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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결국 모두 같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르완다에 있었던 슬픈 일들은,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 본 단편적인 상황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라는 먼 곳의 작은 나라, 르완다, 어쩌면 우리와는 너무 먼 나라일지도, 하지만, 이 작은 나라를 기억하는 것은 그곳의 슬픈 사건들 때문이기에 슬프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을 살인, 대규모로 서로를 죽이는 것이 전쟁, 일방적으로 한쪽이 죽이는 것을 학살로 불린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생긴 genocide라는 단어, 한 종족이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집단적인 살인, 과연 우리 인간은 타고난 악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이 미친 사건(르완다 학살)은 우발적으로 생기지 않았다. 치밀한 준비와 대중의 광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이런 사건을 일으킬만한 역사적, 경제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보통사람들이 이웃을 종족이 다르다고 죽을 수 있었다는 것에서 인간의 광기를 느낀다. 이 나라에서도 선한 종교인이 있었겠지만, 일부 종교인들은 “너희는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더 이상 너희를 원하시지 않는다.”라며, 학살에 앞장 서는 모습을 볼 때, 종교를 능가하는 광기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르완드는 원래 다른 사람의 위험에 대한 같이 하고, 도와야 한다는 의무를 지닌 나라였다니 제노사이드는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이 주도면밀하게 세운 계획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인종 차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후투와 투치족은 유전적으로 볼 때 서로 다른 인종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대표되는 후투족, 목자나 엘리트로 대별되는 투치족, 왜 이들이 서로를 죽이도록 미워하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은 제국주의의 식민정책, 투치족을 이용하여 후투족을 다스리는 원한, 사회자본의 독점 또 독립 후 엄청나게 증가한 인구문제에 따른 자원분배라고 본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를 자극한 정치문제, “정치투쟁은 평등추구가 아니라 양극화된 사회에서 어느 인종이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첨” 맞추기에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후투 독재정권은 대중민주주의로 위장했다. 독재자 하비아리마나, 캉구카와 캉구라, 후투우월주의, 후투십계명 등이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것 같다. 멀리서 보아도 무서움을 느끼는데, 그 자리에서 그런 현실을 겪은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 너무나 갑작스레 변하는 바람에 도대체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무엇보다 무서운 일은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군중심리)이다. 권위라는 것은 다양한 것으로 포장(애국심, 민족심, 정치적 신념 등)된다. 하지만, 왜라는 이유를 묻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그런 면에서 르완다는 아직도 이 그림자 속에 놓여 있다. 전체주의 체제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려면 지도자의 음모에 국민을 끌어들여야 한다. 투치족을 살해하는 행위는 식민지시대 이후의 르완다에서는 하나의 정치전통이었다. 이 전통이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독재자의 사망으로 사건의 시작, 수없이 이루어지는 무차별 살인 하지만, 아무도 고발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위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용감한 영웅들, 이에 맞서 최선을 다해 사람들은 지킨 이들, 나는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비참한 죽음보다 휠씬 더 두려워한 것은 바보처럼 살거나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는 너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유엔과 클린턴정부. 국제기구라는 유엔은 어떤 역할을 했고, 민주주의 경찰이라 불리는 미국은 무엇을 했는가? 한마디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프랑스 만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후투족을 후원했을 뿐이다. 사실상 제노사이드는 국제사회의 용인아래 이루어졌다. 미국은 개입을 원하지 않는 작전임무에는 다른 나라들도 설득해 참여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바뀐 상황, 르완다 애국전선(투치족 중심 반군)은 르완다 애국군으로, 르완다 정부군은 전 르완다정부군으로 변했다. 르완다 난민촌. 새로운 문제, 고마의 비참한 상황은 전 세계인의 동정심과 인간애를 무한대로 자극했다. 하지만, 빈민촌 속에서는 후투파워국가가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국제사회는 그 위기를 인도주의 문제인양 취급하면서 인재가 아니라 마치 홍수나 지진처럼 천재지변이 낳은 고통으로 몰아갔다. 유엔은 아무 수단도 없는 상태에서 속수무책일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인들 또한 제노사이드를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사람들은 너무 큰 공포 앞에서는 거기에 압도되어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상상을 초월한 비극,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다. 그들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할 때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늘 나쁘게 이야기한다. “죽은 자들은 묻되 진실은 묻지 말자.”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은 어쨌든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이기에, 그들은 일어서야 한다. 