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처음 표지를 봤을때는 섬뜩한 느낌이었다. 더구나 제목에 악이란 단어도 보이니 더했다. 읽고 나서 보니 그건 연민의 눈빛이다. 어두움 속에서 살포시 밝은 쪽을 바라보는 듯함이다. 표지 뒷면이다. 둘이서 걷는 남녀. 풍경도 좋고 너무나 다정한 모습이거늘... 기막히게 슬프다. <이책은> 자음과모음 네이버카페의 이벤트 당첨 도서다. 후미노리 라는 사행시 짓기에 도전했는데, 이 책이 읽고파서 도전한게 아니었다. 단지 사행시를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응모한건데 생각지 않은 당첨으로 결과가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책을 받게 되면 늘 기쁘나 이 책은 왠지 일본잔혹스릴러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름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건 아주 행복한 일이다. 좋아하는 일은 몰입도가 높고 힘들어도 덜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추리소설이나 심리스릴서는 여름에 아주 제격이지 싶다. 결코 원해서 내게로 온 책은 아니었으나 나름 의미가 컸다. 처음 읽기 시작해 초반부에는 '이거 정신병자아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스멀스멀 소름이 끼쳤다. 절대 '악'에 대한 정의가 단순히 무섭다를 넘어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암시부터가 불길하고... '邪'①간사하다(奸邪--) ②사악하다(邪惡--) ③기울다, 비스듬하다 ④바르지 아니하다...(네이버 발췌). 여기에서의 의미는 사악하다로 해석하는게 맞겠다. 구키가의 이상한 관습은 '사'로 키운다는 것. 아버지 구키 회장은 5명의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에 계획 출산을 한다. 이복 형의 말에 따르면 난생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가 후미히로의 모친이란다. 우연히 보게 된 지하실의 지하실. 그 깊은 곳에 놓여 있던 침대와 그 위의 머리칼 등등. 어린 마음에 이해가 안갔으나 결정적으로 그 장소를 알았기에 사로서의 첫발을 시행하는 장소가 된다. 술잔을 늘 기울이는 아버지. 부재중 기간도 긴 여행, 출장이 다반사요 밝은 곳이 아닌 어두운 곳에서 보이는 아버지는 따사로운 상대가 아니었다. 자애롭지가 않았다. 어머니도 없고 가정부 들만이 있는 집에 가오리 라는 양녀가 입양된다. 고아출신인 그녀와 외롭던 차에 둘은 친남매이자 친구 나아가 연인으로까지 발전하는건 당연지사. 오로지 둘만이 존재하는 시간들속에서 가오리는 온 세상이었다. 난생 처음 사람에게 '정'을 준 것이고 받은 것이다. 가오리는 고아원에서의 눈치로 자신을 부각시키지 않아야함이 몸소 체득으로 각인된 터라 둘은 무난하기만 하다. 풋풋함 그 마음에 이성으로서의 사랑만이 아닌 가오리는 모성도 되고 누나도 된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너무나 축복이다. 그렇게 따스한 봄날이자 온기다. 그녀와의 미래를 꿈꾼다는 자체가 행복이다. 이런 아들에게 아버지라는 사람의 단언은 천국에서 지옥의 가장 깊은 곳으로 추락시킨다. 14세가 되면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것. 실상 지옥은 그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11살때 '사'로 키우려 낳았다는 말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옥을 보여주기 위해 가오리를 입양한 것. 즉 14세가 되면 아들의 정신을 파괴시키기 위해 아들이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가오리를 철저히 망가뜨려 아들의 사를 굳힌다는 전략. 14세를 앞두고 몇 달 전 밤 문득 아버지방에 불빛을 보고서 안을 들여다보니, 가오리가 알몸으로 술잔을 든 아버지앞에서 떨고 있다. 자신의 전부인 가오리를 아버지의 눈길이 음험하게 바라본다는 자체만으로도 어린 소년은 피가 거꾸로 솟는 상황. 그런데 울먹이는 가오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섹스는 아니고 어루만지기까지 했다는...겁난다는...어찌할 것인가.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 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니. 그건 아버지라는 단어만 사용하는 타인인걸.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선 행동해야 한다. 소년은 이미 자신안에 '사'가 형성되었다고 믿으며 실행을 위한 각본을 차곡차곡 짠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보아두었던 장소에서 아버지를 가둔다는 계획. 독버섯을 담아둔 상자를 던져주고, 문앞을 막을 기구가 맞춘 듯이 그 자리에 있고...자신은 아버지를 죽인게 아니고 그저 문을 막는 행위만 한다. 운이 좋으면 구출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가능성 거의 없는 일. 머지않아 그날은 왔고 지하실의 깊은 곳에 아버지가 있음을 아는데...등진 모습으로 아버지는 아들의 살기를 느끼지만 반항도 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희망한다. 이미 자신은 살아있으되 죽어있었던 삶. 대신 철저하게 아들에게 전하는 교훈인데 어린 소년의 입장에선 단지 저주로만 들릴 뿐. 처음이 어렵다. 처음만 잘 넘기면 오히려 쉬워진다. 그러나 아무리 거부해도 네 몸속엔 사가 흐르고 이미 숨진 나의 숨결이 나의 정신이 네 안에서 끊임없이 살아숨쉴 것이다. 나는 너로 인해 죽지 않는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살을 위한 물약을 늘 가지고 있었다. 내가 희망하던걸 너로 인해 이루게 되었다. 등등. 아비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게 정상인가. 그렇다. 아버지는 이미 정신병자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과거가 얼마나 비참한지...