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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샤프펜슬을 갖게 되었다. 머리를 누를 때마다 경쾌한 음을 내며 가느다란 심이 나오면 환호성이 절로 나오곤 했다. 공책과의 미끈한 마찰음에, 늘씬하게 써지는 글자에 익숙해질수록 연필과 멀어졌는데, 그 무렵에 만난 동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전과 자투리 공간에 실린 동시였다. 몽당연필 깎다가 손을 벤 아이는 홧김에 버렸으나 이내 다시 줍게 되었다는 짧은 내용이었다.
연필의 깎인 부분이 손때로 시커멓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볼썽사나워진 연필들은 긴장했다. 샤프펜슬의 등장으로 찬밥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 만난 동시는 함께 한 시간과 비례해서 형성된 애착과 마주하게 했다. 연필 쓸 일 없는 요즘도 내 책상 연필꽂이에 한 자루가 장승처럼 서 있는 까닭인지도.
참 오랜만에 동시집을 펼쳤다. 지금까지 내 손으로 구입한 세 번째 동시집은 송찬호 시인의 <저녁별>이다. 이 책을 펼치면서 문득 깨달았다. 어렸을 때 책을 펼치면 그림부터 찬찬히 감상했는데, 지금은 활자를 다 읽은 후 설렁설렁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을. 동시란 아이의 눈으로 봐야 감응할 수 있을 텐데, 안 되겠다. 보다 아이 같은 눈으로! 그렇게 해서 몇 편이 ‘시가 내게로 왔다.’
늘 얼굴이 빨개서 우리는 딸기라 놀렸다
우리를 생각할까? 사이좋게 지내던 우리 얼굴 생각할까 딸기라 놀리던 우리 미운 얼굴 생각할까
- ‘딸기야, 미안해’ 부분
전학 와서 6개월 동안 사귀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서울로 전학 가던 날이 어제인 듯 선명하게 건져진다. 자기네들은 아까워서 차마 사용할 수 없었던 향기 나는 수첩, 학용품이라기보다는 자그마한 인형에 가까운 것들로 채워진 상자를 받았다. 달력 뒷면으로 포장한 공책 몇 권도 받았다. 나랑 친하게 지내던 무리는 훌쩍이기까지. 학교 파하면 운동장에서 어슬렁거리다 빈 교실로 들어와 조용히 함께 놀던 친구들. 남자애 몇, 여자애 몇은 늘 그렇게 뭉쳐서 다툼 없이 지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도 짙은 시간을 공유한 탓에 멤버 한 명의 부재와 무리에서 떨어지는 슬픔은 짐작보다 컸다. 그만큼 그들을 자주 생각나던 지난날들.
돌이가 죽고 나서 개 밥그릇과 물그릇 사이가 좋아졌다
돌이가 있을 땐 둘이 서로 부딪쳐 싸우느라 만날 깨지고 찌그러져 덜어져 있었는데
둘 다 빈 그릇 되어 개집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 사이좋게 나란히 엎어져 있다
- ‘개 밥그릇 물그릇’ 전문
헤어짐에 서툰 아이의 마음을 담은 또 다른 동시. 달그락거리며 힘차게 밥을 먹는 개의 모습이 그려진다. 바닥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먹다 놀라운 혀 놀림으로 물을 흡입하는 장면도. 요란한 식사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찌그러진 두 개의 빈 그릇으로 고요히 표현하고 있다. 사이가 좋아졌다는 말이 이토록 슬픈 뜻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파리도 학교에서 파리채 피하는 방법을 배웠나
반면에 ‘꾀 많은 파리’처럼 시의 여운을 흥미롭게 처리하여 일상을 유쾌하게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작품도 많았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저녁별’은 아이의 무구한 눈을 통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경계 지을 수 없는 것들이,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 참 많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찬란한 선물이다. 저녁별이 상징하는 것이다.
