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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김열규교수님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http://blog.yes24.com/document/4410199>의 리뷰에서 인용한 글을 다시 끄집어내봅니다. “예로부터 높게 쳐준 우리네의 ‘갖추어진 삶’의 조건으로, 나이로는 환갑․진갑을 넘겨 살아야 하고, 자식은 적어도 3남2녀는 두어야 하고, 가장이 부와 귀를 누려야하며, 그 많은 아들․딸들이 빠짐없이 성혼을 하여 손자를 주렁주렁 두어야 하고, 드디어 세상을 하직할 때 고통이 없이 잠시 앓는 듯 마는 듯하다가 안채 안방 혹은 안사랑에서 이른바 ‘와석종신’해야 한다고 합니다. 임종자리에는 자식이 빠짐없이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하며, 초상은 장중하게 치루어져야 하고 은성해야 하며, 무덤자리가 명당이라야 하고 삼대에 걸쳐 봉제사할 후손이 끊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 ‘갖추어진 삶’의 맺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농업중심 사회에서는 땅을 매개로 한 협업과 재산이나 농업기술의 승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반하여 기업사회에서는 회사원으로 지내면서 쌓은 노하우가 자식에게 넘어가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사회구조가 무연사회를 먼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연사회 속에서의 촘촘하게 엮이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과의 관계를 끊고 혼자만의 삶을 즐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소위 무연사, 혹은 고독사라고 한다면 이 역시 죽은이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싶습니다. 즉 그런 죽음에 대한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효성이 지극한 후손이 선조를 기리는 일을 잘 이어간다면 모를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 대부분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독신자가 죽은 다음에 그를 떠올리며 공양해줄 사람이 없어 고독한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만, 이 역시 오지랖이 보통 넓은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로 살아왔다는 것이 속박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삶에 대한 반대급부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홀로 맞이 하는 죽음이 두렵고 쓸쓸할 것이라는 저자의 단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무연사회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저자의 결론은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보이는 이유입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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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아주 단순한 사실
이 ‘혼자’의 의미는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느낌일 수 있다. 이 책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철학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저자는 무연사를 사회학적 시각으로 다루었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되어있는데, 무연사회와 유연사회에 대한 정의 및 이런 사회가 이루어지게 된 과정을 역사적인 접근방법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저자는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된 도시로 이동하면서 생긴 사회가 무연사회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발견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농경사회를 사람들과의 관계가 끈끈한 유연사회로 보았고, 도시는 개인적인 무연사회로 분류를 했다. 저자가 일본인인 만큼 일본사회의 독특한 직장문화와 장례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한국과 별반 차이는 없어 보여서, 한국인들에게도 공감의 여지가 있는 듯했다. 생명의 탄생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죽음이 있다. 이처럼 탄생과 죽음은 동전의 앞과 뒤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죽음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든, 외롭게 홀로 맞이하는 죽음이든 말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죽음이 유연사였지만, 현대 사회에서, 특히 독신자들의 죽음은 무연사인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저자는 이것은 시대의 흐름상 자연스런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죽음을 굳이 유연사와 무연사로 나눈다면 어떤 형태의 죽음이 더 좋은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연사라고 생각할 것 같다. 죽을 때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있다면 덜 외로울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유연사와 무연사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결국 죽을 때는 누구나 홀로 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 때문인지 그는 무연사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지는 않았다. 시마다 히로미는 현대 사회에서의 죽음의 형태, 즉 ‘무연사’에 대해 깊이 천착해보려고 한 듯 하지만 별로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저자가 종교학자이기에 죽음에 대한 종교적인 고찰을 심도 있게 다룰 줄 알았는데, 너무나 간략하게 설명하고 지나가버려 아쉬움이 컸다. 에필로그를 보면 저자의 생각을 확실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주장은 아주 간단했다. ‘우리는 그저 죽을 때까지 살아가면 된다. 아주 단순한 사실이다. 이를 깨달을 수 있다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보인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고 끝까지 책을 읽었는데, 그것 이상을 전혀 보여주지 않아서 아쉬웠다. 분명 진리는 단순한 데에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쉬운 감정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나 자신이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어서 그 단순한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해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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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으면 혼자라지만 역시 죽는 그 순간까지 혼자라는 사실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냐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고령화 사회로 급속도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가진 고민은 바로 무연고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무연고사라는 것이 비단 나이가 들어 가족과 떨어져 있는 고령의 독거노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연히 듣게 되는 뉴스에서 젊은 독신자들의 급사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될 때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이를 떠나 누구한테나 찾아올 수 있고 그 순간 혼자라면 더욱 외롭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누군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의 죽음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에 뒤늦게 알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이런 상황을 이웃나라 일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이런 문제들이 사회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도 더 먼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이 