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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정식 호칭을 풀어보면 '국강상國岡上'은 그의 무덤이 있는 지명이며, '광개토경廣開土境'과 '평안平安'은 그의 업적, '호好'는 미칭美稱이다. (33쪽)
원래 편집,구성에도 별 다섯을 주었는데, 오늘 다시 혹시 놓친게 없나 뒤적거려보니... 마지막 부분의 제본이 갈라지는군요... 그래서 별 하나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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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새로운 길을 연 진정한 태왕 전환기(轉換期)라는 시점이 있다.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기에는 질적인 변화를 담보하는 변화가 있다. 영웅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새로운 길을 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 영웅으로 인해 전환기의 변화가 질적인 성장을 담보하여 새로운 시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서 전환기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 나라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고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는 나라도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한사람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질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내부의 힘이 준비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리라.
한국사에서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되는 사람 가운데 오늘날 유독 주목받는 사람이 고구려의 ‘광개토태왕(374∼412)이다. 담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구려 19대 왕으로 22년간 재위하는 동안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로 기억된다.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텔레비전 인기 드라마 덕분에 더욱 익숙한 이름이다.
‘광개토태왕’이 오늘날 들어 유독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우리는 ‘광개토대왕’에서 이제 ‘광개토태왕’으로 위상을 달리하며 익숙한 이름으로 등장한 광개토태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요청에 의해 한 사람의 업적이 달리 평가되고 위상을 높혀 재모명하고 있는 것이리라. 광개토태왕이 우리에게 등장하는 시기는 그리 멀지 않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광개토태왕릉비’가 알려지고 일본에서 연구한 결과가 1905년 황성신문의 ‘광개토태왕릉비문’ 내용 보도, 단재 신채호 등의 연구 등 국내에 민족적 지식인들에 의해 신문에 발표된 후부터이니 그리 오래된 시간은 아니다.
이 책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은 바로 그 ‘광개토태왕릉비’의 주인인 광개토태왕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지만 그의 참모습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시 되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하다고 할만하다. 우선, 저자는 그의 호칭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다. 대왕이 아닌 태왕으로 불러야 할 역사적 근거를 찾고 올바른 호칭으로 불러야 함은 지극히 정당한 일일 것이다. 이는 당시 국제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고구려의 위상이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태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왕 가운데 왕이며, 제국을 다스리는 최고 지배자다. 고구려 제국의 ‘태왕’은 광개토태왕뿐 아니라 고구려왕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이었다고 본다.
광개토태왕은 즉위할 때부터 해결해야할 과제을 안고 있었다. 선대 임금들이 후연과 백제에 의 영토를 빼앗기고 임금의 시신을 탈취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상황에 의해 이를 올바로 극복하지 못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가 되었음은 자명하다. 광개토태왕이 정복군주로써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적 힘을 비축한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내치에 힘을 쓴 결과를 토대로 시각을 외부 정복에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시각으로 당시 국내외 정치정세와 힘의 역학관계를 살피고 있다. 거란, 후연, 백제, 신라, 왜 등과의 관계에서 취하고 버려야할 것이 무엇이며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알고 움직였기에 가능한 그의 행보였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흔히 알고 있는 영토확장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알게 한다. 영토확장은 면적의 확보만이 아니라 백성들이 늘어나는 것이며 전쟁에서 승리로 인한 물적 자원의 확충 그리고 여러 문화를 흡수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변화의 시점을 열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역사를 바라볼 때 어떤 잣대로 보느냐에 따라 판이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전재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얼마나 부응했는지 여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광개토태왕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전환기 고구려의 상황에 부응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 후대 왕에게 그 업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그의 역할에 주목하여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광개토태왕이 태왕으로 불러져야할 이유, 정복군주라는 단순 평가가 아닌 새로운 길을 연 영웅, 백제와 신라에 미친 영향이 이후 한국사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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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에 대해 생각해보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고구려의 영토를 한껏 넓힌 영웅인 대왕으로 배웠다. 고구려의 황금기의 기반을 만들어낸 왕으로 배웠다. 그러면서 그 웅대함에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광개토태왕이 누구인지, 어떠한 일을 했는지는 모른 채 지나왔다.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을 읽으면서 그러한 생각들은 더욱 확실해졌다. 