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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장하게 되고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소개 글을 읽는 중 예전에 한 커뮤니티의 게시판에서 읽은 한 글 때문이었다. 그 게시판의 주제는 절판되어 이제는 더이상 구할 수없는 책들을 자랑 하는 코너였는데, 그 중 하나가 '소돔 120일' 이라는 책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소돔 120일 이라는 책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읽지 못했고 더 이상 책을 구할 수 없어서 읽을려고 해도 읽기 쉽지 않다는데 흥미가 일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구하지 못하는 책에 대한 로망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글에서 읽어본 대다수의 사람들이 책 내용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읽기를 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읽어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절판으로 인해 더 이상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호기심이 일고 가질 수없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마련이다. 그것은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책을 좋아하고 소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책에대한 소장욕구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지 그때 그 게시판의 글을 읽을때 나 또한 '어떤 책이길래?' 하는 물음에 검색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인지 비슷한 주제를 가지는 이 책의 소개글과 소개글에 나오는 '소돔 120일'과 비교하는 글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책 소개글의 마무리에 적힌 '주인공 여성의 심리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독자들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는 말에 이 책을 선택 하게 되었다. 내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내면을 다른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고나서 나는 책을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해야만했다. 그만큼 책을 읽히는 느낌이 부족해서이다. 이 책이 소설보다는 회고록에 가깝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하고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많아서 일것이다.
이 책은 남녀간의 사랑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9주 반 동안의 이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는 사디즘으로 나타난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서 쾌락을 느끼는 두남녀에 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노골적인 성적묘사는 배제 하고 여주인공의 심리적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전계되어 간다. 문체자체는 딱딱 끊기듯 이어지고 있어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더욱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게시판에서 보았던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있다. 굉장히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넘기면서,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든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느끼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잘 읽히는 책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인하프위크'라는 동명의 영화의 소제가 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하기 때문에 읽어볼 만한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소돔 120일의 소장에 대한 막연했던 부러움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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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하프 워크』를 읽고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 간의 관계일 것이다. 인류가 출현할 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졌고, 두 사람의 결합으로 자손이 이어져 대대손손 지금의 모습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녀 간의 관계 모습이 세계 각 지역이나 국가마다 다 독특한 관습과 함께 다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이 진짜이고, 좋은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단지 우리나라에서 생활하고 있는 내 자신으로서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나 선을 보고 결혼을 하면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그리고 태어난 자녀들과 함께 가족을 이루면서 생활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생각이다. 바로 이런 생각과 자세로 벌써 30년 가까이 생활해오고 있다. 바로 이런데 익숙한 내 자신으로서는 각종 매스컴에서 보도되고 있는 각종 불건한 남녀관계라는 것이 그리 탐탁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요즘 학생들은 물론이고 결혼 전 많은 사람들이 애로에 관련된 각종 자료(테잎, 시지, 잡지, 발간책 등)를 많이 보면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었다. 물론 호기심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잠시 빠졌다면 이해할 수 있으나 깊게 빠지게 된다면 본인으로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찬성할 수 없는 내 자신의 생각이다. 얼마 전 여행하면서 지방의 어느 도시 밤거리를 거닐다가 정말 오래 만에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한 쭉 뻗은 다리를 가진 진한 화장을 한 날씬한 밤거리 여자들이 갖가지 자세를 하면서 밤거리 남자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내 자신도 남자이기 때문에 호기심이 들기는 했지만 내 자신을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난하게 그 거리를 지나칠 수가 있었다. 바로 이런 우리의 마음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 전개되는 이야기들도 정말 내 자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이라면 서로가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는 진지한 모습들이 절대 필요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에서 표현된 내용들은 내 자신 같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 잘 때 그는 그녀의 양 손을 머리 위로 올리게 하기, 눈을 가리고, 사랑의 행위를 구걸하게 하고 스카프로 그녀의 양쪽 팔목을 묶고,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씻겨주며, 화장도 지어주고, 채찍으로 매질을 하기도 하고, 수갑을 채워 창녀처럼 취급하게도 했다는 점이다. 