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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쪽만 넘겨도 내 삶의 시원(始原), 태곳적 어느 곳을 거니는 듯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사랑, 순수함, 섭리에 대한 넓디넓은 포용의 숭고한 정신이 그대로 마음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것만 같다. 아니 잊혀졌던, 잠자던 그 순수의 겸허가 비로소 깨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느낌을 무어라 해야 할지, 담아낼 길 없는 조악하기만한 언어의 최고표현으로서 그저 아름답고 숭고하다 할 밖에 없다.
시렁주 밖에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는 밤, 엄마‘다마라’의 달뜬 목소리와 아빠‘린커’의 소곤거림 속에 일어나는 바람소리조차 순박함과 신비로운 생명력을 지닌 고결한 언어가 되어 향기롭고 유쾌한 세계로 침잠하게 한다.
아흔이 된 숲 속의 어원커 족 여인, 그녀 인생의 새벽과 정오, 황혼에 이르는 삶의 시간에 깃든 사랑과 상실,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오열과 고통, 화해와 결별,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의 일련의 사건들이 오늘, 우리가 겪는 것들의 오염됨, 추함과 얼마나 격이 다른지 그곳으로 달려가고플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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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독서모임 #츠쯔젠 #어얼구나강의오른쪽 #들녘출판사 #마오둔문학상 #독서모임선정도서 #중국문학 #중국소설 #중국소수민족 #북스타그램 1964년생 츠쯔젠이라는 중국작가는 처음 본 작가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으로 2008년 마오둔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중국내에서는 그래도 이름이 있는 작가이지만, 국내에서는 이 작품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옮긴이의 말을 보니 이 작품은 자신의 어릴적 경험을 토대로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서 집필 하였다는 설명이 있다. 이 작품은 어얼구나강의 오른쪽 (왼쪽 땅은 러시아 땅이다) 에 살던 어원커 (퉁구스족)의 마지막 세대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마지막 추장의 여인인 화자의 시점을 통해서 총 3부로 이루어딘 4대, 100여년의 가족사를 그리면서 중국소수민족 퉁구스족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아흔살이 넘도록 장수를 하다보니 100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별다른 사건이란 것은 없다. 그냥 어얼구나강 처럼 흘러가는 삶과 죽음의 모습을 담담히 담고 있고, 전쟁과 문명의 침범으로 사라져가는 소수 민족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한족으로 구성된 중국 소수민족과는 다르게 어원커들은 몽골의 유목민들 처럼 순록들과 함께 어얼구나 강을 따라서 이동을 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일정한 거주지가 없고 천막같은 곳에서 수렵생활을 하는 모습들이 츠쯔젠의 글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책을 보다보면 동물을 잡아먹는 것에서 문명사회에서 나고 자란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잔인하고 미개한 것 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정작 잔인하고 미개한 것은 그들이 아닌 우리라는 것을 책의 마지막을 덥고 나면 깨닫게 된다. 이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 , 병듬과 죽음이란 것도 담담하게 마딱뜨리며 그렇게 삶을 흐르는 데로 살아나아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존윌리엄스 의 #부처스크로싱 과 #JM쿳시 의 #야만인을기다리며 #루이스세풀베다 #연애소설읽는노인 이라는 작품들이 많이 생각이 났다. 언급한 작품들에서 부처스크로싱(인디언), 야만인을기다리며(남아프리카), 연애소설읽는노인(브라질원주민)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산업화와 문명화로 인해서 사라지는 자연과 그 자연속에서 순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들의 터전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역사가 무너져가는 모습들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도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에서 살았던 어원커족, 이 어얼구나강에서 13세기에 칭기스칸은 말을 달려 부족들을 통합하고 대륙을 달려 지구의 절반을 통일하는 인물이 등장했고, 그 칭키스칸의 휴예일수도 있는 부족들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이야기에 굉장히 맘이 아팠다. 작품을 읽으면서 대자연의 광활한 초원과 북방의 삼림을 상상하면서 힐링을 했고, 러시아와 몽골의 문화가 융합된 중국의 이야기라는 오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처음 들어본 마오둔 문학상의 수상작품은 어떠한지 느낄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은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것' 이라는 교훈을 받으면서 책을 덮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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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원커의 여인이다. 우리 부족 마지막 추장의 여인이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어미니의이름은 다마라, 아버지는 린커다.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 아버지는 흑곰 한 마리를 잡았다. 나무 굴에 웅크리고 겨울잠을 자고 있던 곰을 찾아낸 아버지는 좋은 웅담을 얻을 심산으로 자작나무 가지를 들쑤셨다. 슬슬 약이 오른 곰이 격노하자 그제서야 아버지는 사냥총을 쏘았다. 곰이 화를 내면 담즙 분비가 왕성해져 두둑하게 부풀어 오른 쓸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일진이 괜찮았다. 윤이 좌르르 흐르는 두둑한 웅담 하나와 나를 한 쾌에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p.15>
표지가 넘 맘에 들어 읽게 된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특이한 제목도 한 몫 했다. 무슨 뜻일까 굉장히 궁금하더라는 ~ 중국문학을 크게 즐겨 읽지는 않지만 19세기 중국 후난성을 배경으로 여자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온 비밀의 문자 '누슈'를 통해 평생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두 여인의 삶과 사랑을 신비롭고 아름답게 그려낸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숲 속 여인'의 놀라운 100년 삶을 증언한다는 글귀에 반해 집어든 이 책. 설화와 비밀의 부채와 비슷해 비교해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 냉큼 집어 들게 되었는데 순전히 상상으로 쓴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다양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 다싱안링에서 태어나 열일곱이 될때까지 살기도 했고 2005년, 어원커 족의 발자취를 좇아 탐방을 마치고 이들 부족의 100년사를 조망한 작품인지라 사실적이라 맘에 든다.