무연고사에 대한 연구를 다양한 관점에서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총 9장의 구성으로 현대 사회가 무연사회가 되어 버린 배경과 원인, 그리고 일본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무연고사에 대한 실태를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무연고사가 우리 사회에 있어서 엄청난 재잉이자 고통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저 자연스러운 사회 변화인 동시에 모든 인간이 가진 숙명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저자가 종교학자이기 때문에 무연고사를 탄생시킨 인간 사회의 균열이나 해체보다는 자연스러운 죽음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인간은 죽을 때에는 누구도 데려갈 수 없고 그저 홀로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하는 그런 미약한 존재인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그래도 그런 외로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이 때론 슬프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고독사와 무연사를 두려워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이 찾아온다. 고독한 인간에게도 고독하지 않은 인간에게도 죽음은 평등하다. 어떤 죽음이든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독신자는 죽은 뒤에도 고독하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홀로 살아왔다는 것은 자유롭게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정의 속박도 결혼의 속박도 없이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의미이다. 이를 고독한 삶이라 볼지, 자유로운 삶이라 볼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알고서 선택한 독신이라면 자유를 추구한 결과이지 않겠는가
- p.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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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無緣社會란 인간관계가 희박해짐에 따라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사회를 말한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 인사조차도 나누지 않는 사회가 바로 무연사회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2010년 NHK 특집 방송을 통해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 주며 대두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한때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나 아이돌 스타가 죽은 지 며칠이 되도록 방치된 사건이나 100세 이상 고령자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소식이 뉴스에 종종 나온다. 무연사회가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17 사람에게 한번죽음은 누구에게나 정한 일이라지만 죽음 뒤에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 모두에게 남겨지는 쓸쓸함은 피할 길이 없다. 사람이 정말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무엇 때문에 아등바등 살아야하며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인생에 대한 고뇌를 남긴다고나 할까?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자연의 변화를 눈여겨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도 다시한번 조명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NHK방송이 보도한 바 있다는 무연사회에 대한 방송을 중점적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지적을 하고 있다. 무연화가 비단 일본만이 지닌 문제인지 우리 나라와는 별개의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비정규직 고용인들에 대한 증가가 바로 우리 현실이며 바로 내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와는 무관하다고 감히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NHK에서 내보낸 무연사회 방송은 아직 젊은 30대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비정규직 해고의 대상자들, 즉 안정된 직장이 없고 자신을 뒷받침할 가까운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젊은 세대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거리를 찾지 못하면 PC방을 전전하며 버틸 수밖에 없다, 돈이 다 떨어지면 노숙자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능력이 없어서 비정규직 거용형태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p.23
무연사회라니 정말 생소한 표현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가끔일어나는 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독거노인의 죽음이 방치된 채 여러날이 지난 후에 그 사실이 발견되는 일들은 뉴스에서 접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중에 가끔 귀찮게 하는 사람이나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향해 종종 사용하는 말이 바로 ‘네가 무슨 상관이야’의 표현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섭고 섬뜩한 뉘앙스를 지닌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안할 때는 몰라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무슨 상관을 따지는 일은 너무 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생활주변에서 무심함은 왕왕 목격된다. 이웃간에 왈래가 없으니 늦은 밤시간에 간혹 엘리베이터에 동승한다거나,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야 하는 경우 이웃이 아닌 치한으로 오해하며 살아가는 것인 우리 삶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엄동설한에도 술에 만취한 이웃을 집으로 안내하고도 오히려 욕을 먹는 세상, 자칫하면 큰 일을 경험할 수 있었을 텐데도 왜 친절을 베푸느냐고......, 정말 할말을 잃는다.
요즘은 결혼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내게 아는 지인중에도 능력있으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독신을 고집하며 살아가다가도 병으로 앓아 누울 때는 외로움을 느낀다는 말들을 한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말이 있음에도 가끔 소속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연고 없이 혼자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겠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특성중 가장 대표적이며 일반화된 경향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다. 삶이 어떻게 진행되려고 하는 것인지, 가끔 무연사에 대한 뉴스를 접할때는 주변에서 소식이 뜸한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이 책 ‘사람은 홀로 죽는다’에서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사회현상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와는 종교적이나 잔통적인 면에서 간소한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은 수명이 다하면 홀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이치는 같다. 누구도 투명하게 죽음을 비껴갈 사람이 없기에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먼 이웃 나라의 일이 아닌 내 나라 바로 내 주변의 이야기로 받고 앞으로 지면할 세상에 대한 대책마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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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사회란? 말 그대로 인연, 연줄이 없는 사회다.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지역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이젠 가족마저도 '인연'이라는 말로 부를 어떤 끈끈함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죽음은 또다른 양태를 보인다.