책에 표현된 적나라한 애정행각은 한 마디로 놀랄 수밖에 없다. 저자가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겪은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회고록 형식으로 쓴 글이라고 하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아직 보지는 못했다. 어쨌든 강열하면서도 소름끼치게 하지만 에로틱한 표현에 정말 색다른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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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하프위크>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미키 루크와 킴 베이싱어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다. 줄거리는 생각 안 나는데 엄청 야한 영화로 기억된다. 영화라는 매체는 시각적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원래 의도와는 달리 보이는 것에 더 치중하게 된다. 그래서 원작이 있는 영화인 경우에는 원작을 읽어봐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인하프위크>는 제목 그대로 9주일 반이라는 시간 동안에 벌어지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이야기다. 결코 사랑 이야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육체적인 사랑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성적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주인공 ‘나’는 낮 동안에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그 남자와 자극적인 성행위를 즐긴다. 처음에는 두 손을 묶는 정도였지만 점점 그 수위가 높아진다. 이 남자는 놀라울 정도로 여자의 심리를 꿰뚫는다. 처음에는 다정하면서도 세심하게 여자를 배려한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여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자의 시중을 받으며 여왕처럼 지낸다. 식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먹여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옷까지 입혀주는 일, 하물며 그녀가 원하면 책까지 읽어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자가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성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만족시켜주는 이 남자에게 완전히 빠져든다. 그녀의 낮과 밤은 극과 극의 모습이며, 점점 그 남자와 함께 있는 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서서히 남자는 본색을 드러낸다. 마치 여자를 자신의 꼭두각시가 되도록 길들이는 것 같다. 남자는 한 번도 여자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 여자 스스로 남자에게 굴복한 것이다. 개구리를 팔팔 끓는 냄비에 넣으면 놀라 달아날 것이다. 하지만 찬물에 넣고 아주 서서히 물을 끓이면? 가학적이고 변태 성향을 지닌 이 남자가 여자에게 보인 친절과 정성은 쾌락을 위한 약간의 수고로움 정도다. 너무나 섬뜩한 점은 남자의 태도가 실험실에서 개구리를 해부하듯이 세심하고 능숙하며 매우 차분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자신을 남자의 손에 맡긴 것이다. 남자는 여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줬다. 자유를 포기한 것은 여자다. 만약 마지막까지 그들이 모험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원초적 본능>처럼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나인하프위크>는 단순한 성적 호기심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내재된 성적 욕망과 쾌락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 번 경험하면 헤어나기 힘든 중독처럼 그 여자는 결국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겨우 9주일 반이라는 시간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것이다. 이 소설은 1978년 작품인데 전혀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이란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코드가 아닐까. 진정 자유로운 인간은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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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하프 위크' 걸작이라 칭해지는 영화. 이 영화를 본 이들은 모두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저 강렬한 성애 영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하게 시각적으로 강렬하다고 하기에는 이 영화, 아주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30년 전 개봉된 이 영화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고 한다. 당시 국내 뒷골목에서 성행하던 19금(?) 영화에 빗댈 수 없게 강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설명이 필요 없는 걸작이라고 표현하는 데에 시대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어찌됐든 나인 하프 위크라는 제목만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고 해서 도대체 어떤 작품인가 궁금했다.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회고록 형식으로 써내려 간 이 책에는 한 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와 남자는 책 제목처럼 9주일 반을 사랑만 하며 함께 보낸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유치하게 답한다면 플라토닉한 사랑과 에로스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항상 사랑을 한다. 태어나서 부모와 사랑을 하고, 학창 시절에는 친구와 사랑하며, 스승과 사랑하고 동료와 사랑하고, 연인과 사랑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지만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어떤 사랑이 더 위에 있고, 밑에 있으며 더 대단하고 극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어떤 형태든, 관계든, 상황이든 모두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자와 남자는 사랑을 한다. 그들은 에로스 사랑을 한다. 그리고 동시에 플라토닉한 사랑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저 성적인 욕구만을 충족한다고 하기에는 그들은 서로를 간절히 원했고, 갈구했다는 점이다. 육체만을 원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순애보적인 갈구였다. 단순한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만남과 사랑이었다면 그들은 굳이 상대가 아니었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남자가 꼭 '그'일 필요는 없는 것처럼, 여자도 꼭 '그녀'일 필요는 없다.
