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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이 번역돼 나오는 족족 찾아 읽고 있다. 꼽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인데 읽는 소설마다 어째 느낌이 비슷하다. 어찌된 일인지 현재는 안개 속에 자리하고 겨우 맑게 갠 날은 죄다 과거의 어느 날이다. 유럽풍 사색과 멜랑콜리가 짙고 자욱하다. 한번은 정말 이게 다일까 싶어, 좀 촘촘히 느껴보고자 영문판 <도라 브루너>를 읽어봤는데 이야기 망이 헐겁고 모든 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잔기침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2차대전중의 독일군 점령기 파리를, 다시 말해 유대인이 겪은 핍박과 수모를 계속 변주해 다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질리지 않는다.
신간소식으로 제목을 접하고 제목에 함정이 있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역시나 가장 달달하고 행복에 겨워야 할 시기를 반어적으로 처리했다. 불안하고 안전하지 못한 시대에 일종의 도피수단으로 신혼여행중이라고 둘러대는 커플이 등장한다. 그리고 더 씁쓸한 사실이 실제로 신혼여행의 단꿈은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젊은 커플을 바라보며 주인공 장 B.는 아내 아네트와의 이십년 관계를 곱씹고, 다시 그의 결혼생활은 이십년 전 스쳤던 리고와 잉그리드의 이야기로 향한다.
전기 작가는 불필요하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어떤 세부 사항들을 없애버릴 권리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부 사항들은 하나하나가 다 나름대로 중요한 것이므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지 말고 그 모든 것을 죽 연달아 한데 모아놓고 압류 목록처럼 어느 것 하나 빠짐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 한 생애의 도정이 일단 그 종착점에 이르러 불필요하고 장식적인 그 모든 요소들을 스스로 걸러내는 자정작용을 한다면 또 모를까. 그렇게 되면 마침내 여백, 침묵, 화려한 피날레 같은 본질적인 것만 남는다. (65)
불시착과 실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생텍쥐페리이다. 단정하면 안 되겠지만 중년 남성의 로망이나 자기몰입 같은 특수한 심리 상태가 작용된 듯하다. 주인공 장도 집과 일터에서 종적을 감추고 싶어 한다. 자기 지우기의 충동이 생기는 원인과 그런 방식으로 도출되는 이유를 따져보면 아무래도 중년 남성의 위기와 맞닿아있을 것이다. 아내의 내연남을 비롯한 삶의 배신에서 비롯된 지침(번아웃 상태)이 주된 감정이다. 아니면 외관상으로는 다큐 필름 제작자로 모험심과 탐구정신이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망자라는 자각에서 오는 환멸인지도 모르겠다. 아내나 친구를 향한 원망보다는 자기 파괴욕과 체념이 오히려 강하다. [☞어쩌다 어른 96회 하지현]
다행히 사라져버릴 줄 알았던 장은 머물 곳(호텔)의 단서를 부주의로 흘리고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반경을 맴돈다. 이 과정에서 벤이 장을 추적하고 미행하는데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재와 과거와 대과거를 관통하는 여럿의 쫓음이 흥미롭다. 하지만 확 벗어나지 못함은 그러기 전 단계로도 읽을 수 있다. 장 본인의 입으로 “유예의 시간”으로 정의한다. 자기 자신도 어디로, 어디까지 튈지 예측할 수 없다. 마치 진짜 ‘사’춘기는 사십대에 온다는 듯이.
이번 소설은 주인공이 마흔다섯,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이라 빛과 어둠이, 석양과 그늘이, 현재와 과거가 더 고르게 투영된 듯하다. 항공편을 갈아타는 중간에 낀 시간이 소설의 시작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그런 혼자서 대기하는 시간은 사람을 온갖 상념에 빠뜨린다. 그리고 우연히 듣게 되는 앙그리드의 자살 소식은 눌러두었던 뚜껑이 열리는 계기가 된다.
장은 뜨뜻미지근해지는 관계 속에 스무 살 때 했던 “감미로운 무기력 상태의 행복”(무전여행 기억)을 상기한다. 태어난 이래로 버림받았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난생처음으로 “보호받는 느낌”을 경험한다. 모디아노의 소설들에는 유독 보호자 없이, 고아나 다름없이 성장기를 보낸 사람들(상흔)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 설정을 접할 때마다 소설가가 속한 시대가 얼마나 냉정하고 비인간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고 동시에 공백을 채울 대체역할에 주목하게 된다. 때론 나는 뭘 믿고 나라는 규정 혹은 출생을 믿어 의심치 않는지 화들짝 놀란다.
그녀와 함께 경사진 골목길을 내려갈 때 느꼈던 그런 부드러움, 그런 북받치는 감정이 나를 또 한 번 사로잡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야.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의문 같은 건 갖지 않는 거야.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차츰차츰 신뢰감을 심어주는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되는 거야. (52)
소설가는 독일은 물론이거니와 부모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연행해 수용소에 처넣은 프랑스 경찰과 정부에게도 똑같이 책임을 묻는다. 거리로 나가 노숙자가 되고 싶다는 장의 충동에서 “죽은 체”해야 했던 시대를 반증한다. 불을 끄고 죽은 듯이 지냈던 사람들의 존재를 소생시키느라 소설의 분위기가 어두침침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바캉스, 다시 말해 사랑받아야 할 성장기와 사랑할 청춘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사람들의 애환이 슬픈 어조로 깔려있다. “자연의 법칙”상 살아 있으면 모든 게 정상화되는 날이 올 테지만 살아있지 못하니 원통하고 한스러울 뿐이다. 그들의 혼과 숨이 머물던 공간은 더이상 그때 그 곳이 아니다. 그 공허와 회한의 쓰나미가 소설의 마지막을 덮친다.
<신혼여행>도 탐정소설과 전기소설 향을 풍긴다.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정통 탐정소설이나 전기소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모디아노의 소설이 번역되어나오면 일절 고민 없이 펼쳐드는 이유 중 하나가 “정확한 경계는 없다”를 글쓰기 방식과 분위기로 눈앞에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게 영어권 독자들도 모디아노의 소설에 별점을 짜게 매기면서 번역의 과정에서 전달되지 못한 뭔가가 있을 거라며 작가에게 미안해한다. 아무리 빼어난 번역이라해도 원작자가 선택한 단어의 결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지 못할 것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자 미궁인 줄 알면서도 그리로 걸어 들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옛날 사람처럼 옛 식민지 박물관과 동물원을 배회하며 임시거처에 머물 수밖에 없는 남자의 뒤를 덩달아 캐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것도 작가의 긴장감 조성과 지면 장악력이라고 본다. 종이 한 장이 인간의 안전(생명줄)을 담보하고 결정짓던 시대에 대들기라도 하듯 시청에서 발급받은 증명서나 주소 혹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길 위로 나서는 자의 맹목적인 걸음이 위태로우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끌린다.
빨간 자전거를 구해 탄 그가 더 이상 스무 살이 아니라는 아내(동반자)의 거부에 혼자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다. 잉그리드가 열여섯에 증발해 마흔다섯에 자살한 궤적을 경유한 그이기에 현기증이 돌고 떨리는 게 사실이다. 남은 선택이 부디 증발이나 자살이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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