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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은 누구고, 아Q는 왜 죽었나
"광인은 누구고, 아Q는 왜 죽었나" 내용보기
이번에 독서모임에서 읽은 <외침>은 올 여름 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연으로 미리 만나본 책이라 할 수 있다. <글쓰기 동서대전>의 저자 한정주 님의 마지막 강연에서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의 <광인일기>와 '초인사상'의 철학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강연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통해 두 작품의 독특함과 이해의 난해함이 계몽사상에 입각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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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독서모임에서 읽은 <외침>은 올 여름 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연으로 미리 만나본 책이라 할 수 있다. <글쓰기 동서대전>의 저자 한정주 님의 마지막 강연에서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의 <광인일기>와 '초인사상'의 철학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강연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통해 두 작품의 독특함과 이해의 난해함이 계몽사상에 입각한 시대 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돼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루쉰과 니체의 작품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과 혁명기에도 여전히 잠든 당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지금까지 내려온 전통과 구습에 젖은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맞아야 한다는 작가의 절박함이 독창적인 글쓰기를 지향하게 했다. 그 대표작이 <광인일기>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한다. <광인일기>와 <아Q정전>을 포함해 단편소설 14편을 수록한 <외침>의 서문에서 루쉰은 창문 하나 없이 쇠로 만든 방에 갇혀 잠든 대중을 깨우기 위해 글쓰기를 권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래서 이 단편집의 제목이 <외침>이다.  

 

 <광인일기>는 친구의 동생이 피해망상에 걸려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쓴 일기형식의 소설이다. 일기를 쓴 화자가 곧 '광인'이다. 이 '광인'은 사람들의 시선과 언행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피해망상을 보인다. 독자는 그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가며 결국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인육을 먹는 관습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마지막 문장인 '사람을 먹어본 적 없는 아이가 혹 아직도 있을까? 아이를 구해야 할 텐데... ' 이르면 그가 단순히 '광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휴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를 '광인' 취급하는 사람들이 바로 광인인 셈이다. 오히려 그는 인육을 먹는 무지한 시대에서 먼저 잠을 깨고 '아이'로 상징되는 미래 사회를 걱정하는 선각자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앞서 가는 사람들이 대중들에게 이해받기는커녕 종종 오해받으며 불행한 삶을 산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루쉰의 문학과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Q정전>에서 주인공 아Q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다. 웨이장 마을에서 살지만 집이 없어 사당에서 잠 자는 날품팔이 노동자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알량한 자존심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망각'이란 보물이 있어 나름대로 굴욕스런 일을 재빨리 잊고 체면을 유지하며 낙천적으로 산다. 어느 날 밤 자오 씨 댁에 약탈이 있은 뒤 나흘 후에 끌려간 아Q는 약탈범 일행으로 오해받고 총살형으로 공개 처형된다. 이상한 것은 그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거다. 공개처형을 구경나온 사람들도 막연히 아Q가 나쁘기 때문에 죽게 됐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Q의 죽음이 권력자들에게 있어 민중의 목숨이 파리 목숨 같았던 구시대의 비극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 외에도 <쿵이지>를 통해 과거에 실패한 문인의 빈곤과 타락을, <약>과 <내일>을 통해 당대 중국 서민층의 삶과 서양의학이 받아들여지기 전 한의약과 인혈에 대한 맹신을, <두발 이야기>와 <변발>을 통해 몸과 신체의 자유가 지배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비참한 민중의 현실을 읽었다. <아Q정전>을 중심으로 그 뒤에 실린 단편들은 비교적 잔잔함 속의 재미로 읽히는데 작품의 해제를 보면 '5,4 신문화운동의 조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뒤의 분위기를 반영해주는 미학적 징후'라고 한다. 

 

 독서모임 회원들과 이 책을 토론하며 무엇보다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함을 많이 공감했다. 그 이유의 하나로 중국이 공산화 과정을 겪는 동안 우리와 외교와 문화가 단절돼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루쉰 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한 자리였지만 아쉬움도 남는 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추고 다시 읽어보길 희망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

 

a*******5 2018.10.29. 신고 공감 10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