르완다는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 사회였다. 무엇보다 나약하고 조직적이지 못한 토착세력의 책임이 외국인보다는 더 크다. 싸움의 상대는 후투족이 아니라 르완다의 정치세력이었다.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르완다인치고 신체적 또는 정신적 피해를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대부분 희망을 가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살아야 할 이유, 내일을 기대해야 할 이유는 존재한다. 귀환자들, 그들은 들어와서 마치 정복자처럼 온 나라를 손에 넣었다. 우리가 전쟁에 이기긴 했지만, 잃은 게 너무 많다. 어떻게 화해를 할 것 인가? 다시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군중심리)을 하는 사람들, 위기의 불씨가 아니기를. 우리는 다만 최선의 정의를 추구할 따름이다.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죄를 덮어주거나 죄인을 보호해서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의의 추구는 주로 참회의 추구로 바뀌었다. 키베호조사위원회 보고서. 사실 난민들은 후투파워의 폭압아래 인간 방패로서 붙잡혀 있었다. 구호단체의 무능, 수백명의 국제인도주의 단체직원들이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중인 자들의 단일사회로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큰 규모가 큰 사회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주의자들 사람 목숨을 구하라고 프로그래밍된 로봇 같다. 그들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일만 할뿐이다. 르완다 피난민의 난민촌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르완다의 일상적인 생활보다 나았다니, 일상생활은 얼마나 피폐해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종교와 이념 등으로 난민을 지원하는 많은 단체들, 그들은 필요하고, 고마운 존재이다. 하지만, 먹을 것을 주기보다는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그들의 상처를 같이 아파하고, 같이 재건하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살인에 대한 변명, 국가가 시켰다는 초라한 변명을 앞세우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살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살인의 이 거부로 처형당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을 포용해야 하는 것도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환영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새 질서가 왔어요.” 저자도 자신을 반성하며, 나는 기자이기보다 미국저널리즘의 소비자로서의 다소 둔하게 반응했던 게 아닌가 싶다. 94년 이후로 르완다의 경험은 네게서 국제사회에 대한 믿음을 모두 앗아갔다. 아픔 뒤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콩고에서의 반전은 아프리카가 똘똘 뭉쳐 그 지역의 가장 큰 정치적 악에 대항해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것이 새로운 아프리카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로 이런 제노사이드가 벌어졌는지는 이유는 분분하지만, 계속 규명해나가야 하겠지만,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른 책임과 반성이 있어야 하겠다. 남겨진 희망,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소녀들의 절규, “우리는 르완다인이다.” 우리도 민족 상잔의 비극인 6.25를 겪은 나라이다. 이데올로기라는 가면 덮어 쓰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갖다 대고, 살해한 나라이고, 그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분단이라는 가면아래 있지만, 그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고,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민주화라는 과정을 거쳐 이만큼 발전했지만, 아직도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부족한 것 같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압제와 폭거에 굴복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죽는 목숨이다.” 라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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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봄과 초여름을 거치는 동안, 중앙아프리카의 조그만 나라 르완다 공화국에서는 약750만명 정도이던 전체인구 가운데 10%인 8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겨우 100여일 만에 무참히 살육되었다고 한다. 르완다 대학살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살육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가장 효율적인 대량학살의 사례라고 서구언론들은 말한다. UN은 이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했고, 우리는 이 살육이 르완다 내전상태에서 다수족인 후투족이 소수족인 투치족을 말살하려는 계획된 살육이었다고 알고 있다. 저자는 르완다에서 학살이 최절정에 이르렀던 1994년 초여름을 중심으로 르완다의 역사와 제노사이드로 규정된 학살이 일어난 배경, 그리고 그 전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제노사이드가 발생한 이후에도 르완다 국경선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난민촌에서 벌어지는 비극, 국제구호단체와 서구열강의 이중성을 많은 르완다 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알려준다. 그러나 저자가 의지하는 증언의 대부분은 현재 르완다를 지배하는 계급, 1995년 7월 르완다에 수립된 새로운 정부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과거 후투족의 박해를 피해 르완다를 떠났던 투치족이 결성한 반군조직 르완다애국전선 사람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르완다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르완다는 피그미 부족의 땅이었다고 한다. 