재벌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은 인간성 파괴는 그를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변화시켰고, 사람으로써 차마 해서는 안될 일들을 했다는 죄책감은 평생을 그에게서 인간내음은 없는 인간으로 살게 했다. 5명의 자식에게도 정이 없었으되 둘째 아들을 '사'로 성장발육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진짜 '사'인걸 알고는 잠시 주춤했는데... 아버지는 죽어가고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오리와의 몸사랑이 주는 충만함까지도 이미 알아버린 소년에게 아무일이 없다면 그건 완전한 '사'. 그러나 소년은 사람이었다. 인간성이 파괴되기전의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앓아눕기에 이른다. 그건 아버지의 장기간 여행이나 출장이 아닌 주검이 발견되면서이다. 이복 형제들이 다녀가고...소년은 아프기 시작하는데 바들와들 떨고 헛소리하고 못먹고 심지어는 마르기에 이른다. 그 형상을 보니 영낙없는 아버지의 얼굴이다. 아버지의 저주가 맞아떨어진거 같다. 아버지는 죽었으되 자신안에 스며들었나보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가오리와 다시 접하려 하나 가오리의 몸이 뻣뻣하니 굳는다. 왜그런고 연유를 알게 되니 자신이 가오리에게 다가갈수록 가오리편에서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그가 아버지로 보이니 이성으론 누르나 본능적으로 아버지와의 혐오스럽던 과거가 떠올라서다. 자신의 모든것인 가오리를 지키기 위해 행한 행동이 가오리와의 이별이 될 줄이야. 살아야 할까? 중략 유년시절의 정서가 전 생에 걸쳐서 미치는 파급효과는 대단하다. 아버지가 있으되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한 후미히로의 마음밭에 촉촉히 스며든 인간적인 정, 그건 가오리였다. 가오리 역시 따스한 사랑은 많이 받지 못했겠으나 후미히로에 비한다면...재벌가의 외로운 소년으로 자라난 그에게 세상은 단절이요 매일매일이 그날이기만 한 삶. 마음하나 둘데없고 마음하나 줄데 없는 상황에서의 숨통트임이자 이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태양이었을 법. 그런 가오리를 위해서 그런 가오리곁에 있기 위해서 실행한 사실을 가오리가 모른다해도 자신안에 이미 감옥은 생겼다. 천형처럼 고뇌와 번민에 찬 그는 철저한 아버지얼굴로 변했으니...그 얼굴을 바꾸고 새 삶을 영위하려 부단히 노력하건만 하늘의 태양은 빛을 잃었으니...태양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태양이 세상사로부터 해악을 받을까봐 보디가드처럼 숨어서 지켜볼 밖에. 참으로 끔찍하다. 인간성이 말살된 인간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악의 화신일뿐. 인간의 감정인 희노애락을 느끼며 타인의 기쁨이나 슬픔 나아가 고통이나 괴로움을 가감의 정도따라 공명하게 된다. 그 공명의 정도가 없는 인간이 바로 악의 화신이다.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해탈한 경지는 오히려 성인군자의 반열이지 싶다. 악의 감정 '사'만 남아서 남을 단순히 괴롭히는 경지가 아닌 정신을 파탄내는 지경. 그걸 즐긴다. 아무 이유없이. 왜? '사'니까. 우울해서란다. 단지 우울해서 큰 일을 벌리고 그 파장으로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괴로워하는걸 본다. 제 정신이 아닌거다. 이미 충분히 쌓아놓은 부를 이용해 걸려들기만 기다리고, 만들고, 그렇게 인간을 교란시키려 말살시키려 한다. '사'를 막기 위한 새로운 인간으로 겉모습을 바꾼 후미히로의 행동은 자신의 둘째형에게 가는데... 초반부에 섬뜩함과 끔찍한 정신병자(아버지)의 말도 안되는 생각과 행동거지를 보면서 이 책을 읽어야해, 말어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책이면 다 책이 아니고 잔혹스릴러는 모방 범죄를 야기한다는 사실. 골든슬럼버를 읽던 어느날 그 끔찍하다 느낀 상황들에 한동안 놀라서...이 책에 비하면 그 책은 조금은 더 순하다고 해얄까. 그 책에서도 얼굴을 타인의 얼굴로 바꾸는데 여기서도 행방불명인 사람의 얼굴로 탈바꿈한다. 책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실제로 현실서 이루어지고 있다. 얼굴이 바뀌는데 사람본성이 혼란을 야기시키는건 당연한 일. 형사가 따라붙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그에게 아주 짧은 날의 온기였지만 그게 너무도 따스했기에 새싹이 피어나려 힘을 쓴다. '사'로 살지 않고 '사'같은 행동은 어쩔 수 없이 두 번을 하지만 한번은 미성년자라 통과, 또 한번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은...그에게 새날이 올 것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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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邪) 란 이 세계를 불행하게 하는 존재야. 어느 누구도 이 세계에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최소한 선이 반짝이는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한 존재 - p12
<악과 가면의 룰> 은 후미노리의 네번째 작품으로 스케일이 한층 더 커진 인간 내면의 세계와 전쟁과 역사, 그리고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했다는 점에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일본이 다른 나라와 다른 것은 종교에 대한 관대함이다.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또는 영화에서 영적인 존재에 대한 언급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본이 신이라는 존재와 사후의 세계에 대해 남다른 인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이 책의 주인공은 그런 사(邪)의 존재로 태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그리고 그 남자가 살아가는 단 한가지 이유인 단 하나의 가치, 사오리라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기 하다.
