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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한 감동의 이이화 자서전
"한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한 감동의 이이화 자서전" 내용보기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중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아침에 김문수가 119에 전화한 것을 녹취한 내용을 듣고 이런 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공직자라는 사실에 너무도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119에 전화해서 한 나라의 공직에 있는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나 경기도 지도사인데 ... 하며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근무자의 이름을 묻더니 대답을 하지 않자 화를 내는 행
"한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한 감동의 이이화 자서전" 내용보기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중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아침에 김문수가 119에 전화한 것을 녹취한 내용을 듣고 이런 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공직자라는 사실에 너무도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119에 전화해서 한 나라의 공직에 있는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나 경기도 지도사인데 ... 하며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근무자의 이름을 묻더니 대답을 하지 않자 화를 내는 행위를 대체 뭐라고 설명을 한단 말인가.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실체가 아닐까.... 자서전이나 박사논문 또한 마찬가지이다. 저명한 박사들이 표절로 인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자신의 저술을 대필하거나 자서전을 돈을 주고 사는 부류가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지도자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이러 시국에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을 다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역사를 쓰고 만들어 가는 아름답고 양심적인 지도자가 있다. 이이화 선생님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바로 그런 부분들 때문에 자꾸 눈시울이 붉어지다가 하길 여러번 , 책을 다 읽고야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이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를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역사학자로서 존경해 마지 않았던 분이라 자서전이 출간되었을 때 무척 들뜬 기분으로 구매를 하려고 했는데 참 희안한 것이 이 책이 내 인연이었는지 어떠한 생각지 못한 인연으로 책이 내게 왔다. (다 읽고나서 그 사실에 또한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가가 쓴 자서전은 많지 않을 뿐더러 대부분의 자서전들이 자기 중심적인 서술인 것에 반해 이이화 선생님의  자서전은 역사학자인 이이화선생님의 사적인 부분과 함께 한 격동하는 역사 한가운데에서의 개인이라는 것으로 다른 자서전과  집필의 차이를 느낀다.

 

스스로를 태생부터 정상적이지 않았고 신체조건도 좋지 않았으며 왼손잡이에다 유난스레 병에 시달렸고, 다른 동무들과 어울리지 않고 산속에서 지내며 여느 청소년과는 다른 성장과정을 겪었음을 고백하는 이이화선생님은 가사를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야산 선생으로부터 가출하여 고아원을 전전하다가 스스로 검정고시를 치르고 고등학교 입한한 것이 학력의 전부가 되었다. 아버지 야산 선생은 당시 시대의 혼란함과 동시에 신구의 학이 상충되는 과정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를 일본놈이 되는 것이라는 이유로 산 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한문을 가르치는 업을 이루는 과정에 아들들 또한 자연적으로 한문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학교를 다니고 싶던 이이화 선생님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가출하여 부모가 다 살아있음에도 고아원에 의탁하여 학교를 다니게 된다. 일제시기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과 4.19혁명의 시기를 거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저자는 방황과 배회를 거듭하다 자살의 유혹과 겪고 이집 저집 친구집을 찾아다니며 생활하던 중 성공하는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드릴 꿈으로 고시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5.16쿠데타를 겪은 후 병역기피자가 되어 결국 시험도 취직도 못하고 몸을 피해다니는 처지가 된다. 늙으신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만 빈곤의 뿌리는 뽑아지지 않은 채 급기야는 빈대약을 뿌리다가 자살행위로 오인 받아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고아시절  여관에서 심부름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닌 전력이 있는지라 궁핍함을 면하기 위해 시작한 웨이터 생활 또한 결국 빚만 떠앉고 그만두었지만 이이화선생님은 이 때 경험한 밑바닥인생의 경험을 온몸으로 느낀 것을 훗날 사회사의 체험적 자료들이 되었다고 한다.  

 

 고졸 학력에 제대로 된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이지만 주역의 대가 아버지 이달 선생에게 배운 한문은 이이화 선생님의 생애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이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깨닫는 부분이 많았는데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주는 것이 전부가 아닌 정신적인 유산을 자식에게 남겨주는 것이 진정한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이화선생님 개인으로서는 자식에게 엄하기만 했지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지 않는 아버지 야달 선생에게 마음에 한이 있을지는 몰라도 야달 선생이 가르쳐준 한문으로 인해 역사를 바라보는 탁월한 시각과 한문해석에 밝은 것의 바탕은 바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소중한 유산이 있었기에  굴곡진 삶속에서도 남들과는 차별화된 시각을 가지고  역사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진정성과  역사의 흐름 가운데  아웃사이더로 머물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전 삶의 과정을 통하여  한국사의 아웃사이더 인물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는 역사운동을 벌이게 되는 힘이 되어 준 것이다. 이런 역사운동의 작업은 능력과 안목, 치열한 열정이 집대성되어 10년간의 집필과정을 거쳐 22권의 한국통사 [한국사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한반도의 빙하기부터 거슬러 올라가 1945년 해방까지의 한국통사를 22권의 책으로 집필한 것이다 . 한국사를 한 개인이 집필한 것은 전대미문의 작업이었다.

