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6%
  • 리뷰 총점8 32%
  • 리뷰 총점6 8%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4%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9.0

포토/동영상 (4)

리뷰 총점 종이책
화폐전쟁 3, 금융 하이프런티어
"화폐전쟁 3, 금융 하이프런티어" 내용보기
화폐전쟁 3, 금융 하이프런티어 -쑹훙빙- <화폐전쟁>이 미국의 화폐 역사에 대해 중점적으로 분석한 책이라면, <화폐전쟁 2>는 유럽 금융의 변화과정을 회고한 책이다. <화폐전쟁 3>에서는 관심의 초점을 중국과 일본의 100여 년 동안에 걸친 화폐 변화와 국가의 흥망성쇠 쪽으로 돌렸다. 아편전쟁 이후 170년에 걸친 중국 근·현대사를 ‘금융 하이 프런티어’란 관점
"화폐전쟁 3, 금융 하이프런티어" 내용보기

화폐전쟁 3, 금융 하이프런티어 -쑹훙빙-

<화폐전쟁>이 미국의 화폐 역사에 대해 중점적으로 분석한 책이라면, <화폐전쟁 2>는 유럽 금융의 변화과정을 회고한 책이다. <화폐전쟁 3>에서는 관심의 초점을 중국과 일본의 100여 년 동안에 걸친 화폐 변화와 국가의 흥망성쇠 쪽으로 돌렸다.

아편전쟁 이후 170년에 걸친 중국 근·현대사를 ‘금융 하이 프런티어’란 관점에서 정밀하게 묘사했다.

저자는 군사 전략인 해양 세력론과 제공권 이론, 하이 프런티어 이론에 착안해 ‘금융 하이 프런티어’ 개념을 내놓았다. 이 개념은 주권국가의 영역에는 영토, 영해, 영공 든 삼차원적인 물리적 공간 외에 금융이 추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민폐 국제화 과정에도 이 개념을 적용해 중국의 금융 안전과 이익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이 프런티어’ 이론은 미국의 육군 중장 그레이엄이 1980년대 초에 제시한 새로운 국가방위 구상이었다. 그는 일찍이 알프레드 머핸의 ‘해양 세력론’과 줄리오 두에의 ‘제공권’ 이론에 이어 ‘우주는 주권국이 반드시 쟁탈, 방위해야 할 새로운 하이 프런티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이 ‘하이 프런티어’ 이론은 급기야 미국 ‘전략방위 구상’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20세기 이래로 아시아의 중심 지역에서 발발한 전쟁과 권력의 흥망성쇠는 거의 대부분 세계적으로 전개된 금전 의지의 분출에서 그 비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실상 아시아의 운명은 국제 자본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었다.

아편전쟁에서 청일전쟁까지,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중국의 양무운동까지, 중국의 국공 내전에서 은본위제 붕괴 배후의 중미영일 4개국 화폐 대전까지, 일본의 다이쇼 정변에서 태평양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동란의 배후에는 금전의 힘이 분명히 도사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금전은 정치의 저울을 좌지우지했고, 화폐는 전쟁의 바퀴를 돌리는 동력이 되었다.

이 책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 유통 화폐로서의 은은 최근 500년 동안 중국인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은은 또 과거에 진정한 ‘세계 화폐’로 기능하면서 400년 동안 동서양 무역의 발전을 주도하고 추진했다.

이밖에 은은 산업용 금속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향후 달러화가 점차 몰락의 길로 진입할 때 금용과 산업 두 분야에서 더욱 큰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물건은 적을수록 귀하다”라는 말은 투자에 있어서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이 진리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이 바로 은이다. 은이 갈수록 희소해짐에 따라 은의 가치는 향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것이고, 일반 서민들의 장기 투자를 위한 최우선 품목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몰락

서구 열강은 단단한 배와 날카로운 대포 및 산업혁명만으로 중국을 반식민지로 전락 시킬 수 없었다. 또 영토 할양과 배상, 무역항 개방 등을 통해서도 중국 경제의 저력을 무력화시킬 수 없었다. 청나라가 몰락하게 된 진짜 원인은 바로 서구 금융자본 세력이 가장 먼저 중국의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아편무역은 중국의 화폐 체계 붕괴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시티 오브 런던(런던의 금융가)이 획책하고 실행에 옮겼다. 아편전쟁은 사실상 영국의 금본위제와 중국의 은본위제 사이에 벌어진 전략적 대결이었다. 이 싸움의 승패가 동서양의 향후 수백 년간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터였다.

대영제국 은행가들의 전략적인 목표는 런던을 세계 금융 중심지로 삼아 전 세계에서 금본위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대영제국이 잉글랜드 은행을 통해 전 세계에 파운드화 신용을 공급하는 것이자, 구미 선진국들을 금본위제의 핵심 멤버로 삼고 기타 개발도상국들을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하는 파운드화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먼저 중국의 은본위제를 무너뜨리고 청나라 금융을 통제하는 전략적 고지인 중앙은행을 손에 넣었다. 이어 중국의 금융 네트워크에 침투해 중국의 자본 및 신용의 유통 경로를 장악했다. 최종적으로는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완전히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지배권을 상실한 후 당연히 수순으로 무역가격 책정 권리, 산업의 자주적 발전 권리, 정부의 재정 및 조세 권리, 군비 지출 권리 등도 잇따라 빼앗겼다. 나중에는 서구 열강들의 먹잇감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청나라의 몰락은 군사보다 금융 분야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부상

미국인 알프레드 머핸은 19세기 말에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제해권’ 개념을 세계 최초로 제안했고, 1921년에는 이탈리아인 줄리오 두에가 “하늘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제공권’을 제기했다.

60년이 지난 1980년대 초에는 미국 육군 중장 다니엘 그레이엄이 두 사람의 뒤를 이어 “우주를 장악하는 자가 천하를 호령한다”는 내용의 ‘하이 프런티어’ 이론을 제기했다.

하이 프런티어 전략의 핵심은 간단했다. 짧은 역사 동안이기는 해도 새로운 영역의 개척에 관한 한 전통을 가진 미국이 향후 지구의 외부 공간, 다시 말해 우주를 새롭게 개척, 지배함으로써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 영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해권, 제공권 및 하이 프런티어 이론은 모두 지배 범위와 능력을 강조한 이론이라고 보면 된다.

호설암을 제거한 배후 조직, 동정산방

외국의 양행들이 중국에 갓 진출해 사업을 시작할 때, 사람은 물론 땅도 낯설고 언어도 통하지 않으며 비즈니스 환경과 대정부 관계도 매우 어두웠다. 따라서 업무상 필요에 따라 현지 중국인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중국의 양매판(매판, 외국 자본과 중국의 시장을 중개하는 무역 상인 또는 양행들의 대리업자를 의미) 계층이다.

양매판은 대체로 독립 상인의 신분으로 양행들과 밀접하게 협력했다. 양매판은 우선 양행들에게 거액의 보증금을 내고 양행의 사업이 손실을 입었을 때 이 보증금으로 배상했으며, 반대로 수익이 생기면 이중 일부를 배당받았다. 양매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양행들의 사업을 도왔다. 그들은 정계뿐만 아니라 상업계에서도 넓은 인맥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사회 곳곳에 촉수를 뻗지 않은 곳이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화폐공황이 발생한 원인은 해마다 예외 없이 홍콩상하이 은행을 위시한 외국 은행들이 의도적으로 시중 자금을 회수해 자금 경색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1878년 초부터 시중 자금은 긴축 상태에 처했고, 연말에 이르러 상해에서 악성 부채로 인해 사업을 접은 전장이 20!30개에 달했다.

이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외국 은행들이 대출 규모를 200만 냥이나 줄였기 때문이다. 1879년에는 생사와 찻잎이 출하되는 5월에 화폐 공황이 발생했다. 당시 시중에는 적어도 300만 냥의 자금이 회전해야 했다. 그러나 외국 은행들의 긴축 정책으로 말미암아 시중 자금이 겨우 90만 냥밖에 안 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상해 현지의 정상적인 무역 수요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액수였다. 그러나 외국 은행들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술 더 떠 은 재고량을 60만 냥으로 늘림으로써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호설암은 양행들의 가격 횡포를 참을 수 없어 분연히 일어나 저항했다. 그러나 가격 결정권 쟁탈 싸움 뒤에는 금융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싸움이 숨어 있었다. 애석하게도 호설암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 몰랐다.

중앙은행이라는 금융의 우월한 고지를 상실한 상황에서 그저 생사의 물량을 매점하는 방법으로 양행들로부터 독점 무역권을 빼앗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중에 자금 경색이 발생할 경우 그의 자금 사슬은 붕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편무역: 금본위제와 은본위제의 결전

영국이 대중국 아편무역을 개시하기 전까지 중국은 국제무역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유하고 있었다. 중국의 찻잎, 도자기, 비단 등 대표적인 3대 특산물은 세계 각지의 시장에 널리 수출돼 큰 인기를 얻었다.

중국은 16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약 400년 동안 시장화 수준과 화폐 경제의 발전 속도에서 유럽을 한참 앞질렀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13만 3,000톤의 은 중 4만 8,000톤이 결국 중국으로 유입될 수밖에 없었다.

국제무역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면, 국제무역에서 거래되는 상품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된 반면 서구 국가들은 세계의 주요 자원 대부분을 약탈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상품이 물밀듯이 서구 시장에 수출되자 서구의 은은 끊임없이 중국으로 유입됐다.

이처럼 서구의 은이 끊임없이 동방에 흘러들면서 세계 금융 질서는 심각한 불균형에 직면했다.

은행 가문의 제국, 동인도회사

동인도회사는 아편무역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어마어마한 이윤을 벌어들였다. 그 액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영국의 중국산 찻잎과 생사 수입, 미국 및 인도산 목화 수입, 인도를 대상으로 한 영국산 공산품 수출 및 영국령 인도 식민지 통치에 필요한 대부분의 행정 비용을 부담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19세기 내내 영국이 독점한 아편무역은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지위를 누려, 오늘날 미국이 세계 석유 패권을 차지한 것에 비견할 만했다. 따라서 동인도회사 제국의 기본 국책은 금융수단으로 아편의 생산, 판매, 보관, 운송, 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무역 고리를 완벽하게 독점하는 것이었다.

동인도회사와 관계를 맞은 산상들은 이런 파워를 바탕으로 훗날 이화, 보순, 기창의 3대 양행을 설립해 할거 국면을 형성했다.

아편무역으로 인해 중국의 은이 물밀듯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중국에는 ‘은 가치 상승, 화폐가치 하락’이라는 심각한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대규모 아편무역이 시작되기 전인 1781년 건륭 연간까지는 국고에 7,000만 냥의 은이 남아 있었으나 아편이 범람하면서 1850년에는 국고의 은이 800만 냥밖에 남지 않아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를 여력조차 없었다.

대청제국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초석인 은본위제가 결국 아편에 의해 무너지면서 무역적자 급증, 재정수입 급감, 백성 생활의 불안정, 빈부 격차 심화 등 사회적 모순이 격화되었다. 이에 반해 국제 은행가들은 아편 무역을 통해 수탈한 거액의 은으로 ‘중국의 잉글랜드 은행’ 설립했다. 일거에 청나라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좌지우지하는 전략적 고지인 중앙은행을 손아귀에 틀어쥔 것이다.

박힌 돌을 빼낸 홍콩상하이 은행

모든 정치 요소와 경제 요소 중에 화폐가 가장 핵심이 된다. 화폐와 관련된 모든 제도 중에서도 화폐발행권이 가장 중요한 권력이다. 그러나 국가의 화폐 발행권이라는 이 성스러운 권력에 대해 일언반구라도 언급한 경제학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상업어음의 역사는 서기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십자군 원정과 해상무역의 발전에 따라 지중해 지역의 무역 수요 및 화물 해운 수요가 대대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지중해에 위치한 이탈리아에 대규모 무역과 수상 운송 시장이 형성되면서 세계 최초로 상업어음이 탄생했다.

해상 벌크 화물 무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운송 거리가 멀고 시간이 길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일정한 위험까지 따르면서 판매자와 구매자 양측은 화물 발송 및 대금 결제와 관련해 항상 의견이 엇갈렸다. 따라서 신용이 매우 좋은 사람이 양측의 원활한 무역 거래를 위해 담보를 서는 방법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집도 있고 가업도 있는 현지인들이 담보인으로 최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탈리아에 구매자를 위해 담보를 제공하는 ‘상인 은행가’가 대량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중국의 표호와 전장은 왜 글로벌 금융 제국으로 발전하지 못했을까?

중국 본토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금융기관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산서방 표호와 영서방 전장이다. 쉽게 말해 환어음을 취급하는 곳이 표호이고, 현금을 취급하는 곳이 전장이라고 보면 된다.

진상의 환업무 발전 경로는 유대계 금융 가문과 약간 다르다. 산서방 표호는 수만 킬로 당을 누비고 수십만 명의 종사자를 갖춘 방대한 규모의 국내외 무역 네트워크를 모태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유대인의 금융 네트워크는 처음부터 화폐 태환, 예금 대출, 어음 거래 등 화폐 업무에서 기원했다.

양자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규모의 효과, 신속성, 편리성 등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네트워크 우위가 일단 확립된 다음에는 후발 경쟁자들이 발을 들여놓기가 거의 어렵다.

이렇게 볼 때 금융 네트워크는 화폐 본위, 중앙은행 다음으로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구성하는 세 번째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호가 환업무 분야에서 이룩한 거대한 금융 네트워크라는 경쟁 우위라면 유대계 금융가들처럼 금융 고속도로 시스템을 구축해 신용과 자본 유통을 독점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표호는 글로벌 금융 제국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지리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표호는 중국 국내외 무역 중심지인 상해에 본부를 두지 않아 최대 성장 잠재력을 갖춘 무역금융 서비스 중심지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유럽의 전쟁채권, 국채 등과 유사한 융자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했다. 경영 범위가 환업무에 국한되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안일한 마음가짐에 빠져 결국 자신들의 생존 기반인 환업무마저 외국 은행과 중국 관영은행에 빼앗기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융시장, 그중에서도 특히 국가의 중요한 융자수단인 국채와 각종 어음 거래 시장은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네 번째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본토의 금융기관인 표호와 전장은 이 중대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

메이지 유신과 양무운동

일본의 금융 역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장구하고 선진적이다. 일본의 미쓰이(三井)가는 잉글랜드 은행보다 10년 더, 중국의 산서 표호보다는 100여 년 더 일찍 금융업을 시작했다. 일본의 현대 은행 시스템은 중국보다 30여 년 앞서 구축됐고, 일본 중앙은행은 중국보다 28년 앞서 완전한 틀을 갖추었으며, 일본 법정 화폐인 엔화는 중국의 법폐보다 70여 년 더 일찍 출현했다. 또한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금본위제 초석을 다진 국가이다.

