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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쟁점에 대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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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과학이란 무엇일까? 과학과 사회, 과학기술과 우리생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과학자들의 전문용어와 수식이 등장하면 바로 던져버리고, 멀리한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아닐까? 현대가 과학기술중심사회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의 중심에 과학이 있다. 그러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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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과학이란 무엇일까? 과학과 사회, 과학기술과 우리생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과학자들의 전문용어와 수식이 등장하면 바로 던져버리고, 멀리한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아닐까? 현대가 과학기술중심사회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의 중심에 과학이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이끄는 방향으로 우리는 따르면 된다. 우리의 생활에 땔 수 없는 핸드폰, TV 등 근자에 들어서 양방향의 소통을 추구하는 경향도 보이지만, 아직은 대부분이 일방적인 제시형인 것 같다. 과연 과학의 잣대는 무엇인가? 무론 과학적 방법으로 일정한 룰이 있다.

 

거대과학의 출현으로 연구비용의 증가로 과학활동에 대한 지원(사회적) 연구비 등과 과학의 자율성 그리고 상업화로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치중립과 사회적 책임은 어느 선까지 허용될까? 과학자에게 있어서 애국심, 좋은 연구실천은 어느 정도 선까지 가능할까?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 과학은 위대함과 위험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원자폭탄과 아인슈타인의 E=mc2, 이로 인한 인류는 핵무기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고, 멸망의 걱정에 빠져들었다.  

 

종교와 과학은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식으로 나아갈까? 인간은 과학으로 신에게 도전해 가고 있는가? 아니면 과학은 어떤 쪽으로 갈까? 과학이 가장 우월한 지식체계일까? 아니면 단지 학문이냐 문화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과학계의 우선권 논쟁, 최초의 발견자, 천재에 대한 지나친 기대 등이 과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과학에서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미리 정해주고, 답을 구할 때 지침으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과학자 도그마(교리), 과학혁명을 계속된다.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이 지구상을 지배할 권리를 가진 유일한 인간에 동물의 하나로 추락했다.

 

과학은 어떻게 볼 것 인가? 우리는 아는 만큼 본다. 이원론에 바탕을 둔 현대과학의 인식론의 치명적 약점과 우리의 인식활동은 항상 편향을 수반한다. 이 시대의 논쟁거리, 유전자변형식품. 과연 축복인가 저주인가? 과거 녹색혁명은 우리에게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아직도 세계는 굶주림에 놓여있다. 과연 분배체계의 문제인가? GMO에 대한 안정성의 입증 책임을 둘러싼 회사와 시민 그리고 국가별로 다른 상황. 하지만, 세계적으로 GMO 생산량 증가하고 있고, 이와 더불어 부정적 시각도 증가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간의 활동과 자연순환의 과정 어느 쪽이 맞는가? 정확한 답은 없다. 그 해답 또한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라 분명 변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일부에서 과학을 빙자한 정치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후변화에서도 과학은 문제의 복합성과 불확실성을 잠재울 수 있는 결정적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진행형이다. 완결이 아니다 하나씩 밝혀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해당사자의 참여하여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구는 하나밖에 없다.

 

원자력 에너지. 미래의 대안인가? 미봉책인가? 최근 발생한 일본 원전사고, 체르노빌 등

기후변화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원자력은 최악을 막기 위한 차선의 선택이다. 그러나 세상은 비용(위험)-편익 분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많다. 또 현 원자력 발전의 대안인 고속증식로와 U-238이용 역시 고갈문제와 안전문제를 피할 수 없다. 재생가능 에너지, 에너지 전환의 효율을 높이는데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할 것 같다.

 

우주개발과 우주인, 우주관광이냐 우주비행사냐? 우주개발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에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 과학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북한을 통해 엿본 인공위성과 미사일 과연 평화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이제 이런 우주개발은 국가총력전이다. 과학기술이 그 나라의 경제와 힘을 나타낸다. 과학은 에토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생산에 놀라운 속도를 낼 수 있다. 과학의 에토스: 보편주의, 공유주의, 탈이해관계, 조직화된 사회이다. 거대과학 출현 과학계의 양적 팽창, 과학계의 이익 집단화 현상 등으로 인해 국가개입의 필요성은 증대한다.

 

