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 책상의 책꽂이에는 친척집에서 얻어 온 오래된 12권의 전기전집이 있었다. 책은 좋아하는데 별로 읽을 책이 없던지라 세계 각국과 우리나라의 위인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해서 읽었고, 전체 내용 까지는 아니더라도 각 인물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내용들은 그 후로 지금까지의 삶 동안 많은 영향을 줬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전기는 가장 기피하는 쟝르가 되었다. 책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 옳은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과 180도 다른 인물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특정 인물을 우상시하여 인간이기에 가지는 단점까지 덮어버리고 삭제를 시켜 놓았다. 오히려 그 인물에 대해 오해를 하게 될 정도이다. 그런데 서구 사람들이 기록한 전기나 자서전은 전혀 다르다. 그 인물과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통해 인물이 되었음을 배울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길(Unfinished Agenda)」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이라는 20세기 대부분을 선교사이자 선교신학자로 살아온 분의 자서전이다. 교회의 하나됨을 주장했던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해 온 분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s)'라고 지칭했던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부터 수 많은 일들이 인류 역사에 벌어졌던 시대이다. 한낱 시대에 뒤떨어진 잡소리 정도로 취급을 당하게 되었다. 세계 기독교의 중심 역할을 감당해 온 영국교회를 비롯한 서구 교회는, 지금 그 어떤 위험보다도 심각한 '세속화'라는 적과의 혈투를 벌리고 있다.
35년이란 긴 세월을 선교사로서 지내다가 은퇴하여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에게 있어 영국은 다시 복음이 선포되어야만 할 선교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사역과 삶에 대해 정직하게 기록해 놓은 귀한 책이다. 남인도에서 교파를 초월한 하나의 교회로의 연합, 세계 기독교의 연합과 선교사 은퇴 후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새로운 선교사역까지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읽으면서 무척 놀라웠다. 때가 되어 과업들을 맡기시고 감당할 지혜와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무엇이든 한다'는, 진정한 종의 자세로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해 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을 빌리면, 진정한 성도란 결국 '십자군의 마음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힌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휫필드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등불을 비춰주는 귀한 신앙 선배를 만나 너무나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