일본의 금융 네트워크는 자국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했고, 요코하마 정금은행은 자국 무역상들을 도와 일거에 가격 결정권을 탈환했다.

일본은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굳건하게 지켰기 때문에 외국 금융 세력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일본은 마침내 은행 신용에 관한 비밀을 발견하고 금은화폐가 부족한 상황에서 금융의 높은 레버리지 효과를 이용해 전국의 자원을 충분히 활용, 근대화와 산업화의 서막을 열었다. 일본은 제조업과 무역업이 창출한 어마어마한 부를 바탕으로 경제를 크게 발전시켜 드디어 세계 강대국 반열에 올랐다.

이에 반해 한야평 철강연합회사를 선두주자로 한 중국의 양무운동은 한 발 앞서 나간 경쟁력 우위와 풍부한 자원을 보유했으나 지극히 열악한 금융 환경에서 간신히 생존하다가 급기야 일본 손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금융은 현대 경제의 전략적 고지이고, 금융 하이 프런티어는 현대 국가의 ‘제2 국방’이라고 할 수 있다.

왕정복고와 금권의 부상

서구 열강이 일본의 대문을 열어젖힌 후, 도쿠가와 막부는 모든 외국 은행에 반드시 미쓰이 가를 통해 현지 업무를 실시하도록 규정했다. 외국 은행과 일본 상인들의 직접적인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점에서 미쓰이 가는 청나라 광주 13행과 똑같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쓰이 가는 일본의 대외 무역과 금융을 독점함으로써 일본 최대의 독립적인 금융 및 상업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메이지 천황의 신정권이 도쿠가와 막부의 반격과 각지의 소요 사태로 인해 위기에 처했을 때, 미쓰이 가는 정부의 요청으로 300만 냥의 긴급자금을 조달해주었다. 이는 유사 이래 최초로 발행한 국채였다.

미쓰이 가는 메이지 천황의 신정권을 살렸다.

이노우에 가오루, 미쓰이 가의 최고 고문이 되다

이토 히로부미가 금본위제를 주장한 것은 대단히 탁월한 판단이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일본이 금본위제를 실시함으로써 영국과 같은 편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는 금이 매우 희귀해서 여전히 은이 주로 유통되었다. 따라서 실질적인 금본위제는 1897년에나 시행되었다.

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패한 다음 일본에 총 2억 3,000만 냥의 백은을 배상금으로 지불했다. 이 돈은 잉글랜드 은행을 통해 파운드화로 일본 요코하마 정금은행의 런던 지점에 지급됐다. 그중 53%는 영국의 전쟁 채권과 무기 구매 대금 상환에 사용됐다. 또 나머지 돈은 영국 국채 및 황금 구매에 전액 사용됐다. 이렇게 구매한 황금이 잇따라 일본으로 운송되어 금본위제 확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자국의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장악한 일본

조슈, 사쓰마, 히젠, 도사의 4대 번을 핵심으로 하는 ‘메이지 과두’ 파워 그룹은 정부의 실권을 확실하게 장악했다. 이 결과 메이지 천황에 대한 대우는 도쿠가와 막부 시절보다 훨씬 개선됐지만 천황은 여전히 유명무실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메이지 과두 세력은 천황을 신처럼 받들었으나 국가의 실권은 자신들이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그들이 도쿠가와 막부를 전복했지만 여전히 전국에는 300여 개의 군소 제후들이 남아 있었다.

메이지 과두 세력은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폐번치현(번진을 폐하고 현을 설치하는 조치)이라는 조치를 내놓았다. 이는 중앙 정부에서 번왕, 제후를 비롯해 그들의 수하 및 방대한 규모의 사무라이 계급을 모두 먹여 살리겠다는 방안이다.

바로 이해득실을 따져본 제후들은 밑질 것이 없다는 계산이 나오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번진이 제거되자 제2의 도쿠가와 막부 등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으나 중국의 팔기자제(청나라의 귀족 집단)와 비슷한 번주 계층 200만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어마어마한 재정 부담에 부딪혔다. 제후와 사무라이에게 지급하는 녹봉만 중앙 정부 재정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게다가 각 번의 채무 7,800만 냥까지 모두 떠안게 되자 메이지 신정부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졌다.

신정부가 자금난 해결을 위해 대량의 화폐를 발행한 것은 임시발편에 불과했다. 장기적인 대책은 반드시 정부의 재정 수입을 늘리는 것이어야만 했다. 신정부는 이를 위해 현물로 납부하는 물납세 제도 대신 소작료의 화폐화 개혁을 출범시키는 고육책을 도입했다. 여기에 더해 농민들은 각종 요역도 부담해야 했다.

경제가 점차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이번에는 제후와 사무라이의 녹봉 문제가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메이지 과두 세력은 거듭되는 상의를 거쳐 이들에게 지급하던 녹봉을 금록공채로 바꾸는 묘책을 고안해냈다. 매년 제후와 무사에게 거액의 현금을 지급하느니 차라리 향후 수년 동안의 녹봉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신정부는 녹봉이 높은 자에게는 일시금으로 6~7년의 총수입에 해당하는 액수의 공채를 연리 5%로 지급했다. 녹봉이 낮은 자에게는 10~12년의 총수입에 해당하는 공채를 주면서 이자를 조금 더 높게 조정했다.

이로써 정부는 공채 이자만 매년 지급하면 됐으므로 재정 부담이 대폭 완화되었다. 공채 원금은 발행 후 6년째 되는 해부터 추첨을 통해 상환하고 기한은 30년이었다.

이렇게 절약한 거액의 자금은 산업발전에 투입됐고, 산업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는 다시 금록공채의 원리금을 지급했다. 이때부터 200만 명의 생계 문제는 완전히 시장에 의해 결정됐다.

1882년에는 마쓰카타 마사요시, 이노우에 가오루 등의 진두지휘 아래 일본 역사상 최초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이 은행은 주식제 기업의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 금융가들이 각각 일정한 지분을 보유했다. 미쓰이 가는 주요 발기인 자격으로 중앙은행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청일전쟁 발발 전까지 외채에 전혀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중국을 비롯한 각국이 외채의 압박에 시달려 서서히 식민지화되는 위험한 과정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이지 유신에 사용된 자금은 자국의 금융 자원 통합과 조정을 통해서 조달했고, 특히 전반적인 은행 시스템의 신용 확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메이지 유신이 외국 자본에 의존하지 않은 이유

일본에 외국 은행이 발을 붙이기 어려웠던 이유는 우선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의 3대 본토 금융 세력이 외국 은행을 매섭게 공격하고 견제했으며, 여기에 매판 계층이 생존하고 발전할 만한 토양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지인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 외국 은행이 일본 시장을 개척하기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일본은 자국 금융 시스템을 완벽히 통제함으로써 국가의 운명도 장악 할 수 있었다. 물론 극렬한 산업화 과정에서 금융 혼란으로 인해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유발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식민지화의 위기에 빠졌던 후진국 일본은 단 30년간의 노력을 거쳐 현대 산업 강국으로 도약했다. 이는 일본이 자국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굳건히 고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엔화 신용 방어전

정금은행 대장성으로부터 저금리 엔화 대출을 받고 이 돈으로 무역상의 어음을 할인 구매하였다. 어음 만기가 되면 외국 금은화가 정금은행을 통해 대장성 계좌에 입금됐다. 정금은행은 대장성으로부터 빌린 대출과 외국환 할인의 금리 차이를 이용해 이윤을 남겼다.

대장성은 시중의 과잉 통화를 회수할 충분한 금은화를 확보하자 곧바로 엔화 신용 회복에 나섰다. 일본 상인들이 확보한 자금으로 제때에 생사와 찻잎을 수매하게 되자 자금 회전 속도가 빨라지고 무역량이 급증했으며 재배 농가도 큰 이득을 보았다. 일본 상인들은 이를 무기로 양행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더불어 요코하마 정금은행의 사업도 공전의 규모로 확대돼 지점이 해외 각국의 금융 중심지에 연이어 설립되었다.

메이지 유신 vs 양무운동

일부 매판은 외국 침략자 세력과 양무파 관료와의 관계를 이용해 양무파의 정치 활동과 경제 활동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매판 계급의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력이 갈수록 커져 점차 중요한 사회 반동 세력을 형성했다. 이홍장을 대표로 하는 양무파 관료 집단 역시 갈수록 매판 세력의 정치적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중국은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몰락을 시작으로 정치적 독립성을 잃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으며 군사력과 국방력도 대거 약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 교육, 문화 발전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중국은 결국 서구 열강의 손에 놀아나는 반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양무운동과 메이지 유신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점이다.

금융의 독약을 마신 한야평

관료 매판 계층이 추진한 양무운동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 이에 대해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했다.

“경제가 낙후한 반식민지 중국에서 지주 계급과 매판 계급은 완전히 제국주의에 빌붙어 생존, 발전하는 국제 자본주의의 예속물이다.”

철강 기업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융자를 필요로 한다. 한야평은 중국이 금융 주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대규모 외채를 빌렸다가 결국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 만약 한야평이 일본 기업이었다면 회사의 채권과 주식을 담보로 일본은행의 특별 할인 창구를 통해 직접 융자를 받거나 재벌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중점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설치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은 사회적 부를 창조하는 가장 중요한 부문이다. 은행의 대규모 신용 확장이 거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과 결부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험과 중국의 교훈이 거듭 말해주듯이, 금융은 국가의 핵심 명맥이다. 금융 주권을 상실하면 국가 주권과 경제 명맥 지배권을 절대 보전할 수 없다.

운명의 변화

이홍장은 또 국제 은행가들을 위해 또 다른 큼직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중국 철도망 융자권이었다. 청나라 정부는 이때 철도 건설 붐이 청나라를 몰락시키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철도는 물론 좋은 것이지만 관건은 누가 이를 장악하느냐에 있었다. 메이지 과두 집단은 인도에서 대영제국의 철도가 부설된 곳은 여지없이 모두 비참한 식민지로 전락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멸망의 위기에 처한 청나라가 전국적인 철도망을 구축할 돈이 없음을 안 국제 은행가들은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중국이 외국 은행에 담보로 내놓은 철도들은 마치 쇠사슬처럼 대청제국의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맸다.

‘4·12’ 정변과 장제스의 ‘항복 문서’

화폐의 의지, 화폐의 흐름, 화폐의 역할을 기준으로 국공합작, 북벌 전쟁 및 ‘4·12’ 정변을 분석해 보면,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화폐가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장제스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유달리 강렬했지만 권력과 금전의 유혹을 못 이겨 그토록 증오하고 적대시하던 서구열강과 매판 계급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갔다. 장제스는 서구열강과 매판 계급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갔다. 장제스는 서구 열강과 매판 계급에게 향해 귀순 의사를 보여주기 위해 기꺼이 각박한 조건의 ‘항복 문서’를 제출했다. 그것이 바로 ‘4·12’정변으로 이어졌다.

‘영한합작’은 물론 장제스의 하야, 그리고 그의 제기 뒤에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돈의 힘이다.

‘4·12’ 정변 배후에 도사린 금융 세력

6,000만 냥은 실로 엄청난 유혹이었다. 당시 북경의 전통 가옥인 쓰허위안 한 채 가격이 은화 200냥에 불과하던 때였다. 소련이 1924~1927년까지 3년 동안 국민당에게 지원한 3,000만 루블을 환산해 봐야 약 2,700만 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돈으로 북벌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던가.

6,000만 냥이라는 유혹 앞에서 장제스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순순히 공산당과 결별하기로 결정했다. 소련은 3년간 장제스에게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3,000만 루블을 투자했다. 그러나 위차칭과 장제스의 두 차례 회담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은행가는 상인 중에서도 최고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라고 해야 한다. 그들은 장제스에게 6,000만 냥이라는 떡을 미끼로 처음에는 선불금만 준다음 일이 멋지게 성사되면 나머지 돈을 지급하겠다고 유혹했다.

장제스는 선불금을 받은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것은 전 세계를 경악시킨 ‘4·12’ 정변이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공산당원, 노동자, 농민 및 좌익인사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장제스는 이때 “3,000명을 잘못 죽일지언정 공산당원을 한 명도 놓쳐서는 안 된다”라는 끔찍한 구호를 내걸었다.

홍색 중앙은행

홍색 근거지의 생존, 발전을 위해서는 군사적, 정치적 요인 외에 금융이 매우 중요한 역활을 했다. ‘반 포위토벌’ 전쟁, 중앙 소비에트 정권 운영, 현지 주민의 생산과 생활 및 시장 무역 등의 모든 분야는 화폐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소비에트 정부는 일찍부터 화폐와 은행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래서 1932년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중앙은행인 중화 소비에트 국가은행을 설립했다. 이 은행은 설립 초기에 직원이 5명밖에 되지 않았고, 가장 많을 때에도 14명을 넘지 않았다. 이들은 고학력자가 아닌 데다 은행 업무 경험이 전무해 중앙은행 운영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은행 운용에 필요한 자금조차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홍색 중앙은행은 3년 사이에 재정 통일, 무역 발전 및 시장 활성화를 빠르게 완성해나갔다. 또 ‘반 포위토벌’ 전쟁의 승리, 소비에트 정권 강화, 국민 생활 개선 및 시장 무역의 번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마오쩌민의 금융 공성계

사람들에게 화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각종 물자를 바꿔 소유하는 것이다. 사실이 이렇다면 금본위제나 은본위제가 아니더라도 물자본위제를 통해서 지폐의 신용을 충분히 구축할 수 있다.

마오쩌민의 물자본위 화폐 이론은 훗날 공산당의 화폐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귀금속이 부족한 혁명 시대에 해방구가 국민당에 의해 경제봉쇄를 당한 악조건 하에서 혁명 근거지에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화폐본위에 대한 중대한 금융 혁신이 필요했다.

쌀뒤주 옆에서 굶어죽은 파리코뮌

파리코뮌 지도자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점은 바로 프랑스 은행을 지배하는자가 프랑스의 경제 명맥을 지배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명맥을 틀어쥔 자는 자원 배분 결정권을 행사하고 국가 기구들을 장악할 수 있다. 따라서 파리코뮌은 경제적 실수뿐만 아니라 정치적 실수도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엥겔스의 말을 빌리면, 만약 파리코뮌이 프랑스 은행을 인수했다면 “1만 명의 인질을 억류한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파리코뮌은 2개월 약간 넘게 존속했다. 이 기간에 프랑스 은행의 장부상에 기재된 현금은 수십억 프랑이었으나 파리코뮌이 대출을 신청해 받아쓴 돈은 고작 1,600만 프랑에 불과했다.

은행이 발휘하는 위력의 근원은 은행이 경영하는 상품, 다시 말해 화폐에 있다. 나아가 중앙은행이 더 큰 위력을 가지는 이유는 화폐의 원천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한 경제 체제를 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경제 체제의 화폐를 장악하는 것이다. 또 한 경제 체제의 화폐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발원지인 중앙은행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 명맥을 장악하지 못한 혁명 정권은 약한 공격에도 쉽게 무너질 정도로 취약하다. 이것이 바로 파리코뮌의 비극이 남긴 교훈이다.