황우석 사건으로 본 과학자의 길. 조국의 위상을 높인 것은 황우석이 아니라 바로 그들(PD수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버의 길(비료와 독가스)과 오펜하이머의 길(원자폭탄과 수소폭탄)에 서서, 인류애와 조국애, 어느 쪽으로 가고 싶은지? 과학이란 일부 집단(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전체의 자신이며, 파괴의 도구가 아니면 번영과 평화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유지자이며 파괴자이다. 미래는 테크노필리아, 테크노포비아, 어떤 쪽으로 나아갈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발전을 결정한다. 많은 문제를 사회적 해결과 기술적 해결로 다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과학기술의 자연 지배력과 사회적 영향력 점점 증가하고 있다. 또 하나,우수한 기술과 사회적 요구는 다르다. 기술적으로 우수한 가스냉장고, 그러나 현재 대부분 전기냉장고를 사용하고 있다. 시민 참여의 필요성은 증가하고, 과학기술의 민주화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르게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과학활동이란 신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자연에 새겨놓은 비밀을 밝혀서 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 과연 신과 과학이 양립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신비를 밝혀나가는 것이다. GMO에 대한 반대는 한때의 기후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육종의 문제와는 다른, 다른 종의 유전자를 미꾸라지에 돼지유전자를 넣은 슈퍼미꾸라지, 황금쌀에는 곰팡이 유전자를, 이종의 유전자를 한 생물에 넣는 것 문제 아닐까. 이는 이종교배와 유전자 혼합이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어떤 방향을 정해 놓고, 맞추어 간다는 느낌이다. 공정한 평가가 좀 부족한 것 아닐까 싶다. 그리고 결론에 대한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고, 약간은 종교적인 것 같고, 읽기가 약간 어렵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다양한 쟁점거리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p*******t 2011.09.24. 신고 공감 11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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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잣대는 완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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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과학은 완벽하고, 틀림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과학은 완벽한 잣대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잣대가 완벽하지 않다면? 그런데도 과학은 여전히 믿음직한 잣대가 되어 줄까?  먼저 과학이 완벽한지 알아보자. 만약 과학이 완벽하다고 가정해보자. 완벽한 것에는 빈틈이 있을 수 없다. 빈틈이 있다면 완벽하다고 할 수 없을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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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과학은 완벽하고, 틀림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과학은 완벽한 잣대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잣대가 완벽하지 않다면? 그런데도 과학은 여전히 믿음직한 잣대가 되어 줄까?

  먼저 과학이 완벽한지 알아보자. 만약 과학이 완벽하다고 가정해보자. 완벽한 것에는 빈틈이 있을 수 없다. 빈틈이 있다면 완벽하다고 할 수 없을 테니까. 썩 좋은 증명 방법은 아니지만 일단은 가정이니 살짝 넘어가 주기 바란다. 빈틈이 없으니 흠 잡을 것도 없고, 트집 잡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온난화'에 대한 논쟁은 어떤가? '유전자변형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확인한 뒤에도 여전히 핵발전소를 새로 건설하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은 또 어떤가?

  과학자들끼리 서로 저마다 이룬 '과학적 성과'를 내세우며 지구온난화는 자연스런 현상이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급격한 변화는 인간들의 탓이니 지금 당장이라도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전자변형식품은 식량난에 허덕이는 가난한 국가들에게 희소식을 전해주었다. 병충해에도 강하고, 가뭄에도 끄덕없으며 기존의 양보다 훨씬 많이 생산된다고 하니 이제 굶주림에 허덕이는 일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러나 한편에선 안정성에 의심이 간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먹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섭취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왜냐 하면 유전자변형식품은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또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쓰나미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네 기에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로 인해 핵발전소는 핵폭탄에 맞먹는 피해를 일으켰고, 그 피해는 앞으로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넓은 범위에 미칠 것이다. 그래서 핵발전소의 안정성을 의심하고, 더는 새로 짓지 않으며 이미 지은 것은 안전하게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장 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에너지를 대신할만한 대체에너지가 막막한 상황이다. 화석연료를 이용해서 만드는 에너지는 지구온난화를 가중시킨다는 눈치 때문에 바람직한 대안이 아닐 뿐더러, <자원의 한계성> 때문에 '지속가능한 에너지'라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르다. 그렇다고 태양광에너지, 풍력에너지, 지열에너지 같은 것으로 모자란 에너지를 대신하기에는 충분치도 않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라고도 할 수 없어서 대안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위험하긴 하지만 안전하게 관리만 철저히 한다면 앞으로도 쭉 값싼 핵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정말 핵에너지는 값싼 에너지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일단 발전소만드는 비용이 많이 들긴 하다. 그러나 한 번 만들면 적은 원료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핵발전소에 에너지를 만들고 난 '폐기물' 처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 또 '방사능'도 문제다. 후쿠시마의 예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단 한 번의 사고로도 안정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천문학적인 액수를 고스란히 치뤄야 한다. 그리고 핵발전소의 원료인 <우라늄>도 자원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고갈된다. 이 고갈을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해 <플루토늄>을 재처리하여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 가동할 수 있는 기술도 없을 뿐더러, 가동된다고 해도 고갈되는 시점을 조금 늦출 뿐이지 영원히 사용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가? 과학의 잣대가 완벽하다면 이런 논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과학의 잣대>는 완벽하다고, 틀림 없다고 믿게(?) 되었을까? 그건 과학의 특성 때문이다. 종교는 '보이는 것만 믿지 말고, 믿으면 보인다'고 말한다. 이런 식이라면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학은 '검증 가능한 것'만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언제고 확인 가능하고, 틀림 없이 '보여 준다'. 그렇기 과학은 믿음직한 것이다.

  그러나 과학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앞서 믿을 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기도 했거니와 <과학적인 증거>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아서 낙관해서도, 또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아서 비관해서도 안 된다. 앞선 것을 <테크노필리아>라고 부르고, 뒷선 것을 <테크노포비아>라고 부른다. 이 둘은 모두 과학이 모든 것을 밝혀준다는 맹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느 것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이는 <종교>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아무튼 뭐든지 지나치면 해롭다. '지나치면 모자른 것만 못 하다'는 옛말처럼 말이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에 보여주 듯 지구중심적인 틀에서 태양중심적인 틀로 확 바꾼 것들을 이야기 한다. 다시 말해, 대표적인 <과학 논쟁>을 보여주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 묻는다. "이래도 과학이 사회와 관계가 없느냐?" 고 말이다.

