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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 청년실업율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비정규직이고, 임금은 물가변동을 감안하면 10년전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물가상승과 사교육비등으로 결혼후 맞벌이를 해도 전세금은 오르고 자녀들의 사교육비등을 감당하기조차 힘들다.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삶에 허덕이다 보니 그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처 신분제도가 부활한것처럼 삶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신세대 X세대도 아닌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고, 게다가 냉전시대는 한반도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함을 안고 미래를 준비해야만 한다. 2012년 종말론까지 가세한 탓인지 미래를 예측한 책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중에서 이책의 저자 조지 프리드먼의 경력이 눈에 띄는 이유는 그의 전세분석 적중률이 무려 80%에 달하고 미 국방부의 조간브리핑에서 조차 그의 정세예측 보고서가 올라가며 세계220만명의 사람들이 유료로 구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은 처음엔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100년 후' 라는 그의 전작의 초반을 읽어 나가며, 미국인에 의한 미국을 위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제일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계속 읽어나가며 알 수 있었다. 전작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정세를 예측했다면 이번에는 전작 보다 작은 범위의 10년동안을 이야기 한다.
소련의 붕괴이후 미국은 유일한 패자로서 21세기를 맞이했으며 전세계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집을 좀처럼 꺽지않고 있는 북한마저도 미국을 가장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실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미국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감정을 버리고 능동적으로 우리의 국익을 위해 미국을 활용할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좋던 싫던 전혀 상관없이 그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문가는 물론 미국의 전문가조차 중국이 미국을 앞질러 패권을 장악하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지만 저자는 중국의 몰락을 예측하는 것이 눈에 띈다.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이고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 해군의 약세를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현재 위상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나라에 그다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 911테러 이후 중동문제나 러시아, 유럽의 정세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저자는 결국 미국이 이슬람 세력과 타협하고 소련 붕괴이후 유지해왔던 균형잡힌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저작 전반에 걸쳐 강조하는 - 미국에게는 적도 없고 동맹도 없다. 단지 국익만이 존재 할 뿐이다 - 라는 말은 저자가 맹목적으로 자신의 국가에 대해서 찬양하는 사람이 아니고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인인 저자 조차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오히려 일부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일본의 강점기를 묵인한 것, 파리강화회의에서 미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기대를 걸던 한반도를 무시하고 1차대전 승전국의 식민지 해방은 제외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 한반도의 분단은 미국이 끼친 악영향이다. 6.25에 참전한것도 돕기 위한것이 아닌 미국의 이득과 미국의 방침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지 돕고 자시고의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1,2차 대전 전쟁사를 대충 살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감정을 실어 호감이나 적대감을 생성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불과하다. 그것보다 미군과 우리의 불합리한 조약을 우리에게 더욱 유리하게 조정하는 것에 신경써야 한다. 미국이 싫거나 좋거나 하는 감정따위는 우리의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철저하게 미국을 중심으로 쓰인 책이지만 미국이 강대국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저지른 인디언 학살, 노예제도, 한반도에서 벌인 온갖 범죄들과 학살들, 미군범죄들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요소도 무척 많다.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 역시 미국인이고 민주주의나 인권문제등을 위해 애쓰는 것도, 인디언 학살의 역사를 밝힌 책을 쓴것도 미국인이다. 미국은 미워해도 미국인은 미워하지 말자는 말이 있지만 난 반대로 일부의 미국인은 미워해도 미국은 미워할 수 없는게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인 점을 떠나서 미국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인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고 여러번 이야기 하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미국을 우리의 이익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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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은 대규모 변혁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급격한 전환과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슬람 세계의 전쟁은 잠잠해질 것이고, 인류는 테러리즘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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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국 대통령을 위한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그렇듯이 이책은 통치자의 관점에서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말하려 한다. ‘군주론’은 권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행사하는가를 말한다. 당연히 그 독자는 권력을 가진 군주이다. 이책의 독자 역시 권력을 가진 자, 그중에서도 미국의 대통령을 독자로 한다. 그러나 그 독자의 성격은 미묘하게 다르다. 이책의 저자는 미국 내의 권력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제국의 권력을 논한다. “미국은 내가 저력(deep force)라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이 저력이란 최고의 균형잡힌 힘이 되어야 한다. 균형잡힌 힘이란 경제력과 군사력, 정치력이 적절하게 상호보완적 총합을 이룬다는 의미다. 들어 유럽은 경제력은 있지만 군사력은 미약하고 토대도 얕다. 튼튼한 뿌리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균형잡힌 힘을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세계적 패권 다툼에서 미국과 경쟁할 국가가 모두 사라졌다. 이제 미국은 이런 상태를 좋아하든 말든 그리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냉전을 극복하고 국제적인 패권국가로 떠오른 동시에 세계적인 제국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과 달리 미국의 지배구조의 비공식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대양을 통제하며 경제는 전 세계총생산의 25%를 차지한다. 미국인들이 아이팟이나 새로운 식도락거리를 만들어내면 중국과 라틴아메리카에 있는 공장과 농장은 체계를 개편하여 새로운 주문을 충족시킨다. 이는 19세기 유럽열강들이 중국을 지배하던 수법이다. 그들은 절대로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공식과 비공식의 구분에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중국을 개조하고 약탈했다. 미국은 상대국가에게 이익을 줄 때나 위협할 때만 한 발짝 움직인다. 이런 힘은 큰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만 본성적으로 적댁감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은 상업공화국이다. 이는 미국이 교역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엄청난 부는 자원과 미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세계와 단절된다면 그것조차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이 규모와 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자신이 제국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제국의 전략은 힘의 균형과 divide and rule로 정리된다. “다음 10년을 위한 미국의 정책에 필수적인 항목들 중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균형 잡힌 세계전략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제국과 100년전 대영제국의 사례를 통해 배운 것처럼 말이다. 이들 구세대 제국주의자들은 주력부대를 동원해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다(여기서 저자는 부시 2세의 거창한 실패를 암시한다). 대신 여러 국가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을 조성한 뒤, 어떤 국가가 저항을 선동할 경우 주변의 다른 국가들을 통해 그 국가를 상대했다.” 패권국의 지상목표는 자신의 패권을 위협할 경쟁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패권 역시 경쟁자가 없어야 한다. 자신과 대등한(세계적 차원은 아니더라도 지정학적 요충지에 한정된다 하더라도) 상대는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저자가 이책에서 제안하는 전략은 이렇다. “다음 10년 동안 미국은 이런 시도들 (저자는 부시의 헛짓을 말하고 있다) 때문에 발생한 고갈과 혼란에서 회볷하는 작업에 주력하게 된다. 그 첫번째 단계는 지역적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정책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는 지중해부터 힌두쿠시 산맥에 걸쳐 현재 미군이 개입하고 있는 주요 지역들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지역에는 세 개의 고유한 지역적 힘의 균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랍-이스라엘, 인도-파키스탄, 이란-이라크 사이의 균형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세 균형은 모두 무너졌다. 이스라엘이 균형의 한 축이 된 것은 저자가 말하는 힘의 균형 전략의 전형적인 예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유대인의 로비 라든가 어떤 음모 때문이 아니라 제국의 본능때문이었다. 냉전시절 중동에서 소련과 힘의 균형을 만들어야 할 때 불행히도 이집트, 시리아 등 지역의 핵심국가들은 소련을 선택했다. 미국으로선 이스라엘을 키워 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더 이상 이웃의 아랍국가들이 제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며 심지어는 그 지역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제 이스라엘은 미국의 짐일 뿐이라 말한다. 일찌감치 손을 썼어야 하는데 내버려둔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과 거리를 둘 때이다. 나머지 두 균형 역시 미국 때문에 무너졌다. 파키스탄은 아프카니스탄 전쟁 덕분에 약화되었다.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사실은 하나의 실체이며 양측이 다양한 인종과 부족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치적 국경선은 벌 의미가 없다는 좀더 근본적인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필연적으로 파키스탄으로 확대되어 내부 갈등을 촉진한다. 이는 파키스탄을 약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알카에다와의 전투를 돕고 아프카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에게 협조하라는 압박을 받은 파키스탄이 얼마나 분열되느냐에 따라 인도와의 대치상태가 붕괴되고 그 지역에서 인도가 핵심새력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최우선 전략은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파키스탅을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라크와 이란의 균형 역시 미국 때문에 무너졌다. “그 지역에서 오직 두 나라만이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 만큼 크고 강력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 두 나라는 바로 이란과 이라크다.” 그러나 이라크는 미국이 무너뜨렸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이란을 인정하라고 제안한다. “이란은 이미 지역 내에서 지배적 세력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란이 이웃에게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까지 막을 필요가 없다. 이란의 영향력이 보여줄 양상들은 지역적 계획에 대한 재정적 참여, OPEC의 원유생산량 쿼터 설정,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의 내정 등과 같은 범위 안에 있다. 약간의 절제만 보여준다면 이란은 자신들의 원유가 시장에 도달하는 것을 보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우월한 위치와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이란은 몇천년전의 페르시아 제국 시절을 아직도 자랑한다. 그런 나라가 실제 원하는 것은 그 지역에서 목에 힘을 주는 것 정도이니 그냥 인정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란은 서남아시아란 더 큰 체스판에서 다른 말을 사용해 충분히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가 그 답이다. “이란에 대한 평형추 역할을 감당하고 지역 내에서 잠재적인 장기적 세력이 될 역량을 갖춘 유일한 국가는 터키다. 그리고 터키는 미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앞으로 10년 내에 그 지위에 도달하게 된다. 아랍 세계는 시아파 이란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대변자를 지속적으로 물색하며, 오스만제국 시절 터키가 아랍을 지배했던 쓰라린 역사에도 불구하고 수니파 터키는 최고의 후보자가 된다.” 이란과 터키의 대립은 오스만제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새삼스러운 견해는 아니다. “미국과 장기적인 협력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는 바로 터키다. 게다가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미국에게 매우 가치있는 동맹자가 될 수 있다. 이는 러시아의 욕망에 대한 차단막 역할을 수행고 있는 발칸반도와 카프카스 지역에서 특히 터키의 엯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책의 내용이 감이 잡힐 것이다. 제국황제의 논리이다. 그러나 이책은 황제만 봐야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이 어떤지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의 생각은 황제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위치에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예를 들어 부시 2세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저자의 해석을 들어보자. 흔히 레이건과 부시 2세를 극단주의자라 생각한다. 그의 정책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관념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부시의 감세정책이라든가 재정팽창정책 등은 (레이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공급주의 경제학의 극단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지 W 부시의 논리는 지정학과 미국 내부의 정치에서 출발햇다. 그는 이슬람 전사들과 전쟁 중이었다. 그러나 군사개입에 따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려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경제를 자극하여 조세 수입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원했다. 이론에 따르면 군사비 지출과 세금감면, 낮은 금리가 어우러질 경우 경제가 팽창하여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충분한 정도로 세수가 증대된다. 만약 이런 공급 측면에서의 도박이 실패하더라도 부시는 2004년 대통령 선거 이전에 감행했던 증세가 정치적 기반을 약화하지 않은데 따른 이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그는 선거가 끝나고 전쟁이 종결됐을 때 자신이 경제적 불균형을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얼마나 격렬하게 전개될지를 지독할 정도로 과소평가했던 거시다. 그 결과 부시와 연준은 경제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문제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전쟁이란 목적을 위해 세웠던 경제정책에 계속 발목 잡힌 채 대통령 직무수행에 제약을 받았다.’ 단무지로 통했던 레이건이 사실은 똑똑했던 것처럼 부시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러면 애초에 왜 전쟁을 시작했는가? 역시 지정학이 문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빈 라덴의 목표는 이슬람권을 하나의 신정국가로 되돌리는 것이엇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체제를 흔들어야 하는데 “빈 라덴의 분석에 따르면 이슬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목표들을 달성하기에는 그들의 지지가 너무 미온적이고 불충분했다.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그는 적어도 한 곳,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수의 중요한 이슬람 국가에서 폭동을 유발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의 대중들이 그들의 정부를 압도적인 힘과 확고한 장악력을 가진 존재로 보는 한, 그것은 실현불가능했다.” 그래서는 그는 미국을 흔들기로 햇다. 그가 보기에 이슬람권 정부의 힘은 미국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사실 그 정부들은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고 “빈 라덴의 바람은 미국조차도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자신들의 정부가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이슬람인들의 인식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9/11이 이슬람의 심리를 겨냥한 것이엇지만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미국인들의 심리였단 것이다. 실질적으로 알카에다는 미국에게 전략적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냥 귀찮은 모기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인들 사이에 울려퍼진 심리적 경보음으로 인해 미국 정부가 당면한 전략적문제는 복잡해졋다. 침투력이 강하고 뿌리 깊은 불안감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반드시 이에 대처해야 하며 최소한 결정적 행동을 취하는 흉내라도 내야한다. 이 시기에 부시는 미국의 번영에 관한 국민적 자신감의 위기상태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알카에다는 9/11 테러가 이슬람 세계에 미칠 영향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이 부시에게 가할 정치적 압박을 고려하지 못하는 착오를 저질렀다” 그 결과는 별 쓸모도 없는 땅인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재빠른 공격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성공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완벽한 실패이다. 그럼 왜 부시는 그런 재앙 속으로 걸어들어갔는가? 저자는 중동의 지정학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하려면 아랍 동맹국들의 협조가 필요햇다. 그러나 동맹국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심혈을 다해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도록 압박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 중동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힘을 행사하는 전략을 구사하려 했다. 이것이 이라크 침공에 깔린 논리다. 군사적 행동은 즉각적인 결과를 초래하여 새로운 전략적 현실을 창조한다. 