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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은 이제 거룩히 여겨지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그 어디서나 당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더 이상 맹트농 부인의 시험에 들지 마시옵소서. 그리고 재무총감에게서 우리를 구하옵소서. 아멘!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절대왕정의 중심에 있던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 주기도문을 빗대어 파리 곳곳에 나붙었던 대자보(大字報)이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은 장본인에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에 나타난 절대국가의 표상이 된 '짐(朕)은 곧 국가이다' 라는 말을 한 당사자라는 역사적 사실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와 「철가면」 등 문학작품에도 종종 등장한다. (이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은 볼테르가 멋대로 창작한 말이라는 설도 있다. 그 설에 따르면 루이 14세가 실제 한 말은 '짐은 이제 죽는다. 그러나 국가는 영원하리라'였다고 한다) 그는 실제 절대적인 권력을 거머쥔 후 이웃나라와 끝임없이 전쟁일 계속하였으며, 전쟁과 기근, 전염병에 따른 민생의 고통은 나몰라하며,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았다. 혹자는 이를 '시간과 돈은 남아돌지만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 어떠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역사적 사실' 이라 평했다. 그녀는 22살에 동갑내기 몽테스팡 후작 루이 앙리(Louis Henri de Pardaillan de Gondrin)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는 원래 약혼자였던 루이 앙리의 형이 결투 중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 몽테스팡 후작부인이 루이 14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것은 그녀가 몇 년의 결혼생활 끝에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던 시점이었다. 루이 14세의 절대권력을 이용한 집요한 추궁 때문이었는지, 어린 시절부터 궁정생활에 익숙해온 그녀의 호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가난한 후작의 부인으로서만 살아가는 인생에 만족을 느끼고 있지 못했음은 틀림이 없는 듯 싶다. 그녀는 비록 유부녀의 신분때문에 끝내 정식으로 루이 14세의 정부로서 인정받을 수 없었지만, 무려 12년을 루이 14세의 여자로 살며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총 아홉명의 아이를 낳았다. 루이 14세는 유부녀인 그녀와의 관계유지를 위해 만나는 자리마다 항상 정부 루이즈를 대동했다 한다. 이를 통해 둘 사이의 스캔들을 무마시키려 했던 것. 원래 정부였던 루이즈는 이에 큰 상처를 입고 궁 밖으로 도망치지만, 루이 14세의 호위병들에 의해 다시 끌려와 한참 후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을 때까지 둘의 만남에 허수아비 역할을 하며, 종종 몽테스팡 후작부인의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내를 루이 14세에게 빼앗긴 몽테스팡 후작이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 속에서 몽테스팡 후작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후작부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 그는 프랑스 변두리 영지를 소유한 가난한 후작이었으며, 아내의 궁정시녀일 때문에 파리 내에 작은 살림집을 얻어 살았고, 나중에 그녀가 루이 14세의 정부가 되고나서도 한동안 그녀의 부정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아내에 비해 별로 알려진게 없는 몽테스팡 후작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희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저자의 희화적 표현때문에 사건의 전개가 흥미롭고 엉뚱하며 기상천외한 것은 사실이나, 사실이 사실인만큼 우울한 정서가 저변에 흐르는 것도 사실. 작품 중 스토리 전개는 역사적 정설과 다소 상이한 부분이 있다. 실제로는 프랑수아즈(몽테스팡 후작부인)가 결혼 전부터 궁정 시녀의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으나, 이 작품에서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궁정에 불려간 것으로 묘사되며, 둘 사이의 만남도 결투로 목숨을 잃은 형의 약혼녀와 약혼자의 동생 관계가 역사적 정설인데 반해, 작품 중에는 프랑수아즈가 몽테스팡의 형과 결투를 벌이고, 당시 결투금지령을 어긴 댓가로 참형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다른 나라로 도망친 어느 귀족의 약혼녀라는 설정이다. 더욱 더 희화적 요소를 가미하고자 한 것인지,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근거로 한 업데이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중 많은 부분에서 조금씩 변형이 가해진 듯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두가지. 하나는 몽테스팡 후작의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다. 아내를 루이 14세에게 빼앗기고, 아내가 그의 아이를 이미 여럿이나 출산했음에도 끝내 아내를 절대권력의 희생양으로 생각하며 불쌍해하고 수시로 목숨을 건 구출작전을 시도하며, 감옥에 갇히고 추방당한 후에도 아내가 자신에게 돌아올거라 믿는 다소 미련스럽고 안타까운 믿음은 처음엔 답답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점차 그 답답함은 그에 대한 연민과 경애로 바뀌어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비록 닮고싶지는 않더라도 어떤 의미에선 존경스런 인물이다. 두번째는 절대권력 하에서 여지없이 깨어지고 무너지는 사람의 마음이다. 후작부인이 루이 14세의 애정공세를 떨쳐내지 못한 것은 그것을 거부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두려움이 존재해서가 아니다. 화려함과 풍요로움 위에 세워진 권력의 유혹이란 그렇게 달콤하고 치명적인 것이다. 그건 후작부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필연된 것은 아니다. 이런 유혹 앞에서 남녀의 구별은 무차별하다. 비록 루이 14세 시절과 같이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은 아닐지라도 권력과 부의 집중은 여전히 사회적 현실이고, 그래서 우리는 돈과 권력앞에 사정없이 무너지는 속물들의 군상을 늘 보고있다. 누구든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는 또 한명의 마리아 막달레나인 그녀를 '돌로 칠' 수는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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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빼앗긴 몽테스팡 후작의 수난기라고 합니다. 제목에서부터 ‘돈키호테’풍의 유쾌함과 풍자가 그득한 기대를 줍니다. 루이 14세를 태양왕이라고 일컫는 만큼 표지에서부터 온통 붉은 바탕에 처량한 몽테스팡 백작이 칼을 늘어뜨리고 서 있습니다. 완전히 싸움에서 진 거지요. 물론 싸움도 하기 전에 졌다는 느낌이 더 강하지만 말입니다. 근데 몽테스팡 후작의 표정이 묘합니다. 잔뜩 골이 난 표정입니다. 표지와 제목으로 미루어보면 몽테스팡 후작이 뭔가 해도 단단히 할 모양입니다.