그러면서 기존의 생각들이 하나씩 걷히고 새로운 모습의 광개토태왕이 기억 속에 자리잡는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우리 고대사에 관한 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알아 왔다. 사료가 부족한 것도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고, 연구자들 또한 굳이 어려운 길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과 책에서 인용한 많은 연구 자료들은 그러한 선입견을 씻어주었다. 많은 이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료들을 찾아내고 그 자료들을 검증하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힘들이 모여 이렇게 한 인물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한 결과가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오늘날의 국가를 보는 눈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당시의 국가 개념은 현재와 많이 다르고 또한 영토의 개념 또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여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에 대해 하나씩 밝혀준다. 물론 확실치 않아 추후의 연구 대상으로 남겨 놓는 것도 있다. 광개토태왕이 살던 시대를 고려하고 상상하면서 태왕의 일생을 살펴 나간다. 태왕이 고구려 역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밝혀 나간다. 태왕이 한 일들이 이 지역에서 어떠한 역학 관계를 정립하였는지를 알려 준다.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을 이어 왕이 된 태왕은 어려서부터 외부의 세력으로 인해 고통 받는 고구려를 보며 자랐다. 태왕의 어린 날은 훗날 나라를 경영하는 마음가짐을 세우는 데 영향을 주었다. 왕으로서 하여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자란 태왕의 일대기를 태왕릉비를 중심으로 다시 그려낸다. 태왕비에서 해독할 수 없는 문자에 대한 해석은 한국과 일본 학자들의 해석을 모두 담는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밝힌다. 자료가 자료로써 제대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장을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에는 다른 나라의 사서를 참조하여 유추함으로써 보다 사실에 가까운 내용을 얻으려고 하였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태왕의 일생을 살펴보는 출발점은 광개토태왕릉비이다. 비에 적힌 1775자의 글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비문은 연대별로 정복한 곳에 대한 정보와 정복의 결과를 담아낸다. 비문은 비문의 특성 상 사실에 근거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굳이 과장하려고 하지 않았고 없는 일을 일부러 만들어 기록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비문이라는 형식의 명확성 때문이기도 하다. 신중히, 세밀히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되는 신묘년조부터 살펴본다. 일본은 ‘왜가 한반도에 건너와 신라와 백제를 치고 다스렸다’고 해석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것이다. 사라진 글자, 보이지 않는 글자들 속을 파헤치며 내용을 살피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해석하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학자가 할 일을 아니다.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은 필요에 의해 그렇게 했다. 이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행해진다. 역사적인 일들을 살펴보는 기준점으로 비문이 활용될 때 신묘년조의 주체는 고구려가 된다. 즉 태왕이 백제와 신라를 속민으로 삼고 왜구를 물리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일본이 억지로 해석한 것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이다. 이처럼 광개토태왕릉비의 비문을 해석하면서 거란 정벌을 시작으로 백제, 동북부을 거쳐 남해안까지 원정하는 기록을 살핀다. 그리고 연나라를 정벌한 후 마지막으로 동부여를 정벌한 기록까지 조사한다.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진 태왕의 이동 경로를 따라간다. 백제와의 싸움을 보면서, 자주 등장하는 왜국의 모습과 이에 대한 태왕의 대응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로 얽혀 있는 여러 나라들의 관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벌의 목적은 나라를 경영하기 위한 기본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굳이 피정복 민족을 흡수하여 완전히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면 그들을 자유롭게 놓아둘 수도 있던 것이다. 또한 태왕의 정벌 원정에 참여한 이들을 고찰한 부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귀족들은 자신의 병사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활용했을 것으로 본다. 여러 고분에서 보이는 모습들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이전의 왕들이 완성하지 못했던 여러 일들을 마무리하며 국가의 기틀을 굳게 함으로써 고구려의 영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는 율령을 제정하고 교육 제도를 정립하며 불교를 공인화하는 등의 결과로 나타난다. 대왕이 아니라 태왕으로, 지금 이 시기에 광개토태왕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깊다. 태왕이 걸어간 길은 우리 역사 상 가장 활발하게, 그리고 원대하게 활동한 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시각으로는 태왕의 시대를 읽어낼 수 없다. 다른 역사서를 참조하는 경우에도, 그것을 기록한 이들이 숨기고 피했던 사항들을 유추하고 태왕의 역사 속에 넣어 검증하여야 한다. 단순히 태왕릉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비문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비밀을 세심히 파헤쳐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상당한 자료를 활용하고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이러한 목적을 향한 걸음을 내딛는다. 한 인물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자료가 충분치 않은 경우와 여러 의견이 있는 경우는 더욱 힘들다. 저자는 고구려의 위대한 왕, 광개토태왕에 대한 긍지를 심어준다. 태왕의 위대한 일생을 살펴보며 당시에 국가의 존재와 발전을 위해 했던 일들을 알려준다. 정벌이 정벌로 그치지 않고 여러 역학 관계를 재조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보여주고 그러한 가운데 남긴 뚜렷한 족적을 찾는다. 고구려의 화려한 시기의 문을 연 태왕의 모습이 그 속에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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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광활한 만주 벌판”과 ‘대륙 진출·정복 군주’…. 