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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외교관, 첩보원, 무역상, 문장가, 선각자 등 조선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역관-조선 역관 열전
"통역사, 외교관, 첩보원, 무역상, 문장가, 선각자 등 조선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역관-조선 역관 열전" 내용보기
언어, 그것도 외국어는 무기가 된다. 우리처럼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경우에는 더더욱이 그런데, 소설 '꺼삐딴 리'에서 주인공 이인국을 보더라고 그렇다. 일제 치하, 소련 군 진주, 미 군정에서 모두 살아남는 생존력을 보여주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그 나라 언어를 익히는 것이었고, 그렇게 배운 언어를 활용해서 우리나라에 있는 그나라  실력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으로써 살아남게
"통역사, 외교관, 첩보원, 무역상, 문장가, 선각자 등 조선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역관-조선 역관 열전" 내용보기

언어, 그것도 외국어는 무기가 된다. 우리처럼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경우에는 더더욱이 그런데, 소설 '
꺼삐딴 리'에서 주인공 이인국을 보더라고 그렇다. 일제 치하, 소련 군 진주, 미 군정에서 모두 살아남는 생존력을 보여주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그 나라 언어를 익히는 것이었고, 그렇게 배운 언어를 활용해서 우리나라에 있는 그나라  실력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으로써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외국어는 무엇을 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외국인과 교류하는, 또  새로운 생각과 문물을 받아들이고 접할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최고의  밥벌이 수단이 되는 것도 물론이고.

 

       

 

조선시대 외국어 전문가 역관들 역시나 그러했다. 그들은 한마디로 멀티 플레이어라고 할까. 활동 범위가 정말 넓었다. 외국 정상들이 왔을때 양 정상 뒤에서 조곤조곤 통역해주는 동시 통역사의 모습도 떠오르고, 외교 실무를 담당하는  역할에, 무역상에 심지어 정보원 역할도 수행했다. 뿐 만이 아니다. 후기로 갈수록 그들은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던 한문학에서도 실력을 떨치는 문장가를 배출했는가 하면,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그 누구보다도 앞서서 받아들였던 실용주의자였다. 그런가하면 열강의 틈바구니에 고초를 겪었던 조선 말에는 개화파의 중심이 되었고, 우리 문화 소장품을 지켜주는 그야말로 역관의 역할에서 머물지 않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도층도 아닌 실무진이었을 역관에게 이렇게 여러가지 짐을 지우나 싶기도 했지만,그들은 전문성을 활용해 자신들의 역할을 점점 확대해갔다. 생존력을 높였던 것이다.

'조선역관 열전'은 조선시대 시대의 변화 속에서 역관들이 해왔던 역할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 변화와 함께 역관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왔는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들은 신분상으로 지배층이 될 수 없었다. 외교전의 최전방에 선 역관들이 공을 세워 왕이 벼슬을 높이 내리기라도 하면 사대부들은  역관들을 견제하느라 급급했다. 늘 그들의 신분적 한계를 지적했고 또한 역관들이 무역을 통해 얻는 부에 대해서 역상(譯商)이라면서 비난하기에 바빴다.

그럴수록 이들에게 외국어 실력과 실무경험을 통한 전문성, 그리고 명 혹은 청나라 고관들과의 교분은 이들을 지키는 갑옷이 돼 주었던 것이다. 그만큼 사신으로 갔을 때 현장 실무에서 역관의 능력에 따라 외교적 성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물론 역관들이 늘 정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치부방법에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밀무역을 한다거나, 부정에 연루된다거나하는 흠결있는 역관들도 많았기에 치부는 이들에게 빛인 동시에 그림자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무역으로 돈을 만질 수 있는 명, 청 사신으로 갈 수 있는 역관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언어별 불균형이 심했지만, 일본을 상대로 하는 왜관무역도 돈을 벌 수 있는 교역이 이루어지자, 일본어 역관 지망자는 늘어났다.