이 소설은 프랑스 팩션입니다. 팩션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써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말합니다. 영화 <황산벌>이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대표적이지요. 요즘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팩션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배우는 덕에 역사 속의 인물을 연예인들과 혼동하는 것조차 유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팩션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팩션이라는 장르야 말로 진정한 이야기꾼을 가려낼 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기본이 되는 역사적 뼈대에 살을 붙여 재미와 유머를 담는 것이 팩션이니 말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장 퇼레)는 역시 프랑스가 자랑하는 이야기꾼이라고 합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 작가로 영화배우로 활약한 경력까지 있군요. 만화를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글쓰기도 즐긴다고 하니, 이 분이야 말로 ‘즐거운 놀이’로서의 생(生)을 제대로 누리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몽테스팡 후작이 가엾은 이유는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뺏긴 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습니다. 검색을 통해서는 그에 관한 기록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인에 관해서는 다양한 내용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몽테스팡 부인 [─夫人, Marquise de Montespan ]은 1663년 몽테스팡 후작과 결혼한 후 이듬해 왕비의 시종이 됩니다. 그리고 1667년 왕의 정부가 되어 약 12년간 궁정 사교계를 주도하였다. 루이 14세와의 사이에 6명의 아이를 낳았더군요. 그렇게 총애를 받다가 마녀의 ‘검은 미사’에 참석하여 사건을 일으킨 후 궁정을 떠나 생 조제프 수도원에 은거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자신이 부인이 국왕의 정부가 되면 이혼하거나 그녀와의 결혼 생활을 포기하는 대가로 어마어마한 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비하여 몽테스팡 후작은 자신의 부인에게 결혼 생활의 의무를 이행하라고 독촉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몽테스팡 후작의 독특한 점이, 이 소설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당대에는 어떻게든 자기 아내를 왕의 정부로 들여 그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약삭빠른 처세술이 판치는 세상에, 세상을 호령하는 태양왕(루이14세)이 자기 아내를 건드렸다고 동네방네 루이 14세를 비난하는 행동을 한 그의 기행은 요즘 사람들로 하여금 찬사를 받을 만합니다.
따라서 이 소설의 매력은 몽테스팡 후작이 루이 14세를 조롱하는 행동들이 가져오는 유쾌함과 비참함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루이 14세의 권력을 말하자면, 그냥 태양왕이라고 불린 게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신으로 불리는 그는 불, 물, 빛, 어둠, 세상만물이 머리를 조아리는 게 당연한 절대 권력이었습니다. 이런 권력에 맞서 몽테스팡 후작이 한 행동은, 자기 마차를 검은색으로 도색하고 ‘오쟁이 진 신세’를 자조하는 뜻으로 거대한 사슴뿔을 달고, 파리의 창녀들로부터 왕에게 성병을 옮겨 주려고 시도를 했고, 죽지 않고 팔팔하게 살아서 권력의 핵심에서 달콤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내의 장례식을 거행합니다. 몽테스팡 후작이 이런 행동들을 시도함에 있어서는 유쾌함을 주지만 늘 그렇듯, 약자일 수밖에 없는 후작은 그 행동들에 대한 대가를 달게 받습니다. 작가는 거기서 오는 비참함과 서글픔도 참으로 풍자적으로 풀어놓습니다.
이 책의 위트는 가령 이런 것입니다. [스물일곱 나이에 그의 인생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때 마침 쥐약장수 옆으로 지나가며 외친다. “쥐약 사세요!”]
이런 ‘돈키호테’적인 풍자적 유머 말고도 이 소설에서 중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 바로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당시 프랑스에는 하이힐, 샴페인, 보석, 가로등, 접이식 우산 등 수많은 예술과 문화가 탄생한 만큼, 17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문화와 거리 풍경, 의복과 생활양식들에 관한 묘사입니다. 특히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애 장면이나 배설 장면들은 미화 없이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데, 현대적인 위생관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나는 중세풍의 양식이 좋아.’라는 말들이 쏙 들어가게 할 만큼 직설적이어서 프랑스 문화가 만들어 낸 실제와 허상 사이에서 조금은 낯설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이 팩션인만큼 실제와 소설은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이 소설이 연극적인가 혹은 오페라 적인가를 논할 수도 있고, 17세기 프랑스 사회와 지금 현대 사회의 에티켓의 차이점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당시 베르사유를 중심으로 프랑스 귀족 문화에 대한 작가의 풍자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루이 14세의 화려하고 다양한 후궁들과 그들의 암투에 관해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실소를 금치 못하는 어수룩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몽테스팡 후작의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찬양하거나 비웃을 수도 있고, 타고난 미모와 유창한 말솜씨로 권력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프랑수아즈에 관해 비난과 연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꺼리가 많은 소설이죠.