밤에도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시렁주에 살며 고기를 먹고 사냥을 하며 불씨와 순록을 귀히 여기는 어원커 부족. 다람쥐가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버섯을 보고 다가올 겨울 날씨를 미리 점치는 그들. 눈밭의 발자취를 찾지 못하면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버섯을 찾으며 친칠라 사냥을 하고, 소금 함정을 이용해 사슴을 잡으며 자연을 벗삼아 삶을 꾸려나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한동안 내가 즐겨봤던 다큐멘타리 한편를 떠올리게 했다. 툰드라에서 살고있는 지구상의 마지막 순록 유목민인 네네츠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최후의 툰두라>로 그들 역시 자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자신들의 친구이자 먹이 그리고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주는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부족인지라 이들의 모습이 그들과 많이 닮아있어 익숙하면서 친근했는데 다큐를 소설로 옮겨놓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자연에서 얻은 것들을 이용해 유지해온 그들의 삶. 하지만 가스를 얻기 위해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술과 마약에 노출된 네네츠 족의 모습은 굉장히 충격적 이었는데 어원커족 역시 부차별한 벌목으로 인한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현대 문명의 투입으로 부족의 일원이 산을 버리고 마을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그 모든 것도 사랑하는 여인을 뒤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니두 무당과 다른이의 생명은 물론 죄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사랑스러운 아이의 목숨을 신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던 니하오의 운명과 견주지는 못하리라. 가장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물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쉽게 손에서 떠나는 법이라는 말.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걸까 ~
어얼구나 강은 헤이룽 성 서남쪽 변경에 위치하며, 오늘날 내몽고 자치구 동북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가르는 강이다. 1689년 7월 24일 청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맺어진 '네르친스크조약'으로 인해 어얼구나 강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게 되고 그 명칭도 둘로 갈라지게 되는데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에서 사는 어원커족, 마지막 추장의 여인이었던 아흔살인 '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새벽 - 정오 - 황혼으로 이어지는데 아흔해의 삶, 그것은 그녀의 삶이자 곧 소수민족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되어 장엄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진행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들이 또다른 가정을 꾸리면서 쭈욱 이어져온 그들의 삶. 그 속에는 자연을 벗삼아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순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운명같은 사랑이야기도 있고, 소박한 즐거움이 있으며, 자신의 자식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다른 이의 목숨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이의 사무친 모정도 담겨 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이름을 남겨놓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바램에 린커, 다마라, 니두 무당, 라지다, 와뤄쟈, 니하오 등등과 다르게 그녀를 기억해낼 수 있는 이름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서운하지만 해와 달, 바람, 순록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나는 가만히 그녀를 떠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는 라지다를 좋아했지. 그런데 라지다는 지금 어디있지? 이완은 나제스카를 좋아했어. 그런데 나제스카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지 않았니? 린커와 네 큰아버지 니두 무당은 네 아마였던 다마라를 좋아해서 겵를 벌이게 됐어. 진더는 니하오를 좋아했지만, 니하오는 루니한테 시집가지 않았니? 난 깨달았어. 사랑하는 건 반드시 잃게 된다는 사실을. 오히려 사랑하지 않은 것이 오래도록 함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푸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가슴속 깊이상처를 간직한 여인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 설파하고 있었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사랑했다면 찰나의 행복이 떠나가버린들 무엇이 두렵겠는가. <p.237>
사랑하라. 인생에 있어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찰나의 행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가슴에 새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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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디언도 그렇고 남미나 아프리카의 소수 민족들은 타의에 의해 그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적으로 빼앗기는 여러 가지 고통스런 슬픈 역사의 일면들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익히 배워서 알고 있다. 물론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통의 역사들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들의 역사가 더없이 우리에게 애절하고도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지나간 과거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아픈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와 몽골과의 지역에 존재했던 여러 부족들이다. 