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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자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각 장마다 수십번씩 화자를 바꾸며 전체적으로는 살인자를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구성적으로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하는데, 수십번 목소리를 바꿔가며 들려주던 이야기가 셰큐레의 아들 ‘오르한’의 입에서 마치는 것이 맘에 들었다. 일부러 본인 이름과 똑같이 설정한 거겠지? 오르한 파묵 요 익살쟁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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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어보는 아랍권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많이 낯설다. 1권을 끝낼 무렵즈음 익숙해진듯 하다. 각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되며 중간중간 동물이나 사물이 소설을 서술해 나가기도 한다. 많이 보지 못한 아랍식 세밀화에 대한 정보가 없어(표지의 그림을 제외하곤) 사실 잘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처음엔 많이 낯선 형식과 내용과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적응이 안되었지만... 조금씩 이해해갈수록 재미또한 더해져갔다.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최근 소설에비해 많이 더딘 편이라 조금 아쉽다. 보는 내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떠오르는건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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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아랍권 소설을 처음 접하다 보니 처음엔 좀 힘든감이 있었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다보니 재미도 있고, 읽는 속도도 빨라지는것 같습니다. 현대의 아랍이 아닌 옛날의 아랍권 내용이라 현재의 모습도 사뭇 궁금해 집니다. 그시절 이슬람권은 유교권의 동북아 보다 훨씬 체면과 형식을 중요시 하는듯 합니다. 현재의 이슬람권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면 마치 서양쪽 모습에 더 가까워보이는데 문화는 아시아권에 더 가깝다니 신기하네요. 아무튼 살인사건을 다루고 이를 파헤쳐 나가는 모습이 앞서 말했지만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재미는 있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최근 소설들에 비추어 옛날을 다루어서인지 소설의 진행이 다소 느린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는 얼마전 읽은 "해저 2만리"를 떠올리게 하네요. 부가적인 상황이나 묘사에 많은 장을 할애합니다. 기회가 되면 이슬람권 소설을 더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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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시즌3에 잠깐 언급된 책이다. 원근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흥미로워보이는 소재와 스토리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책은 상당히 신선했다. 언뜻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스릴 넘치는 이야기로 비치지만 그 속엔 역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충격적이다. 여러 대상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이 대상이란 것에는 한계가 없다. 나오는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화자가 되는 것을 넘어, 동물, 시체까지 화자가 된다. 각자가 한 사건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이 담겨있는 것이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도 그 속엔 묵직한 뼈가 있다. 신선한 스토리와 화법에 푹 빠져 읽어나감과 동시에 작가가 전하고픈 메세지를 곱씹어보기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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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알쓸신잡에서 내 이름은 빨강 재밌게 다뤄서 읽어봐야 하던 참에 추천까지 받아서 구매했습니다. 이 책은 역사소설이면서 살인 사건 살인범의 정체를 추적하는 추리 소설입니다. 장마다 화자가 바뀌고 소재가 독특하고 기발한 소설 같아요. 책을 펼치면 초반에 한국의 독자들에게로 시작하는 작가의 짧은 글이 나오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여운이 남아 곱씹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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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언뜻 듣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내 장바구니는 담긴다고 다 결제가 되는 게 아니라서 어느날 삘이 뽝~ 오는 날에 지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 어? 챕터 하나당 분량은 짧은데 도무지 머릿속에 캐릭터 형성이 안 된다. 역시 고전은 어려운 건가... 결국 이 책도 인내심으로 읽어야 하나 갈팡질팡 할 무렵 비친 눈부신 서광! 이런 바보. 챕터마다 화자가 바뀌는 걸 모르고 다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읽었다니! '나'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챕터마다 다 다르고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전개되는 구조라는 걸 서너 챕터를 읽고 나서야 눈치챘다. 다시 돌아가서 제대로 읽기 시작. 우와... 술술 읽힌다. 재미있다. #터키 작가 #오르한파묵 이 들려주는 16세기 #오스만투르크 왕국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내이름은빨강 은 당대의 문화를 담고 있는 역사소설이면서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임과 동시에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살인사건의 배경에는 예술과 종교의 갈등이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서양의 화풍이 들어오면서 옛 장인들의 화풍을 고수하던 이슬람 화가들은 갈등을 겪는다. 원근법와 초상화. 서양 화풍의 대표적 특징이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라면 그동안 오스만 화가들은 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려왔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질 수도 없었다. 원근법을 적용한다는 것, 술탄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불경한 짓이었다. 예술가로서 어쩌면 당연히 품게 되는 스타일에 대한 갈망과 종교적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화가들의 이야기가 바로 <내 이름은 빨강>이다. 매를 맞아가며 그림을 배우던 어린 도제시절부터 억눌러 왔던 열망. 가장 튀는 색, 빨강이 되고자 하는 예술적 열망은 그 어떤 강력한 종교도 억누르지 못하는 인간 본성이 아닐까.
