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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하면 ‘피리부는 소년’이
클로드 모네하면 ‘수련’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아티스트 커필 시리즈’중, 인상주의 거장들을 만날 수 있는 <마네와 모네>를 읽으면서, 그 두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물론
대표작이라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대표작이라는 것은 그 화가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금은
한 방향으로 바라보게 하는 거 같기도 해요.
그래서일까요? 이번에 마네가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려본 ‘불로뉴 해변’을 보며 새삼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에 바닷가에 불어온 거친
바닷바람이 그대로 저에게 전달되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근처에 전시가 되어 있으면 가보려고 했더니, 미국 버지니아 미술관에 있다는 정보를 보고 아쉬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 소모적인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말하지만 난 본 대로 그린다”라고 답했다고 하는데요. 이 작품과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이 “그 그림은 인간에 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정물화에나 속한다”라고
평했던 ‘에밀 졸라의 초상’이나, 비슷한 느낌을 주던 ‘자샤리 아스트뤼크의 초상’을 보며, 그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더군요.
모네의 작품을 잘 설명한 인물은 모파상이었는데요. 모네가 에트라타의
절경을 그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했을 때, 기 드 모파상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지요. 모파상은 "모네는 대여섯 개의 캔버스를 들고 다니면서 동일한
주제를 다른 날 다른 시각에 그린다.”며 그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어요. 모네의 연작의 시대를 볼 때는 정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연을 따를 수는 있겠지만 따라잡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니,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풍부한 빛과 색과 질감으로 가득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마네와 달리, 모네는
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야 했는데요. 그래서일까? 그는
자연을 화실 삼아, 자신의 눈과 느낌으로 세상을 화폭에 옮겨 담았지요.
그렇기에 모네는 기력을 잃은 말년에도 지베르니 정원을 만들 수 밖에 없었을 거 같아요. 자신이
화실로 나갈 수 없으니, 화실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들이 살아간 시대는 문인들과 화가들의 교류가 많아서, ‘미술 비평의
황금기’라고 불렸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제가 언급했던 에밀
졸라와 모파상뿐 아니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줍니다. 마네와 모네 역시 그 연이 닿아있기도 했고요. 예전에 르느와르가
마네의 조카인 줄리 마네의 초상화를 그려준 것을 본적이 있는데요. 이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화가들과
문인들, 화폭에 등장하는 모델과 화가들의 후원자 심지어 정치인까지 정말 많은 이의 이야기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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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두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고 비교하며 그들의 예술을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나에게 어렵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마네와 모네의 비교를 통해 영화보듯 편한 마음으로 인상주의가 어떤 것인지 흐름을 이해할수 있었다.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유명한 몇몇 작품을 두고 설명한 것이 아니라 대표작으로 뽑히는 명작부터 습작이나 유명하지 않아 알지 못했던 그림까지 보여주니 더욱 이해가 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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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티스트 커플>이라는 시리즈로 동시대를 살아간 두 화가가 미술사에 미친 영향과 두 화가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프로젝트로 출판된 책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해군이 되고 싶었지만, 계속되는 낙방으로 인해 결국 화가의 길을 택했지만 독선생을 두고 제대로 가르침을 받았던 마네, 반면 가난해서 제대로 된 미술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화실도 못 구해 밖에서 그림을 그릴수 밖에 없었던 모네.
둘의 시작은 극명하게 갈렸지만, 둘은 기존의 미술사에 반기를 던지는 작품으로 국선에 계속 낙선하면서도 자신들의 화풍을 만들어 인상주의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때론 서로의 그림을 비난하기도 하고, 때론 서로의 작품을 모방하기도 하면서 둘은 그들만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그 인연은 화풍뿐만 아닌 개인적인 인연으로 이어져 모네가 가난을 면치 못할땐 마네는 아낌없이 돈을 건넸고, 자신에게 베푼 은혜와 마네의 그림을 인정한 모네는 마네가 죽은 후에 그의 그림이 미국으로 팔려나가지 못하도록 모금운동등 갖은 노력을 해서 박물관에 전시되도록 만들기도 했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미술사에 인상주의라는 큰 획을 그은 두 화가의 삶과 작품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한 화가의 삶을 오롯이 들여다보는 전기같은 방식이 아닌, 두 화가의 삶을 통해 어떤식으로 두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전체적인 인상주의의 흐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획의 책이었다. 모네를 좋아해서 여러개의 십자수작품을 했던 내게는 엄청난 분량의 작품들과 평소 접하지 못했던 숨겨져있던 모네의 작품들까지 원화색 그대로 만날수 있어 정말 최고의 책이 되었던거 같다. 이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는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와 클레>, 고독한 영혼의 화가들 <고흐와 고갱>, 표현주의 대가들<뭉크, 쉴레, 클림트>, 르네상스의 천재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이 이미 출판되어있다. 이중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은 꼭 읽어보고 싶다. 좋은 취지에 걸맞는 정말 최고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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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아' 와 '오' 차이 하나로 두 화가는 항상 혼돈을 던진다. 마침 커플로 묶어서 일대기를 소개하는 책이 나와서 얽혀 있던 머리 속을 정돈해 준다.