  딴에는 천체가 지구중심으로 돌아가든, 태양중심으로 돌아가든 우리 사회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그런 것은 과학자들에게나 중요한 것이지 농사꾼이나 채소장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과학자들의 영역>과 <일반사회의 영역>은 분리된 듯 하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자동차가 만들어진 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가장 큰 변화는 <전쟁>이다. 전쟁만큼 '과학기술'을 급속도로 발달시키는 것 드물다. 그렇게 발달시킨 과학기술로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때 과학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조국의 승리를 위해 엄청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데 도와야 할까? 아니면 과학자는 오직 인류 공영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가 되어야 할까? 조국이 패하여 동포들이 괴로움을 겪는 걸 보고서도 조국에 승리를 안겨줄 무기를 개발하지 않을 텐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렇다면 과학자는 사회는 무시하고 연구에만 매진해야 할까?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따지며 낙관하거나 비관할 것 없다. 지금에 와서 지난 과거의 역사를 들먹이며 네탓내탓을 따져 무엇하겠는가. 또 과학자들이 과학에만 매진하건 사회 변화를 꾀하건 그건 과학자들의 몫이며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과학을 맹신하는 것, 다시 말해, 과학이 무엇이든지 척척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지나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과학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없이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적절히. 힘들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적절히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1.09.19.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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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 과학과 사회, 두 문화의 즐거운 만남을 상상하다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 과학과 사회, 두 문화의 즐거운 만남을 상상하다" 내용보기
어느덧 난쏘공 7/8/9 마지막 달이다. 다행히 리벼c님께서 내 곁에 좋은 책들을 놓아주셔서 행복한 세 달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책은 미래에 과학자가 될지도 모르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도덕샘의 마인드로 읽었다. 도덕, 종교라는 좁은 세상만 보다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부딪쳤던 문제가 '현대 사회의 주류 패러다임은 과학'이라는 점이었다. 우리 삶과 관련된 중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 과학과 사회, 두 문화의 즐거운 만남을 상상하다" 내용보기

어느덧 난쏘공 7/8/9 마지막 달이다. 다행히 리벼c님께서 내 곁에 좋은 책들을 놓아주셔서 행복한 세 달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책은 미래에 과학자가 될지도 모르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도덕샘의 마인드로 읽었다. 도덕, 종교라는 좁은 세상만 보다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부딪쳤던 문제가 '현대 사회의 주류 패러다임은 과학'이라는 점이었다. 우리 삶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에 대해 과학주의로 똘똘 뭉친 사람에게 도덕이나 종교적 입장에서는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가 항상 고민이 되었다. 평소에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다보니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종종 과학적 지식과 역사를 훑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일반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과학 에세이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읽기 편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학이 가진 한계를 직시하고 과학이 사회와 대화를 나누어야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을 쓴 후쿠오카 신이치를 연상시킨다. 이제는 과학적 사고방식과 방법이 가진 한계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다른 분야와 소통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학자도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계에 몸 담고 있고, 장차 과학자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께서 이런 실질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책은 논쟁적인 두 입장을 균형있게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형식을 취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저자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실제로 논쟁하기 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입장을 공평하게 제시하는 것이 독자에게 반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한 장을 다 읽고 나면 독자의 마음 속에 일정한 방향성이 잡힌다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일정부분 성공하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  

"과학적 방법은 논리 면에서 치명적 약점을 드러내다

첫 번째 문제는 과학적 방법이 닫힌 논리체계인 연역법이 아니라 열린 논리체계인 귀납법에 기초하기 때문에 생긴다. 과학은 경험세계를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약점이다... 과학적 방법에는 귀납법 자체의 논리적 한계로 가설을 완벽하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과학지식의 확실성은 보장될 수 없고, 미래로 자꾸 미뤄질 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론과 관찰(실험) 사이의 관계에 기인한다. 관찰에서 얻은 증거와 이론을 맞대응해봄으로써 이론을 검증(기각)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론과 관찰이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즉, 관찰과 이론은 서로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그러나) 이론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관찰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를 '관찰의 이론의존성'이라 한다...이론의 도움 없이는 관찰 자체가 불가능함을 말해준다.

세 번째 문제는 증거와 이론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앞에서 살펴봤듯, 과학적 방법의 위력은 '결정적 실험'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이론을 완전히 입증하지도 기각할 수도 없다. 따라서 결정적 실험(관찰)이나 증거는 존재할 수 없고, 과학논쟁은 증거에 의해서 종결될 수 없다.

이상의 세 가지 문제는 과학적 방법이 논리적으로 허점을 노출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과학적 방법이라는 과학의 잣대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과학활동을 수행하며, 그 결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과학지식을 차곡차곡 쌓음으로써 진리에 접근해나간다는 과학의 상(像)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 p. 104-109

 

이렇게 현대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곤 하는 과학이 가진 한계 때문에, 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곤 한다. 저자는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는 과학기술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과학이 가진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라베츠와 펀토비치는 탈정상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과학에 의존하는 전통적 문제해결방식과는 다른 해법이 요구된다고 본다. 과학을 미워하거나 반대해서가 아니라 과학 자체의 한계 때문에 과학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탈정상과학 전략의 핵심은 '확장된 사실'(extended facts)과 '확장된 공동체'(extended communities)다." p. 154-155