똑같이 사의 존재로 태어난 다섯형제들의 얼굴을 본 적도 없이 구키그룹의 막내로 자란 후미히로에게 아버지는 열 한살이 되자 사의 존재를 말해준다.그리고 열 네살이 되면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것과 다른 형제들이 어떻게 사(邪)의 역할을 하는지 말해주었던 아버지가 한 소녀를 양녀로 데려왔다. 그 소녀의 이름은 가오리, 가오리는 그에게 웃어주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커간다. 그러나 열 네살이 되자 아버지가 가오리를 추행하는 것을 보게 된 후미히로는 아버지를 죽이기로 한다. 아버지를 죽이기로 한 날 아버지는 너는 나를 죽이는 것으로 나를 너의 내면에 맞아들이게 되지. 타인의 목숨을 해친다는 건 바로 그런 거야. 그리고 그것이, 살인의,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점이지.타인을 맞아들이는 것. 생물학적인 뒤틀림과 맞바꾸어서. 나는 네 안에서 살아있어 . 영원히. 더이상 너에게 행복은 없어.
그날 이후로 자신의 얼굴이 아버지와 똑같은 얼굴로 바뀌어져 가고 가오리 역시 후미히로에게서 아버지의 추했던 얼굴을 느끼게 되자 둘 사이에는 변화가 오게 된다. 후미히로는 가오리를 위해서 가오리를 떠나보내고 자신 안에 깃들인 사의 존재를 계속 부정한다.오로지 가오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로서 존재할 뿐이었던 후미히로, 두번의 자살미수와 또 한번의 자살을 시도하고 있을 때 가오리가 남자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후미히로는 이후 자신의 삶의 이유를 가오리로 바꾸어 버린다. 존재하는 최고의 가치로서의 존재가 된 가오리, 그리고 자신의 얼굴과 모든 것을 바꾸어 신타니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다.
그러나 또 다른 사의 존재인 둘째 형 구키 미키히코의 계속되는 추격과 바꾼 얼굴의 주인공 신타니가 8년전 살인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때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의 집요함에 이어 또다른 사의 집단으로 볼 수 있는 테러집단인 JL의 이토와의 만남 , 계속되는 살인사건과 신타니의 끝없는 가오리를 향한 사랑은 처절하기까지 하지만... 가오리를 사랑하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후미히로의 고뇌와 함께 가오리가 이 세상의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는 이유로 가오리를 손상시키는 것이 목적인 둘째 형 구키 미키히코.구키 미키히코로부터 가오리를 구하기 위해서 후미히로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독특한 발상으로 보여지지만 이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런 불가사의함에 의하여 사란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세상에 알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사의 존재이다. 걸프전과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것은 나라를 떠나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에 바탕을 두며 모든 전쟁에는 반드시 이권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인(因)이라는 것의 작용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에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즉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그런 수많은 불가사의한 인의 선들이 줄기줄기 뻗어서 반복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악과 가면의 룰>이 보여주는 것은 점점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에 대한 고찰과 추리하는 재미와 서스펜스 가득한 의미심장한 소설이었다. 사의 존재가 정말 존재할까? 마지막에 주인공이 더이상 자살하는 것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것을 볼 때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래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오타 148P 두번째 줄 산원 ☞ 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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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함은 인간의 본성일까? 순자(筍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며,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가끔씩 정말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밝음은 안보이고 도처에 어둠만 스멀스멀 마음을 갉아먹는다. 권력과 집단에서 정의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보노라면 인간 본성의 원천이 무엇인지 정말 알 수가 없어진다. 칸트는 "자연의 역사는 신의 작품이기 때문에 선에서 시작되고, 자유의 역사는 인간의 작품이기 때문에 악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이 문장의 의미는 사악함이란 우리의 본성에 속해 있는 '자유의지의 성질'에서 비롯된다는 것인데, 인간에게는 경험에 우선하여 선천적으로 '악(惡)으로 향하는 자연적 경향' 즉, 근본악(根本惡)이 있기에 도덕 법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성적인 욕망에 굴복한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메피스토의 흔적은 종교적 삶으로도 영원히 지울 수 있는게 아닌 모양이다. 이타의 삶을 보여준 성직자에 비하여 신과 정의, 진리의 이름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집단간 다툼으로 이끄는 '무늬만 성직자'가 더 많아보인다고 말하면 어폐가 있는걸까? 