특히 자의식이 강한 청소년기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강렬하다.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두려움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지금까지와는 성질이 조금 다르다. 오늘날 우리는 단순히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어떻게 죽게 될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죽음 자체보다도 죽는 방식이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고독한 죽음을 두려워한다. 간병도 받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죽는 것이 두렵다. 이를 고독사라고 부른다. 고독한 사람은 죽은 뒤 며칠이 지나도 발견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러면 누군가 내 죽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며칠씩이나 버려진 것처럼 방치된다.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송장 썩는 냄새도 진동할 터이다. 발견 시간이 늦어지면 백골이 도어 있을지도 모른다. (14~15쪽)
이 고독한 죽음을 일본에서는 '무연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저렇게 고독하게 죽어가는 모습은 아무래도 처참했던 모양이다. 무연사를 주제로 한 다큐가 NHK에서 방영된 후, 상당한 반영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새로운 방식의 모멘토 모리랄까. 평생 죽음을 잊고(혹은 잊으려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는 이런 방식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다. 저자는 무연사회의 반대편에 유연사회를 놓고 설명을 시작한다. 농촌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유연사회가 어떻게 무연사회가 되었는지 설명하고, 결국 무연사회가 된 것은 모두 우리(일본인)가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연사회라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연사회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며, 고독사 또한 죽기 전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온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나쁠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저자에게 있어 제사나 장례식은 크게 의미가 없는 행사다. 지금처럼 성대하게(?) 치러지는 것은 낭비에 가깝다는 것이다.
관혼상제의 '제'는 원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뜻했다. 조상을 어떻게 공양하는가가 '제'의 원래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관혼상제입분>)에서는 '제'를 연중행사로 취급했다. 본래 뜻과는 조금 다르다. 다도의 세계에서는 계절 변화를 다도에 접목시키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한 다도 종가 출신 저자였기에 제사를 연중행사로 연결할 수 있었다. 저자는 연중행사가 사회생활의 윤활유가 된다고 보았다. (156쪽)
가족이나 친척이 있더라도 고인이 죽기 전까지 의료나 간병으로 상당한 돈을 썼다면 비싼 장례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례비용은 비싸다. 졸저 <장례식은 필요 없다>에서 서술했듯이 평균적인 장례비용은 약 231만 엔(한화로 약 3천만 원)에 달한다. 한편 관혼상제 상조회인 '쿠라시노토모 생활의 친구'가 10년 만에 시행한 2010년 조사에 따르면 평균 장례비용은 242만~243만 엔이었다. 10년 전인 1999년 조사와 비교하면 124.4만 엔이나 줄었다. 물론 여전히 장례비용은 비싸다. 그러나 10년 만에 2/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은 장례의 간소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조사에 따르면 조문객 수도 줄어드는 추세이며, 회사 동료가 장례식을 도우러 나서는 경우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76쪽)
제사나 장례식의 성격이 시대나 사회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례식은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학문적 영역을 벗어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 책의 성격이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인류학자'인 저자를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로 인연이나 사회의 관습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걸 느낄 수 있다. 뒷부분에 그 이유에 대한 약간이 증거가 나오는데, 저자는 오옴진리교 관련 저서 때문에 연구직도 박탈당하고 건강도 나빠지는 등 개인사적으로 고초를 겪었으며 함께 살고 있는 가족도 없다. 이 개인사가 그의 저서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 개인의 연구나 이론 등이 개인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르나, 이 책의 서술들은 자신의 삶을 '정당화'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만큼 저자의 생각이나 관점이 이제 굳어질대로 굳어졌거나 혹은 그의 서술방식이 그 모든 것을 독자에게 그대로 드러낼만큼 투박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현재 일본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만 하다. 그리고 이 분위기가 한국이라고 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더욱 생각해볼 문제다. 논문 관련해서 살펴볼만 했던 점은, 화장의 경제성(실은 경제논리).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이 결코 작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부분을 빼놓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토장일 때에는 마을 공동묘지에 유체를 묻으면 끝이었다. 