'확장된 사실'을 위해서는 과학적 지식에서 그 범위를 넓혀 인문학, 사회과학, 지역지식, 시민지식과 같은 다른 분야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아야 한다. '확장된 공동체'를 위해서는 문제해결집단을 과학자로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의 전문가나 시민으로까지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 과학자는 그 분야만을 깊이 있게 보도록 훈련된 사람이어서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이 쉽게 볼 수 있는 문제를 못 보고 지나칠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15장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13. 여성과 과학의 거리두기: 누구의 책임인가?'였다. 이 부분에서는 과학적 사고방식과 방법이 가진 남성적인 폭력성을 꼬집고 있다. 여성이 과학과 거리를 두게 된 이유로 여성과 남성의 태생적으로 생물학적인 차이, 여성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게 만드는 유리천장 같은 이유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과학 자체가 가진(갖도록 만들어진) 폭력적인 구조도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과학이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의지적으로 배려적인 과학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도. 저자가 예로 든 난자 정자 수정 사례가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난자 정자 수정 과정에 대한 과학자의 시선이나 다큐멘터리의 화법이 굉장히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난자는 가만히 있고 정자가 저돌적인 모험과 경쟁을 통해 난자를 뚫고 들어가 수정이 이루어진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정자는 난자와 다른 세포이기에 난자를 피하는 속성도 가지고 있으며, 난자도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정자를 불러들일 물질을 내보내며 적극적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단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캐롤린 머천트는 현대과학이 자연을 대상화하고, 온갖 수단을 사용하여 적극 개입하고, 필요하면 분해하거나 파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그녀는 "자연의 죽음"(The Death of Nature)에서, 현대과학의 사상적 토대는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초기 자연철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봤다. 이들은 과학혁명의 주역들로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무장했는데, 이는 자연을 자애로운 만물의 어머니로 인식했던 이전의 유기체적 세계관을 대체한 것이었다. 새로운 세계관에 따르면, 자연은 굴복시키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간 발전을 위해 희생시켜도 괜찮은 자원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들의 그런 생각에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라는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었다." p. 236-237

 

이렇게 저자는 전체적으로 과학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고, 과학이 사회와 만나야 좀 더 온전하고 바른 과학이 될 수 있을 것임을 은연 중에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논쟁의 양측 입장을 중립적으로 다루면서도 과학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고자 해도, 저자가 과학자이기 때문에 넘어설 수 없는 한계 또한 존재하는 것 같아보였다. 책에서 종종 그러한 전제들을 만날 수 있는데 나에게는 대표적으로 '과학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현대에는 과학이 종교를 이겼다'와 같은 명제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첫째, 과학을 성취하는 과정과 방법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과학이 가치중립적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과학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외부에 존재하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일지라도 그 자연을 해석하는 인간이 절대 가치중립적일 수 없는 한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하는 명제 또한 모순을 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둘째, 과학과 종교가 기반에 두는 전제, 다루는 영역과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면 그것들을 동일한 위계에 두고 승패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현대 사회의 주류 패러다임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이 알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과학이 발전할 수록 세상은 진보하고 인간의 지식은 무한에 가깝게 늘어나리라는 과학주의와 달리, 나는 과학이 아무리 계속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영영 알 수 없을 것도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두 명제에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이런 입장과는 반대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책 초반부에 저자의 대표적인 주장인 양 제시된 위와 같은 명제들이 나를 긴장시켰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1.09.12.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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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보다는 과학자에 대한 시선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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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자연과학 쪽의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러기에 일부러라도 보려고 노력중...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이라는 제목에 끌려 책을 집는다.   읽으며 드는 일차적 생각... 제목에서 낚였...   물론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의 과학적 무지를 신랄하게 일깨우는 면도 많았으니...  우리가 흔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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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자연과학 쪽의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러기에 일부러라도 보려고 노력중...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이라는 제목에 끌려 책을 집는다.

 

읽으며 드는 일차적 생각...

제목에서 낚였...

 

물론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의 과학적 무지를 신랄하게 일깨우는 면도 많았으니... 

우리가 흔히 하고 듣는 질문 중의 하나이 과학과 사회의 관계, 과학의 가치중립과 사회적 책임을 일차적으로 거론한다. 크게 어렵지 않고 크게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 내용이다.

특히 과학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고려해 보면 적절한 문제제기라고 볼 수도 있다.

3장부터는 갈릴레오, 뉴턴, 플로지스톤 이론, 빛의 이중성, 유전자변형식품, 원자력 에너지, 우주개발 과학자의 길, 과학과 젠더 등 제목에서부터 충분히 흥미를 끌만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제목에 있다. 논쟁이라니???

국어사전에 실린 논쟁의 개념이다.

 

논쟁[論爭]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말이나 글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툼,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서 말이나 글로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다투다
 
그러나 이 책은 논쟁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 인물,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2가지의 시선 혹은 견해를 던질 뿐이다. 누가 옳고 그르냐의 논쟁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 혹은 인물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느나 내가 생각할 때 이 쪽이 맞(는 것 같)다 하는 식이다.
이게 어떻게 세상을 바꿨단 말인가?
책의 내용은 지극히 유익하고 충분히 여러 갈래 생각의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으나 정작 독서를 방해하는 것은 다름아닌 책의 제목이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제목을 정했으면...하는 안타까움이 큰 책이다.
 
