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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00여 쪽밖에 안 되는 (판형도 작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권위에 관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진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기독교 시대가 된 이후 약 1천 년 동안 서양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계시)를 진리의 원천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근대성은 그런 권위를 무너뜨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중심으로 무엇이 확실한 것인지를 판단하려고 했다. 이성이 권위의 근원이 된 것이다. 그러자 기독교 일각에서도 이런 변화를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구세주의 권위를 입증할 만한 근거를 다른 곳에서 찾는 일은 그 구속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공동체를 만드시고, 가르치셨으며, 그 공동체가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하셨다. 저자는 오늘날 교회가 진리를 주장하기 위한 방식도 이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리는 증언으로서, 선포로서, 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제시되어야 한다. 저자는 아예 ‘객관적 진리’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진리는 사물을 탐구하듯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격적 헌신이 필요한 관계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C. S. 루이스 다음으로 믿고 보는 저자가 레슬리 뉴비긴이다. 신학적 깊이도 깊이려니와 보수적이면서도 현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을 하게 된다. 여기에 좋은 번역자들을 만났기 때문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면도 좋았고. 뉴비긴은 매우 당당하게 기독교 진리를 선포한다. 그러나 그 선포의 방식은 전혀 무례하지 않다. 복음을 살아 내는 방식이어야 하고, 상대를 논리로 굴복시키거나(전형적인 이성 중심의 근대적 진리관에서 나오는 태도다), 힘으로 관철시키는 방식이 아니다. 이건 그가 40여 년 동안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깊이 배어든 태도가 아닌가 싶다.(물론 이런 관점이 단지 기독교를 윤리종교화 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시도와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
제목을 흥미롭게 뽑았다. 원서의 제목은 "Truth and Authority in Modernity"으로, 직역하면 “모더니티에서의 진리와 권위” 정도가 될 텐데, 이쪽이 책의 내용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는 하지만, 왠지 맛이 좀 덜하다. 번역서의 구판의 경우 “포스트 모던 시대의 진리”라고 번역했다는데 이건 좀 부정확한 느낌이다. 책에서 지적하는 이성을 진리의 기초로 두는 관점은 포스트모던 보다는 앞선 시대의 특징이니까. 여튼 그래서 개정 번역판의 한글 제목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누가 ‘그 진리’를 죽였을까. 일차적으로는 근대의 합리주의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범인은 그런 현대성에 굴복해 복음의 진리를 망가뜨린 이들일 것이다. 아쉽지만, 여전히 그런 이들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커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