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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이혼지침서> 중 “처첩성군(妻妾成群)” 쑹렌[頌蓮], 첩(妾)이 되다. 1920년대 중국은 여자가 대학을 가기 시작하는 세상이지만, 매매혼과 축첩의 제도가 여전히 당연시되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매우 현실적인’ 여대생 쑹렌[頌蓮]은 아버지가 경영하던 차(茶) 공장이 도산하고 아버지도 자살하자, 공장에서 일해서 돈을 벌거나 시집을 가는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기에는 그녀의 젊음과 지식이 아까웠고, 결혼을 해도 루쉰[魯迅]의 아내 쉬광핑[許廣平]1)처럼 사실상 사회활동이 봉쇄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가장 비싸게 팔기로 결정하였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가장 현실적 선택인 부유한 남자의 첩이 되는 길이었다. 계모를 통해 첩(妾)자리를 알아 본 그녀는 부유한, 그러나 오십이 다 된 중늙은이인 천쥐첸[陳佐千]의 넷째 부인이 되라는 제안에 한 차례 만남 후 재빨리 승낙했다. 쑹렌[頌蓮], 변하다. 천쥐첸의 가문, 즉 천씨[陳氏] 가문은 세상의 변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포르말린에 절은 유교적 가부장제가 남아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중늙은이인 천쥐첸[陳佐千]이 구중궁궐의 임금처럼 집안의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천쥐첸[陳佐千]과 처음 만나면서, 양식당에서 만날 것을 요구하고, 케이크도 주문해주기를 요청했을 만큼 당돌한 신여성이었던 쑹렌[頌蓮]도 변하게 된다. 물론 천쥐첸[陳佐千]의 다른 부인들이 벌이는 암투에 원치 않게 끌려들어간 탓도 있지만, ‘매우 현실적인’ 그녀의 성격도 천씨[陳氏] 가문의 풍습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천쥐첸의 저택에서의 삶에 적응하게 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넷째 부인 쑹렌[頌蓮]은 자신에게 배정된 하녀인 예얼[雁兒]이 자신에게 불쾌한 표정을 짓고, 저주인형을 만들어 자신에게 저주하여도 독하게 다룰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언젠가 천쥐첸[陳佐千]이 방으로 들어오면서 쓱, 예얼[雁兒]의 가슴을 만지는 걸 보았기 때문2)”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는 한, 쑹렌[頌蓮]은 빗을 던져 부러뜨리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분노를 해소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물을 내리지 않은 신식 좌변기에서 발견된 휴지에 뭔가의 피로 그려진 자신의 모습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쑹렌[頌蓮]은 예얼[雁兒]에게 그 휴지를 삼킬 것을 사실상 강요한다. 이로 인해 예얼[雁兒]은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새로운 하녀로 나이가 지긋한 쑹마[宋媽]가 온다. 쑹렌[頌蓮], 미치다. 쑹렌[頌蓮]에게 있어서 천쥐첸의 저택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나름 계산적으로 선택한 남편 천쥐첸[陳佐千]은 그녀를 노리개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가 요구하는 행위를 거부하고 흐느끼는 쑹렌[頌蓮]에게 천쥐첸[陳佐千]은 “당신 같은 여자는 처음이야. 창녀 주제에 무슨 열녀문이라도 세우려나 보지 3)”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그녀와 대화가 통하는 천쥐첸[陳佐千]의 장남 페이푸[飛浦]4)을 떠나 보내고, 의사와의 불장난이 들통난, 세 번째 부인 메이산[梅珊]마저 천쥐첸[陳佐千]의 지시로 ‘사인정(死人井)5)’의 깊고 어두운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 쑹렌[頌蓮]은 미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변해버렸다고 해도 신문물의 세례를 받았던 쑹렌[頌蓮]은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버린다. 천쥐첸[陳佐千]의 저택처럼 그 곳에 사는 여인들의 삶을 삼키는 듯한 ‘사인정(死人井)’을 바라보며 “안 뛰어내려, 안 뛰어내려. 우물에 안 뛰어내린다.6)”를 외치고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메이산[梅珊]이 죽고 쑹렌[頌蓮]이 미쳐도 천씨[陳氏] 집안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천쥐첸[陳佐千]은 다섯 번째 부인인 원주[文竹]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결말은 쑹렌[頌蓮]이 부유한 남자의 첩(妾)이 되는 것을 선택했을 때, 이미 결정지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노력 없이 남의 도움에만 기대어 안락한 생활을 누리려고 결심한 순간 그녀의 인생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수동적인 삶을 사는 이상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의 행동에 상관없이 묵묵히 흐를 뿐이다. 1) 대학에서 <인형의 집>의 노라를 예를 들며 여성의 자립과 사회생활을 강조하는 강연을 하던 루쉰[魯迅]이었지만, 막상 쉬광핑[許廣平]과 동거를 시작하자 그녀가 직업을 가지는 것을 반대하고 헌신적인 가정주부로 생활할 것을 사실상 강요했다고 한다. 2) 쑤퉁[蘇童], <이혼지침서>, 김택규 옮김, (아고라, 2011), pp. 27~28 3) 쑤퉁, 앞의 책, p. 88 4) 페이푸[飛浦]는 이 소설에서 구씨 집안의 셋째 아들과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쑹렌[頌蓮]의 유혹을 받자, 천씨[陳氏] 집안의 남자들이 대대로 여색(女色)을 탐했지만 자신은 어려서부터 여자가 무서웠고, (여자와의 성행위가) 안 된다고 고백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성연애자로 보인다. 5) 자등(紫藤; 보랏빛 꽃이 피는 등나무)이 있는 곳에 있는 우물로 불륜이 탄로난 전대(前代)의 첩(妾)들이 빠져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쑤퉁, 앞의 책, p. 