마네는 경제력이 충분하여 화가로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던 큰 요인이었던 것 같다. 그린 그림들마다 호평받지 못했고, 습작 시절부터 스승에게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루브르 박물관에 들러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당연히 그들의 작품을 모사하거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렘브란트나 라파엘로 같은 고전적인 화풍과 비슷한 그림이 나오기도 하고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분위기의 작품들도 많다. 마네는 그의 시대보다 앞서 그려진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이런 것이 그의 특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창작은 모방에서 부터 출발하는 것 아니던가. 고전주의를 프랑스의 사실주의로 둔갑시켰다는 악평을 듣기도 했지만 이 또한 마네만의 기법인 것이고 마네 작품의 특색이 아닌가 한다.
마네가 현재 시절에 살고 있다면 모방에서 창조해 내고 탐구하는 실력으로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문명의 이기를 만났다면 아주 잘 활용했을 것 같다. 떼어 내고 붙여 넣는 기능도 자주 활용해서 그의 솜씨는 대활약을 펼쳤을 것 같다. 티치아노와 같은 고전 학풍을 연구하여 마네 스스로 힘찬 붓질을 하여서 탄생한 그의 작품처럼 논란도, 악평도 많았지만 그 만의 작품으로 우뚝 섰다.
마네와는 화풍도, 지향하여 그리는 그림도, 생활상도 모두, 전혀 달랐던 모네였지만 단지 동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름에 관한 일화도 있다. 어느 카툰니스트가 <모네냐 마네냐? - 모네다!>, 라는 제목의 그림에 " 그러나 마네가 있음으로 해서 모네가 가능했다. 브라보, 모네~!, 고맙다, 마네~!", 라고 (44쪽) 했단다.
모네의 풍경화를 보면 인상주의 화가로서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자연빛 아래에서 표현해 낸 그의 작품들, 특히 퐁텐블로 숲에서의 작업과 다양한 풍경화들은 그를 더욱 깊이있게 느끼게 해 준다.
실내보다 외부에서 이젤을 세워 놓고 빛의 변화에 따라서 풍경을 담았던 모네는 흡사 자연과학자, 사진작가와 같은 느낌을 준다. 빛에 따라, 계절에 따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피사체를 연작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새로운 실험 정신까지 우러 나오게 그렸다. 부유했던 마네에 비해 경제적으로 쩔쩔 맬 정도로 궁핍했던 모네는 그럼에도 아내를 위해서 하녀를 고용하기도 하고, 보트를 빌려 타고 그림을 그렸다. 모네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어 주려고 애썼던 마네의 숨은 노력도 모네의 작품에 한 몫 보탠 셈이다.
