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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헐리웃 고전 <벌지 대전투>를, 모 채널을 통해 늦은 시각에 보았는데(어제, 토요일 오전에도 재방영하더군요) 멋지게 찍힌 장면들이 많아 꽤 흥미로웠습니다.
탱크는 이미 1차 대전 당시에 등장했었으나 이때만 해도 아직 말 타고 장검을 빼어든 채 적진으로 돌진하는 사나이들의 로망이 죽지 않았을 무렵입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전쟁관, 전술 프레임에 아직 사로잡힌 쪽에서는,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 2차 대전을 맞고선 큰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반면, 변화한 시대를 정확히 읽고 이에 알맞은 창의적 전술에 적응한 이들은 그야말로 천재 소리를 들어가며 만인의 찬사(피아 불문)를 받는데... 개전 초기 독일이 승승장구했던 건 첫째 선전 포고도 없이 비겁한 선제 공격을 가하는 오랜(더러운) 전통(요걸 일본놈들이 고대로 따라했죠), 둘째 이처럼 시대의 변화를 잘 읽은 천재적 사령관들의 맹활약(탱크 등 기계화 사단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에 크게 힘입었을 뿐 무슨 히틀러 따위가 일세의 영걸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소련 측에서도 앞선 시기 경제 계획의 대성공 등으로 물적 기반을 (전례 없던 수준으로) 잘 마련해 두었으나 전쟁이 터지고 난 직후 역시 독일 특유의 기습 공격 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역시, 시대를 정확히 읽고 선진 군사 교범을 마련한 투하쳅스키 장군의 혜안이 존중되었더라면 애초에 그런 삽질 자체가 필요 없었을 터입니다. 멍청한 스탈린은 독재자 특유의 의심병에 걸려 가장 유능한 장군(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장교단들까지도)을 잔인하게 숙청했으니, 본인이 무능하면(지 무능이 들통날까 두려워서) 대체 자기 밑에 그나마 일 좀 한다 싶은 사람을 두고 쓰지를 못하는 썩은 체제의 병폐를 그대로 노출한 좋은 예입니다.
"판처"라는 단어를 두고 혼동할 수 있는데, 일단 대전 당시 개발된 독일 탱크의 특정 종류는 "판터"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의 panther와 철자가 완전히 같습니다(단, 독어는 명사가 항상 대문자로 시작하므로 그 점은 제외). 고대 그리스어 "판테라"에서 유래했으며, 반면 "탱크 일반"이나 장갑 무기, 무장을 가리키는 단어는 Panzer입니다. 이에 정확히 해당하는 영단어는 없고, 구태여 어원으로 따지면 독어 Panzer나 영어 paunch나 서로 동일한 라틴어 단어("배, 복대"라는 뜻)를 공유합니다. 단 영단어 paunch에야 탱크, 전차라는 뜻이 없음은 너무도 명백하고요(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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