요즘에도 외교관들이 미주 지역이나 유럽을 선호하고 빈국이고 치안이 불안한 아프리카에 파견되길 원치 않는다고 하니, 편하고 광나고 이권이 있고, 승진에 유리한 꽃보직을 선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다.

 

'조선 역관 열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업적을 세워 명성을 얻거나 죄를 지어 오명을 얻은 역관들이 거론될 때 였다.

임진왜란에서 명의 파병을 이끌어낸 홍순언이나, 청나라 역관이 돼 위세를 부린 조선 천민 출신인 청의 역관 정명수, 역관 집안으로 갑부가 된 변승업, 일본 통신사로 파견됐다 피살된 최천종, 중국 전문가 이화종, 고종을 암살하려한 러시아 공사관 통역관 출신 김홍륙 등등..

 

특히나 지금까지는 태극기의 도안이 박영효 작품이라고 알려졌는데, 이 책에서는 역관 이응준이 석달 먼저 했노라고 언급하고 있다. 조미 통상 조약을 체결할 때 조선을 상징하는 국기가 필요하다는 지시를 받고 도안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백두산에 청일 국경비를 세우고 왔던 김지남 김경문 부자(父子)역관, 그들로 인해 국경 분쟁의 소지를 덜 수 있었던 것도 역관의 활약상과 나라에 대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장희빈을 배출한 인동 장씨, 변승업으로 대표되는 밀양 변씨,김지남으로 알려진 우봉 김씨, 조선 후기 일본과의 외교를 주도한 천령 현씨, 이들 역관 명가들의 이야기나 역관 양성기관인 사역원에 대한 세세한 정보도 눈에 쏙 들어왔다. 변승업의 경우는 당시 조선 최고의 갑부였을만큼 역관의 지위를 활용한 치부에도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이들 역관 명문가들은 정치와 엮이면서 고초를 겪기도 했는데, 인동 장씨 장현의 경우, 장희빈을 배출함으로써 가문의 영광을 재현했지만 잇따른 환국으로 인해 고생해야했다. 역관 역시나 당쟁에 얽히게 되면 구설수나 필화에 연관되는 경우가 있어서,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밀양 변씨 변승업의 처세는 탁월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고 했고, 인심을 베풀었다. 죽음을 앞두고는 돈을 빌려준 차용증을 불태움으로써, 역관들의 치부를 못마땅해 하는 역관가문의 부정적인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가문은 후대에도 온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언급된 역관들은 모두 흥미로운 인물들이었다.특히나 조선 말 열강들의 세력 각축장이 됐을 때 역관들의 역할은 중요했다.

근대화 세례를 받은 일본이나 신무기의 위력을 보여준 미국이나 프랑스 배들을 보면서,이제는 새로운 문물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역관들은 그 누구보다도 직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잎처럼, 그들은 새 문화와 변화의 바람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그들은 조선이 그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변화하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신지식을 흡수하고,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고, 전문성을 활용했기에 역관들은 조선말기 열강들의 공세에 시달리는 조선의 앞날을 제시하며, 여론 선도층이라할까, 새로운 지도층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더욱이 전통적인 한어, 일어 외에도 이제는 러시아, 영어 등의 언어를 사용하는 통역관들이 등장함으로써 언어를 매개로 한 이들의 활약상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 책의 미덕은  풍성한 자료에 근거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여물고 속이 꽉 찬 그야말로 실하다는 느낌을 준다. 더러 독살설처럼 이견이 있는 부분을 사실처럼 확정하고 전개한 점은 눈에 걸렸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다채로운 실례를 통한 역관들의 이야기는 이 책 전체를 생생하게 만들고 있다.

역관들의 역할을 풍성한 사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말하면서도 시대의 흐름 전체를 파악하면서 풀어쓰고 있다는 점도 칭찬받을 일이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모두 동원해 대상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단언컨대, 조선 최고의 팔방미인 전문가 역관은 외교전선에서 무역전선에서, 변화의 소용 돌이속에서 아낌없이 그 빛을 발한 능력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0 2013.12.16. 신고 공감 4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