풍부한 그림들로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서 더욱 눈이 즐겁다. 마네와 모네, 그들이 남긴 인상주의 그림들은 누가 어느 작품을 그렸는지 생각을 비우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 올라가다보면 그들의 화풍과 특색이 눈에 보이도록 전개해 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들의 일상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행보도 그들을 이해하기에 더욱 가세하는 분위기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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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오르세 미술관에서 모네의 <루앙 대성당>의 연작을 본 후 빛의 반사에 의해 다르게 표현한 그림을 보고 동안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나를 잡아먹을 듯 느껴지던 쾰른 성당의 감동과 다른 꿈속에서 어스름한 성당의 모습을 보는 듯 편안함에 빠져든 후 프랑스에 갈 때마다 모네의 그림을 감상하게 되었다. 이 서적은 마네와 모네의 일대기를 담고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준 화가와 당대의 예술인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빛이 나는 부분은 270점의 미술품을 수록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모더니즘의 선두 주자 마네와 인상주의 대표화가 모네의 삶과 그들 작품이 시대에 따라 발전하는 부분을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모네, 마네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서적으로 평하고 싶다. 모네, 마네의 위인전과 평전에서는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과 그들에게 큰 영향을 준 화가들의 작품도 비교하면서 보는 부분은 인상주의 화풍의 발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부분이었다. 마네와 모네의 삶을 연대별로 나열하면서 서로를 향한 존경과 우정의 내용들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당대의 미술 평론가들의 비평도 다수 수록하고 있어 독자의 머릿속에 시대 순으로 그들의 삶과 그림을 정리시켜 주는 데 가장 적합한 서적으로 평하고 싶다. 한때 한 점에 200프랑에 불과했고 아내 까미유의 죽음 당시 매우 궁핍해서 그 그림에서 측은함과 연민을 넘어 슬픔에 잠기게 했었지만 시간이 흘러 모네의 그림이 1921년에는 20만 프랑을 넘는 가격에 판매되었던 내용은 매우 감동을 주는 부분이었다.
인물화로 유명한 마네와 풍경화와 연작으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를 한 편의 서적에서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자세히 알지 몰랐던 마네의 작품의 매력을 다시 보게 되었으며 모네에 대해서는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서적으로서 많은 분들에게 이 서적을 추천하고 싶다. 270점 이상의 미술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서적에 대한 평가는 최고 수준이라 하겠다. 이 서적은 소장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품을 감상하며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노력을 한다며 실제 작품을 만나게 된 후 감동은 배가될 것으로 확신한다. 많은 분들이 자녀들에게 이 서적의 작품을 함께 하는 힐링의 시간을 갖기를 희망한다. P 289 “아주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으며 빛의 작용에 대해 놀라운 감각을 갖고 있고 가장 적절한 관망을 통해 최고 수준의 것을 나타낸다.”- 평론가 앙드레 미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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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 1883)는 ‘올랭피아‘와 ’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은 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論)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등을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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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도서관 미술책 한켠에 제목이 눈에 '탁'하고 꽂혀 꼭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전작' 방구석 미술관'을 읽은지 바로라, 마네와 모네만을 위한 자세한 책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일었다. 또, 요즘 어머니께서도 열심히 '방구석'을 열독하고 계시는 와중이어서 함께 교감하며 읽을 수 있어 더욱이 좋았다.
서로는 그들에게 형제같은 존재였으며 제목 그대로 인상주의의 거장들이었다. 마네가 형이었고 경제적으로 더 부유했으며 평생 모네를 아끼고, 그의 실력이 녹슬지 않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모네가 어려운 시기 아주 조건없이도 돈을 잘 빌려주었다. 참, 마네도 대단하다. 쉽지 않았을텐데 그의 미술을 향한 열정이, 훌륭한 재능을 갖춘 화가를 지원하는 그의 마음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름도 심지어 비슷하다(Edouard manet/Claude monet).또 작품또한 비슷하게 구분이 안되는 것도 있다. 마네는 주로 인물화를, 모네는 주로 풍경화를 그렸다. 1832년생 마네는 모네보다 8살 형이었지만 시대를 풍미한 프랑스의 대표 화가였다. 소위말하는 엄친아였던 마네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아버지의 사망후에도 유산을 상속받았다. 이후 한 스승밑에서 6년이상 수학하며 드로잉을 충분히 익혔고 여러 뮤지엄에서 대가의 작품을 모사하며 화풍을 익혔다.
마네는 이와 반대로 중년기 이후 명성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기 전엔 정말 어렵게 살았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혼자힘으로 화가의 길을 가야했고 고향에서 부댕하게 잠시 배운것을 빼고는 제대로 교육을 받진 못했다. 따라서 그에게 화실은 바로 자연이었다. 직접 산과 들로 나가 직접 본 장면들을 그렸으며 대가의 화풍 연구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한 그는 의도적 구성보다는 본인만의 느낌에 충실한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인물화를 많이 그렸고 모델역시 그에겐 중요했다.
세잔은 그를 보고 "얼마나 놀라운 눈인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모네는 빛의 변화에 시간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표현하며 빛이 사물에 닿아 사방으로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형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는 화실에서도 그것을 기억하며 재연하도록 늘 애썼다.