그래서일까요? 2007년 방영된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는, 판타지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거의 신격화神格化 된 면이 있을뿐더러 최근에는 경제·경영 측면에서 접근하여 CEO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지요.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그에 대한 바른 이해와 평가를 가로막는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무릇 한 인물을 알고자 할 때는 그가 산 시대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으므로, 저자는 고구려인의 입장, 광개토태왕의 입장에서 그의 업적과 주변 상황을 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왜 태왕太王일까요? 흔히 우리는 세종대왕, 정조대왕 등 큰 업적을 남긴 역대 임금을 높여 부를 때 대왕大王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우다 보니 습관적으로 붙인 호칭일 뿐, 그를 광개토대왕이라고 불러야 할 역사적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호칭 문제를 제대로 정립하려면 「광개토태왕릉비廣開土太王陵碑」에 등장하는 정식 호칭부터 살펴보아야 하지요. 「비문碑文」에서는 그를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이라 쓰고 약칭으로 태왕, 왕이란 호칭을 씁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단순히 광개토태왕 개인에게만 부여한 특별한 호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두루牟頭婁 묘지명에 등장하는 ‘국강상성태왕國岡上聖太王’은 광개토태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故國原王을, 「중원고구려비문中原高句麗碑文」에 등장하는 ‘고려태왕高麗太王’과 서봉총瑞鳳塚에서 출토된 은합우명銀盒杅銘에 등장하는 태왕은 광개토태왕의 아들 장수왕長壽王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렇듯 금석문金石文을 통해 고구려에서 태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며, 고구려 시대에 통용되던 상징성을 지닌 용어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왕은 중원中原 국가들의 황제皇帝, 로마Roma 제국의 엠퍼러Emperor, 흉노匈奴 제국의 선우單于, 유연柔然 제국과 돌궐족突厥族의 가한可汗, 몽골족의 칸Khan과 같이 제국의 지배자를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구려가 천하의 질서를 지키는 주인이라는 의미인 「중원고구려비문」에 등장하는 ‘수천守天’이라는 단어와 연호年號의 제정이 의미하듯이 독자적인 세계관과 우주관을 가진, 복합적인 문화와 다양한 정치체제를 갖춘 집단을 지배하는 제국帝國의 호칭인 것이지요. 그럼 온달 장군과 같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의 주인공도 아니고, 건국 신화와 같은 특별한 전설도 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잊혀졌던 그는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왔을까요? 1883년 남만주 집안集眼 지역에 잠입한 일본 육군 참모본부의 밀정 사코 가케아키酒均景信 대위는 커다란 석비를 발견하고, 빼곡히 새겨진 1,775자의 비문을 탁본해가지요. 일본 육군 참모본부는 비밀리에 비문 해독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1888년 요코이 다다나오橫井忠直가 아세아협회의 기관지 『회여록會餘錄』제5집에「고구려고비고高句麗古碑考」를 게재하면서 일반에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겨레에 제대로 알려진 것은 이보다 한참 늦은 1905년 「황성신문」이 10월 30일부터 11월 6일까지 5회에 걸쳐 소개한 이후라고 합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東學農民戰爭,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의 패배, 1894년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실시된 갑오경장甲午更張과 1897년부터 1904년에 실시된 광무개혁光武改革의 실패와 좌절, 1894년부터 1895년의 청일淸日전쟁과 1904년부터 1905년의 러일Russia日전쟁에서의 일본 승리 등 조선은 사라져가는 제국과 이제 막 떠오르는 제국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었지요. 이렇듯 자신감을 상실한 20세기 초, 영웅을 갈망하는 조선인에게 대륙을 횡단하는 강대국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은 자부심을 불어넣을 인물로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시대는 어떠했을까요? 할아버지 고국원왕故國原王은 342년 11월 모용선비족慕容鮮卑族 전연前燕의 모용황慕容皝과의 전쟁에서 작전 실패로 패해, 부친인 미천왕美川王의 시신을 빼앗기고 어머니 주태후周太后를 비롯해 고구려 사람이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했습니다. 아울러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엄청난 물자를 바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지요. 뿐만 아니라 고국원왕은 그가 태어나기 3년 전인, 371년 10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태자 근구수近仇首의 평양성 공격에 맞선 전쟁에서 목숨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이에 소수림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설립하고, 율령을 반포하는 등 내실을 다져 국력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율령의 반포로 조세의 징수와 군사 훈련과 동원, 지방 통치의 효율성이 높아져 국력이 증대되었지요. 태학의 설립으로 전문적인 실무 행정과 외교 문서 작성 등에 능숙한 관리들을 배출하여 효율적인 지방 통치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는 왕즉불王卽佛 사상을 이용하여 국왕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강화하고, 불교를 믿는 지역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해 받아들인 것이지요. 고국양왕도 기근이 들자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제하고 불교를 전파하는 한편, 국사國社를 건설하고 종묘를 수리하며 전통 종교도 정비하는 등 국력을 키우는 정책을 우선시 해 내치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서 고국원왕의 수모를 갚기 위해 백제와 후연後燕과 전쟁을 치루었고, 이러한 큰아버지 소수림왕小獸林王과 아버지 고국양왕故國壤王을 지켜보며 그는 자란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전쟁이란 정복 군주라는 명칭을 얻기 위해, 승리했다는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얻게 될 혜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구려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평화롭고 강력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했을 뿐인 것입니다. 