고대부터 현재까지 악의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은, 어쩌면 선과 악은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풀지 못할 화두일지도 모르겠다. 잘 풀어내면 괴테의 '파우스트'같은 명작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난감한 자문이다... 사(邪)를 지향하는 가문이 있다. 이 가문의 관습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불행하게 할 존재를 낳고 키우는 거다. "어느 누구도 이 세계에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최소한 선(善)이 반짝이는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한 존재(12쪽)", 다양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의 존재를 키우는 것이 목표다. 고대의 '데블', 초기 기독교의 '사탄', 중세의 '루시퍼', 근대의 '메피스토펠레스'에 못지않는 사악함의 종자를 오늘에 전승하고자 하는 집안이다. <악과 가면의 룰>은 이런 특이한 가계(家系)에서 '사'로 키워질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형사의 메모로 시작되는 이 책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공간 속에서 나약한 듯한 한 인간(구키 후미히로)의 뒤틀린 삶에서 '근본 악'의 극복을 지향하는 인간의 이상을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한 줄기 빛에 이르기 까지 어둡고 축축한 마음의 불편을 감내하고 읽어가야한다. 정상적인 도덕성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미친 정신병자'같이 비속(卑俗)한 '일본스러움'이 도처에서 느껴진다. 인기있었던 일본 만화 '몬스터'에 투영되어지는,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선천적인 악 같은 그런 느낌. 인간이 얼마만큼 악랄해 질 수 있는지, 또한 얼마만큼 순수로 회귀할 수 있는지 확인해 가는 과정이 참담하다. 선과 악, 정(正)과 사(邪), 행복과 불행의 의미가 마음을 어지럽히매 당장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지만 홀린 듯이 눈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내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 카라마조프의 현신일까? 이 세계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인 '사(邪)'의 계보를 잇기 위해 계획적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같이 자란 여주인공(가오리, 양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지하실(이중적 암시)에 가두어 죽게한다. 몬스터에서 그랬던가? "인간은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될수 있다, 악마도..."라고. 절대 악(惡)의 상징인 아버지를 죽이는 존속살인에서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 겹쳐진다. 지하실에 갖힌 아버지가 던지는 말이 길게 여운을 준다. "너는 나를 죽이는 것으로 나를 너의 내면에 맞아들이게 되지. 타인의 목숨을 해친다는 건 바로 그런 거야. 그리고 그것이, 살인의,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점이지.타인을 맞아들이는 것. 생물학적인 뒤틀림과 맞바꾸어서... 너는 그 뒤틀림이 의식화된 죄악의 감정에 고통을 받을 게야. 살.인.자.로서의 자신을 견뎌낼 수 없게 돼. 인간을 죽인 인간은 앞으로모든 따스한 것, 아름다운 것을 순수한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뭔가 행복한 일이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하지만 나는 그 생명을 해쳤다, 하는 사실에 괴로워하게 돼(87쪽)". "나는 네 안에서 살아있어. 영원히. 더이상 너에게 행복은 없어(88쪽)."... 가오리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만 가오리는 주인공의 야위어진 얼굴에서 악의 상징 '아버지'가 겹쳐져 경직되고 결국 그들은 그렇게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얼굴을 성형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신함으로써 자신의 암울한 존재를 지워버리고 타인(신타니 고이치)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첫사랑 가오리에 대한 그리움으로 탐정을 고용하여 찾게되고 그녀를 둘러싼 또다른 악의 기운을 알아채고 그녀를 보호하려 움직이게 된다. 여기에 변신한 인물의 과거를 좇는 형사의 등장과 '사(邪)'의 가족이 개입된 테러와 기타 사건들이 중반 이후를 이끌어나간다. 전반적으로 모멸감이 온몸을 감돌 때, '사(邪)'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으나 '인간에게 있는 의지'를 선으로 각성하고자하는 작가의 이중적 장치가 나름 이 책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가오리를 만나 성형되어 타인이 된 자신이 아닌 내면의 자신이 행복하게 결혼하여 잘살고 있으며, 당신과의 기억이 가득 찬 자신의 의식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있고 싶다고 전하면서 "당신은 행복해져야 합니다."라고 타인처럼 말한다. 가오리가 답하길, "나도 건강하게 잘 지낸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내리기 직전 "......당.신., ...... 정.말. 행복해요?" 말한다. 우와~ 압권이다. 내내 어둡던 동굴에서 이렇게 빛의 탈출구를 찾아낸다. 현대에 이르러 악을 악으로서 인정하여 인간세계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고 한다. 악이란 것이 초월적 세계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자성에서 파생된 결과일 것이다. 보통은 이런 선악의 문제에 부딪히면 마음의 흐름을 강조하는 동양적 사유가 제격이다. 