이 작품은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가로지르는 어얼구나 강 주변을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삼아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그 명맥을 유지해왔던, 어원커 족의 숙명적인 삶을 서사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로 하여금 적잖은 감동을 전달해 주고 있음은 물론, 문학의 묘미를 한층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로 다가서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는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이제는 과거의 흔적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그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목도하면서, 작품을 통해 문명의 이기주의로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비판하면서도, 어원커 부족 사람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를, 그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은연 중 일깨워주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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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의 사는 사람들의 삶은 현 시대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신기하고 재미있게만 보인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서 살으라고 한다면 하루 이틀 야영을 즐기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손사래치면 거부할게 뻔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얼구나강의 오른쪽과 비슷하게 문명에 흡수되지 않은 부족의 이야기를 다룬 모리카오루의 신부이야기를 보면서도 주인공 여성의 당참과 멀티플레이적인 능력에 반하면서도 이내 저리 살기란 쉽지 않겠다라는 결론으로 매번 책을 덮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애초에 어얼구나강의 오른쪽의 작품은 특정 부족에 대한 호기심 따위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다. 근래들어 중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한 몫했지만 속물스럽게도 제7회 마오둔 문학상 수상작에다 루쉰문학상을 세차례나 수상한 작가 츠쯔젠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붙들고 앉아 읽게된 어얼구나강의 오른쪽은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을 접어두고라도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대개의 문학상 수상작은 지금껏 내가 읽었을 때 읽는 데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는 작품이었다. 내용이 좋은 줄은 알기에 읽으면서도 그것이 못내 불만이었는데 이 작품은 그런 편견을 깬다. 하지만 시간은 오래걸린다. 옮긴이의 말까지 포함해서 471페이지에 달하니 재밌게 읽어도 쉽사리 마지막 페이지가 보이지 않을 수 밖에. 대략의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나는 어원커의 여인이다. 우리 부족 마지막 추장의 여인이다."라고 말하는 '나'의 시선으로 본 어원커족의 100년사다. 그들 삶의 주변에는 늘 순록을 비롯한 동물들과 나무열매, 그리고 무속신앙이 때로는 그들에 의해 사라지고 다시금 그들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 그들에게 100년동안 맞딱들이게 되는 것이 아주 단순한 의미의 문명이 아니었다는 점이 안타깝기도 하고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쓰리게 하는 장면도 여러차례 등장한다. 일본군에 의해 상처입을 때도 그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이뤄지지 못했음도, 하나를 살리면 결국 다른 하나가 죽을 줄을 알면서도 살릴 수 밖에 없는 무녀의 처연한 운명이 그러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보여주는 부족의 경우 대개의 문제나 압력은 문명에 의한 것이었으나 어원커부족은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에 의해 무녀의 신기가 사라지듯 부족의 존재도 스러지는 듯했다.
p.78 허나 이런 강은 마치 하늘가로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었다. 강을 추억할 때 마다 나는 이름 없는 강을 낙타사슴 강이라고 불렀다. 그 강에서 처음으로 낙타사슴을 보아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작가 츠쯔젠은 실제 어얼구나 강이 흐르는 다싱안링에서 태어났으면 그곳에서 17살이 될 때까지 살았고, 이후 2005년 어원커족의 발자취를 조사하여 이 작품을 완성했다. 어느 지역에 대해 표현할 때 지나치며 보는 것과, 책을 통해 보는 것과, 단 1년이라도 그 지역에서 머물며 지내본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난 지나치면서 본 것도 아니고 그저 한권의 책을 통해 어얼구나 강을 만났다. 작가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원커족도, 어얼구나 강의 삶도 몰랐을 것이다. 책,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은 이야기속 '나'처럼 소멸해가는 것, 이름이 없는 것에 의미를 불어넣어 잠시나마 사람들의 기억속에 머물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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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꼭 뭔가를 얻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시나 소설을 읽을 때 바라는 건 마음에 오래 남을 한 문장이다. 더고 덜도 말고 딱 한 문장! 그 "딱 한 문장"을 오랫만에 찾았다. 제목도 특이한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에서. 처음엔 어얼구나 강은 대체 어디일까, 오른쪽은 또 뭘까 한참 궁금했는데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지다보니 내가 어느새 어원커 족의 여인이 되어 있더라. <가장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 손에서 빠져나가는 법이다>라는 문장에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색연필로 밑줄을 죽 그으면서 잠시 생각했다. 그런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이었나? 그것들은 정말 내가 아끼던 순서대로 사라졌나?...그럼, 오래 오래 곁에 두고 싶으면, 무심해야 하나? ...사랑하지만 결코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는(그래서는 안 된다) 여인을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깃털 치마를 만든 남자,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치마를 입는 여자, 신령한 순록의 무리를 이끌고 강과 숲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그들 유목민의 바람 같은 이야기. 강으로 살면 어떤가, 또 서늘한 바람으로 살면 어떤가.... 참 <좋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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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순록은 아니지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자연에 순응하는 이런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함께보다는 혼자, 자연보다는 기계문명을 더 소중히하며 살고있다. 그래서 우린 바쁘게 정신없이 가득 채우고 살지만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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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이라고 해봤자 루쉰의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를 제외하고는 읽어본 적이 없다. 때문에 중국이 바로 옆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설이 유럽권이나 남미권의 소설들보다 낯설게 느껴진다.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을 집어들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더구나 이 소설의 주가 되는 인물들은 중국 정치계나 일반적 관념에서 주류가 되는 중국인들이 아니라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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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를 비롯한 위구르 자지구에서 중국 정부에 대한 소수 민족의 궐기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