따로 묘를 세우더라도 집 근처에 세웠기 때문에 일부러 성묘를 하러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화장이 보급되면서 반드시 유골이 남기 때문에 어딘가에 안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 말해 모두 묘지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화장이 가장 보편화한 나라라고 한다. 99퍼센트에 달하는 화장률을 자랑한다. 화장이 보편화한 이유로 공중위생 문제를 꼽을 수 있긴 하지만 이보다도 토지부족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도시에는 토장을 할 만한 땅이 없다. 마을 공동묘지처럼 마을 사람이기만하면 누구나 무료로 묻힐 만한 땅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183~18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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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홀로 죽는다
2012. 5. 12. 보건복지부는 소득·건강·사회적 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른 노인가구보다 특히 취약한 홀로 사는 노인을 위해 ‘독거노인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하였다. 2012년 독거노인은 119만명으로 2000년(54만명)에 비해 2.2배나 증가하였고, 2035년에는 현재의 약 3배(343만명)가 될 전망이다. 예비노인의 의식 변화 및 미혼·이혼 가구의 급증이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고독사, 무연사(無緣死)가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일본 사회에도 독거세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홀로 죽는다’는 무연사회를 평가한다. 과연 무연사회가 불행한 것인가? 우리는 과연 무연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과연 무연사회는 희망이 사라진 사회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무연사회란 인간관계가 희박해짐에 따라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사회를 말한다. 장례식 없이 화장터로 직행하는 장례를 직장이라 한다. 죽음 자체보다도 고독한 죽음을 두려워한다.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로 일하는 30대들, 직장이 없고 서로 의지할 가까운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무연, 공계, 아질처럼 무연을 바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 시대도 있었다. 과연 무연사와 고독사는 기어코 피해야 할 죽음일까? 무연사회는 반드시 부정해야 할 사회일까? 우리는 유연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무연을 지향해 왔다. 우리는 무연사회 보다 이상화된 유연사회에 살고 싶어했다. 유연사회는 무연사회보다 온정이 넘치고 축복받은 사회인가? 유연사회의 대표적 주자는 촌락사회이다. 촌락사회는 주로 농업, 어업, 산림업에 종사한다.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힘을 모아 일을 해야 하므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촌락사회의 원칙은 만장일치와 무소유이다. 또한 촌락사회는 관혼상제를 통해서 인간관계를 다시금 확인하고 새롭게 정리한다. 그리고 유연사회에서 개인은 한 집안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집을 떠난 삶이란 불가능하다. 집은 경제적 공동체인 것이다. 유연사회 사회 내에서 맺은 인간관계는 긴밀하며 사람들은 고립될 수 없다. 반면 유연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유는 제한된다. 유연사회는 답답하다. 일본의 1950년대 고도성장기는 무연이 되고자 노력했던 시대였다. 지방 농촌에서 대도시로 향한 대규모 인구이동이 일어났다. 집안의 후계자는 장남이었기 때문에 차남이나 삼남은 도시로 향했다. 차남, 삼남의 조상숭배의 촌락의 신앙과 관혼상제로부터 도망쳤다. 도시의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상경했다. 그들은 무연이라는 자유를 소망했다. 지방에서 도시로 상경하면 사람들은 무연이 된다. 무연은 속박과 굴레에서 해방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집을 떠나는 다른 방법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전쟁 후 고도성장기에 대학 진학을 위해서 상경하는 젊은이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대학은 이제까지 맺어온 인간관계를 끊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장소이다. 유연사회에서 정한 틀에서 벗어나 무연을 추구했다. 상경한 사람들은 도시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무연이 된다는 것이 곧 무연사회에서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인연은 기업에서 맺었다. 고도성장기에 일본기업은 종신고용, 연공서열을 추구했다. 기업은 일종의 공동체 성격을 지녔다. 기업은 직원들의 관혼상제를 맡았다. 특히 장례는 중요했는데 기업이 장례조의 역할을 했고 회사가 상주를 맡아 장례를 치렀다. 기업은 관혼상제를 통해서 결속력을 높였다. 기업경영에 촌락사회의 조직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도시에서는 기업 뿐 만 아니라 공무원 조직, 노동조합, 로터리클럽, 야구팬 등 다양한 조직에서 인간관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부모를 따라 도시로 온 아이들이나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학교, 학동클럽, 클럽활동, 대학체육회, 문과클럽, 자치회에서 조직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 가를 배웠다. 이와 같이 촌락사회와 다른 형태로 도시에서 유연화를 시도했다. 