주자학이나 양명학에 기대면 의외로 파악이 빨라진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칸트였다. 이 소설의 작가가 악과 가면속에서 찾아내고자하는 룰이 바로 선의지를 지향하는 '자율적인 실천의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적인 능력을 중시한 칸트의 사상과 연결선에 놓여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존속살인과 여성을 가벼이 보는 일본 특유의 색깔을 약간은 불편해 하면서도 무덤덤하게 읽어내린 나의 무딘 감성을 애도하면서, 인간의 심성이 과연 악한 것인지 그 근원을 생각해보는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지만 정말 빨려들어간 책읽기였다. 아참... 자모 책으로선 보기 드물게(?)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의미있어 보이고... 뒷표지의 일러스트도 마음에 드는데, 하얀 바탕으로 신문사 추천평을 실어 그림을 가려버린게 조금 아쉽다. 그냥 가로로 길게 처리하고 일러스트를 살렸더라면 좋았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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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는 밝고 경쾌한 내용보다 어둡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더 자주 읽는 듯 하다. 묘하게도 밝고 경쾌한 내용의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과 내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어두움이 대비가 되면서 주인공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자신을 혐오하게 되지만, 어둡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읽으면 이 지독한 상황들이 실제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래도 내 삶이 이보다는 낫지 않은가 정도의 생각을 하며, 일종의 안도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 읽은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악과 가면의 룰(원제 悪と仮面のルール)> 역시, 표지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느낌부터가 어둡고 깊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일종의 심연(Abyss)을 생각하게 한다.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노마문예상, 아쿠타가와상, 오에 겐자부로상 등 일본 문단에서 멋지게 활약하고 있는 젊은 작가로, <흙 속의 아이>,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쓰리> 등의 작품을 썼다. 한국 문단도 슬슬 그런 경향이 보이고 있지만, 일본 문단은 이미 한참 전부터 순문학과 대중문학(혹은 장르문학)의 경계가 사라져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 작가가 순문학적인 소설과 장르문학적인 소설을 모두 쓰기도 하고, 한 작품 안에 순문학적 특성과 장르문학적 특성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보기도 한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얼마 전 출간된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원제 月と蟹)가 후자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악과 가면의 룰>역시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요소들이 얽혀 있고, 이 책에서 꽤 큰 전환점이 되었던 주인공의 친부 살해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혹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비롯된 모티브로 볼 수 있지만, 군수산업이나 컬트 교단 등의 등장과 정체불명의 테러 집단, 주인공이 어떤 사건의 범인이라 의심하며 집요하게 쫓는 형사 등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꽤 많이 도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이것은 순문학이다, 이것은 장르문학이다 하고 칼로 자르듯이 구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두 세계를 모아 작품 안에 녹여낸 작가의 역량이 훌륭하게 생각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군수산업으로 재벌이 된 가문에서 태어난 주인공 '구키 후미히로'는 여러 가지로 일반 가정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그가 11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인 '사(邪)'의 계보를 잇기 위해 계획적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 그에게 14살이 되면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하고, 그 도구로 아동보호시설의 여자아이 한 명을 선택해 양녀로 들이고 '구키 가오리'라는 이름을 준다. 아마 그것은 '사(邪)'가 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13살이 된 후미히로는 점점 가오리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생각하게 되고, 14살이 되기 몇 달 전, 아버지가 가오리를 겁탈하려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신이 아버지가 미리 예비해 둔 지옥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절망한다. 이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사랑하는 가오리를 지키기 위해 그 지독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 아버지를 죽인다. 