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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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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한번씩 이슬람 과격단체의 테러 사건이 터져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고, 눈살을 찌푸리며 그저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2차 대전 때,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그 사건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대한 미국의 보복성 대처로 일관되는 듯했지만, 마침내 언론에서는 그 일을 전쟁종식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뉘앙스로 보도했고, 참혹한 전쟁에 지친 세계 여러 나라의 반응 또한 그러한 언론 보도에 동조하는 분위기로 휩쓸리며, 전쟁은 표면상 일단락지어진 듯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의 생각에도 변화가 왔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전쟁종식을 빌미로 무마되고, 유독 아랍인들의 테러에만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점. 따지고보면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이나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일본은 힘겨루기와 식민지 쟁탈 등 자국의 이익을 위한 행동개시를 했을 뿐, 세계평화라든지 전쟁종식이란 대의명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이슬람 과격단체의 9. 11테러나 미국 네이버씰 헬기 테러를 두둔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무시무시한 테러에 대한 암묵적 배경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세계의 시각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일에 원인 없는 결과란 없지 않은가. 하여 이슬람 과격단체의 테러에 대한 이해가 절실했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우선 이슬람교와 이슬람권 국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야 했다.
사이드 쿠틉은 이집트의 신실한 이슬람 가문에서 학자로서의 위치를 견고히 다져갈 즈음, 미국 유학을 통해 서구문화를 접하게 된다. 당시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는 서구문명에 대한 환상이 증폭되던 시기로, 서구사회는 그들에게 지상낙원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쿠틉은 미국 유학생활에서 인종차별, 성적 문란, 도덕적 퇴폐 등을 접하며 기존의 서구사회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엎는 사고의 전환기를 맞고, 종단에는 미국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팔레스타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이스라엘 건국에 편파적 지지를 보내는 미국의 처사에 염증을 느낀 쿠틉은 이후, 미국 자체를 비롯한 서구사회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한다.
이어 쿠틉은 기관지 편집국장을 거쳐 무슬림형제단의 최고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는 등의 탄탄대로를 달렸고, 그런 그에게 위기감을 느낀 혁명위원회 나시르의 조작 사건으로, 쿠틉은 투옥되고 만다. 그는 옥중에서 3년 동안 가혹한 고문과 탄압을 받으며 <진리를 향한 이정표>를 집필한다. 그러다 1964년 석방된 그는, <진리를 향한 이정표>가 국가전복의 음모를 담았다는 것과 대통령 암살을 기도 했다는 죄목을 받고 다시 투옥되어, 끝내 사형선고를 받는다. 쿠틉은 마지막까지 <진리를 향한 이정표>의 정당성과 자신의 무고함을 표명하며,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쿠틉의 저서 <진리를 향한 이정표>는 진정한 이슬람 체제를 설명한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강령이자 행동지침서로 반서구, 반세속주의 투쟁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쿠틉의 영향을 받은 빈 라덴과 자와히리는 국제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를 창립한다. 알 카에다 창립 배경엔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성공과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등이 있다. 그 역사적 사건은 이슬람 운동의 활발한 전개를 유도함으로써 혁명정부의 본격적인 수립을 가속화시켰고, 이슬람 세력에게 조직적인 훈련과 실전 경험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시작된 이슬람 혁명은 산발적 과격단체를 파생시키고,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전 세계적 분쟁으로 확산된다. 이에 쿠틉은 현대 서구문명은 피폐할대로 피폐한 자힐리야로써 더이상 존속할 수 없는 패망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단언함과 동시에 이슬람의 신성한 가르침에 대한 무지를 깨우치고, 알라에 대한 완전 복종과 믿음만이 모든 세속주의의 대명사인 자힐리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자힐리야로부터 개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해방시켜 그들을 안전하게 이슬람 세계로 인도하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이자 책임이라 덧붙여 말한다.