과학의 모습을 알리려는 책...
특히 과학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과학(자)에 대한 시선을 대비하고 현대 사회에서의 과학의 진면목을 조명하고자 하는 책...
과학이 올바른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 혹은 일반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시하고자 하는 책...
이 정도가 이 책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은 충분히 시사적이고 계몽적이며 과학적 지식과 상대적 사고의 확산에 기여할 가치가 충분하다.
b******8 2012.05.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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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과학 논쟁이라고 하는게 좋겠다.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과학 논쟁이라고 하는게 좋겠다." 내용보기
이 책은 지금까지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과학적 논쟁이 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궁금하게 하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이책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으며, 과학도 문화의 한 일부로서 받아들여져서, 처음에는 사회가 과학 기술에 영향을 미치지만 나중에는 과학 기술을 사회가 통제할 수 없으므로 과학을 초기에 관리해야함을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과학 논쟁이라고 하는게 좋겠다." 내용보기

이 책은 지금까지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과학적 논쟁이 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궁금하게 하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이책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으며, 과학도 문화의 한 일부로서 받아들여져서, 처음에는 사회가 과학 기술에 영향을 미치지만 나중에는 과학 기술을 사회가 통제할 수 없으므로 과학을 초기에 관리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이 객관적인가에 대한 강한 회의를 가지고 여성 과학자에 대한 편견을 중심으로 과학에서도 여성 '과학자'를 위한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페미니즘을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현대 양자 물리학을 보면 일부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대상과의 교감을 과학과 깊이 관련시키기에는 과학 혁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그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심도 있는 연구가 없이는 공허한 페미니즘 찬성론자의 이상으로만 들린다. 과연 여성 과학자를 늘리기 위해 다른 사회 제도처럼 굳이 여성의 고위직을 늘리고 과학 방법마저 아직 불확실한 여성들만의 감성이 들어가는 성공한 몇 가지 방법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지 저자의 지나친 낙관이 아닐까?  물론 과학 혁명으로 지금의 과학적 기본 가정과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과학적 방법의 불완전성을 깊이 인식한 과학계에서 스스로 현재의 방법론을 혁명적으로 바꾸면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남녀 평등을 위한 과학을 다룬 것은 과학으로서 과학이 아닌 사회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의 과학을 강조했다는 흐름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과학-기술-사회 흔히 STS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내용을 싣긴 했지만 제목과의 관련성이 먼 것 같아서 아쉬움을 남긴다. 내가 바란 건 이전 세상에서의 논쟁이 어떠했길래 지금처럼 과학이 흘러온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세상을 이미 바꾼 논쟁이 아니라 지금 세상을 바꾸려는 저자의 논쟁 불씨를 이 책이 남기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YES마니아 : 로얄 h******3 2015.05.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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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필요한 과학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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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탈리아 라퀼라의 대지진(2009)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과학자들이 정부 관리와 함께 과실치사혐의로 재판을 받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들이 지진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 혹은 음모론을 들이밀 수 있겠으나 정확한 장소와 규모가 거의 예측 불가능한 지진으로 과학자들에게 과실이 있었는지를 재판까지 하는 이 헤프닝은 희생양이 필요한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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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탈리아 라퀼라의 대지진(2009)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과학자들이 정부 관리와 함께 과실치사혐의로 재판을 받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들이 지진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 혹은 음모론을 들이밀 수 있겠으나 정확한 장소와 규모가 거의 예측 불가능한 지진으로 과학자들에게 과실이 있었는지를 재판까지 하는 이 헤프닝은 희생양이 필요한 이탈리아 정부의 그럴듯한 연극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 뉴스야말로 이 책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의 이슈처럼 과학자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포괄적이고 난해한 사례 중 하나가 될 터이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원자력연구를 통한 전쟁 살상 무기 등, 인재로 명백히 해석 가능한 것과는 자연재해를 인재로 해석한 점과 애국심을 기준으로 세우기엔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잠시 다른 말을 하자면 이 애국심을 앞세운 과학자들의 전쟁 참여는 전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살상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엄연히 과학이 주장하는 가치중립성과는 완전히 다른 의도로 보여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식으로 양립된 의견들을 생각해보자. 이탈리아 정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와 같은 자연재해는 과학자들의 실수로 인해 대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인재로 해석가능한가. 그렇다면 이를 계기로 과학은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자연재해를 예측할 의무를 다하기 위한 발전을 이뤄낼 것인가. 이탈리아 정부는 이렇게 과학발전의 미진함을 탓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처벌대상을 통한 시민위안과 지지권 확보를 고려한 것일까. (그들의 희생제의가 부디 정의롭게 해결되길 바란다.)

 


(IPPC
보고서에 의하면 대체로 인간의 활동 때문일 가능성이 높은 기후변화로 인한-그래서 인재이기도 한) 자연재해의 피해가 심각한 현재, 우리에겐 자연재해를 정확하게 그리고, 대처를 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과 실제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안전하게 확보 할 수 있는 보다 빠른 과학의 발전이 필요한 것일까.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다고, 빠른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또 다른 파괴의 형태를 양산하느니, 지금이라도 회복을 위한 (과학을 기준으로 문명에 하는) 불편하고 비기계, 비화학적인 생활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이는 저자가 제시한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한 논쟁과 기술결정론에서  앞서나가 있는 질문들이다. 그 원인에 대해 탁상공론보다는 이제 여기저기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대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들은 -인류의 소비 때문에 생겼던 생기지 않았건 결과적으로 오염된, 그래서 회복이 필요한 - 환경, 그리고 빈곤 등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인문학적 성찰과 이타적인 감성의 회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