그는 대규모 정벌을 통한 새로운 영토 확보로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된 지배 체제가 요구됨에 따라서 중앙 행정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더욱 세분화하고 새로운 단위의 지방 행정 구역과 새로운 관직을 마련하는 통치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또한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고국원왕 시기에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 태왕 중심의 정치 질서 개편을 완성해 나갑니다. 전통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천신天神 신앙과 조상신 숭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뒤늦게 고구려 사람이 된 외래인들을 포용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불교를 활용하기 위해 393년 평양에 9개의 사찰을 창건하는 등 고구려에 속한 여러 종족을 다스리기 위해 다양한 종교를 허락합니다. 새로 차지한 땅을 개간해 조세 수입이 가능한 땅으로 만드는 한편, 국토 재편을 통한 지방의 지배력 강화, 생산력 증대, 국방력 강화 등을 위해 백성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것과 같이 인구 재배치를 통한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했습니다. 394년에는 9개의 성을 평양 남쪽에 쌓는 등 주변에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해상 교통과 육상 교통이 편리하고 집안集眼보다 훨씬 따듯한 평양 지역을 장차 제국의 수도로 삼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지요. 그의 지속적인 정복 활동 결과로 고구려의 영토는 크게 늘어났고, 늘어난 영토는 곧 식량 생산의 증대로 이어져 백성의 수가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왔지요. 또 고구려의 구민舊民뿐 아니라 새롭게 편입된 다양한 종족을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고, 강력해지고 집중된 권력은 보다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구려는 하나의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입니다. 물론 그의 생애동안 제국이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릇 영웅이란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지요. 그의 활발한 정복 활동은 훗날 삼국 통일의 기반이 되는 삼국 문화의 일체감을 형성하였으며, 중앙아시아와 같이 아시아의 내륙지역과 교류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또한 강력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고구려가 정치, 경제, 문화, 기술, 외교의 중심국으로 성장하면서, 고구려가 단일 문화권의 좁은 나라가 아니라 여러 문화를 흡수해 융합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는 나라, 고구려 문명의 중심국가가 된 것이지요. 이러한 고구려와 광개토태왕에 관한 상象을 차용하는 최근의 경향이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되더이다. 첫째로는 남북으로 나뉘어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둘리는 암울한 현실에 따른 한민족의 하나됨과 부강한 나라에 대한 염원으로, 둘째로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경제 전쟁에서 시장을 선점·정복해야 한다는 등의 ‘할 수 있다’는 진취적인(?) 의미로, 셋째로는 세계화·국제화된 21세기 시대에 따른 다민족·다문화가 어우러진 조화로운 사회의 구현이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국가 권력(정부)의 정책 기조 유지와 관련 제도의 정비·개혁 등 제반 사항에 관한 논의 및 노력의 과정입니다. 그러한 과정은 생략한 채, 고구려와 광개토태왕의 결과론적인 성과물에만 주목하고, 이를 오늘날에 대비對比시켜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저자가 「비문」을 철저히 고구려의 입장,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의 입장에서 해석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비문」과 『삼국사기』에서 보이는 1년 오차 문제를 당시 고구려 사람이 직접 기록한 「비문」에 맞춰 해석함으로써, 신라를 속민으로 삼은 주체가 왜라는 391년 신묘년조辛卯年條에 관한 일본 학계의 주장과 달리 고구려라는 것을 방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삼국사기』가 의도적으로 감춘 영락 10년(400년) 신라 구원 작전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고 있지요. 또한 「비문」이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天下觀(세계관)을 담아낸 것이므로, 영락 17년의 정벌 대상이 백제라는 주류 역사학계의 해석과 달리 후연으로 해석함으로써 왜국이 한반도 남부(신라, 가야, 백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북쪽의 고구려로부터 백제를 지켜주었다는 식민사학의 논리를 해체하고 있지요. 다만, 군郡인지 국國인지 명확히 하지 않았지만 낙랑樂浪을 대동강 남쪽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한사군漢四郡(낙랑군, 임둔군臨屯郡, 현도군玄菟郡, 진번군眞番郡)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주류 역사학계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보이는데, 이 점은 못내 아쉬운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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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광개토태왕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역사에서, 특히 고구려 역사에서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인물이고, 우리나라의 자존심이라고 할 만큼 우리나라의 영토 확장에 공을 세운 위인이다. 어렸을 때는 광개토대왕이라는 이름으로 배웠었다. 그리고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처음으로 광개토태왕에 초점을 맞추어 제대로 배우고 접했었던 것 같다. 그래봐야 정해진 수업시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배운 것은 광개토태왕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의 굵직굵직한 이야기만 알고 있을 뿐, 그의 삶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다거나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을 통해 광개토태왕의 업적과 인생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라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은 독자가 광개토태왕과 그의 시대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가 왜 그렇게 살았고, 어떻게 그 일을 성취할 수 있었으며, 왜 이런 일은 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역사에 남을 업적을 쌓았는지 규명함으로써 그 인물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을 찾는 것이 과거 인물을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광개토태왕이 정복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가 이룬 성과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광개토태왕릉비문」을 다루고, 2장에서는 광개토태왕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모용선비(慕容鮮卑)와 고구려사를 다루고, 3장에서는 태학 설립, 불교 공인, 율령 반포와 광개토태왕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4장에서 10장까지에는 광개토태왕의 정복 활동이 실려 있었다. 11장에는 광개토태왕의 사람들이 다루어져 있었고, 12장에는 그의 국가 경영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3장에 저자의 평을 담아 놓았다. 