이런 현실은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하여 자국의 유전지대로부터 며칠 거리에 미군 기갑부대를 배치하는 상황으로 이어졋다. 그럼으로써 미국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시리아, 터키, 이란과 접해있으며 중동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인 이라크를 장악햇다. 이라크를 통제하게 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단기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는 외부로 힘을 과시하기 위한 기지로서 이라크를 이용하는 것이었음에도 보유한 모든 전력을 이라크 내부에 집중해야만 햇다. 점령의 실패는 전쟁의 성격마저 바꿨다. 전쟁의 목적이 이라크 자체로 바뀌었으며 궁극적인 목표 역시 중동지역에 새로운 전략적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적절한 시기에 미군을 철수하는 것이 되었다.” 재미있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이 옳은가? 그건 따져봐야 한다. 저자의 주장이 맞으려면 미국의 경제력이 군사력을 떠받칠 정도로 미래에도 튼튼해야만 한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국의 헤게모니의 끝이라 보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의견은 틀렸다고 본다. “대공황 이래로 이처럼 파멸적인 사태는 없었다는 식의 말이 자주 반복된다. 그러나 이는 3중으로 틀린 말이다. 2차 대전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붕괴가 세 번이나 더 있었다. 이것은 다음 10년을 예측하는데 중요하다. 왜냐하면 2008년의 금융위기와 비교할만한 대상이 대공황뿐이라면 미국이 가진 힘에 대한 나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이런 종류의 위기가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면 대공황과 비교하려는 주장이 지닌 의미는 줄어들 것이며 2008년의 금유위기가 미국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게 된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힘이 쇠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정도 규모의 힘은 순식간에 붕괴되지 않는다. 한때 거대국가였던 독일과 일본, 프랑스, 영국의 국력이 쇠퇴한 것은 부채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으로 경제가 황폐해지고 전쟁이 남긴 부산물 중 하나인 부채가 양산됐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오일쇼크 직후 70년대도 만만치 않게 어려웠다. 저자의 입장은 이번 위기는 그냥 덩치만 큰 평범한 경제위기일 뿐이란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번 위기가 헤게모니의 붕괴로 해석되는 이유는 위기 자체의 규모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징후이기 때문이다. 헤게모니 붕괴의 조짐은 저자가 언급한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The great stagflation of the 1970s was deeply affected by the parallel crisisi of American hegemony which ensued from the escalation of the Vietnam War and eventual US defeat. As for the Reagan-Thatcher neo-liberal counterrevolution, it was not just, or even primarily, a response to the unsolved crisis of profitability but also-and especially-a response to the deepening crisis of hegemony” (Arrighi 2007) 신자유주의가 왜 70년대에 등장했는가에 대한 좌파의 설명은 이윤율저하 경향에 대한 자본의 반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기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정치적이엇다고 말한다. 아리기는 50-60년대의 황금기는 군사 케인즈주의 때문이엇다고 본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은 그 시스템에 과부하를 걸어 무너트렸다. “’Stepped-up Vietnam War spending’ is said to be the reason for the sudden acceleration of price inflation in the US which, between 1965 and 1973, slowed down but did not stop the growth of real wages, This acceleration of inflation, in turn, is held responsible for the weakening of the competitive position of American manufacturers” 베트남 전쟁의 시기는 우연히 이윤율 저하 경향의 시기와 맞물렸고 “the costs of the war not only contributed ro the profit squeeze, but were the most fundamental cause of the collapse fo the Bretton Woods regime of fixed exchange rates and the precipitous devaluation of the US dollar that ensued.” (Arrighi 2007) 달러의 평가절하는 이윤율저하 경향의 부담을 경쟁자인 일본과 독일에게 전가하는 효과를 일으켰다. 그러나 아리기는 원래 닉슨 쇼크의 목적은 베트남 전쟁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엇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과거 제국들처럼 미국 역시 전쟁비용의 압박 때문에 헤게모니 위기를 겪었다는 것이다. “At least intially, the liquidation fo the gold-dollar exchange standard did seem to endow the US government with an unprecedented freedom fo action in tapping the resources of the world simply by issuing its own currency.” 그러나 디폴트를 선언하거나 실질적으로 디폴트인 화폐의 평가절하를 시도했던 이전의 제국들처럼 미국 역시 헤게모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고 오히려 헤게모니의 위기를 더 악화시켰을 뿐이다. 1979--82년의 통화주의 반혁명은 바로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도엿다고 아리기는 본다. 영국은 제국을 유지하는 돈과 병력을 모두 인도에서 끌어다 썼다. 해외에 무력투사를 할 때 영국이 동원한 병사도 인도인이엇고 그 투사의 비용도 인도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병력과 자신의 돈으로 제국을 유지했다. 베트남 전쟁은 그런 시스템의 문제를 폭로했다고 아리기는 말한다. 1970-82년의 통화주의 반혁명은 바로 그 제국의 비용과 관련된 것이라 아리기는 말한다. “The main reason why the monetarist counterrevolution was so strongly successful in reveresing the decline in US poweer is the it brought about a massive rerouting of global capital flows towards the US and the dollar.” 에드워드 시대 영국의 Belle Epoque는 자본수출 덕분이엇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의 Belle Epoque는 자본수입 덕분이엇다는 말이다. “An escalating foreign debt enabled the US to turn rhe deteriorating crisis of the 1970s into a belle epoque wholly comparable to, and in some respect far more spectaculr, than Britaion’s Edwardian era.” 그러나 자본수출의 금융화이든 자본수입의 금융화이든 금융화는 일시적인 해결일 뿐이다. 왜냐하면 금융화는 위기의 압력을 핵심에서 주변으로 전가하는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라 아리기는 말한다. “Over time, financial expansions tend to destabilize the existinf order through processes that are as much social and political as they are economic. Economically, they systematically diveret purchasing power from demand-creating investment in commodities (including labor-poweer) to hoarding and speculation, thereby exacerbating realization problems. Politically, they tend to be associated with the emergence of new configurations of poweer, which undermine the capacity of the incumbent hegemonic state to turn to its advantage the system-wide intensification of competition. And socally, the entail the massive redistribution of rewards and social dislocations, which tend to provoke movements of resistance and rebellion among subordinate groups and strata, whose setablished ways of life are coming under attack.” 신자유주의 또는 금융화는 헤게모니 위기에 대한 해법이었다. 그러나 그 해법은 언제나 일시적이었고 지속가능하지 않았다고 아리기는 말한다. 그리고 이번 위기는 다시 아리기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엇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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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 (The Next 100 Years)'의 저자 조지 프리드먼의 책 '넥스트 디케이드 (The Next Decade)'를 읽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국제정세 분석가이자 각국 정부와 대기업에 정보를 파는 싱크탱크 기업 스트랫포(STRATFOR)의 CEO라는 명성에 걸맞게 저자가 바라보는 국제정세는 한쪽에 치우치지도, 추상적이지도 않으며 우리가 맞이하게 될 다음 10년에 대한 그럴싸한 미래도를 보여준다. 스트랫포라는 기업의 도덕성과는 별개로 조지 프리드먼이 바라보고 있는 미국중심의 세계정세는 전세계 어느 누구도 무관심할 수 없고 무관심해서도 안되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스스로 바랬건 바라지 않았건 미국이라는 나라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측면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제국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이미 발을 빼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저자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제국의 모습을 인정했을 때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도덕적, 이성적, 실리적, 효율적 관점에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막힐 정도로 넥스트 디케이드의 내용은 현실적이며 분석적이고 개연성이 높은 주제들을 다룬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이 감당해야 하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역할을 확인하게 된다. 오랫만에 좋은 책을 만났고 많은 부분에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특히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이후 팽배해져 있는 시장불신과 비관론의 그림자에서 긍정론의 관점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이스라엘과 중동국가들의 역사적 탄생배경과 민족국가, 속지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정립할 수 있었다. 앞으로 10~20년 동안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정세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의 역학 관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리라는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그 안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기회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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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디케이드 -조지 프리드먼-
앞으로 10년은 대규모 변혁의 시대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급격한 전환과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슬람 세계의 전쟁은 잠잠해질 것이고, 인류는 테러리즘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기술발전과 에너지 현실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선회하게 될 것이다. 마키아벨리식 주장들의 체스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미국은 이전까지 적대적 관계에 있던 이란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반면 중국은 지금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커다란 위기와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역시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인류는 금융위기가 지배하던 시기에서 노동력 부족이 지배하는 시대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변환이 이루어지는 다음 10년 동안 미국은 점점 더 21세기의 현대판 제국으로 변해가는 자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관리하는 과제를 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급변하는 동아시아를 바라보면서 저자는 두 개의 확실한 가능성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첫째, 중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은 곧 국내외의 수많은 문제들과 함께 서서히 정체될 것이다. 둘째, 지금까지도 이미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잦은 재해에도 불구하고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두 강대국과 위의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 위치한 한국이 다음 10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 어떤 경제적 발전과정도 아무런 굴곡 없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지는 않는다. 이런 원리는 중국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늘날 중국은 극심한 경제적 변동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약적인 발전의 이면에는 10억에 이르는 가난한 국민들이 소외된 채 방치되어 있다. 이들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생존권과 극심한 빈부격차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할 것이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북한이 다음 10년 동안 충분히 살아남을 것이라 믿는다. 북한의 존속은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정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겠지만, 남한과 미국을 더 가깝게 만들어줄 것이다.
다음 10년을 위한 미국의 정책에 필수적인 항목들 중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균형 잡힌 세계전략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제국과 100년 전 대영제국의 사례를 통해 배운 것처럼 말이다. 이들 구세대 제국주의자들은 주력부대를 동원해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국가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상황을 조성한 뒤, 어떤 국가가 저항을 선동할 경우 주변의 다른 국가들을 통해 그 국가를 상대했다. 그들은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반목하는 국가들을 활용해 서로의 힘을 상쇄시키는 동시에 광대한 제국의 이익을 안전하게 확보했다.
미국의 분열과 조작 전략은 ‘철의 장막’이 처음 등장했던 시점부터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장기간에 걸쳐 이성적이고 설득력 있었으며 효과적이고 교활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특정 강대국에 초점을 맞춘 봉쇄 전략을 폐기했고 지역 패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국가가 자신들의 감정을 건드릴 때마다 그들은 억제하려고 나서는 등 초점이 분산된 시도를 보였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1990년대에 이루어진 미국의 군사활동은 파쇄공격이었다. 이 공격의 직접적인 목적은 야심에 찬 지역패권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미국이 선택한 시기와 장소에서 그들이 주변 지역과 내부의 위협을 처리할 수밖에 없도록 함으로써, 원래의 계획에 따라 미국에 대한 공격을 펼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 10년이 비록 내키지는 않더라도 미국이 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몰락을 이겨낸 제국의 반격 여전히 강력한 미국의 힘 미국 경제는 마치 소용돌이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자신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여기에는 작은 국가들을 철저하게 파괴시키거나 부유하게 만드는 미세한 흐름까지도 포함된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릴 때 그것은 마치 힘차게 구동하는 엔진과도 같다. 만약 엔진이 털털거리면 자동차 전체가 고장 날 수도 있다. 이 세상의 어떤 경제도 전 세계에 그렇게 깊은 영향을 미치거나 효과적인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상을 수출과 수입이란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5%, 심지어 10%에 이르는 국내총생산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또 엄청난 규모의 상호의존성을 보이는지 뚜렷하게 부각된다.
일반적으로 제국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서 명확한 권위체제를 갖춘 모습을 띤다. 하지만 어떤 제국은 좀 더 미세하고 복잡한 양상을 띤다. 영국이 이집트를 지배했을 때도 영국의 공식적 권력은 결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미국은 세계 전역에 영향력을 발휘하며 많은 국가들의 진로를 형성한다. 하지만 스스로 제국주의적 국가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힘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형식적, 합리적 구조를 만들지 않고 있다.
미국이 가진 힘의 핵심은 비록 경제적인 부분에 있지만 여전히 무소불위의 군사력이 그 뒤를 떠받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분노하는 국가 혹은 국가동맹이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는 조전들을 바로잡기 위해군사력을 동원하려는 것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로마제국의 군단이 그랬던 것처럼, 미군 역시 세계 전역에 배치되어 있다. 군사력을 활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새로 부상하는 국가가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기 전에 미리 분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감당해야 할 거대한 도전들 제국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나는 미래의 대통령들이 아래 제시되는 매우 유능했던 세 미국 대통령들의 사례를 따를 것을 제안한다. 그들은 특정 전략을 전적으로 무자비하게 집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원칙에 따라 그 전략을 지도할 수 있었던 리더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연방을 유지하고 노예제를 폐지했다. 그 수단은 속임수 전략과 시민의 자유를 짓밟는 것이었다. 국경지역에 있는 주들의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1858년의 엄청난 논쟁 속에서도 노예제를 폐지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결코 밝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시치미를 떼고 남부지역 밖으로 노예제가 확대되는 것은 반대하지만 이미 노예 소유가 합법인 주에서 그 권리를 폐지할 의도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링컨은 발뺌하는 것 이상의 조치를 취했다. 그는 국가 전역에 걸쳐 인신보호법에 따른 권리를 유예했다. 그리고 메릴랜드 주에서 연방 탈퇴에 찬성하는 의원들을 체포하도록 승인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는 대신 만약 메릴랜드를 비롯해 다른 국경지역의 주들이 탈퇴할 경우, 남북전쟁에서 패배하고 국가가 해체되며 미국 헌법은 무위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93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미국 의회와 대중은 전쟁을 준비 중인 유럽의 상황에 대해 엄격한 중립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민주주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비밀리에 프랑스에 대한 무기판매를 주선했고, 원스턴 처칠에게 미해군을 동원해 영국으로 향하는 보급상선들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명백한 중립법 위반이었다.