처음 같이 잤을 때 그는 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못 움직이기 했다. 그게 좋았다. 난 그가 좋았다. - p.5
그들은 병적인 성욕은 사랑에서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 또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상업성을 품은 그저 변태적인 관계를 담은 이야기라 오해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완독 후 생각이 달라졌다. 사랑의 또 다른 해석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우리는 순애보를 갈망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고, 손에 잡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마치 오아시스처럼 그것을 꿈꾼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매개체를 접하면 순애보를 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내 인생과 열정을 바치는 그런 순애보를 요구한다. 또한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럼 현실에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닌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이 책은 진짜 사랑이 무엇이었나를 꾸밈없이 보여준다.
나는 그게 '병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기간을 산 내게는 생각할 없는 일 같았다. 이제야 과거가 된 그 몇 주일을 독립된 현상으로 돌아볼 뿐이다. 그것은 모든 함축적 의미가 결여된, 꿈처럼 비현실적인 내 삶의 단편이었다. - p.32
사랑에 빠져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진짜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허우적댄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물이 턱 밑까지 차올라오는 순간들을 산다. 급하고, 허둥대고, 불안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는 시기를 '봄'이라고 칭한다. 한낱 봄날이었다고 말한다. 나처럼 색안경을 끼고 이 책을 접할 많은 사람들에게 감히 충고하고 싶다.
진정한 사랑에 빠진 봄날이 바로 이 책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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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유명한 영화 중에 [나인 하프 위크]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망가져 변해버린 미키 루크가 그 귀엽고 섹시한 모습으로 인기 상종가를 달리던 시절에 역시 섹시심벌이었던 킴 베이싱어와 함께 찍었던 영화였다 나는 그때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의 연령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저 소문으로만 카더라하는 뜬구름 같은 부정확한 전해지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그후 좀 더 나이가 들었는데 비디오가게에서라도 우연히 봤더라면 빌려다 봤을텐데 아쉽게도 눈에 뜨지 않았다 이제는 위디스크 같은 영화파일디스크에서도 구해 보기 힘든 영화가 되어버린 지금 이 나인 하프 위크라는 원작 소설을 읽어 보니 불현듯 추억의 그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우습기도 하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인데 이 소설이 던진 파문을 가만히 상상해보니 그간 세상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또 금기를 넘는 시도로 충만했는지 짐작이 얼핏 갈 것도 같았다 우리는 좀 더 해방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자아를 넓혀 한계를 부수는 윤리적 도덕적 정신적 일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도중에도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후 생각에 잠겨 있는 지금도 나는 어느 쪽이라고 판단을 못 내리겠다 개인의 성적 자유와 환상의 충족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을 읽는다면 아마도 흡족한 대리체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노말한 취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면 거부감과 모욕 그리고 적대감을 가질 혐오스러운 부분이 들어 있다 주인공은 뉴욕에 거주하는 중산층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지적 여성이다 또한 주인공의 상대가 되는 남자 역시 같은 계급의 독신 남성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건전하고 사화적으로 독립된 그래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성적 일탈에 가까운 방종한 향락의 추구가 나에게는 왠지 화가 치밀어 오르게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런 이들의 행각을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 보기로 했다 이 둘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가학 피학의 변태성욕의 지배구조를 취하고 있다 남자는 때리고 명령하고 지배하며 돌봐주고 결정한다 심지어 옷까지 입혀주는 뭐랄까 여자에게 거의 주인님이라든가 아니면 아버지 같은 존재로 군림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복종하고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하고 때리면 맞고 수갑을 채우면 