인민을 위한, 인민의 화폐

옛 중국에서는 농업 노동력의 과잉 현상이 심각한데도 단위 면적당 생산성 최대화를 목표로 한 농업 경제가 발달하여 대량의 농민이 필연적으로 빈곤과 반실업 상태에 처했다. 이에 농민들은 농한기에 다양한 수공업에 종사해 부족한 수입을 보충했다.

한마디로 옛 중국의 농업경제 시스템은 대단히 아슬아슬한 균형 상태에 처해 있었다. 천재와 인재를 이겨낼 만한 잉여 수입이 적은 상황에서 농촌 수공업은 취약하고 위험한 농업 경제 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핵심 역할을 했다.

1900~1940년 사이에 중국의 농촌경제는 10%의 부자가 53%의 경작지를 소유하여 토지 독점 현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대다수 농민이 소작농으로 전락해 매년 수확한 농산물의 3분의 1 또는 2분의 1을 소작료 명목으로 지주에게 납부해야 했다. 이렇게 되면 또 반수 이상의 농민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금리였다. 농작물을 빌릴 경우 연리가 85%, 화폐 대출 연리 역시 20~50%에 달했다.

농민들이 경작지를 빼앗기고 소작료를 착취당하고 높은 대출 금리에 숨을 못 쉬는 상황에서 중국의 농업경제 시스템은 철저히 붕괴되고 말았다. 생존 기반을 잃은 농민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혁명밖에 없었다.

소비에트 국가은행은 통일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화폐 시장의 혼란 상황을 바로잡고 악덕 환전상에 의한 농민들의 피해를 없애줬다. 또 농촌 시장의 정상적인 상거래를 위해 충분한 현금을 지원해 현지 경제 발전을 크게 추진했다.

마오쩌둥 사상의 지도 아래 소비에트 정부는 농촌경제 발전의 실제 필요에 입각해 농민들을 위한 금융 제도를 확립했다. 국가은행에서 출범시킨 일련의 정책과 조치는 농민 생활을 크게 개선하고 소비에트 화폐의 신용을 구축함으로써 광대한 농민들은 소비에트 정부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우러러 섬겼다.

장제스의 금권천하

장제스는 군대와 정권을 장악했으나 금융을 장악하지 못했다. 다른 것은 다 부족해도 괜찮으나 돈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사방팔방으로 시련에 휩싸인 상황에서 장제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그가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설립한 중앙은행은 처음에 중국은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는 또 화폐를 발행했으나 화폐 신용이 높지 못했다.

갖은 곡절 끝에 그는 군사 집권이 발걸음을 떼는 것이고, 정치 집권이 걸음마를 배우는 것이라면 강호를 누비면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길은 금융 권력을 장악하는 것뿐이라는 이치를 깨달았다.

이렇게 해서 장제스는 점진적으로 중국의 금융 시스템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 중국의 금융 명맥을 장악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이어 ‘폐량개원’, ‘4행2국’, ‘법폐 개혁’ 등 일련의 개혁을 연달아 완성했다. 장제스는 드디어 중국에서 금권천하를 이룩했다.

이 무렵 갑작스레 은화 파동이 발생해 중국의 은본위제가 붕괴됐다. 3대 열강 사이의 화폐전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꿈틀대다 급기야 항일 전쟁의 불씨를 당기고 말았다.

중앙은행 vs 중국은행

중앙은행은 한 국가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전략적 고지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을 장악하는 자가 국가의 경제 명맥과 정치, 군사적 요지를 장악한다. 장제스는 이 이치를 분명히 깨닫고 남경 정부 설립 초기에 중앙은행 설립을 중화민국의 중대한 전략으로 확정했다.

1928년 11월에 남경 정부의 중앙은행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중국은행의 전신은 성선회가 한참 활약할 때 설립한 대청제국의 중앙은행인 대청은행이었다. 성신회는 주지하다시피 친일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 본토 기업 한야평을 일본에 넘겨준 장본인이다. 당시 뿌리 깊은 역사적 원인으로 인해 대청은행은 줄곧 북양파의 통제를 받았고, 역대 총재들도 모두 친일파였다. 중국은행의 일인자인 장자아오는 일본 게이오대학 졸업생으로 일본 문화에 심취하고 일본의 실력을 맹신했다.

대청은행은 신해혁명 이후 중국은행으로 개편됐다. 이 무렵 석씨 가문은 명실 공히 중국은행의 ‘막후 지배자’로 군림했다. 석씨 가문의 배후 후원자는 당연히 홍콩상하이 은행이었다. 석씨 가문은 영국 재벌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은행 재벌과의 관계도 매우 각별했다.

석씨 가문은 조순 3대에 걸쳐 홍콩상하이 은행 매판 직을 독점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관계 네트워크를 이용해 석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다른 외국 은행에 취직시켰다.

중국은행은 4·12 정변 이전에 이미 북벌군에 거액의 경비를 지원해 북벌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중국은행 한구 지점은 무한 국민정부에도 1,650만 위안의 거금을 지원했다. 재벌은 한 바구니에 달걀을 모두 담는 도박을 감행하는 바보들이 아니다. 중국은행은 이후 영한 합작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 소유 주식과 민간 소유 주식의 금권 쟁탈전

중국은행의 사례를 통해 중국 근대 은행업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관료 자본과 개인 자본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장자아오는 강절 재벌, 즉 개인 자본의 대변인으로 배후에는 외국 자본이 버티고 있었다. 외국 자본은 민간 소유 주식 비중을 끊임없이 늘려 중국의 금융 대권을 틀어쥐고, 나아가 중국의 실물경제를 장악하는 것이 목표였다.

장제스의 금융 집권: ‘폐량개원’과 ‘4행2국’

금융 분야에서 집권을 이루려면 중앙은행 설립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화폐를 통일해야 한다. 화폐를 통일하지 않고서는 재정을 통일할 수 없고, 더 나아가 정치와 군사 분야도 통일할 수 없다. 그리고 화폐 통일의 전제는 바로 본위화폐를 정하는 것이다.

남경 정부는 화폐 통일의 일환으로 폐량개원(은화의 냥을 폐지하고 은화 위안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함)을 실시했다. 시장 거래와 기장 단위를 기존의 냥에서 위안으로 바꾼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순도, 무게, 크기가 가지각색인 은화 냥이 유통돼 시장 거래에서 큰 불편을 초래했다.

중국은행과 교통은행의 잇따른 국유화에 따라 중국 금융업은 관료 자본 통제하의 ‘4행2국’ 구도로 새롭게 면모를 일신했다. ‘4행’은 중앙은행, 중국은행, 교통은행 및 그 후에 가세한 중국 농민은행이었다. ‘2국’은 중앙 신탁국과 우정저금회업국이었다.

중국은행 사장에서 강제로 사퇴한 장자아오는 중국은행과 완전히 끈이 떨어졌다. 이때부터 중국은행은 관료자본의 금융도구로 전락했고, 중국은행 개편은 중국 자유 자본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중국은행을 장악한 쑹쯔원과 중앙은행을 장악한 쿵샹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항상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협력, 보완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 금융 시스템은 일련의 복잡한 재조정 과정을 거친 끝에 결국 ‘4대 가족’을 핵심으로 하는 관료 자본의 소유물이 되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장제스의 직계 심복 두웨성도 포함돼 있었다.

최초의 중미 환율전쟁: 은 수출 붐

1933년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정부 지출을 늘려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고 했다. 더불어 디플레이션과 물가 폭락을 막기 위해 ‘은 구매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재무부는 이 법안에 따라 은 가격이 온스당 1.29달러로 떨어질 때까지 국내외 시장에서 대량의 은을 매입하거나 금 보유량의 3분의 1에 상당하는 은을 비축함으로써 금 대신 은을 준비금으로 삼는 방안을 확정했다.

미국은 이 정책을 통해 두 가지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첫째는 준비금 확대를 통해 통화량을 늘림으로써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 차원에서 은 구매 붐을 조성, 은 가격 상승을 유도함으로써 은본위제 국가의 화폐 구매력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은본위제 국가의 화폐 가치를 평가절상시켜 이들 국가에 미국의 잉여 상품을 덤핑 판매하려는 야비한 음모였다.

루즈벨트의 두 가지 전략적 목표는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

당시 미국의 대공황은 GDP 대비 채무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에 발생했다. 1929년에 미국의 GDP 대비 채무 비중은 무려 300%에 육박했다.

거액의 채무에 힘입은 산업 확장 속도는 미국 국내의 구매력 증가속도를 훨씬 앞질렀다. 그 결과 심각한 소비력 부족과 대량의 잉여 상품을 초래했다. 기업의 채무 위약 리스크가 급증하면서 급기야 증시가 붕괴되고 은행의 악성 부채 규모가 증가해 많은 은행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채무 규모를 줄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화폐 발행량과 신용공급을 늘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8년 동안 시행됐으나 대공황을 극복하지 못했다. 당연히 오바마는 루즈벨트보다 더 운이 나빴다.

미국 정부가 뉴욕 및 런던 시장에서 은을 대량으로 매입하자 극제 은 가격이 급등했고, 이 여파로 막대한 양의 중국 은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중국은 결코 은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은화 주조에 필요한 은도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중국의 은은 밀물처럼 외국으로 유출되었다. 1934년에는 3개월 사이에 무려 은화 2억 위안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은 유출에 따라 중국 화폐 가치는 평가절상되고 무역적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예상대로 외국 상품이 중국 시장에 물밀듯 밀려들자 중국 상품의 수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대량의 은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동시에 심각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은행 대출 규모는 급감한 반면 금리는 수직 상승했다. 이런 악재들 속에 금융 경색으로 물가가 폭락하면서 상공업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하고 말았다.

일본 침략의 도화선이 된 법폐 개혁

1935년 11월 4일, 국민정부는 ‘법폐 정책’을 공포하고 중앙은행, 중국은행 및 교통은행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법폐’로 규정했다. ‘법폐’는 ‘무제한 법화’를 의미했다. 또 은화 유통을 금지시키고 각 금융기관과 민간인이 보유한 은과 은화를 모두 중앙은행에 가져가 태환하도록 했다.

쿵샹시와 로즈는 여러 차례 비밀협상을 거쳐 최종적으로 법폐와 파운드화의 환율을 법폐 1위안에 파운드화 1실링 2.5펜스로 정했다. 이렇게 해서 법폐와 영국 파운드화가 마침내 연계되었다.

중국 통화인 법폐는 이때부터 외국 통화의 예속물로 전락했다.

중국 주재 일본 대사관의 이소가이 렌스케 무관도 중국의 화폐 제도 개혁에 반대해 화북 지역의 은을 상해로 운반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외무성 역시 화폐 제도 개혁이 일본을 직접 타깃으로 삼았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얼마 후 야마모토는 중국 농민은행의 저액권 화폐를 성공적으로 위조해냈다. 이어 이 위조 화폐로 중국에서 대량의 물자를 구매했다.

장제스는 화폐 개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방설계위원회’를 설립해 중국의 화폐 개혁 문제를 국방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이는 장제스가 법폐 개혁 방안을 제정할 때 이미 영국과 미국의 힘을 빌려 일본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중국 화폐 발행권 쟁탈전에서 연속 좌절을 맛봤다. 이에 분을 못 이겨 성급하게 대중국 침략 전쟁을 발동했다. 한마디로 중국의 법폐 개혁이 일본의 중국 침략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미국

중미 양국은 마침내 ‘중미 은 협정’을 체결하고 미 재무부가 온스당 50센트의 가격에 중국으로부터 은 5,000만 온스를 추가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또 이 협정은 법폐와 달러화의 교환 비율을 법폐 100위안에 달러화 30센트로 규정했다. 이렇게 해서 법폐는 달러화와도 연동되었다.

이로써 영국과 미국은 국민정부의 재정을 한층 더 강력하게 통제하고, 볍폐를 파운드화와 달러화의 공동 예속물로 삼을 수 있었다. 당연히 엔화는 파운드화와 달러화에 의해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황권과 금권

황권과 금권은 시종일관 치열한 대립관계에 있었다. 일본 근대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왕정복고, 메이지 유신, 다이쇼 정변 그리고 2·26 사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황권과 금권의 치열한 투쟁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다.

다이쇼 천황이 금권의 위세에 눌려 황권을 양보하고 비참하게 정치무대에서 퇴출된 때부터 일본의 황권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히로히토 천황은 즉위 이후 시시각각으로 황권을 회복하고 강화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의 주요 상대는 재벌 세력과 그들의 대리인인 정객이었다.

히로히토 천황은 본인이 일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로-재벌-군벌’ 동맹을 무너뜨려야 했다. 그는 실제로 기층 세력으로 상부 구조를 제압하는 전략을 활용해 군대 내부의 하극상을 묵인하고 격려함으로써 점차 황권을 탈환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세계대전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기도 고이치 후작 자택에서 열린 비밀회의

1922년 11월 11일 구락부는 천황을 도와 국제 여론을 무마하고 국내 각 세력의 불만을 잠재울 목적으로 대책 회의를 긴급히 소집했다. 이들은 우선 국제연맹이 일본에 그 어떤 경제 제재도 가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급선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대공황으로 인해 가뜩이나 큰 타격을 입은 일본 경제가 국제 제재까지 받을 경우 상상하기 어려운 후폭풍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음으로 일본 내의 식견이 짧은 은행가와 산업 자본가들을 잘 구슬려 군사력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아야 했다.

한밤중가지 계속된 회의에서 실행 가능한 세 가지 방안이 최종 확정되었다. 이 방안들은 이후 8개월 동안 일본과 중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 방안은 11일 구락부의 금융 전문가가 제안한 달러화 투기 함정이었다.

재벌들이 엔화 가치가 곧 폭락할 것이라는 내부 정보에 따라 달러화 투기에 뛰어든다면, 이는 천황의 계략에 말려드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일본 재벌들 역시 스캔들을 무서워했다.

두 번째 방안은 무력으로 장제스를 협박해 상해에서 ‘가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본군이 방어를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군사 충돌에 휘말려든 것처럼 연출하면, 중국에 있는 서양인들과 수십억의 달러화 자산이 전쟁의 위협을 받게 되어 국제적인 시선은 당연히 이곳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괴뢰 정부인 만주국 국가원수에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내세워 장제스의 승인을 받을 요량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제연맹도 더 이상 만주 문제를 간섭하고 비난할 명분이 사라진다.

