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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사라 밴 브랜스낙이 누군지 찾아보니 워싱턴 포스트 등에서 기자로 일하고 칼럼을 쓴 사람이란다. 책의 뒷장에는 오츠라 윈프리가 직접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찬사가 실려 있고 각 언론사들의 호평이 실려 있다. 이 사람들, 이 책을 읽어보기는 한 걸까?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나만의 행복찾기를 위한 여행이 이 책의 컨셉이다.
이 책의 내용은 참으로 간단하다. 어느 날 책쓰기를 결심한 저자가 그 결심의 근간이 된 유명인의 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유명인의 말의 힘을 빌려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킨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가 빠진 오류의 늪은 유명인의 말은 모두 진리고, 진실이라는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이다.
예를 들면, 시인 잘랄 우딘 루미는 우리를 일깨운다. "당신의 내면에는 당신이 모르는 예술가가 있다. 이를 당신이 알고 있다면, 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알았다면, 그렇다고 빨리 말해보라." 중략 당신이 태어난 이유는 당신의 세상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다. 라든지
소설가 앨리슨 루리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연필과 종이,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일일 대화는 자신의 세상을 바꿔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위와 같이 유명인의 말을 쓰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덧칠하거나 혹은 자기의 생각을 피력하고 그것을 뒷받침해 줄 유명인의 글을 차용하는 형식으로 79개의 짧은 칼럼을 써 놓았다. 책을 읽다 보면 처음엔, "그래, 그렇군.." 하고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의 3분의 1 지점을 지날 땐 하품이 나온다.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씩 들어 본 이야기나, 우리가 가졌던 생각, 혹은 다른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다. 저자는 왜 그렇게 유명인의 말 한 마디에 집착했을까? 자기 생각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싶은 걸까? 자기 글에 자신이 없었을까?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한 때 이 책의 광고를 하도 많이 해 대서 얼마나 대단한 책일까 궁금했었다. 개인적인 선호도 차이는 읽겠지만, 이 책 [혼자 사는 즐거움]은 나의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아 가버렸다.
ps. 이런 리뷰 쓰면 yes24에서 안 좋아 할려나? 오래 전에 전공 도서 읽고 하도 형편 없어서 정직하게 리뷰를 썼더니 책의 저자인 교수에게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설마 미국에서 전화오진 않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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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선가 본 구절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혼자 지내지 못하는 것은 유아기적 성향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 말은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 지내는 것을 어려워 한다는 것은 아직 어른으로서의 정신적인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학교에서 한걸음에 돌아와 집에 문을 열고 들어서며 반가운 마음에 습관처럼 “엄마~~”하고 외친다. 그때 엄마나 다른 누군가가 반갑게 맞아주면 더없이 행복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빈집에 들어서는 순간, 조금 전까지의 귀가에 대한 즐거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순간 극도의 불안감과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순간의 외로움은 누군가 나타나 상쇄시켜주기까지 계속된다. 어린 시절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미성숙 상태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기를 원하고 나를 돌봐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타인에 대한 의지는 사라지고, 자아가 성숙되어가며 홀로서기가 가능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에 있어 홀로 판단하고, 홀로 결정하고, 홀로 행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어서도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위의 인용한 구절처럼 유아기적인 성향이 남아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라 벤 브레스낙이 쓴 『혼자 사는 즐거움』은 원제는 『The Pleasure of Living Alone』이다. 원제를 볼 때 “혼자 사는 즐거움”으로 번역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이 책은 “혼자 사는 즐거움”이 아니라 “혼자 지내는 즐거움”을 기술한 책이다. 우린 흔히 혼자 산다고 하면 독신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그녀는 남편과 딸이 있는 가정주부이며 작가이다. 또한 이 책의 내용 또한 독신을 주장하거나 독신으로 지냄으로 인한 자유스러움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지낼 때 얻게 되는 수많은 즐거움과 이득이 열거되어 있다. 작가가 말하는 혼자 사는 즐거움 79가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나 위인들의 인용구를 시작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 하나하나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도모하는 글이다. 책을 대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동조되어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지고, 그가 인용한 구절에 심취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초기의 긴장감이 책의 후반부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는 삶의 목표를 행복에 두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행복할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때로 우리는 행복을 금전적인 부에서 찾고자 하고, 내가 소유하려는 물건에서 찾고자 한다. 또한 우리가 매일 인연을 맺는 사람들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곳에 우리가 찾는 행복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나서는 물질은 우리에게 끝없는 구매욕을 자극할 뿐이다. 