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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우리 사회에는 가족계획이라는 것이 화두였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난무했고,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불임시술을 받으면 훈련을 면제해 주기도 하였다. 아무튼 아이를 많이 낳으면 무언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이제는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009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5, 당당하게 세계 최저를 자랑하고 있다. 현 상태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인 대체출산율은 2.1명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고령화는 출산율이 높은 일부 개도국을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산업, 금융 등 경제적 대응이 어려울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65세 이상 인구비중이 7%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이상이면 ‘고령사회’, 그리고 20%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하였고, 2018년 ‘고령사회’를 거처,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선진국의 경우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독일은 77년, 프랑스 154년, 미국 94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26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2000년 생산가능인구 7명이 65세 이상 노인인구 1명을 부양하였지만, 기준년도인 2050년이 되면 1.4명까지 감소할 것 이라고 통계청은 밝히고 있다. 문명이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 인류가 수많은 성과들을 거두어 왔지만, 가장 위대한 업적은 장수라고 한다. 로마인들의 기대수명은 25세에 불과했고, 1900년까지 세계평균 기대수명은 30세이었으나, 오늘날 전세계 기대수명은 64세까지 늘어났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는 역사를 돌이켜보고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문화를 되돌아볼 때, 수명연장에 관한 가장 큰 요인은 20세기 이후에 태어나는 것, 그것도 가능하면 부유한 선진국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근대이전 죽음의 가장 흔한 원인은 전염병, 전쟁, 출생이었지만, 대체로 죽음은 신속히 진행되었고 삶과 죽음 사이의 회색지대는 보기 드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회색지대에 들어서고 있다. 오늘날 발표되는 인구관련 여러 통계들의 기준년도인 2050년이 되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리라고 UN은 전망하고 있다. 바야흐로 회색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회색이 쇼크가 될지, 축복이 될지 모르지만.. 저자는 현재 직업을 가진 성인이라면, 직계가족의 수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랄 때의 가족보다 분명히 적은 시대를 살고 있을 것 이라고 말한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이런 고령화의 흐름을 어떻게 활용하여, 개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변하는 세상과 연관시킬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출산율은 낮아지고, 인간들의 수명은 길어지는 그래서 ‘고령화사회’가 될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청년과 노년, 노동자와 회사, 그리고 자식과 부모가 어떻게 갈등을 하게 되는지, 미국, 스페인, 일본, 중국 등의 예를 들어가며 그 답을 찾고 있다. 고령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사회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예전에는 은퇴하고 자식들의 부양을 받으며, 생을 돌아보면 되었지만, 이제는 질이 낮은 일자리를 두고서 청년세대와 경쟁을 해야만 한다. 자연수명은 늘어나는데 반해 일하는 기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에 직장을 갖고, 50대 중후반에 퇴직하고, 80대 이상 살게 된다면 엄청난 생계유지 부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은퇴하고서도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는 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사회복지가 잘되어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점점 젊은이들이 부양해야 하는 노령인구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삶의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세계화는 이러한 고령화 문제를 한 국가, 한 사회만의 문제가 아닌, 행성 모두의 문제로 만들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는 농촌에서 젊은 인구가 사라지게 만들고, 저 출산으로 대변되는 선진국의 인구유입은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은 개도국의 인구를 흡수하여 개도국마저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게 만든다. 회사는 생산력을 높이기 위하여 저임금을 찾아 나서는가 하면, 기계화를 서두르게 되고, 이는 일자리가 점점 질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그나마 그 일자리를 두고서 젊은 세대와 노령인구가 경쟁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내던 세대들은 이제 자식들의 생활비를 부담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와 시장은 이러한 고령화의 비용은 부담하기는커녕, 자꾸 개인들에게 가족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는 실버산업에 대해서도 기회가 많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체 노령인구 중에서 생계유지에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결국 고령화의 문제는 세계화, 경제, 환경, 교육 등 오늘날의 세계를 특징짓는 모든 문제들이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 가족, 지역사회, 시장 그리고 국가에 이르기까지 전사회적인 조정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래살고 싶어한다. 그러기에 불로초를 찾아 그렇게 헤메였던 진시황제를 우리는 한편으로 이해할수 있을것도 같다. 그렇지만 오래 산다는것, 무병장수한다는 것, 그것이 반드시 선善만은 아니라는 것이 착잡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 개인과 가계의 준비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고용구조상 퇴직정년이 짧아지는 추세 속에서, 일반 근로자가 은퇴후 기대여명까지 생존할 확률은 높아만 가고, 그만큼 그들은 빈곤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년층 일자리 확충등이 필요한 때이지만, 이것은 청년일자리 잠식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전세계적인 문제라고 하지만, 무언가 종합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정책입안자들이 이 책을 본다고 해서 고령화문제가 해결될 리 없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회색시대가 분명히 축복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라도 공유하게 만들어 주는데 손색이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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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는 인류에게 처음 오는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생활이자 현실이며 공포로 다가온다. 