'인간의 인간을 위한'이 아닌 '알라를 위한 진정한 믿음'만이 왕도이며 헌신적인 알라의 종이 되라고 거듭 말하는 쿠틉의 범이슬람적 세계관이 낳은 파장만을 생각한다면, 그가 곧 신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9. 11 테러에 대한 보복조치였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 이슬람 과격 세력을 자극했다는 부분에선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린다. 마치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격이 아닌가. 그 뒤에도 미국은 오랫동안 그들 나라에 주둔해 갖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꾸준히 그들 비위를 건드린 꼴이 된 것도 너무 자명한 일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그러저러한 이유로 불안한 상황에 놓인 이슬람권 국가들의 갖가지 대응책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터이고, 테러는 그 과정에서 초래한 부정적이고 최악의 대응책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은 서구세력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극한 저항과 함께, 이슬람 사회의 부활이란 새로운 세계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쿠틉의 말처럼, 아니 알라의 예언처럼 이슬람 사회가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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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이처럼 책 속에 감추어진 지식이나 정보를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은 물론 더 나아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실천적인 역동성을 가지는 것이다. (71쪽)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쿠란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쿠란이 우리에게 인식하기를 바라는 우주에 대한 포괄적 관점이 무엇인지, 쿠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알라와 인간의 관계가 무엇인지, 우리가 가져야 할 도덕과 예절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정착시켜야 할 법과 정치 제도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76쪽)
내가 사이드 쿠틉의 이름을 들은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디자인에 관한 책을 읽는 중에 한 소재로 세계무역센터가 나왔고, 세계무역센터를 소멸시킨 9·11 테러가 나왔고, 그 주역인 오사마 빈 라덴이 나왔고, 그의 마음의 지주로 사이드 쿠틉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사이드 쿠틉에 대해 궁금했는데, 이번에 그의 대표적인 저작인 <진리를 향한 이정표> (2011, 사이드 쿠틉 지음, 평사리 펴냄)를 읽게 되어서 참 좋았다.
책날개에 나온 저자 소개에 따르면, 사이드 쿠틉은 1906년 이집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았고 교사가 되었다. 1948년부터 2년간 미국에서 유학한 것을 계기로 '서구적 근대화를 통한 이슬람의 혁신이라는 기존의 믿음을 완전히 부정'하게 된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이드 쿠틉은 바로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하여 최고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고 이집트를 이슬람국가화하려 했으나, 나시르 군부세력과 마찰을 일으켜 1954년 투옥된다. 1964년 말 석방되었다가 8개월 만에 다시 '국가전복기도' 혐의로 체포되었고, 1966년 8월 29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옮긴이가 사이드 쿠틉의 삶과 그의 저작들에 대해 설명한 해제가 앞에 나와 있어서, <진리를 향한 이정표>를 읽는 것뿐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역사를 아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진리를 향한 이정표>는 1964년에 옥중에서 쓰인 책으로, 이전에 쓴 쿠란 주해서 <쿠란의 그늘에서>의 일부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서평의 맨 위에 옮긴 인용문처럼, 쿠란은 개인적인 믿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의 적용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저자는 그런 쿠란과 이슬람의 본질과 현재, 나아갈 바를 각각 '라 일라하 일랄라', '자힐리야(신의 가르침에 대한 무지)', '지하드'로 나누어 설명한다. 쿠란을 바탕으로 건설된 이슬람의 우수함을 차근차근 말한 다음,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의 바람직한 태도를 이야기함으로써 이슬람의 본원으로 돌아가기를 촉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책 표지에 실린 문구처럼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의 실천적 지침서'가 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쿠란을 안다는 전제하에서 쓰인 글이기 때문에, 쿠란을 모르는 내게는 쉽지 않게 다가왔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기독교와 비슷하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종교로 세워진 지 15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형형하게 타오르는 그 믿음은, 옳고 그름을 벗어나 놀랍다. 아니, 종교란 옳고 그름을 따질 수가 없는 믿음인지도 모른다. <진리를 향한 이정표>는 쿠란과 이슬람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면서 마침내 이슬람 본래의 신성한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자와히리의 스승이 되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나는 무슬림이 아니기에 그의 주장에 몰입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을 통해 서양 사람이 본 이슬람이 아닌 이슬람 내부의 시각을 보는 기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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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간 출간된 이슬람 운동에 관한 여러 저술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사이트 쿠틉! 이슬람의 급진 이념과 운동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고 이슬람 무슬림형제단으로부터 과격 단체들이 파생돼 나오게 된 이념적 근거를 제시한 사람이 바로 쿠틉이고 이 이념서가 바로 <진리를 향한 이정표>이다.