미국에게는 적도 동맹도 없다 새로운 조직체들은 지역적이어야 하며, 다음 세 가지 원칙에 따라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뒷받침해야 한다.
1. 가능한 한 세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각 지역에서 위협의 방향이 미국을 향하지 않게 해야 한다.
2. 다른 국가들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지역에서의 대치와 분쟁에 따르는 미국의 책임 중 상당 부분을 동맹국이 부담하게 만든다. 대신 동맹국에게 경제적 혜택과 군사기술을 지원하며, 필요할 경우 군사적 개입까지도 약속하는 등 다양한 방책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3. 힘의 균형이 붕괴하고 동맹국들이 더 이상 문제에 대처할 수 없을 때, 군사적 개입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대영제국의 절정기에 팔머스톤 경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나 저 나라를 우리의 항구적 동맹이나 영구적 적대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정책이다. 우리에게는 항구적인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항구적이며 영구적인 것은 우리의 이익뿐이며 그 이해를 따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이다.” 이것이 다음 10년 동안 미국 대통령이 제도화해야 할 정책 유형이다.
마키아벨리적 대통령의 출현 공화국의 미덕을 잃지 않으면서도 의도하지 않은 제국을 관리하는 것은 장기간에 걸쳐 미국의 중요한 선결 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슬람지하드 출현 이후로 특히나 격렬한 도전이 될 것이다. 한번 지나왔던 길은 결코 되돌아갈 수 없으며 적절한 해결책도 없다. 역설적으로 공화국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다. 나는 공화국을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힘의 균형보다는 대통령의 술수와 지혜에 더 큰 기대를 건다.
권력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데올로기는 하찮은 것이며 인물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대통령의 미덕과 통찰력, 빠른 판단, 교활함, 무자비함, 결과에 대한 이해력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그가 남기게 될 유산은 그의 본능으로 결정되며, 나아가 본능은 그의 인품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대통령은 공화국의 원칙을 결코 잊는 법이 없으며, 현재의 필요성에 등 돌리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그것을 보존하고 강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한다. 평범한 대통령은 원칙 따위는 무시하고 그저 현재에 유익한 것만 실행한다. 하지만 최악은 현재의 운명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전혀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원칙만을 고수하는 대통령이다.
금융위기,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미국 경제가 성장하면 스스로가 소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한다. 일단 여유자금이 주택과 주식, 채권 같은 자산에 몰려들면 가격은 상승하고 금리는 떨어진다. 결국 가격은 불합리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고 곧이어 폭락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돈이 귀해지고 비효율적인 기업들은 부도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효율적인 기업은 살아남고 순환주기가 다시 시작된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성장한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과정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도박 경제 붕괴에 대한 이야기가 대체로 미국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계 전역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기타 등등의 국가에서 평상시라면 결코 주택을 보유할 수 없는 거주자들이 집을 구입했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은행들은 특히 유럽과 아랍계의 자금을 지원받아 모기지를 제공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동유럽의 경우는 금리가 높았다. 따라서 은행들은 열정적이고 단순한 신규 구매자들에게 오로지 유로화나 스위스프랑, 심지어 엔화로 된 외채를 휠씬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었다.
문제는 주택 소유자들이 해당 외국 통화가 아니라 즐로티나 포린트 같은 자국 화폐(각각 폴란드와 헝가리의 화폐 단위)로 대출을 받았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폴란드의 주택 소유자가 은행에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먼저 엔화를 사야 했다. 즐로티로 살 수 있는 엔화가 적을수록 주택 소유자가 써야 하는 즐로티 액수는 커졌고 따라서 매달 지불해야 하는 금액도 늘어났다. 만약 스위스프랑이나 엔화에 대한 즐로티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려움 외에는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대공황 이래로 파멸적인 사태는 없었다는 식의 말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3중으로 틀린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붕괴가 세 번이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 10년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2008년의 금융위기와 비교할만한 대상이 대공황뿐이라면 미국이 가진 힘에 대한 나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후 이런 종류의 위기가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면, 대공황과 비교하려는 주장이 지닌 의미는 줄어들 것이며, 2008년의 금융위기가 미국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게 된다.
실제로 이런 사건은 꽤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는 지방채 시장에서 커다란 위협이 발생했다. 주정부와 지역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은 연방정부의 과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히 매력적인 금융상품이었다. 게다가 지방채는 정부 실체가 조세권을 갖고 있는 한, 결코 채무불이행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뉴욕시는 디폴트를 선언했고,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모든 금융시스템이 혼돈에 빠져들어 결국 연방정부가 뉴욕시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동시에 워싱턴은 지방채를 보증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시장에 분명히 밝혔다.
루스벨트와 레이건 모두 경제위기의 진정한 위협은 누적된 불행으로 인해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고 이것이 곧장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지도자로써의 역할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특단의 계획이 있을 뿐 아니라 그 계획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믿음을 대중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의 일부는 정치와 기업, 금융, 대중매체 등 어느 분야의 엘리트들이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는지와 관련된다. 레이건과 루스벨트는 기본적으로 어떤 엘리트 집단 등에 책임소재를 묻고, 그들이 가진 권한을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엘리트 집단에게 이전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대통령이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으며 실패한 엘리트 집단에게서 권력을 회수하고 있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주었다. 이런 행동은 사태를 해결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대중의 절망감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위기는 미국의 저력, 그리고 현대적 국가와 기업의 회복력 덕분에 해결됐다. 사실 국가와 기업은 따로 존재할 수 없으면서도 함께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존재다. 부시나 오바마 모두 루스벨트와 레이건이 보여주었던 만큼 국민과 국가의 심리상태를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이제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현대의 자유시장은 국가의 발명품이며, 그 내부 규칙은 자연적인 운명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의 산물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대 경제를 떠받치는 실질적 기반이 기업이며, 기업은 바로 현대 국가가 만든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매우 독특한 창조물이다. 기업은 사업상의 부채까지도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의무를 진다. 한편 기업을 소유한 개인은 그것이 단독소유든 다수의 투자자가 소유하는 것이든, 개인적으로는 기업의 부채를 갚아야 할 의무가 없다. 그들의 부담은 초기 투자보다 크지 않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와 법은 위험부담을 채무자에게서 채권자로 이전시켰다. 만약 기업이 파산할 경우 채권자가 책임을 지게 된다. 17세기 ‘특허 회사’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이런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 그 이전까지는 기업을 소유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이런 혁신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주식시장은 없었을 테고 창업 기업에 대한 투자가 불가능해 기업 활동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8년의 위기가 다음 10년에 미치게 될 가장 의미심장한 영향은 경제적인 부문이 아니라 지정학적이고 정치학적인 부문에 있다. 이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인해 사람들은 자국의 국가주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국의 금융과 통화체계를 통제하지 않는 나라는 다른 나라의 행동에 대해 취약성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유럽연합과 같은 실체들은 지금까지와 달리 더 이상 유익하게 보이지 않았다. 다음 10년간의 추세는 경제주권에서 이탈해 경제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정말 이상한 점은 2008년의 고통을 통해 지속적인 영향을 가장 덜 받을 분야가 바로 경제라는 사실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를 대공황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대공황 시기에는 GDP가 거의 50% 가까이 줄어들었다. 반면 2007~2009년 사이에는 불과 4.1% 감소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게다가 심지어 그것은 2차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불경기도 아니었다. 그 영광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불경기가 가져가야 한다. 당시 미국은 10%가 넘는 실업률 및 인플레이션, 20%가 넘는 담보대출금리라는 3중고를 겪었다.
실패한 전략, 무너진 힘의 균형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가 자행한 공격은 미국을 양면전쟁, 즉 다른 나라와의 저 강도 전투 그리고 이란에 대한 전쟁위협이란 국면으로 대응수위를 높이게 만들었다. 이것이 지난 10년을 정의했다면 앞으로 다가올 10년 중 절반은 이것을 관리하는 일에 초점을 두게 된다.
미국이 본토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알카에다를 비롯한 모든 지하드 테러집단들을 분쇄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동시에 이런 맥락 안에서 미국이 가진 또 다른 관심사는 아라비아 반도와 그곳의 석유를 지켜내는 데 있었다. 미국은 석유가 단일한 지역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없었다. 오래도록 그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은 자신들에게 의존하는 토호국들의 수중에 있기를 바랐다. 이것은 앞으로도 전략적 필수요건이 된다.
미국의 선택을 규정짓는 필연적인 결론은, 그 지역에서 오직 두 나라만이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 만큼 크고 강력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 두 나라는 바로 이란과 이라크다. 미국은 원유수송선을 보호하기 위해 아라비아 반도 점령을 택하는 대신, 제국의 고전적인 전략에 따라 두 나라의 경쟁심을 부추기고 양측이 힘의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사실상 서로의 힘을 상쇄시키는 전략을 유지했다. 이런 전략은 1979년 이란의 팔레비 국왕 몰락 이전이었으며, 그 시기 미국은 이란-이라크 사이의 전쟁을 부추긴 뒤 긴장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선에서 두 국가 사이의 화해를 주선했다.
장기적으로 빈 라덴의 목표는 이슬람 칼리프, 즉 7세기 마호메트에 의해 처음 설립되어 오스만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중동을 지배했던 중앙집권적 이슬람 종교국가의 재창설을 원하는 것이었다. 빈 라덴은 종교적이고 지정학적인 통합체로의 복귀과정이 첫 발을 내디디려면, 이슬람 세계의 국민국가에서 일련의 혁명을 통해 현 집권이 퇴진되고 자신의 비전과 신앙을 공유하는 정교일치의 이슬람 정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2001년에 그의 비전을 전면적으로 공유하던 유일한 국민국가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외지에 고립된 아프가니스탄은 일종의 작전기지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 역할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알카에다의 관점에서 볼 때, 아프가니스탄과 그 밖의 중동지역에서 벌인 미국의 활동은 미국이 이슬람의 적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심어 주었다. 지하드 전사들은 폭동이나 결코 실현되지 않은 격변이 일어나 정권이 붕괴되기를 기다렸다. 이슬람 세계의 정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편으로 이슬람 세계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자기 정권의 보안기구가 여전히 잔악하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정권이 계속 양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의 파쇄공격이 갖는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했으며 그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은 모두 제한적으로 정보를 공유했으며 미국의 각오가 어느 정도까지를 위미하는지 분명한 증거를 확인하기 전에는 전적으로 협력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슬람 세계에서 시민봉기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알카에다는 점점 더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다.
완벽한 실수, 이라크 침공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시도한 두 번째 모험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완벽한 실수였다고 주장하기가 쉬워졌다. 부시 행정부는 심혈을 다해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도록 압박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 중동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힘을 행사하는 전략을 구사하려고 했다. 이것이 이라크 침공의 바탕에 깔린 논리다.
이라크 침공을 미국의 장기적인 전략적 원칙들과 부합시키기 위해 미국은 최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중요한 저항 없이 이라크를 점령했어야 했다. 그런 다음 바그다드에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을 갖추고 독립적으로 존속 가능한 정권을 최대한 빨리 구축하여 그들이 자신의 오랜 강적, 이란과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만약 이런 목표를 5년 내에 달성할 수 있었다면 부시는 자신의 도덕적 목표와 전략적 목표를 모두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당시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충격,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위협을 모두 달성하고 이라크의 전략적 위치를 활용해 인국 국가들을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미군을 철수시키고 역내의 국가들이 다시 한 번 자기들끼리 힘의 균형을 이루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악의 지정학적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이란은 미국이 새로운 이라크 정부를 구성하면 수니파는 소외되고 시아파가 주도세력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며, 미국이 철수만 한다면 그 정부는 이란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지배하기 위해 이란의 시아파 동맹에 의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미국이 다른 여러 기관과 인물들을 통해 직접적 지배를 시도하자 당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정부를 구성하는 데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이란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산악으로 둘러싸인 국경 안쪽에 7,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이란은 지형적으로 천혜의 요새다. 지형적 조건이 직접적인 침공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은 구소련 정권을 붕괴시켰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란 내부에서 혁명을 일으키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오랜 세월에 걸친 이런 시도들은 모두 실패에 그쳤다.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경험한 미국이 페르시아 만 지역의 힘의 균형을 회복할 수도 없고 이란의 지배력을 허용할 수도 없다면 이란 정부를 추출하기 위한 공격을 고려하는 것도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일 수 있다.
미국의 핵 공포증을 이용하기위해 이란 역시 10년 동안 핵기술을 연구해왔다. 그들의 계획에는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예측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이 그랬듯이 그들은 교모하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국가들과의 협상 여부를 두고 줄다리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
앞으로 이란이 중동에서 중심축 역할을 맡을 것이며, 이를 중심으로 정세가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에 대처할 수 있으려면 먼저 이슬람의 테러에 대해 뭔가 결정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미국이 스스로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전쟁에 자원을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에, 이란은 미국의 개입이라는 위협으로부터 사실상 자유로운 상태가 됐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동지역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족쇄가 된 테러와의 전쟁 프로이센의 군사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은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 2차세계대전의 승리는 일본이 항공모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전쟁수행 능력을 파괴하여 미국의 의지와 정치적 목적을 강제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어떤 대통령이 국가를 전쟁으로 이끌어갈 때 그는 자신의 적뿐만 아니라, 국가가 추구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지정해야만 한다.