세 번째 방안은 가짜 쿠데타를 일으켜 일본 천황이 군부 측의 위협을 받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그러면 서구 국가들은 군부 세력이 천황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일본에 압력을 가한다면 아시아 최대 입헌군주제 민주국가인 일본이 파시스트가 집권하는 국가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천황의 권력에 도전한 미쓰이 재벌, 달러화 투기 함정에 빠지다

일본의 독점 자본가들은 기득권 세력에 빌붙은 덕에 금융 과두 그룹을 형성하고, 금융 위기 속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행운을 누렸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때에도 미국 정부는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빅4 은행을 살리기 위해 갖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시대는 달랐으나 똑같은 위기 상황에서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는 모두 납세자들의 돈을 퍼서 은행에 빌려줬다. 반면 중소 은행들의 줄도산은 수수방관했다.

워런 버핏이 금융 위기 때 골드만삭스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인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대재벌들이 정부와 같은 편에 서 있는 한 세상에 겨룰 자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재벌들은 정당과 손을 잡고 내각과 의회를 마음대로 조종했다. 또 다이쇼 정변 이후로는 더욱 기고만장해져 천황과 군부 측에 대해서도 거의 안하무인이었다.

황권이 금권을 이기다

히로히토 천황이 일본의 대외 침략 확장을 주도한 배경은 독일과 매우 비슷했다. 당시 경제적인 면에서 독일과 일본은 모두 독점 자본주의 국가였고,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 모두 무력을 즐기고 권위를 존중했으며, 나아가 질서를 중요시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 독특한 가치관을 가진 것에 대해 항상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그 가치관을 인정받지 못하는 데에 대한 증오심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일본이 1889년에 제정한 헌법은 비스마르크의 독일 헌법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양국은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으나 의회 배후에서 실권을 장악한 것은 군대, 지주 및 자본가 연맹이었다. 양국을 구별해주는 최대 특징은 산업 역량의 차이였다.

일본은 자원 부족 국가로 석탄, 철광석, 석유, 합금 소재, 수력 자원 심지어 식품까지 부족했다. 이에 반해 독일은 자원 부족을 전쟁 도발의 핑계로 삼고 적극적으로 선전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자원 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독일 역사를 살펴보면 프로이센 장교단을 핵심으로 하는 군부 세력은 융커 지주 계급과 뿌리 깊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프로이센 장교단의 쟁쟁한 인물들은 모두 융커 귀족 출신이었다. 따라서 히틀러는 융커 계급의 지지를 이끌어낸 후 군부 세력의 지지도 얻을 수 있었다.

히틀러는 또 관료 계층 중에서 유대인 출신이나 나치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던 공무원을 강제로 조기 퇴직시켰다. 대신 나치 당원들은 그 자리에 채워 세력을 확장했다.

일본의 입헌군주제는 군주를 주체로 하는 입헌정치였다. 일본 헌법은 군주에 대해 구속력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헌법이 군주의 국가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일본 헌법은 천황을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천황의 권력이 그 어떤 제약이나 속박을 받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장할 의무가 있었다. 천황은 제국의 원수로서 내각 대신을 임명할 권한을 가졌고, 각급 관리는 천황에게 충성을 다할 의무를 지녔다. 천황은 군대의 대원수로서 정부와 의회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군대를 직접 통솔하고 지휘할 수 있었다. 또 천황은 의회를 소집하거나 해산하며 조서를 반포하여 법률을 대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회는 천황에게 협조하는 도우미 내지 자문기관 역할만 수행했다.

1936년 2월 26일, 히로히토 천황의 사주를 받은 1,000여 명의 하급 장교와 병사들은 재벌, 관료, 정객 등 부패한 특권 계급을 제거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도코에서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2·26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천황의 반대 세력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금릉에서 깨진 꿈

1935년의 법폐 개혁으로 중국의 화폐를 통일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대중국 침략 전쟁을 앞당기는 빌미가 되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중국에 외화 부족 현상이 심각해져 법폐의 기반이 크게 흔들렸다. 장제스는 궁여지책으로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외화를 대출받아 겨우 화폐를 안정시키고 항전을 지속할 수 있었다. 불 난 집에 도둑질이라고 영국과 미국은 장제스의 곤경을 이용해 외국환 평형기금을 설립, 국민정부의 중앙은행을 장악했다.

항전 승리 후 ‘4대 가족’은 화폐적 수단으로 대후방(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점령당하지 않은 중국의 서남 및 서북 지역)과 피정령 지역의 부를 인정사정없이 수탈해 민심을 잃었다. 경제 회복이 급선무인 시기에는 통화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나 쑹쯔원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화폐정책을 추진했다. 쑹쯔원이 시행한 외환 자유화 정책으로 말미암아 중국에는 악성 인플레이션과 법폐 신용 붕괴라는 심각한 후폭풍이 초래됐다.

장제스는 혼란에 빠진 법폐 제도를 수습하기 위해 금원권을 발행했으나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조성했다. 결국 이 패착이 장제스 왕조를 파멸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중국의 제2 중앙은행: 외국환 평형기금

중미 양측은 여러 차례의 협상을 거쳐 드디어 1941년 4월에 외국환 평형기금 및 기금관리 위원회와 관련한 협의를 체결했다. 같은 날 중국과 영국 사이에도 새로운 외국환 평형기금 설립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이렇게 되자 중국, 영국, 미국은 아예 외교 공문을 교환하고 2개의 평형기금을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새로 설립된 기금관리 위원회는 외환시장 개입, 법폐 환율 평형 등의 일상 업무 외에 중미 무역 심사 결정권까지 쥐고 흔들었다. 이때 누구라도 중미 무역에 종사하려면 반드시 외평기금 위원회로부터 외화 사용 비준 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미국 상품을 중국에 수입(수출)할 수 있었다.

기금관리 위원회는 사실상 중국의 중앙은행 및 최고 대외무역 관리기관 역할을 담당했다. 기금관리 위원회의 실권자는 당연히 미국인이었다.

쿵상시의 횡재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일찌감치 전쟁 종식 후 세계 화폐와 관련한 전략적 구도를 구상하고 있었다. 화폐의 전략적 각도에서 보면 미국은 5억 달러의 본전을 투자해 네 가지 거액의 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즉시 나타날 수 있는 효과로는 미국 방위산업 규모를 신속히 확장시키는 동시에 철강, 광산, 기계제조, 운송, 조선, 자동차, 비행기 등 관련 산업 발전을 이끄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경제 대공황의 곤경에서 벗어나고 18%의 높은 실업률을 낮춰 국내 소비를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둘째, 중국의 화폐 시스템이 달러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미국은 중국의 화폐 발행권, 더 나아가 중국의 경제 명맥까지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이런 방식으로 유추해보면 유럽의 ‘마셜 계획’ 및 다른 여러 나라에 대한 경제 원조 계획을 통해 달러화 유통 범위를 크게 확대하고 전 세계적으로 자원 통합 능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었다.

넷째, 달러화가 유통 범위를 끊임없이 확장하면서 향후 파운드화를 대체해 세계의 새로운 통화 맹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달러화는 국제 준비 통화 및 결제 화폐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세계대전 종식 후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 매년 세계 각국에게 ‘세뇨리지’를 징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 70년간이나 이어져오고 있다.

외환 자유화가 초래한 법폐의 몰락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 정책을 들먹이면서 지폐를 마구 찍어내자 결국 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게다가 쑹쯔원이 피점령 지역에서 법폐 1위안을 위폐 20위안으로 바꾸는 약탈적인 성격이 농후한 정책을 실행하면서 인플레이션은 국민당 통치 지역을 인간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일본은 피점령 지역에서 전쟁으로 전쟁을 부양하는 이른바 ‘이전양전’ 전략을 실시해 경제 질서를 안정시켰다. 그들은 군표 1위안을 법폐 1위안의 환율로 피점령 지역의 법폐를 회수했다.

왕징웨이 괴뢰 정권 시기에는 위중저권이라는 화폐를 새로 발행하고 일본 군표를 회수햇다. 위중저권과 일본 군표의 교환 비율이 1:2였으니 화폐가 50% 평가절하된 셈이다. 그런데 항일 전쟁 승리를 맞이한 다음 쑹쯔원은 법폐와 위중저권의 교환 비율을 무려 1:200으로 정했다.

금원권의 최후 발악

악성 인플레이션은 국민정부의 화폐가 인민에게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설명한다. 법폐 몰락의 근본 원인은 심각한 재정적자에 있었다. 당시 국민정부의 재정 지출은 세수의 10배에 달했다. 재정적자를 메우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마구 찍어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지폐 신용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화폐 신용이 바닥에 떨어지자 물가는 지폐 인쇄 속도보다 훨씬 더 빨리 치솟았다. 1947년 상반기에 지폐 발행액은 3배 증가한 반면에 쌀 가격은 7배나 폭등했다. 사람들은 물건을 쌓아놓기만 하고 내다팔지 않았다. 신용도가 높은 화폐가 없는 상황에서 상업과 생산은 심각하게 위축됐다. 따라서 정부의 세수입도 점점 더 줄어들었다.

재정적자의 근본 원인은 장제스가 발동한 내전 탓이 컸다. 내전은 국민정부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1947년에 이르러 국민정부의 군비 지출은 재정 지출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거듭되는 패전 소식에 사람들은 국민정부의 지폐를 점점 더 신뢰하지 못했다. 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법폐는 마침내 붕괴하고 말았다.

금원권은 ‘금원’을 본위화폐로 하여 황금, 은, 외화 40%와 국유 자산 60%의 비율로 준비금을 마련했다. 100% 충분한 준비금을 기반으로 최대 발행액은 20억 위안으로 정했다. 아울러 법폐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금원권 1위안으로 법폐 300만 위안을 교환하도록 규정했다. 이어 지정 기한 내에 민간의 모든 금, 은과 외화를 회수하도록 했다. 이는 대놓고 국민의 재물을 강탈하는 짓이었다. 그러나 국민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정부에 대해 신뢰를 잃은 국민들은 곧 새로운 화폐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앞 다퉈 수중에 가진 돈으로 살 만한 물건들을 모두 사들였다.

화폐 시스템은 국가의 부를 분배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런데 화폐를 제멋대로 발행해 화폐 시스템을 손상시키면 사회적 부의 흐름 방향이 변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의 갈등이 격화되고 정부 신용이 하락하며 민심이 등을 돌리게 된다. 화폐는 또 국민 경제의 혈액순환 시스템과 같은 존재이다. 화폐 정책이 실패하면 경제가 침체되고 재정이 마비되며, 무역이 활기를 잃고 시장도 무너진다.

장제스가 화폐전쟁에서 패한 이유

화폐 발행권은 인류 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력이자, 가장 은밀하고 통제가 어려운 권력이기도 하다. 화폐는 경제 발전을 견인하고 정치 향배를 좌지우지하며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화폐 권력의 비밀을 발견한 제왕만이 기선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화폐 통일은 정권을 튼튼히 하는 선결 조건이다. 화폐를 통일하지 않고는 재정을 통일할 수 없고, 통일된 정치 판도를 실현하기 어려우며, 통일된 군사력을 확보할 수 없다. 일본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고 중국의 양무운동이 실패한 근본 원인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바로 일본에는 통일 화폐가 있었고 청나라에는 통일 화폐가 없었기 때문에 희비가 갈렸다.

통일 화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마오쩌둥과 장제스는 화폐 발행권을 장악하기 위해 각각 소비에트 국가은행과 남경 중앙은행을 설립한 것이다.

인민폐의 탄생

중국공산당은 항일 전쟁 발발 후 항일 근거지에서 과감한 금융 혁신을 단행해 물자를 준비금으로 하는 화폐를 발행했다. 이 같은 물자 본위 화폐는 금, 은이나 외화 준비금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화폐가치와 물가 안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세계 각국은 거의 대부분 금본위제를 채택하던 시기였다.

인민폐의 출현은 중국 화폐의 완전한 통일을 상징했다. 중국에서 인민폐 가치가 안정을 되찾고 악성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까지 중국 정부가 적시에 적절한 조치를 취했고, 짧은 기간 내에 다음의 ‘4대 균형’을 이루었다. 4대 균형으로는 예산 수지 균형(인플레이션 근원 제거), 화폐 출납 균형(화폐 가치 안정), 물자 수급 균형(투기 세력을 근본적으로 차단), 외화 수출입 균형(화폐 공황 근원 제거)이다.

인민폐는 외화와 연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 자본 세력이 중국 금융 시스템에 침투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인민폐는 중국이 독립적, 자주적으로 발행한 화폐이기 때문에 중국의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었다.

변구 화폐의 힘겨운 부활

변폐 발행에도 난제가 존재했다. 경제발전을 자극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기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화폐 발행량을 결정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통화량과 물가의 관계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졌다.

상품의 유통량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통화량이 증가할수록 물가도 따라서 상승한다. 같은 이치로 시중의 통화량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상품의 유통량이 감소할수록 물가는 따라서 상승한다.

이에 주리즈는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먼저 공업, 농업, 운수업에 대한 대출 규모를 늘려 생산을 발전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폐 발행량을 줄이고 신용을 높여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었다.

변구 은행 설립 초기에 변폐의 신용이 낮고 유통 범위가 좁아 정부가 직접 변폐와 법폐 간 환율에 개입했다. 이로써 외화 암시장의 출현이 불가피해졌다. 주리즈는 단순한 행정적 수단으로는 외화 암시장을 근절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과 같은 외환 정책 아래에서는 법폐가 은행에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외화 암시장의 출현을 절대 막을 수 없다.

주리즈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갓 출범한 변폐는 법폐와 공존할 수밖에 없고, 짧은 기간 내에 시중의 법폐를 전부 회수하는 것도 불가능해으므로 변폐와 법폐 간 교환이 불가피했다.

주리즈는 법폐와 변폐 간 거래를 규범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화폐 교환소 설립을 제안했다. 1941년 변구 정부는 화폐 교환소를 설립해 변폐와 법폐를 자유롭게 거래, 교환하도록 했다.

산동 근거지, 물가 본위의 북해폐를 발행하다

쉐무차오는 대대적인 조사와 연구 끝에 북해폐의 가치와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폐를 몰아내고 북해폐만 유통시키는 것이라는 입장을 정리했다.

구체적으로는 북해폐로 법폐를 태환하고, 회수한 법폐로 적의 점령 지구에서 물자를 사재기한 다음 비축한 물자로 북해폐의 통화량을 조절해 북해폐의 가치와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근거지 정부는 물가가 상승할 때 미리 비축해둔 물자를 풀어 시중의 화폐를 회수하고 물가를 떨어뜨렸다.

쉐무차오는 산동 근거지가 농촌에 있는 관계로 계절별 화폐 발행량이 물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객관적 법칙을 발견했다. 즉 가을과 겨울에 화폐를 등발해 농산물을 대량 구매했다가 봄철에 그 농산물을 팔아 화폐를 흡수해야 1년 내내 물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가 안정은 화폐 신용을 상징하는 것이자 화폐 제도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였다.

