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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엄마는 일제 시대때 겪은 게 기억이 나려나? 궁금해서 엄마한테 여쭤봤다. 엄마는 일제시대를 이삼년 밖에 겪지 않아서 생각나는 게 별로 없지만 순사들 본 거 하고, 엄마의 일본 이름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외할아버지 일본성이 히라우미였다는 정도만 기억난다고 하셨다. 외가집도 창씨개명을 하신 거였다. 히라우미.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나지만, 혹시나 싶어서 검색을 해봤더니, 역시나였다. 할아버지 본관인 평해(平海) 한자음을 일본식 음으로 바꾼 거였다. 강제적으로 창씨 개명을 해야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어떻게든 원래 성(姓)과 연결지어 창씨를 했던 것이었다.
'검은 우산 아래에서'는 이렇게 식민지시대를 직접 겪은 어르신들 51명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펴낸 것인데 이색적인 것은 국내가 아닌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한국 남성과 결혼한 미국여성이 남편과 함께 인터뷰한 것이라는 점도 국내에서 진행되는 보통 인터뷰와는 구별되는 점이었다.
인터뷰대상 어르신들은 일제시대 뿐 아니라 6.25 등 한국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했던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히고, 겪어내신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돌아보는 일제시대는 체험과 개인사라는 점에서 실감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역사 책에서 단 몇 줄로는 표현되는 의미와는 다른, 그 몇 줄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개개인들의 삶,민초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삶을 육성을 통해 듣는 것 같았다.
징용을 피하고 싶었지만 가족 때문에 꼼짝없이 끌려간 이야기, 반면에 도주한 이야기, 일제에 저항하다 체포된 학생들,일제의 감시를 피해 만주로 떠난 사람, 창씨 개명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 혼인한 이야기며, 아이들 키운 이야기며 일제시대를 거쳐왔던 한사람 한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뜻밖인 점도 있었다.일제의 동원 지침과 상관없이 별 탈없이 평상시처럼 지냈던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산골이나 오지까지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또 열심히 배우라고 그래서 힘을 키우라고 격려해줬던 일본인교사를 좋은 마음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일본이 항복하고 난 뒤 조선을 떠나는 일본인들, 자신들에게 잘해줬던 일본인 가족을 못본척 외면했던 것을 지금까지 마음에 걸려했던 사람도 있었다. 조선인들이 일본에 대해서는 진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일본인 개개인과는 꼭 견원지간으로 지낸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과 가까이 지내면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했지만 또 일본인들도 조선인과 교유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일단 친분을 트게 되면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서로 인간 대 인간의 인정으로 대했던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이 여기에 있었다.역사에서는 가려져 있기 마련인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 있다는 것.
학창 시절 일본에 항거하다 체포됐던 이력의 소유자도 여러분 있었는데, 특히나 박순천여사 조카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박순천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야당당수로 기억되는 정치인인데, 그 조카가 학창시절부터 일제의 요주의 인물이었던 고모의 활동에 대해 인터뷰한 것이다. 박순천여사가 학창시절부터 강골이었다는 것. 아마도 조카는 독립운동을 한 고모가 자랑스러워서 인터뷰 했을 것이다. 원래 박순천여사의 본명이 순천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제의 감시의 눈을 피해 순천으로 피한 뒤 순천댁이란 가명으로 반일 활동을 한 걸로 유명했고, 나중엔 이름을 아예 개명해서 박순천이 된 것이라고 들었는데..한가지 더. 이 책에선 나와 있지 않지만 최근 박순천의 행적에서 정신대에 지원하라는 친일 활동을 한 적이 있는 걸로 밝혀진 걸로 안다.
아무래도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뼈대야 사실이겠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기도 했고,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윤색되거나 축소,미화된 내용도 있겠구나 하고. 이 인터뷰 대상자들이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라는 점도. 글쓴이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원하기도 했고, 질문자도 답변자도 모두 한국 거주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에서보다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답변이 나왔으려나.글쓴이가 지적한 대로 오사카 거주민이었다면 답변이 달라졌을 것 같기는 했다.
해방된지 7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일제시대를 겪었던 분들의 인터뷰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필자의 의도는 더 늦기 전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보통사람들의 인생사, 평범한 사람의 희노애락에 초점을 맞춰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이 샌프란시스코라는 점에서 특별하긴 했지만. 읽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의 얼굴이나 표정 동작이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것 같았다. 또 그 시절을 견뎌야 했던 힘겨움도 회상해가며 그 시절을 살아내고 자식들 건사하고 교육시키며 이자리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 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도 가졌을 것 같다. 읽는 동안 내내 돌아가신지 30년이 다 돼가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보고 싶어졌다. 그분들한테는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이런 일을 다 겪어내셨겠구나 감정이입도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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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1
- 이곳 감방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요? 바로 함석헌 선생님이었어요. 왜 수감됐는지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저항운동 혐의로 체포된 것이었죠. 고문실에 끌려갔다 돌아오면 선생님은 거의 말을 하지 못하거나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이하전,1921년 평남 출생/173쪽)
(최종규 . 2013 - 시골사람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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