이 땅에 언제부터인가 후투족과 투치족이 이주해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같이 살면서, 같은 말을 하고, 같이 적을 물리치고, 서로 혼인하면서 살았다. 그들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후투족은 대부분 농자였고, 투치족은 대부분 목자였을 뿐이다. 1860년경 투치족 출신 추장 르와부기리가 왕이 되면서 영토를 현재수준으로 넓혔고, 자연스레 투치족은 엘리트와 동의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투치족은 귀족이 되고, 후투족은 농노가 되면서 서로에 대한 시각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르완다에는 글이 없었기 때문에, 르완다의 역사는 구전의 역사일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전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위험한 역사였다고 한다. 19세기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점령하기 시작했다. 르완다는 부룬디와 함께 독일의 지배아래 들어갔으며, 르와부기리가 죽자 혼란에 빠진 와중에서 투치족 귀족들은 식민지 지배자들과 결탁하여 정적을 제거하고 후투족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후투족과 투치족은 서로 적대하는 인종을 가리키는 의미로 굳어졌다. 1차세계대전후 국제연맹은 르완다를 전리품으로 벨기에에 넘겨주었다. 벨기에 인들은 인종간의 우열을 조장하고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식민지 정책의 발판으로 삼았다. 식민화는 폭력이었고, 그런 폭력은 두 부족간의 갈등을 극도로 높이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지역사회에서는 투치족 추장의 지배를 정당화 시키고, 후투족으로의 대체는 반유럽 공산주의의 획책으로 몰아붙였다. 르완다의 비극은 이미 식민지시대 식민통치자들에 의해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벨기에는 인종 신분증제도를 도입하여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완성하였고, 차별정책은 더욱 심화되었다. 1957년 후투족 지식인들의 후투선언으로, 후투족 유랑민들이 투치족 관료를 공격하고 집을 불태우는 사회혁명이 시작되었다. 벨기에는 르완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수수방관했고, 후투족과 투치족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1962년 르완다는 벨기에로부터 독립하였다. 투치족 중심의 정치는 후투족 중심의 정치로 바뀌었고 망명한 투치족들은 게릴라가 되어 르완다를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그럴 때마다 후투족 지도자들은 투치족을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반 하비아리마나가 정권을 잡고 제2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그는 전체주의 정치를 시작하였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각국의 군사지원아래 투치족 뿐만이 아니라 후투족도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웃나라 우간다로 망명한 투치족 지도자들은 르완다애국전선을 조직하였고, 하비아리마나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1990년 르완다애국전선은 우간다와 함께 르완다를 침공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가운데 1994년 4월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격추되어 대통령이 죽는다. 이때부터 3개월간 홀로코스트를 능가하는 엄청난 살육사건이 일어났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을 묶어놓고, 대중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부족을 학살했고, 그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되찾기 위해 투쟁한다는 명목으로 상대부족을 학살하였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침묵하였다. UN의 평화유지군은 수수방관 하였고, 서구사회는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의 눈치만을 살피기에 급급했다. 1995년 7월 르완다애국전선은 르완다에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르완다 국경에 설치된 수많은 난민촌에서 학살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난민들을 르완다로 돌려보내려는 자들과, 난민을 이용하려는 자들, 그리고 인간성과 정치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국제구호단체들이 뒤섞여 그들을 다시 한번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이제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다시 함께 생활하고 있다. 르완다인 치고 신체적 또는 정신적 피해를 겪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공포는 어디에나 만연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그들을 충격과 혼란으로 몰아 넣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살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인간의 잔혹성이 어디까지 인가를 생각해 본다. 아니 그러한 학살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배경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르완다 대학살은 르완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프리카 식민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학살은 아프리카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세계 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보아왔다. 발칸반도의 코소보에서, 캄보디아에서, 이라크에서,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그러한 학살이 제노사이드라고 해서 더 가슴 아프고, 중동의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에서 죽어가는 민간인이라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다. 