그렇게 아버지를 죽인 후, 스스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후미히로는 몇 년 후,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기 위해 타인의 얼굴로 성형하고 그의 신분을 얻어 인생의 방관자처럼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면서 사설탐정을 고용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가오리의 조사를 의뢰한다. 한편 그가 얼굴과 신분을 얻어 변신한 '신타니 고이치'라는 사람이 어떤 교통사고 사망사건에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형사가 있고, 설상가상으로 구키 가의 방계 자손 중 역시 '사(邪)'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종의 테러집단을 만들면서 후미히로에게도 합류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더 이상 그런 음습하고 어두운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얼굴과 신분까지 바꿨는데, 삶은 전혀 평온해지지 못하고, 오히려 앞으로는 더욱 가혹해져 갈 뿐이다. 한편 탐정의 조사 결과 가오리에게 마치 과거의 반복인 듯 거대한 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미히로는 그녀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가오리는 후미히코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는 가오리의 주변에는, 사기꾼 같은 남자들만 득실거리고 있다. 구키 가의 양녀였기 때문에 상당한 금액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그것을 전혀 쓰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어디서 새어 나왔는지도 모르는 소문 때문이다. 이런 사기꾼 같은 자들은 마약 같은 것을 사용해서 중독자가 되게 하고 그 뒤로 계속해서 돈을 뜯어낸다는 것을 알고, 후미히코는 가오리에게 자꾸 접근하려고 하는 사기꾼 야지마를, 각성제에 청산가리를 섞어서 살해한다. 게다가,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의 배후에 있는, 구키 가의 방계 자손들의 테러조직 JL에서는 활동자금을 변통하기 위해 계속 그의 돈을 요구한다. 당신들 대체 뭐냐는 후미히로의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다양한 가치를 뒤흔드는 거야. 권위나 상하 관계, 공통 인식 따위를. 사회구조 같은 건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혁명이니 뭐니, 촌스럽지. 우리의 목표는 인간의 집단의식이야. 그 속에 차례차례 경박한 농담을 던져줄 거야."(p.210 중 발췌) 한편 탐정은 가오리를 조사하던 사람의 정체를 밝혀낸다. 군수 산업의 거물이며 구키 쇼조의 둘째 아들인 구키 미키히코, 즉 후미히로의 둘째 형이었다. 구키 가 주변에 맴도는 이 어두운 분위기...직계, 방계, 심지어는 혈연이 섞여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가계에 내려져오는 '사(邪)', 곧 세계에 어둠과 혼란, 파괴를 몰고 올 운명은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구키 미키히코가 보낸 차를 타고 간 빌딩에서, 그는 둘째 형을 만나고 구키 가의 배경, 사(邪)의 유래, 왜 그가 가오리의 뒷조사를 하는지 등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은 구키 가오리를 마약중독자가 되게 하여 망가뜨리고 소유하고 싶다고, 그렇지 않으려면 네 자신이 가오리를 마약중독자로 만들어서 데려오라고 미키히코는 말한다. 가오리에게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그 여자를 손상시키고 싶지? 그 여자를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고 싶지? 너는 구키 가 사람이야. 나는 알아. (중략) 너의 무의식은 최대의 악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어. 그건 네가 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야. 바로 가오리지. (중략) 모든 건 그 한 순간을 위한 것이지. 욕망과 비통과 절망이 한꺼번에 겹쳐진, 평범한 인생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그 섬광 같은 암흑의 폭발을, 너는 온몸을 던져 애타게 기다리는 거야. 그때 너는 압도적인 쾌락으로 부르르 떨겠지. 이 세계와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게 모멸한 환희와 함께."(p.247~8 중 발췌) 이 책에서 가장 압도적인 악과 어둠이 응축(凝縮)되어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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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읽어보니, 제목과 표지에서 부터 풍겨왔던 느낌보다 훨씬 많이 충격적이고 거북했던 소설이었다. 일본 소설이라는 것과 이 책에 대한 보도 자료를 본 적도 있었고, 다른 분의 리뷰를 보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읽었어도 말이다.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 사로 키우겠다는 이상한 가문의 풍습, 책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여러 일련의 사건들은 상식 밖 비정상적인 것들이라 읽는 내내 정말 불편했다. 자기 자식을 사의 계보를 이어나가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 그 자식을 자극하고,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얼굴을 타인의 얼굴로 수술하는 등등의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롯이나 구성은 탄탄했고, 끊기지 않고 잘 읽혔다. 또한 그냥 엽기적인 사건들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벗어나려 하는 주인공의 노력 과정을 통해 인(因)이라는 것으로 우리 삶은 얽혀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건 이 소설만의 독특한 매력 같았다.