오르한 파묵은 작가의 말에서 서양 예술과 문화의 영향으로 전통 문화와의 충돌과 갈등을 겪어 본 적이 있는 동양권 독자들이 이 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슬람권 소설은 처음이지만 한 사람의 동양권 독자로서 옛 오스만 화가들의 내적 갈등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줄거리와 좀 더 깊은 감상은 유튜브 채널에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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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읽다가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서 포기했던 소설인데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추천한 거 보고 사서 다시 읽게됐어요. 15세기 오스만제국 이야기라 모르는 단어들이 많고 이름도 안외워져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진짜 이국적이고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것 같았어요. 약간 간질간질한 불안감으로 몰아가면서 전개되는데 드라마틱한 줄거리는 없지만 분위기가 무척 묘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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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시테는 베네치아 그림을 보고 유럽 화풍에 푹 빠져 술탄에게 술탄의 초상화를 서양 화풍으로 그리게 해달라고 청한다. 술탄은 허락하고 에니시테는 세밀화가들을 불러 모아 서양 화가들의 그림을 그리라고 명한다. 비밀리에 진행된 작업은 세밀화가들의 갈등을 조장했다. 수백년 간 이어져 내려온 이슬람 화풍을 버리는 짓은 차마 할 수 없었던 엘레강스는 반발해 죽음을 자초하고 그 뒤로 에니시테도 살해당한다. 서양화가들을 따라하자니 기예가 그들에게 몇 세기나 뒤쳐져 있음을 자각할 뿐이었고, 이슬람 화풍을 고수하자니 점점 쇠락하여 잊혀져 가는 운명일 게 뻔하였다. 그들은 죽이고 싸우고 다툰다.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 빨강은 그들의 핏빛 역사와 목숨을 건 사랑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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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전개에 작가가 개입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전개방식이 색다르다. 소설 형식의 파괴라고도 하겠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고 분류된다고 한다. 도입부터 임팩트가 있다. 나는 죽음 몸이요, 라고 소개하는 화자는 억울하게 살해당해 차가운 우물 물속에 시신으로 누워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자는 왜 죽었을까. 소설의 표면에 복잡한 러브라인이 포착되는데 치정살인인가? 이스탄불 최고 미인 세큐레와 그 주위에 카라, 하산, 에니시테가 등장한다. 세큐레는 얼굴만큼 마음이 착해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교활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에니시테는 그런 딸을 아끼고 감싸고 도는 노인네 아버지이다. 카라와 하산이 살인자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면의 갈등이 또 있다. 터키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다. 오스만 제국이 있던 땅이다. 때는 1591년, 유럽은 르네상스로 화가들의 전성기가 태동하고 있다. 반면에 오스만 제국의 화가들은 쇠락해가는 그들의 화풍을 절감하고 쇠락에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거기에 갈등이 있다. 그것은 피를 몰고 오는 붉은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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