서구 열강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러한 학살을 부추기고,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쟁점화하는 것에 분노가 일 뿐이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위해 기꺼이 그러한 음모와 결탁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부끄러울 뿐이다.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르완다에서 학살을 보고 외면했던, 아니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앞장서서 살육의 현장으로 뛰어든 성직자들의 사례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학살이 일어났던가? 그러한 학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참회를 하였던가? 학살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나, 학살에 가담했던 자들이나 모두 피해자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참회를 통한 용서만이 서로가 화해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1980년 우리는 살아남았기에 부끄러운 시대를 보낸 적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그 어느 누구도 참회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이 책을 읽는 마음이 더욱 씁쓸해진다. 르완다에서 일어난 학살에 대한 참회와 화해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느 여학교 기숙사에 제노사이드 지지자들이 침입하여 후투족은 후투족끼리, 투치족은 투치족끼리 서로 갈라서라고 했을 때 여학생들은 거부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는 모드 르완다인이라고 하면서 총에 맞아 숨졌다고 한다. 그녀들의 용기가 르완다 국민들의 가슴속에 있는 상처를 조금이라도 아물게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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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도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르완다. 너무나 작은 국토때문에 자신의 나라표기조차도 이웃영토에까지 쓰일만큼 조그마한 나라인 르완다는 원주민인 피그미족(트와족으로 나중에 불린다.)이 살고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후투족과 투치족이란 종족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서로간의 동일언어, 풍습을 가진탓에 서로간의 결혼도 오간 정말 사이좋은 부족이었다. 이런 부족들간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독일에 이은 벨기에의 식민정치의 실현이 구체화 되면서 자신들의 편의대로 투치족을 정치와 그 밖의 모든 중요직을 차지하게 하고 그 밑으로 후치족을 다스리게 되는 구조를 취한 결과였다. 다분히 자신들의 편의대로 식민지에 대한 이익을 추구한 나머지 그들간의 점차 벌어진 틈은 마침내 1960대의 학살사건과 연이어서 1994년 봄과 여름에 걸쳐 인류역사적으로 대 기록을 세우게 되는 제노사이드가 실현이 되는 암울한 시대를 거치게된다. 벨기에의 영향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카톨릭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모여 피신한 투치족을 보호하기는 커녕 후치족이 마체테(풀을 베기위해 사용하는 칼) 와 마수(못이 박힌 곤봉)을 이용해 무참히 살해하는 광기의 현장을 일러바치는 성직자들의 반 인륜적 행위, 차라리 죽이는 편이 낳았을 현장을 서서히 뼈아픈 고통속에 죽게하는 처리방식으로 휘두른 무기앞에 사지에 대한 고통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저자는 4~5차례 르완다를 방문하면서 현장에서 보고느낀 바를 서술하고 있다. 이런 기저에는 함족신화라 불리는 후치족과 투치족의 생김새부터 다름에 대한 편이한 인식아래 만행을 저질러졌고 투치족 부인을 둔 후치족 남편이라도 처남이나 처가 사람들을 죽이는데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간다로 피신해 자란 젊은 르완다인들로 구성된 르완다애국전선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게됨으로써 후치족은 이웃나라인 자이르(훗날 콩고공화국)로 밀려나게 되고 세계각국의 강대국들은 오히려 후치족을 뒤에서 지원(프랑스)하는 상태로까지 번져 더욱 큰 사태로 발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보고서 조차도 사전에 제노사이드에 대한 의심과 경고를 가졌지만 그저 무심히 흘렸을 뿐이고 학살이 지연되는 와중에도 도와달란 애국전선의 간절한 소리에도 사형은 하지 말아야한단 일관된 소리만 외칠뿐이었다. (나중에 주동이 된 후치족 범죄인들은 모든 시설이 갖추어진 스웨덴 감옥에 수감이 되고 르완다 감옥안에서 조차도 신분차별, 즉 직업에 따른 서열에 따라서 감방이나 그 외 바깥 지역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탈출한 난민캠프내에서도 후투파워라 불린 자들에게 수시로 위협을 받은 후투족사람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내 다시 새로운 르완다를 건설하려는 애국전선의 길을 막고 온갖 구호품을 선취함으로써 난민들을 오히려 양쪽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사태를 겪는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기존의 투치족에 대한 학살이 진행될 때는 무관심속에 자국들의 이익을 주판알로 튀기고 있을 강대국들이 취한 태도이다. 국제적인 보고는 연일 투치족이 후퇴한 후치족을 학살한다는 현장을 실어나름으로써 새삼 관심을 끌게되는 현상으로 번져가고 세계의 제1인자임을 자처하는 미국은 오히려 자국의 무기를 대여료를 받는 조건으로 빌려주는 대목이다. 이마저도 차일피일 미루다 그 사이에 또한 무수한 르완다인들은 처절이 학살의 현장으로 사라진다. 저자는 르완다의 학살현장과 그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이미 영화화 된 호텔 르완다의 주인공인 후치족 사람 호텔 직원 폴 루세사 바기나의 인터뷰을 곁들여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인터뷰를 한 정치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올림으로서 진정으로 유엔에서도 제노사이드란 이름으로 만들어낸 인간들의 극형에 달한 태도에 견제를 하지만 이는 그저 허공에 그친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고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아프리카가 아닌 서유럽이나 일반의 다른 좀 더 실리성을 갖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세계는 과연 가만있었겠는가?하는 물음을 던진다. 