차분하게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슬픔의 정서와 나름대로 각자가 추구하는 즐거움을 찾아주는 시선이 요구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저녁별 같은 책이다. 저녁별은 새벽별이 될 때까지 반짝일 것이다.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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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씨를 뱉을 땐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침처럼 드럽게 퉤, 하고 뱉지 말자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달고 시원하게 풋, 하고 뱉자 2013년 5월 30일(목), 어린이책 작가들은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여름밤, 어린이를 노래하다’라는 이름으로 낭독극장을 열었다. 시인은 초대 손님으로 나와 자신의 동시를 낭독했다.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서시, 바로 「수박씨를 뱉을 땐」을 낭독했다. 배추머리 아저씨가 차렷 자세 진지한 표정으로 퉤, 풋, 하며 시를 낭독하자 웃음이 터졌다. 웃음을 주는 동시인 셈이다. 위와 같이 웃음이 바로 튀어나오는 시도 있지만 대부분은 슬며시 웃게 만드는 시들이다. 시인이 동시를 쓰고 있다는 조짐은 네 번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년)에서부터 나타났다. 그러고는 마침내 동시집을 엮기에 이르렀다. 동시집은 어른 시를 오래 쓴 시인답게 어린이만 독자로 상정하지 않은 듯하다. “서쪽 하늘에 / 저녁 일찍 / 별 하나 떴다 // 깜깜한 저녁이 / 어떻게 오나 보려고 / 집집마다 불이 /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저녁별」), 「노루꼬리약속」 같은 뛰어난 시편들은 어른이 더 공감할 시편들이다. 거짓말 우리 집 개, 돌이가 고삐를 풀고 집을 나갔다가 사흘 만에 돌아와 죽었다 누구한테 맞았나? 밖에서 나쁜 걸 먹었나? 아빠는 이제 개똥을 치우지 않아 좋다 하고 엄마는 시끄럽게 짖는 소리 듣지 않아 좋다 하고 나는 개밥 당번을 하지 않아 좋다 다 거짓말이다 어린이가 작품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작품들도 있다. 실상 동시 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시편들이다. 이를테면 “저수지가 얼마나 깊은가 보려고 / 저수지 한가운데 / 돌멩이를 던졌는데요 // 돌멩이가 날아가 / 물에 쏘옥, 들어간 곳에 / 저수지 배꼽이 생겼어요 // 점심때도 잊고 노는 / 우리들처럼 / 배가 고픈지 // 저수지 배꼽 아래 / 꼬르륵 소리도 들렸어요”(「저수지 배꼽」), “비 온 다음 날 / 엉금엉금 두꺼비가 기어 나와 / 마당 한가운데에서 나랑 딱 만났다 // 두꺼비와 나는 / 누가 먼저 길 비켜 주나 / 내기했다 // 그런데 두꺼비 얼굴을 찬찬히 보니 / 울퉁불퉁한 게 / 여드름 많은 / 우리 형처럼 생겼다 // 헤이, 형이라면 내가 지지 뭐 / 두꺼비 앞에서 / 내가 길을 비켜 주었다(「두꺼비형」), “폐교가 된 / 산골 학교에 / 아침 일찍 / 노루가 등교했다 // 텅 빈 운동장 / 울타리에 / 머루만 까맣게 익어 // 아무도 보지 않아도 / 그걸 따 먹을까 말까 / 망설이는 // 아무래도 / 노루는 / 혼자 5학년”(「노루」) 같은 시들이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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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별 문학동네 동시집(19) 송찬호 시 / 소복이 그림 문학동네
제비가 돌아왔다
우리 동네에 이십 년 만에 다시 제비가 돌아왔다고 아빠가 말했다
나는 버스 정류장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제비를 태어나 처음 보았다
너희는 먼 남쪽 나라 강남에서 돌아오는데
나는 지금 버스 타고 읍내 강남학원에 영어 공부 하러 간다
제비는 강남에서 돌아오고 '나'는 강남(물론 학원이름이지만)으로 간다는 것이 재미있다.
나팔꽃
아--, 하고 입 벌린 나팔꽃 속 꿀벌이 붕붕거린다
나팔꽃, 충치 검사하는가 보다
아--, 하고 입 벌린 나팔꽃 목젖이 다 보인다
나팔꽃이 '충치검사'를 한다고 하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이 동시를 골랐다.
양떼구름
양떼구름은 겁이 참 많은가 봐
우리 동네 개가 짖으면
양떼구름은
그 개가
양을 모는
양치기개인 줄 알고
둘레둘레
산 넘어 간다
양떼구름을 진짜 양으로 비유한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이 동시를 골랐다. 2011.10.30. 이은우( 초등4)
비가 무섭게 내리다 지금은 오랫만에 해가 다 나왔네요^^ 이 무더운 여름철에는 수박만한 과일도 없지요?