또 책의 후반부에는 「광개토태왕릉비문」의 원문과 번역문이 덧붙여 실려 있다. 곳곳에 사진과 지도를 실어 놓아 눈으로 보면서 책을 따라갈 수 있어 더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첫 부분을 읽으면서부터 화가 났다. 물론 교양 수업 시간에 「광개토태왕릉비문」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도 총 수업시간의 1/3을 「광개토태왕릉비문」 강의에 투자하셨을 만큼,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일본의 제멋대로인 「광개토태왕릉비문」 해석에 정말 할 말을 잃었었다. 새겨진 글자가 조금이라도 더 잘 보존되었더라면, 우리가 좀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더라면,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그 사실을 접하니 또 한 번 가슴 속에 속상함과 분노가 이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광개토태왕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거의 잊힌 왕이었다는 사실도 상당히 놀라웠고 또 많이 속상했다. 왕 중의 왕, ‘태왕’이라는 칭호를 가졌을 만큼 위대한 우리나라의 왕이었는데, 후세에 후손들로부터 업적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땅속에서도 많이 섭섭해하시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광개토태왕, 하면 우선 정복활동이 떠오른다. 그만큼 영토 확장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국가 안을 다지는 것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그의 일상에 대해 알려진 자료가 많이 없어 인간 담덕에 대해서는 많이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분명 우리나라의 위대한 왕이었다. 그리고 고구려사를 포함한 한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그래서 참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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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보는 사람에 따른 시각 차이가 매우 뚜렷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좌절과 고난의 역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외세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가 반만년 넘게 지속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말합니다. 둘 다 모두가 맞는 것도 모두가 틀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랑스럽던 역사든 그렇지 않은 역사든 모두가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 역사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고구려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연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광개토대왕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과연 광개토대왕에 대한 정말 잘 알고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저 우리 역사상 광활한 영토를 개척한 대왕이며, 그로 인한 우리 역사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왕 정도로 인식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광개토대왕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연 대왕이면서도 그 진면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고 역설하면서, 진정한 광개토대왕의 모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애기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역사를 자랑스럽게 만든 인물이면서도 막상 광개토대왕에 대해 애기할 수 있는 사항이 많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것도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제 강점기에 발견된 광개토대왕비의 비문 정도입니다. 더구나 이 비문 또한 한일 양국의 역사적 자존심 및 이해관계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비문 해석과 관련한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어 제대로 된 대왕의 이면을 아직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광개토대왕의 진짜 모습을 제시하기 위한 국내외 사료를 포함한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정복 군주로서의 광개토대왕의 모습이 아닌 그가 영토 정복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 당시 고구려와 주변국과의 관계 등의 재검토를 통해 태왕의 이면은 물론 광개토대왕 시대의 고구려와 다른 국가와의 관계 등을 알 수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제시된 저자의 자료 제시와 가설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광개토대왕의 진면목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빈약한 현실에서 저자의 책은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한국 역사의 인물에 대해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맹목적인 영웅 찬양 일변도가 아니어서 더 흥미롭게 읽게 되었던거 같습니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광개토대왕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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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왕들 중에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함께 가장 유명한 왕은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아닐까 싶다. 영토와 국경이 어느정도 정립되었던 조선시대와는 달리 한반도 북쪽에서 대륙을 향해 끝없는 전진을 계속했던 광개토태왕. 대륙정벌을 향한 기상,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늠름한 패기로 정복군주의 기백을 널리 떨쳤던 왕이기에 더욱 가슴 뛰게 하고 우러르게 하는 것일 게다.