도시화가 곧 무연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셀러리맨 사회가 되면서 무연화는 가속화 되었다. 촌락사회를 모르는 세대는 기업과 공동체적인 일체를 이루기보다는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일류기업 정사원이 될 기회가 줄어들었다. 졸업 후 정사원이 되지 못하면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아르바이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데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경력을 쌓기는 어렵다. 가정에서도 부모는 일을 하고 자녀는 학교에 다닌다. 한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은 서로 다른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가정에서 서로 다른 생활을 하므로 부모와 아이가 접촉할 시간이 적다. 또한 독신자는 무연사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가 변하면서 일할 수 있는 여성이 늘어나고 경제적 자립에 성공한 여성이 많아졌다. 그녀들은 가정에 속하기 보다는 혼자 힘으로 자유롭게 살아간다. 골드미스의 탄생이다. 또한 골드미스가 늘어나면서 결혼하지 않는 남성도 증가했다. 도시 내부에서 무연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도시는 기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혼자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결혼이 살아가는데 더 이상 필수적인 요소가 되지 않는다. 셀러리맨 가정은 촌락사회와 달리 후계자가 결혼을 안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곤란해질 일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독신자는 무연사, 고독사의 예비군이다. 그들은 결혼, 가정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들은 가정과 결혼의 속박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기 원한다. 무연사회는 이와 같은 전후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연사회는 찾아올 수 밖에 없고 오히려 우리가 무연을 바랬다. 무연사회가 되면서 장례식이 간소화 되고 무연묘지가 늘어나고 있다. 무연사회 속에서 미리 고독한 죽음을 계획하고 각오할 수 밖에 없다. 죽음을 한탄하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죽음은 피할 수도 없고 이겨낼 수도 없다. 어떤 형식으로 죽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쩌면 모든 죽음이 무연사이다. 고독하게 죽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든 결국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무연사나 고독사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홀로 죽는다. 현재 무연사회 속에서 우리는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있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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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종종 뉴스를 볼 때 ‘청년 고독사’라는 말이 들려온다. 고독사는 독거노인들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때《사람은 홀로 죽는다》(시마다 히로미 저, 이소담 역, 미래의 창 2011)라는 책 소개에 내 시선을 붙잡는 문구가 보였다. ‘고독사의 예비군’. 외동에다가 독신인 나는 곧바로 책을 펼쳤다. 고독사의 예비군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선 무연사회(無緣社會)란 각박한 인간관계 속에서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현 사회를 말한다. 12년 전, 이미 일본에서는 연간 3만 2천 명이 고독사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젊은 세대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제 무연사회라는 현실에 압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자는 과연 무연사회란 옳지 않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무연사회가 되기 전의 ‘유연사회’ 즉 ‘촌락사회’를 인간미 넘치고 살기 좋은 구조로 보기도 하지만 만장일치로 촌락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집단 따돌림을 받거나 수많은 연에 얽매이며 사는 동시에 개인 자유는 제한되었다는 단점을 시사한다. 그래서 급속한 도시화와 맞물려 많은 이들이 유연사회에서 무연사회로 터전을 옮겼다. 시골 생활의 속박이 싫어 도시로 나온 사람들, 촌락에서 입지가 약해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차남 이하의 자식들, 양질의 교육을 받고자 상경하는 사람들…. 그 이유는 가지각색이었지만 무연사회의 도래가 필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따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샐러리맨 사회와 취업 자체가 힘들어진 경제 불황, 결혼의 당위성이 사라져 미혼 남녀가 많아진 현상 등이 무연화를 가속하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독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저자는 무연사회는 결국 우리가 원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찾아온 시대이고 정치나 행정에 기대기보다 지역사회에서 ‘절도 있는 유연’을 누리며 고독사를 단순히 두려운 대상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또 힌두교의 ‘유행기’(은퇴 후 홀로 명상과 수행 생활을 하면서 유랑하는 시기)를 예로 들며 고독사를 포함한 죽음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통해 사람은 자유롭게 해방되고 현세와의 연을 끊고 무연이 되면서 구원받는다. 무연의 본질적인 형태가 바로 죽음이고 곧 모든 죽음은 무연사(고독사)라는 것이다.