<수박씨를 뱉을 때>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침처럼 드럽게 퉤, 하고 뱉지 말자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달고 시원하게 풋, 하고 뱉자
1부 수박씨를 뱉을 땐 중에서도 제일 처음 나오는 동시네요^^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일까? 수박씨를 잘 뱉지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이들은 씨없는 수박을 좋아하나봐요^^ 아이들에게는 '퉤'도 '풋'도 어려운 걸까요? 하지만 점점 수박먹는데 익숙해지면, 정말 '풋'하고 뱉어내면 좋겠어요^^ <달팽이>는 등 뒤에 짐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를 보고, 학교 가고, 학원 가고, 이사 간다고 표현한 시인의 마음이 재미있네요~
2부 제비가 돌아왔다에서는 저수지에 돌멩이를 던져놓고 돌멩이가 빠지는 그 자리를 <저수지 배꼽>이라고 표현해서 '아하!'했어요..그래요..가끔 "꼬르륵"하고 소리를 내기도 하지요. <양떼구름>은 읽기고 좋지만 우선, 한 행씩 띄엄띄엄 인쇄된 것이 보기도 재미있고 인상적이라 좋았어요^^
3부 느티나무에서 매미가 더 세게 우는 이유 중에서는 <벌 받는 시간>이라는 동시는 우리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읽게 해 줘야 겠다는 생각에 메모지를 끼워 놓았어요^^ 자꾸자꾸 읽어줘서 벌받는 행동을 좀 줄이도록 훈계할까봐요. <뭉게구름> 도 보기에 참 이쁜 동시예요. 시각적인 효과가 듬뿍 들어있네요^^ 이제는 디자인 공부도 해야 시를 맛깔나게 쓰겠는데요~
4부 딸기야, 미안해를 읽다 보니 <반달곰 시험 보는 날>도 재미있게 읽었구요. <꾀 많은 파리>를 읽으면서, 파리를 쫓는다고 낮잠자는 아빠의 얼굴을 파리채를 날리는 모습이 연상되서 자꾸 피식거리고 웃게 되구요.. <노루>는 폐교 된 학교에 아침 일찍 찾아 온 노루를 보고 5학년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얼까요? 그래서 5학년 교과서에 실리게 된 걸까요? 생긴 것도 다 동글고 똑같은데 그 하나하나의 마음을 어찌 알까? 하고 표현한 <포도>도 그림과 더불어 이쁘게 읽었어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자연물을 소재로 이렇게 다양하게 동시를 쓸 수 있다니, 아마 우리도 시도를 해보면 멋진 작품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마음을 표현할 동시를 소소하게나마 써 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고 갑니다^^ 송찬호 시인님 고맙습니다~ 더운 여름날, 수박 드시고 힘 많이 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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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쓴 동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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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시가 읽고 싶어졌다. 책장을 서성이며 이런 저런 시집을 뒤적거리며 고르고 있는데 내 마음에 착 와 감기는 시집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시를 모아놓은 책장에 시선이 갔고 이 책을 꺼내들었다. 마치 서점처럼 그 자리에 서서 동시를 읽고, 그림이 귀엽다며 혼자 감탄 하면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동시를 읽으면 늘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뭔가 아련했다. 아이의 눈으로(혹은 가정 하에) 사물을 보고 느끼는 시선이 좋았다. 어떻게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고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에 동시집을 읽고 흉내를 내면서 한 번 써봤다면 과연 싱그럽고 순수한 마음이 드러날지 너무 궁금해진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아줌마인 현재의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져서 그런가보다. 역시나 이 동시집을 읽는 동안 괜히 내가 순수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을 꾸역꾸역 끄집어내어 동시에 대입해 보면서 나는 이러지 못했음을 깨닫고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대리만족을 하게 되었고 어디선가 이런 마음들이 계속 솟아나고 있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의 마음에서 피어난 시심이 독자들에게 많이 전달되길 바랐다.