민주주의체제에서, 대중은 적의 위협과 그 위협에 맞서려는 우리의 의도에 대한 명확한 서술을 근거로 전쟁을 지지하게 된다. 그와 같은 명확성은 대중의 지지를 끌어 모을 뿐만 아니라 그 대중들과 의사소통에 필요한 일관된 틀을 제공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언급하면서 ‘경찰활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래로 다시는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 경찰활동에서 3만 명 이상의 미군이 전사했으니 말이다.
테러리즘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 링컨과 루스벨트, 레이건처럼 부시는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는 동시에 국가와 국민의 심리상태까지도 관리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두 가지 현상이 그가 몰락하게 된 원인이 됐다.
첫째, 그가 알카에다를 저지하는데 성공할수록 심리적 충격은 점점 더 약해졌다. 일부 대중들은 극단적인 조치를 요구하다가 실제 취해진 조치를 알고 나서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 부시는 그런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 그 자체를 목적으로 간주함으로써 광범위한 전략적정치적 배경 속에서 그것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망각했다.
둘째, 그는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변화하는 여론에 맞춰 자신의 초점을 전환시킬 능력이 없었다. 왜냐면 그 전쟁의 목표를 그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목표는 테러리즘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시는 국가가 이미 오래전부터 위험을 느끼지 않게 됐는데도 테러와의 전쟁에 전력을 다했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의 목적은 저항할 능력을 갖지 못한 상대국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그들의 군대를 파괴하거나 국민들의 저항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공포감이 조성되면 군대조차도 붕괴될 수 있다. 가령 몽고는 그들의 가차 없고 무자비한 잔학성을 널리 알려서 적을 무력화시켰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적에게 정복당할 경우 노예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두려움에 자극받아 죽을 때까지 전쟁을 수행했다. 따라서 공포가 주는 순수효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스라엘: 정책을 다시 정의하라 중동의 뒤엉킨 역사에서 탄생한 이스라엘 중동의 역사가 태곳적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지정학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불과 13세기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된다는 사실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13세기는 비잔틴제국이 쇠퇴하고 흑해와 지중해 동부에 인접한 영역의 지배권이 오스만제국의 손에 넘어간 때였다. 1453년까지 오스만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고 16세기까지 한때 알렉산더 대왕의 수중에 있었던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했다.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을 비롯해 북아프리카와 그리스, 발칸지역 대부분이 콜럼버스시대부터 20세기까지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지만 독일과 동맹을 맺었던 오스만제국은 1차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이 모든 것을 잃었다. 전리품으로 승자의 손에 넘어간 지역들 중에는 오늘날 시리아로 알려진 오스만제국의 커다란 속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 중 영국과 프랑스는 비밀조약인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어 헤르몬 산(레바논과 시리아 국경에 위치)에서 서쪽 해안까지 이어지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아랍지역을 분할하기로 했다. 이후 계속된 분할을 통해 시리아뿐 아니라 레바논과 요르단, 그리고 이스라엘 같은 현대 국가들이 탄생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시대부터 이 지역에 대한 영향권을 추구해왔으며,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 주민들 사이에서 아랍계 기독교인들을 보호하는 데 헌신했다. 1920년대 프랑스가 마침내 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자, 시리아에서도 마론교도(로마 가톨릭교회의 한 분파)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을 분리시켜 그곳의 지형적 특징을 대표하는 레바논 산의 이름을 따 새로운 국가를 창설했다.
남쪽에 위치한 영국의 지배 영역도 그와 유사한 노선에 따라 자의적 분할이 이루어졌다. 1차세계대전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히자즈 서부를 지배하던 이슬람인들은 하심가문이었으며 그들은 영국을 지원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영국은 전후에 그들을 아라비아의 지배자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문제는 런던이 다른 부족들과도 똑같은 약속을 했다는 데 있었다. 쿠웨이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쟁 가문인 사우드 가는 1900년부터 터키와 전쟁에 들어가 아라비아 반도의 동부와 중앙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1차세계대전 직후 발발한 투쟁에서 사우드 가문이 하심 가문을 물리치자 영국은 아라비아를 그들에게 주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다. 하심은 위로상품으로 이라크를 받아 1958년 군사쿠데타로 권좌에서 축출당할 때까지 그곳을 지배했다.
아라비아에 남은 하심 부족 일원은 요르단 강 동안을 따라 북쪽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이주했다. 요르단의 암만을 중심으로 다른 명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은 이 새로운 보호령은 ‘요르단 강의 맞은편’이라는 의미인 트랜스요르단으로 알려졌다. 1948년 영국이 철수한 뒤 트랜스요르단은 현재의 요르단, 즉 레바논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과거에는 전혀 존재한 적이 없던 하나의 국가가 됐다.
요르단 강 서안과 헤르몬 산 남쪽에는 그 전까지 오스만제국의 행정구역이었던 또 다른 영역이 존재했다. 그 지역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영역은 ‘필리스틴’이라고 불렸다. 이것은 분명 1,000년 전 그들의 영웅인 골리앗이 다윗과 싸웠던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유래된 이름이었다. 이 나라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었으며 자연히 이곳의 거주자들은 팔레스타인인으로 불렀다.
성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 시리아를 제외하면 이들 잔류지역들 중 어디도 공통의 역사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국가라고 할 수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발명품인 레바논과 요르단, 팔레스타인은 정치적 편의를 위해 창조되었던 것이다.
1880년대 이래로 유럽 유대인들은 중동으로 이주하여, 상대적으로 소규모였지만 수세기 동안 이곳에 존재했던 기존의 유대인공동체에 합류했다. 유대인들의 이주는 시온주의운동의 일환으로, 그리고 국민국가라는 유럽적 개면에 자극받아 성서시대에 유대인이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지역에서 유대인의 고국을 창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지역에 들어온 소수의 유대인들은 유럽에 이주해 있는 유대인들이 조성한 기금으로 구입한 땅에 정착했다. 대부분의 경우 유대인들은 부재지주로부터 땅을 사들였으며, 그 땅에 있던 아랍인들은 소작할 토지를 잃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그것은 합법적인 토지 취득이었지만 아랍계 소작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이 수세대에 걸쳐 경작했던 토지에서 쫓겨난 것일 뿐만 아니라 생계수단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었다.
시리아는 레바논이나 요르단을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 즉 팔레스타인도 시리아에 통합된 지역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레바논과 요르단의 독립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반대했으며, 이것은 독립 유대인 국가에 대한 반대와도 같은 이유였다. 시리아가 볼 때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오랫동안 지속된 시리아의 영토적 완결성을 파괴하는 행위였다.
요르단을 제외한 모든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원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하거나 논의하는 국가는 없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 이집트가 점령했던 가자지구는 이후 20년간 이집트의 통치를 받았다. 요르단 강 서안은 요르단의 일부로 남았으며, 시리아는 레바논뿐만 아니라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을 모두 되돌려 받고 싶어 했다. 이 상태만으로도 상황은 대단히 복잡해졌다. 하지만 1967년 6일 전쟁(이집트, 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당시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을 추방하고 자국 군대를 배치했으며, 티란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여 이스라엘의 에일라트 항구를 홍해와 단절시킨 상태였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폭격했던 요르단 강 서안, 이스라엘 정착촌을 폭격했던 시리아의 골란 고원까지 공격을 감행했다. 요르단 강 서안에 대한 점령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지역 정세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예상치 않게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계 아랍인 인구가 갑자기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6일 전쟁 이후 수단의 하르툼에세 개최된 회담에서, 아랍 국가들은 그 유명한 ‘삼불원칙’으로 대응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의 협상불가, 승인불가, 평화공존불가라는 원칙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결국 이스라엘은 이전 팔레스타인의 영역이던 점령지를 영구적으로 소유하게 됐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개별적인 민족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점부터였다.
아랍 세계는 왜 반발하는가 1948년 미국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승인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어떤 측면에서도 결코 동맹이라고 할 수 없는 관계였다. 비록 미국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존재 권리를 인정했지만 결코 그 사실로 인해 실제 미국 정책이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1948년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었으며, 주로 터키와 그리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 반란이 일어났다. 또한 그리스와 터키 모두 소련의 외적인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국이 볼 때 이 지역의 요충지는 터키였다. 소련의 흑해 함대가 지중해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방법은 이스탄불의 좁은 해협, 즉 보스포루스 해협뿐이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후견국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이스라엘이 영국에 반대하며, 나아가 자신들과 동맹을 맞을 수도 있는 국가라고 보았다.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했지만 이 관계는 곧 붕괴됐다. 이어서 알제리에서 여전히 전투를 수행하고 있던 프랑스가 소련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원조국으로 나섰다. 아랍 국가들이 알제리 반군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관심사는 반대편에 서 있는 이스라엘을 강력한 우방으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항공기와 전차, 그리고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초기술을 제공했다.
이때까지도 미국은 중동지역에 대한 폭넓은 전략 목표에서 이스라엘을 거의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에즈 문제가 발생한 뒤 여러 전략적 관계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집트를 대신해 수에즈 문제에 개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소련 진영으로 넘어가버렸다. 시리아는 이미 1956년부터 소련진영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지만, 1963년 좌익 군사쿠데타가 일어 난 뒤로는 그와 같은 노선이 더욱 강화됐다. 그리고 같은 해 이라크에서도 비슷한 성향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소련은 1960년대 중반에 시리아와 이라크로 진출했으며 양국에 이미 군사력을 축적해놓고 있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소련을 포위하자 소련은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으로 배후에 자신의 동맹을 확보한 뒤 정치적·군사적 압력을 강화시키려고 했다.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서 언제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터키는 소련에게도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1967년 이전에 일어난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데타는 미국의 전략적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고, 터키는 북쪽으론 강력한 소련과 남쪽으론 소련의 두 지원국가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가 되었다. 소련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군대를 배치했다면 터키는 곤경에 처했을 것이며, 동시에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모든 전략도 무너졌을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미국이 발판 삼아 뛰어넘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해 이란을 무장시켰다. 이란은 소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중요한 동맹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소련 쪽으로 돌아서자 이스라엘을 무장시키는 것이 저비용 해법으로 등장했다. 이 해법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병력을 억제함과 동시에 소련을 압박하여 이들 국가에서 소련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이 지중해를 장악하고 터키가 압박에서 벗어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이 시점부터 전략적인 이유로 미국은 이스라엘에 많은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0년대 소련의 붕괴는 이런 역학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터키는 더 이상 위험에 처해 있지 않았다. 이집트는 힘없이 쇠퇴하는 국가로 전락해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이 도지 않았다. 이 상황은 하마스에게도 꽤나 적대적이었다. 1987년에 창설된 하마스는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의 정권을 위협했던 무슬림형제단에서 파생된 단체였다. 시리아는 고립된 채 레바논에만 집중했다. 여러 측면에서 요르단은 이제 이스라엘의 보호국이었다. PLO를 구성하고 유럽에서 테러리스트 활동을 지원해왔던 세속적인 팔레스타인 사회주의운동이 불러일으키던 위협도 크게 감소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원조가 꾸준히 지속되는 동안 이스라엘의 경제는 팽창했다. 이스라엘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막대한 미국의 원조는 1974년 당시 이스라엘 국내 총생산의 21%에 이르렀다. 미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오늘날은 약 1.4%를 차지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동시에 관리하라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맺은 협정은 확실히 이스라엘이 가진 가장 중요한 관계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같은 편으로 남게 된다면 다른 이웃 국가들의 어떤 조합도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양국의 국가안보도 보장된다. 심지어 세속적 나세르주의 정권이 붕괴하더라도 이집트가 다시 위협이 될 때까지는 한 세대가 걸릴 것이고, 그것도 강대국의 후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요르단 강을 따라 놓인 국경선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지역들 중 가장 취약한 지대지만 요르단은 이스라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요르단 강은 160여 킬로미터에 걸쳐 있고 텔아비브의 인구밀집지역까지는 80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요르단 군과 정보부대는 이스라엘을 위해 이 전선을 방어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상황이 존재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요르단-팔레스타인 사이의 적대감은 하심 정권에 위협이 되고 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억압함으로써 요르단의 국가안보적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둘째, 위협이 되기에는 요르단의 인구가 너무 적어서 이스라엘은 그들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 만약 제3국(이란이나 이라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이 요르단 강을 다라 자국 군대를 배치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레바논은 북부 아랍 세계와 지중해 사이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시리아는 과거 오토만 시리아에 속했던 모든 것이 자신들의 소유라는 믿음보다는, 베카 계곡(레바논과 시리아의 산맥 골짜기)에서 일어나는 밀수와 마약거래, 베이루트의 은행과 부동산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실질적 관심사는 레바논을 비공식적으로 지배하여 자국 경제로 통합시키는 데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요르단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상당한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하며 취약한 평화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이집트와 요르단이 이스라엘 진영에 서게 되면서 시리아는 아무런 위협조차 가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고 고립되었다. 헤즈볼라 역시 위협적이긴 하지만 이스라엘을 근본적인 위기에 빠뜨릴 정도로 큰 비중을 갖고 있지는 않다.