저자는 소설 중에 귀족이나 사제, 장사꾼이라면 오쟁이 진 사내가 지나갈 때 그저 웃고 야유하는 걸로 그칠 지 모르나, 영감 넘치는 정신의 소유자들은 언젠가 먼지 켜켜이 쌓인 기록으로라도 후대에는 칭송의 대상이 되리라는 예견하나니, 라는 문장을 적어 놓음으로써 자신을 영감 넘치는 정신의 소유자라는 걸 은유적으로 말하는 재치도 잊지 않습니다. 결국은 작열하는 태양 같은 루이 14세도 없고 실제는 도박꾼에 가까웠다는 몽테스팡 후작도 없고 절대 미인이자 창녀라고 비난을 받는 프랑수아즈도 없습니다. 다만 왕의 회유책을 깡그리 무시하고 끝까지 저항한, 개인적인 슬픔을 희화화한 소설 속 몽테스팡 후작의 유쾌한 기행만이 남아서 칭송을 받을 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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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싸움으로 인해 고인이 된 형제와 유배되다시피 도망친 약혼자로 인해 샤틀레 법정에서 첫만남으로 사랑의 불꽃이 팍팍 솟아난 몽테스팡과 프랑수아즈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식을 올린다. 마냥 행복한 두 사람이지만 불어나는 빚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몽테스팡은 군대에 지원하게 된다. 귀족에게 노동의 권리는 금지되어 있고, 무공을 세우는 일은 무너진 가문을 명예롭게 일으키는 방법이었다. 아내에 대한 생각, 아내에게 선사하게 될 안락함이 전쟁에서도 그를 지탱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 패하고 오히려 더 많은 빚더미만 짊어진 채 집으로 돌아온다. 딸 마리 크리스틴이 태어난 뒤에도 매일 찾아오는 빚쟁이들로 인해 또다시 전쟁에 참전하지만 역시 패하고, 치욕과 빚더미만 잔뜩 뒤집어쓴 신세로 돌아오는데 프랑수아즈(아테나이)를 쏙 빼닮은 아들 루이 앙투안이 세상에 태어나 있다.
산후 우울증을 보이던 아테나이가, 마레 지구 살롱의 경박스럽고 이기적인 사교 모임만 가면 누구보다 빛나고 몰라볼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루이 14세가 어여삐 여겨 왕비의 시녀로 임명되는가 했는데, 그녀에게 홀딱 반하는 바람에 왕비고 애첩이고 모두 내팽개치고 아테나이에게만 몸과 마음이 쏠리면서 후에 그들 슬하에는 9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또다시 전쟁에서 패하고 부상까지 입은 채 귀가한 루이 앙리는 아내와 왕의 첫 임신을 확인하게 되지만 “당신을 평생 사랑할 것이오.” 라고 얘기하는 남자와 달리 “나는 이제 또 다른 남정네의 여자일 권리가 없어요. 설사 내게 남편이라고 해도요.” 라고 여자는 말한다.
이로부터 루이 앙리는, 절대자의 쾌락만이 유일한 법으로 통하는 이 시대에 한낱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랑과 가정의 원칙과 가치를 무참히 짓밟은 군주의 태도를 규탄하고 그 부당함을 폭로하기 시작한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그의 인생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오쟁이 진 남자는 검은 옷을 입고 왕 앞에 등장한다. “사랑을 애도하는 상복을 입고 있으며, 몹쓸 자식이 제 사랑을 죽여 버렸습니다.”라고 고하자 왕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포르레베크라는 시련의 골짜기에 있는 감옥에 구속된다. 석방된 뒤에도 파리를 떠나 기옌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들어가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머물러야 한다. 결국 왕은 남의 아내를 빼앗아가서 멀쩡한 남편을 천하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감옥에 처넣고, 추방까지 한 것이다. 가난한 후작의 전형적인 거처 기옌의 성으로 들어간 후작 루이 앙리는, 다섯 살 된 딸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지만 정작 마리 크리스틴은 엄마가 나타나지 않아 슬퍼하고, 4년간의 사랑(1663-1667)에 마침표를 찍은, 사랑을 매장하기 위한 장례식이 치러진다.
왕의 밀사가 찾아와, 더 이상의 물의를 빚지 않겠다는 루이 앙리의 서약을 받아옴과 동시에 원하는 돈을 얼마든지 주겠다고 얘기하지만 거부한다. 그날 이후, 왕의 뜻을 대리하는 기옌의 지방관 마크롱이라는 자가 찾아와, 몽테스팡 후작이 송사에 휘말리게끔 합법적인 모양새의 죄목을 만들어내라는 왕의 대신이 개입된 문건을 보여준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마크롱이었지만, 식모 라리비에르와 연인 사이인 성채 관리인 카르테에게 아내 분장을 시켜 추억에 빠졌던 것을 남색질로 오해한 라리비에르의 실언을 듣게 된다. 졸지에 루이 앙리와 그의 아들은 마드리드로 달아나고, 1년 이상 은신처를 제공해준 에스파냐 국왕 카를로스 2세에게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증명으로 사면장을 찾아든 채 고마움을 표한다.