 


1990년 들어 중국 사회과학원에서는 일부 학자를 동원해 일부 학자를 동원해 고구려 역사에 대해 '일사양용(一史兩用)'의 이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한국사에 대한 몇가지 의문점이라는 글을 다음duam)에서 본 기억이 있다. 김정일 사망이후 통일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북한을 흡수하기 위한 오랜 작업을 해오고 있다는 증명으로서 또 하나 대두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 동북공정이다.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말해 소수민족 통일국가론에 따라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중국 소수민족의 정권으로 주장해 중국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이다. 지금 그 동북공정의 작업으로 인하여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 하는 수작의 글들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에 앞서 그들은 서북공정, 서남공정을 계획하여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 이들 공정은 중앙아시아 국가와 동남아시아 국가를 고구려와 같이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바로 중화사상의 부활이다. 고구려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정부는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를 발족하여 이이화 선생님을 이사장으로 추대하였지만 이이화선생님은 고구려사를 위해 다른 행동적인 측면에서의 운동을 위해 2008년 이사장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고구려사에 관한 작업은 진척을 보이지 않는데 그것을 이이화선생님은 세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 이명박 정부가 동북공정이나 고구려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다.

둘째, 보수정당의 몇몇 인사들이 방해 때문이다.

셋째, 서울 광진구청이 경쟁적으로 사업을 벌여 초점이 흐려졌다.

 

우리나라의 현대는 역사상 아직도 풀지 못한 과제들을 떠안고 있다. 동학혁명에 관한 재조명을 위해 장년의 반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후 역사를 학습으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늘 답사로 땅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의 발걸음이 사회지도층의 몰염치한 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세태속에서도  이 땅의 민중의 지도자로서, 역사를 바로 세워 나가는 운동가로서, 제주 4.3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에 앞장서서 홀로 외로운 투쟁을 해 오며, 한국전쟁시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온 힘을 쏟고 계신 그분의 역사운동속에 깊이 담겨있는 인권과 평화에 관한 노력이 결코 헛되질 않기를 바라며 민중의 역사가라 불리우는 그분의 왜곡된 진실을 찾는 작업을 통하여 우리 세대에 당면한 문제인 동북공정앞에서  후대에 굴욕적인 문화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우리세대에 꼭 풀어야할 역사적 과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실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귀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숙지해야할 과제이며 아울러 이이화 선생님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2.01.05. 신고 공감 9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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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정직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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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자서전을 읽었다.  올해가 가기 전 자서전 한 권을 읽고자 한 계획은 이로써 달성했다.  그것도 재야 역사학계의 거목이라 표현해도 좋을 이이화의 자서전은 그가 집필한 한국통사를 비롯한 역사서를 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같단 느낌이 들었다.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아니다.  시대에 대한 정직한 견해와 비판의 시선이 없다면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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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자서전을 읽었다.  올해가 가기 전 자서전 한 권을 읽고자 한 계획은 이로써 달성했다.  그것도 재야 역사학계의 거목이라 표현해도 좋을 이이화의 자서전은 그가 집필한 한국통사를 비롯한 역사서를 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같단 느낌이 들었다.  역사학자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아니다.  시대에 대한 정직한 견해와 비판의 시선이 없다면 역사학자는 어용과 허구의 옷을 입는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라지만 지금 이 시대야 말로 역사를 되돌아봐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결국 역사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밝게 비추고, 미래를 올곧게 설계하는 일이 아닌가?

 

이 자서전에서 우린 재야 역사학자가 탄생하는 과정을 개인과 시대라는 배경안에서 관측할 것이다.  역사를 핍진(逼眞)하게 서술하고자 하는 노력을 이이화는 자신의 전생애를 걸쳐 보여준다.  그것은 모든게 풍족히 갖추어진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료를 뒤지고 앉아 있는 여느 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현실의 모든 정치,사회적 곤궁에 함께 참여하고 발언하는 용기있는 글쓰기를 표방한다. 