비록 탁상공론은 여전히 45차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축으로 인문, 사회, 과학, 정치, 경제 등의 여러 주변에서 제시되는 대안들이라는 점에서 과학을 사이로 한 논쟁들은 답이 없는 딜레마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미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시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현대 과학의 발전은 대개 정부 혹은 기업의 지원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 순수하게 인류에 기여하기 위한 과학자의 순수 의도와는 다른 정부와 기업의 필요성에 의한 연구지원은 그들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발견과 발명, 개발이어서 가장 눈에 띄는 발전은 군사목적으로 사용가능한 무기, 기기, 그리고 이제 이데올로기적 산물로 보이는 우주개발 등이 그것이다. 모든 발명과 발견은 국방 혹은 기업의 생산품과 소비로 이어지며 이는 근본적으로 과학의 발전이 이룩해 낸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이 모든 과학의 논쟁들 각각의 의미보다는 이러한 논쟁이 보여주고 있는 과학의 세계적 패러다임의 패권주의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과거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에서부터 최근까지도 여전한 여성의 과학 참여에 관한 논쟁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과학이 모든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 그래서 과학자의 순수연구의지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는 - 분야라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탈피하기 위한 패러다임 쉬프트를 꿈꾸어야 할 것이다.

당장의 대안보다는 멀리 보는 과학적 대안연구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의 대안은 소득을 정상수준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경제 위주의 과학발전 혹은 정책 등의 클리쉐를 볼 게 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현재의 미래연구가들은 적어도 그들은 국가와 현재의 경제체계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과학의 발전만을 믿는 방법이 아닌 대안을 연구해왔다는 점에서는 일단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무적인 대안연구는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논쟁의 가운데서 출발했다. 극단의 양립된 논쟁이 그 모두를 포용할 혹은 그 외부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대안들을 탄생하게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의 논쟁들이 의미 없고 소모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종교, 문화사회적 의미 등의 특정한 공동체의 양립된 논쟁이라 할지라도 그 또한 인류 내에서 고려해야 할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미래연구가들이 특정한 정부 혹은 기업의 측면에서만 서지 않는다면 미래과학 연구의 이정표는 적어도 우리를 테크노포비아적 태도에서는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 과학의 발전이 국방목적 혹은 기업이익을 위주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과학혁명만큼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말대로 완벽한 이론은 없고 따라서 완벽한 이론이 패러다임 쉬프트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과학발전을 이끄는 국가와 기업은 -자본주의 내에서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부 경제정책과 같은 시도가 여러 번 있었고 그 결과가 회의적이었던 것처럼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인정하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탈 정권성, 탈 자본성 정책들을 시도할 필요성이 있다. 무엇이 이익인가에 대한 질문에 현명한 답을 건네었던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스튜어트 L.하트)와 같이 과학의 이타적인 발전과 국익에도 기여하는 대안들은 꼭 정부와 기업의 인식전환을 필수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류를 위한 대안과 과학과의 접점은 좌표 중 어디 즈음에 있는 걸까.


기존의 과학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미래의 과학연구와 과학을 보는 우리의 관점을 단련하는 일이기 때문에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에는 사실 시기성이란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과학논쟁을 살펴보고 이러한 논쟁이 지금 어떤 과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 어떤 방향으로 이끌었는지를 되돌아보고 미래연구와 과학발전의 방향성 등은 독자가 각자 제시할 몫이다.


입시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 저자는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각 과학·사회 이슈에 대해 상대되는 옹호와 비판의 입장을 분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반론을 위한 논증과정에 대한 공부와 문제제기의 방법 및 비판의 포인트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과학을 둘러싼 여러 논쟁이 왜 사회적 논쟁으로 불려 질 수 있는지 사회적 문제성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면밀히 살펴본다면 이후 사회적 문제를 과학 혹은 다른 학문적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f*****5 2011.09.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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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참모습을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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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때 과학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뭔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학자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학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양한 공식과 실험, 수많은 이론은 쉽지 않았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난 지금은 그나마 간간이 과학 상식에 대한 책으로 허기를 달랠 뿐, 과학에 관한 책을 접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아지면서 과학은 이제는 나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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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때 과학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뭔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학자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학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양한 공식과 실험, 수많은 이론은 쉽지 않았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난 지금은 그나마 간간이 과학 상식에 대한 책으로 허기를 달랠 뿐, 과학에 관한 책을 접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아지면서 과학은 이제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비춰졌다.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지만 객관적인 데이터와 실험을 통해 정립된 과학 이론은 별다른 의문 없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다. 수많은 실험과 검증을 통과한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에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이 허위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제까지 내가 생각했던 과학에 대한 생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당시 그와 같은 매스컴의 보도와 황우석 박사에 대한 재판 과정은 나를 당혹스럽게 하였다.

 

여태까지 나는 과학을 신비의 장막 속에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과학이 가진 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관련 책들이 출간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조용한 느낌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과학책이 좀 더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이 책을 접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책은 과학의 역사에서 벌어진 13개의 대표적인 논쟁을 살펴본다. 한동안 이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과학윤리와 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담고 있다. 지은이는 과학은 더 이상 낙관적이지도, 신비하지도, 그리고 비관적이지도 않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의 본모습을 통해 우리가 이제까지 과학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재점검해 보도록 하는 것이 지은이가 의도한 바가 아닌가 한다.