몽테스팡이 아들 당탱 후작을 데리고 산속으로 사냥을 나간 1674년 4월 2일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뒤인 1674년 4월 5일 파리 샤론 수녀원에서 그의 딸 마리 크리스틴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조용히 세상을 하직한다. 또한, 폐하의 간통을 신성모독과 불경스러움이 깃든 행위라며 비판했던 루이 앙리의 삼촌 상스의 대주교 앙리 공드랭마저 사망한다. 딸이 죽어가는 동안 왕의 침소에서 불순한 행위를 일삼던 아내의 모습을 망원경 렌즈로 통해 바라보던 침울한 남자에게 왕실 고문관이 찾아온다. 폐하께서 후작위에서 공작위로 승격시킴과 동시에 다수의 영지를 추가로 하사할 고함! 남편의 지위로 인해 왕 앞에 항상 서서 대기해야만 한다는 아내가 공작부인의 서열에 올라야만 의자를 배당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아내를 정부로 취할 때도, 아내의 몸에서 숱한 아이를 생산할 때도, 루이 앙리의 동의를 구한 적 없던 왕이 새삼스레 자신의 동의를 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던 중 루이 14세가 총희의 변덕스럽고 오만한 태도에 슬슬 질리기 시작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살이 찐 아테나이는 마흔아홉살에 갓난아기를 제물로 바쳐 그 피를 마시는 사악한 마녀 짓을 벌이고 있었다.
1691년 3월 15일 베르사유에서 쫓겨나 수녀원에 들어간 아테나이가 자신을 받아달라고 편지를 보냈으나 몽테스팡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24년 동안을 기다려 왔지만 허물어져가는 꼬락서니를 보이고 싶지 않다며 거부의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1691년 12월 1일 쉰한 살의 나이로 임종을 맞는다. 그리고 1707년 5월 26일, 6년 전부터 미망인으로 지내는 여자 프랑수아즈는 삐쩍 마른 몸매와 백발로, 자기 혐오증에 시달린 채 쇠못이 박힌 허리띠와 팔찌, 대님을 착용하고서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나간 후 죽음을 맞이한다. 프랑스 제일의 행실 사나운 여자라며 삼주가 되도록 악취가 나는 시체 앞에 장례식 비용을 부담할 사람이 없는 와중에 결국은 하인들에게 장례를 분담시키고 시체를 운반한다. 6월 후텁지근한 오후 생 므누 수도원에 안치될 단지를 운반하던 사내는 역겨운 냄새와 내용물을 확인한 뒤 길가 도랑에 엎어버리고 난데없이 달려든 돼지와 개들에 의해 후작부인의 내장들은 모두 찢기고 흩어져 버린다.
뭇사내들의 가슴을 뒤흔든 세기의 팜므파탈 프랑수아의 또다른 이름 아테나이.. 루이 14세의 정부들 중 가장 이름을 맹렬히 떨쳤던 여인이 몽테스팡 후작부인일 것이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사교술에 능하고, 루이14세를 오랫동안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화려한 궁정생활에 반해, 일편단심 프랑수아즈만을 그리워하며 가난에 찌들고 유배를 가고, 아이들과 생을 함께 했던 몽테스팡에게는 크나큰 고통만이 따랐다. 혜택만 챙길 수 있다면 당장 마누라를 군주의 품속에 내맡길 수 있는 뭇남정네들과 달리, 절대 통치자의 합리화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의 아내를 지켜내고자 항거한 남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저 왕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봐 전전긍긍하고, 양심이 오염되어 있는 그들과 다른 몽테스팡은 24년이라는 시간을 끊임없이 그녀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 쓸쓸히 죽음만을 받아들인다. 아테나이만을 사랑했던 순애보적인 남자 몽테스팡의 4년간의 짧은 사랑에 비해 너무 긴 기다림이었지만 결국은 아테나이에게 자신을 보이기를 거부한다. 역시 아이를 가진 엄마라서 그럴까.. 엄마 아테나이를 그리워하며 추억하다 12살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친 마리 크리스틴이 너무 가여워 바보처럼 엉엉 울었다. 아이가 죽어가는 그 순간에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며 왕과 정사를 벌이고 있었을 아테나이에게 나도 모를 분노가 용솟음쳤다. 아무리 빛나고 아름다워도, 결국 늙고 죽어서 썩을 몸인데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은 왜이리도 끝이 없을까.. 그 사악함과 부조리에 치가 떨린다. 블랙 유머와 해학으로 가벼이 읽힐 수만은 없는 <몽테스팡 수난기>였다.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귀족사회의 문란한 성생활과 인간의 오만과 사랑에 대해 다채롭게 조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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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나다. 또다시 장 튈레의 뛰어난 필력에 17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정신없이 빠져든 시간이었다.
[몽테스팡 수난기]는 태양왕 이라 지칭하던 루이 14세에 자신의 악마로부터 받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아내를 빼앗긴 몽테스팡 후작의 일화를 묘사한 팩션(fact + fiction)이다.
죽을 때까지 아내에 대한 사랑에 있어 스스로에게 단 한 점의 의혹도 품지 않았던 오쟁이 진 사내,몽테스팡 후작. 모든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가 태양왕의 눈에 들어 출세의 가도를 달리고 싶어하던 때에 오히려 그러한 아내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몽테스팡은 태양왕을 향해 아내의 사랑을 돌려달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어마어마한 힘 앞에서 그저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면 좀 더 편하게 삶을 살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처음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몽테스팡의 태양왕에 대한 도전의 점입가경은 엉뚱하지만 유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은근 다음 행보가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왕궁에서 행하는 어떠한 술책과 술수에도 끄덕도 하지 않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진 몽테스팡 후작의 행동에 응원을 보내게 되었다.
