 맞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담론을 구성해나간다는 의의는 있지만, 주된 내용의 토대는 외국의 것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내가 궁금했던 기초적인 페미니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명확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동안 지녀온 페미니즘에 대한 선입견은 많이 버릴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권익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여성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 의미를 갖는지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인간이 끊임 없이 자아성찰을 하듯, 여성이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여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물론 짐작은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해나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나니 맘놓고 인정할 수 있었달까. 또 전혀 예상치 못한 범위로까지 뻗어 있는 것이 페미니즘이었다. 신화부터 과학기술까지 거의 모든 인간 삶의 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여성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 것이 페미니즘이더라.

 

 

아, 새롭다. (그렇다고 재미있진 않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동시에 비정규직 여성의 양산과 여성 내부의 양극화라는 모순을 동반한다. 이에 따라 여성으로서의 연대보다는 여성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가 더욱 부각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문직 여성에게든 하층계급 여성에게든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가 제공하는 전업주부이자 양육자로서 전통적 여성성의 이데올로기가 위기에 처하게 된 현상은 부인할 수 없다. (45~46쪽, 이명호, '남성, 남성성, 페미니스트 이론')

 

 

20세기 초 미국의 페미니스트 혁명가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은 "나를 춤추게 하지 않는 혁명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타리의 주장처럼 혁명과 축제, 에로스적 열정과 정치가 하나이어야 한다면 현재 페미니즘이 겪고 있는 침체는 논리나 명분의 부족이 아닌 '과잉' 때문인지도 모른다. 높게 쌓아올린 이론의 탑은 새로운 논리를 주입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를 춤추게 하진 못한다. 에로스적 욕망은 한 몸이 다른 몸을 만나 삶의 생명력이 더 강렬하게 생성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에로스는 개별 신체의 새로운 '특이성'이 발견될 때 그것을 배제하거나 제압하여 통합시키지 않고 각각의 특이성에 의해서 공통관념을 끊임없이 증식시키는 신체 간 관계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109쪽, 최성희, '자아로부터의 비상, 에로스')

 

 

가사노동의 국제적 전이는 가사노동의 가치 저하를 촉진한다. 돌봄은 "어머니가 수행할 때는 모성이라 불린다. 돈 주고 고용한 사람이 수행할 때는 미숙련직이라 불린다." 상품화된 재생산 노동은 저임금 노동일 뿐 아니라 국제적 전이 현상으로 인해 현저한 가치 하락을 거친다. 돌봄이 상품이 되면서 더 부유한 여성들은 가족을 위해 높은 '품질'의 돌봄을 구매할 수 있다. 미국의 중산계층은 보다 저렴한 노동력인 유색의 이주여성에게 돌봄을 떠맡긴다. 이주여성은 미국 가정의 입주 가정부로 일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 두고 온 자녀들을 가난한 친지에게 맡긴다. 이주여성의 아이를 돌보는 가장 가난한 하위주체 여성의 돌봄노동은 최저임금으로 하찮게 평가받는다. 그 하위주체 여성의 아이들은 어떻게 건사되는지 언급조차 없다. (207쪽, 이선주, '이주여성 노동자의 주변화와 행위주체성')

 

 

현재와 같은 산업사회, 대규모의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고 여성의 몸까지 상품화하는 물신사회에서 젠더의 붕괴, 몸의 잡종화, 혼성화로 여성억압이 사라지고 마침내 성적 평등이 완성될 수 있다는 주장은 신자유주의시대가 심어준 미신이거자 과학기술주의가 유포하는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361쪽, 박혜영, '생태 파괴 시대의 페미니즘')



l******e 2012.02.2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