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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난 지음 ․ 심규호,유소영 옮김, 『손자병법의 탄생』,(일빛/2011)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새것과 옛것이 서로 밀어내고 열어주는 것이 자연(天)이다.
안정되면 변하고
새것과 옛것이 서로 밀어내고 열어주는 것이 사람이다.
-임천문집/주관신의/자설
횡거 선생이라 불린 왕안석의 말이다. 옛것을 취함에 있어 새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무비판적인 수용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것은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쾌(快)라 할 수 없으며, 과거와 현시대를 소통할 수 있는 징검다리이자 당대를 초월하는 역사적 안목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념이니 이데올로기 하는 것들에 자유로워야 하며, 사고 역시 그러해야 한다.
은작산에서 손자병법의 발굴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한국사(史)의 고고학적 발굴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이들 보다 좋은 환경일까? 그렇게 생각하기 앞서, 스스로를 반성해보건데, 너무나 무지하게 살아왔다는 점이다. 물론 손자병법이라는 책의 위대함을 괄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그만한 책이 없다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다.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다산의 책이나 그의 형 약전의 책에 얼마만큼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묵점 기세춘 선생이 쓴 『성리학 개론』과 『손자병법의 탄생』을 함께 보면서, 온전한 자신들의 것이라 부르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들이 마냥 부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뭘까?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면서, 호메로스부터 칼융까지 한번쯤 들어봤으면서 나는 왜 논어, 장자, 손자병법이 새롭게 보이는 것일까?
중국의 문화대혁명기를 맞으면서, 그들은 지식인의 핍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 한다. 우리라고 그런것이 없었겠는가. 아니, 이것은 분단이라는 비극에 맞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지만, 식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구시대의 묵은 소리로만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천의 말에 ‘연구 작업이 세간의 이목을 끌면서 겪은 우여곡절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이 있다. 하지만 유쾌하지 않은 일을 덤덤히 적은 르포작가 웨난은 당대 지식인이다.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함께 고민할 ‘꺼리’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음지에 있던 것이 양지에 드러났을 때, 눅눅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썩을 것은 썩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롭게 토양에 거름이 되는 ‘에너지’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어쩌면 왕안석이 이야기한 사람의 일이고, 자연의 순리(天行)이지 않을까.
‘좋은 미끼로 물고기를 낚는 데에는 세 가지 미묘한 방편이 있습니다. 후한 녹봉으로 뛰어난 인재를 얻어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 많은 상을 내려 병사들이 목숨을 바치게 하며, 높은 벼슬자리를 맡겨 신하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합니다. 낚시질은 목표로 삼은 것을 낚기 위한 방편이지만, 여기에 담긴 뜻은 매우 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통해 세상의 큰 이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끼를 드리우면 물고기를 낚아 죽일 수 있고, 봉록을 내걸면 훌륭한 인재를 얻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치와 마찬가지로 대부가 자신의 집안을 들여서 나를 얻고자 하면 나라를 손에 넣을 수 있고, 제후가 자기 나라를 바쳐 천하를 얻고자 한다면 천하를 아우를 수 있습니다.’ (147p)
강자아가 문왕에게 아뢰는 말이다. 그러면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을 사랑해야 하며 순농(順農: 천지우주의 자연 질서에 한 치 흐트러짐없이 농사짓는 농부가 거둬들인 농산물)에는 세금을 적게 부과해 백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천하가 평화로우면 모든 것이 이롭고, 천하가 혼란스러우면 이로움이 달아나버린다”고 해, 모두가 회피하거나 모른척하고 지나쳐 버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분명히 지적했다. 또한 “인심에 순응해 천하의 일을 도모해야” 군사적으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148p)
비록 강자아의 말이긴 하지만, 이것은 손자철학에 직접적으로 닫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의 글은 다산의 목민에도 나오는데, ‘후세와 와서는 한 사람이 자기 스스로 황제가 된 다음 자신의 아들과 동생 그리고 시종까지 모두 제후로 봉했다. 그 제후들은 또 자기가 아는 자들을 골라 주장으로 세우고, 주장은 또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추천하여 당정, 이정으로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가 자기 욕심대로 법을 만들어서 주장에게 주고 주장은 당정에게, 당정은 이정에게 각기 그렇게 법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므로 그 법이라는 것이 다 임금은 높고 백성은 낮으며, 아랫사람 것을 긁어다가 윗사람에게 붙여 주는 격이 되었다. 결국 얼핏 보기에 백성이 목민관을 위하여 있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텔레비전만 켜면 국난 극복과 안보의식이라는 두 메시지가 앞 다퉈 ‘비상(非常)’을 말한다. 그러나 그 비상이 결코 비상(飛上)하는 일만은 아닌데, 그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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