태양왕의 사치와 향락, 그를 둘러싸고 있는 대신들의 아부로 온통 나라안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그 시절에 오로지 몽테스팡 후작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처음엔 조롱거리로만 일삼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동정으로 조금씩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타고난 아름다움을 가진 부인에 대한 질투와 시샘이 어느덧 조롱거리로 변해 버린다. 몽테스팡 후작은 그러한 아내에 대한 세간의 시선과 말들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자신의 빼앗긴 사랑을 되찾으려는 무모한 행보는 계속한다.
급기야 소설 이곳저곳에서 펼쳐지는 몽테스팡 후작의 태양왕을 향한 끊임없는 팔매질은 웃음을 넘어서 왠지 모를 짠~ 함까지 일게 만든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어도 사랑에 있어서 존재할 것 같은 물질만능주의에 몽테스팡 후작의 용기있는 사랑 쟁탈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왕의 절대성에 대항하지 못하고 그저 손을 놓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몽테스팡 후작의 생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간직한 순수한 사랑은 시대를 뛰어 넘어 비장감 마저 들게 한다.
반면, 악마로부터 아름다움을 부여받은 아내 프랑수아즈는 외모에 버금가게 너무나도 화려한 생활을 갈망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십분 발휘할 줄 아는 타고난 능력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오로지 왕의 총희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고 다른 후궁들에게 미칠 수 있는 왕으로부터의 사랑을 지켜내고자 온갖 고행(!!)을 감수한다. 거기엔 몽테스팡과의 사이에 낳은 두 아이에 대한 양육까지 포기할 정도로 집념이 대단한 여인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모든 일에는 시간이 지나면 바뀌게 되는 법, 프랑수아즈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계속될 것만 같은 태양왕의 맘도 어느덧 서서히 기울어지고, 급기야는 그녀의 신세가 말이 아니게 바뀌게 된다.
프랑수아즈의 어리석음이 한없이 답답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부여받은 여인이라면, 그것도 절대자의 사랑을 받게 된 여인이라면, 많은 경우 어쩌면 프랑수아즈의 경우처럼 하지 않았을까?? 시대가 그러한 것을 용인하는 가운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고, 결과는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지만, 권력과 재력에 맛을 들인다면 쉽게 털고 나오지 못할 것 같다.
몽테스팡 후작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숭고한 만큼, 아내인 프랑수아즈의 일대기 또한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면 이상한 건가?? 제목 [몽테스팡 수난기]에서 알 수 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속에서 장 퇼레의 뛰어난 필력으로 고귀한 무언가를 읽을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 또다시 번역의 힘이 대단함도 느꼈다. 뛰어난 번역에 감사드리며, 중간중간 오자가 좀 있었던 게 흠이라면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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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 절대왕권을 휘두르던 루이14세가 어느 후작의 아내를 애첩으로 맞았다. 당시에는 자신의 부인이 왕에게 애첩으로 가면 그에 따른 물질적 보상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먼저 애첩이 되거나 왕비와 친한 귀족부인이 젊은 귀족 부인을 왕에게 천거하는 풍습도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묘한 세대의 묘한 사람들이다.
장 퇼레는 루이 14세 당시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소설로 소개한다. 그것도 당시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로데스크하게 묘사한다. 영화로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소개된다면 상당히 암울한 장면이 이어질 것 같다. 컬트뮤비로 딱 어울린다.
우리의 주인공 몽테스팡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부인이 왕의 애첩으로 불려가면서부터 화려한 수난기를 맞는다. 사실 그의 수난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한다.
당시에는 부부관계가 그렇고 그런 정략결혼에 이어지기 때문에 부부간의 사랑은 그렇게 신기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몇 년을 함께한 당시 부부들이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관계로 살아가는 세대였다고 한다.
"혼례 성사로 맺어진 지가 벌써 4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부인을 사랑한단 말입니까? 이런 말해서 뭐하지만 생선 장수도 자기 아내에 대해 같은 기분일 겁니다."(149쪽)
이 이야기는 가슴 절절한 러브스토리라고 해야 한다. 몽테스팡은 그의 아내 프랑수아즈를 죽도록 사랑한다. 결혼해서는 서로 사랑만 하다 보니 많은 빚을 지게 되고 그 때문에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군대를 조직해 전쟁으로 나간다. 그러나 참전한 전쟁마다 불운으로 끝나고 오히려 빚은 늘어간다. 하지만 몽테스팡 부부는 그래도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가난 속에서 첫 딸을 얻어 후작이라는 이름을 간신히 유지하면서 살아가지만 행복은 계속된다. 루이 14세가 그의 아내를 궁전을 초대하기 전까지 그는 그렇게 행복했다.
그러나 왕이 자신의 아내를 부르면서 행복은 금을 가기 시작한다. 왕국의 생활은 요상한 곳이라서 정상적인 사고로는 유지하기 힘들다고 프랑수아즈는 고백하며 왕궁에 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결국 그녀는 루이 14세의 애첩으로 등극한다. 몽테스팡의 수난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외모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사교의 기술이 놀라웠던 프랑수아즈는 곧바로 애첩중의 애첩으로 왕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면서 많은 자녀까지 낳는다. 프랑수아즈의 마지막 죽음을 묘사하는 부분은 작가가 마치 프랑수아즈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 같다.