 

이이화는 1936년 대구 비산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학자였고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 선생이었다.  그는 어렸을 적 야산에게서 주역과 한문을 깨쳤다.  평생 아버지와 애증의 관계였으나 놀랍게도 역사학자로서 그가 대성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한학에 빚지고 있다.  그는 뛰어난 한문실력으로 훗날 사료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역사학자로서의 필수적 능력을 얻는다.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출해 부산,여수,광주 등의 고아원을 떠돌았고 유일한 졸업장을 명문 광주고에서 얻는다. 

 

고학으로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입학, 문학 청년의 꿈을 키웠으나 결국 중퇴하고 아이스케끼,빈대약장수,술집웨이터 등 다양한 생의 이력을 경험한다.  이이화의 궁핍한 삶은 한국 전쟁 이후, 뭇 소시민의 삶의 각박함을 상징한다.  자서전의 초반은 개인사에 집중돼 있다.  청소년기 고학 생활에 대한 경험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것을 통해 독자는 개인이 거쳐온 한국 전쟁 이후 20세기 후반의 역사와 사회 지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경험담 자체가 20세기 한국사의 구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 개인이 맞이한 4.19나 5.16의 현장을 육안으로 살필 수 있다.

 

그가 역사학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이십 대 후반이었다.  어릴 적 갈고 닦은 한문 실력 덕분에 그는 동아일보사 출판부와 색인실 임시직 직원을 거쳐,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 서울대 규장각, 박정희가 공들여 설립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 고전과 역사를 번역, 연구한다.  그때부터 그는 평생 글쓰는 일로 밥벌이를 대신한다.  문학을 포기하고 그가 얻은 것은 역사라는 학문이었다. 그는 역사연구에 자신의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가 역사를 연구하며 보낸 젊은 시절은 학벌에 대한 컴플렉스와 차별이 상존했다. 사료를 엉망으로 번역하고 역사를 오독하는 교수들이 넘치는 시대에, 그는 가난과 고학으로 대학 졸업장이란 간판은 없었지만 실력 하나만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책을 읽어가며 독자는 학벌이나 재력이 아닌 실력 하나로 결국은 인정받고야 만 자수성가형 역사학자와 만나게 된다.  오늘날 젊은 이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을 나온다.  그들이 갖고 있는 스펙은 `유사 이래 최고'라고들 한다.  이이화의 모진 삶을 되돌아보며 학벌같은 정형화된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분야에 대한 진정한 열정과 능력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자서전은 그러한 면에서도 독해가 가능하다.

 

" 그런가 하면 박사논문이나 저술 또는 자서전마저 돈을 주고 사서 내는 부류들이 있다.  이른바 대필이다. 이는 표절보다 더 비양심적인 행위라고 본다. 이런 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이 널려 있을 뿐만 아니라 떡하니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이화 <역사를 쓰다>, p.173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자서전의 가치는 역사를 보는 정직한 눈을 가진 한 역사학자의 탄생에 있다. 그는 100년 전 동학농민전쟁의 의미를 되찾는데 주력했고, `역사바로잡기운동'이나 `과거사청산' 등의 운동을 주도한다.  `한국전 이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상임대표'를 맡는 등의 공적인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에도 힘을 보탰다.  1995년부터 쓰기 시작한 한길사의 <한국통사 시리즈> 전 22권을 10년 동안 집필하여 완성한 것은 필생의 최대 업적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사 왜곡에는 온 국민이 분노하면서도, 진정 우린 자신의 역사를 왜곡하는 시도와 꼼수에는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서술이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역사의식은 역사학자만이 가져야 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가르치는 교과서임을 우린 안다.  역사의식이 없다는 것은 인간을 한갓 경제적 동물로 격하시킨다.  잘먹고 잘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기에 우린 도덕적 흠결이 가득한 지도자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식으로 자위하기 일수였다.  마치 오늘날 박정희 독재정권을 오직 경제적 이유로 미화하려는 집단이 가진 의식과 일맥상통한다. 오늘 우리 시대의 소시민이 당면한 피폐함은 그같은 역사의식의 부재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는 아닐까?