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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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63년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하다. 신경숙, 김인숙 등 양김과 공지영, 공선옥 등 양공은 물론이고 윤대녕이나 영명한 김소진 같은 이도 63년생이다. 이들의 문학적 기반에 가장 강하게 자리한 것은 고등학교 2, 3학년때인 80년이다. 박대통령이 죽고, 이어진 광주 등등. 그리고 엄혹한 시절에 대학에 들어가 기를 못 펴다가 더러는 현장으로 들어갔고, 더러는 직장을 잡았다. 비슷한 시대를 산 중국의 작가는 어땠을까. 당대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인 쑤통이 63년생이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위화보다 3살 적은 쑤통은 너무나도 중국적인 인물을 잘 그려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쑤저우 태생으로 베이징사범대학을 나온 그는 지극히 중국적인 인생 여정을 겪었다. 네 살때 문화대혁명이 시작됐을 것이고, 열네살때는 문혁이 끝났다. 정신없이 개혁개방의 중간에 있다가 26살에 89 천안문사태를 만났다. 흔히 장예모로 대변되는 5세대 감독들처럼 문혁의 중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대신 장위앤, 지아장커 등 6세대 영화 인물들처럼 개혁개방의 중심에 서기에는 뭔가 찝찝했던 풍조가 지성계에 자리했을 것이다. 쑤통의 소설 ‘이혼 지침서’(아고라 간)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이런 혼돈속에서 부유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아주 잘 담고 있다. 책에는 장예모가 ‘홍등’의 원작으로 쓴 ‘처첩성군’과 그보다는 조금 후대의 일반인들을 담은 ‘이혼 지침서’, 전쟁 시기를 담은 ‘등불 세 개’다. 사실 지금 내가 집중하는 것은 당대이니 만큼 관심을 갖는 소설은 ‘이혼 지침서’다. 사실 앞서 읽은 소설도 그렇지만 중국에서 가족이라는 틀은 상당히 정의내리기에 복잡하다. 중국의 전통적인 결혼인 매매혼(처첩성군)의 흔적이 명확히 남아있으면서, 사회주의적인 이성관이 공존하고, 여기에 가족이라는 복잡한 정서가 중첩되니 얼마나 혼돈스러울 것인가. ‘이혼 지침서’는 이 혼돈의 중심에서 헤매는 한 남자를 다루고 있다. 우습지도 않게 비참한 비루먹은 중국 남자의 일상이 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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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이혼지침서>는 각각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묘사하였다. 하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 것은 거대한 어떤 것에 휘둘리는 인간상을 표현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첩성군>에서는 주인공 쑹렌은 처첩제도가 성행하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정체성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간다. 결국 그녀는 꿈을 꾸던 한 소녀에서 질투와 시기에 정신을 빼앗기고 나중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는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등불 세 개>에서는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폐해를 한 바보 비엔진의 시각을 통해서 보여준다. 비엔진은 마을에서 살며 오리를 치고 살아가고 있었으나 전쟁이 벌어지고 그 참상을 보고나서는 그는 결국 마을을 떠나고 만다. <이혼 지침서>에서는 현대 사회와 결혼 제도에 의해서 진정한 사랑을 잃고 힘겨워하는 한 남자 양보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는 이미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잃었으며 결혼이라는 제도는 그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그는 그에 맞서 이혼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성공하지는 못한다. 세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처럼 거대한 무언가에 휘둘리고 상처를 입은 인간들인 것이다. 쑤퉁은 이러한 것들은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책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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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들고 있기 민망한 책이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씩 벌써 이혼을 준비 하냐고 꼭 묻는다. 아직 결혼적령기도 아닌 내가 그러한데,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 독자의 경우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다.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읽어 내려갈 만큼 이 책의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책은 총 세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중심에는 모두 남녀 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들어가 있다. <처첩성군>의 첩과 대감의 관계, <이혼지침서>의 부부관계와 불륜, <등불세개>의 바보소년과 소녀의 관계... 그들 사이의 관계는 때로는 주종관계이기도하고, 때로는 서로 혐오하는 관계이기도 하다가 또 한편으로는 오리 100마리만큼 가치 있는 관계로 변하기도 한다. 작가인 쑤퉁은 그들의 관계를 끊임없이 구역질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좀처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녀관계란 그런 것이다. 