기독교가 중심이던 17세기 중세시대. 절대 군주의 부도덕한 행동에 대해 아무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왕이 곧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절에 몽테스팡은 자신의 부인을 빼앗은 왕을 향해 정면으로 승부를 건다. 아내를 찾기 위해 그의 애절한 도전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후작의 성에서 쓸쓸한 삶을 살아가며 프랑수아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부도덕한 부인이지만 그래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애절한 망부가를 부르면서 죽어간다.
21세기 자본주의를 돈과 권력과 섹스로 요약한다면 17세기 중반 서양 권력을 호령하던 태양왕의 시대에는 절대군주로 모든 것이 통할 것이다. 돈과 권력과 섹스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시대에 자신의 아내를 빼앗은 왕에 대한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가 이 시대 평범한 우리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돈과 권력만 있으면 누구와도 섹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시대와 17세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이 왜 그렇게 비슷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시대도 정상적인 사고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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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자살가게를 운영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자살가게’를 읽고 두번째 접하는 장튈레의 팩션소설 ‘몽테스팡수난기.’ 그의 작품은 어둡고 음산한 소재를 밝고 기발하고 유머러스하게 푸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배경은 1700년경 ‘대왕’ 또는 ‘태양왕’이라고 불렸던 루이14세 때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욱 흥미롭고 현장감있게 다가온다. 루이14세는 흡사 살아 있는 법률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 “나는 곧 국가이다”라고 할 만큼 절대주의시대의 대표적 전제군주 였다. 그의 업적이라면 여러 차례의 대외 전쟁과 화려한 궁정생활로 프랑스 재정의 결핍을 초래하고 절대왕정의 모순이 증대하여, 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되었던 왕. 어는 왕들이라고 편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루이14세 옆에는 유난히 여자가 많았다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양은 한결같이 왕을 사랑했다. 그에 비하면 몽테스팡부인은 야망을 가지고, 수비즈 부인은 이해관계로서 국왕을 사랑했다. 맹트농 부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비즈 부인은 왕비를 지독하게도 기만했다"고 한다. 몽테스팡부인은 재치 있는 말솜씨로 왕을 사로잡았다고 기록되어있다. 확실히 남자는 한 가지 여성 스타일에는 언젠가는 식상하나 보다. 가부장적이고 축첩이 당연히 허용되는 중세에서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이때에는 국왕이 신하의 아내를 취하게 되면 해당신하는 그걸 아주 영광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막힐 일이다. 국왕이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되면 "국왕과 아내를 공유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라며 환호할 정도. 국왕과 자기 아내가 잠자리를 같이한 것, 아름답고 훌륭한 여성을 국왕에게 헌납(?)했다는 명목으로 갖가지 관작과 영지, 하사금을 챙길 수도 있었다. ‘몽테스팡 수난기’는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빼앗긴 몽테스팡 후작의 일대기를 다뤘다. 몽테스팡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루이 14세가 관심을 드러내자 몰락해가는 가문을 살려보려는 심산으로 아내를 궁정에 들여보낸다. 하지만 몽테스팡의 의도와 달리 왕과 아내의 사이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몽테스팡은 아내를 되찾고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좌추우돌하는 그의 이야기는 눈물과 웃음을 함께 준다. 이에 루이 14세는 몽테스팡을 회유하고 협박하면서 몽테스팡의 아내를 가지려 한다.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남자의 심리와 추악한 귀족 사회의 실상을 장튈레식으로 직설적이고 유머 넘치는 언어로 표현했다. 책은 한편의 연극처럼 곳곳에 몽테스팡 후작의 복잡한 심리와 궁정정치의 실상을 유머 넘치는 언어로 표현한다. 왕에 대한 충성심과 몰락해가는 가문을 다시 세우려는 생각으로 아내를 궁정에 들여보낸 몽테스팡 후작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와 왕의 여자가 된 아내 사이에서 애절한 절규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이야기는 허망하다. 몽테스팡의 아내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고 몽테스팡은 딸이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하며 병들어 죽으면서 무기력한 아버지로 살아가는 몽테스팡 후작의 이야기가 과연 중세 프랑스에서만 이뤄졌을까? 권력과 사랑 그리고 투쟁, 가족의 이야기들을 모두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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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아내와 그릇은 밖으로 돌리지 말라고 하였다 이유는 깨지기 쉽다고 하는이유인데 사실 그것이 크게 나쁜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전에는 너무 고지식하게 사람을 대한것이 많아서 그것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하여서 생긴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남여의 차이보다는 그 사람의 능력과 인간 됨됨이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그런 것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집착이 될정도로 심각하면 많은 갈등을 야기시킨다 . 사소한 게임을 좋아하는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거기에 돈일 게임되면서 커다란 배팅이 되면서 큰 도박이라는 결코 감당할수 없는 게임으로 들어가는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결투로서 그 잘못됨을 따졌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치킨 게임의 한다면을 과거에는 삶과 죽음을 다루는 것으로 승패잘잘못을 결정지었다. 무엇인가 강한자가 살아남는것인데 공평하다고 이야기 할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좀더 나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다만 죄 없는 사람이 더 많이 죽어갔을 거라는 아쉬움이 뭍어난다. 자신이 정말 사랑한 아내 프랑수아즈를 지키기 위해서 왕의 부도덕한 권력으로 부터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참으로 존경해야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 계기가 어쩌면 자신의 욕심으로 아니면 자신의 아내의 무한한 욕심으로 부터 시작된것인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할문제이다.