시대는 변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과거 장수는 집안과 가족의 축복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축복이 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도 장수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기에 이런 미래는 더욱 두려운 것은 아닐까! 이런 현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면 즐기든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분명 세상의 이치는 오래되고, 늙은 것들은 사라져야 한다. 아니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것은 이런 마음을 버리게 만든다. 나만이 소중한 시대이기에 더더욱 어둡다. 회색 빛 하늘처럼, 우리의 미래를 우울 속에 빠뜨릴지 모르겠다. 점점 증가하는 기계의 힘과 인간 노동의 축소,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 생존을 위한 돈을 얻는데,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 그리고 점점 늙어가는 사회 그 속에서 증가하는 복지비용 등 남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고령화는 점점 계층간의 갈등으로 불거질 것이다. 왜 우리들을 위해서 돈을 쓰지 못하는 가라는 질문과 우리가 너희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냐는 대립, 과연 누구를 위할 것인가? 그 균형의 길은 정령 없는 것 일까?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인류가 거쳐가야 할 길이다. 우리는 현명한 존재이기에 새로운 교훈을 얻을 것이다. 지구, 세상은 점점 회색(늙음)이 되어 간다. 노년층의 도래는 막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 노인혐오증도 나타난다. 왜 우리는 노인들을 좋아하지 않는가? 분명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것이다.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 중년 이후 남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회활동에 기인하겠지만, 여자들은 스스로 건강을 위해 운동하지만, 남자들은 뭐할까? 사회생활을 핑계로 자신의 건강과 생을 갉아 먹고 있다. 여자들에게 이런 남편들을 돌보기 위해서 힘과 건강이 필요한 것이기에 그녀들은 오늘도 열심히 운동장을 걷는다. 이 시대의 우스운 현실이다. 다른 나라들(동양과 서양)의 고령화. 미국 플로리다, 영화에서 가끔 접하게 되는 플로리다는 해변과 맑은 하늘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증가, 수명연장으로 연금과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에 지출되는 비용이 높은 고령사회이다. 지병의 증가와 노인 운전자의 증가로 사고의 위험은 끊이지를 않는다. 하지만, 노인들의 플로리다 드림으로 그들의 돈과 함께 플로리다로 몰려온다. 모두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남은 시간을 풍요롭게 보내기 위해서, 단순한 간호시설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인생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보살핌에 돈이 많이 든다. 이런 돈을 유치하기 위한 노인거주지역의 경쟁, 부유한 노인과 젊은 층의 일자리를 위해 이제는 병원(수출 수익)과 건강관리는 외부의 돈을 지역사회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요인이며, 도시의 주요수익으로 발전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최상의 건강, 노화방지 치료, 소매의료서비스가 바야흐로 봄바람처럼 불어온다. 또 다른 문제 노인 기관의 재정난, 정부나 사회의 지원도 부족하지만, 노인기부자들이 노인들을 위해 돈을 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기부금이 미래를 위해 쓰인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젊은 노인의 압박감, 건강과 활력 그리고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변화에 대한 의지는 있어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현실이다. 노인들이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 활동하는 것일 것이다. 자녀들에게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노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대안을 선택할 것이다. 스페인의 현실. 젊은이들이 일자릴 찾아 농촌을 떠남으로써 농촌은 고령화되고, 농업과 노인들을 돌보기 위한 외국인은 증가하고 있다. 과거 대가족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았지만, 점점 줄어들어가는 가족, 흔히 장수식단으로 유명한 지중해 식단, 그들에게 축복이었다. 그러나 식단만 좋으면 뭐할까? 식사는 여럿이 즐겁게 하는 것은 건강하고 장수하게 만들어 준다. 6명중 1명이 돌봄이 필요한 스페인의 고령화는 도움이 수입으로 이어지고, 에콰도르의 골치거리로 변했다. 젊은 이민자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나라에 대한 정체성 문제 등. 이제 한 나라의 고령화는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 새로운 문제까지 야기한다. 전세계가 연결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가난한 나라들은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일본, 고령화의 최전선이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과연 인간이 100년을 넘게 산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이었다. 이제는 100세 넘는 사람도 흔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더 많아 질것이다. 삶은 길어지지만 외로운 사람들, 이것이 현실이다.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많이 필요하지만, 돌보기도 쉽지만은 않다. 고령화로 인한 또 다른 딜레마, 산업 전 부분에서 노동력이 필요는 하지만, 반갑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 일본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 새로운 고령화 사회의 중심. 노인인구 증가, 대량 퇴직시대가 다가온다. 현재 중국 노동자 10명이 노인 2명을 부양, 2050년에는 노동자 10명이 노인 6명을 부양하여야 한다. 공산국가에서 시장개혁, 가정에 의존하는 사회로 바뀌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부양의무의 포기로 노인 생계가 위험에 처해있다. 인간의 생식을 제한한 과거는 새로운 현실(고령화)을 만들어 내었다. 공자의 나라 중국인들 노인봉양 문화와 전통의 이면에는 평균수명 35세로 과거 효도하는 자식들의 부담이 휠씬 가벼웠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은 아들보다 딸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것은 노년의 돌봄에서 딸의 역할(돌봄)이 중요해졌기에. 또 다른 조부모들 손자가 뚱뚱할수록 손자를 건강하게 잘 보살피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비만어린이가 많이 증가하였다. 