고독사를 한껏 걱정하며 책을 읽던 나는 무연사회가 나쁜 것이 아니고 고독사가 부정적이고 쓸쓸한 죽음이 아니라는 내용에서 신선한 사고의 전환을 느꼈다. 무연사회를 살아가며 고독사를 두려워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쉬웠던 부분은 고독사를 개인이 감당해야 할 숙명처럼 본다는 점이었다. 고독사는 단순히 초고령사회로 들어서면서 개인이 익숙해져야 할 현상이 아니다. 고독사는 명백한 사회 문제이다. 고독사하기 전 그 사람의 생활을 상상해보자. 기초 생활 수급 대상자였을지도 모르고 노후 자금을 두둑하게 준비해놓아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은 지 며칠, 몇 주일 혹은 몇 달이 지나도 알아차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던 삶의 끝을 저자의 말대로 ‘자립한 죽음’이라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고독사의 순간과 그 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독사에 이르는 ‘삶’에 초점을 두자는 말이다. ‘청년 고독사’도 마찬가지다. 사회 단절과 무관심이 비단 노인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사회 만연에 자리 잡고 있음을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몇 명이나 고독사로 세상을 떠나는지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없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을 때 이런 현상을 그냥 받아들이라고 종용하지 않고 부지런히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것처럼,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면 경제 불황과 엘리트 주위가 불러온 결과라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여러 방안을 마련하는 것처럼, 고독사 또한 국가가 적극 개입해 개인과 함께 다뤄야 할 문제이다.
책 내용과 같이 과거에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유연사회를 떠나 무연사회를 꿈꾸던 때도 있었다. 지금도 가족이나 친구, 사회 속 유기적인 관계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홀로 죽을 수는 있지만 홀로 태어나거나 살아가기는 힘들다.
《사람은 홀로 죽는다》는 약 12년 전, 일본의 고독사 상황을 그린 책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사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고독사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아주 잠깐이라도 자신이 고독사의 예비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무연사회를 초연하게 살아갈 각오가 되어있는지, 개인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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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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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살면서 뉴스나 신문기사에서 종종 접할 수 있었던 고독사 관련 뉴스를 얼마 전 한국뉴스에서도 접하며 드디어 한국도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는구나 생각했다. 가까우면서 먼 나라라 일컬어지는 일본. 일본에서 느꼈던 건 선진국이라 좋은 면이 많은 반면 이런 점은 한국이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점도 많았다는 거였다. 특히 애를 낳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젊은 층이 적어지다보니 전반적으로 사회가 활기가 없다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고 그로인해 초등학교부터 이제는 대학교까지 학생 수가 적어서 폐교하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한국 또한, 농어촌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약간 떨어져있는 곳까지 학생 수로 인한 초등학교 폐교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피하고 싶은 현실을 직면하고 이 문제에 대해 사회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줄어드는 문제와 더불어 홀로 외로이 죽는 걸 의미하는 고독사 또한 생각해야 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우리에게 좀 생소한 이 고독사에 대해 이미 그 과정을 겪고 있는 일본사회를 통해 미리 알아보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고독사라는 표현 보다는 무연사, 즉 아무런 인연을 갖지 못하고 홀로 죽는 거에 대해 무연사회에 대한 개념에서 시작해서 그 반대개념인 유연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왜 유연사회가 무연사회로 변화해 왔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농촌사회에서 산업화로 인해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고 그 모여든 사람들이 회사에 들어가 샐러리맨 즉 봉급을 받는 생활을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예전보다 지역사회에 대한 유대감이 옅어진 거라 보고 있다. 농촌이나 지역사회의 경우 한곳에서 오래 정착하며 농사를 짓거나 지역사회에서 대대로 이어 내려오며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회사생활의 경우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에 자식도 들어가서 일하는 경우는 드물고 같은 일을 하는 경우도 드물어 세대 간 직업교육도 힘들다. 지금의 불황속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 취업을 하지 못해 결국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멤돌다 고용불안과 해고로 인해 노숙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무연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봐야 되는가?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무연사회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닌 자유롭고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린사회 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골드미스가 있다면 골드미스터 또한 자연히 생기기 마련이고 점점 사회는 홀로 사는 사람이 늘어날 것 이라 이야기한다. 홀로 산다는 것은 자유롭게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삶을 고독한 삶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자유로운 삶이라 볼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알고서 선택한 독신이라면 자유를 추구한 결과이지 않을까 라고 우리에게 묻는다.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한국사회의 미래를 미리 본 거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사람과는 다른 정이라는 특유의 한국문화와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등이 다가오는 무연사회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갖게끔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