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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민족적 영웅 서사시 [이고르 공]
"러시아 민족적 영웅 서사시 [이고르 공]" 내용보기
세상풍경을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시선을 매개로 바라보는 일이 일반화되다보니 가끔씩 스스로 미래를 꿈꾸어 본 적은 있는지 자문할 때가 있다. 사람은 언제나 꿈과 미래,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에 나이들어가는 것과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을 습관처럼 하다보면 깊어가는 자신만의 자화상을 갖게 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리적으로 일상을 압박하는 현실앞에 매일매
"러시아 민족적 영웅 서사시 [이고르 공]" 내용보기

세상풍경을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시선을 매개로 바라보는 일이 일반화되다보니 가끔씩 스스로 미래를 꿈꾸어 본 적은 있는지 자문할 때가 있다. 사람은 언제나 꿈과 미래,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에 나이들어가는 것과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을 습관처럼 하다보면 깊어가는 자신만의 자화상을 갖게 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리적으로 일상을 압박하는 현실앞에 매일매일 인터넷 포털싸이트를 장식하는 화려한 비쥬얼의 연예계 인사들의 행보는 그야말로 별천지이다. 아이돌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상이 아마도 그 안에서 싹트는 건 아닐까. 21세기의 일이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중세사회에서도 비슷하게 행해졌다. 중세시대 대다수의 학생들은 성직자가 되기를 갈망했다. 적어도 그렇게 되기를 열망했기에 교육과 훈련은 성직자되기 맞춤형으로 재단되었고 교육은 그 기관역할을 주도한 수도원과 큰 교회에 부속된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실제적인 음악교육이 주축이 되었으나 기초교육의 산만한 구성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고 사변적인 이론위주에서 실제적인 음악교육으로 발빠른 방향제시를 했음은 중세의 음악논서들이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중세 시대 제도권안의 음악은 어떠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세음악의 주류는 교회안에서 이루어졌고 그 외 교회밖에서는 어떠한 음악도 연주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맞는 말도 틀린 말도 아니다. 종교밖에서는 세속 음악이라는 그레고리안과 극을 이루는 쟝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라틴어 가사로 구성된 노래들, 즉 골리아드의 노래들(Goliard Songs)이라는 레퍼토리가 형성되었는데 골리아드들은 대학들이 설립되기 이전 이 학교 저학교를 떠돌아다니던 학생들, 곧 자유로운 성직자들의 그룹을 지칭한다.  이들의 방랑기는 존경할만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그들은 노래로써 일상을 칭송했고 승화시켰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 내용은 치기 어린 젊은이들의 영원한 삼위일체인 술, 여자, 익살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의 대중가요의 흐름속에 담긴 중독성있는 멜로디와 무한반복되는 가사를 돌이켜보면 비슷한 느낌이 온다. 카알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들어보면 무한 재생되는 음의 섬세한 기강이 신랄하고 꾸밈이 없다. 영국의 전설적인 아더왕이야기나 판타지 어드벤처의 진수인 반지의 제왕등의 영상과 동시에 이 멜로디가 울려퍼지면 가슴속 숨어있던 열정이 박차고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세속적인 노래들은 지방어로 분류된 가사속으로 들어와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준다.  그 중 샹송 드 제스트 (Chanson de geste)는 중세 지방어 노래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민족적 영웅들의 행적을 자세하게 해설하는 서사시를 일컫는 말이다. 샹송 드 제스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무훈시가 바로 롤랑의 노래 (Chanson de Roland)로, 11세기 후반 프랑스 민족적 서사시로써  샤를르마뉴 시대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럼 이러한 샹송 드 제스트를 노래하고 연주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10세기경에 최초로 등장하는데 전문성과 음악성을 기반으로 한 죵귤레르(Jongleurs) 또는 메네스트렐(Menestrel)이라고 불리우는 음유시인들이었다. 일찌기 페트라르카는 그들을 "그렇게 많은 재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놀랄만한 기억력을 갖고 있으며, 매우 부지런하고, 말할 수 없이 뻔뻔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비단 열정적인 대중 가수들의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대에서 어떠한 자세로도 연주가 가능한 오페라 가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노래와 행위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서두에 민족적 영웅에 관한 서사시를 설명한 까닭은 바로 러시아의 국민악파중 한 사람인 알렉산드르 보로딘(1833~1887)의 그만의 개성이 넘치는 오페라 < 이고르 공>을 이야기하고자 함이었다. 음악비평가이자 러시아 국민악파 그룹 <5인조>의 이론적 지도자였던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보로딘을 비롯하여 밀리 발라키레프(1837~1910),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1908) , 모데스트 무소륵스키(1839~1881), 세자르 퀴 (1835~1918)를 러시아 국민음악의 5인조로 명칭하여  후대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로 이어지는 러시아 음악은 대중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보로딘은 스타소프의 권유로 이 오페라의 작곡을 결심했지만 띄엄띄엄 작곡된 부분만이 연주회용으로 채용되었을 뿐 작품의 구성력이 발전적이지 못했다. 서곡과 프롤로그, 제2막의 포로베츠 인의 춤, 몇 개의 아리아와 합창만이 완성되었고 그 밖의 것들은 피아노 악보가 대부분인 작품 스케치에 그치고 말았다. 이를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그의 제자 글라주노프가 공동으로 정리하여 피아노 악보와 스케치만 남은 곡에 오케스트레이션을 붙이고 보충하여 완성한 것이 한 편의 오페라 <이고르 공>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끝나 있고 제3막과 제4막의 음악의 빈약함때문에 전체를 감상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오페라의 줄거리는 12세기 키에프 공국 분열시대 이고르 공이 남방의 초원지대에 나타난 유목 민족 포로베츠 인과 싸우는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영웅의 이야기이다. 러시아 인은 동방 유목 민족을 총칭하여 타타르라고 불렀고 중국식으로는 달단이라 불리웠다. 국민적 영웅 서사시로 평가되는 이고르의 이야기는 나폴레옹 전쟁 때 모스크바에서 소실되었으나 1864년 다른 사본이 발견되어 이듬해 출판되었다. 이 사본과 승원문서인 <이파데프스키 연대기>를 기초로 보로딘은 오페라 대본을 만들고 작곡을 한 것이다. 웅장한 내용과 러시아 국민주의, 변화가 많고 정열적이며, 극적이고 동양적인 에스프리가 보완된 보로딘의 재능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구성의 부분부분을 들어보면 다양한 음악가의 음악이 들린다. 비제의 프랑스적인 멜랑꼬리가 들리고 베르디의 이탈리아적인 감성이 들리고 독일적인 리트의 우수가 들린다. 한마디로 러시아 국민음악이라는 민족적 정서는 이 버무려진 다양성때문에 약간은 허울과 베일에 가려졌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시즌 독일 오페라 무대에 <이고르 공>이 오를 예정이다.  북독일 클래식 미디어 프로그램에서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분위기를 미리 보여준다. 이 오페라의 아리아와 합창을 공들여 방송하는데 음악과 연주가와 이를 알리는 대중방송의 합작이 오페라의 대중성을 부추기는 역할과 적절하게 뒤따르는 객관적인 해설은 일반인들의 합리적인 문화소비심리를 파고들기에 충분하다. 이중적 사고를 지닌 독일인들의 음악적 잣대가 어떻게 측정될 지 궁금하다. 객석에서 그들을 겪게 되면 음악에의 지향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결에 들린 박수 소리에 불쑥 깨어 느닷없는 앙코르는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b*******e 2012.03.07. 신고 공감 14 댓글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