노인들이 육아를 거의 전담하기에 그들의 삶의 10년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뿐인 아이들은 내가 중심이 되는 이기적인 아이가 되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젊은 손자나 손녀가 노인 4-6명을 봉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영기업은 공장과 기숙사를 허물고 업종도 부동산업으로 대체되었다. 과열된 부동산 붐이 노인투자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했지만, 집을 살 수 없는 젊은 세대에게는 좌절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국가는 이미 노인세대를 져버렸다. 가정이 부담이 되어 감당하기 어려울 때, 노인들은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은이들은 짐을 싸서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까? 개인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령화는 전 지구적 산물이며 작용이다. 도시화와 의료시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강정보로 인해 우리는 더욱 오래 살아간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아니면 병인가 서양식 사고는 노화를 병으로 보고, 회복 불가능한 병에 걸린 환자를 대하듯 노인들을 바라본다. 그러기에 활성산소가 주범이라고 여기고, 많은 사람들이 산화방지제(항산화제)를 복용한다. 하지만, 노화는 30대부터의 시작된다. 자연노화는 우리의 숙명이다. 하지만, 천천히 노화되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노인들은 대부분 시설에서 운동을 한다. 이것보다는 정원, 소규모 농사 등 무엇보다 육체적인 활동(노동)이 필요하다. 과학과 노화. 과연 과학이 노화를 극복할 수 있을까? 유전자, 스트레스, 생활양식 등이 노화를 좌우한다. 무엇보다 후성유전이 개인의 일생을 좌우한다. 의학은 태아의 수명과 건강을 좌우, 태아가 건강하게 태어나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태어난 후에도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어머니의 스트레스 때로 아버지의 스트레스가 자식뿐만 아니라 손자나 증손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근육재생능력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라. 새로운 문제, 노화를 해결하려는 과학과 의학, 영화 같은 현실이 점점 우리 앞에 다가온다.줄기세포와 이식을 이용한 장기교체, 동물실험을 통한 장기연결 등 많은 부분에서 노화와 맞서고 있다. 특히 돈을 가진 노인들은 생명연장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을 것이다. 단지 삶을 조금 더 연장한다는 것, 과연 우리는 몇 살까지 살면 충분하다고 느낄 것인가? 이 지구를 노인들로 꽉 채우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고령화 사회의 다양한 현상. 산업 특히 제조업 문제. 분명 노인 돌봄 산업은 증가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 감소(세계화와 자동화, 물류산업)되고, 여성노동력 비율은 증가되었다. 이제는 호황과 불황이 순환하던 과거와 달리 불황만이 계속 반복된다. 고령노동자와 젊은 기술인력의 지식격차, 직업에 대한 생각의 차이, 교육정책과 고용시장에서 젊은 노동자대 고령 노동자의 대결구조가 형성되었다. 젊어서 실업자였던 노동자들은 몇 년이 지나도 평균치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깨끗한 도시, 녹색도시가 노인층을 부른다. 미국 도시의 운명은 ‘창조적 계층’의 요구에 부합하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창조도시, 대학도시 등은 은퇴자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 되었다. 교육은 사람들을 재배치하는 좋은 수단이다. 그러기에 엘리트가 사는 곳이 선호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돈이 미래를 향한 투자가 아니라 부양 쪽으로 쏠리고 있다. 가족과 식탁. 대가족, 친목, 기도와 명상, 조부모 양육과 정부지원, 폭넓은 사회적 안전망이 제공되어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을 빼았고, 부모 역할을 강요하여서는 안 된다. 연령차별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연령차별은 범문화적인 현상으로 노인들을 자신과 다른 존재로 보게 만든다. 자립과 보호,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노인들은 외롭고 유혹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나이에 맞게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고정관념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노인들, 긍정과 무관심, 부정의 복잡한 혼합 양상을 보인다. 죽음의 공포를 피해야 할 필요성이 종교를 갖고, 집단을 형성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가정은 작아졌고 구성원들의 나이는 많아졌다. 노인들은 젊은 세대와의 유대를 지속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랑, 가족의 정이 중요하지만, 정신건강보다 신체를 더 건강하게 해주는 의약품이 계속 개발되어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실패는 부유한 나라로 대량이민을 초래한다. 선진국의 고령화로 돌보미가 많이 필요하기에, 저임금속에서 살아가지만, 곧 이 돌보미들의 노동운동이 태동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일본과 중국의 혼합형에 가까운 것 같다. 젊은 청년들은 취직이 되지 않고, 나이든 근로자는 잘릴 때까지 일자리를 꽉 쥐고, 새로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아서 소위 88세대가 생겼고, 과도한 집값과 땅값으로 젊은 세대들은 집 마련에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어졌고, 맞벌이 등 보육과 양육의 무거운 짐을 쥔 사람들은 삶의 힘듦으로 자식을 적게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자식에게 부담을 들려는 노년층에게는 사회와 정부의 지원은 줄어들고, 대부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 그리고 병원의 발달로, 노년층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돈을 움켜진 노년층은 자신들을 위한 돈의 지출을 줄이고, 긴 노년을 대비해야 한다. ‘돈이 효자라는 말’처럼 가족과 사회가 돌보아주지 않는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 70대의 자녀가 90대의 부모를 봉양한다는 것, 이것은 효를 넘어서는 문제인 것이다. 자신을 주체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뜻만을 가지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다.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동남아 등지,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의 많은 부분을 메우지만, 이들을 보는 우리의 눈은 단일민족이라는 이상한 이념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는 이주여성들의 다문화가정, 사회의 빈자리를 메우지만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왠지. 노동력 수입을 위한 진진한 계획과 실천이 있어야 하는데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로 음성적인 일들만 늘어난다. 회피하고 싶지만, 현실이다. 우리는 고령화로 인한 많은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화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책이 점점 늦어지면, 계층간, 연령간 반목은 더욱 심해질 것 같다. 