전략 물자와 무역전쟁

중국 공산당이 명·청 및 국민정부가 은 공급을 장악하지 못해 화폐 주권까지 상실한 교훈을 받아들여 인민폐를 금, 은이나 외화와 연계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서구 열강이 막대한 금, 은 보유고를 기반으로 중국의 화폐, 경제와 정치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중국공산당이 금, 은과 독립된 인민폐를 발행한 것은 당시 서구 열강의 수중에서 화폐 주권을 빼앗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으로 ‘실사구시’라는 중요한 원칙을 구현했다.

오늘날 인민폐는 달러화와 연동돼 있다. 그런데 달러화는 과중한 채무 부담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평가절하가 불가피하다.

인민폐의 뛰어난 장점

소련이 1:10의 비율로 구 화폐를 회수한 것이나 장제스가 항전 후 피점령 지역에서 법폐와 위폐의 교환 비율을 1:200으로 정해 시중의 위폐를 회수한 것은 모두 구 화폐 보유자들의 부를 수탈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달러화 자산의 구매력이 불변한다는 가정 하에 달러화 대비 인민폐 환율을 기존의 1:7에서 1:6으로 조정할 경우를 보자. 이는 인민폐 ‘신 화폐’로 ‘구 화폐’를 바꾸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민폐가 평가절상되는 순간부터 6:7의 교환 비율로 인민폐 ‘신 화폐’가 ‘구 화폐’를 대체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구 화폐’ 보유자들은 필연적으로 손실을 입게 된다. 따라서 인민폐 평가절상은 대외적으로 명목 환율의 절상이지만 대내적으로는 인민폐 실질 구매력의 하락을 의미한다.

인민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화폐

스탈린은 동유럽 국가들을 소련의 ‘사회주의 대가족(사회주의권)’에 편입시킬 때부터 이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놓고 있었다. 동유럽 국가들이 너도나도 독립적인 화폐를 발행하려고 하면 환율을 이용해 지배할 생각이었다.

소련은 당시 전 세계 황금의 5분의 2를 점유할 정도로 황금 생산량이 많았다. 소련은 어마어마한 황금 보유고를 믿고 일부러 루블화의 가치를 실제 구매력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했다. 또 동유럽 각국 화폐와의 환율을 정할 때에도 황금 가격을 기준으로 함으로써 부당한 이득을 꾀했다.

동유럽 각국은 불만이 많았으나 스탈린의 위세에 눌려 감히 대놓고 표출하지 못했다.

금융 하이 프런티어와 인민폐의 국제화

향후 미국 채무가 끊임없이 증가하면서 달러화의 위상은 날로 약화되고, 뒤이어 화폐의 춘추전국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화폐전쟁은 이제 세계 경제의 일상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인민폐가 곤경에 처한 이유는 중국의 외환 보유액이 너무 많아 인민폐가 ‘달러화’ 되었기 때문이다.

화폐본위, 중앙은행, 금융 네트워크, 거래 시장, 금융기관 및 결제 센터 등은 공동으로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전략적 체계를 구성한다. 주권국이 이 체계를 구축하는 목적은 화폐의 자원 배분 기능을 보다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서이다.

화폐전쟁, 역사의 반복

미국이 국제 시장에서 본격적인 은 매입에 나서자 국제 은 가격이 폭등하고 중국의 은이 대량으로 외국에 유출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은 생산량이 많지 않은 데다 은화 주조에 필요한 은을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국제 은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1934년 3개월 반 사이에 무려 2억 위안이나 되는 은이 외국으로 유출됐다. 그럼에도 미국은 은 매입을 멈추지 않아 1934년에 런던 시장의 은 가격은 2배나 폭등했다.

대량의 은이 빠져나간 중국은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렸다. 은이 유출되면서 중국 화폐는 강제로 평가절상되고 무역적자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외국산 제품이 중국 시장에 범람한 반면 중국산 제품은 심각한 수출난에 봉착했다.

세계 화폐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국제 무역에서 결재 화폐로 사용되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장기간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면, 수출이 수입보다 월등히 많아 전 세계의 달러화가 미국으로 다시 흘러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국제 사장에 결제 화폐가 부족해 무역이 위축되고 각국 경제도 침체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제 무역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미국이 화폐를 수출하고 상품을 수입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의 무역적자는 태생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다만 무역적자 대상국이 그때그때 바뀔 뿐이다.

곤경에 처한 인민폐

미국이 양적 완화라는 황당무계한 명목 아래 달러화를 무차별적으로 발행할 때, 연방준비이사회는 미국 국채와 금융기관의 채권, 어음을 대거 매입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거액의 채무를 화폐화했다. 양적완화 정책은 크게 두 가지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는 정상 수준에서 벗어난 달러화 과잉 발행으로 채무 부담을 희석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화된 채권의 신용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이 인민폐 절상을 끈질기게 강요하는 목적은 따로 있다. 인민폐 평가절상을 통해 인민폐의 명목 구매력을 상승시키고 실질 구매력을 하락시킴으로써 인민폐 보유자, 다시 말해 달러 채권자들의 수중에 있는 달러 채권 가치를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인민폐의 색다른 선택, 광의의 물가 본위제

국민의 이익과 복지를 우선시하는 국가는 화폐 제도를 정할 때 광의의 물가 안정을 화폐 발행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중국도 이런 광의의 물가지수 본위제를 실시해야 한다.

빵, 우유, 야채, 돼지고기 등 생필품의 현재 가격과 10년 후 가격이 별 차이가 없고, 부동산, 교육, 의료, 양로 등의 자산 가격과 사회 서비스 가격이 꾸준히 안정세를 유지할 때, 국민들의 이익이 비로소 확실하게 보장 받을 수 있다. 이런 화폐는 국민들이 신뢰하고 선호하는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광의의 물가지수는 국민들의 최대 관심 품목인 자산 가격(부동산, 주식, 금, 은 등), 사회복지 서비스 가격(의료, 교육, 양로 등) 및 일상생활 가격(현행 CPI지수 등)에 대해 종류별, 지역별로 샘플을 추출한 다음 서로 다른 가중지수를 붙여 산출할 수 있다.

외국환 평형기금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외화가 급히 필요할 때 시장에 직접 개입한다.

둘째, 무역의 수요에 근거해 환율을 적정 수준에서 조정, 안정시킨다.

셋째, 외국환의 최대 집산지가 되어 외화가 필요한 기관에 외화 대출을 제공한다.

대출 수익이 외화 공채 발행 수익보다 높으면 자연히 이익을 얻게 된다.

금융 네트워크의 ‘라우터’, 결제 센터

일단 화폐전쟁이 터지면 글로벌 지급 결제 시스템을 장악하지 못한 국가는 완전히 수세에 몰리게 된다. 반면 지급 결제 시스템을 장악한 국가는 마치 스파이 위성을 통해 들여다보듯 상대의 전략을 훤히 꿰뚫어볼 수 있다.

화폐본위, 중앙은행, 금융 네트워크, 거래 시장, 금융기관 및 결제 센터는 공동으로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전략적 시스템을 이룬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는 글로벌 네트워크에 흘러들고 글로벌 지급 결제 센터를 거쳐 국제 무역 시장에 나타난다. 이어 각국 금융기관의 계좌 사이에서 거래되다가 최종적으로 다시 중앙은행으로 되돌아온다. 주권국은 화폐의 이와 같은 순환 과정 전반에 대해 엄밀히 보호하고 감독 관리해야만 한다.

화폐 춘추전국 시대의 도래

세계의 맹주 자리를 차지한 영국은 과거 스페인 제국과 똑같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노동을 통해 계속 부를 창출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 패권과 금융 패권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노동성과를 나눠가질 것인가? 이미 많은 부를 거머쥔 영국인들은 결국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후자를 선택했다.

그들은 미국에 자본을 대거 투자하고 산업 기술을 수출하여 미국인들이 힘든 생산 활동에 종사하도록 만들고, 자신들은 앉아서 방대한 투자 수익을 향유하며 ‘금리 생활자’의 삶을 누리기 시작했다. 이때 영국은 세계 자금 코스트를 결정하고, 자원 가격을 독점하고, 글로벌 제조업 오더의 흐름을 통제하고, 세계 시장의 수요를 주도적으로 나눠가지고, 해상무역 통로를 보호했다.

영국이 이 다섯 가지 전략적 고지를 단단히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꼼짝없이 영국의 글로벌 작업장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이 작업장을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영국 자본이었다. 한마디로 영국은 글로벌 시장의 조직자인 반면 미국은 생산자에 불과했다. 대규모 전쟁이 터지지 않는 한, 이 같은 글로벌 시장 구도는 꿈적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1971년부터 끊임없이 증가하는 무역적자는 냉정하게 다른 국가에 수출할 만한 미국산 제품의 생산량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미국은 달러 발행 특권을 행사하면서부터 세뇨리지 수익과 자본 투자 수익을 얻는 데만 혈안이 돼 끊임없이 자국 산업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는 과거 스페인과 영국의 행동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결과적으로 미국인은 거액의 이익을 얻는 대가로 부의 창조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부채 규모는 57조 달러에 달한다. 그것도 의료보험, 사회복지 기금 등 100조 달러의 잠재부채를 제외한 액수이다. 거의 상환 불가능한 이 부채는 이미 거대한 ‘채무 언색호(골짜기나 냇물이 막혀 그 자리에 생긴 호수)’를 형성했다.

미국의 GDP는 14조 달러에 불과한데, 어떻게 GDP의 10배에 달하는 거대한 채무를 상환한단 말인가? 게다가 미국의 채무는 복리로 이자 증가 속도가 GDP 성장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다.

2035년에 이르면 미국 GDP 대비 국채 비율은 200%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이는 미국이 재정 수입의 46%로 채무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1939년의 영국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영국은 그때부터 국세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부채 규모의 급증에 따라 달러의 몰락도 시간문제가 되고 있다. 달러가 구제불능 상태에 이르면 뒤이어 화폐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릴 것이다. 지금부터 2035년까지 4분의 1세기 동안 전 세계적인 화폐전쟁은 서서히 막을 올릴 것이다.

은의 영광과 몽상

미래의 20년은 세계 화폐 시스템에 천지개벽할 대변화가 일어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달러로 대표되는 채무 화폐와 금과 은으로 대표되는 성실한 화폐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들의 충돌 결과는 한쪽이 대대적으로 몰락하고, 다른 한쪽이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이게 될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달러화와 금, 은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지 분명히 깨닫고 그쪽으로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2008년 9월 18일 오후 2시, 세계 금융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했다!

미국 기업들은 중국 기업과 달리 은행에서 단기 대출을 잘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수속이 복잡하고 비용이 비교적 많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270일 이내의 단기 대출을 원할 때는 종종 단기 상업 채권을 발행하여 화폐시장에서 직접 융자받는 경우가 많다.

이 상업 채권을 발행하여 화폐시장에서 직접 융자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상업 채권은 일종의 채무 증서로 기업 신용을 기초로 해 발행이 간단하고 편리하다. 당장 돈이 필요할 경우에는 미리 상업 채권 거래업자들에게 통지만 하면 바로 현금을 쥘 수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임금, 원료 구매 및 운수 창고 비용, 임대료 등에 들어가는 각종 운전 자금을 상업 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한다. 이밖에 단기 국채, 연방 기금, 은행 인수 어음, 환매 조건부 채권, 양도성 예금증서(CD) 등의 각종 단기 채권 역시 화폐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각설하고 만약 5조 5,000억 달러가 미국 화폐시장에서 국제 투자자들에 의해 예금 인출돼 수 시간 내에 자금이 완전히 말라버렸다면, 미국의 모든 기업과 금융기관, 연방 및 지방 정부의 현금 유동성은 바로 완전히 끊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24시간 내에 끔찍한 광경을 목도했을 것이다.

24시간 후 재난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세계 각지의 금융 시장은 오전에 개장했다가 미국에서 일어난 깜짝 놀랄 소식을 듣고 모든 금융 상품의 가격이 완전히 붕괴된다. 각국 금융기관의 자금 거래와 결제는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진다.

화폐 시장과 금융 시스템에 중대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석유나 철강, 동, 구리 따위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금과 은에 몰린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의심의 여지없이 금과 은은 화폐시장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오랫동안 잊힌 화폐의 속성을 즉각 드러낸다.

은, 일찍이 세계 화폐가 되다

은이 명나라의 주요 화폐가 된 것은 스스로 원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해서였다. 명나라 이전의 송이나 원나라는 지폐로 귀금속을 대신해 주요 화폐로 삼았으나 결과는 경악스러웠다.

인간의 탐욕스런 속성 때문에 화폐가 상품의 속성에서 자유롭게 되자 강력한 제약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지폐를 남발하면서 결국 인플레이션 초래, 세수 고갈, 재정 붕괴에 이어 마지막에는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명나라도 건국 초기에는 이전 왕조의 지폐 제도를 채용해 보초를 발행했다. 그러나 1522년에 이르러 화폐가치가 무려 원래의 2% 선까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도 극심해져 백성의 원성이 들끓기 시작했다.

당시 명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금속 화폐는 금, 은, 동 세 가지 외에는 없었다. 금은 너무 귀하고 동은 너무 흔했기 때문에 은이 유일한 선택이 되어 명실상부한 ‘인민의 화폐’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은이 부족한 나라여서 명나라 때에는 은이 귀하고 금이 흔한 국면이 나타났다. 17세기 초 광주의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을 보면, 1:5.5에서 1:7 정도였는데, 스페인의 1:12.5에서 1:14와 비교할 경우 거의 2배 차이가 났다.

이처럼 금과 은의 환차익을 노린 경쟁이 심화되면서 거대한 세계 무역의 바퀴는 전속력으로 굴러갔다.

유럽인들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약 400여 년 동안 주로 아메리카 대륙의 은을 약탈해 되파는 일에 종사했다. 중국은 상품을 수출하고 화폐를 들어오면서 은본위 화폐 시스템을 확립했다. 은이 일단 중국에 들어오면 다시 나가지 않고 중국의 화폐 공급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상태는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팔 때까지 지속되었다.

황금 가격을 폭등시킨 FRB의 묘책

역사적으로 볼 때 지폐는 반드시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실력에 의지하고, 둘째는 신뢰에 의지하며, 마지막은 뻔뻔함에 의지한다.

제국의 실력이 튼튼하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겨 말에 힘이 실릴 때, 강력한 부의 창조력으로 지폐의 상품 태환 능력을 확보하면 지폐는 저력을 가지게 된다.

미국 건국에서부터 1971년까지 달러는 실력에 의지하는 단계였다.

전 세계 GDP의 절반을 점유하는 막강한 산업 생산 능력으로 달러는 신용을 확보했다. 수출 능력으로 전 세계 다른 곳의 금을 벌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달러는 과감하게 금과 연계되었다. 마치 중국이 400여 년 동안 세계 무역을 통해 전 세계의 은 절반을 빨아들인 것과 같았다.

1971년부터 금융 쓰나미가 몰아친 2008년까지 달러는 신뢰에 의지한 단계였다.

1971년은 달러에게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미국은 이때 세계 각국에 황금 인출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다만 달러와 금의 연결고리를 끊는데 만족했다.