이 책의 주인공 후미히로와 그의 아버지의 악한 행동들을 보는 동안 나는 어느 대학에서 실험했다던 한 심리 실험이 생각났다. 지원자들을 나누어 죄수 조와 간수 조로 나누어서 그 역할을 하게 했다. 처음에는 즐거운 분위기로 실험이 진행되었다고 하나 나중에는 점점 간수 쪽을 맡은 쪽에서 예상보다 훨씬 악랄하게 죄수들을 억압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악한 본성을 드러내어 결국 실험을 중지시켜야 했다고 한다. 정말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 실험 말이다. (막상 쓰고 보니, 적절한 예를 든 것인지 자신이 없다.) 이렇게 인간은 너무나 쉽게 환경과 상황에 휘둘린다. 억압되고 차단된 그 구키 가문에서 사로 키워진다는 특수한 상황까지 겹쳐지면 인간 본성 속에 감춰진 악이 드러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 말미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의 삶은 서로의 인으로 얽히고 얽혀있다. 그것도 생각보다 촘촘하게 말이다. 내가 한 어떤 행동이 죽어서도 세대를 뛰어넘어 계속 어떤 다른 일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니...그렇다면 악보다는 선한 인, 좋은 인연으로 남도록 컨트롤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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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라는 책으로 처음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책을 접했었다. 극적이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너무 차분하고 차분하게 그려져 있어 더 없이 음산하고 우울하게 느껴졌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모두에게 존재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인가에 대해 아마 많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악과 가면의 룰>을 통해 저자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어느 형사의 고백 비슷한 글로 이 책은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과거로 돌아간다.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구키 후미히로는 아버지 구키 쇼조로부터 무서운 말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거대 군수산업을 이끌고 있는 재벌이다. 그런 아버지가 후미히로에게 14살이 되면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후미히로를 사(邪)로 만들겠다고.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보통은 아닌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어린 후미히로는 사실 막연한 두려움만 느꼈을 뿐, 아마 정확한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말과 함께 수양딸로 데려온 한 여자 아이, 구키 가오리가 있었다. 후미히로는 자연스럽게 가오리와 함께 어울리며 생활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지옥을 맛보게 되기까지 일 년을 남겨두고 있었을 때, 아버지 앞에서 가오리가 강압에 못 이겨 옷을 벗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아버지가 보여주겠다던 지옥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끼게 된다. 후에 아버지가 가오리를 겁탈하는 것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후미히로는 자신이 ‘사’가 되는 것을 막고, 아버지가 가오리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지를 죽인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행하려는 악을 없애기 위해 결국은 스스로 악을 행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말처럼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내면으로 맞아들이게 된 후미히로는 몇 년을 지옥 속을 헤매다 유능한 성형외과 의사를 통해 얼굴을 갈아엎는 수술을 한다. 후미히로라는 존재를 없애버리고 이미 죽은 사람의 얼굴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후미히로는 신타니 고이치가 되었다.
그후에도 후미히로는 신타니 고이치라는 이름으로 가오리를 찾는다. 결국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 곁에 위험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낀 후미히로는 또 한 번 위험의 싹을 잘라버린다. 그렇게 구키 가오리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해가 되는 인물은 제거된다, 후미히로에 의해서. 사건에는 경찰도 개입이 되고 후미히로의 형도 개입되면서 점점 실체가 드러나고 커져간다. 후미히로에게 있어서 가오리는 최고의 가치였다. 그렇기에 최고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는 어떤 악을 행하는 것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비교적 빠르게 읽을 수 있는 편이었고, 사건의 전개 자체도 어렵지 않았고 막힘없었다. 그러나 후미히로가 행하는 행동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동안에도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기로부터 구하려고 했던 그의 행동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악을 없애기 위한 악을 행한다면, 과연 그 행한 악을 옳은 것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무엇이 진짜 악이고, 무엇이 나쁜 악이고, 무엇이 덜 나쁜 악인지, 또 좋은 악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후미히로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도 가슴 속에 남았다. 그의 행동이 나쁜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또 반대로 생각했을 때 그럼 힘없는 그의 처지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어야 했느냐하면 그것 또한 아님이 분명했다. 참 어려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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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괴상한 기운이 감돈다. 표지는 더욱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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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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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란 이 세계를 불행하게 하는 존재야. 어느 누구도 이 세계에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최소한 선(善)이 반짝이는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한 존재." (12) 구키 후미히로는 11살 나이에 부친에게 너는 '사'를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아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관습으로 대를 이어 내려왔으며, 부친은 후미히로가 열 네살이 되었을 때 지옥을 보여준단다. 아이란 부모의 사랑을 받아먹으면 자라는 존재, 그런데 '악한 존재'를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아이를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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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과 악(惡)은 태초부터 인간이 존재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풀어야 할 과제이자 우리 내면을 가르는 하나의 선(線)처럼 존재해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두고 하는 다툼이나, 빛이냐 그림자이냐하는 물음 모두 비슷비슷하면서도 깊이 들어가다보면 결국엔 그 어떤 정답을 찾을 수 없이 미궁속에 빠져버리기 일쑤이다. 그래서인지 선과 악은 오래전부터 소설의 수많은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다시금 그 미묘한 이름아래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한다.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악(惡)은 무엇인가?