사실 이스라엘이 안고 있던 위험은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일어난 분열로 인해 상당부분 경감됐다. 아라파트의 조직인 파타당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 공동체 내부에서 주된 세력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를 거치면서 팔레스타인 이슬람 저항운동단체인 하마스가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은 분열되어 본질적으로 내전과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파타당은 요르단 강 서안을,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서는 물론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힘의 균형 전략을 구사하여 이제는 파타당에게 호의와 지원을 제공하는 반면, 하마스와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두 집단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싸우는 것만큼이나 서로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결별? 공개적으로 미국이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는 것은 시리아와 이집트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를 유발할 것이다. 비록 미국계 유대인 유권자 수는 적지만 신중하게 조직되고 자금을 조달하는 로비활동으로 인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단순한 표의 숫자를 초월한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이해관계를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이 추가되면 미국 대통령은 강력한 세력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특사를 파견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불법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그 당사자들을 비난하는 일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중동과 이란: 누가 패권을 장악할 것인가 파키스탄을 지원하라 인도-파키스탄의 균형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이 두 개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복잡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첫 번째 목표는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을 작전기지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곳에 안정적인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테러리스트의 천국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목표는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알카에다의 원칙을 따르는 집단들은 예멘에서부터 클리블랜드까지 어디에서든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10년 동안 힘의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사실은 하나의 실체이며, 양측이 다양한 인종과 부족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치적 국경선은 별 의미가 없다는, 좀 더 근본적인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두 나라의 인구는 모두 합쳐 2억이 넘는다. 미국은 그 지역에 불과 10만여 명의 병력만을 배치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해가며 기호에 맞는 질서를 구축하기란 불가능하다. 더욱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파키스탄이다. 인도-파키스탄의 균형은 이 지역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힘의 균형이다. 독립 이래 대영제국의 같은 부분에서 갈려져 나온 이들 두 국가는 지속적으로 불편하고 때때로 폭력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양측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서로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 10년 동안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최우선 전략은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파키스탄을 만드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런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계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냄으로써 파키스탄에 대한 압박을 줄이는 것이다. 파키스탄을 지원하는 것은 인도와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을 보완해주는 역할로서 파키스탄의 지위도 회복시키게 될 것이다. 이들 두 이슬람 국가 사이에는 수없이 다양한 집단과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은 그들이 내적으로 화합하게 만들 수 없다.
끊임없이 견제해야 할 나라, 이란 이란-이라크의 세력균형은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이라크 정부와 군대가 모두 파괴될 때까지 변함없이 유지됐다. 그 이후부터 이란을 견제하는 주요 군사력은 미국이 수행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이는 이라크 정부와 군대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군이 철수한 이후 페르시아 만에는 이란이 주도적인 세력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라크가 무력화되고 3,000만 국민들이 다른 국가와 힘의 균형을 이루기는커녕 서로 싸우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이란은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주변의 외적인 위협에서 자유로워졌다. 터키와의 국경은 험난한 산악지대로 막혀 있어 공세작전을 펼치기가 어렵다.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가, 북동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가 앞에서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혼란에 빠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있다.
자국의 핵시설이 공습당할 경우, 이란의 궁극적인 대응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것이다. 이 해협은 해상으로 운반되는 전 세계 원유수출량의 45%가 통과하는 곳이다. 이란은 대함용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위협적인 무기는 기뢰다.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고 미국이 이를 확실하게 제거하지 못한다면 원유수출이 중단된다.
이란 수용전략이 초래할 수 있는 주요 위협은 이란이 자기 한도를 넘어서 페르시아 만의 산유국을 직접 점령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 육군의 군수문제에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침공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런 행위가 미국의 신속한 개입을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란의 공격적인 행동은 무의미하며 자멸적이다. 이란은 이미 지역 내에서 지배적 세력이다.
이란과의 협상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이란 간의 협상은 양쪽 모두에게 거대한 정치적 파문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2차세계대전 중에 맺어진 미소협정은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로 간주됐던 닉슨-마오 협상은 양측을 모두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일단 현실이 되자 그것은 전적으로 실현가능한 일일뿐만 아니라 심지어 관리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서 미국은 두 개의 강력한 세력, 즉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저항을 받게 된다. 미국의 행동에 대해 이스라엘은 단순히 분개하겠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공포에 질리게 될 것이다.
이란은 본질적으로 방어적인 국가다. 그들은 중동에 대한 미국 정책의 초석이 되거나, 장기적인 문제가 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않다. 이란의 인구는 국경지대를 둘러싸고 있는 산악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국토의 중심부는 대부분 극소수만 거주하고 있거나 아예 거주가 불가능하다. 물론 이란은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전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외부 힘의 희생물이 되거나 고립될 것이다.
급부상하는 터키 이란에 대한 평형추 역할을 담당하고, 지역 내에서 잠재적이 장기적 세력이 될 역량을 갖춘 유일한 국가는 터키다. 그리고 터키는 미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앞으로 10년 내에 그 지위에 도달하게 된다. 터키는 세계 17위의 경제규모에, 러시아나 영국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육군을 보유하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들처럼 터키 역시 세속주의자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분열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은 다른 이슬람 세계에서 전개되는 것보다 휠씬 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터키는 러시아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아라비아 만의 원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란의 아라비아 반도 지배는 터키의 이해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또한 터키는 이란이 자신보다 더 강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란에는 소규모의 쿠르드인들이 살고 있는 데 반해 터키 남동부는 많은 수의 쿠르드인들이 정착해 있으며, 이란은 그 점을 파고들 수도 있다. 이 지역이나 기타 외국 세력들은 이라크와 터키, 이란에 압박을 가하거나 내부 불안을 초래하기 위해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이는 오래된 게임이며 지속적인 취약점이다.
다음 10년 동안 이란-터키가 경쟁을 펼치는 동안, 이스라엘-파키스탄은 지역적 힘의 균형에 관심을 쏟게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란은 터키를 억제하지 못한다. 터키는 경제적으로 휠씬 더 역동적이기 때문에 더욱 정교한 군사력을 육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터키가 카프카스와 발칸반도,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궁극적으로는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 걸쳐 있다는 것이다. 고대부터 이란은 주목할 만한 수준의 해군력을 보유했던 적이 없으며, 항구의 지리적 입지 때문이라도 결코 그러지 못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터키는 과거 지중해에서 지배적인 해상세력이었고 매래에도 그럴 수 있다. 다음 10년 동안 우리는 터키가 이 지역의 지배세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러시아: 지정학적 악몽의 귀환 “480킬로미터”의 힘 발트해 연안국들을 흡수하면서 나토의 팽창은 절정에 도달했으며, 그 이후부터 이를 방해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최고 권력자로 부상하면서 1990년대 보리스 옐친 정권 시절과는 전혀 다른 러시아가 만들어졌다. KGB에서 훈련받았기 때문인지 푸틴은 세계를 이념이 아니라 지정학적 관점으로 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러시아가 안정되려면 강력한 국가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따라다녔으며, 2000년 권력을 쥔 순간부터 러시아의 힘을 재건하는 과정에 착수했다.
2004년 미국-러시아 관계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오렌지혁명)로 인해 러시아는 미국이 자신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강력하게 장악하려 한다고 확신했다. 우크라이나는 광대한 국가이며 러시아의 남서쪽 국경을 거의 다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에 있어서 우크라이나는 국가안보의 핵심이었다.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사이의 러시아 영토는 폭이 480여 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남쪽으로 뻗은 대부분의 송유관이 이곳을 지나간다) 카프카스지역에서 러시아의 모든 영향력은 바로 이 공간으로 흘러들었다. 이 지역 중심부에는 예전의 스탈린그라드인 볼고그라드가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은 이 지역이 독일에 의해 차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0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켜 전투를 치른 적도 있었다.
다시 공세에 나선 러시아 러시아의 두려움은 미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벌이는 활동을 목격한 뒤부터 더욱 심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신속하게 붕괴시켰을 때 러시아는 친러시아파 북부동맹과 연결시켜 주었으며, 아프가니스탄 접경국(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 지상군과 공군기지를 확보해 주었다. 그런데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세 국가의 기지들은 한시적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었지만, 3년이 흐른 뒤에도 미국은 철수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도 깊숙이 개입하면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대규모 진출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특히 조지아는 체첸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인 도발이란 혐의 외에는 다른 해석이 불가능했다. 러시아는 만약 체첸공화국이 분리될 경우 다른 공화국들도 그 뒤를 따르면서 모든 체제가 붕괴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또한 체첸은 카프카스 산맥의 북쪽 사면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고, 러시아가 미치는 힘은 이미 산악지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원래 국경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후퇴해 있었다. 게다가 중요한 송유관이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통과하고 있어서 이곳을 잃을 경우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전략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터였다.
2008년 8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조지아가 남오세티야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한때 조지아공화국의 일부였던 이주는 공화국에서 분리된 1990년대 이후 사실상 독립 상태에서 러시아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푸틴의 러시아는 마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속하게 반응했다. 그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반격을 개시해 조지아 군대를 격파하고 일부 영토를 점령했다.
이 공격의 주안점은 러시아가 여전히 군사력을 동원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푸틴은 1990년대 이미 무너진 러시아 육군이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일반의 인식을 불식시키고 싶어 했다. 동시에 그는 구소련 국가들에게 미국과 맺는 우애나 약속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2010년 선거에서 우크라이나는 2004년 오렌지혁명의 결과로 들어선 친서방 정권을 친러정권으로 교체했다.
러시아가 쓸 수 있는 카드 대부분의 산업국가들과 달리 러시아는 국토 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부족한데다가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치안기구와 공통된 문화만이 그들을 묶여주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조차 메갈로폴리스, 즉 거대도시권역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 이 도시들은 아주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농지와 숲을 사이에 두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러시아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인구분포로는 현대적인 경제체제의 구축은커녕 효율적인 식량의 분배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지대와 상업지대를 연결하는 사회기반시설은 물론, 농업지대와 도시를 연결시키는 시설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접근성에 대한 문제는 러시아의 하천이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는 데서 기인한다.
러시아의 국내체계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이 경제통합에 합의한 뒤 단일통화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르메니아와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도 경제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합류하는 방안도 제안한 상태다. 이런 관계는 유럽연합과 같은 일종의 정치연합, 과거 소련이 가졌던 중심적 역할을 재창조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는 동맹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해결책은 폴란드에 있다 20세기 동안 미국은 독일과 러시아가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유라시아로 통합되고 미국의 이해관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사태를 막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행동에 나섰다. 1917년 러시아가 독일과 맺은 단독 강화조약은 1차세계대전 당시 영불연합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영국뿐만 아니라 특히 소련에도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독일군을 제압하고 광대한 소련의 영토가 독일에게 넘어가는 상황을 막았다. 그리고 1944년 미국은 서유럽을 침공하여 독일뿐 아니라 소련의 진출까지도 봉쇄했다. 그리고 1945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은 소련의 유라시아 지배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독일과 러시아가 계속해서 협력관계를 추진한다면 발트해와 흑해 사이에 놓인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그 정책에 필수적인 존재가 된다. 이 국가들 중 폴란드는 가장 크고, 전략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잃을 것이 가장 많아서 잠재적 손실에 대한 경각심이 가장 높다. 폴란드에게 있어서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는 것과 러시아-독일 협상의 중간에 끼어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들뿐 아니라 그 밖의 동유럽 국가들도 역사적 적대세력들의 영향권 안으로 다시 끌려들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특히 폴란드는 여러 차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합병됐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타협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폴란드의 분할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것은 폴란드의 악몽으로 존재할 것이다. 1차세계대전 이후 폴란드가 독립했을 때, 그들은 소련의 잠식에 대항하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했다. 20년 뒤 밀약을 맺은 독일과 소련은 동시에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후 냉전이 지속된 반세기 동안 공산주의는 그들에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악몽을 안겨주었다.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으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마치 고속도로처럼 길게 펼쳐진 북유럽 평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발트해와 카프카스를 장악하라 발트해 연안국들의 상황은 문제가 조금 다르다. 그들은 미국을 위한 최상의 공격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듯이 마치 총검처럼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겨누고 있다. 게다가 리투아니아의 동쪽 국경은 벨라루스공화국의 수도인 민스크로부터 불과 16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러시아를 침공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이나 그럴 만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미국의 입장이 전략적으로는 공세를 취하면서도 전술적으로는 수세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발트해 연안국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독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덴마크와 견고한 쌍무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미국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다. 덴마크의 해역은 발트해 밖으로 진출하는 통로를 봉쇄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노르곶에서 무르만스크에 있는 러시아 함대를 봉쇄할 수 있다. 때문에 러시아 잠수함을 감시하기 위해 최적의 기반을 제공하는 아이슬란드처럼,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두 나라들은 모두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다.
러시아 국경의 나머지 부분은 카르파티아 산맥이 차지하고 있고, 그 산맥 뒤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이들 세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이 군사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전략적인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카르파티아 산맥이 침략자에게 장애물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군사적 역량도 최소한으로 요구된다.
카프카스지역에서 미국은 현재 조지아와 동맹을 맺고 있다. 그러나 조지아는 러시아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내적 정치 상황 또한 장기적으로 불투명하다. 그 다음으로 늘어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역시 문제가 많다. 전자는 러시아의 동맹이며 후자는 터키와 가깝다. 역사적으로 터키와 적대적이었던 아르메니아는 언제나 러시아와 가까웠다.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이란,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조지아는 카프카스에서 미국의 발판 역할을 하지만 아제르바이잔보다도 실용성이 떨어진다.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터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요 원유공급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있고, 조지아는 강력한 경제적 토대를 확보할 수 없는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경제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서 미군의 작전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다음 10년에 미국으로서는 철수전략과 지역구도 재편전략이 요구된다. 현재의 전략은 불필요하다.