방송에서도 큰 비중이 아닌 작은 코너의 소개로 간간이 나온것으로 기억이 될 만큼 우리들 모두는 이들의 불운한 세태에 대해 그저 무관심을 가장한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 비록 독립을 했다고하나 여전히 자신들의 과거속의 한 나라로 인식이 되고 더불어서 끊임없이 자신의 발 밑에 두고자 지원을 한 프랑스나, 인종구분 신분증을 철폐하란 영국의 요구에 겉으론 투치족을 응원한단 빌미아래 거절하지만 깊은 심중엔 앵글로색슨이 자릴 잡을 수 있단 의중이 곁들여진 이기심에 찬 행동들을 강대국들은 보여준다. 또한 세계의 민주주의의 표본이자 급한 불을 끄는데 맏형겪을 자초하는 미국의 태도는 여전히 잉해할 수 없는 의문을 준다. 비록 당시의 상황이 소말리아에서 자국의 군사들이 당한 테러에 대한 일로 신경쓸일이 있었다지만 추후의 클린턴 행정부의 연설발표문이나 행동은 기존의 행동을 비교해 보건대 자국의 이익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지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 무너진면을 보여줬단 점에서 이 르완다 학살사건은 우리인류가 생겨난 이래 가장 혹독하고 무심하게 방치한 점에 대한 경고와 아울러서 인간보편적인 진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르포타주로서 손색이 없다. 학살 사건 종결 후에도 여전히 자이르내에서 쫓겨난 후치족의 위치라든가 여전히 후투파워 앞에서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행하는 게릴라식 학살은 정말이지 단지 이름하나 틀렸단 것으로 부족이아닌 한 소중한 인간들의 생명을 무심히 버리는 행동에 치를 떨게 만든다. 진정의 시간을 갖고 서서히 자신들이 가진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르완다의 국민들을 보면서 작가는 그 곳을 떠나오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되지만 책을 덮고서도 여전히 그 안의 국민들은 지나온 과거속에서 그 모든것을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가 다시 이웃해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는 기억의모토로서 자신들의 존재성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반면 르완다는 유태인들을 박해한 다른 나라인 독일이란 것만 다를뿐 학살이란 명제하에 자행된 행동은 유태인들과는 다른 그들에게 망각을 권유하면서 살란 권유에 다시 한 번 진정한 인류애는 무엇이며 생명의 존엄성은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사실적인 묘사장면과 성직자로서 행한 행동,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현실앞에서 무엇이 잘못이 되었단 사실조차도 잊은 채 살인에 맛을 느끼는 사람들의 행동, 여전히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잃고 다시금 고향에 왔지만 이웃엔 학살의 장본인이 버젓이 살고 있단 투치족 사람들의 말 속에 이미 모든것에 대한 체념으로 가득찬 인간의 모습을, 세계의 모든 평화를 위해서 발로뛰고 중재자로서 확연한 책임의 수장기구로서 모습을 보여야 할 유엔의 소극적인 태도, 매뉴얼에 얽매인채 실지 난민들을 위한 행동이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의무와 태도에 스스로를 유엔구조위원회 직원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 제노사이드 규약이라는 장미빛 약속은 인종청소 시도를 막아야 한다는 도덕명령이 독립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이해관계보다 우선 해야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P 210 *****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사람들에게 정의감을 일께워주었지만 소리높여 악을 비난하는 것과 묵묵히 선를 실천하는 것은 여전히 별개의 문제로 남아있다. -P 212 ***** 무엇보다 나의 관심을 끈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공백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의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였다. -P 221 ***** 결국 정치는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의 중간쯤에서 이루어진다. P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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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6ㆍ25라 부르는 한국전쟁은 외국에서 잊혀진 전쟁이다.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된 큰 규모의 전쟁임에도 양차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에 비해 조명받지 못했다.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아시아의 한 변방에서 벌어진 내전 성격의 전쟁이라 주목받지 못한 게 크지 않을까 싶다. 이에 비해 베트남전은 내전임에도 68혁명의 분위기와 미국이 최초로 진 전쟁이라는 의미로 상대적으로 세계사에서 주목받았다. 한국전쟁 외에도 잊혀진 전쟁은 셀 수 없이 많다.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전쟁하는 동물 아닌가. 그 많은 전쟁을 담는다면 아마도 세계사야말로 가장 어려운 교과 과목이 되지 않을까. 르완다에서 벌어진 일도 기억에서 잊혀질 가능성이 크다. 100일만에 르완다 전체 인구의 10%,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주목할 점은 희생자 대부분이 동일한 종족이라는 사실. 이 때문에 르완다 사태는 르완다 내전이라 부르기에 앞서 르완다 대학살이라 칭해야 한다. 1994년 4월, 르완다 대학살의 전사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는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르완다 대학살을 다룬 책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운데 위치한 르완다. 지도에서 바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면적이 작다. 콩고민주공화국을 먼저 찾은 뒤, 콩고의 오른쪽을 보면 르완다가 보인다. 르완다에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다수를 이루고 그밖에 피그미족 등 아주 일부 소수족이 있다. 르완다 대학살은 수적으로 다수족인 후투족이 소수족인 투치족을 무차별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모든 사건이 그러하듯, 르완다 대학살에도 전사가 있다.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갈등은 식민지 시기에 증폭됐다. 서구 열강이 들어오기 이전 르완다 왕국은 투치족이 귀족, 후투족은 농노였다. 