즐겨 그 짓을 당하고 먹을 것을 주면 먹고 모든 것을 결정된 대로 따르는 철저하게 피동적이고 복종적인 수동적 상태로 피학의 표본같은 심리 구조를 가진 파트너이다 이들의 성애의 형태가 이들의 지배구조와 심리구조 나아가서 정치적 영향의 파장까지 좌우하는 미묘한 이상징후로 점 점 더 가열한 열기를 띄어 갈수록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지워지고 개인의 자유라는 극한이 그 끝을 넘어 새로운 지점으로 다가가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관념이 붕괴되는 비정상의 긍정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금기가 교란되는 육욕의 난장판인가 나는 이 논란의 한 가운데서 어느 쪽도 편들지 못하고 다만 그들의 지치지 않고 변태적인 열정의 몰입을 호기심과 (그렇다 호기심이다) 조심스러운 두려움이 섞인 이질감을 느끼며 다만 관음적으로 훔쳐 보기에만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많이도 변태스런 성욕이 충족되는 다양한 통로가 개발되었지만 이 책이 쓰여졌을 70년대라는 시대적 조건에서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을 이 책의 자극적인 기기묘묘한 행태에 나는 어떠한 지적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그저 활자를 따라가며 어떨 때는 혐오로 어떤 때는 놀람으로 또 어떤 때는 성적 자극으로 이 책과 함께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소개후기를 읽어도 도대체 이 책에 대한 선악적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니 아마도 이 책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소설일 것이다(사실 이 책은 소설의 형태를 띈 회고록이지만) 그래서 선하기보다는 방종하고 악하다기보다는 자유를 지향하는 열린 정신을 두드리는 새로운 사조의 효시일 것이다 이 책이 쓰여질 당시는 페미니즘이 한창 그 고개를 들고 대두되던 시대라고 한다 그 당시 여성들은 자발적인 독립과 통제력, 지배권과 지배욕, 권리의 신장과 책임감을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여성들의 열망과 기대를 단숨에 배신하는 퇴행적인 정치성을 띄고 있는 문제적 소설이었다 단지 아기가 되어 남자가 시키는 대로 동물이 되고 노예가 되어 어떠한 것이든 복종하는 피학적인 예속의 모습 속에서 환희와 성적 절정을 느끼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아마도 여권신장운동의 여성들에게는 무척이나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런 시대정신과의 부조화라는 엇나간 자화상이 일그러진 성적 일탈의 추구속에 점 점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 이 소설의 충격 파장의 한 장을 수식하고 있는 이채로운 무늬일 것이다 소설은(아니 회고록은) 그럼에도 결국 불구하고(아닌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고 다행히도 인가) 둘의 찢어진 결별로 끝을 서둘러 아주 간단히 맺고 만다 이 어이없는 개심(改心)같은 결말은 선을 지향하는 인간 공통의 본성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로스로 메우기에는 금기와 본능의 추구가 주는 공포가 더 컸다는 말인가 나는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다 과연 이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에덴 동산에서 저지른 성적 방종과 도전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증진인지 아니면 그저 배부른 여피족이 무료해 할 일이 없어 온갖 변태적 체위를 다 실험해 보던 포르노였는지
이들이 실화 속에서 행했던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난지도 이미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 변화한 만큼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의식변화는 수반되었다 이제는 나인하프위크 같은 영화는 그저 그런 수위를 가진 별로 야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이미지중의 하나가 될만큼 자극과 충격이 일상화된 그래서 그만큼 인간의 한계와 금기와 모랄이 넓혀지고 깨어지고 넘어선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만치 인간이 더욱 퇴폐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당신은 나인 하프 위크 같은 도전적인 성적 자유에 심취하고 환호하는가 평범한 보통 사람인 나는 본능적인 경계감을 갖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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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미크 루크와 킴 베이신저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아 아주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영화의 세세한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의 이미지는 확실한데, 둘이서 냉장고를 열고 크림과 딸기 등등 가지고 향연을 벌이는 장면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원작이 있는 영화는 책을 먼저 보기 전까지는 안 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고등학교 때부터 방학이면 하루에 비디오 5-6편 씩을 매일같이 보고 다음날 반납하던, 초초초우량 고객이었던 탓에 미성년자 임에도 화제가 되는 영화를 빌려볼 수 있었더랜다. 쟤는 호기심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진짜 영화 좋아하나 보다.. 라고 비디오 가게 주인도 생각했을 것. 때로는 고전 영화가 새로 출시되면 모아 두었다가 제일 먼저 빌려주시고는 했었다..