실질적인 이유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해마다 늘어나 부가 해외로 유출되고 부를 창조할 역량이 하락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미국은 이때 다른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충분히 생산해 밀려드는 수입과 균형을 맞출 능력을 상실했다. 이 상황이 오래 이어지자 재정 부담이 과중돼 달러는 더 이상 금이라는 성실한 화폐가 부여한 중임을 짊어질 수 없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달러가 뻔뻔함에 의지하는 3단계에 진입했음을 말해준다.

이 단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국이 빚을 떼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해 다른 나라의 화폐를 대폭 절상한 다음 글로벌 경제의 재균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붙이고, 또 다른 나라들이 환율 조작에 나선다고 질책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린스펀 등의 전문가들이 일찍이 금값을 폭등시킬 방법을 의논했다는 사실이다. 이 방법을 통해 달러를 대폭 평가절하하여 미국의 부채 압력을 상쇄할 계산이었다.

금과 은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측량하는 압력계와 같다.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의 화폐 세계에서 지폐가 많이 인쇄될수록 시장의 고압솥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갈수록 커진다. 금과 은의 가격이 유일하게 공신력 있는 압력계라면 그 가격은 반드시 효과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1990년대 이후 서방의 중앙은행들이 손을 잡고 금과 은의 가격을 억눌렀던 목적이다.

금값 폭등을 통해 달러 부채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은 미국의 코너에 몰리 경우 나타날 최후의 미친 행동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달러의 안정이 아니라 바로 달러의 멸망이다.

금과 은의 초안정적인 교환 비율은 1:16이다

5,000년의 기다긴 역사 속에서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은 기본적으로 1:16에서 안정되었다. 그리고 현대과학은 지각 속의 금과 은 매장량 비율이 대략 1:17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9년 말에 미국 지질조사국은 최신 자료를 통해 전 세계의 은 매장량이 약 4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매년 은 생산량이 2만 1,400톤임을 감안할 때, 18년 동안 채굴할 수 있는 양이다.

현재 전 세계의 매년 은 수요량은 대략 2만 7,700톤에 이른다. 만약 이 수요량 대부분을 광산에서 채굴된 은에만 의존할 경우, 20만 톤의 매장량은 고작 14년만 공급을 보장할 수 있다. 더구나 은이 산업에서 활용되는 영역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상황에 비춰보면 미래의 은 소모량은 급속도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금 가격과 은 가격의 역사적인 교환 비율로 볼 때, 이 비율은 1:16이 정상이다.

현재 전 세계의 은 매장량은 40만 톤이고 여기에 각국이 확보하고 있는 3만 톤을 더하면 전 세계 은의 총량은 고작 43만 톤에 불과하다. 반면 금은 산업용으로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에 보유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 약 16만 톤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2009년 말 통계에 따르면, 채굴 가능한 금이 약 4만 7,000톤 정도이므로 둘을 합치면 대략 20만 7,000톤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통해 금과 은의 비율이 20.7:43으로 대략 1:2인 셈이다.

신에너지 방면에서의 응용

은은 모든 금속 중에서 가장 빛을 잘 반사하고 연마성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태양에너지를 모으는 집열판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재료로 쓰이고 있다. 또 은은 뛰어난 가속제여서 반도체 재료와 혼합되면 태양에너지에서 전기에너지로의 전환 효율을 12%나 향상시켜준다. 태양에너지 기술을 신속히 발전시키려면 매년 수천 톤의 은이 필요하다.

전지는 향후 그린 환경보호 시대의 핵심 요소로, 은 전지는 기존의 리튬 전지를 대체할 최고의 후보이다.

전 세계적으로 RFID 기술이 맹렬한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은은 바로 새로운 영역인 이 기술에 이용되고 있다. 미국 IDTechEx의 예측에 따르면, RFID 칩은 매년 93%의 증가 속도를 보이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급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은을 가장 필요로 할 의류 응용 분야

은은 천연의 무기 항균 재료이다. 이 무기 항균 재료는 지속성, 지구성, 광범위한 보급성, 뛰어난 내열성, 높은 안전성, 약제 내성을 초래하지 않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은은 의류 분야에서 이미 최대 단일 응용 영역으로 자리 잡아 매년 1,200톤을 소비한다. 이는 백은이 의류 분야에 막 진입했을 때의 수치이다.

현재 해마다 산업 생산에 들어가는 전 세계의 은은 대략 3만 톤 전후에 이른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언급한 신흥 소비 시장이 막을 열었기 때문이다.

음모에 의해 가격이 계속 억눌리는 은의 운명

일반인들은 베어 스턴스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큰 피해를 보고 파산 위기에 몰렸다가 인수 합병됐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 기업이 미국 상품 선물 시장의 최대 은 공매도 당사자라는 사실과 공매도로 인해 다방면에서 곤란을 겪다 거의 환매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2008년 3월 16일, FRB가 다시 긴급 수단을 강구해 300억 달러를 JP 모건 체이스에 대출해준 후 JP 모건 체이스가 바로 베어 스턴스을 인수 합병한다고 발표하면서 심각했던 은 가격 위기는 한숨을 돌렸다.

JP 모건 체이스와 홍콩상하이 은행은 서로 연대해 은 가격 통제에 나섰다. 2008년 8월에 양대 은행이 은 시장에서 단행한 매도 포지션의 점유율은 무려 85%에 이르렀다. 은 시장은 두 은행이 손을 맞잡고 계속 공격을 가하자 끊임없이 추락했다. 8월 15일에 13달러로 덜어진 다음 10월 말과 12월 초에는 온스당 9달러까지 하락했다. 이는 2006년의 가격 수준이었다.

대규모 뱅크런 사태에 내몰린 은 시장

은의 부가가치 잠재력에 대해서는 솔직히 테드 버틀러가 워런 버핏보다 더 눈썰미와 인내심이 있었다. 버틀러는 은 시장을 이렇게 전망했다.

몇 개의 대형 은행들이 인위적으로 은 가격을 억제하고 있다. 이 행위는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시장의 수요와 공급 관계는 은을 매입하는 쪽이 최종적으로 공매도를 하는 대형 은행들을 이길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해준다.

이처럼 버틀러는 은 가격이 폭발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상정했다. 최근 사태의 발전 추이를 보면, 그가 가격의 폭발과 연결될 것이라고 상정한 상황이 거의 증명되고 있다.

첫째, 대형 은행들의 공매도 계약이 환매로 내몰려 은 가격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시장이 은 시장의 부가가치 잠재력을 발견하면 당연히 매입 세력이 대량으로 시장에 진입해 부단히 실물 은의 가격을 끌어 올린다. 이때 대형 은행들의 공매도 계약은 거대한 현금 교환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현재 뉴욕 선물거래소에서 공매도 계약 규모는 5억 5,000만 온스에 이른다. 세계 시장 전체 물량의 79%에 해당한다.

둘째, 빌려준 은이 되돌아와 은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20여년 전부터 수많은 나라의 중앙은행은 은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시장에 대량 방출해 은 가격을 억제했다. 금은 현물거래 은행은 현물 은을 빌린 다음 대부분을 시장에 풀어 현금화했다. 이어 이 현금을 수익률 5%인 국채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중앙은행에 1%의 이자를 돌려줘도 4%를 벌 수 있었다.

문제는 은 가격이 도저히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하는 경우이다. 이것이 바로 은을 빌린 금은 현물거래 은행이 필사적으로 은 가격 억제에 나서는 주요 원인이다.

셋째, 산업 방면에서 공황에 대비해 은을 비축하는 노력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은은 거의 모든 산업의 원재료로 쓰이는 금속이다. 투자 수요의 급증에 따라 3만여 톤의 보유량은 조만간 모두 소모될 가능성이 크고, 새로 생산된 양도 수 년 동아의 수요를 감안하면 공급이 이를 따라잡기 어렵다.

은은 정말이지 대단히 기묘한 투자 상품이다. 통화 긴축이나 인플레이션 같은 경제 위기 때는 금과 함께 달러화의 평가절하로 가치가 올라간다. 경제가 회복된 뒤에는 대량의 산업 수요로 인해 이번에는 산업 원료의 특성을 발휘해 가치가 상승한다.

이는 다른 투자 상품들이 갖추지 못한 정말 절묘한 이중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의 은 시장 규모는 깜짝 놀랄 만큼 작다. 전 세계 지상의 은 보유량은 고작 3만 톤에 지나지 않고, 가치는 1,200억 위안에 불과해 중국 농업은행이 상장됐을 때 모집한 자금보다도 적다. 현재 세계 은 시장의 실물 은과 페이퍼 실버의 비율은 극단적으로 1:100에 이른다.

한마디로 왜곡되고 높은 레버리지가 작용하면서도 규모가 적은 은 시장은 세계 금융 시장 시스템을 치명적으로 강타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은의 전쟁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은 생산국으로, 연간 생산량이 약 1만 톤에 이르며 이중 5,000톤을 수출하고 있다. 2008년 이전에는 수출 환급세(5%) 정책을 실시해 수출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 5,000톤은 세계 산업계에 필요한 4,000톤의 부족분을 충분히 메워주고, 나아가 월스트리트와 런던 금은 시장을 축으로 하는 세력이 병마개 하나로 100개의 병을 막는 요술을 계속 부릴 수 있도록 해준다.

뉴욕과 런던의 은 시장에서 동원 가능한 은은 1억 2,500만 온스(약 3,900톤)에 불과해 기본적으로 1년 동안 산업용으로 소모되는 수요와 공급의 차액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실물 은을 지불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선물 계약 위반 역시 면하기 어렵다.

c********i 2011.08.13.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젠 금융방어가 국익확보의 필수요소이다
"이젠 금융방어가 국익확보의 필수요소이다" 내용보기
<화폐전쟁 3>은 화폐를 주축으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근현대사를 새롭게 풀이한 책이다. <화폐전쟁>이 미국의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금융자본의 음모를 다룬 반면, <화폐전쟁2>는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치열한 각축전을 다루었다. 이번 <화폐전쟁 3>은 그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왔다. 아편전쟁 이후 170년 동안 중국의 근현대사를 '금융 하이 프런티어'란 관점에서
"이젠 금융방어가 국익확보의 필수요소이다" 내용보기

<화폐전쟁 3>은 화폐를 주축으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근현대사를 새롭게 풀이한 책이다. <화폐전쟁>이 미국의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금융자본의 음모를 다룬 반면, <화폐전쟁2>는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치열한 각축전을 다루었다. 이번 <화폐전쟁 3>은 그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왔다. 아편전쟁 이후 170년 동안 중국의 근현대사를 '금융 하이 프런티어'란 관점에서 돌아본다. 한 국가가 자주국가로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영토, 영해, 영공(우주 포함)의 물리적 공간외에도 금융분야의 주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은 본위제'를 채택한 국가였다. 은이 유통화폐로서 근대 500년간 중국인 생활의 핵심요소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아편무역의 원인을 살펴보면 중국의 차, 도자기, 비단등을 구입하기 위해 막대한 은을 사용한 결과 부족해진 은을 확보하기 위해 영국이 고안한 것이었다. 결국 영국의 아편무역은 중국의 화폐체계 붕괴를 목표로 하였다. 결국에는 금융자본을 통해 중국에서의 화폐발행권을 장악함으로써 중국을 반식민국가로 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이 점이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화폐의 독립권을 유지해 아시아의 강자로 부상했던 점과 대조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 청나라 멸망과 서구열강의 중국침략은 군사 분야에서보다 금융 방면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이 책이 내린 결론이다.

 

중국의 근현대사에 관한 내용이라 1~2권에 비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물론 역사를 보는 시각이 화폐발행권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는 점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배경에 대한 해석도 재미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극우파 군부와 재벌이 손잡고 벌인 일이 아니라, 재벌들이 반대하는 과정에서 히로히토 천황이 주도해 일으킨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결국 저자의 관심이 다음 두가지로 귀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첫째는 세계경제대국(G2)로 떠오른 중국과 미국과의 환율전쟁을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는 중국정부와 국민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위안화의 기축통화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달러화가 세계금융과 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되는 기축통화(key currency)라는 이유로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양적 완화(달러 찍어 내기)를 통해 그 부담을 달러 채권국인 중국에 떠넘기고 있는 근본 구조가 바뀌지 않고는 환율을 둘러싼 양국간 긴장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71년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 선언이후 달러화는 가치척도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이제 달러화는 순수한 교환의 수단(currency)에 불과하다. 이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신뢰가 지속되어야 한다. 미국이 무역적자, 재정적자, 실업율 증가 등 어려운 경제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2030년 이후로는 여의치 못하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앞으로 달러화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 가치척도의 기능을 겸비하고 있는 금, 은이 중요해진다고 전망한다. 특히 중국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져왔던 은의 잠재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점이 흥미롭다.   



c******4 2014.06.09. 신고 공감 6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화폐전쟁3-은(silver)의 가치에 주목하라
"화폐전쟁3-은(silver)의 가치에 주목하라" 내용보기
유럽발 재정위기로 2008년 금융위기의 재판을 보는 듯한 이때, 나에게 작은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 화폐전쟁 시리즈....  그 3권이 나왔다기에 곧바로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중국과 일본의 근대 금융사를 아주 심도있게 다루고 있으나 남의 나라 역사이기에 그 깊은 내막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이해할 수 있었고 특히 조만간 은(silver)이 금보다 더 비
"화폐전쟁3-은(silver)의 가치에 주목하라" 내용보기

유럽발 재정위기로 2008년 금융위기의 재판을 보는 듯한 이때, 나에게 작은 정신적 충격을 안겨준 화폐전쟁 시리즈....  그 3권이 나왔다기에 곧바로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중국과 일본의 근대 금융사를 아주 심도있게 다루고 있으나 남의 나라 역사이기에 그 깊은 내막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이해할 수 있었고 특히 조만간 은(silver)이 금보다 더 비쌀질 거라는 내용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난 수천년간 금과 은의 교환비율은 1:16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들어 국제은행재벌들의 농간으로  은가격을 공매도 등의 방법을 통해 억눌러왔고(금가격은 폭등한 반면), 은의 산업용으로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은의 양이 많이 줄어들어 은 가격은 금의 1/16 이 아닌 1/2 이 되어야한다고 한다.