뜻밖에도 광개토태왕이 각광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광개토태왕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19세기 말 일본인 첩자에 의해 광개토태왕릉비가 발견되면서 광개토태왕의 이름과 업적이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서에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기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달리 부각되지 못하다가 광개토태왕의 치세와 업적이 비교적 소상히 기록된 비석이 등장함으로써 그 위상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소수림왕의 조카, 즉 소수림왕 동생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소수림왕에게 후사가 없었던 탓인지 소수림왕의 뒤를 이은 것은 동생 고국양왕이었고, 고국양왕이 죽은 뒤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태자 담덕, 그가 바로 광개토태왕이다. 흔히 광개토대왕으로 많이 불리지만 위대한 업적을 이룬 왕을 높여 부르는 대왕이라는 칭호와는 별개로 정식호칭이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었고, 영락이라는 연호를 따로 쓰는 등 제국의 위상을 떨쳤기에 광개토태왕으로 불러야 옳다고 한다.
고구려와 원한관계가 깊은 모용선비가 세운 전연, 후연과 싸워 이기고, 거란과 동부여를 정벌했으며, 백제를 쳐 할아버지(고국원왕)의 원수를 갚고, 백제와 손잡은 왜倭가 침공한 신라를 구원하는 등 동서남북 사방팔방으로 위세를 떨친 광개토태왕. 한 나라의 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한반도의 수호자와 같은 왕이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왜. 광개토태왕릉비에 등장한 왜라는 글자 때문에 일본이 그토록 이 비에 관심을 가지고 심지어는 이 비를 일본으로 실어가려고도 했다는 것이다. 군데군데 손상되고 유실된 글자들 때문에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하고자 자기들에게 유리한 한자를 집어넣어 멋대로 해석했다. 이는 예전에 김진명 작가의 소설 '가즈오의 나라'에서 읽었던 바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자랑하고 칭송하고자 만든 비석에 태왕이 왜구를 정벌하고 쳐부셨다는 내용이 들어갔으면 들어갔지, 왜에게 유리한 내용 따위 있을리가 없다.
안타깝게도 이 비문 해석에는 아직도 일본 학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함에 있어서 빠른 시기에 비문 연구를 시작한 일본 학계의 설을 인용하다 보니 무비판적으로 그들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 앞으로 많은 연구와 노력을 통해 반드시 극복해야할 부분이다. 그러기에 앞서 우리가 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꾸준히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어린 시절 '태왕북벌기'라는 연재만화를 본 기억이 있다. 담덕의 세세한 기록이 거의 전하지 않아 많은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해 그려낸 만화였겠지만 그 덕분에 수려하고 용맹했던 태자 담덕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또 최근에 읽은 김진명 작가의 소설 '고구려'를 읽은 덕분에 이 책에서 설명한 미천왕을 비롯한 모용선비와의 관계와 전쟁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팩션이나 역사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대왕 광개토태왕. 자세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를 너무 영웅시하거나 떠받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대륙을 향한 정벌의지와 실현,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승리를 거둔 패기와 용맹, 한반도의 늠름한 수호자. 우리 심장을 뛰게 하고, 우리 마음 속에 크고 거대하며, 거룩한 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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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오랜만에 고구려 관련 연구서적을 냈다. 인물평전의 형식을 띤 책으로는 『연개소문』이후로 2번째인 것 같다. 오래전부터 광개토태왕과 관련한 책이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왔던 터에 이렇게 나오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어떤 책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는 바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진작에 책을 읽긴 했지만, 다른 일로 바빠 차일피일 서평쓰는 것을 미루다가 이제서야 이렇게 쓴다.