우리는 역경을 헤쳐 나온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사회와 가족 그리고 나라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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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리 인생을 흔히 '트리플 30년' 인생이라고 합니다. 배우고 자라는 30년, 생업에 종사하는 30년, 은퇴후의 새로운 인생 30년으로 구분해 인생설계를 하라는 조언을 받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는 60세 환갑잔치를 하던 부모님 세대에 비해 30년이란 삶이 덤으로 주어진 축복받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개인의 기대수명 연장과 이로 인한 고령화 사회로의 진전이 과연 축복만 가져오는 현상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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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통계학적 요건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힘을 가지는 원천이다. 끊임 없이 시골에서 도시로 밀려나오는 농민공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저렴한 노동자들이 전세계의 디플레이션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 이제 그들 농민공의 임금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중국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게 되었다. 미국의 펀드가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은 미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해서 축적한 막대한 연금성 자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저축률이 낮은 미국에서 막대한 규모의 금융투자 자금이 조성되어 전세계의 금융시장을 헤집고 다닐 힘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인구구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힘을 가진다.
노령화가 상상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유럽의 그리스 재정위기의 속사정은 그리스의 노령화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나라 사정이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인들이 국가로 부터 수령하는 과도한 복지혜택을 줄이는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로 부터 복지 혜택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리스의 연금수령자들이다. 즉 그리스의 인구구조상 노인들의 비율이 높고, 그 노인들의 주요 수입원인 연금을 줄일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해결되지가 않는 주요 원인인 것이다. 만약 그리스의 노인들의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적자면 그리스는 훨씬 더 가볍게 지금의 위기를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이다. 노령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나라의 인구구성에서 노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인들이 노후를 대배해 저축한 자금들이 급속이 소진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또 활발히 경제활동을 하면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세금을 낼 사람들의 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나이가 든 사람들을 수발한 젊은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어서, 국가내에 연령비에 따른 적절한 노동인구의 수급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고,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는 중산층의 수가 줄어들어 국가내에서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질 수 없어, 산업생산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는 등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 바로 우리들의 옆 나라인 일본에서 노령화로 인한 각종 문제가 생기고 있지만, 일본도 아직은 노령화로 인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초기단계이고,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가 일본보다도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노령화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회색쇼크'가 좋은 이유는 이렇게 우리에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나, 아직은 우리가 그 중간에 서보지 못한 '노령화라는 현상'의 중심으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는 점에 있다. '노령화가 진행되면 이러이러할 것이다' 가 아니라. '노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특정한 사회의 한 부분을 노령화라는 관점하에서 잘 관찰해보았더니 그 현황이 이러이러하더라'라는 현황과 보고를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예측과 현황에 대한 보고의 차이점은 엄청나다. 그 엄청난 만큼이 이 책이 노령화 사회를 예측하는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이다. 이 책은 '아마도 앞으로는...' 이 아니라, '실제 노령화가 진행된 특정한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라는 생동감이 넘치는 무척 리얼한 노령화사회의 모습을 우리들 앞에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단한 착상을 한 저자의 능력에 우선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단순한 아이디어의 차원에서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치밀한 사례 수집을 통해서 잘 편집을 한 그 수많은 노력에도 갈채롤 보내고 싶다. 또 하나 이 책에서 빠뜨릴수 없는 큰 장점이 있다. 문장이 너무나 수려하다는 것이다. 두툼해보이는 책을 읽을때 처음에 느껴지는 부담감이 책을 읽다보면 언젠가 입가에 미소를 띄게 만드는 놀라운 문장력에 흡족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늙어갈 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인데, 노인들의 삶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유머스러운 웃음을 품게되고, 그렇게 노인으로 또 하루를 달려가고 있는 나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장중 하나를 인용하고 싶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만큼 더 죽음에 가까이 다가 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하루를 더 산다는 것은 탄생으로 부터 죽음까지의 거리가 하루만큼 더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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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독서화두 가운데 노화와 장수는 죽음과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테드 피시먼기자의 <회색쇼크>는 한마디로 ’충격‘ 자체였습니다. 얼마 전 읽은 <과학, 죽음을 죽이다>에서 조너던 와이너교수는 케이브리지대학교 노화이론가 오브리 데비드 니콜라스 드 그레이(Aubrey David Nicholas Jasper de Grey)가 예측한 인간의 수명이 앞으로 500년 그리고 이어서 1,000년으로 늘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히 살 수도 있다는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런 세상이 불과 40년 뒤에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4708142).