그렇다고 이 시집에 쓰인 시들이 모두 기분 좋거나 아련한 추억만 떠올리게 만드는 건 아니다. 때 묻지 않은 혹은 있는 그대로 보거나 거기에 무조건적인 아이의 시선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를 읽으면서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언뜻언뜻 어른의 시선으로 보이는 시들이 보였다. 그런 시가 나쁘다 좋다가 아닌, 어른이 동심의 마음으로 쓴 시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미국 메이저리그/야구 경기를 보는데/콧수염을 기른 감독이’라는 부분에서 어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아이라고 해서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초조해서 해바라기씨를 자꾸 까먹는 감독을 보면서 까맣게 익은 마당의 해바라기씨도 초조한가보다며 말하고 있는 시가 그랬다. 야구 경기를 보면서 마당의 해바라기씨가 초조한가보다고 감정이입을 한 적이 내게 있었을까? 갑자기 내 주변 사물들이 살아 움직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현실 도피를 위해 소설을 읽는다고 말하면서도 동시를 읽는 순간 잠시 나를 잊었다. 하지만 그런 잊음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과거를 반추하게 되어 뭔가 좀 더 아련한 기분이다.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고 하면 너무 오글거릴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의 나를 마주할 수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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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2.25. 노래책시렁 527 《저녁별》 송찬호 글 소복이 그림 문학동네 2011.7.25. 시골에서 살더라도 들숲메바다를 다 바라보거나 받아안지는 않습니다. 서울에서 살지만 들꽃과 나무를 품으면서 조용히 골목집을 돌보는 분이 있습니다. 시골집을 누리되 별을 멀리하면서 불빛이 환한 집이 있습니다. 서울에 깃들어도 불빛이 적은 기스락에서 호젓이 지내며 오래오래 즐거이 걷는 분이 있습니다. 저녁별을 보려면 낮구름을 보아야 하고, 풀꽃나무가 햇볕을 넉넉히 누려야 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살림일 적에 밤낮을 푸르게 가꿉니다. 《저녁별》을 읽으며 내내 아리송했습니다. “침처럼 드럽게(13쪽)”는 뭔 소리이지요? 어떻게 침이 더러울까요? 난데없이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22쪽)”는 왜 튀어나오나요? 멧돼지가 “사진도 찍고 뒹굴고(43쪽)” 한다니, 마치 사람처럼 엉뚱하게 쳐다봅니다. 멧돼지가 살아갈 땅을 자꾸 잡아먹으면서 멧돼지한테 고개숙일 줄 모른다면 노래로 나아가지 못 합니다. 겨울잠에 들 곰이 “허리 재기(80쪽)”는 왜 하나요? 살빼기를 에둘러 나무라려는, 또는 우스개로 바꾸려는 글재주는 하염없이 가볍습니다. 날개를 단 새처럼 바람을 탈 만큼 가벼운 글결이 아니라, 날개흉내로 하늘을 난다고 꾸미는 겉치레라서 가벼워요. 구경하면서 멋부리고 치레하고 웃어넘기는 꾸밈글은 내려놓기를 빕니다. 그저 시골을 그리고, 논밭을 말하고, 풀꽃나무와 들숲메바다를 얘기하면 됩니다. ㅍㄹㄴ 수박을 먹고 / 수박씨를 뱉을 땐 / 침처럼 드럽게 / 퉤, 하고 뱉지 말자 (수박씨를 뱉을 땐/13쪽) 미국 메이저리그 / 야구 경기를 보는데 / 콧수염을 기른 감독이 / 엄청나게 / 해바라기씨를 / 까먹어 댄다 // 엄청 초조한가 보다 / 저렇게 쉬지 않고 / 까먹어 대면 / 해바라기씨도 엄청 들겠다 (해바라기씨/22쪽) 골짜기 너머 / 고구마밭을 / 멧돼지들이 다 파헤쳐 놓았다 // 엄마가 말했다. 내년에 여기다 / 메밀을 심어야겠다 / 메밀은 멧돼지들한테 먹을 게 못 되니 / 지들도 어쩌지 못할 거다 … 그런데, 멧돼지들이 / 메밀꽃을 좋아하면 어떡하지? // 하얗게 핀 / 메밀밭에 들어가 / 사진도 찍고 뒹굴고 놀면 어떡하지? (어떡하지?/42, 43쪽) 겨울잠을 자기 위해 / 도토리를 먹고 / 얼마나 살을 찌웠는지 / 반달곰 허리를 재어 보는 날 (반달곰 시험 보는 날/80쪽) + 《저녁별》(송찬호·소복이, 문학동네, 2011) 붕― 붕― 큰 소리를 내면서 → 붕! 붕! 큰소리를 내면서 → 부웅 부웅 큰소리 내면서 37쪽 쪼끄만 꽁지를 가진 굴뚝새 → 쪼끄만 꽁지인 굴뚝새 → 꽁지가 쪼끄만 굴뚝새 → 굴뚝새는 꽁지가 쪼끄맣고 38쪽 심심해진 나도 그냥 → 심심한 나도 그냥 40쪽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토리를 먹고 → 겨울잠을 자려고 도토리를 먹고 → 겨울에 자려고 도토리를 먹고 80쪽 도토리 백 개만 더 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 도토리 온 알만 더 달라고 조른다 → 도토리 온 톨만 더 달라고 조른다 8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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