또한 은의 채굴량은 한정되어있어 앞으로 더이상 공급을 늘릴수도 없는 상황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과 은의 수량 비율은 1:1이 될 것이고, 그러면 십수년 내에 은은 지금보다 27배 이상 가격 폭등의 여지가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정말 가슴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요즘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은수저 매입'이라는 플래카드를 자주 볼 수 있다. 마치 수년 전 금값이 폭등하기 전에 '금매입'이라는 광고를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것처럼....나도 이참에 은수저 한번 사모아 볼까.....^^

화폐전쟁 3권에서는 다른 장은 몰라도 <10장 은의 영광과 몽상>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은의 역사적 가치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아주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b*******4 2011.10.1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책 처럼 쓰여진 - 화폐 전쟁 3
"소설책 처럼 쓰여진 - 화폐 전쟁 3" 내용보기
최근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 화폐전쟁 시리즈는 하나의 재미있는 현상이다. 난 저자 쑹훙빙 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할수로 더 그렇다. 어느날 갑자기 화폐전쟁이란 책을 출간하더니 연달아 3권까지 출간하고, 3권의 한국어판 서문에 4권에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고 선언까지 한다. 하지만 난 저자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떠나가질
"소설책 처럼 쓰여진 - 화폐 전쟁 3" 내용보기

최근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 화폐전쟁 시리즈는 하나의 재미있는 현상이다.

난 저자 쑹훙빙 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할수로 더 그렇다. 어느날 갑자기 화폐전쟁이란 책을 출간하더니 연달아 3권까지 출간하고, 3권의 한국어판 서문에 4권에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고 선언까지 한다.

하지만 난 저자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이 떠나가질 않았다.

물론 중국의 근현대사를 화폐전쟁의 관점에서 다룬 것은 참신한 착상이었고 칭찬해 줄 만 하다.

그러나 이 책이 논픽션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자꾸만 픽션의 냄세를 풍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책의 첫 장은 홍정상인 호설암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마치 호설암을 외국상인의 경제침략에 맞서서 싸우다가 산화한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호설암의 평소 행적을 보아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내가 알기로는 그는 그저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정부에 줄을 대어 관직까지 받았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다가 외국에서 빌린 차관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생사의 독점을 꾀하려다 반대파 정치인의 후원을 받고 있던 같은 중국상인에 의해서 파산한 사람에 불과하다. 물론 일계 점원에서 시작해 거상이 되는등 그의 성장과정의 독특함 때문에 대만의 소설가에 의해 그의 일대기가 소설로 출간되고 드라마로까지 제작되면서 '홍정상인'이란 이름이 갑자기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과 드라마라는 픽션 속에서의 일일 뿐이지 현실에서의 호설암은 그리 존경받을 만한 사람은 되지 못한듯 한데 이 책에서는 중국의 화폐주권을 지키려다가 분패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니 그 절묘한 말장난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화폐전쟁의 전작들은 음모론에서 춢발한 책이다. 이 세상을 소수의 사람들 특히 금융을 장악한 사람들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음모론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그림자정부라는 책에서 나왔던 내용인데 저자는 이런 내용을 잘 버무려 마치 자신이 정리한 것 처럼 묘사했었다. 그래서 이 책이 무섭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계속적인 출간은 중국정부의 숨겨진 의도대로인지도 모른다. - 물론 이것은 또 하나의 음모론일 것이다. 그리나 난 음모론을 무척 좋아한다. 세상은 신문기사에 실린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신문기사가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려서일까? -

어째든 화폐전쟁 시리즈는 중국이 세계 경제 지배의 야심을 숨기고 서양세계 특히 미국의 달러화 주도의 세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책 3권에서는 달러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앞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은본위 화폐질서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역자가 후기에 언급했듯이 화폐전쟁 1,2편이 이 3편을 쓰기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닌가 하는 의견에 난 백프로 동감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경제정책, 특히 화폐에 관한 야심을 엿보고 싶다며 이 책은 필독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기존 한국인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어 현대사를 재조명 해 볼 기회도 주고 있다.

단지 그 관점이 너무나 분명한 목적성이 있다보니 저자의 의도를 생각해가며 편협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논리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고 주관을 지켜가며 읽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4편에서 한국의 경제발전 이야기를 쓴다고 하니 과연 한국인들에게 어떤 새로운 음모론을 제시할지 그리고 그 파장이 어디까지 일지 벌써부터 심히 걱정이 되는 바이다. 이 저자의 말을 모두 진실로 믿고 혼란에나 빠지지 않을 지 말이다.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고 있지만 그만큼 오류에 빠지기 쉽게 만들어 놓은 책, 하지만 읽는데는 어렵지 않고 소설책 처럼 흥미로운 책, 그래서 난 이 책을 픽션으로 생각하고 읽고 그 가운데에서 교훈점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번역자 홍순도 님을 만나뵌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책을 통해 다시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다. 책 잘 읽었다고 전화하고 소주나 한잔 같이 하자고 청해봐야 겠다.

www.weceo.org

YES마니아 : 골드 s******y 2011.09.0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금융을 장악하지 못하면 무너진다
"금융을 장악하지 못하면 무너진다" 내용보기
‘화폐전쟁’이라는 책을 이야기 할 때 주변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그게 진짜야?’라는 물음들이었다. 그 내용이 파격적이기도 했지만 음모론과 사실을 조화 시키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폐전쟁 1,2권에는 Faction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3권은 그 부담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화폐전쟁 3권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
"금융을 장악하지 못하면 무너진다" 내용보기
 

‘화폐전쟁’이라는 책을 이야기 할 때 주변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그게 진짜야?’라는 물음들이었다. 그 내용이 파격적이기도 했지만 음모론과 사실을 조화 시키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폐전쟁 1,2권에는 Faction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지만 이번에 나온 3권은 그 부담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화폐전쟁 3권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자본에 집중했다. 중국이 서방국가들과의 기싸움에서 아편전쟁, 은 구매법 등을 거치면서 은 본위제에서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성공과, 중국 양무운동의 실패, 중국 인민폐에 대한 이야기 등, 과거의 이야기를 통한 새로운 대안 모색 같은 사실적이고 적극적인 내용이 실렸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해 미 연방준비위원회(FRB)에서는 1,2차 양적완화를 실시해 약 2조3천억 달러를 시중에 풀었다. 게다가 지난 8월 2일 미국 의회는 부채한도 한도 증액에 합의 했다. 그 전까지 14조 3천억원이 한도였던 미국의 국가 부채는 2조 1천억원이 상향 되어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 상환 불이행) 위기에서는 벗어난 모습이다. 이는 표면상으로 국가 부도 위기를 넘긴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억지로 생명을 연장 시켜놨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이후로 연일 주가가 폭락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우려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지금 어는 나라든 화폐를 남발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미국만큼은 그 예외가 적용되고 있는데 그건 바로 미국이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는 사실 미지수다.

 

어느 나라든지 종이 화폐를 사용한 나라는 마지막에 인플레이션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은 금이나 은을 기준으로 화폐를 발행하려 했다. 수량이 한정 되어 있으므로 남발하지 않을 수 있고 외부에서 들여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업이 활성화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폐는 다르다. 사실은 차용증서에 지나지 않는 지폐는 약속이 완전히 지켜질 때까지는 그 가치가 유효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 종이를 신뢰하지 않게 되면 그 때부터는 그냥 종이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항상 지폐를 금 또는 은과 같은 확실한 자원과 연계시키려는 노력이 계속 되어 왔다. 하지만, 그 말은 곧.. 화폐와 금, 은의 연결 고리만 끊을 수 있다면 화폐는 무한정 발행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금과 은이 가장 믿을만한 진짜 돈이었다는 사실은 자본가들에게는 달갑지 않는 진실이다. 금과 은이 공정한 화폐의 역할을 할 때 은행가들은 국민을 기만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제약이 사라지고 나면 지폐는 종이로의 재빠른 변환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미국정부에서 달러에 대한 보증을 못하겠다고 나서거나, 채무를 못 갚겠다고 드러누워 버리면 달러는 전부 휴지조각이 될 뿐이다. 사람들은 그럴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낙관하고 있지만,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듯 하다. 역사상 모든 지폐에 대한 실험은 결국 원래 가치로 돌아가고 말았는데 그건 바로 종이 원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폐는 반드시 세 단계를 거치게 돼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그 나라의 국력과 부의 창조력에 의지해서 지폐는 공신력을 얻는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신뢰에 의지하는데 이 단계에서는 실제 능력보다 조금 더 과하게 신용을 이용한 지폐의 발행이 가능하다. 이 단계에서 금과 지폐의 연결 고리를 끊는 작업이 진행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서는 뻔뻔해지기 시작한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양적 완화, 자산 인플레이션 등을 확대시키고 홍보한다. 미국은 이 시점에서 다른 나라 화폐를 평가절상 하고 다른 나라에 환율 조작국의 멍에를 씌우고 있다. 또한 달러를 대폭 평가절하 하여 미국의 부채를 상쇄하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와 함께 따라 다니는 기사는 ‘위안화 절상 압력’ 이다. 미국은 양적완화에 대한 주변의 우려와 비난이 들릴 때마다, 국내 경기 위축이나 실업률 저하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안 좋을 때마다, 중국에 대한 위안화 절상 압력에 힘을 가한다. 과거부터 강대국들은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금융을 장악하려고 했다.(여기서 말하는 금융 하이 프런티어) 영국은 중국을 정복하기 위해 화폐를 장악하려고 중국에 아편을 대량으로 수출해서 중국의 화폐 시스템을 무너뜨렸고, 1930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은 구매법’을 선포해서 은본위 국가의 화폐가치를 절상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무역적자는 급증하고 금융 경색으로 물가가 폭락하게 되면서 중국은 은 본위제를 포기한다.


 

궁지에 몰린 국민 정부는 부득불 은본위제를 폐지하고 파운드화 및 달러화 환율을 기준으로 한 법폐를 발행한다. (p.450)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실물 금속 금이나 은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화폐를 기준으로 해서 자기 나라의 화폐를 발행하게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저자가 말하는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완전히 미국과 영국에 빼앗겼다는 말이 된다. 미국은 지금도 화폐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공격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결국 적자를 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 그 책임을 중국에 돌림으로써 정책의 책임을 면하겠다는 게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 전략의 핵심이다.


 

이 책에은 중국을 중심으로 씌여 있다보니 다소 감정적 접근이 아닌가 싶은 부분도 없진 않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서 현재의 세계 경제를 가장 잘 정리해 놓은 책 같다. 마지막에 은에 대한 전망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논리 정연하게 잘 정리돼 있다. 다만 책을 광고 할 때 은이 금보다 비싸진다는 식의 투자서 같은 뉘앙스로 안내를 해서 책의 진짜 가치가 왜곡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아쉬웠다.

 

과거에는 정치 분야에서의 ‘음모론’이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요즘 나오는 음모론들은 대부분 경제 분야에서 나온다. 음모라는 말은 그 이면에 ‘권력’이라는 말을 품고 있다. 그 말은 곧 이제 진정한 권력은 자본에게 완전히 넘어왔다는 말이 된다. 이는 정치권력의 일시적이고 한계가 지어진 힘에 비해, 자본 권력은 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우리도 요즘 같아서는 정권을 잡고 있는 집권자의 말보다는 대기업의 파워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제 자본주의 시대의 금권은 봉건주의 시대의 왕권과 마찬가지로 법률의 위에 있다는 저자의 말이 허투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바로 그 내용을 잘 정리해 놨다는 점이 이 책을 내가 추천하는 이유이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11.08.0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 근현대사를 금융 하이프런티어 관점에서 풀이한 책
"중국 근현대사를 금융 하이프런티어 관점에서 풀이한 책" 내용보기
화폐전쟁이 벌써 3권째 출간되었다. <화폐전쟁>이 처음 독자들에게 선보였을 때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좀 어려운 책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화폐전쟁>을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경제서적이기는 하지만, 전문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런 독자들이라면 <화폐전쟁2>,< 화폐전쟁3>이 출간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중국 근현대사를 금융 하이프런티어 관점에서 풀이한 책" 내용보기

화폐전쟁이 벌써 3권째 출간되었다.


<화폐전쟁>이 처음 독자들에게 선보였을 때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좀 어려운 책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화폐전쟁>을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경제서적이기는 하지만, 전문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런 독자들이라면 <화폐전쟁2>,< 화폐전쟁3>이 출간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에 책을 찾게 될 것이다.
바로 내가 그런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또한 요근래 중국 경제학자들의 활약이 커지는 것을 이 책의 저자인 '쑹훙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국제금융학자로, 199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처음에는 정보공학을 전공했지만, 그 다음에는 오랫동안 미국 역사와 세계 긍융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한 결과, 글로벌 재경 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처음 그가 <화폐전쟁>을 세상에 내 놓은 후에 아시아를 비롯한 유럽, 미국 등지에서도 화폐전쟁이라는 말과 그 내용에 많은 관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화폐전쟁>은 미국 화폐 발행권을 둘러싼 금융자본의 음모가 미국 사회와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 뒤에는 국제 금융 가문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화폐전쟁 2>는 화폐발행권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치열한 각축전에 촛점을 맞추게 된다.
여기까지의 내용들은 역사적 사실과 함께 저자가 역사적 사실 속에서 저자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미한 허구적인 내용들도 어느 정도는 가미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폐전쟁 3>은 역사적 사실의 분석과 자료 조사에 의한 내용들만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미국, 유럽의 화폐를 다루었던 내용에서 저자의 나라이기도 한 중국과 일본의 화폐사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 일본의 금융 이야기를 촛점으로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화폐이야기가 중국,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에 해당하는 아편전쟁이후 170년을 "금융하이 프런티어"라는 관점으로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학창시절에 아시아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아편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양무운동,무술변법, 일본의 메이지 유신 등을 다루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당시에 우리들이 배웠던 역사적인 사실들은 배경, 원인, 경과, 결과 등으로 나누어서 너무도 가시적인 면만을 다루었을 것이다.
그 밖에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역사책을, 또는 역사소설 등을 통해서 많은 배경지식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식들이 이 책을 읽게 되면 너무도 단편적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과 일본의 근대사 속에서 화폐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세밀하게 분석해 주는 것이다.
물론, 철저한 자료 분석이 뒤따르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금융 하이 프런티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영토, 영해, 영공을 삼차원적 물리적 공간이라고 할 때에 여기에 금융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영역이 포함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금융은 주권국가가 반드시 수호해야할 네 번째 차원의 영역임을 말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은 아편전쟁을 비롯하여 열강의 침탈 속에서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완전히 상실하여 양무운동, 무술변법을 모두 실패로 막을 내리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자국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완벽히 통제함으로써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서구 열강과 같은 대열에 끼는 아시아 유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금융 극복 사례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입증하기 위한 저자의 생각들은 그 누가 접해도 수긍이 갈 수 밖에 없는 연구 결과인 것이다.