피시먼기자는 전지구적 고령화가 미래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러한 변화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통찰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전세계를 다니면서 만난 수백 명의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통해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청년실업은 여전히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커다란 문제입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어떤 분야가 주목받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라면 이 책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보건복지정책을 담당하고 계신 분들 역시 <회색쇼크>는 미리 대책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떻든 장수와 건강한 노화가 반드시 선(善)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사회복지보다는 탈지역주의에 집중했던 노무현정권에서 병원식대의 보험재정부담과 같은 선심행정으로 지탄을 받았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고령화 문제를 은퇴한 노인의 복지문제 정도로 생각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 담긴 인터뷰 내용이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 한국 사회의 고령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를 바란다.”는 추천의 글을 적었습니다만, 사실은 장관 재임시절 출산율 급감과 고령화사회로의 진입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을 내놓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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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에 즈음한 총합적 실례(實例)들과 대처 방안
인간은 엄마 뱃속부터 늙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은 죽음이 인접한 회색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 회색지대가 현대문명이 제공하는 각종 환경조건에 의해 길어지고 있다. 즉, 전 지구적으로 인간사회가 ‘고령화’되고 있으며, 급기야는 ‘고령사회’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인구구조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인데, 노년 인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노년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부정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느려터진데다 기억력조차 흐리고 탐욕스럽고 더럽기까지 하다는 혐오와 경멸의 의식이 그렇다. 평균수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금의 10~20대는 100살에 육박하는 삶을 살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인생의 절반을 사회에서 배제된 채 이러한 고정관념에 의해서 소외된 회색의 세월을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왠지 노년의 삶에 대한 재정의와 재구성이 필요한 것 같지 않은가? 이러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사회인식과 공공정책, 경제적 행태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오늘의 사회, 특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나이든 자를 생산에서 배제시키고 지위를 낮추며, 그들의 역할을 폄하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우리사회는 이보다 더욱 잔인하다. 아마 어떤 기업이든지 50세 이상의 근로자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산업화와 근대화라는 변화중심의 트렌드에 전통이 밀려났고, 경험적 지혜가 창조력과의 대결에서 쫓겨났다. 또한 배금주의를 부추기는 소비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정책은 도덕적 신뢰성보다는 개인적 욕망의 정당성을 우위의 가치로 둠으로써 나이든 사람들은 일 할 곳을 잃었다. 이러한 도덕적 진공 상태는 고령화 시대에 정작 요구되는 공동체의 연대와 가족적 결합을 파괴함으로써 노인의 부양, 사회안전망의 확충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근년에 발생하는 중노년층과 청년층이 동일한 자원을 나눠가지려고 경쟁하는 현상들에서 그 우려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 청년 실업의 지속과 일자리를 잃은 4,50대 중년층이 사회 초년병에 돌아갈 일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서로 생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인데, 여기에는 사회 및 경제시스템, 신자유주의 지향 정부의 무책임과 몰지각, 그리고 과잉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임시직, 계약직, 파트타임직의 저임금의 초래로 중산층은 저소득층으로 이탈되어 재빠르게 빈곤층이 증가하는 빈곤국의 소득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엄청난 극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빈자가 사는 불평등사회의 고착화로. 또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지속적 실업은 사회 활력을 저하시키고, 고령화 사회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부담을 악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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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좀 더 나이들어 은퇴하면 '새러소타'(???)에 가서 살 수 있을까? 아니 그 비슷한 곳 어디에라도 가서 살 수 있을까? 책의 맨 뒷장을 덮을 때까지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물론, 결론은 '아니다'이다. 전혀, 현재에서 나의 모습은 절대 불가능이다. 은퇴후에 지금의 주택을 팔지 않는한 , 당장 다음달에 돌아오는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금의 보금자리는 경매처분 되고, 결국에는 비참한 나의 인생의 종말을 맞을 수 밖에 없는, 너무나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7788234 한 때 유행하던 말이다. 77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만에 죽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꼭 이래야 한다. 아니 나라도 꼭 이랬으면 좋겠다. 지금의 부채는 75세까지 갚아야 한다. 75세까지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잇을까? 이 책에 답을 어느 정도 제시하고 있다.