그럼에도 이런 구분은 그렇게 의미가 없었으며 두 종족은 혼인도 하고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특히 두 종족 사이의 구분은 르완다의 강력한 지도자였던 르와부기리 왕이 미처 정복하지 못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의미조차 없었다. 열강이 르완다를 정복하며 상황은 변한다. 이 지역을 점령한 벨기에는 투치족과 결탁하여 식민지배를 펼친다. 식민지 지배자는 당시 유행하던 우생학을 이용하여 인종주의를 조장한다. 그 와중에 인종주의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인종 신분증'이 1933년부터 등장한다. 인종 신분증은 후투족이 투치족이 될 가능성을 사실상 차단했을 분만 아니라 벨기에인들에게는 투치족이 우월하다는 신화에 뿌리를 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완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73쪽) 식민지배가 끝난 뒤 백인 지배자들은 물러갔다. 투치족과 후치족 사이의 갈등을 실컷 키워놓은 채. 상황은 수적으로 우세한 후투족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프랑스를 등에 업은 후투족 출신 독재자 하비아리마나는 투치족을 향한 적대를 부추기며 자신의 정권을 다져간다. 아프리카의 다른 독재자처럼 그는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위해서 정치를 했고, 르완다의 사정은 다른 아프리카보다는 낫긴 했으나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그와중에 르완다 북동부에 근거를 둔 애국전선이 하비아리마나 정권에 실정을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하며 르완다를 침공한다. 애국전선의 주축은 투치족. 노련한 정치가 하비아리마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애국전선의 침공 규모가 소규모였지만, 그는 투치족의 호전성을 과장하며 투치족이야말로 르완다를 위협하는 불순세력이라고 말한다. 투치족 절멸을 외치는 후투파워가 힘을 얻기 시작하고 사회 분위기가 갈수록 험악해진다. 결정적으로 하비아리마나를 태운 전용기가 정체 불명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다. 이때부터 학살은 본격적으로 자행된다. 목표는 단순했다. 후투족을 절멸할 것! 어디서 많이 보던 시나리오다. 자작극에 이은 희생양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 대학살은 왜 벌어질 수밖에 없었나 아직도 하비아리마나를 누가 죽였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게 없으나, 확실한 사실은 이후에 후투족은 투치족을 무참히 살해했다. 군인과 경찰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도 학살에 가담했다. 마체테든, 막대기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동원했다. 내부의 적을 절멸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후투족을 구하기 위해 르완다 애국전선이 들어왔을 때 후투파워를 외치던 학살의 주범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렇게 르완다 난민촌이 형성된다. 이때 비로소 인도주의 단체들과 서구 열강들이 르완다에 주목하며 각종 구호품을 보낸다. 하지만, 난민촌은 학살의 주범을 보호하는 모순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이후 르완다는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다 르완다 애국전선의 지도자였던 카가메가 대통령에 오른다. 그는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빠르게 경제성장을 추진했다. 학살의 원인과 학살을 주도한 주역을 사법적으로 처리하는 일은 명쾌하게 매듭짓지 못했으나, 전반적으로 카가메 대통령은 훌륭하게 해내고 있단다. 저자는 르완다 내전의 원인과 전개, 그 결과를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학살 당시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투치족, 학살에 동참한 기독교 성직자, 학살을 부추긴 언론인, 학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후투족의 평범한 사람들...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을까? 저자는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사실 그 무엇으로도 그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물론 식민지 이전 시대의 불평등, 철저한 위계질서에 입각한 중앙집권제, 함족 신화, 벨기에의 통치 아래 불거진 종족 양극화, 1959년 후투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살인과 추방, 투치족 피란민들의 복귀를 거부한 하비아리마나의 정책, 다수당 체제의 혼란, 르완다 체제의 혼란, 르완다 애국전선의 공격, 전쟁, 후투 파워의 극단주의, 선전, 선동, 관행처럼 빈번하게 일어나던 학살, 다량의 무기 수입, 권력 배분과 통합이 가져온 평화가 하비아리마나 과두 체제에 가한 위협, 극심한 가난, 무지, 미신, 압제 속에서 늘 기죽어 지내며 대부분 술에 찌들어 살아가던 소작농들의 두려움, 국제사회의 무관심 등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요인을 모조리 찾아내 하나로 조합해보면 제노사이드가 횡행했던 이유가 확연히 이해되면서 그런 사태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결론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구 열 명에 한 명꼴로 목숨을 잃은 그런 대규모의 학살이 일어날 만한 근거는 찾기 힘들었다. (221쪽) 저자는 이보다 좀 앞선 부분에서 다른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르완다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났다면 그 이유는 열강들이 그렇게 방치했기 때문이다 (187쪽) 책에서 지적했듯, UN을 비롯한 열강들의 대처는 실망할 정도가 아니라 분노를 일으킨다. 우리가 문화의 나라, 패션의 나라라 숭상하는 프랑스. 프랑스는 르완다 애국전선이 앵글로 색슨의 영향력 아래 있는 우간다를 본거지로 삼는다는 사실 때문에 학살의 주역인 후투족을 비호해줬다. 코피 아난은 르완다 대학살의 조짐을 알면서도 보고서를 묵살했다. 열강은 책임지지 않았다. 뒷짐 지고 상황을 보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고심했다. 국경의 난민촌은 르완다 전역의 위기를 한 지역에 국한된 위기로 바꾸어놓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 근저에는 여전히 정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이른바 국제 사회는 그 위기를 인도주의 문제인 양 취급하면서 인재가 아니라 마치 홍수나 지진처럼 천재지변이 낳은 고통으로 몰아갔다. 