축첩이 존재하던 과거로부터 이혼이 유행인 현재까지, 남녀관계란 항상 문제의 근원이고, 구역질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전쟁 와중에 피어나는 것 또한 남녀관계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우리에게 이혼은 삶이자 곧 죽음” 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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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존에 다루어졌었던 이야기들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들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직접 제가 주인공의 옆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첩성군'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첩제도에 대한 비난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이혼지침서'는 아내로부터 벗어나려하는, 어찌보면 권리를 내세워 자기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는 주인공을 묘사했으며, '등불 세 개'는 주인공이 소녀를 만나 성숙해가는 과정과 전쟁이라는 것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세작품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모두 다 주인공들을 '비정상'으로 본다는 점에 있는데,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정상적으로 볼 수 있도록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약한 듯 하면서도 강하게, 호소력있게 이야기를 그려내가는 작가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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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첩 성군'을 읽고 처첩들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첨예한 갈등을 실감나게 느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환멸을 느끼다가 결국엔 미쳐버리게 되는 주인공 쑹렌이 당시 혼인제도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 지침서'에서는 주인공이 갑자기 자신의 삶에 혐오스러움을 느끼고 철학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이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데 이혼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수치스러운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결국엔 두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결국엔 이혼하는 것이 좌절되고 만다. 나는 자신의 정신적인 것, 철학적인 탐구는 필요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과 멀어지기 위해 이혼을 택하는 양보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용기가 있으면서도 그 방법으로 이혼을 선택한 것이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불 세 개'에서는 순진무구한 비엔진이 전투로 인해 목숨과도 같은 오리도 잃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샤오완도 잃게 되면서 마을을 떠난다. 샤오완의 가족을 의미하는 '등불 세 개'를 쫒아 정처없이 비엔진의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졌고, 전투로 인해 비극적으로 사랑이 끝나버린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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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과 가정을 가진 양보는 그의 모든 일상들이 지긋지긋함을 느낀다. 반복되는 아침을 맞으며 그는 그의 곁에 있는 아내에게 느닷없이 이혼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런 그의 이혼 요구를 아내는 들어주지 않는다. 덩달아 이혼을 바라온 그의 애인도, 활기 없는 직장 생활도 모든 것이 그를 힘들게 한다. 그는 이혼을 하기 위해 치욕스럽게 돈을 빌리고, 가정을 져버리는 가장으로 주변으로부터 비난과 질타를 감내한다.
주인공인 양보의 이런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그는 우리 주변에 널린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는 무기력한 현대인의 한명이다. 표면적으로 이혼을 매개로 하고 있지만, 그는 단조롭고 허무한 그의 일상에 지쳐 무작정 탈피하고 싶을 뿐이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상은 그를 구속하고 옥죄인다. 탈피하려고 할수록 세상은 그를 더욱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결국 이런 탈피를 잠시 꿈꿀 뿐 또다시 그 안에 매몰될 수 밖에 없다. 그의 스승의 지침대로, 이 미친 세상에서 내가 먼저 미치거나 죽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가끔씩 그리고 끊임없이 현실 도피를 꿈꾼다. 일상을 탈피하고자 하며, 다시 매몰되는 상황을 반복한다. 하지만 일상이 우리를 구속하고 옥죄인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잠깐 탈피, 도주할 수 있을 뿐이다. 일상으로부터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는 오히려 그 일상 안에 있는 나와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그 안을 더욱 깊이 응시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나와 타인, 세상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한 삶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나와 일상을 살아가게 할 수 있는 힘과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의 삶을 비추고 있는 이 자화상은 삶을 목도하고 일상의 무거움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훌륭한 이혼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