미래에는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고, 남은 인생을, 맞이하면서 준비할 수 있을까? 지금은 9988234를 바라보며 사는 시대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99세까지 살기를 원하는 시대이고, 실제로 우리세대가 평균수명이 여자는 90세 중반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무엇을 하면서 은퇴후 30년 이상을 보낸단 말인가?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질병으로 한발짝 움직이는 데에도 엄청난 힘이 드는데 말이다.
자 ! 이책을 읽어가면서 그러한 궁굼증을 해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책을 덮는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생각을 꿈꾸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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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의 몸살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그만큼 고령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이다. 평균수명이 높아진 결과이지만, 이는 낮은 출산율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젊은 세대는 늘지 않고 노인 인구만 늘어가니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국민연금 재정위기설에서 살펴볼 수 있듯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 수가 점점 늘어간다. 지금부터라도 현상을 명확히 파악하고 대비를 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회색 쇼크>(반비, 2011)는 고령화사회로 떠나는 사전 보고서이다. 세계 곳곳의 고령화 사회를 찾아 이미 시작된 변화를 포착한다. 고령화사회로의 변화는 단순히 인구변화만을 불러오지 않았다. 가족관계, 직장과 일, 주거환경, 산업 등 도시 전체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삶의 풍경을 바꾸었다. 국가 전체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 가까운 미래에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회색 쇼크>를 통해서나마 고령화사회의 일면을 짐작할 수는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테드 C. 피시먼이 찾아간 고령화 국가(도시)는 미국의 플로리다와 록퍼드, 스페인, 중국과 일본이다. 이미 이곳에서는 고령화가 상당 부분 진척되었고, 시스템과 구성원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우려할 부분은 생산력의 저하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제조 기업과 공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그 빈자리를 고령자들과 이민자들이 채웠다. 산업은 서비스 중심으로 급격히 변모했다. 요양시설과 병원, 케어 서비스 등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 나간 것이다.
저자는 고령화 사회의 일면을 취재하는 것과 동시에 노화에 대한 단상들을 함께 돌아본다. 장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노화의 진행, 과학이 노화를 막을 수 있는지의 여부, 고령화로 달라진 식탁 풍경 등 고령화에 관한 원론적인 부분을 고찰함으로써 고령화에 대해 폭넓게 고민하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생각이 유의미한 것은 우리나라 또한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이에 대해 적절히 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고령화도시가 된 곳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곳이란 생각도 든다. 노후를 보낼 최소한의 집을 장만할 수 있고, 케어서비스를 받을 만한 조건이 되는 노인들이 이주해 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노인은 다른 노인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거나 공동시설에 거주하며 여생을 보내야 한다.