'그 엄청난 사건이 뜻하지 않은 형태로 해결되기 시작했을때, 그 주변에서 몇 건의 부자연스러운 사체가 나왔다는 건 그다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어느 형사의 일기로 과거에 벌어졌던 한 사건이 되살아난다. 잊혀진줄로만 알았던 충격적인 사건들. 그리고 시간은 과거로 흘러간다. 열한 살, 구키 후미히로는 아버지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후미히로를 사(邪)로 만들겠다고 한다. 사(邪)는 악의 한조각이자 세계를 불행하게 하는 존재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그리고 열네 살이되면 후미히로에게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가오리라는 아버지가 양녀로 데리고온 소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아버지의 이 알듯 모를듯한 말들은 시간이 흘러 후미히로가 열네 살이 되어 현실이 되어버린다. 드디어 악(惡)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가오리에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되는 후미히로, 하지만 어느날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결국 악(惡)의 주인이 되어버린다. 이전 아버지가 했던 알듯 모를듯한 말들은 현실이 되어버리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악(惡)을 실행한 후미히로는 뜨거운 지옥의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가오리는 사라져버리고 점점 꼬여만가는 후미히로의 시간들. <악과 가면의 룰>은 악(惡)이 시작된 과거를 걷다가 모든것을 뒤바꿔버린 신타니 고이치가 된 후미히로의 현재를 다시금 거닌다. 그와 그녀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은 어떻게 이어질까.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은 2010년 만난 '쓰리'에 이어 두번째이다. 만화풍의 표지로 시선을 끌었던 전작과는 다르게 이번 작품의 표지는 조금은 무거운 포스를 풍긴다. 아니나 다를까 작품속에 담긴 소재와 작가가 전하는 메세지들도 이전 작품들과는 약간의 무게를 달리하는듯 느껴진다. 악(惡)은 무엇일까? 이 원초적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한번쯤 되짚고 넘어갈 작은 시간을 안겨주는 작품이 바로 <악과 가면의 룰>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에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작품속에 이야기가 없겠는가마는... 그의 작품속에는 독자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재미가 가득하다. 이 작품 <악과 가면의 룰>은 더욱이 '사랑'과 '악'이라는 테마, 거기에 인간과 '가면'이란 단어들을 조합시킴으로써 단순한 재미를 넘어 약간의 무게감을 갖춘 사회성과 문학성을 두루 담아낸 작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문학적 깊이감보다 스토리가 전해주는 재미가 조금은 더 큰 작품적 특성을 보여주는듯 싶다.
<악과 가면의 룰>을 읽으면서 또 다른 여러 작품들이 떠오르지만 굳이 한 작품을 꼽자면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 떠오른다.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악(惡)과 악인(惡人)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이 작품과 <악과 가면의 룰>은 많은 부분 닮아 있는듯 느껴진다. 두 작품 모두 '사건'이 아니고 '인간과 악'이 무엇인지를 묘사하고 이야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도 꽤나 유사한 부분이 아닐까싶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물음, '진정 악은 무엇인가?'하는 그 물음표를 작가는 독자들에게 건넨다.
'네가 원망해야 하는 것은 이 세계의 구조, 인간 그 자체의 불완전하고 모순된 구조야. 불공평을 낳은 이 구조인 거라고. 행복이란 폐쇄야. 행복이란 너 같은 존재를, 너처럼 고통이나 비통함을 지닌 인간들을 무시하고 굶주림이나 빈곤을 무시하는 선상에서 성립되는, 운좋은 자들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폐쇄된 공간이란 말이야. 네가 원망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이야. 인간을 죽인 인간은 백퍼센트의 선을 손에 넣을 수 없으나, 백 퍼센트이 악이라면 손에 넣을 수 있지. 그게 앞으로 네가 살아갈 길이야.... 좀더 거대한 악이야. 좀 더 거대한.'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그럴 겨를 조차 없어 간과했던 문제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게되는것인가 보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대한민국, 아니 이미 대한민국보다 앞선 다른 많은 나라들이 겪었을 사건과 문제들이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 되어버린다. 군수 재벌가인 후미히로의 아버지, 상상도 못할 이런 이야기들로 아들을 사육?하는 그의 뇌구조가 의심스럽다. 이것이 단지 소설속 이야기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태초부터 시작된 선과 악의 대립, 교묘한 혀끝으로 악에 현혹되기 쉬운 인간들의 순수한 본성.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미히로, 그리고 우리들 자신. 이 작품은 이처럼 마지막까지 많은 생각을 간직하게 만든다.
나카무라 후미노리, 그와의 두번째 만남 또한 색다르게 다가왔다. 일본 소설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표지와 전작과는 또 다른 깊이 있는 문제들을 들고나온 작가의 색다른 도전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과 같이 다각도로 바라보며 이해하는 시선이 아닐까싶다. 숨막히는 긴장감과 사랑이라는 테마, 무게감 있는 물음표와 거대한 스케일... 그리 길지 않은 페이지속에 이 모든걸 다 담아낼 수 있었던 작가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쓰리'의 시리즈인 '왕국'이란 작품이 일본에서 곧 간행될 예정이라는데 그때 다시 나카무라 후미노리가 전해주는 특별한 즐거움과 함께 해야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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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놓여 있게 되며, 어떤 방향으로든 결정된 선택에 의해 자신의 삶을 꾸려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의 과정에서 있어 때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간에, 자신의 양심에 위배되는 악의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적잖은 갈등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다. 물론 처한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저마다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제각각 다르게 나타날 것이지만, 이를 단순하게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것은, 이 문제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향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삶의 궁극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변곡점으로 작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돌이킬 수없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 한 인물을 통해, 인간이 취하게 되는 악의 본성이라는 것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그리고 악을 취함으로서 이후 나타나게 되는 인간 내면의 변화과정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나간 화제작으로 보여 진다. 더불어 작가는 인간은 선을 추구하는 것으로만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으며, 때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말하면서, 이 작품을 통해 현실적으로 선과 악이라는 사이에서 갈등하며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 모습을, 악의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다뤄보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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