 

책은 과학논쟁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1장과 2장에서 과학과 사회의 관계, 과학의 가치중립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3장에서 7장까지는 과학의 역사에서 뜨거웠던 논쟁으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어떠한지, 뉴턴이라는 대과학자를 통해 과학자의 신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 플로지스톤 이론과 연소이론에서 과학의 진리관과 과학의 발전 및 패러다임에 대해서, 빛의 이중성에서 과학적 방법의 한계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진화론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8장에서 13장까지는 현대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과학기술논쟁에 대한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다. 유전자변형식품, 기후변화, 원자력에너지, 우주개발과 로켓, 과학과 전쟁, 과학과 여성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이야기들이어서 많은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장인 14장에서는 우리에게 과학기술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실로 엄청나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궁금하다. 과학과 인류의 발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과학기술이 인간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과학기술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과학기술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과학을 과학자들의 영역에만 머물도록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여 토론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과학기술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과학에 맹목적으로 다가가기만 했던 우리의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한 13가지의 과학논쟁은 과학의 참모습을 들여다보는데 중요한 내용들이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본모습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면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리는 것과 같은 암울한 미래가 아닌 밝은 미래가 우리와 같이 하지 않을까 한다.

c*****1 2011.10.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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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과학 넌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과학 넌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내용보기
5여년 전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기극이 있었다. 이름하여 "황우석 사건"이 그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이 결국 사기 사건으로 번지며, 국민들의 신망과 황교수의 연구에 기대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넘어 허탈함을 안겨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동안 과학이란 것은 그저 연구실에서 새로움을 창조하여 세상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데에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과학 넌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내용보기

5여년 전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기극이 있었다. 이름하여 "황우석 사건"이 그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이 결국 사기 사건으로 번지며, 국민들의 신망과 황교수의 연구에 기대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넘어 허탈함을 안겨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동안 과학이란 것은 그저 연구실에서 새로움을 창조하여 세상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데에만 주목하면 되었고, 일반인들도 과학이란 그들만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서 그리고 점차 발생하는 과학 기술을 통한 사회 문제의 대두로 인하여 우리는 더이상 과학이 중립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을 다룬다. 과연 과학자란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무관하며, 면제부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부터 실제 과학자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탄생한 과학 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서까지 심도있게 논쟁을 펼치고 있다.

 

초반부에서 과학(자)과 사회의 관계,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중반부에서는 역사 속의 유명했던 과학논쟁을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갈릴레오와 종교계의 논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읽어 볼 수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현대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라 불릴만한 과학논쟁들이 나온다. 최근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전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가히 농업혁명이라고까지 불리던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논쟁, 과학발전으로 위기가 가해지고 있는 세계 기후에 이르기까지 어디하나 쉬우면서 가벼운 논쟁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전세계적이자 현대적이자 나와 내 아이들의 미래가 함께 걸린 논쟁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읽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과학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나는 개인적으로 과학자 역시 그 기술의 사용으로 인한 2차적 효과에 대해서 결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개발한 과학기술의 결과를 누구도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결코 그 책임으로부터까지 면피를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더이상 과학은 연구실 속의 전시물이 아니며, 과학자 그들만의 성과물도 아니다. 이미 과학은 사회를 만났으며, 둘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둘 사이가 동지든, 적이든지 간에 이미 그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와 필요관계를 인식했고, 실행단계에 들어 간 것이다. 그예로 우리들의 일상 속 곳곳에서 과학은 자리를 잡고 있고, 더이상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과학이 퇴보하거나 이 상태로 머물러 있는 다는 것또한 상상할 수 없다.

 

누군가 예측하지 않아도 과학은 분명 지금보다 더욱 발전할 것이고 그 사회적 영향과 책임의 영역도 점차 높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과학은 사회에서의 책임에 대한 명분도 스스로 높여야 할 것이다. 좀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오늘도 연구실에서 자신의 청춘과 열정을 쏟아 부으며 과학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모든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꿈과 열정과 땀이 베인 과학이 사회의 악의 축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러한 논쟁들이 그저 탁상공론에 머무르는 일회성의 논쟁이 아니길 바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g*****s 2011.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논쟁을 야기를 하는 과학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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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를 시킨 기술이 바로 과학인데 그러한 과학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였고 일부의 괴상한 사람들이 괴상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을 하였던 일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연구를 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을 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가 되었다. 그러한 변화속에서 세상에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킨 사례들을 제시를 하고 있는데 어떠한 답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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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를 시킨 기술이 바로 과학인데 그러한 과학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였고 일부의 괴상한 사람들이 괴상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을 하였던 일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연구를 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을 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가 되었다.


그러한 변화속에서 세상에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킨 사례들을 제시를 하고 있는데 어떠한 답변들이 정답인지는 확정이 안되어있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과학자들이 자신이 지지를 하는 학설에 대하여서 확인을 하고 연구를 하여서 하나의 학설을 확립을 시키는 과정을 보였지만 그러한 학설들이 인류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이 의문을 남긴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신의 연구에 대하여서 일종의 확신을 가지고 임하는 학자들은 그러한 연구의 성과가 인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적고 자신의 일에 대한 생각만이 있는 부류들이 많은데 그런 생각으로 연구를 하여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를 한다.


1. 프랑켄 푸드 = 유전자 조작 식물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농작물을 재배를 할수가 있는 면적은 줄어들면서 인류가 굶주림에 빠지는 현실을 타개를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손쉽게 식량의 증산을 할수가 있는 작물을 개발을 하였는데 식물 고유의 유전자에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합성을 하여서 강력한 종자를 만들고 그것을 재배를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의견에 반기를 드는 일이 발생을 하였는데 이러한 부분들을 보면 처음에는 좋은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실제로는 문제를 발생을 할수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GMO작물은 미국의 거대기업이 종자를 개발을 하고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작물의 재배를 지원을 하는 미국과 반대를 유럽의 사이에는 GMO에 대한 불신만이 있는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과 국부 유출의 문제를 내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인것 같다.