노인을 포함하여 국민에 대한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은 OECD 가입국에 비교해 아주 형편없다.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국가경제 자체가 몰락할 수 있다. 복지비용은 사라져 버리는 돈이라는 생각은 아주 우둔한 발상이다. 보편적 복지수준의 확대로 육아와 교육, 고용과 의료, 노인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생산 가능한 인구가 적절히 유지되고, 소비가 증대돼 국가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복지를 선별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자꾸 축소하려 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고령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고령화 도시와 국가들을 먼저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유익한 교훈을 얻고 이에 미리 대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이 결코 적지 않은 현실 또한 상기해야 한다. 고령화시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노년의 삶이 불행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고령화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by 꽃다지, 2011.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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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한 자식들이 부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전통국악인의 흥겨운 축가속에 절을 올리고 가족,친지,동네지인들을 초청하여 하루동안 떠들석한 잔치를 베풀었던 풍경이 케케묵은 고래적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30년전 이 나라의 보편적인 풍습중에 하나였다. 당시 회갑을 지칭하는 61세라는 나이는 많은 의미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때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심장했던 것이기도 했다. 하물며 70을 넘어 세상을 등질경우 호상이라는 아이러니한 표현까지 성행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노인들이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자위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몇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주변엔 이러한 풍경은 찾을 수도 없거니와 회갑, 칠순을 지난 사람들을 대놓고 노인이라고 말하기도 뭔가 어색한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다.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에서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시기라고 해야할 정도로 나이에 대한 개념이 180도 변했다는 것이다. 통계는 우리도 이제 고령화 사회(사실 이 단어가 출현한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30년전만 해도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 선진산업국에만 해당되는 부러운 현상으로 받아졌으니까)에 진입했고 조만간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인류가 출현하고 역사시대를 개척하면서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였다고 자부하지만 실상 산업혁명이전의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평균수명에 대한 개념자체가 모호할 정도로 정작 자신의 수명에 대해선 통제불가능한 상태였다. 멀리 갈필요도 없이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이 47세정도였으니 의료적,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했던 일반대중의 평균 수명은 그야말로 의미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종교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고 사후에 대한 보전책으로 장례관련문화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삶의 길이에 대한 로망이 어쩌면 인생의 목표이기도 했던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고한 철학적 명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만큼이나 오래 살아볼 것인가' 가 더 현실적이고 중요한 과제였는지도 모른다. 이에 비한다면 지금의 시절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풍족하고 풍요로운 시대이다. 얼마큼 살 것인가에 대한 대략적인 아웃라인이 정해져 있고 거의 돌발적인 사태가 아니다면 삶의 길이는 보장받는 시대에 각 개인들은 예전 철학자들이 부르짖었던 어떻게 살 것이가를 고민하는 시대이니 그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을 셈인가? 하지만 살짝 돌려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가 주는 압박감과 이면의 또 다른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담론이 또 다른 발목을 잡는 형국으로 커져가고만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말은 근대시대이전 사람들보다 두배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자 동시에 두배의 고민거리도 같이 안고 가야한다는 이율배반적인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색 쇼크>는 날로 고령화 되어가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며 또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인류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적 다양한 측면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신선한 보고서이다. 과학혁명으로 인한 의학의 진보로 인해 평균 수명 자체가 길어지는 것을 우리는 당연시 받아 들이면서 모든 촛점은 좀 더 평균수명을 늘릴는데만 집중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고령화가 과연 인간에게 축복인지 아니면 오일쇼크와 같은 충격인지에 대한 모호한 경계점에 도달했다는 점을 인식해 본적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스페인,미국의 노인층들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고령화가 가져오는 폐해(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고령화가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생산활동인구의 감소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 자녀 양육기간의 증대, 사회보장보험(의료보험,연금등)에 대한 막대한 부담 그리고 생산구조(제조업의 쇠퇴등) 자체의 변화, 고령층을 상대로 한 사회적 범죄의 증가등 예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고령화문제는 리얼타임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경제축에 의해 이제 더 이상 일국의 사회적 문제를 떠나 세계 각국이 서로 연관될 수 밖에 없는 범지구적인 문제로 급상승하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과 일본의 실례에서 보여주듯이 생산적정인력의 부족은 이민의 부정적인 면을 증가시켜 자칫 잘못하면 인종적인 문제로까지 비약될 수 있음을 상기 시킨다. 반면에 이러한 부정적인 요인의 이면에 또 다른 경제적 틈새시장의 길이 열여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은퇴연령층을 겨냥하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증가는 새로운 블루마켓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래 저래 고령화 문제는 여러 방면에서 많은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소리일 것이다.
극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분명 기대수명의 증가는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오랫동안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근대이전 인간의 수명은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외부적 요인(전염병,전쟁,기아등)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했기에 죽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는 구조였다면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는 수명의 시간적인 개념 보다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담론이 전염병이나 전쟁으로 인한 요인보다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한 획기적인 담론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인간수명은 다시 퇴보할 소지도 있다는 점이 두려운 것이다.
