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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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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호이징하의 걸작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는 그의 또다른 걸작이자 중세 시대에 대한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인 ‘중세의 가을’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놀이’라는 주제로 인해서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아이 시절부터 즐기던 그리고 즐겼던 ‘놀이’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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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호이징하의 걸작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는 그의 또다른 걸작이자 중세 시대에 대한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인 ‘중세의 가을’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놀이’라는 주제로 인해서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아이 시절부터 즐기던 그리고 즐겼던 ‘놀이’를 통해서 인간 사회의 문화와 문명에 관한 광범위하고 풍부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호모 루덴스’는 흔히들 접했고 행했던 ‘놀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삶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분석을 하고 있다.

 

호이징하는 우선 ‘놀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본질에 대해서 상세하게 분석을 하고 있고, 그 분석 속에서 놀이라는 것이 단순히 어린 시절의 장난들 정도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전반에 걸친 긴밀한 연결을 보이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흥미롭지만, 조금은 진지하게 듣게 된다면 황당한 의견처럼 받아들여지는 생각을 호이징하는 자신의 정교한 분석을 토대로 놀이가 어떻게 언어와 문화, 법률, 전쟁, 지식, 시, 철학, 신화, 예술 등과 연결되어 생각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놀이를 토대로 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고, 놀이에서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도 세밀하게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쉽게 납득되기는 힘들겠지만 일정 부분 수긍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의견은 치밀하고, 자신의 논리에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그의 분석을 토대로 호이징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점 더 놀이가 갖고 있는 특성에서 벗어나고 있는 각각의 영역들의 변화에 대해서 논의하며 이런 변화, 즉, 각각의 영역의 독자성과 독립과 함께 놀이가 갖고 있던 특성이 변질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놀이의 천진함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이 퇴색하고 점점 더 부정적인 부분만 남게 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석이 단순히 과거가 더 좋았다는 식의 복고적인 입장으로 바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의견일 것이고 자신의 분석과 그 분석에 따른 결론에 대해서 그는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의견에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중세의 가을’과 마찬가지로 ‘호모 루덴스’는 특별히 어려운 내용으로 이뤄지지도 않고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의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호이징하의 글은 어쩐지 읽어나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그의 글이 매우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별다른 판단을 혹은 다른 생각을 요구하지 않고 있던 또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되었던 것들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익숙하게 여겼던 것들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호모 루덴스’도 이처럼 ‘놀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그의 놀이의 본질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영역에 대한 놀이의 영향까지, 어떤 부분이 읽기가 힘들게 느껴진다고 말하기 보다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거나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던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읽기를 간간히 멈추며 그의 의견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생기게 되었던 것 같다.

 

‘놀이’라는 생각 이상의 광범위한 영역에 대한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방법을 토대로 분석을 하고 있고, 그리스 / 로마시대의 놀이에 대한 당시의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며 그들의 의견들을 토대로 자신의 놀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리된 입장에 따라 그는 고대 이후의 시대에서 놀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당시 시대에서 이뤄지고 있었으며 이전과 혹은 이후와의 차이를 보이게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호이징하는 그리스 / 로마 시대의 놀이에 대한 의견을 종합하기까지는 치밀한 분석을 보이고 있지만 중세부터 현대까지는 되도록 간략하고 단편적인 분석을 진행시키고 있다. 분석보다는 언급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정도로 깊게 파고들지 않고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는 놀이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분석은 자신의 논의를 받아들인다면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또는 얼마나 변화를 보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와 같은 사람은 그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수준이지 그의 분석을 토대로 다른 시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응용력이 뛰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는 그의 말미의 내용들에서 큰 아쉬움을 갖게 된다.

 

다행히 현시대의 놀이가 더 이상 놀이와는 다른 차원의 ‘스포츠’가 되었고 그리스 / 로마 시대의 놀이 정신과 천진함이 어떻게 지금에 와서는 뒤바뀜과 진지함만이 남게 되었는지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이와 같은 퉁명스러운 분석을 토대로 고대 이후의 시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게 될 것 같다.

 

그의 놀이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시각과 그 놀이가 갖고 있는 특성과 본질에 대한 분석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그의 넓은 시야와 통찰력에 감탄하게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논의의 결과를 토대로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고 그 변화에 대한 그의 묵직한 비판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또한 그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놀이가 갖고 있는 긍정적이고 천진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그리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호이징하의 놀이에 대한 분석이 이후의 연구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분석 이상의 혹은 분석을 토대로 한 별도의 연구가 그다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고, 그저 위대한 학자의 독특한 관심이었다는 수준에서 ‘호모 루덴스’가 다뤄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놀이에 대한 탐구와 함께 그 탐구를 통한 지금 시대에 대한 준엄한 충고는 이전에 비해서 보다 더 자신의 시대에 대한 그의 의견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런 수준의 분석을 누가 또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구도 뒤쫓기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호이징하 혼자 모든 탐구를 다해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만큼 그의 분석은 탁월하고, 통찰로 가득하다.

 

그저 ‘놀이’일 뿐인 것을

왜 이리도 진지하게 말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지함에 대한 호이징하의 예민함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조심스럽게 반응하게 되지만 ‘놀이’가 갖고 있는 천진함을 강조하기 위해 ‘호모 루덴스’라는 진지한 학문적 탐구를 보여주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하다.

 

그렇지만 글들을 다 읽게 된다면,

그리고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그런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 조금은 더 생산적인 방식의 이해와 논의를 하고 싶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호이징하의 논의를 다시 한번 되풀이 읽어보고 싶게 되고,

언제까지나 되풀이 읽게 될 것 같다.