필자는 먼저 광개토태왕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를 중요시하게 여긴다. 사람들은 한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역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대부분 고구려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구려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광개토태왕이 압도적인 1위를 하지 않을까 싶다. 즉, 어느 순간부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고구려-광개토태왕이라는 하나의 이미지가 고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 나온 광개토태왕 관련 서적들을 보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필자가 갖고 있는 책만 봐도 윤명철의『광개토태왕과 한고려의 꿈』(2006), 전경일의『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2007), 다케미쓰 마코토의『고구려 광개토대왕』(2007-번역서는 2009) 등이 전부다. 그에 반해 <광개토태왕비문(이하 비문으로 총칭)>에 대한 책은 한중일 삼국을 망라하여 상당히 많긴 하지만. 이처럼 관련된 문헌이나 자료가 별로 없어서 역사가 아니라 거의 신화 속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 바로 광개토태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광개토태왕을 실제 역사 속의 실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한 최초의 시도가 아닐까 한다. 더불어 이미 연개소문에 대해 그러한 작업을 했던 저자이기에, 이 책에서 실시한 복원 작업 또한 상당히 흥미로웠다.
책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면...저자는 크게 서론(1부. 광개토태왕 시대로 들어서기), 본론(2부. 광개토태왕의 정복 활동), 결론(3부. 고구려와 광개토태왕) 식으로 큰 틀을 정하고 그 안에 13개의 세부 장을 두었다. 1부에서는 광개토태왕의 등장 이전에 대한 역사적 개론, 그리고 비문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며, 2부에서는 우리가 자주 접했던 광개토태왕의 정복 활동(물론 이 중 상당 부분은 비문의 내용에 해당한다)이, 3부에서는 광개토태왕을 중심으로 본 당대 고구려와 우리들이 인식해야 할 중요한 사실들을 중점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필자가 흥미롭게 살펴본 부분들을 찬찬히 뜯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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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인가, 하여튼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읽었던 소설이 있다. 바로 김진명의 소설 "가즈오의 나라", 이 책에서 처음 위대한 광개토태왕을 알았다. 그 책을 안 읽어보신 분들은 꼭 추천하는 바이다. 역사책이 아니라 두뇌싸움과 추리가 있는 소설이라 정말 흥미진진하다. 가즈오의 나라에서 모티브가 된 것이 바로 "광개토태왕릉비"이다. 곳곳이 훼손되어 안보이는 글자가 있었고 일본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유리하게 해석되는 글자들을 넣은 후에 일본으로까지 그 비를 실어가려고 했었다. 물론 태왕릉비에 왜를 정복하고 "왜"라는 글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내용이 정확히 있는지는 더욱 연구해야하는 바라고 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광개토태왕은 우리가 잘 아는 소수림왕의 조카이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소수림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태학을 설립했다. 아마 예전에 배운 기억이 나실 것이다. 그런 소수림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그래서 동생 고국양왕이 왕위에 오른다. 그 고국양왕의 아들이 바로 담덕, 광개토태왕이다. (배용준이 주연했던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담덕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졌다는...
우리 나라 역사에 정말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는 광개토태왕이지만 사실 역사적 자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개토태왕이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신적인 존재, 영웅으로 기억되기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은 이 책의 저자도 경계해야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흐름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참 고무적인 일이다. 광개토태왕이라는 인물, 그 시대적 상황과 역할 등등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을 거친 역사서이다. 물론 역사라는 것도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이 덧입혀서 나오는 것이라는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꽤나 객관적으로 접근하려고 한 이 책은 내용은 읽을 수록 공감되는 곳이 많았다.