유럽: 그들이 직면하게 될 딜레마 현대의 유럽은 지옥으로부터 탈출구를 모색하는 중이다. 20세기 첫 50년은 베르됭(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양측 모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남겼다)에서부터 아우슈비츠에 이르기까지 거의 도살장을 방불케 했다. 그 다음 50년 동안은 유럽 땅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미국-소련 간의 핵전쟁 위협이 지속되었다.
다음 10년 동안 유럽이 직면하게 될 주요한 딜레마는 두 가지 문제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역사의 무대에 재등장한 러시아와 어떠한 유형의 관계를 가질 것인지 정의하는 문제이며, 둘째는 유럽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를 가진 독일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다. 러시아의 패러독스(약한 경제력에 비해 잘 갖춰진 군사력)는 유지될 것이며 독일의 역동성도 그러하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이 서로의 관계를 규정하면 이 두 강대국과의 관계를 먼저 규정해야 한다.
독일, 전쟁을 일으킨 방아쇠 갑자기 북해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이 나타났다. 엄청난 생산성과 급격한 성장, 그리고 지리적 위치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불안 때문에 독일은 특히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역사의 흐름상 독일은 북유럽 평원의 북쪽에 위치하게 됐는데, 이 지역에서 방어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몇 개의 강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신생 국민국가에서 가장 생산적인 지역들은 라인 강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고,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서쪽에는 프랑스, 동쪽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양국은 새롭게 태어난 독일과 마주하게 되었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로 인접국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20세기의 유럽을 가득 메웠던 이런 불안은 지리적 특징에 원인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성적이면서도 불가피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지리적 특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단일한 시나리오에 따라 전개되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불안해하던 독일이 프랑스에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두 차례 모두 프랑스를 재빨리 제압한 후 러시아를 상대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1914년 독일이 프랑스를 조기항복 시키는 데 실패하자 양측은 참호를 팠고 전쟁은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독일은 어느새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를 상대로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싸우고 있었다.
미국에게 가장 큰 위협은 소련의 인력과 자원이 유럽의 산업 및 기술과 결합하여 미국보다 강한 힘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위협을 우려한 미국은 결국 소련이 그들의 국경을 벗어나지 않도록 봉쇄하는 데 집중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10년 동안 일어날 사건들의 무대를 조성하는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됐다.
첫째는 유럽에서 독일의 역할에 대한 문제였다. 19세기 통일 이후 독일의 역할은 전쟁을 일으키는 방아쇠였다. 둘째는 유럽의 힘이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 말 유럽에는 소련을 제외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전 지구적인 국가가 없었다.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지역 국가로 전락했으며, 게다가 이 지역에서 그들의 집단적 힘은 소련과 미국이 억제하고 있었다. 독일이 유럽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했다면 유럽은 세계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했다.
유럽의 오래된 꿈, 유럽연합 유럽연합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출범했다. 첫째는 서유럽 통합을 제한적 연맹으로 형성하는 한편, 프랑스와 독일을 한데 묶여 독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둘째는 동유럽을 유럽공동체에 재통합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다.
동유럽과 서유럽 간의 갈등이란 맥락에서 서유럽에 봉사하는 냉전시대의 기관이었던 유럽연합이 양측을 결합시키기 위해 구성된 탈냉전 기관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것은 유럽이 과거에 누렸던 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절차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만약 각 국가들이 이를 개별적으로 실행할 수 없다면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연합 형태라도 구성하려고 했다. 바로 이런 야심을 이루는 과정이 유럽연합을 문제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번영의 시대에서 분열의 시대로 유럽연합이 단일경제체제라는 사실이나 동유럽 국가들의 부족한 자원, 각국의 은행에 대한 통제권 제한 등과 같은 사실을 떠올려보면, 유럽연합의 안정된 국가들이 동유럽의 은행들을 구제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런 기대는 동유럽 국가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동유럽 국가에 투자한 그 밖의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가장 강한 경제력과 은행시스템을 가진 국가가 독일이었기 때문에 독일이 당연히 앞장설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독일은 머뭇거렸다. 동유럽에 자금을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은 그런 막대한 비용부담을 기피했다. 그 대신 동유럽 국가들에게 국제통화기금에 가서 구제금융을 요청하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독일과 유럽이 부담을 덜게 되고, 그 책임은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후원국들의 지원금으로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초래한 이런 영향은 유럽이 단일국가가 되기 위해 가야할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를 부각시켰다. 또한 이것은 유럽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국이 독일이라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독일이 원하기만 했다면 유럽도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현재 각기 다른 발전 단계, 각기 다른 산업주기와 부문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국가에는 도움이 되는 통화가 다른 국가에는 꼭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당연히 작은 국가보다는 독일의 경제상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이것은 가치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연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다음 10년 동안에도 분명히 유지될 것이다. 유럽연합은 자유무역지대로 설립되었고, 그런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무대의 주요 행위자가 될 만한 다국적 정부로 진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원국들 사이에 군사력을 공유할 만큼 충분한 공통의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력 없는 유럽에게는 ‘저력’이 없다. 유럽은 국민국가의 주권과 경제위기에 대한 유럽식 해결책 사이에서 몸부림쳤다. 결론적으로 유럽 관료제는 있어도 유럽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유럽연합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경제적 통제력이 다음 10년 동안 유지될지는 전혀 확실치 않다. 약소국들이 발견한 것처럼 이런 통제력은 그들을 상당히 불리하게 만들었다. 약소국들은 큰 국가들이 통제하는 시스템에 의해 관리된다. 큰 국가의 시민들 입장에서는 곤경에 처한 다른 국가들을 돕기 위해 정치적 연합체를 만드는 것이 손해다.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해서 수출품을 사게 만들고 수입품을 더 비싸게 만들어 경제를 향상시키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리스는 자국 통화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라시아의 새로운 중심축, 독일-러시아 독일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탄생한 국가이며, 프랑스를 침공한 후 두 번이나 몰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독일의 전후 해결책은 프랑스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유럽의 새로운 축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나란히 서면 그들은 유럽의 무게중심이 된다. 독일과 프랑스가 충돌하면 유럽체제가 분열되어 동맹 국가들은 새로운 배열로 분리되고 재조직될 것이다.
유럽은 여전히 영국의 최대 무역 협력국이지만, 영국의 최대 수출 대상은 미국이다. 영국이 유럽에 깊이 관여하게 도니다면 그것은 경제보다는 주로 전쟁 때문이다. 영국의 전략은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유럽의 통일을 방지하는 것이었으며, 여기에는 프랑스와 독일의 군대가 지배하는 유럽에 대한 반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영국의 대전략은 유럽에 대한 무제한적 개입과 양립할 수 없다. 영국의 전략은 오히려 미국과 군사적으로 같은 편에 서는 것이다. 영국은 혼자서 소련을 막아내거나 유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관리할 능력을 가진 적이 없다.
프랑스-독일 동맹도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첫 번째는 경제적인 문제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금융질서가 더 잘 갖춰져 있다. 이것은 금융 협력이란 문제에서 양국이 조화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두 번째 긴장은 국방정책과 관련된다. 드골주의자들을 위시한 프랑스는 항상 통일된 유럽을 미국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유럽의 국방 통합을 필요로 하며 프랑스와 독일이 병력을 통제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독일과 서로 얽혀 있는 프랑스가 독일보다 뒤처짐에 따라 러시아는 유럽의 핵심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유럽연합에 새로운 역학을 제공하게 된다. 핵심부와 주변부 간의 긴장은 이미 팽팽해져 있다. 핵심부는 유럽 선진 산업의 중심부인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와 벨기에다. 주변부는 아일랜드와 스페인,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그리스와 동유럽이 차지한다. 이 작은 국가들은 선진화된 이웃 국가들보다 더 느슨한 금융정책을 필요로 하며, 보다 폭넓은 경제변동을 겪기 때문에 불안정에 더 취약하다.
유럽의 분열을 기회로 활용하라 터키인들의 이민을 두려워하는 유럽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계속 저지할 것이다. 터키는 앞으로 10년 동안 분명히 더 강해질 테지만 아직 홀로서기에는 준비가 미흡하다. 하지만 카프카스지역에 가해지고 있는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터키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터키가 이에 대해 만족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선택의 여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앞으로 수년 동안 미국이 폴란드에 대해 어떤 주장을 펼치든 간에, 미국의 목적에 기여하고자 하는 폴란드의 의지와 능력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 달려 있다. 첫째는 폴란드 고유의 군사력을 구축하기 위한 미국의 경제적·기술적 지원이다. 둘째는 국방과 민간 부문을 모두 지원하는 국내 산업을 구축하기 위해 군사기술을 이전하는 것이다. 셋째는 폴란드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전적으로 신뢰할 만하다는 설득력을 얻기 위해 폴란드에 충분한 미군 병력을 배치시키는 것이다.
아시아: 한·중·일 미래 3강체제 중국과 일본만큼 서로 다른 두 국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1895년에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중국 해군을 제압한 이후 양국은 경제적 마찰로 인해 적대적 관계가 되었다. 일본은 해양산업국가이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원료수입에 완전히 의존해야 한다. 엄청난 인구와 영토를 가진 중국은 육지에 의존하다. 산업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일본은 중국의 시장과 원료, 노동을 필요로 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얻고 싶어 했다. 반면 중국은 외국 자본과 전문지식을 필요로 했으나 일본의 통제를 받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양국 간의 이런 신중한 상호의존은 1930년대의 중일전쟁과 1940년대의 잔인한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중국 본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중국-일본의 관계는 전쟁 이후에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며, 남아 있는 적대심과 불신감의 일부분은 미국의 존재에 의해 통제되었다.
중국과 일본은 여전히 미국을 필요로 한다 중국의 영토는 내륙으로 4,000킬로미터나 뻗어나가며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의 북쪽과 서쪽과 남쪽은 통과할 수 없는 장벽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바다가 있는 대륙의 동쪽 가장자리로 모든 기반시설이 몰려 있다. 그러므로 한쪽 면만 바다에 접해 있다고 해도 중국이 실제로는 범위가 제한된 커다란 섬이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중국 인구의 대부분이 해안에서 약 650킬로미터 반경에 있는 동부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섬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인구가 이렇게 밀집되어 있는 이유는 물 때문이다. 지도를 이등분하는 선과 해안 사이의 지역은 연간 강수량이 380mm 이상으로, 이는 상당수의 인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치에 해당한다.
일본의 네 개의 주요 섬, 그리고 북쪽과 남쪽으로 늘어선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국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단순한 지역이다. 일본은 군도로 이루어진 영토뿐만 아니라 특유의 지질학적 조건 때문에 필연적으로 해양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산업에 필요한 광물을 보유하지 못한 일본은 산업화를 위해 항상 자원을 수입해야 했고, 여기에는 주로 페르시아 만에서 들여오는 석유도 포함된다. 이는 일본이 본질적으로 광범위한 전 세계적인 이해관계와 취약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료를 수입하면서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공급량을 보유한 중국과 달리, 일본은 수입이 끊길 경우 몇 개월 안에 붕괴될 수도 있다.
이런 상호위협의 결과는 2차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일본에게서 승리를 거둔 이유는 단순히 원자폭탄이나 아일랜드 호핑 전략(중무장한 섬을 지나치고 덜 무장한 섬들을 중심으로 공격하여 큰 희생없어 일본 본토로 진입했다) 때문이 아니라 잠수함을 이용해 남쪽에서 원료 공급을 봉쇄한 뒤 일본의 전쟁지속능력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계속해서 저항했으나 미국의 잠수함 작전이 보급로를 차단하자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10억 중국 극빈층이 폭발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양극단 사이를 순환했다. 말하자면 상대적 빈곤과 결합된 고립상태이거나 혹은 사회적 불안정과 결합된 무역개방 둘 중 하나의 노선이었던 것이다. 영국이 중국의 개항을 강요했던 1840년부터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차지한 1947년까지 중국은 개방적이었으며, 적어도 몇몇 지역은 부유했으며, 심각하게 분열돼 있었다. 마오쩌둥은 대장정을 시작하면서 서양인들을 추방시키기 위해 농민군을 결성했는데 이것은 다시 한 번 중국 인민들을 상대적 고립과 생활고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중국이 거의 100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안정과 통합을 창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개방성과 불안정, 봉쇄와 통합 사이에서 왕복하는 이유는 일정 부분 중국이 가진 가장 중요한 경제자산, 즉 저렴한 노동력과 관련된다.
중국인민은행에 따르면 유럽에서도 큰 규모의 국가 인구에 해당하는 6,000만 명의 중국인들이 중산층(연소득 2만 달러 이상) 가정에 산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전체 인구가 13억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6,000만 명에 해당하는 중산층 국민은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으며 이들 대부분은 해안지역이나 수도 베이징에 거주한다. 반면 중국 전체 인구 중 6억 명은 연소득 1,000달러 미만 또는 가족 당 일일소득 3달러 미만인 가정에 살고 있으며, 4억 4,000만 명의 중국인들은 연소득 1,000~2,000달러 또는 일일소득 3~6달러인 가정에 살고 있다. 이것은 중국 인구의 80%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와 비슷한 수준의 빈곤 속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산업 종사자들이 거주하는 지역(해안에서 160킬로미터 이내)도 빈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의 한정된 부는 사회적 격차뿐만 아니라 지리적 격차도 초래한다. 항구 주변 지역은 무역이익을 얻는 반면, 나머지 지역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해안지역의 이해관계는 국가 전체, 심지어는 중앙정부보다도 외국의 무역파트너들과 더 많이 결부돼 있다.