또한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과 장졔스의 국민당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내용일 것이다.
장졔스의 국민당의 패인 역시 화폐정책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장졔스가  화폐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해쳐 소수 부자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화폐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독립적, 자주적으로 발행한 화폐인 인민폐는 외화와 연동이 되지 않기때문에 외국 자본 세력이 중국 금융 시스템에 침투할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중국은 자연스럽게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저자는 은본위 화폐였던 중국의 화폐를 상기시키며, 은본위 화폐가 사라지고 금본위 화폐인 유럽 화폐가 중국에 침투하게 되는 역사적인 일들이  중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일어나기도 했지만,
결국 앞으로의 세계는 달러의 위상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은이 막강한 통화가 될 것임을 주장한다.
거기에 중국은 세계 최대 은 생산국, 은 수출국임이기에 중국은 거대한 국제 정치 및 금융 레버리지를 이용해서 전략적인 기회를 틀어 쥘 것임을  은근히 내세우기도 한다.
" 15년 후에는 은이 금보다 비싸질 것이다. " (책 내용중에서)
이 책은 과거 진정한 세계 화폐로 400년 동안 동서양 무역 발전을 주도한 은이 세계의 화폐를 다시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그렇다면 천정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금값보다 더 비싼 은값~~~
<화폐전쟁 3>은 이렇게 화폐를 주축으로 중국 근대사를 새롭게 풀이하는 것이다.
어떤 역사책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중국 근대사와 금융의 만남.



'쑹훙빙"이 펴낸 <화폐전쟁>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어려운 경제의 한 분야인 화폐를 다루는 경제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면서도 쉽게 내용을 풀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전쟁>을 한 번 읽게 되면 <화폐전쟁> 시리즈를 놓치지 않고 읽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쑹훙빙'은 <화폐전쟁 4>에서는 전후의 한국 경제, 60년대 이후의 한국의 고속 성장을 다루려고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써는 더욱 관심이 가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어려운 경제학 서적이라는 편견을 떠나서 중국, 일본의 근현대사를 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접한다면 더 흥미로운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n******5 2011.08.0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화폐전쟁 3
"화폐전쟁 3" 내용보기
역사소설을 읽은 느낌. 청나라 말에서부터 신중국초기까지의 역사와 금융에 대한 이야기 청나라 역사를 이야기할때는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화폐전쟁1- 미국, 화폐전쟁2-유럽, 화폐전쟁3-중국, 이렇게 세계3대 경제권의 역사와 금융을 살펴보면서 세계화폐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마지막 주장은 은값의 폭등이다. 물론 금대비 은값이 너무 낮은게 지금 현상이고 언젠
"화폐전쟁 3" 내용보기

역사소설을 읽은 느낌.

청나라 말에서부터 신중국초기까지의 역사와 금융에 대한 이야기

청나라 역사를 이야기할때는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화폐전쟁1- 미국, 화폐전쟁2-유럽, 화폐전쟁3-중국, 이렇게 세계3대 경제권의 역사와 금융을 살펴보면서 세계화폐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마지막 주장은 은값의 폭등이다. 물론 금대비 은값이 너무 낮은게 지금 현상이고 언젠가는 은이 고갈될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지금 바로 은을 살때다.

너무 디테일한 역사이야기에 재밌기도 하지만 지겹기도 했다.

l******t 2013.09.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의 또 하나의 관점 - 돈
"역사의 또 하나의 관점 - 돈" 내용보기
화폐전쟁 1,2편을 재밌게 읽은 기억으로 3권을 읽게 되었다..   금융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에 송홍병 씨의 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은 어렵다.. 그저 읽은 느낌을 적을 수 밖에.. 게다가 정답은 없으니..   화폐전쟁이란 책 자체는 역사를 이루는 여러 요소 가운데서 돈, 금융에 초점을 맞춰 모든 사건을 기술했다는 특징이 있다.. 즉, 전적으로 한쪽 시각으로 본 역사 혹
"역사의 또 하나의 관점 - 돈" 내용보기

화폐전쟁 1,2편을 재밌게 읽은 기억으로 3권을 읽게 되었다..

 

금융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에 송홍병 씨의 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은 어렵다.. 그저 읽은 느낌을 적을 수 밖에.. 게다가 정답은 없으니..

 

화폐전쟁이란 책 자체는 역사를 이루는 여러 요소 가운데서 돈, 금융에 초점을 맞춰 모든 사건을 기술했다는 특징이 있다.. 즉, 전적으로 한쪽 시각으로 본 역사 혹은 픽션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꼭 이런 시각으로 봐야 하나 불편했지만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저자는 제해권, 제공권과 비슷한 의미로 금융 하이 프런티어 이론을 주장하면서 영토, 영해, 영공의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금융도 국경의 개념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구상하는 네개의 조건,
첫번째 자국의 화폐가 통일 되어 있어야 한다는 화폐본위,
두번째 그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
세번째 금융 네트워크,
네번째 국채 및 각종 어음 거래 시장을 갖춰야 하는 것
을 갖추었을 때와 갖추지 못했을 때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는지 중국과 일본의 근대 역사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책 내용은 1장~8장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통해 금융의 흐름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이야기하고 있으며, 9장은 인민폐와 달러의 비교를 통해 중국의 국제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장은 중국에서 예전부터 본위화폐로 사용한 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 책을 보면 정권이 어떻게 했을 때 흥하는지 망하는지 알 수 있다..
중국 국민정부의 장개석이 금융면에서 국민들의 이익 대신 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책으로 대만으로 쫓겨 나는 과정과 모택동의 공산정권이 백성들을 위한 정책으로 민심을 얻는 과정, 히로히토 일왕이 재벌들을 요리하는 과정 등이 재미있게 설명 되어 있다..

 

그리고 송홍병씨는 향후 은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여러 근거로 설명해 놓았는데 그렇다면 개인들은 어떻게 투자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그의 이야기처럼 달러의 시대는 이제 곧 사라질 것인지.. 

 

이 책에 나오는 장개석, 모택동, 히로히토, 히틀러, 비스마르크 같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돈의 관점으로만 적어 놓았는데 그런 시각에 대해 권력자들은 어떤 판단을 할지.. 그냥 궁금하다..

 

어쨌든 화폐전쟁은 역사의 흐름 가운데 돈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송홍병씨의 중국 발음은 쑹훙삥이지만 중국인들은 모든 한자를 자기 식으로 발음한다.. 자기들끼리도 발음 다르면서 절대 우리나 일본에서 사용하는 식으로 발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의 혼다(本田) 같은 회사의 이름을 자기식으로 벤띠안으로 발음한다.. 삼성은 싼싱..  그래서 중국 사람들 이름 그냥 우리식으로 발음하고 싶다.. ㅋ 책에서도 한자의 발음이 어떤 것은 중국식으로 어떤 것은 우리식으로 적어 놓았다..)

k*******1 2012.03.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화폐전쟁 3
"화폐전쟁 3" 내용보기
화폐전쟁 시리즈는 중국의 유명한 교수 쑹훙빙의 저서입니다.그는 중국의 희망이죠.중국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입니다.화폐전쟁 1, 2는 로스차일드에 대한 얘기와금에 대한 얘기, 미국 달러의 몰락에 대한 얘기를 가지고팩션 (사실에 기초한 소설)으로 쓴 책입니다.하지만 화폐전쟁 3는 중국 근대 역사를 기반으로 한사실을 담은 책입니다.1, 2편은 논란을 만들어 내기 위해그
"화폐전쟁 3" 내용보기

화폐전쟁 시리즈는 중국의 유명한 교수 쑹훙빙의 저서입니다.

그는 중국의 희망이죠.

중국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화폐전쟁 1, 2는 로스차일드에 대한 얘기와

금에 대한 얘기, 미국 달러의 몰락에 대한 얘기를 가지고

팩션 (사실에 기초한 소설)으로 쓴 책입니다.


하지만 화폐전쟁 3는 중국 근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사실을 담은 책입니다.


1, 2편은 논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리고 뭔가 다른 구성을 위해

팩션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3편은 좀 진지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중국인으로서 당시 아시아의 강자 중국과

세계의 중심인 유럽의 전쟁이 아편 전쟁이 아닌

금본위제와 은본위제의 화폐에 의한 전쟁임을 알립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중국은 은본위제였습니다.

유럽에 의해 금본위제로 바뀐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3편에서 사실을 근거하는 진지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분명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큰 것이 코 앞까지 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만큼 시간적으로 긴박하다는 뜻이겠지요.


마지막 충격적인 10장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죠

'15년 후에는 은이 금보다 비싸질 것이다.'

저자는 이 내용에 대한 자신이 조사한 바를 모두 쏟아냅니다.

조금의 장난기도 없이 사실을 바탕으로 조사한

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써 내려 갔습니다.


이 책은 두껍습니다.

처음 보는 이로 하여금 읽기 싫게 만듭니다.

특히 중간 쯤 가다보면 책을 던지고 싶을만큼 지루해 지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냥 10장만 보십시오.

이 책은 10장 하나만으로도 책 가격의 몇 배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직접 조사해 보세요

'15년 후에는 은이 금보다 비싸질 것이다.'

지금 금과 은의 가격 차는 50배가 넘습니다.

은이 50배 쌉니다.


4편은 한국을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합니다.

다시 팩션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3편 처럼 역사적 사실을 위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지는 두고봐야 하겠습니다면

한국인으로서 기대가 됩니다.


---------------------------------------------

http://cafe.naver.com/selfmaderich

h*******e 2012.01.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관변학자의 황당한 역사왜곡? 쑹훙빙의 화폐전쟁3
"중국관변학자의 황당한 역사왜곡? 쑹훙빙의 화폐전쟁3" 내용보기
중국 환구재경연구원 원장 쑹훙빙의 베스트셀러인 "화폐전쟁"시리즈가 집근처 도서관에 있더군요. 이중에서 3권이 30~40년대 장개석정권의 경제정책과 금권개혁에 대해 다루었다고 해서 장개석 정권에 대해 연재중인 저로서는 당연히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어서 빌려보았답니다.   읽고난 소감은 "실로 어이없다."입니다. 저자가 경제학자이지 역사학자가 아닌 것은 틀림없지만 그
"중국관변학자의 황당한 역사왜곡? 쑹훙빙의 화폐전쟁3" 내용보기

중국 환구재경연구원 원장 쑹훙빙의 베스트셀러인 "화폐전쟁"시리즈가 집근처 도서관에 있더군요. 이중에서 3권이 30~40년대 장개석정권의 경제정책과 금권개혁에 대해 다루었다고 해서 장개석 정권에 대해 연재중인 저로서는 당연히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어서 빌려보았답니다.

 

읽고난 소감은 "실로 어이없다."입니다. 저자가 경제학자이지 역사학자가 아닌 것은 틀림없지만 그야말로 황당하며 무슨 근거로 이런 책을 쓴 것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군요.

 

"화폐전쟁"에서 저자는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곧 승자"라고 말하고 메이지 유신과 양무운동을 비교하면서, 왜 한쪽은 성공하고 한쪽은 철저하게 실패하여 열강들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는가를 설명하는데 이 부분까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장개석정권의 경제정책을 다루면서 제1차 상해사변이 일본과 짜고친 고스톱이었다느니, 반면 강서성 산간오지에 있던 모택동의 "소비에트구"에서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모주석의 위대한 업적이라며 최고의 찬사를 보냅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데이터와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이며 신빙성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 루즈벨트가 중국에 제공한 5억불의 차관이 당시 중국의 10년치 예산과 맞먹는다는 주장도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아마 저자는 당시 공식적인 법폐와 달러간의 교환비가 1:20임을 근거로(실제로는 이때에 오면 실제 법폐가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1:100이상이었지만) 5억불이 중국돈으로 100억위안에 해당한다고 계산을 한 것같습니다. 35년 당시 남경정부의 1년 예산이 약 10억위안이었으니 인플레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으로는 10년치 예산인 것같지만, 37년의 법폐와 달러의 교환비는 1:3정도였다는 점에서 저자의 계산은 형평성이 맞지 않습니다.(참고로 37년 남경정부의 1년 예산은 그 두배인 21억위안이 넘었습니다.) 물론 5억불의 차관은 당시 중국에게는 대단히 큰 돈이지만 전후 관계를 쏙 빼놓고 10년치 예산운운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당시 중국의 1년 예산이 미국돈으로 겨우 5천만불도 안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저자의 편파적인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 강서 소비에트의 경제와 금융정책에 대해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식으로 말하며 노골적인 미화와 찬양 일변입니다. 더욱이 "인민폐는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만들어진 화폐"이며 "역사의 기적"운운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당시 "소비에트구"의 경제는 초반에 반짝 상승했을뿐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문외한 공산주의자들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경제 정책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고 국공내전에서 승리한후에는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으로 중국 경제 전체가 몰락하였습니다. 50년에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로부터 땅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것만 얘기할뿐 몇년도 되지 않아 그 땅을 국가에서 강제로 회수하여 집단농장체제로 바꾸었다는 것은 얘기하지 않습니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단지 지주가 "개인"에서 "국가"로 바뀌었을뿐이죠. 그 과정에서 반발하는 농민들에 대해서는 "수구반동"이라며 무력으로 진압하였습니다. 중국이 금융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해서도 중국 내부의 문제는 쏙 빼놓은채 모든 것은 "서구의 음모"라며 소위 음모론으로 일관하고 미국의 경제정책을 비난합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대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이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몇백%의 국가채무에 허덕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그렇지 않은가? 중국이 등소평이래 그동안 두자리수의 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가 누적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GDP의 증가는 단지 통계상의 허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GDP의 증가는 수출이나 내수 소비의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부주도의 과잉 투자에서 나온 것입니다. 과연 그 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바로 대다수 국민들이 은행에 예금한 돈에서 나오고 정부가 마구 찍어낸 돈에서 나온 것입니다. 중국이 품고 있는 문제점에 비하면 그들이 그토록 비난하는 서구의 문제점은 실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과거 우리나 일본, 대만, 싱가포르가 그러했듯 중국 역시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 경제에 문외한 권력가들, 관료들이 단지 가시적인 업적과 경쟁을 이유로 과잉 투자, 중복 투자를 서슴치 않으며 국민들의 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고도성장은 이 4개국의 고도성장기에 비하면 발전속도가 훨씬 늦으며 단지 그들의 덩치가 크기때문에 상대적으로 겉보기에 화려하게 보일뿐입니다. 더욱이 그나마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느정도나마 견제, 감시가 가능한 위의 4개국과 달리 중국은 그조차 불가능합니다. 명백한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해서도 단지 일부 양심적인 학자들만 비판할뿐 대다수 관변학자들과 언론들은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합니다.

 

흔히 우리가 일본을 보고 "부자나라, 가난한 국민"이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나라, 가난한 국민"은 바로 중국입니다. 겉보기에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지만 그이상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되려 실질적인 구매력은 감소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입니다. 저자는 이런 점은 완전히 간과한채 곧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 금융을 지배할 나라"라고 주장합니다.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제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에 저자의 경제논리 자체에 대해서는 옳다, 그르다를 논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더 큰 치부는 눈감고 서구의 문제점만 거론한다면 이는 뭐 묻은 것이 머 묻은 것을 나무라는 격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지어낸 소설에다 실제 사실을 이리저리 적당히 끼워맞추어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과장 왜곡 논리비약으로 일관되어 있을 뿐인데 놀랍게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군요... 북한에서 "수령님 덕분에 자력갱생"운운하는 것과 비슷한 내용인데 중국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 관심을 끄는 걸까요.



a*****1 2014.05.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