실제로 르완다 참사는 일종의 자연 재해로 간주되었다. 다시 말해 후투족과 투치족은 타고난 본성에 이끌려 서로 죽였으며,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망치기 바빴다면,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식의 논리였다. (208쪽) 대학살이 남긴 것, 탈근대에서 전쟁을 기억하기란 결국 상황을 해결한 건 르완다인들. 어쨌든 상황을 해결하긴 했지만, 르완다인들은 대학살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왜 아니겠는가. 어제의 이웃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고, 어제의 이웃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에드몽은 스스로를 르완다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다시 말해 르완다인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제노사이드 이후 그는 그런 긍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그는 형제를 지키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형제를 죽인 사람에게 카인의 징표를 새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카인은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 나서도 승승장구했다. 카인은 최초로 도시를 세웠고, 우리가 아무리 인정하기 싫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의 자손이다. (296쪽) 296쪽의 저 문구는 저자인 필립 고레비치가 쓴 글 중 단연 압권이다. 저 글이야말로 르완다 대학살을 명쾌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르완다 대학살을 성경에 빗대며 대살상을 후투 파워가 주도했으나, 참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중 누구도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자고, 하고 묻는다면 뾰족한 해답은 없다. 우리가 진실을 알고, 기억해서 다시 참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민사회를 강하게 하자는 정도가 택할 수 있는 차악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책 정말 안 팔렸다.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낸 갈라파고스에서 나온 책이고, 표지 느낌도 저 책과 비슷하며 전하려는 메시지도 똑같다.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는 베스트셀러에 스테디셀러인데, 이 책은 나온 지 꽤 됐지만 내가 산 책은 아직 1쇄다. 리뷰가 꽤 달려 있어 좀 봤더니, 예스24리뷰어클럽 선정 도서였구나. 그러니, 자발적으로 리뷰를 단 건 거의 없다는 뜻... 한국전쟁이 세계에서 잊혀진 전쟁이듯, 르완다 대학살 역시 한국에서 잊혀진 학살이 될 것 같다. 아니, 듣지조차 못한 학살. 어쩌면 르완다 대학살은 복잡하고 모호해서 일반 사람으로부터 외면받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궤를 같이 하는지도 모르겠다. 르완다 대학살은 콩고 내전으로 이어질 만큼 세계사적 사건이었음에도 사건의 복잡함과 모호함, 거기에 더해 무관심으로 잘 알려지지 못했다. 제노사이드를 둘러싼 전쟁은 말 그대로 포스트 모던 시대의 전쟁이 되었다. (중략) 객관적인 진리와 거짓의 개연성을 놓고 벌이는 학꼐의 논쟁은 흐지부지 끝날 때가 많지만 르완다는 그 질문이 생과 사가 달린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3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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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에 관한 책읽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국가 간 전쟁이 아닌 국가 내의 전쟁을 내전이라고 한다면 21세기는 아마 내전의 시기라 해도 될 만큼 지난한 과정을 겪고 있다. 내전의 경우, 국가 간 전쟁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집단끼리의 갈등 속에서 승자가 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때로는 한 집단의 몰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 책 바로 이전에 읽었던 아르메니아인의 학살도 그랬으며 그와 비슷한 시기에 접했던 보스니아 및 코소보에서의 학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팔레스타인분쟁 또한 인종청소를 경험한 이들의 새로운 학살 시도와 다름없었다. 이제는 아프리카의 르완다이다.
위의 예를 든 국가 내에서의 학살은 다양한 이유가 있을테지만 민족의 이동과 관련되어 있다. 국민국가 개념의 형성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로 고려할 때 그들(학살자든 학살피해자든)은 오늘날 국경이라고 부르는 경계를 넘는 것에 비교적 자유로웠다. 물론 후투족이든 투치족이든 오늘날 르완다 주변의 널리 분포되어있음을 볼 때 르완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민족의 침입을 재차 받아야하는 곳이라 하기에 아프리카는 지리적으로 그 원인이 덜하다면 덜 할 것이다. 몇 백 년을 함께 살아온 두 민족이 학살을 일으키기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르완다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비극은 내부로부터가 아닌 외부로부터 불거진 결과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 듯싶다. 식민 지배를 시작한 벨기에인의 차별정책은 이어 제국의 야욕을 드러내는 프랑스로 이어져 내려온다. 제국주의가 가져온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르완다 인들은 다름을 뿌리 깊게 인식하고 스스로를 분리해 나아간다. 여기에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선동이 더해져 광기와 증오가 르완다를 집어 삼켜버렸다. 전 인구의 10%이상이 빠른 속도로 제거되었다. 인종학살의 현장에서 늘 그렇듯 단지 투치족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말이다.