조금은 두툼하지만 읽는 동안엔 책의 두께를 잊어버리게 한다. 가끔은 이런 책을 읽고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시원한 피서법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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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정복군주들을 떠올리자면, 아마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점유한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이나,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알렉산더 대왕, 혹은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올라 제1제정을 수립하고 유럽 대륙을 정복했던 나폴레옹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국내역사에서 그들에 버금가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구려의 19대 왕이었던 광개토대왕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국내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다 기억하고 있을 그의 영웅적인 면과는 달리, 그의 업적과 관련한 상세한 역사의 내용을 다룬 책은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그것은 우리의 고대사에 관한 역사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에 기인하겠지만,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광개토대왕이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물로 치부되었다고 하니, 만약 누군가에 의해 지금까지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가 이루어놓은 위대한 역사의 내용은 그대로 땅에 묻히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도 일본인에 의해 만주에서 광개토대왕비를 발견함에 따라, 그동안 감추어졌던 그의 역사기록들이 빛을 보게 되었지만, 그곳에 적힌 비문을 둘러싸고 일본과 국내 역사학자들의 제각각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역사 연구에 대한 우리의 노력들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역사학자들의 그러한 저마다 다른 시각을 뒤로하고,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중심으로 현존하는 우리의 고대사에 관한 역사의 기록들과, 당시 삼국시대 역사 상황을 고려하여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그가 이루어 낸 역사의 사실이 후손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분석해놓은 것이어서, 독자들이 한번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볼만 하다 하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광개토대왕은 단순한 한 국가의 왕이 아닌, 국내 역사상 최초로 연호를 제정해 사용했으며, 여러 국가들을 정복했다는 점에서 제국의 지배자를 뜻하는 명칭인 태왕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광개토대왕은 단일한 민족을 다스린 것이 아닌 다원적인 민족과 문화를 아우르고 있었다는 점을 우리가 우선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고대사에 관한 역사자료들이 너무 적은 관계로, 광개토대왕의 주요 업적은 그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비문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비문을 토대로 그의 주요 행적을 우리가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비문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위세를 나타내기 위한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을 적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어떤 역사서보다 사실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광개토대왕은 알다시피 고구려의 제19대 왕으로 서기 319년 18살의 나이로 왕에 올라 412년까지 재위하며 고구려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광개토대왕이 정복군주로서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즉위하기 이전 소수림왕 때부터 고국양왕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북쪽으로는 거란과 선비족 남으로는 백제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내치에 힘을 써왔기 때문이며, 특히 북쪽의 선비족이 중심이 된 전연은 때로 고구려와 대치관계에 있으면서도, 고구려가 불교를 받아들이고 율령을 제정 선포하며, 관리제도와 같은 사회정치 문화발달에 하나의 밑거름으로 작용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이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거란을 정벌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거란보다는 자신의 조부였던 고국원왕이 백제 근초고왕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조상의 치욕을 되갚는 백제를 치는 일이 우선이었을 법했지만, 그가 거란 정벌에 우선을 두었던 것은, 한때 거란이 고구려를 침략하여 약탈해갔던 1만 여명의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였으며, 부차적으로 소와 말 같은 가축과 소금을 얻는 경제적인 효과와, 훗날 후연을 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거란 정벌에서 큰 힘을 얻은 광개토대왕은 속민으로 있던 말갈족을 앞세워 백제의 요새였던 관미성을 빼앗으면서 본격적인 백제 정벌에 나서게 되는데, 그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수륙 양쪽을 군사를 동원하여 백제의 58개에 달하는 성을 모두 함락시키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린다. 이후 광개토대왕은 동북쪽의 숙신을 속국으로 만들고, 왜구의 침입에 힘들어하던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아들여 5만여 군사를 이끌고 백제와 왜군의 연합군을 격퇴했으며, 이듬해 고구려 북쪽에 위치했던 후연을 정벌하고 후연이후 등장한 북연마저 굴복시킴으로서 요동을 포함한 만주 땅의 대부분을 정복하였고, 끝으로 동부 지역의 있던 동부여와 연해주를 공격하여 64개성을 모두 빼앗음으로서, 마침내 명실상부한 삼국 최대의 군주로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책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중 하나는, 광개토대왕이 그저 남의 나라를 침략을 위한 단순한 정복군주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소수림왕 이후 법과 제도를 재정비함은 물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폭넓은 종교 정책과 농업의 향상에 힘써왔으며, 특히 정벌에 따른 국토 재개편을 위해 평양천도에 박차를 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주변국 정벌에 그 바탕의 배경을 고구려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고구려인의 기상을 드높이며, 사방으로 둘러싸인 외적을 물리쳐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는 점을 볼 때, 이는 다른 어떤 국가의 왕과 비교하여 유능한 통치자가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진정한 제국이란 물리적인 힘으로 영토를 확장하는데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구심력을 토대로 주변국들의 문화적 역량을 흡수하여 중앙 권력을 힘을 변방에까지 투사할 수 있어야 하며, 정치 경제 문화적인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비문을 통한 사실에 근거한 광개토대왕의 지나온 정복의 흔적들은, 저자가 이야기한 진정한 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여 진다. 자신의 역사는 자신이 만들고 지켜가는 것이지 남이 만들어주고 지켜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한반도라는 작은 땅에서 고구려 역사의 새 길을 열고 대륙정복의 꿈을 키워갔던 한국사 최초의 태왕이 된 그의 업적들이 많은 독자들에 의해 깊이 인식되었으면 싶고, 또한 주변국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데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