소탐대실이라고 하여 작은것을 얻기위해 욕심을 부리면 더 큰것을 잃는데 작은 빚을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더 많은 것을 빚을 내서 모험을 하다가 결국은 꿈도 희망도 잃어버렸는데 그런것을 보면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지만 무모하게 일을 시작하는 것 또한 욕심의 한방법은 아닐꺼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작위를 생각하고 남의 눈을 벗어나는 일은 내 직위에서 하면 안된다는 사회적 관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사회에서도 과거의 모습을 볼수 있으 니시간만 변할뿐이지 모든것은 동일한듯하다.
남의 말에 귀를 너무 귀울여서 귀가 얇은 것도 문제지만 남을 전혀 믿지 못하고 눈으로도 보고 그것을 인정하니 안으려고 하는것 또한 옳은 행동은 아닐것이다. 용서와 화해 인정과 수긍 모든것은 한끝차이겠지만 결과는 참혹하니 스스로 답을 구하는 참된 정신 시대에는 필요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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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절대왕정을 가지고 오면서 모든 것은 자신을 통하여서 신민들에게 주어진다고 생각을 하였던 루이14세에게 자신이 너무나 사랑을 하였던 아내를 빼앗긴 남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당시의 귀족과 같은 사회 지도층은 자신들의 결혼에 대하여서 오로지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서 결합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고 자신들의 후계에 대하여서 확립이 된다면 그후의 일에 대하여서는 서로가 관여를 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정부를 두면서 생활을 하였고 최고의 일인으로 촉망을 받았던 왕은 자신의 정부에 대하여서 일반시민이 아닌 오로지 귀족만을 두었고 자신의 정부에게 주어지는 많은 권력으로 인하여서 자신의 아내가 왕의 정부나 아니면 자신보다 고위직에 있는 귀족의 정부로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서 거부감이 아닌 오히려 자신의 가문의 부흥을 위하여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던 당시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르게 오직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만으로 절대왕정을 만들었던 루이14세에게 반항을 하면서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서 많은 반감을 들어내면서 활동을 하였던 역사적으로 거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몽테스팡후작의 행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부부의 시작은 자신들의 인척이 나라에서 막고 있는 결투를 통하여서 법을 어기고 그 죄로 인하여서 일부는 도망을 가고 일부는 사형을 당한 사실에 대하여서 알려주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현재는 그러한 사람의 죽음을 알려주는 자리나 또는 사형장에서의 만남에 대하여서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소설의 배경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 시대에는 사형장이 최고의 오락거리를 제공을 하는 장소였고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서 거부감을 가지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아주 극소수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진행이 되었던 결혼생활은 당시의 귀족층의 모습인 서로의 모습에 대하여서 무덤덤한 행위가 아닌 아주 열정적인 생활을 통하여서 보여지고 있지만 그러한 열정적인 생활을 유지를 하기 위하여서 만들어낸 과도한 빛이 두사람의 생활에 그늘을 드리우고 그것을 해결을 하기 위하여서 찾은 당시의 귀족들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돈을 벌수가 있는 행위인 군대를 통한 정복을 통한 방법은 계속되는 불운으로 더욱 그들에게 많은 빛을 만들게 하는 역할을 하면서 그것을 타개를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찾은 왕실에서의 생활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을 하였고 자신의 변화가 되어가는 운명에 대하여서 걱정을 하면서 남편에게 상담을 하는 모습을 처음에는 보였지만 남편은 오로지 왕에 대한 충성과 아내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아무런 문제가 발생을 하고 있다는 징조를 파악을 못하는 시골신사의 모습만을 보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였던 아내의 애원에 대한 거부를 보이면서 상황은 아주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보통의 남성들이 아닌 귀족이라는 인간이 아닌 일종의 괴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충성을 바치는 당사자인 왕의 정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지는 유일한 사람으로 전락을 하고 자신의 괴로운 마음에 대하여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서 찾아오는 실망감이 당시의 상황에서는 목숨을 부지를 할 수가 없는 행위로 보여지는 것들을 왕에게 행하는 추진력으로 작용을 하였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생각에 대하여서 그것은 정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갔던 후작의 인생과 자신이 경험을 하면서 느끼었던 모순에 대하여서 처음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남편의 도움을 청하였지만 나중에는 그러한 남편의 도움의 손길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를 하면서 살았던 오로지 욕망만을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부인에 대하여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운명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하여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하여서 보여주면서 그것에 대하여서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하여서 보여주는 책인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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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제 몸 하나 되는 대로 굴리느라 남편의 팔팔한 인생 독수공방하게 만든 아내에 대해 특별히 만족할 처지가 아니기에, 나는 그저 사바텔이 그린 내 대형 초상화를 유증하는 것에 그치고자 한다. 왕이 들어오지 않을 때를 틈타, 그녀가 이 그림을 침실에 걸어주길 바란다. 당탱 후작은 비록 제 어미를 놀랄 만큼 닮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내 자식으로 생각하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그 아이 앞으로 맏이로서 가져야 할 나의 재산을 온전히 물려준다. 아울러, 왕족의 일원이신 뒤맨 공작과 툴루즈 백작, 낭트 공주와 블루아 공주(다들 나와 아내의 결혼 생활이 유효한 가운데 아내 몸을 통해 태어난 자들이라 결국 내 딸과 딸로 간주함)에 대해서는, 파르다이양이라는 가문의 성을 취할 권리를 물려준다. 마지막으로 왕에게는 나의 본퐁 성을 넘기되, 부디 그곳에다 갱생을 다짐한 여성들의 공동체를 세워, 내 아내를 그곳의 초대 관리자 겸 수녀원장으로 삼아주기를 간곡히 청하는 바이다. 헤어질 수 없음에도 헤어지고 만 남편 몽테스팡 후작, 루이 앙리 드 파르다이양 (p.364)
그가 처음으로 휘갈겨 쓴 유언장. 그리고 또 다른 유언장을 쓰기까지...그는 참 많은 질곡을 겪었다.