 

"특히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온갖 정치적 파행과 폭압을 자행하면서 18년 장기 독재를 통해 국민을 현혹하는 갖가지 이념공작을 벌였다. `반공' `멸공'을 내세워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저항하는 학생들을 강제 입대시켰으며, 무고한 시민을 불법 체포해 고문을 자행했다. <민족일보> 사건, 통혁당 사건,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등 그 사례는 더 나열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불법 감금과 고문으로 희생된 무수한 의문사는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   이이화 <역사를 쓰다>, p. 413

 

역사에도 양면성이 있다면, 먼저 과오를 인정,사과하고 공로를 논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오늘 이 시대를 보자. 남북관계는 10년전으로 후퇴했다.  남북이 사이가 멀어지는 이 때,  중국은 북한과 부쩍 가까워졌다.  교역규모 면에서 최대인 중국과의 관계는 친미일색인 편향외교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날치기로 통과된 한미FTA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알길 없다.  집권당의 비서를 통해 국가 기관인 선관위가 사이버 테러를 당했지만, 주류 방송과 언론은 어물쩍 넘어갈 기세이고 경찰의 수사 결과는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도 황당할 지경이다.  27살짜리의 단독범행이라니, 내 나이 스물 일곱으로 필름을 돌려보며 그 무모함을 상상해본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자서전을 읽으며 한 역사학자가 민중과 서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려는 시도를 엿본다.   감시와 비판의 시선이 없다면 앞으로 우린 새롭게 등장한 4개 채널 종편의 막무가내 막장뉴스와 FTA로 수입되는 채리값이 싸질 거라는 공영방송의 지저귐을 진실로 여길 것이다. 역사는 역사학자가 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쓴다.  역사의식을 갖춘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정직한 관점과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민중과 대중의 시선으로 역사를 다시보려는 노력을 역사학자 이이화는 평생토록 이어왔다.  왜 민중과 대중의 시선이 중요한가?  역사의 주체는 1%의 권력이 아니라 99%의 민중이기 때문이다.  우린 권력자의 호의호식(好衣好食)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다.

 

 

 

 

 

2011.12.15

s*****7 2011.12.15.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역사의 아웃사이더를 밝혀 내다!
"한국역사의 아웃사이더를 밝혀 내다!" 내용보기
역사를 대중화시킨 사람, 이이화를 살필 수 있는 책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닌 그가 어떻게 역사를 잘 알게 되었는지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한문을 공부하게 되었고 능통한 한문 실력으로 기초적인 역사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지금의 이이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서자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고아원을 전전긍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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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대중화시킨 사람, 이이화를 살필 수 있는 책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닌 그가 어떻게 역사를 잘 알게 되었는지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한문을 공부하게 되었고 능통한 한문 실력으로 기초적인 역사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지금의 이이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서자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고아원을 전전긍긍하며 자수성가한 인물이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학위가 없으면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지금도 그런데 예전에는 더했으면 더했지 그냥 봐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학계에서 권위있는 역사 학자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첫째, 표절이나 대필을 철저히 금기시했다. 내노라하는 유명한 교수들도 표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시기에 양심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어려운 한문으로 쓰여 있는 사료들을 그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해석할 수 있었던 힘은 아버지, 이달 선생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교수들도 해석이 막힐 때마다 그를 찾았을 정도로 해박한 한문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둘째, 스스로가 아웃사이더로 활동하며 역사의 아웃사이더인 민중(절대 계급 의식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을 연구했다. 왕과 귀족 중심으로 나열 되어 있는 역사 기록에서 서민, 민중, 저항 세력을 찾아내 그들을 제대로 평가해 냈다. 대표적인 연구로 동학농민전쟁이 있다. 단순히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로 기록되었던 역사를 우리 역사의 중심으로 옮겨 온 이가 그다. 역사기행을 통해 책상에서만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실제로 발로 밟으면서 찾아낸 역사를 책으로 담아냈다.

 

셋째, 평생 글쟁이의 삶을 살았다. 정치권에서 그를 사용하고자 했던 시도가 있었지만 평생 재야 학자로 살아온 그였기에 인생의 마무리까지 초지일관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명예와 권력욕으로 망가진 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동학 운동에 가담했던 이들도 친일파로 변절하여 승승장구했던 사례를 보더라도 평생 자신이 품은 뜻을 굽히지 않고 좁은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자서전을 용기 있게 쓸 수 있었으리라.

 

시중에 역사 관련 많은 책들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문적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이화의 역사 저작물을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역사를 대중화시킨 만큼 어린이 관련 한국 역사 이야기도 만화로 출판되어 있다고 한다. 개인으로는 처음으로 방대한 분량의 한국 역사를 통사로 집필했다고 한다. 남다른 역사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서민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해 놓았다고 하니 한 번 쯤은 간간히 그의 역사책을 읽어보며 한 쪽으로 기울어진 역사관을 균형 잡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c*******9 2017.11.0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