한때 학계에서 그의 책이 언급되는 것조차 금기시 됐을 정도고 아직도 복수를 꿈꾸는 무슬림 과격 집단이 이 책을 즐겨 인용하고 자신들의 극단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위험한 서적임은 분명하다. 기존의 이슬람 개혁론자와는 달리 순수와 원칙을 강조하고 절충과 협상을 내세우는 집권 무슬림 지도자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은 급진적 무슬림 계층에게 호소력 있고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상적 쿠란 사회로 되돌아가자는 그의 이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그의 사망 후 주류적 이슬람 운동은 이슬람의 가치와 가르침을 뿌리에 두되 서구의 과학, 기술 , 제도를 수용해 화합과 공존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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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3대 종교를 꼽으라면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꼽는다. 종교의 발생과 번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역사와 함께 종교 역시 발전했다. 특히, 역사를 거슬러보면 종교는 그 나라의 번영과 함께 같이 했던 경우를 많이 보게된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카톨릭이 시대를 대표했다고 할수 있다. 그러면서 기독교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중동지역은 7세기 이전까지는 뚜렷한 종교가 없었다. 토착신앙은 존재하였으나, 대표종교라고 할수가 없었다. 7세기 무함마드가 전지전능한 알라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무함마드에게 계시됨으로서 이슬람교가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할수 있다. 단지 과격이슬람단체들의 행위를 보면서 이슬람교에 대해서 단정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보게된 진리를 향한 이정표는 이슬람교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존재라고 한다. 이슬람교에도 성경과 같은 코란이 존재한다. 코란을 통해서 그들은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행하고 있다. 기독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진리를 향한 이정표는 이집트의 교사이자 지식이었던 사이드 쿠틉이 집필한 이슬람 원리주의 이론과 행동철학을 가다듬고 체계화한 책이다. 사이드쿠틉이 처음부터 이슬람 원리주의 자는 아니였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사생활을 했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을 정도로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이 그를 이슬람원리주의 몰았는지도 모른다. 서구화되고 개방된 미국의 문화와 생활을 그는 혐오했었다. 제국주의가 세속주의, 물질주의, 백인우월주의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슬람원리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무슬림형제단 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가 감옥생활을 하면서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해서 개인의 신앙와 행동에 대한 사회개혁 차원의 혁명이 아니라 국가 구조 자체를 바꾸어놓는 이슬람적 혁명이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책이다. 그는 코란을 구절구절을 인용하면서 그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왜 부딪칠수 밖에 없는지를 알수가 있다. 유일신이라는 부분에서 서로가 충돌하고 있다. 서로 유일신을 내세우는데 부딪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이드쿠틉은 이 책을 통해 이슬람 원리주의 행동양식과 행동철학을 제시했다. 이 책을 발간했을때 그는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지금에 와서 이 책은 이슬람원리주의의 대표적인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철학과 사상을 느낄수있었지만, 그보다 이슬람교에 대해서 더 많이 알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코란도 하나의 교리를 적어 놓은 성경과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진리를 향한 이정표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이슬람원리주의를 코란을 통해서 한번 더 느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원리주의에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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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사이드 쿠틉'은 이슬람 원리주의 이론과 행동철학을 다듬고 체계화하여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이슬람 이데올로기화’와 ‘이슬람 혁명’이론의 주창자이다. 하지만 사이드 쿠틉은 아랍 민족주의의 영웅이라는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조차도 이슬람의 적으로 간주했다. 그에게 나세르는 이슬람의 범지구적 형제애 대신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이슬람 법 질서를 존중하지 않았던 타락한 지도자에 불과했다.
