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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에서는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몫이라고 우기기까지 하는 작금입니다. 헌데 우리도 가끔은 뭔가 마음 속에 회의가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당대에 백제, 신라인들과 그들(고구려인들)이 서로 말이 얼마나 원활히 통했으며, 결국은 한 겨레의 세 가지라는 동류의식이 과연 어느 정도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이미 답을 내어 놓았고, 그 유력한 증거 중 하나가, 고구려의 승려가 백제, 신라 등을 주유하며 불법(佛法)을 선포하기도 했다는 (꽤 다양한) 사례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고승 중 한 분이 바로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이라든가, 그보다 백여년 전에 활약했던 승랑(僧朗)이란 분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승랑 이분의 법명은 정평 있는 교과서(대학교 학부 수준)에 나오기는 하나 아주 구석진 곳에 그야말로 두 음절 이름만 적혀 있는 정도입니다. 어지간한 마니아 아니고서는 기억을 못 하는 게 뭐 그리 탓할 일도 아닙니다. 법명이 좀 특이하죠. 보통은 불가에 입문한 후 정진해 나가야 할 방향이나 덕목을 이름으로 삼는 게 보통인데, 이분은 승려 승 자에 사내 랑 자를 그대로 썼습니다. 젊은 나이이면서도 외모가 과연 법제자다워서였을까요, 아니면 "스님 되기에는 아까운(?) 풍채라는 뜻이었을까요?
아무튼 이런 분들은 삼국시대 반도에 터잡은 세 나라가 문물 교류 면에서 서로 그리 소원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유력한 실존례로 꼽힙니다. 용케도 그의 출신 지역까지, 압록 이남이나 평양 인근이 아닌 요동 지역입니다. 그런 분이 멀리 중국 땅에까지 득도를 위해 건너가서, 역시 자신보다 백여 년 앞서 인도에서 중국에 건너왔던 구마라습의 법제자로 투신하여 그윽한 도의 경지를 깨달았다는 사실, 후대인의 입장에서 참으로 마음 뿌듯해지는 사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에는 잘 알려진 대로 다양한 경전이 존재합니다. 그 중 "삼론종"은 열반경을 교상판석 윗자리에 올리는 경향인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중론(中論), 십이문론, 백론(百論)"의 삼론(三論)을 교의의 중추로 삼습니다. 중국 불교의 빼어난 정수는, 인도 본토에서 여전히 주류로 발흥하던 소승불교의 성격을 놓고, 보다 많은 대중을 구제하며 동시에 호국 사상의 근본에까지 천착한 대승 불교로 변용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도나 동남아시아와, 중국, 한국, 나아가 일본의 불교는 성격을 크게 달리하여 그 나름의 기여를 각국의 역사에 남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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