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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토야욕 그리고 더나아가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시켜주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적 성격에 부합해 남이라는 조선시대 장군을 통하여 우리의 살아숨쉬는 북벌에 대한 남이의 꿈과 야망 그리고 세조의 정책에 대한 역사적 소설을 시작하였다. 세조는 우리가 알기에 단종을 폐위하고 왕권을 잡은 왕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만주에 대한 간절한 영토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그의 북벌에 대한 역사적 사명과 그정신을 남이라는 장군으로 생생하게 실현시키려는 그의 야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후 남이가 유자광과 한명희 그리고 더나아가 신숙주까지 가담하는 역모의 꼬임에 빠져 처형되면서 역사는 세조와 남이의 그러한 형태를 숨기지 않을수가 없었다. 과거 남이의 고조할아버지는 남재라는 유명한 학자로 이성계의 위하도 회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1차왕자의 난에도 목숨을 부지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남재와 남이를 비교해보면 남재는 위화도 회군을 결정한 공로가 있는 반면 남이는 북벌을 하다가 죽음을 당한 이상한 현상이 있는 것이다. 단단하면 부러진다는 옛말을 우리는 젊은 장군 남이를 통하여 알수가 있다 만약 그가 오래살아서 그의 20만 양병설을 실현하여 북벌을 실현하였다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만주는 물론 중국의 많은 자치구가 우리의 땅으로 둔갑을 하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명회의 개인적인 정치적 욕심과 자기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는 처형이 되고 말았다, 남이장군의 살아 숨쉬는 이야기를 책을 통하여 읽고나니 그동안 몰랐던 그의 사상과 세조와의 관계를 한번 더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또한 남이섬에 그의 무덤에 한번 더 그의 정신을 되찾아보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 나를 발견할수가 있었다. 개인의 야욕보다는 국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잘사는 나라가 될것이다.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통하여 우리는 현대에 그정신을 함께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역사는 결코 책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릴때 우리들에게 크나큰 이익이 될것이다. 남이장군의 사상을 깊이 있게 생각하고 시대적 정신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하는 깊은 밤이 되게 하였다. 오랜만에 깊이 있는 역사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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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사에서 출간한 책을 참 오랫만에 접했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했다. 기업체에서 근무를 하고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 없을듯한 이력이었다. 아주 귀에 익은 조선의 장수라는것외에 나는 남이장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남이장군이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의 아들이었다는것 잊혀졌었다. 충무공 남이장군은 (1441-1468) 짧고 굵은 삶을 살다 스러져갔다.
아마도 나처럼 남이장군에 대해 까마득히 잊혀져가는 이들을 위해 저자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집필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산속에서 나고 자란 설화와 같은 이야기를 지닌 남이장군의 이야기는 그랬기에 크나큰 호연지기를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얼마나 수련을 해야만 천기를 읽을 수 있을까. 얼마나 자식을 사랑해야만 떠나는 자식에게 모든 기운을 불어 넣어주고 자신은 아무것도 남김이 없어 쓰러질 수 있을까.
남이 장군이 무과에 등용된 나이는 17세..지금의 17세 청소년들을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만들어진 칼과 철퇴를 가지고 바람과 같은 그의 말 바람을 타고 변방을 누비고 전쟁터를 누비는 남이장군의 애국심과 용맹함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세조 3년 무과에 장원급제한후 세조의 총애를 받았고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적개공신의 반열에 올랐고 약관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었다. 약소국인 조선을 위해 만주의 여진족을 치고 영토를 확장하여 천하를 횡행할 나라를 꿈꾸고 부국강병을 원했던 세조와 뜻을 함께 하여 2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백성들의 고단함을 멀리하고 주지육림에 길들여진 노회한 신하들에 의해 조국에 웅대한 꿈을 가진 충신들이 간신들의 모함에 의해 역사속으로 사라져 가듯 1468 예종이 즉위하자 남이 장군의 용맹과 올곧음을 두려워한 유자광과 한명회의 모함에 역적의 누명을 쓰고 처형을 당했다. 병약하여 겨우 15개월의 재위기간동안 예종은 역사의 큰 나쁜 획을 그리고 간것이다. 백두산에 새겨놓은 未平國 을 未得國 미득국이라고 주장하며 역모를 꾀한다고 무고했기 때문이었다. 글씨 한자가 시대의 영웅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도구가 된 셈이다. 한명회와 유자광의 간계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몸을 사리고 그들이 계략을 지지했던 중신들. 세조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예종이 좀더 성장했더라면, 정희왕후가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역사는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변함없이 되출이 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기도에 있는 남이장군의 혼이 서려 있는 남이섬이 친일파 민영휘의 후손 개인 땅이라는데 다시 한번 역사의 아이러니를 접한다. 난세의 영웅이었던 남이장군, 이루지 못한 그의 원대한 꿈에 이제나마 애도를 표한다.
북정가(北征歌) / 남이 장군 시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 먹여 다 없애네.
男兒二十 未平國(남아이십 미평국)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
後世誰稱 大丈夫(후세수칭 대장부) 훗날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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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을 볼 때 사실 재미를 위해서 조금 상황 묘사를 바꾸기도 하고 거짓말을 넣기도 하지만 어떤 이야기의 큰 흐름을 봤을 때는 교과서에서 느끼지 못했던 흥미와 재미를 이끌어내는데 무척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이야기는 바로 남이 장군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어 그 업적이나 행적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물론 역사 속 이야기는 시대를 거치면서 잊혀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기에 그 시대를 살지 않고서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는 힘들겠죠. 그러나 남이 장군이 백두산에 남긴 한 편의 시를 통해서 장군의 뜻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백두산의 돌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을 칼을 가는데 쓴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무기를 만들고, 두만강 그 많은 물을 말을 먹여서 없앤다고 했는데, 도대체 말이 얼마나 되고 병사가 얼마나 되어야 될까요? 남아 20세에 나라를 평정한다는 웅장한 꿈과 기개가 느껴지는데, 대장부가 되고자 했던 남이장군의 심정이 잘 표현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과연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은 20대에 무엇을 이루고 있는 걸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감탄하고 있는 이 시가 훗날 남이 장군의 삶을 바꿀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정적에 의해 역적으로 몰리게 되고, 그래서 장군에 관한 기록들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고 하네요.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세조를 도운 반정공신들. 도대체 무엇이 올바른 것일까요? 자신이 그렇게 손에 피를 묻히고 왕위를 얻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수많은 정적들의 숙청, 공신들에 대한 견제들. 만약에 남이 장군이 있었더라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바뀌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바로 남이섬뿐이지만 이제는 남이 장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서 공신이 되고 공조판서에서 병조판서까지 되었지만 불과 그의 나이가 28세였다고 하네요. 남이 장군의 얼이 깃들여 있는 축령산과 남이섬. 특히나 북벌을 통해서 여진족을 없애고 부국강병을 주장했으나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그 꿈을 접어야했는데, 사실 하나의 위대한 인물을 잃는 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의 손실이지 않겠어요? 비록 남이 장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앞으로 그 뜻을 이어받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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