GMO작물은 재배는 쉽고 수확도 쉽지만 다음에 농사를 짓기 위하여서는 기업에서 새로운 종자를 사와야지만 농사가 가능하다고 알고 있고 주변의 다른 작물의 유전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서 수확에 문제를 일으키는데 하나의 단일품종을 재배를 하는 경우에도 원래의 종자를 이용을 하면 계속하여서 농사가 가능하지만 GMO작물은 계속적인 외화의 낭비를 불러 오므로 그것에 대한 반대의 여론도 작용을 한다고 본다.


벌써 많은 부분에서 식생활에 침투를 하고 있는 GMO작물에 대하여서 유럽과 같은 구분을 나타내는 방법을 표기를 하여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생각에 맞는 식품을 구입을 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찬성을 하지만 눈앞의 가격에 좌우를 받는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가 의문이다.


2. 지구 온난화

인류의 계속되는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이 되었고 그로인하여서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고 자연의 환경에 변화를 일으키어서 문제를 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서 여러가지의 의견들이 있는데 의견만을 내세우고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은 해결 방안이 아니고 일단은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을 하는 방법을 찾고 실행을 하여야 한다고 말을 한다.


※ 탄소 거래 = 황당한 문제 해결법

지금 벌어지고 있는 탄소거래는 자신이 규정을 넘겨서 배출을 하는 탄소의 절대량에 대하여서 다른 지역의 탄소를 적게 배출을 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배출권을 사와서 처리를 한다는 이야기 인데 이러한 행동은 총량의 탄소를 줄이는 것이 아닌 눈앞에 닥친 문제에 대하여서 눈을 감는 모습만을 야기 한다고 생각을 한다.


지구에서 배출이 되는 탄소의 절대량을 줄여서 환경의 변화를 연구하고 대응책을 찾아야지 다른 나라의 탄소 배출권을 사와서 자신의 배출권을 늘리려는 행동은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을 하려는 유아적인 발상인것 같다.


3. 과학이 우리가 살아가는 문제에 야기를 한 부분들을 둘러보고 왜 그러한 문제가 야기가 되었는지에 대한 의견들을 제시를 하고 있는 책이다.


※ 이벤트 당첨 도서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1.09.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청소년을 위한 과학논쟁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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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저자 강윤재는 신문기사에 소개될 상식적 수준의 과학논쟁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 들려주고 있다. 과학사회학을 전공한 박사가 이런 수준의 글 밖에 쓰지 못하다니 한심하다. 책에 아예 '청소년용'이라는 표지를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놓는 것이 대중을 기만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그럭저럭 테마를 나누어 과거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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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저자 강윤재는 신문기사에 소개될 상식적 수준의 과학논쟁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어 들려주고 있다. 과학사회학을 전공한 박사가 이런 수준의 글 밖에 쓰지 못하다니 한심하다. 책에 아예 '청소년용'이라는 표지를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놓는 것이 대중을 기만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그럭저럭 테마를 나누어 과거와 현재의 과학논쟁과 이슈를 정리하고 있지만 너무 상식적이고 표면적이다. 과거의 과학논쟁 사례는 갈릴레오의 종교재판, 연금술사 뉴턴, 빛의 이중성, 사회진화론을 언급하고, 최신의 과학기술이슈로는 유전자변형식품, 지구온난화, 원자력에너지, 우주개발 등을 언급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적 논쟁 사례는 과학의 역사가 신학과 상식의 편견에 맞서 싸운 투쟁의 역사임을 상기시킨다. 중고등학생 정도면 천문학의 천동설과 지동설의 갈등을, 생물학에서의 창조론과 진화론의 갈등을, 의학에서는 연금술과 의학의 갈등을 알고 있다. 이 책의 논의 수준도 딱 그정도다. 뉴톤이 연금술에 열중했다는 사실이 다소 이상하게 여겨지는 분들은 오늘날 과학자들 가운데도 여전히 신과 창조론을 믿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지금 순수과학이라고 불리는 딱딱한 학문들도 그 연원을 추적해 올라가면 그렇게 순수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았다.

 

최신의 논쟁거리는 대개가 사회학에서 말하는 '위험사회' 논의와 밀접한 이슈들이다.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와 같은 환경문제나 GM식품의 안전성과 유전자복제의 윤리성과 같은 생명공학의 쟁점들, 그리고 일본 지진으로 다시 쟁점화된 원자력발전의 안전성 문제 같은 굵직굵직한 쟁점들을 간략하게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서술하는 수준이 아쉽다. 왜 우리나라 학자들의 과학보급 대중서적은 한결같이 이 정도 수준에 국한되는 것인지 유감스럽다.

 

책의 구성을 보면 얼핏 '수미쌍관'의 구조를 취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저자가 과학기술에 대한 자신의 인식론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저자도 과학기술에 대한 지나친 낙관(테크노필리아)이나 지나친 비관(테크노포비아) 모두 금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과학의 패러다임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띈다. 또한 과학이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통념에 의심을 제기하지만 이런 논점들은 이미 90년대에 이미 백열화되었던 묵은 논점들이다.

z***a 2011.09.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