2001년 9월11일 미국에서 벌어진 테러사건, 그리고 그의 결과로 발발하게 된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이슬람의 테러 조직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급증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왔다. 특히, 테러 조직들의 사상적 배경에 연구의 중점을 두게 되면서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연구가 많아졌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연구들의 대부분은 서구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기 때문에 이슬람 원리주의가 가지는 ‘다양한 얼굴’의 일부분인 테러 조직의 기본 사상으로써의 역할만을 강조한다. 서구 세력에 의해 이슬람 원리주의는 본래의 의미가 왜곡된 채 어느새 폭력과 테러의 이념적 온상이 되어버렸다 이슬람은 또 무슬림들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의식으로 자리잡아왔다. 민족, 혈통, 인종, 지역의 전통적 분류를 뛰어넘는 무슬림공동체라는 강력한 정치, 사회체제의 근간이 되어왔던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서구에 의해 형성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슬람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돕기에 충분한 책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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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강경 원리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영웅이자 미국을 비롯한 서구 기독교 국가의 최대 공적 1호인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파키스탄내 은신처를 급습한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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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한 외침은 언제나 척박한 풍토에서 조성된다. 시대가 암울하고 불의가 판을 칠때 뜻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조용하지만 뜨거운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일제 감점기의 우리들이 우국지사들이 바로 그러했었고, 권위주의 시대에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이 그러했었다. 모두가 같은 울분을 느끼지만, 그중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표가 되는 책을 쓰고, 시와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시대를 뛰어 넘어 다른 땅 다른 시대에 비슷한 울분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힘을 가진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이슬람 역사를 연 모하메드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 예수 역시 그러했을 것이고, 인간으로서의 석가모니 역시 그런 아픔을 체화하고 승화하여 꺠우침을 만든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들이 현실에서 이슬람의 가르침이 실현되지 않는 아픔을 느낀다면, 이 책의 저자인 사이드 쿠톱과 같은 생각을하고 그가 남긴 책과 같은 책을 만들지 않겠는가. 그가 느끼는 아픔이 그의 감수성을 더욱 강하게 자국하고, 그가 마주치는 현실이 더욱 암울하면 암울할수록 그가 남기는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래는 더욱 강하고 더욱 힘차게 표현될 것이리다.
우리는 이 책에서 바로 오늘날 '이슬람 원리주의'라고 불리는 다양한 운동들이 정신적인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고 하는 이가 남긴 글을 읽을수 있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단순히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을 넘어서, 오늘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을듯한, 이슬람권의 열혈적인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하는데 지도와 같은 구실을 해 줄 글을 읽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을 통해. 그리고 책의 전반부에 역자가 잘 요약한 저자의 생애와 근대 이슬람의 변혁운동의 역사를 통해서 왜 오늘날의 이슬람 과격파들이 그런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비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슬람 세력과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방세력 사이의 끈질긴 갈등이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이지만, 아직까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파편적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은 물론 나의 지적인 게으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 들어서 국내에서도 제법 많이 간행되기 시작한 이슬람 관련 저작들 중에서 이 책과 같이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책이 많지 않은 것도 원인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 책은 나와같은 한계를 갖고 있었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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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원리주의 정신을 가진 혁명의 