 

 

 

참고 : 결국 놀이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호이징하의 결론은 철학적으로는 니체의 분석과 일정부분 연결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호이징하 또한 니체의 그리스 시대에 대한 분석이 갖고 있는 통찰에 대해서 잠시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놀이에 대해서 그리고 니체와 그리스 시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호모 루덴스’는 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 같다.

y*******o 2010.07.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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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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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징가의 논의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의 요소가 숨겨져 있으며, 인간의 다양한 공동체 생활, 심지어는 전쟁마저도 놀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놀이 정신이 없을 때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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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징가의 논의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의 요소가 숨겨져 있으며, 인간의 다양한 공동체 생활, 심지어는 전쟁마저도 놀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놀이 정신이 없을 때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문화는 그런 놀이적 성격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견 역설적이다. 현대의 문화에서 쾌락적 면모가 점점 더 부각되고 따라서 놀이나 유희적 측면도 더 부각되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오늘날의 놀이는 과거의 놀이와 달리 자율적이지도 못하고 따라서 창의적이지도 못하다. 오늘날의 놀이는 (아이들 장난감의 변천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듯이) 기성품화되었고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뤄진다. 놀이란 놀이의 행위와 그에 따른 쾌락이 서로 함께 얽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천(참여)과 즐김과 창조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문화는 그 요소들을 각각 분업화하였고 쾌락이란 감성적 면마저 분업화, 기계화하였다. 쾌락이 행위와 분리되는 현상은 어두운 영화관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는 관객에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문화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하고, 놀이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예술 역시 인간을 시체로 만드는 분업적이고 기계적인 놀이가 아닌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놀이 그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의지가 우리에게 명하는 어떤 행동이 진지한 의무인가 또는 놀이로서 적법한가를 결정해야 한다면 그때에는 우리의 도덕적 양심이 즉각 그 시금석을 제공할 것이다. 행동하려는 우리의 결심 속에 진실, 정의, 동정, 용서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 행동이 놀이인가 진지한 것인가 하는 우리의 걱정스런 의문은 곧 무의미해지고 만다. 우리의 행동이 지적인 판단을 초월하는 데에는 한 방울의 동정이면 족하다. 우리의 행동이 정의와 고상한 자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인식인 양심은 항상 끝까지 우리를 미망하는 의문, 그 행동이 놀이적인가, 진지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압도하고 영원히 침묵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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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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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놀이는 무엇일까? 일반적인 사전의 뜻에 의하면 놀이는 여러 사람이모여 즐겁게 노는 일, 일정한 규칙 또는 방법에 따라 노는 일 이라고 정의 되어있다. 놀이에 대한 내 생각도 사전적인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호모루덴스 놀이와 문화에 관한 한 연구’라는 책의 제목은 놀이란 즐기는 것 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나에게 의문을 가지게 했다. 놀이와 문화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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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놀이는 무엇일까? 일반적인 사전의 뜻에 의하면 놀이는 여러 사람이모여 즐겁게 노는 일, 일정한 규칙 또는 방법에 따라 노는 일 이라고 정의 되어있다. 놀이에 대한 내 생각도 사전적인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호모루덴스 놀이와 문화에 관한 한 연구’라는 책의 제목은 놀이란 즐기는 것 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나에게 의문을 가지게 했다. 놀이와 문화는 어떤 관련이 있으며 이를 어떻게 연구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놀이에 대한 넓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에서 놀이란 자유스럽고 자발적인 행위이며 의미를 가지고 있고 즐거움을 주며 삶을 가꾸어 주고 확대 시켜 준다고 말한다. 이 정의에 대해서 보면 어렸을 때부터 놀이를 통해 학습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역할 놀이 중 병원놀이, 소꿉놀이 등 흥미를 가지는 놀이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정하고 역할에 대한 규칙을 만들어 가며 서로의 규칙을 지키며 놀이를 유지해 나가려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놀이에 대해서 즐거움 이라는 하나의 모습만 생각해 왔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놀이를 다방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 수수께끼, 재판, 종교, 전쟁 , 시 속에 놀이적인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은 책의 제목을 보면서 문화와 관련이 있을 거란 내 생각에서 너무 벗어나 처음에는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음악 같은 경우는 경쾌한 박자나 리듬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고 하지만 재판이나 전쟁은 살벌함과 더불어 무거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놀이와 관련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저것들을 놀이라고 확정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놀이의 특징이나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유하여 보여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수께끼의 경우는 성스러운 중요성을 지닌 의식에 재미라는 요소를 더하여 놀이가 되었고 시의 경우는 진지함과 더불어 여러 측면으로 바라보면 즐거움과 흥이 있어 놀이의 요소가 함축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후 놀이를 여러 가지에 비유하면서 ‘놀이는 문화이다’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내용을 읽고 나면 의문부터 들었다. 그리고 놀이를 강조하기 위해 너무 많은 예시와 비유 그리고 추상적인 모습을 끼워 맞추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 점에서 예시와 비유도 좋지만 좀 더 놀이와 관련된 이유와 추상적인 모습 보다 지각 할 수 있고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춘 현실과 가까운 모습으로 책의 내용을 설명 해 준다면 책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하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놀이는 인간의 삶의 중심 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계화 자동화되어가는 복잡한 현재의 모습에서 삶을 바라보며 예전과 다른 겉모습만 갖추어진 즉, 속이 비어있는 놀이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라는 의도가 아닐까? 또는 놀이란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고 했지만 놀이의 존재가 줄어들어 이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나타낸 것인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 책은 놀이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연관성과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생각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내 기억에도 오래 남는 책이 될 것 같다.

z**********4 2012.11.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