그렇게 해서 미성년자 신분에도 감히 볼 수 있었던 19금 영화.. "나인 하프 위크" 거의 20년이 흘렀지만 또렷이 박힌 이미지.. 나름 충격으로 머리에 남아 있는 이 작품의 원작이 이제서야 소개되고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저자의 자전적 경험을 소설화한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남자와 9와 1/2주 동안 불꽃같은 사랑을 하면서, 사랑의 향연을 벌이는 내용이다. 그들의 사랑은 정신적 교감과 함께 육체적 쾌락으로 진행되는데, 그 향락은 점점 가학피학적인 모습을 띄고 점점 강해진다.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지만, 현대에 와서는 각종 성에 대한 실험적 시도가 별로 거리낌 없는 시대가 되었고, 별의 별 취향이 있다는 것은 각종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질 무렵은, 이러한 시도 자체와 그러한 시도를 밝히는 것이 터부시되던 시절이었기에 과감히 자신의 경험을 소설화하여 밝히고 공론화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시절이었으리라.
지금, 아직도 우리 나라가 그러하듯이 미국 역시도 그러던 시절에서 이러한 시도 때문에 차근차근 개인의 취향에 대한 해방이 이루어졌으리라. 그책 출판사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 에디션D 시리즈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응원하고 있는 시리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장르이지만 보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상대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쾌락의 향연에 대한 묘사를 한꺼풀 벗겨내고 나면, 사랑에 빠져 마냥 행복하고 그 행복을 다시 맹목적인 사랑으로 돌려줄 수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서로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해줄 수 있는 9주간의 사랑. 다만, 다 주더라도 생명까지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 사랑을 끝나고 말았지만 불꽃같은 9주 동안의 사랑은 그 어느 러브 스토리에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치열하고 아름답다.
그 치열함을 누가 평가하고 뭐라 그럴 수 있겠는가.. 사랑해서 한 일이기에 그들의 변칙적 사랑에 결국 작품성을 인정한 것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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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소개글을 보면 사디즘이란 말이 나오다. 사디즘의 사전적 의미는 성적 대상에게 육체적.정신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성족 만족을 얻는 이상 성욕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마조히즘이란 말도 나오는데 이 역시 사전적 의미는 이성으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은 데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 성욕을 의미한다. 즉 확대를 하는 사람과 확대를 받은 사람이 쾌감을 느끼는 것을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란 이야기다. 나인 하프 위크의 남자 주인공은 사디즘이고 여자 주인공은 마조히즘이란 이야기다. 그러니깐 이들의 사랑은 사전적 의미만 봐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78년 엘리자베스 맥닐이라는 가명으로 쓴 회고록이라고 한다. 그럼 책으로 보는 나인 하프 위크는 어떨까?
이 책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만나 아주 열정적이고 불같은 사랑을 한 9주일 반동안의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를 만난 후로 낮에는 뉴욕의 전문직 여성 즉 독립적이고 스스로 결정하는 여성이 되지만 저녁이 되면 무기력하고 남자에게 의존하고 애완동물처럼 보살핌을 받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필요도 없는 여성으로 변한다. 즉 여자는 쾌락을 얻기 위해 자기 삶의 방관자가 되어간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그 모든 것을 통제한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강렬한 사랑은 한쪽의 피를 보고서야 끝나게 된다
사실 나는 이들의 사랑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아니 여자를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녀는 여성들이 부러워 하는 커리우먼이다. 이성적이고 독립적이고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녀 한 남자를 만나 한 순간에 서로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한다는 거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남자가 처음으로 여자에게 사디즘의 성욕을 보일때 여자는 거부했어야 했다. 여자가 싫다고 이야기 했을때 더 강하게 거부하고 남자의 집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갔어야 했다. 여자는 이성보다 쾌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비참했다.
