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Me은, 소설 속 두 등장인물들1로부터 'sellout'이라 불리웁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sellout'은, "헐값에 팔아버리는 것, 또는 배신자라는 뜻"(p135)이란 역자의 설명보다, 'someone who forgets their roots'라는 영어사전2의 설명이, 이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 훨씬 더 명확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무의식 중에 자신들을 스스로 피부색으로 특징지워버리는 흑인들에 대한 Me의 실망/비판이, 다른 흑인들의 눈엔 영 거슬렸던 거지요.
이 작품 속의 이러한 사고를 전 '자기 비하'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3 "가난한 사람들이 운전을 잘하는 것은 자동차 보험을 들 돈이 없어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방어적으로 운전할 수밖게 없기 때문"(p121)이라는 일반론적인 (매우 슬픈) 인식이, 특정 케이스에까지 확장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대체 왜! --- 이와 같은, 일종의 자기 비하, 또는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의 피해 의식과 같은 것들이 대체 왜! 흑인들의 사고에 깊숙이 뿌리박혀있게 되었나하는 것이겠죠. ……………………………………………………………………………
1930년 대공황 시기를 그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이라 불리우는 「분노의 포도」가 보여주고 있는, 미국 백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실체입니다. --- "인디언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란 한 구절로, 백인들의 잔혹한 인디언 말살은 역시나 '자랑스런 서부개척'의 역사로 정의되고 있지요.4 미국이란 땅이 이처럼, 자신들의 소유라 생각하는 백인들은, 그 땅에 처음으로 건너왔던 영국 청교도인들, 그리고 그 후 뒤를 이었던 폴란드와 이탈리언들, 그리고 유태인들, 이 모든 백인들은 예의 그들만의 '용광로'속에서 한데 어울어져 살아 왔거늘, 피부색이 검은 흑인들만큼은 결코 자신들의 그 '용광로' 속에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이유 역시 "인디언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와 동일하게, 앞뒤의 논리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피부색이 다르다라는, 일종의 폭력적 당위 뿐입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흑인으로 태어났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무 껍질의 총알구멍을 만져 보면서, 열 개째 나이테 부근에 파묻힌 달팽이처럼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p61)와 같은 체념이 또한,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당연시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흑인 학교에서 시행되는 직업 설명회, <진로의 날>에 그들 앞에 펼쳐지는 선택지들이란 게,
물론, 이러한 직업을 가진다라는 것 자체를 차별이라 말하는 건 아닙니다. 허나! 이러한 보잘것 없는 직업들로만 선택지가 구성되어 있다라는 건6, 명백히 부인할 수 없는 차별이지요. 그냥 흑인들은 'destined to do'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라는 사회적 강요는, 뭐라 변명을 하더라도 '폭력'임을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또한,
백인들 또한, 그처럼 세뇌되어있는 흑인들까지도 증오하는 건 아니다라는, 일종의 친절7을 베풀기도 합니다. 우리 백인들은 흑인을 '평등'하게 생각한다, 이것 봐라, 드라마 속에서 드디어 백인 남자가 흑인 여자와 데이트도 하지 않냐,라 말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허용한 소위 '평등'이란 건 그저,
의 수준일 뿐이고, 이 소설은 --- 이와 같은,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평등을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p363)란 한 마디를 말하기 위해 짧지 않은, 게다가 저에겐 심히 낯설기만 한 과정을 밟아오지요.8
· · · 흑백의 평등은 이루어졌습니까? 흑인 대통령이 취임한 사실을 과연, "미국이 마침내 빚을 청산한 것 같다"(p395)라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 'sellout'이라 불리우는, 그러나 결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는, 주인공 Me의 생각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표현하고 있는 '늦은 속도와 불안정한 신호의 와이파이'란 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 "백인처럼 옷을 입고, 백인처럼 말하며, 백인처럼 생각하고 백인 중산층 문화의 가치를 표현"9해가며 이루어 낸 약간의 성공이며, 하지만 그 약간의 성공이란 것 마저 기실 "자신이 흑인에게 '양보할' 뭔가가 있는 듯한, 또는 흑인이 그들의 흑인 특성을 '극복하도록' 도와줘야 할 것 같은"10 백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의무감스런 동정으로부터 결과된 것이란 거죠. 그리하여 결국 이 책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흑인 전용 코미디 클럽의 무대에 선 흑인 코미디언의, 백인 관객을 향한 "어서 꺼져! 이건 우리 거라고!"(p392)란 호통이 상징하고 있는 바, 그러니까 --- 흑과 백의 '통합'11이 아닌, 각자의 '분리'12를 주장합니다.13 그리고, 오래 전 유시민의 책으로부터 배웠던 바, 「블랙 라이크 미」가 보여주었던 백인들의 뿌리깊은 편견, 얼마 전 읽었던 「빌러비드」, 그리고 이 소설 「배반」, 이들 책으로부터 저 또한, --- 상처의 치유가 없는 반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상처의 치유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결국엔 '분리'가 옳은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입니다. --- "나는 노예예요. 그게 나예요. 그게 내가 타고난 역할이에요. 어쩌다 배우가 된 노예. 하지만 흑인으로 사는 건 메소드 연기가 아니예요"(p112)라 말하는, 늙은 흑인 호미니를 바라보며 주인공 Me가 하게 되는 다음의 생각은, (흑인이 아닌, 흑인의 피가 섞여 있는) 혼혈 대통령을 선출해 '준' 것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참으로 오래되어, 어찌 지워낼 수 있을까 싶은, 「빌러비드」의 주인공, 세서의 등에 각인되어 있는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와 같은 상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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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니에게 뿌리내리고 있는, 그때 그시절에 대한 일종의 향수는 분명 --- 역사가 남겨놓은, 어지간해서는 지워지지 않으며, 지워낼 수도 없을, 너무도 아픈 상처인 것이죠. 역사가 무엇일까요? 오로지 '미국의 흑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뭔가, 이 시대의 일본 정치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이 책이 말해주고 있는 '역사의 정의', 이 하나만으로도, 읽어내기에 참으로 난해한 이 소설은, 이 소설을 읽어낸 것에 대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게 해주네요.
...금연 214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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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원서를 1-2년 전에 구매했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못 읽겠더군요. 언어 자체도 어렵고 문화 코드도 잘 안 맞아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번역본으로 한 번 더 도전해 보려고 구매했습니다. 역시나 문화적인 거리감이 좀 있습니다. 역발상이 참신하고 작가의 스토리텔링 기술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신선한 소재를 원하는 사람은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