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Immortality
"Immortality " 내용보기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가 죽음에서 부활한 이래로 영생에 대한 동경은 인류 문명의 보편적 특성이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충동을 삶의 의지라고 하였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멸에 대한 추구는 의학발전과 종교와 철학의 발달 등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 영생은 거듭 태어난 삶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정체성이란 의식과 기억의 연속에 있으므로 거듭
"Immortality " 내용보기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가 죽음에서 부활한 이래로 영생에 대한 동경은 인류 문명의 보편적 특성이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충동을 삶의 의지라고 하였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멸에 대한 추구는 의학발전과 종교와 철학의 발달 등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 영생은 거듭 태어난 삶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정체성이란 의식과 기억의 연속에 있으므로 거듭 난 나는 과거의 내가 될 수는 없다. 정체성이 동일하지 않다면 나와 구원이 무슨 의미인가? 거듭난 삶이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영원히 끝없이 산다고 해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그리고 "심판의 대상은 과거의 나여야만 공정"하기에 거듭 난 영생은 모순이다.
게다가 죽음은 "의식의 종말"을 의미하기에 죽음이 어떤 상태인지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구약성경은 영생보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표현이 훨씬 많다. 반면 신약은 심판의 날 육체적 부활을 믿은 바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육신의 부활은 기독교 기본교리인데 로마인들에게 엄청난 혐오감을 주어서 다신교 풍습인 부활절이미지를 사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더 큰 문제는 영생 추구의 기회비용이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종말론에 치중하는 종교에서 볼수 있듯이 현재의 삶이 구원을 얻는 과정이라면 현실은 평가절하될 수 밖에 없다.
"비 오는 일요일 오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불멸을 소망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의 모티브가 된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세상 끝에 있는 술집 주인은 영생을 추구하다 실패한 길가메시에게 이런 말을 한다.
"불멸은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오. 돌아가서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언제나 아내를 안아 주세요."

불멸은 내일의 두려움으로 현재를 스쳐보내면서 또다른 후회와 두려움을 재생산하는 현재를 소홀하게 하는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미래도 현재의 누적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카르페 디엠 carpe diem"
나에게 속한 오늘을 잡아라!
지금 그리고 여기.
YES마니아 : 로얄 f*********0 2017.05.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