책은 여자의 심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남자의 심리는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왜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 여자를 자신의 성적 욕구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 한 건지 , 여자가 떠난 후의 심정은 어떠했는지 그 어떤 글에도 남자의 심리가 나와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남자의 심리가 궁금했다. 여자의 생각과 함께 남자의 심리상태나 생각이 있었다면 이 책이 더 흥미로운 책이 될수 있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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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미키 루크와 킴 베이싱어 주연의 영화 '나인 하프 위크'를 본 것은 야하다는 소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인 장면은 기억나지 않는데, 영화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킴 베이싱어가 야한 동작으로 춤을 추던 장면, 킴 베이싱어의 눈을 가리고 미키 루크가 얼음으로 희롱하던 장면 정도가 떠오른다. 벌써 25년 전에 찍은 영화이니, 아직은 젊은 이들의 거침없는 사랑놀음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으로 영화의 원작인 <나인 하프 위크> (2011,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그책 펴냄)를 읽게 되었다. 영화에서 화면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심리들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영화와는 설정이 꽤 다르다. 영화에서는 화랑에서 근무하는 이혼녀와 주식 중개인인 남자로 설정되었는데, 책에서는 이런 개인적인 사실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축제 날 남자를 우연히 만났고, 만난 날부터 매일 데이트를 했고, 만난 지 96시간이 지났을 때 잠자리를 같이 한다. 그 첫 잠자리에서 남자는 '나'의 얼굴에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때리고, '나'는 '욕망이 너무도 강렬하게 솟구쳐서 메스껍다'고 느낄 정도로 그의 행위에 탐닉한다. 남자는 때리고 묶고 요구하고 괴롭히고 여자는 맞고 묶이고 요구 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너무나도 철저한 사도마조히즘적인 관계에서 '나'는 점점 내 의지를 잃은 채 종속되어 간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며 이성적인 생활을 하고, 밤에는 그의 집에서 본능적인 욕망만을 추구하는 생활을 한다. 정신적인 교류보다는 육체적인 쾌락만이 존재하는 듯한 이들의 삶은 마치 마약과도 같다. 욕구는 점점 더 강해지고 그럴수록 마음은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그래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어 보이는 남자의 생활과 다르게, 철저하게 종속되는 여자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인 하프 위크>는 남성 독자들을 위한 포르노그래피라라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맥닐이라는 필명으로 쓰인 여성의 연애 회고록이라고 하지만, 철저하게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내용이어서, 정말 여성이 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내가 들은 어떤 강연에서 한 선생님은, 여성에 의해 쓰인 여성을 위한 포르노그래피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꼽았다. 조만간 둘을 비교하며 읽어볼 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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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후에 책을 읽은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미키 루크 주연의 선정적인 영화를 봤던 기억은 있으나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약 2개월 간의 남녀의 원색적인 사랑, 줄거리는 단지 그 뿐이다. 이야기는 여자의 시선으로 처리된다. 자신의 눈이 머무는 곳을 섬세하게 묘사하되,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성을 적용시켜 그려나간다. 큰 의미를 두지도 않고 좋거나 싫은 것도 별로 없는 건조한 묘사라고 생각되었다.
맨해튼 시내의 거리 축제에서 만난 낯선 남자와 시선을 주고 받고 애매한 감정을 느낀다. 남자는 평범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반혁명적인 성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적인 관계'라고 하는 어려운 말처럼 그들의 사랑은 우리가 이해하기 좀 어려운 면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갈수록 쾌락은 커지고, 더욱 갈구하게 되는 욕망은 여자를 중독되게 만든다. 자신이 점점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빠른 시간 속에 새로운 경험이 주는 흥미진진함에 이끌려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만다.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아름다운 성과 동물적 쾌락의 차이는 무엇일까 혼돈스러웠다. 30년이나 지난 이 이야기가 현재에도 어색하고 비정상적인 이야기로 들리는 것은 아직 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기도 하고, 성을 두려워하고 숨기려고 하는 한국의 정서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녀 간의 사랑은 뜨겁지만 가볍기도 하다. 사랑이 없는 육체적인 관계는 무의미하고 공허하다. 너무 가벼워서 모든 이야기가 허공으로 흩어져 버릴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책과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인간의 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평범하지 못한 사랑이라고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듯이, <나인 하프 위크>의 짧은 사랑도 그들에겐 큰 의미가 있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위험한 사랑의 유혹은 있을 수 있고, 그 유혹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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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 시내의 거리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했고 여자는 기꺼이 남자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참 기묘한 남자다. 빨래방에 가기싫다는 이유로 천짝에 가까운 양말을 서랍속에 쟁여놓는 남자, 그것도 온전히 검정색 양말로만 말이다. 연애를 시작한 첫날밤에 여자의 뺨을 치며 거울을 보여주는 남자가 정상적인 남자일까? 그렇다고 여자가 그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인것도 아니다. 그들은 진하디 진한 사랑을 나누었을 뿐, 30년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