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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신학공부를 한 크리스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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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크리스천" 이 책은 공상 과학 소설이다. 다른 공상 과학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풍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적인 부분을 떠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무엇을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냥 단지 살아 숨쉰다는 것으로 생명이라 칭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생명이란 움직이고 숨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감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지 마을의 주민들이 몰살 당하고, 그 중에 한 여성이 살아 남아 문명 세계로 나오게 된다. 그 문명 세계는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쾌락과 인간들이 만든 기술만이 전부이다. 이 여성의 등장으로 소위 문명 세계라고 자부하던 세상은 혼돈으로 빠지게 된다. 이 여성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 된 의문을 해소하려는 역사교수,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지키려 여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과학자와 정치인. 그리고 이 여성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날줄, 씨줄로 엮여 진행되면서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생명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는,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소설 나름의 전제를 깔고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되짚어 보게 하는 소설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는 생명의 정의를 어디까지 확장해야할까? 이 책은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 기독교라는 매체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엮어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조금씩 생명이 과학으로 대체되어 가면서 인간의 신체도 조금씩 기계나 인공장치로 바뀌고 있다. 이 책에서는 두뇌마저도 인공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신체는 태어난 그대로지만, 두뇌가 인공이라면 이 존재는 생명이라 해야할까? 인공의 두뇌가 정말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인간을 이끌 수 있을까?
한 편의 공상 과학 소설이지만, 여느 철학책보다도 더욱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미래의 사전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정의될까? 인간보다도 더욱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인조인간이 나올지도 모르는 미래는 암울할까? 희망적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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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 교회는 대형교회는 더욱 대형화 되고 작은 교회들은 사라지는 가운데 전체 기독교 인구는 더 이상 늘지 못하고 오히려 기독교 인구 자체가 줄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래 기독교가 사라진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늘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을만하다. 교회가 더욱 기업화 되고 신앙은 개인화 되어가는 오늘이 계속 이어진다면 정말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복음화 되었고 가장 빨리 고도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에서도 복음이 사라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스트 크리스천>은 마치 자신이 마지막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분의 음성처럼 잠잠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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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들어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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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아 드디어 오늘 다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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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사람이 자기 속에 절대자를 품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 일인가 하고 무심코 생각에 잠길때가 더러 있다.이것이 역사의 기적을 일으킨다고 그 누가 말해도 나는 올곧이 수용하지 싶다.이는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역사를 말하는게다.예컨대 인생의 길에 부조리한 모습도 많이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목격하게 되는 세상이다 보니 더더욱 절대적인 그 무엇에 이끌리는지도 모르겠다.늘상 하루하루의 수고함으로 가야할 길을 기쁘게 걸어가고자 한다.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나만의 지혜이다.내가 아는 한 최선의 것을 실행하고 또한 언제나 그러한 상태를 지속 시키려고 부단히 노력중에 있기도 하다.하여 나는 계속 배우면서 갖추고 다듬어 가는 중이다.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마지막 믿음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으로 읽어내려 간 '라스트 크리스천'이다.제목만 보고 섣불리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혹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거니 하는 선입견은 내려놓기를 바란다.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있는 철학적,신학적 문제를 공상과학을 배경으로 탐구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실상 읽으면서 과거,현재,미래의 나를 대입시켜 보고 싶은 충동이 일면서 미래의 인간들이 인공뇌로 대체될 때에 인간 고유의 영역인 모든 인지적 능력이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가에 대한 놀라운 질의를 던져준다.또한 그것은 신을 알 수도 없으며 존재 또한 느끼지 못하고 신과의 관계 역시나 상실하게 된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본질적인 그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인게다.실상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이성과 양심 그리고 불멸의 영혼이 있다.내용상 과학과 접목되어 영원한 생명이 가능해지는 미래가 온다면,과연 인간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이냐고 물었듯이 그것은 인과의 법칙을 따를 뿐이라고 답할 수 있지 싶다.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존재키 마련이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따르기 마련인게다.이와 같이 인과의 원칙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우주를 볼때 우주는 어떤 큰 결과라고 볼 수 밖엔 없는게다.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볼때 큰 운동하는 움직임의 시작은 그분이라고 주장했다.앞서 말한 인과의 법칙으로 그 분의 존재를 말해준게다.하지만 나는 존재유무를 떠나 저자가 제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기계적인 것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인간고유의 영역이자 신과 맞닿을 수 있는 영역임을 제차 공학과 의학,신학의 복합요소로 빌어 풀어놓고 있다.역으로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자 한다면 우주는 본래부터 영원까지 그냥 그대로 있다고 하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을 주장할 수 밖에 없을게다.그렇다면 애비게일이 전하는 완전한 메시지는 모든 만물에 자연법칙이 있듯이 우리 인간 생활에서도 도덕적 법칙이 주어졌듯이 모든 물질은 그 법칙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이는 순수 주관적인 견해다.설령 내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인공뇌를 이식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거나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끊어진다 치더라도 이는 내 자신의 몫이자 의무인게다.오히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니콜스의 질의에서 나는 내가 묻고자 했던 의구심을 풀 수 있었던 듯 하다.나 역시 크리스찬이긴 하나 열렬히 맹신하지는 않으나 내 방식대로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그 목표를 가능케 하듯이 얕은 신앙심이지만 깨닫고 실천하는 나름 견고하게 다져 나가려 하고 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기에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먼저 무(無)로 만드신다.시대정신은 역사의 필요한 사람들을 그 때에 맞게 그 중심지로 이끌어 들이고 그곳을 정착하여 차지하게 한다.그러나 역으로 합당치 않을 때는 그러한 사람들을 몰아내어 그 중심지를 빼앗기게도 한다.완전을 추구하는 것이 성경에서 지향하는 것이다.그것은 전인교육이라는 말과 통한다.하나님의 중심은 모든 곳이고 하나님의 경계선은 어디에도 없다.환상과 편견을 깨고 현실과 역사로 돌아오는 종교의 선기능을 우선시 하는 풍토로 부활 했으면 하는 일말의 바람이 일기도 했다.혹여 믿음이 제대로 성숙되지 않아 설익은 자들이 너무 판치는 말세의 세상을 니콜스나 콜드웰이 실리콘 뇌의 끝없는 발전에 관한 논쟁을 빗대어 보노라면 별반 다르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싶다.마치 인간 과학 발전의 또 다른 한계와 문제점을 제대로 꿰차고 이를 파헤친 저자가 위엄있어 보이기까지 하다.내용상은 다소 진부함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단,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거울을 통해 비춰지듯이 볼록,오목,평면으로 등장인물의 다각적인 사고지향을 끄집어 내게 한 부분은 꽤나 인상적이지 않았나 싶다. 종교는 자기성찰을 통해 허망한 인생의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어느 종교든 대중과의 적절한 합의가 있어야 지속될 수 있는 법이다.절대자의 인간을 향한 이상과 목표 달성에 불굴의 정신과 기상으로 신념에 찬 믿음의 이긴자 처럼 기적같이 승리하는 애비처럼 나 역시 그리스도와 일체된 알곡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