핵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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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이슬람은 무서움을 먼저 느끼게 되는 종교이면서 지극히 저돌적이면서 왠지 타 종교와는 타합을 모르는 종교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모든 종교와 타합하고 있는지 반성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의 9.11을 생각한다면 그 집단이 왜 그리했을까라고 모든 이들이 의문시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답을 중동의 세계를 조금만 들어가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편견을 가지고 종교를 편협하게 생각했는지 모두다 반성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도교와 이슬람인 것이 아닌 내 종교만이 최고의 선이며 타 종교는 악의 무리라고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코 이슬람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면 인류는 새로운 리더십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서구인들에 의해 창조된 인류의 리더십은 쇠퇴하고 있다. 서구의 문화가 현저하게 타락해서도 아니고 서구의 경제적, 군사적 파워가 약해졌기 때문도 아니다, 서구 시스템이 제시하는 가치가 종말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서구는 이제 그들을 인류의 리더가 되게 해주었던, 그리고 신선하고 활기찼던 가치들을 더는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동료들이 마신 샘물의 원천은 바로 성스러운 쿠란이다. 오로지 쿠란만이 예언자의 언행과 그의 가르침이 흘러나온 근원일 따름이다. 만일 알라의 소명이 초기 단계부터 민족국가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나 사회운동 또는 개혁적 시도로 수행되었다면, 그리고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는 소명 이외의 다른 꼬리표가 붙었더라면 알라만을 위한 이 축복받은 이슬람 체계는 결코 세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 자힐리야는 다른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의미한다. 자힐리야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며 항상 한 사회에서 살아있는 운동의 모습을 갖는다. 자체의 지도력, 고유의 개념과 가치, 고유의 전통과 관습 및 정서를 가지고 자힐리야적 속성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이는 모든 요소를 철저히 파괴한다. 이슬람에서 지하드는 협소한 의미로서 '방어적 운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협소한 의미가 지하드에 부여된 것은 지하드의 개념을 왜곡하는 오리엔탈리스트들의 교활한 공격에 패배한 사람들이 이슬람권에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드는 인류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이 개념으로서, 폭정을 무너뜨리고 인류에게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는 운동이다. 현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회는 자힐리야 사회이며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공산주의 사회이며, 두 번째 유형은 우상숭배 사회로서 흔히 인도, 일본, 필리핀, 아프리카에서 찾을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의 자힐리야 사회는 오늘날의 모든 유대교와 기독교 사회다. 마지막으로 현존하는 모든 '무슬림'사회들 또한 자힐리야 사회이다. 명령이든 금지든, 약속이든 경고든, 규칙이든 지침이든 알라의 모든 말씀은 보편적인 법의 일부다. 알라의 말씀은 또'자연의 법칙으로 알려진 알라의 법과 마찬가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진정한 것이다. 오직 이슬람 사회만이 유일한 문명사회이다. 이곳에서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얽매였던 예속의 사슬을 끊고 모든 권위를 오직 한 분 알라께 돌리며, 인류 문명의 핵심이 완전하고 진정한 자유가 달성된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명예는 알라가 규정한 바대로 존중된다. 서구적 사고방식과 과학은 모든 종교에 대한 적대심, 특히 이슬람에 대해서는 더욱 심한 반감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이슬람에 대한 이러한 적대심은 명확히 드러나고 있으며, 종종 치밀한 계획 아래 악의적인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그 목적은 우선 이슬람 신앙의 토대를 흔드는 것이고 , 점차적으로 이슬람 사회의 구조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이슬람의 샤리아가 적용되지 않고 이슬람 종교가 지배적이지 않은 모든 곳은 무슬림과 딤미 모두에게 전쟁의 영토다. 그곳이 그들의 출생지이든 그들의 친척들이 거주하는 곳이든 그들의 재산과 여타 재물이 있는 곳이든 상관없이 무슬림은 늘 이에 대항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이슬람 체제가 이곳저곳에서 약간의 변화와 수정이 가해진 것이라면 어느 누가 자힐리야 체계로 부터 이슬람 체계로의 변화에 동의하겠는가?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그렇게 해서 확립된 질서가 기껏해야 개혁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융통성을 가진 유동적이며 일시적인 체계에 불과하다면, 기존의 체계를 폐기하고 아직 확립되지도 적용되지도 않은데다가 대부분 기존 질서와 다를 게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을 뿐인 새로운 질서를 구태여 받아들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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