참. 그리고 '사랑'을 묘사하는 것에 있어 좀 질척한 소설. (너무 솔직한 설명, 난감해하시는 분은 안 읽는 게 나아요. 저도 거부감이 좀 들긴 하였으나 얼른 다른 소설로 힐링(!)하였습니다.)
먼저 <중력의 법칙>을 읽고 다음으로 읽었다. 아직 다 확인하지 못한 작가의 화법과 유머가 궁금하다. 그 다음은 <파리의 자살가게>로 방향을 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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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몽테스팡 수난기> - 블랙 유머와 시사 풍자가 넘치는 순정파 귀족의 고군분투기
<몽테스팡 수난기 - 루이 14세에게 아내를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
붉은 표지에 적힌 제목을 읽는 순간,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퀭한 눈빛으로 그 옆에 선 사내의 일러스트도 어쩐지 궁금증을 더했다.
저자명을 살펴보니 장 튈레! <자살 가게>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블랙 유머를 유감없이 드러냈던 장 튈레이기에 또 어떤 이야기를 펼쳤을 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태양왕 루이 14세. 절대 왕정의 현신으로 프랑스를 지배했고, 나아가 온 유럽을 지배했던 군주.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며 온 대륙을 지배하고자 했던 권력의 상징.
그런 루이 14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몽테스팡 후작 부인. 몽테스팡 후작 부인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까지 남겨진 사료나 예술 작품들만 봐도 그녀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올해 관람 한 '바로크 로코코 궁정문화' 전에서도 반라의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며 황금으로 뒤덮인 (베르사이유 궁) 트리아농 드 포슬렌에서의 사치스런 삶을 영위하던 몽테스팡 후작 부인의 초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바로크 로코코전 후기 : http://blog.naver.com/cateyejh/70111040922)
하지만, 프랑스 작가 장 튈레는 역사의 중심에 다뤄졌던 '태양왕 루이 14세'나 '몽테스팡 후작 부인'이 아닌 '몽테스팡 후작, 루이 앙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사의 중심이 아닌, 그 이면에 가려진 한 남자의 이야기라니!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절대 군주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던 한 남자, 루이 앙리.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탕진해가며 더욱 화려한 삶을 향해 끝없는 욕망의 불꽃을 태우는 미모의 몽테스팡 부인과 그런 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계형 귀족'의 본분을 마다 않고 참전까지 하려는 몽테스팡 후작.
책장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너무나 처연하게 느껴진 건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온갖 사치를 일삼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여느 귀족의 삶과 달리 지불 만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갚을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몽테스팡 후작의 모습은 살림고에 시달리는 우리네 가장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으니까.
아내를 왕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을 얻게 되는 것이라 여기며 도리어 몽테스팡의 처지를 부러워했던 당대 귀족들의 몰지각한 처세에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게 되고
자신을 위한 실리를 찾기 보단, 아내를 향한 순정으로 그녀를 지켜내고자 절대 권력을 향해 반항의 기치를 드높였던 몽테스팡의 모습에 자꾸만 연민의 감정이 솟구쳤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부정한 사회 권력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그의 모습이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처럼 다양한 역사 비틀기가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누군가는 역사의 왜곡이라며 비판하기도 하지만!)
당대 프랑스 귀족들의 위선과 허세, 사치와 향락으로 점철된 일상을 특유의 블랙 유머가 섞인 실감나는 묘사를 통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장 튈레의 필체는 엄청난 흡입력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 그들의 곁에서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는 듯 한 착각마저 드니까 말이다.
땅딸막한 키를 감추기 위해, 제대로 걷기 조차 힘든 하이힐을 신은 귀족의 모습 고귀한 핏줄임을 드러내기 위해 핏줄을 강조한 분장을 한 귀족의 얼굴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로 휘감은 보석 장신구들 움직일 때마다 허연 분가루가 날리는 귀족의 가발들을 묘사할 땐 허세와 사치로 가득찬 귀족의 일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결국 아내를 향한 순정 속에 눈을 감은 몽테스팡의 모습이나 빼어난 미모로 군주를 사로잡던 영광의 세월을 뒤로 한 채, 모든 이의 외면 속에 한낱 창자 덩어리로 돌아간 몽테스팡 부인의 비참한 최후는 그 생생한 날것의 묘사로 인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책장을 덮고 나니, 작가가 과거의 역사 비틀기를 통해 비판하고 싶었던 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력 지향형의 삶, 물질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삶, 허세와 위선으로 가득찬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삶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에도, 읽은 후에도 그 씁쓸함은 배가 된다.
장 튈레의 넘치는 블랙 유머와 신랄한 풍자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그의 흡입력에 푹 빠져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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