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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표지는 완전 분홍빛. 로설로 착각하기에 충분하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가급적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려고 한다. 글을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내게 큰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서약’ 영화 광고가 나오자마자 책을 구입했다. 로맨스의 진수를 보여주려는 듯 영화 광고 영상이며 책이 무척 예뻤다. 하지만 사정이 생기면서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은 나중에 읽게 되었다.
Note: 이 아래는 영화와 책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감상에 아주 적은 영향을 주기 위해 모호하게 표현함. 걱정 없이 읽으셔도 됨.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했다. 실화라고 하는데 두 개의 톱니바퀴가 물려 가듯 사건들이 딱딱 맞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완전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자동차 사고가 나서 여자인 페이지(레이첼 맥아담스)는 최근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페이지에게 남편 레오(채닝 테이텀)는 낯선 외간 남자가 되어 버렸다. 레오로선 당황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페이지는 무슨 이유로 친정과는 담을 쌓고 지내서 사고가 난 다음에야 레오는 장인, 장모를 뵙게 된다. 그 이전의 결혼식에서는 주위 친지들 없이 둘의 친구들만 불러놓고 조촐한 결혼식을 한 터였다.
변변한 돈도 없이 차린 신혼집에 비해 장인 댁은 아주 부자였다. 그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장인, 장모는 안 좋았던 기억이 사라진 페이지를 반기며 관계 회복의 기회로 삼는다. 레오를 더욱 괴롭게 만든 것은 페이지에게 헤어진 애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헤어진 이유가 기억에서 사라졌고 그 애인과 즐겁게 지냈던 기억은 남아 있으니 당연히 옛 애인과 다시 가깝게 된다. 그 다음부터 갈등과 위기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영화 티켓.
사건들이 너무 잘 짜여 있어 영화를 보면서 참 대단한 실화라고 생각했다. But....... 책을 읽자마자 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배신감마저 느꼈다. 관객을 우롱해도 유분수지 사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실화에서 모티브만 따온 것이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여자가 연애의 경험과 결혼 생활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점만 빌려온 것이지 영화의 내용은 완전 조작 수준이었다.
이만하면 영화 광고라든지 영화 시작할 때 ‘이 영화는 실화에서 모티브만 따온 것입니다’라고 말이라도 붙였어야 했다. 실화라고 알려져서 감탄하고 봤는데 우롱당한 것이 아니고 뭔가. 책 표지에는 제목 아래에 ‘The true events that inspired the movie’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그저 영화로 제작되게 만든 감동 실화쯤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내용을 완전히 바꿨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책을 안 읽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책의 내부.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으면 이렇게 황당해 하지 않았을 듯하다. 영화를 아주 즐겼을 것이다. 책의 각색에 찬탄을 금치 못했을 것도 같다. 오히려 책에 충실하게 만들었다면 심심했을 것이며 그저 영상미만을 따졌을 것이다.
책의 내용은 예쁜 겉표지와 달리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다. 초반부에 서로가 알게 되는 과정이 나오는데 영화와는 완전 딴판이다. 이건 뭐, 영화와는 95% 다르니 언급해 봤자 타이핑하는 손만 아플 것 같다. 책 뒷부분에 실제 인물인 Carpenter 부부가 영화를 감상한 얘기를 담고 있다. 많은 부분이 바뀌긴 했지만 기본 뼈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스토리가 의미하는 메시지를 잘 표현했다고 완곡하게 언급했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남자인 Kim Carpenter와 여자인 Krickitt의 직업부터가 다르다. 둘 다 체육 관련 시설에서 일하다 보니(스포일러 자제를 위한 것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안 밝힘) 물품 주문 관련으로 알게 되었는데 수많은 시간을 공 들인 후 만난다. Krickitt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밤을 함께 지새우며 얘기를 나눴어도 키스 한 번 안하게 된다. 그들의 연애 과정 또한 이채롭고 결혼식도 양가 부모, 친구들 모두 모여서 축하를 한다.
초반부를 지나면서 내용은 무거워진다. 자동차 사고 이후에 벌어진 병상의 얘기, 힘든 재활 과정, 기억을 회복 못하는 아픔 그리고 둘 사이에 삐걱대는 갈등으로 가득 찬다. 다행인 점은, Krickitt이 남편과의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이전부터 쭉 지녀온 신앙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신앙 간증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종반부는 둘의 얘기가 방송 매체를 타서 유명 인사가 된 것이며 영화로 만들어져서 채닝 테이텀과 레이첼 맥아담스를 만난 얘기들이 그려져 있다. 1996년에 영화 제작사와 계약해서 2012년에 개봉했으니 16년이 걸린 셈이다. 그동안 Carpenter 부부는 영화가 만들어지도록 기도를 했다고 하니 이루어진 셈이다. 둘째인 딸 LeeAnn이 아기 시절, 유모차에서 굴러 떨어져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을 때 Kim은 Krickitt에 대한 데자부를 본 듯하다고 술회하고 있다.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 간증서로도 읽힐 수 있겠다.
책 읽는 중에 영화의 내용이 사실과 너무 다른 것을 알고 황당했지만 논픽션을 픽션으로 변환할 때 각색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점을 크게 배웠다. 영화에서 사건의 아이디어와 배치가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새삼 각색의 중요성과 힘을 보았다.
아내가 기억을 잃어버려 그녀에게 낯선 남자가 되어버린 Kim. 남남처럼 되어버린 두 사람이 괴로움과 갈등으로 이혼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그것을 극복한 실화이다. 부부간의 결혼 서약을 되짚어 보게 한다.
책의 중간에 빠닥빠닥한 종이로 16페이지에 걸쳐 사진이 실려 있다. Krickitt과 Kim의 사진. 둘이 만나기 전, 둘 모두 체육 관련 직업을 갖고 있었다.
사고 당시의 파손된 차량. 운전석은 거의 형체가 없다. 당시 Kim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Krickitt과 운전을 교대했다. 몸집이 큰 Kim이 운전대를 계속 잡았더라면 즉사했을 것이라고 했다. 옆 페이지에 병상에 누워있는 Krickitt의 모습이 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후의 두 사람 사진과 결혼반지 사진. 기억이 없어진 결혼식을 다시 올리게 된다. 첫 번째 결혼식의 반지와 두 번째 결혼식에서 교환한 반지, 두 개 모두를 녹여서 다시 하나의 반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태어난 아이들과의 단란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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