광기의 현장을 뒤늦게 찾은 필자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학살자들의 뒤늦은 반성의 목소리도 함께 담았다. 또한 학살이 일단락 된 이후의 르완다 재건과 이를 가로막는 후투 파워 잔당들의 모습도 몇 년 동안 관심을 기울여 적어내고 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인도주의 단체들의 무분별한 난민정책이 어떠한 영향을 가져왔는지를 적어놓은 대목을 읽을 때에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만큼 화가 나기도 했다. 학살을 막을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막고자하는 의지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이었는가 하는 의문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범지구적인 규제가 있어야 함을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통해 배웠고 학살을 잊지 않기 위해 홀로코스트기념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허나 국제사회, 특히나 르완다의 비극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국가들은 더 이상의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는 생존자들에게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는 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하는 회의마저 들게 한다. 그들은 한 인간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할 권리가 있다. 학살을 마무리하는 것도 고통을 치유하는 것도 그들에게 맡겨야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학살자와 생존자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그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허나, 르완다인들은 다시금 또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어느 르완다인의 말처럼 고통을 치유할 수 있도록 생존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밖에는 길이 없을 것 같다. 다행히 그들은 그 방법을 현명하게 이행해 나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90년대 후반까지의 불안정한 르완다의 상황을 다룬 책이었던 지라, 그 이후의 르완다가 궁금해 하던 중 얼마 전 그들의 모습을 담은 한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이다. 애국전선의 장군으로 활동하다 부통령이 되었던 카가메는 현 르완다의 대통령이 되었고 교육과 농업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으며 빠른 속도로 학살 이후의 르완다를 재건하고 있다는 희소식이 담겨 있었다. 16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학살을 완벽하게 잊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허나 하나의 르완다를 향해 가는 길은 무척이나 희망적인 모습이었다.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는 완벽한 통합을 이루기 힘들다는 어려운 과제를 지니고 있는 르완다의 앞날이 좀 더 밝아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자국의 이익을 초월하는 정의로서의 국제사회의 힘을 믿어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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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난 아프리카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미개한 나라, 정치가 굉장히 부패해 있고 하구헌날 서로 계속해서 싸움이 일어나는 나라 등등 씩으로. 르완다의 대학살도 말은 들어봤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대충 무슨 종교적 갈등으로 싸움이 일어나서(알카에다처럼) 계속해서 사람이 죽어나간 거겠지라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이 책의 소개, 그 대학살이 20세기인 1994년에 일어났고 그 인구도 100만명에 이른다는 글을 읽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째서 난 머나먼 대륙의 아프리카, 그리고 10년도 더 된 일이라고 해도 최근에 일어난 사건임이 분명한 이런 일을 왜 모르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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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에서 이책이 끌렸다. "우리가족이 내일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참 묘한 제목이다. 이책은 아프리카의 슬픈역사, 르완다 대학살이란고 한다. 이책의 궁금증은 죽은 시체를 적나라게 묘사한 장면들을 글로 읽고싶기도 했다. 사실 필립고레비치 기자는 책에 이렇게 적어놓은 문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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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르완다의 다수족인 후투족이 소수족인 투치족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선동과 살인의 광기에 휩싸인 후투족은 투치족을 총과 마체테로 죽이고 또 죽였다. 100일동안 무려 100만명의 투치족이 희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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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한 기억이지만 1990년대에 르완다 대학살 사건이 있었고, 그로 있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학살을 피해 떠난 난민들이 주변 국가에 난민촌을 형성하고 살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었다. 그 때에는 특히나 약소국에 대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늘 해외뉴스를 챙겨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았던 그 영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1994년에 일어난 르완다 대학살 사건은 다수민족인 후투족이 소수민족인 투치족을 말살하기 위한 제노사이드가 행해졌다. 그들은 이웃이었고, 가족이었고, 형제였는데, 하룻밤사이에 살인자과 피해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100일여만에 100만명 학살이라는 기록?을 세운 이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을 읽는 내내 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줄한줄 집중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