19세기 중국은 바로 이 경계선을 따라 분열되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래에 똑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중앙정부는 가난한 대다수와 부유한 소수 간의 균형을 잡으려고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지원을 받는 해안지역의 상류층은 중앙정부에 반대한다. 부를 이동시키려는 노력은 중앙정부를 약화시키거나 독재적으로 변하게 만든다. 1940~1950년대 마오쩌둥의 해결책은 광범위한 억제, 외국인 추방, 그리고 빈곤한 국민들을 위한 부의 몰수 및 재분배였다.
다음 10년 동안 중국은 국내의 안정성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규모는 이미 엄청나다. 결과적으로 중국을 유지시키는 것은 인민해방군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 사회의 가장 가난한 계층으로 이루어진 해방군이 자체적으로 유지되어 끝까지 충성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계층 간의 원망을 가라앉히기 위해 중국은 해안지역에 거주하는 6,000만 명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해방군과 농민들에게 그 돈을 분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세금을 내는 이들은 저항할 것이고, 거둬들인 수입은 정부가 의도한 지원 대상자들에게도 충분하지 않겠지만 군대의 충성을 유지하기에는 충분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일본은 이미 1990년에 현재 중국이 겪기 시작하는 유형의 경제하락을 경험했다. 일본에서 외부인들이 볼 수 있는 것보다 휠씬 더 강한 수준의 비공식적 사회통제가 존재하며, 더불어 ‘계열’이라고 불리는 대기업 복합체들이 상당히 폭넓게 활동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일본은 자본주의 시장체제 개발의 실패가 초래한 금융위기에 굴복해야 했다. 일본 경제는 대기업 계열과 정부의 비공식적 협력을 통해 작동되었다. 이런 협력은 패배자가 없도록 설계되었는데, 거기에 바로 치명적인 오점이 있었다.
일본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꺼리는 것은 노동자와 기업이 평생 동안 함께한다는 사회적 계약에 기초한다. 일본인들은 평생고용을 유지하면서도 성장률이 떨어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전통을 지켜나갔다. 평생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을 희생시키는 것은 일본이라는 고도로 응집된 사회에 있어서는 10년, 20년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핵심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음 10년 동안 일본은 더 이상 빚(공적이든 사적이든)을 터무니없이 쌓아가며 평생고용을 유지할 수 없다. 중국처럼 일본도 경제 모델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게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빈곤 속에 살고 있는 10억의 인구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 달리 일본은 필요하다면 사회적 불안정이 수반되지 않는 긴축정책을 견뎌낼 수 있다.
일본의 근본적인 약점은 석유, 고무, 철 등 산업을 위한 천연자원이 없다는 것이다. 산업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은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구매와 판매를 해야 하며, 해상 교통에 대한 접근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위기가 발생했는데도 국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경우, 일본은 다시 한 번 공격적으로 변할 여지가 많다.
이제는 해상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은 공격적인 변화에 대한 유혹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그럴 능력도 떨어진다. 중국은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된다. 그러나 지리적 여건이나 미국과 비교해 상당한 규모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해군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수세대가 걸린다.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훌륭한 지휘관들을 길러내기 위해 축적된 경험을 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바다에서 미국이나 일본에 도전장을 내밀려면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한다. 중국 해군의 개발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분명히 상당한 규모의 개발이 진행 중이다.
가장 중요한 개발은 지상용 대함 미사일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국의 해군 함선들이 미군 함대를 이기려면 가야 할 길이 멀다. 대함 미사일마저도 미국의 공군 및 미사일 공격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다음 10년 이내에는 중국 해군이 미군을 근처 해역에서 몰아내지 못할 것이다.
유일한 패권국가는 없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다가올 10년 동안 지역의 패권국가로 부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경제기적이 그렇듯 중국의 경제기적도 진정될 것이며, 급성장 대신 안정상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일본은 구조를 재정비하는 한편 외교정책과 전 세계적인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것이다. 미국이 주시해야 할 것은 일본이다. 일본의 힘이 증대되려면 해군력도 필연적으로 강화시켜야 한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전략 1단계는 우선 중국이 분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이 약해질수록 일본이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안정을 통해서만 자국 경제 내의 외국투자를 통제할 수 있다.
미국의 전략 2단계는 일본과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이 자원확보에 대해 높은 자신감을 가질수록 해군력을 구축할 동기는 줄어든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일본과 같이 경제적으로 규모가 크면서도 취약한 국가는 스스로의 이익을 확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호주, 싱가포르가 떠오른다 이 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중국-일본 균형에 눈엣가시 같은 국가이며 특히 일본에게 거슬리는 존재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한국은 일본을 멸시하며 중국을 불신한다. 그렇다고 미국과 특별히 편안한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지리적인 조건 때문이라도 미국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다.
일본의 힘이 팽창하고 중국이 약해질 때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을 필요로 할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일본과 중국을 경제하기 위한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에 의존할 것이다. 한국은 상당한 규모의 기술 중심지가 되었다. 중국은 특히 이 기술을 갈망한다. 미국이 기술이전 속도에 대해 부분적인 통제권을 보유하게 된다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증가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특히 언젠가 남북한 통일과 관련된 재정적 측면을 다룰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통일한국은 미국과 특별한 무역기회를 원할 것이다. 다음 10년 동안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협력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홀로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모습과 달리, 호주는 실제로는 국제무역에 매우 의존적이며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특히 식품이나 철광석 같은 산업용 광물 판매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품들은 바다를 통해 수송되는데, 호주는 해상수송로의 안전에 대해 어떤 통제권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호주의 전략은 대서양 혹은 태평양 연안의 우월한 해군력과 동맹을 맺는 것이었다. 한때는 그 동맹이 영국이었고 현재는 미국이다. 모든 동맹에는 비용이 필요하며 영국과 미국도 그에 맞는 보상을 원한다. 즉, 그들의 전쟁에 호주가 참전하는 것이다.
미국의 세 번째 전략적 요충지는 바로 싱가포르다. 말레이 반도 끝머리에 위치한 이 도시국가는 영국이 말라카 해협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해상기지였다. 이 좁은 통로는 여전히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주요 항로이며 특히 페르시아 만에서 석유를 싣고 중국과 일본으로 향하는 선박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말라카 해협은 지브롤터 해협,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3대 해상 요충지다. 누구든지 이곳을 통제하게 되면 임으로 무역항로를 폐쇄하거나 개방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두 가지의 지정학적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첫째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이 부유하면서 약한 것이라는 점, 둘째는 안보란 절대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레이시아 혹은 인도네시아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무슨 행동을 하게 될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싱가포르를 단순히 통제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협력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인도가 패권국이 되기 힘든 이유 호주와 마찬가지로 인도도 지리적으로 고립된 아대륙이다. 희말라야 산맥이 북쪽을 가로막고 있으며, 동쪽에는 험난한 정글이 있다. 남쪽은 미 해군이 지배하고 있는 인도양에 둘러싸여 있다.
인도의 가장 큰 문제는 서쪽이다. 이곳에는 사막이 펼쳐져 있으며 파키스탄이 위치해 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와 수많은 전쟁을 치렀으며, 양국의 관계는 극도의 냉랭함에서부터 적대적인 수준까지 다양하다. 아대륙의 주요 특징은 인도-파키스탄 간의 세력균형이다.
인도는 ‘민주주의 중국’이라 불린다. 이러한 명칭이 적절하려면 인도의 지역적 영향력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도 경제성장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는 중앙정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각 주들이 나름의 규정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 중 일부가 경제개발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이 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빈틈없이 지켜내며 지도층 역시 자신들의 특권을 보호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러한 지역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서로 결합돼 있으나 궁극적인 권력기관은 육군이다.
인도는 세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대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첫째, 파키스탄을 견제하고 둘째, 중국의 침입으로부터 북쪽 국경을 지킨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중국 군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내부 안보를 담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인종집단과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 지역들을 보유한 인도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인도의 해군 증강이 미국에 위협을 가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미국은 인도의 국방비 지출이 해군이 아니라 육군이나 공군 쪽으로 전환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고 장기적인 문제발생 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은, 파키스탄이 더 강해지도록 지원함으로써 인도의 안보전문가들이 바다가 아닌 육지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도는 경제개발에서 중국에 뒤처져 있기 때문에 중국이 겪는 문제를 아직은 겪고 있지 않다. 다음 10년 동안 인도는 경제적으로 급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력 그 자체는 국가안보로 전환되지 않으며 인도양을 지배할 만한 힘으로도 전환되지 않을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 가장 안정적인 지역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제한적인 관심만 가지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 지역의 분열 때문이다. 이 분열은 전 대륙적인 세력의 출현을 저해했다. 남아메리카는 단일한 지리적 구성체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요한 지형적인 장벽으로 분리돼 있다. 첫째, 북에서 남으로는 로키 산맥이나 알프스 산맥보다 휠씬 높고 넘어다닐 수 있는 경로가 거의 없는 안데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대륙의 중앙에는 광활한 아마존 정글이 통과할 수 없는 장애물로 자리 잡고 있다.
브라질과 남부 국가들은 우루과이를 통과하는 협소한 육상통로로만 연결된다. 안데스 국가(칠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들은 모두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지리를 공유한다는 의미에서만 서로 일치한다. 대서양에 접한 남부지역이 통합될 수도 있으나 이 지역에서 주요한 국가는 아르헨티나뿐이다. 더욱이 중앙아메리카의 정글 지형 때문에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를 이을 만한 육상통로가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콜롬비아나 베네수엘라만이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
쿠바, 잠재적인 불씨 19세기 초반 미국의 번영은 하천체계를 토대로 이루어졌는데, 이 체계는 루이지애나와 오하이오 주의 농산물을 동부 해안과 유럽으로 수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상품들은 일단 뉴올리언스로 흘러들었다가 외항선으로 다시 옮겨졌다. 쿠바에 해군이 주둔한다면 그들이 멕시코 만에 드나드는 해로를 통제함으로서 뉴올리언스를 제어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옛날부터 쿠바에 집착했다. 앤드루 잭슨도 이 섬의 침략을 구상했으며, 1898년에는 스페인을 몰아내기 위해 미국이 직접 개입하기도 했다. 반세기 이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친소련 정부가 등장하자 쿠바는 미국의 전략상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다.
베네수엘라도 미국에 대한 상당한 위협으로 비춰짐으로써 시선을 집중시킨 라틴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첫째,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수출에 의존하는데 지리적 위치와 운송문제 때문에 미국에 수출할 수밖에 없다. 둘째, 베네수엘라는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남쪽에는 아마존, 북쪽에는 미 해군이 장악하고 있는 카리브 해, 그리고 서쪽 산과 정글 너머에는 적대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콜롬비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이 나타나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 해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브라질, 유일한 경쟁상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독자적인 경쟁상대로 등장할 잠재력을 가진 유일한 국가는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등장한 최초의 주요한 경제세력이며 전 세계적인 세력이 될 잠재력도 있다. 또한 브라질은 훌륭하게 투자를 분산시켜 위험을 막았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경제를 보유하고 있으며 규모와 인구는 다섯 번째로 크다. 또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수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그중 2/3은 1차 상품(농산물과 광물)이며 나머지는 제조품이다. 수출 품목의 지리적 배분도 주목할 만하다. 라틴아메리카와 유럽연합, 아시아에 각각 비등한 양이 수출된다. 이렇게 균형 잡힌 수출은 브라질이 한 곳에만 집중하는 다른 경제들 보다 지역의 경제하락에 덜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브라질이 미국에게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전은, 자국의 해안과 서아프리카 사이의 대서양을 장악할 수 있는 공군력과 해군력을 증강시킬 만큼 경제가 계속해서 확장할 경우다. 이 지역은 인도양이나 남중국해와 달리 미국이 삼엄한 순찰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다음 10년 이내에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의 임금이 상승하면 지리적 요인에 따라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에 대한 투자보다 운송비가 더 적게 드는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브라질은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국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하며, 브라질과 같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앙골라가 특히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이는 브라질의 남대서양 장악뿐만 아니라 브라질과 아프리카 해안 양쪽에 브라질 해군이 주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의 목표는 아르헨티나의 정치·경제적 능력을 점차 강화함으로써 20~30년 이내에 브라질이 미국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떠오를 경우 아르헨티나를 브라질과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합법과 불법이 혼재하는 멕시코 경제 멕시코의 인구는 약 1억이며 대부분은 미국에서 수백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산다. 현재 멕시코는 세계에서 규모가 14번째로 큰 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1조 달러 이상의 총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매년 미국에 1,300억 달러 규모의 수출과 1,800억 달러에 이르는 수입을 하는 멕시코는 캐나다에 이어 미국에게는 두 번째로 큰 무역상대국이다. 미국이 멕시코의 교류를 끊을 만한 여력이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며 한 세대 안에 그렇게 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물론 그러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현재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멕시코의 불법 이민노동자와 불법 마약반입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 경제체제의 수요에 있다.