당시 평론가들은 마네를 인상주의 화가들의 왕이라고 평가했다지만 실질적인 영예는 바로 모네였다. 8차례에 걸친 인상주의전에 한번도 참여하지 않은 마네였기에 그이유는 바로, 1864년 그의 화실근처 카페 게르부아에서 바지유, 세잔, 모네, 르누아르 등 젋은 화가들이 모였었고 이들이 바로 마네를 중심으로 '바티뇰 그룹' 혹은 '마네파'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때 마네는 권위적이거나, 그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자연스런 토론의 분위기 속에 후배 화가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경청했다고 한다. 모네를 도와준 면모도 그렇고 마네의 인간 됨됨이는 참 훌륭한것 같다. (열외로 그가 매독으로 사망한건 참 의외다, 또 초기 그의 병을 류머티즘으로 진단한 의사에게도 안타까움을... 모네의 사랑하는 아들 장은 또 , 왜 의붓누이와 결혼했으면서 47세에 매독으로 뇌증상으로 사망했는지.. 예전 사람들은 성병으로 인한 사망이 매우 흔했던듯하다 , 특히 유명화가들!! )
마네의 1863년 '풀밭에서의 오찬'과 '올랭피아'는 모더니즘을 연 그림으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또한 1874년은 모더니즘의 회화혁명이 처음으로 일어난 해라고 할수 있다. 전시회를 관람한 평론가 루이 르루아가 이들을 가르켜 인상주의라고 지칭해 이때부터 모더니즘의 첫 사조ism이 탄생했다. 특히 그는 모네의 '인상, 일출'을 보고 이 개념을 붙였다고 한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열었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받아 이들을 이해해야 미술에서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수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더 이상 모방하지 않을 것이다. 생동감 있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 이글은 아방가르드 정신의 선언이란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아방가르드 정신이란 순수미술,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진보주의 예술가들의 정신을 말한다.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과거에서 벗어나는 과격한 출발점이었다
*모더니즘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앵그르가 아니라 들라크루아였으며 인상주의는 들라크루아의 회화론에서 파생되었따. 여기에 사실주의 운동의 리더 쿠르베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보여준 돌출행동은 미술사에서 의미있는 사건이 되었다. 회화의 목적이 더이상 이야기를 하거나 성경의 내용 또는 역사적 사건들을 교육적인 목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나 일시적 환경의 변화를 내타내는 것이라 주장했다. 아름다움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에 역사나 전설에서 찾을 필요가 없고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가운데 있는 것이며, 머릿속에서 관념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전개되는 대상에서 찾아지는 것임을 의미했다. 사실주의는 쿠르베에게 '인도주의적 미술 Humanitarian art '였고 , 새로운 미술의 탄생을 의미했다
*모네가 클레망소에게 (1926년) 나는 미지의 실체와 깊이 관련된 현상을 가능한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그런 일체화된 형상과 같은 경지에 있는 한 우리는 실체에서, 아니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만, 우주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붓으로 증명해 보이려고 했을 따름입니다
마네는 결국 매독으로 1884년 4월 30일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모네는 사랑하는 아내 쉬잔이 아들 장을 낳고, 둘째 미셸을 낳으면서 젋은 나이에 사망( 아마도 ut. atony로 인한 산후 출혈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 함에 따라 두번째 아내 알리스와 훗날 결혼한다. (그녀 역시 지인의 아내였는데 그둘 부부를 그리며 머물던 도중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결혼한건 그녀의 전남편이 사망하고 난후의 일이지만.. 사람인연이라는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대목이다 ) 그녀가 먼저 백혈병으로 1911년 세상을 떠났고 이후 모네는 이미 명예와 부를 다 얻었기에 그를 위한 오랑주리 미술관의 건립에도 많은 의견을 남기고 1926년 생을 마감한다.
이책은 마네와 모네의 초기시절부터의 많은 그림들을 모두 내포하고 있어 , 언제 지나쳐도 '아 마네의 그림이었어? ' 하고 모를만큼 많은 삽화들이 있다. 다 내머릿속에 모두 저장하고 싶지만 , 아주 작게나마 마네와 모네 그둘의 삶과 그림의 연대별 감상을 할 수 있어 좋았던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