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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름아닌 ‘쿠바’가 아닌가.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 그 국가들 중 아마도 세계인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 그 이유가 살사가 되었든 룸바가 되었든 체 게바라가 되었든 어쨌거나 호기심을 자아내는 특수한 곳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쿠바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부분 환상에 머물거나 적어도 과장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동저자인 수진과 까밀로가 안내해준 쿠바는 벽에 걸린 액자 속 그림이 아니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쿠바’는 그 속살을 비추며 박제된 이미지에서 튀어나와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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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번 책을 주문할 땐, 여행에 엄청 꽂혀 있었나보다. 괴테부터 카잔스키까지, 하루키가 외국살이 서러움을 쓴 <슬픈 외국어>부터 알랭 드 보통이 여행 잘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여행의 기술>까지. <괜찮아, 여긴 쿠바야>는 그 와중에 섞여 들어온 '듣보잡' 여행기였다. 도대체 듣도 보도 못한 이 여행기를 어쩌자고 골라 넣은 건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책 주문을 하기 한 달 쯤 전, 선배네 가족이 쿠바를 다녀오는 길에 들린 적이 있었다. 아실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 쿠바를 가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캐나다에서 갈아타는 방법과 유럽에서 갈아타는 방법. 선배네가 여행을 계획한 2월은 나름 남미 관광 성수기여서 캐나다발 쿠바행 비행기 가격은 말도 안 되게 비쌌다고 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먼 나라를, 더 멀게 둘러서, 한국에서 11시간을 날아 프랑크푸르트에 온 다음 다시 10여 시간을 날아 쿠바로 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외국 여행을 하고 싶으면 프랑크푸르트에 내려 유럽 여행을 하면 될 것이고, 라티노 스피릿을 느끼고 싶다면 스페인으로 내려가 오리지날을 느끼면 될 테고, 야자수 아래에서 축 늘어져 쉬고 싶다면 유럽까지 올 것도 없이 동남아로 날아가면 될 것을, 무슨 어드벤처를 맛보겠다고 원숭이인지 사람인지도 분간이 안 되는 아이까지 데리고 스무시간 비행을 하는 걸까. 과연 쿠바의 매력은 무엇일까, 궁금했던 나머지 책 가격은 보지도 않았나 보다. (1만 4천원이라니... 언뜻 봐도 "책 표지 참 고급스럽네" 싶었던 <만 가지 행동>보다도 비싸다 @.@) 현지 담배 한개비씩을 손가락에 낀 현지 아저씨 아줌마가 낡은 창가에 매달려 환히 웃는 표지만 보면, 그리고 그 아래 적혀 있는 커플 저자의 이름을 보면, 그저 팔자 좋은 젊은 남녀가 쿠바까지 날아가 알콩달콩, 가끔은 모험, 또 가끔은 갈등, 그러다가 또 가끔은 현지인과의 감동의 접촉 정도의 '보통 여행기'를 기대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진짜 여행기로 들어가기도 전, 두 페이지를 잔잔한 글씨로 빼곡히 채운 <여는 글>을 읽는 순간, 보통 여행기에 대한 기대는 깨어지고 만다. "그럼에도 쿠바는 분명히 우리와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사람이란 존재를 오로지 경쟁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해 이제는 교육이란 말 뒤에도 '인적 자원'이란 말이 자동으로 따라붙는 시대에 사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아직도 인간애니 휴머니즘이니 하는 '푸른 유니콘'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 당연한 듯 잊고 살던 우리에게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해준 나라 쿠바, 그것이 오늘도 우리가 쿠바를 꿈꾸는 이유다." 여행 길에 앞서 '인간의 존재'를 말하는 저자는 흔히 말하는 '활동가 커플'이다. (사실 여행을 같이한 것이고 여행기는 한수진 씨 혼자 쓴 듯 하다.) 아름다운 카리브 해변과 룸바의 리듬을 간단히 제친 이들의 주된 루트는 쿠바 혁명과 혁명의 두 영웅,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자취를 따라간다. 그 길에서 만난 쿠바의 오늘과 어제를 쉽고도 상세하게 설명하는 일은, 저자 스스로가 그 길을 사모하는 자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역사를 통해 배우고 진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 거다. 카누 하나에 몸을 싣고 바다를 건너와 백인들의 총칼에 맞서 싸웠던 아뚜에이, 아르헨티나에서의 안락한 삶을 팽개치고 혁명의 꿈을 위해 목숨을 바친 체게바라, 그리고 아프리카의 독립을 위해 대서양을 넘었던 바라꼬아의 젊은이들.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어쩌면 그들은 같은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너의 자유를 위해 싸울 용기와 연대의 정신으로 가득한 세상." (p236)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는 교육과 의료가 완전 무상이고 생활경제는 배급제를 기초로 돌아간다. 특히 의대 교육은 무상임에도 수준이 높아 남미 전 대륙에서 학생이 몰리는 것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돈이 없어 의대를 가지 못한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 쿠바로 넘어 온다고 한다. 미국의 무역 제재로 석유 수입이 어려웠던 쿠바가 자국의 의료진과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맞교환하고 있다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택의 소유. 쿠바에선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개인의 주택 매매가 금지돼 있다고 한다. "쿠바에서는 주택 매매가 금지되어 있는 대신 집을 서로 맞바꿀 수 있다. 집에 대한 사진과 자료를 연락처와 함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붙여 놓으면 직접 와서 보고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른다." (p335) 사적 소유를 기본으로 한 자본주의에, 그리고 그에 대한 찬양 일색의 교육에 절어 있던 나로써는 이처럼 실험적인 사회 구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물론, 누구도 돈을 '많이' 벌 수는 없는 경제 구조 탓에 역으로 자본주의를 꿈꾸는 쿠바인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백인 관광객들이 물가 덕으로 흥청망청 쓰고 가는 돈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부풀려 놓은 듯 했다. 저자 커플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애원하던 할아버지는 기어코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과 함께 초청장을 부탁하는 편지와 시력 검사증"을 보내왔다. "어쩌면 초청장은 할아버지의 남은 삶에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그 이후에 닥칠 일들은 그에 비하면 하찮은 걱정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단어의 또 다른 이름이 '환상'이 될 수도 있다. 이 구질구질한 삶의 저 너머 어딘가에는 온통 장밋빛 낙원이 펼쳐져 있을 거라는 환상, 그래서 가기만 하면 나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는 환상 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희망의 파랑새는 어쩌면 할아버지의 집 어딘가에서 그를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 (p290) 책을 읽고 "쿠바까지 가고 싶어 지면 어쩌지?"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이 '희망적인 사회'는 그저 환상 속에 간직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밋빛 낙원'에 대한 그림만 머리에 넣고 선배가 사다준 '아바나 클럽'으로 모히또 만들어 먹을 궁리나 해야지. 허밍웨이를 알콜 중독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이 마성의 칵테일에 빠져버린 선배는, 부재료인 애플 민트를 직접 재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서 밥도 안 해먹는 냥반을 '민트 재배자'의 길로 인도한 모히또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