멕시코는 미국에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 이민자들이 이주하는 곳은 대부분 한때 멕시코의 영토였다. 실제로 양국의 영토를 가로질러 수백 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국경지대 안에서의 이주는 최소한의 문화적 적응만 요구될 뿐이다. 멕시코인들도 멀리 있는 도시로 이주할 때는 전통적인 이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금세 그 지역에 융화된다. 그러나 국경지대 안에서는 이들이 선택한 법적 정체성과는 별개로, 모국어와 민족적 정체성을 보유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가지게 된다. 어런 상황은 법적 경계와 문화적 경계 사이에 심각한 긴장 상태를 조성할 수 있다.
마약 밀매에서 남기는 마진에 대한 추정치는 줄잡아도 90%에 이른다. 마약 불법거래로 벌어들인 400억 달러 중 360억 달러가 순이익이라는 것이다. 마약은 멕시코가 합법적 수출로 벌어들인 130억 달러의 세 배나 되는 수준의 잉여현금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홀로 남겨진 세계 지리적으로 아프리카는 네 개의 지역으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첫째, 지중해 남부 연안에 있는 북아프리카, 둘째,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알려져 있는 홍해와 아덴만 서부 연안. 그다음으로는 서아프리카로 알려진 대서양과 남부 사하라 사이의 지역. 마지막으로 가봉과 콩고에서 케냐와 희망봉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남부지역이다. 하지만 종교를 기준으로 삼으면 아프리카는 단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즉, 이슬람과 비이슬람지역이다.
아마도 언어적인 지도가 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역들을 가장 잘 나타낼 것이다. 언어를 기준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것은 한없이 복잡하다.
오늘날 남아 있는 국경선은 이미 물러난 유럽 제국들 간의 분열을 나타내는 잔여물이다. 즉, 그들이 정해놓은 행정구역상의 경계선이다. 식민제국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설정한 아프리카의 경계선들은 이전부터 그 지역에 존재하던 복합적이고 적대적인 부족들을 양분했거나 또는 동시에 지배하는 구가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국가'는 가능할 수는 있어도 아프리카 '민족국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족과 국가가 불일치하는 대륙 나이지리아는 대규모 석유수출국으로 힘을 기를 수 있는 수익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주요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의 경우, 석유는 지속적인 내부분쟁만을 유발했다. 수출로 얻은 부는 정부중앙기관이나 산업 분야로 가지 않고 지방의 토호세력들에 의해 유용되어 탕진되었다. 석유로 얻은 부는 국가 단일성의 기초가 되지 못하고 나이지리아 국민들 사이에 오히려 문화적·종교적·인종적 차이에서 비롯한 혼란을 야기했다. 결국 나이지리아는 민족국가가 아니라 부족국가다.
아프리카의 지도는 다시 그려진다 때가 되면 아프리카는 소수의 주요 세력과 다수의 약소국으로 재편성될 것이다. 이들 국가는 경제발전을 위한 틀을 제공하고 세대가 지나면서 강대국이 될 만한 국가를 길러낼 것이다. 그러나 다음 10년 안에 영향을 줄 만한 속도로는 성장하지 못한다.
기술혁신의 한계, 그 이후 1980년대의 경제가 베이비붐 세대를 받아드리고 1990년대에 이르러 이들이 중장년층이 되자 경제도 비상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다가올 10년 동안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미국에 가져다주었던 창의성과 생산성의 엄청난 분출이 잦아든다. 그리고 경제는 인구학적 위기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문제들을 경험하게 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전성기를 마침과 동시에 기술혁신도 급격히 쇠락할 것이며,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이들이 점점 늙어감에 따라 생산력은 줄어들고 소비가 급등하여 유례없는 수준의 의료와 장례 서비스가 생겨날 것이다.
다음 10년은 기술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기가 된다. 일부에서는 기존 기술이 한계에 다다르고 이를 대체할 만한 기술이 마련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풍부한 기술변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를 테면 전기자동차와 차세대 통신기술이 대량으로 공급될 것이다. 공급이 부족한 부문에서는 당면한 문제와 절박해진 수요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낼 것이다. 진정한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은 바로 이런 발전이다.
2008~2010년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기술개발을 위한 자본투자뿐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려는 욕구도 위축시켰다. 다음 10년 중 처음 몇 년은 자본 부족현상과 함께 사용 가능한 자본을 위험성이 낮은 사업이나 좀 더 안정된 기술에 투자하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기술개발의 준비기간을 고려할 때 차세대 주요 기술혁신은 2020년대나 되어야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인구의 경제적 영향을 악화시키는 것은 늘어나는 평균수명과 그에 따라 증가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면서 알츠하이머 병과 파킨슨 병, 치명적인 심장질환, 암과 당뇨병에 걸리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며, 최첨단 치료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어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다행히 충분한 지원이 제공되고 있는 유일한 분야가 바로 의료연구다. 환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비용은 경제에 상당히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 로봇공학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로봇공학 개발은 오랫동안 변화하지 못한 두 가지 주요 분야에서의 과학적 혁신에 달려있다. 바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배터리다.
포화상태에 다다른 기술혁신 지금 우리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이전에 개발됐던 기술을 새로운 곳에 적용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다. 이것은 닷컴버블 후기에 퍼스널 컴퓨터가 다다랐던 정점과 비슷한 위치다. 당시에도 하드웨어에서 인터페이스까지 기본적인 구조가 제대로 자리 잡혀 있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 진정한 의미의 기술적 혁신을 떠올리기는 매우 어렵다. 획기적인 발전 대신 소셜네트워킹 같은 새로운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존 능력을 모바일 플랫폼으로 옮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이패드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노력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재배치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기술혁신은 이제 시장 점유율을 위한 전투, 즉 작은 개선이 마치 중요한 사건인 것처럼 포장하여 돈을 벌어보려는 노력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경제의 동력이 되었던 기술 기반의 생산성은 감소하고 있다. 이것은 다음 10년 동안 부딪히게 될 난제들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기후변화와 에너지공급의 딜레마 기술혁신에 대한 전력공급문제는 또 하나의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진다. 증가하는 탄화수소 사용이 환경에 영향을 미쳐 정말로 기후변화를 초래하는가에 관한 문제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문제는 탁월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두 가지 문제를 추가적으로 제기한다. 첫째, 에너지 사용의 절감은 가능한가? 둘째, 탄화수소(특히 석유)를 사용하여 경제를 계속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에너지 사용은 운송, 전력발전, 산업용, (냉난방에 사용되는) 주거용 등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다음 10년 동안에도 운송 분야에서는 계속해서 석유가 사용될 것이다. 기존의 이동수단을 대체에너지원으로 전환시키는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10년 내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는 전기동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화석연료 소비를 자동차에서 발전소로 옮기는 것일 뿐이다. 전력발전은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는 있다. 산업 목적의 에너지도 마찬가지며, 주거용 냉난방은 약간의 비용을 들여 전환시킬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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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리드먼이 저술한 넥스트 데케이드 이 책은 전작인 백년후가 총론이라면 이 책은 각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세부적인 내용들이 조오금 나온다 수년전에 발간된 책인데 이십일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리는 이유를 느낄 정도로 시대적 상황이 책에서 예상한 상황들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진다 신기하면서도 재미있게 책을 읽어볼 수있고 스트랫포라는 곳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이 생긴다 시대흐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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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지 프리드먼 출판사 : 쌤 앤 파커스 / 383P 소장 / 독서완료 (110814 - 110815)
원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보다..그대로 사용했는데..잘 한듯하다..이 책은 내게..NEXT DECADE로 남을 듯하니까^^
작가는 날카롭고 예리한 분석으로 다음 10년의 정세에 집중해.. 이 책을 써내려 가고 있다. 다가올 10년의 이스라엘, 중동과 이란, 러시아, 유럽, 아시아 중 한 중 일,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등의 세계 정세를..
그런데 세계 정세를 큰 그림으로 봤을 때..그 밑바탕에는 늘 미국이 있다..작가는 미국과 세계가 곧 마주하게 될 사건과 도전에 집중 한 듯하다..
짐 로저스의 '불 인 차이나'나 전병서교수님의 '중국의 탄생'등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세계의 큰 흐름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간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뭐..그 때 중국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도.. 중국의 중산층은 전체 5%도 안되는데..나머지 인구의 소득 격차나 지역 발전 등에 대해 의문이 들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의문들이 실타래 풀리듯 풀리기 시작했다..
이 책은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 돼 있다..한 챕터가 시작 되기 전 가장 첫 페이지는..위의 사진처럼 돼 있다.. 이 책의 서문을 읽자마자 ..내 손은 바로 10장으로 넘어갔다..우리나라의 앞으로 10년이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해 정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한 나라에 대해 알기도 어려운데 정말 저자는 대단한듯하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깊이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도 어쩜..이 나라에 거주하는 나보다 더 잘 아는듯했다 ㅠㅠ
저자는 한국에 대해 한국은 역사적인 이유로 일본을 멸시하며 중국을 불신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의 힘이 팽창하고 중국이 약해질 때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을 필요로 할 것이며 동시에..미국은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에 의존할 것이라 했다. 또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미국의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도..
저자는 미국이란 큰 틀에서..여러 대륙과 나라들이 이 미국과 어떤 관계인지..왜 미국이 그들나라를..왜 그들 나라가 미국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쪽집게 과외선생님처럼..꼭꼭 짚어주고 알려주고 있다.
읽는 내내..'아하'란 감탄사와..'그렇구나'란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던 책..
이런류의 책은 누구나가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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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元首)인 동시에 행정부의 수반이며 최고 의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또한 아메리카 합중국 헌법 제2장에 의해 미국 육·해·공군의 최고사령관이기도 하여, ‘선거된 군주’라고 불릴 만큼 커다란 권한과 책임을 지니고 있다. 현재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지위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조지워싱턴이 밝힌 미국의 원칙과 제국주의 사이에서 모순될 수 밖에 없는 세계유일의 거대국가인 미국의 역할에 대한 고찰 뿐만 아니라 전세계 6개 대륙에서 앞으로 이슈가 될 주요한 지정학적 힘의 질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일환으로 한,중,일 세나라를 분석한 것이 눈에 와 닿았다.
거의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를 중국의 내제된 위험 즉, 경제가 약화되고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떨어지면 발생할 빈곤속에 살고있는 10억 이상되는 중국인들의 불만에서 야기될 사회 불안정, 이것는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맞딱드리게 될 문제이며, 성장이 비교적 소폭으로 감소해도 경제적, 사회적으로는 그 영향이 점증되어 중앙정부에 대한 대항으로 이어질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헤 중국은 국내의 안정성을 끌어 올릴 수 밖에 없는데, 그 하나의 방법으로는 중산층 이상에 속하는 6000만명에게 세금을 부과하여 국민 대다수를 형성하는 인민해방군과 농민들에게 그 돈을 분배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유지시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강점은 중국과는 달리 빈곤층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이 적어 필요시 사회적 불안정이 수반되지 않는 긴축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천연자원이 적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고 산업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위해 전세계적인 교역을 해아하는데 해상교통에 대한 접근성을 잃으면 모든것을 잃게 되며 위기 발생시 국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으면 일본은 다시 공격적으로 변할 여지가 있고 해군력을 그 주요한 수단으로 분석한다. 이는 우리에겐 광복절이지만 그들에겐 종전기념일인 오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한국의 해군력이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는 기사, 중국의 항공모함 건조소식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며, 역사적인 이유로 일본을 멸시하고 중국을 불신하며 미국과 특별히 편안한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리적이 조건 때문에라도 미국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행후 10년 동안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협력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한다.
이 외에도 세계 금융위기, 중동정책, 테러와의 전쟁과 그 이후의 전략방향, 러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역과 주제를 대상으로 미국이 취할수 있는 자세와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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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세상에 제일 어려운것은 물론 '나'를 아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남을 아는 일이겠지요.
앞으로 다가오는 10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누구하나 속시원히 대답하기 힘든 요즘입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최근의 일련의 상황변화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지난 역사의 흐름과는 조금은 다른듯 합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미래는 어떨까요? 이 책의 저자인 조지 프리드먼은 알아주는 국제정세 분석가입니다. 그런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이 책은 철저히 미국중심입니다. 미국의 제국화, 달리 말하면 팍스 아메리카를 전제로한 그래서, 미국의 입장에서 세계정세를 분석한 책입니다. 일순 미국이? 라며, 콧방귀를 끼다가도, 사실 그의 이런 정세분석이 과연 틀린말은 아니기에 이 책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넥스트 디케이드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일단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앞날을 국내/국외적으로 다양한 역학관계를 기반으로 설명한 책입니다. 작가의 생각을 기반으로한 이책의 주요 논조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로,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은 미합중국의 원칙을 결코 잊는 법이 없으면서도, 현재의 필요성에 등돌리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그것을 보존하고 강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입니다. 일견 어려운말 같지만,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여야 된다는 것으로, 원칙을 무시하면서 현재의 유익만을 쫒는다거나, 반대로 현재의 운명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원칙만을 고수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기 위해서 적절한 거짓말도 불사하여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른 한가지 논점은 지역적인 패권국가가 나오지 않도록 지역적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중동에서 이란의 팽창으로 인해 지역적 힘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우는것을 막기위해 터키나 파키스탄을 지원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의 부상을 어느정도 견제하기 위해서 아르헨티나의 발전을 지원해야 한다는것등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특히나 현시대의 패권국인 미국의 입장에서 기술한 통치론과 국제적인 힘의 역학관계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좁은 생각 가운데 살았구나 하는 점을 뼈져리게 느낄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반미나 통미를 떠나 힘을 기반으로한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알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할때 충분한 도움이 될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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