<회색 쇼크>는 전체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고 있어 그 현실감이 뛰어나고 그동안 고령화 문제를 원론적이고 통계적인 문제에서 보아왔던 시각을 미시적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볼 기회를 주고 있다. 플로리다 세러소타의 신개념 주거단지인 CCRC, 물류업의 부상, 개인의 기억을 저장하는 라이프로깅등의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분야에 대한 언급은 고령화 시대와 발맞추어 어떠한 방식으로 삶의 질을 제고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인간노화의 과정을 30대부터 연령별로 분류한 항목은 그 어떠한 의학서적보다 더 현실감 있게 풀어 설명해주고 있어 호기심 많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약간의 서글픔을 포함하여)를 선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은 점은 스페인과 일본의 고령화 사회상을 살펴 보면서 특히, 별다른 준비없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인간의 어머니 자궁에서 착상되어 태아로 발달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명시계의 축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더 오래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이제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고령화시대는 한편으로 축복의 시대가 될 수 도 있지만 반면에 기억하고 싶지 않는 시대가 될 수 도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살 것인가를 떠나서 이제는 정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범사회적인 담론 형성이 시급한 때임을 우리는<회색 쇼크>를 통해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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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30년 전만 하여도 아이를 낳지 말 것을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라도 더 낳게 하려고 정부가 안간힘을 쓴다. 개개인의 사적인 부분에까지 이토록 깊게 관여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반감이 살짝 들다가도 한 편으로는 그로 인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려니 싶기도 하다. 낮은 출산율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고령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그리고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날수록 젊은 사람 하나가 부양해야 하는 노령층의 수는 급증한다. 과거와 같았다면 가족 내에서 해결할 문제라며 외면하면 그만이었겠지만 지금은 엄연한 사회 문제이다. 아이를 낳으라는 간곡한 부탁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에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 중 하나인 셈이다. 고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많은 나라들이 점점 더 불안정적인 고용형태를 키워가는 것과는 별개로 젊고 건강한 노동력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은퇴 후에도 이어지는 긴긴 삶을 감내해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마도 머지않아 이 조금 덜 젊은 사람들의 많은 비율이 다시 노동시장에 발을 디디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들을 향한 시장문이 굳게 닫힌 듯하다. 나이 든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아직 따스하지 못하다. 그러나 여기저기, 모든 사람들이 회색 머리칼을 휘날리고 있는 사회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도 같다. 단순히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했다고만은 할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의 고령화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활기가 없을 것이라는 게 사회의 보편적인 시선이다. 물론 우리는 일정 연령대를 넘어서게 되면 더 이상의 자립이 힘들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60세가 넘었다 하여 혹은 직장에서 은퇴하였다 하여 갑자기 폭삭 늙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 60대는 노인 축에 든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인다. 그들 중 일부는 젊었을 때처럼 고소득을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일정 정도의 수입을 거둔다. 나이가 들었다 하여 지금처럼 획일적으로 사람을 배제해서는 아니되는 이유이다. 나이든 사람들에겐 젊은이들이 지니지 못한 연륜과 경험이 있다. 그들은 때론 존재만으로도 젊은 사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아이 같아진다는 말이 있듯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순수하다. 이해타산을 따지고 드는 젊은이들보다 나이든 이들은 그래서 믿을 만하다. 신체의 활력이 저하됨에 따라 수반되는 속도의 느림은 고려해야겠지만, 인간의 가치를 항상 돈으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물론 나이든 사람들이라 하여 100%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건강하게독립적인 생활의 영위가 가능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돈까지 지녔다면 더더욱.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와 같은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고령층의 대다수가 건강상의 문제를 껴안고 산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아니한다면 그들의 건강 문제는 해결하기가 난해할 수도 있다. 혹 그들이 거동이 불편하다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울 누군가의 존재를 필요로 할 것이고, 이는 곧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 순수하다는 점의 이면에는 그늘이 존재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두울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얼마나 많은가. 각자의 이익 추구에 급급한 사람들 틈에 낄 경우 노인들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좋건 싫건 나이듦을 피할 수 없다. 점점 더 아이를 적게 낳는 요즘의 추세를 고려할 때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땐 젊은이들이 마치 천연기념물 마냥 드문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 역시 살아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회색 쇼크가 사회를 감고 도는 시대가 올지라도, 혹 내가 그 회색 물결의 주인공일지라도 이후의 세상을 거부해서는 아니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철저히 이에 대비하고 외려 노인들도 편히 자아실현을 하며 살아나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쪽이 보다 현명한 태도라 하겠다. 다만, 지금의 이 회색이 잿빛일지 은빛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나의 사회 문제로서 언급되고 인정을 받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들이 직원을 채용할 때 연령을 본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은 죄다 도시로 떠나버리고 많은 동네가 노인들만의 터전이 된 지 오래다. 그 동네에는 있는 게 없다. 심지어 숨쉬는 소리조차 듣기 힘든, 노인들만의 공간은 마치 죽은 공간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늙어가고 있다. 아직은 젊지만, 그 젊음이 언제까지 내 것일 수 있을지 난 알지 못한다. 미리 가본 미래는 생각했던 것만큼 끔찍하진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시계바늘은 움직이기에, 따스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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