또한 우리가 소유하고자 하는 물건은 순간의 만족을 가져다줄진 모르지만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또한 나와 인연을 맺는 주위사람들이 주는 행복도 영원하지 않다. 그들이 한순간 우리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만큼, 우리는 우리네 삶에 자신들의 관점을 투영할 때마다 거기서 오는 부대낌에 힘들어한다.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혼자만의 시간일 때 찾아온다고. 혼자만의 시간을 지낼 때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게 된단다. 그저 세상적인 스케줄과 가치기준과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올곧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진정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하고 성찰할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이 책의 부제가 “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나만의 행복 찾기“이다. 현대인들의 일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군중속의 고독”이다. 이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1950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고독한 군중》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대중사회 속에서 타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표현하는 문장이며 현대인의 자존감 결핍에서 오는 현대인들의 위상을 대변하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개인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의지하고 그들의 평가에 연연하다. 그래서 남이 입고 다니는 옷을 입어야 하니 유행이라는 것이 생기고, 남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하니 삶의 기준을 거기에 맞춘다. 학교도, 직업도, 결혼도, 자식도. 자신의 기준은 없다. 그럼 타인의 기준에 맞춘다고 해서 외롭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타인의 시선은 언제나 변한다. 그 변해가는 시선에 나를 맞추기가 힘들다. 하지만 문제는 타인은 내가 자신들의 시선에 맞추던 말던 개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군중 속에 존재하지만 고독하다. 그 대중의 시선에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곧 대중이 아니고, 나또한 대중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일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 대중에서 벗어나 홀로 있을 때 그 고독이 치유되는 것은 아닐까 . 그래서 어느 누구의 시선이나 기준에도 제약받지 않고 나름의 기준으로 삶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 고독감은 상쇄되지 않을까. 군중 속에서 낙오될까봐 스스로를 묶어두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목줄을 푸는 순간 고독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나서 , 두려워서 군중을 벗어나면 잊혀지고, 외면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자꾸 군중의 시선과 기준에 의지하는 것을 아닐까. 예전부터 혼자 지내는 시간을 즐긴다. 혼자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식사를 한다. 또한 혼자서 여행도 자주 간다. 누군가 물었다. “왜 혼자 여행을 떠나느냐”고. 내 대답은 그랬다. “나를 아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스러워 지기 위해서”라고. 이렇듯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를 구가할 때 진정한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한다. 목소리는 말한다.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삶에 대한 무한한 경이감과 행복감이 마치 산들바람에 귀밑머리가 흔들리듯 찾아온다. 행복은 그렇듯 예상치 못한 순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부터 나를 찾는다. 행복이란 나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해지면 어쩌면 행복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은 충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홀로서기가 가능해졌다는 것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은 아닐는지. “내가 치는 음표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음표 사이의 정지, 그렇다. 바로 그곳에 예술이 존재한다.” (26쪽)
아직 당신이 원하는 삶을 찾지 못했다는 건 지금껏 당신이 당신을 위해 살지 못했다는 뜻이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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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엔 곁에 누가 없어서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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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혼자 사는 즐거움 '인생은 결국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살기 보다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뉴욕타임즈에 120회 이상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오프라 윈프리의 쇼에도 11차례나 소개된 인기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나의 이런 비유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 다양하고 수많은 이들의 조언을 빌어서 독자들에게 위안받는 방법,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사소한 일에 재미를 찾는 방법, 의미를 부여하는 방바버, 내려놓는 방법, 그만두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 보니, 책 전체가 명문장이요, 모두가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이며, 명저에 베스트 셀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프라 윈플리가 극찬했던 이유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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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수많은 책 중에 하나이다. 아주 크게 특이한 내용은 없고, 그냥 지하철에서 부담없이 읽기 좋다.
그런데 왜 Simple Abundance를 '혼자 사는 즐거움'이라는 쌩뚱맞은 제목으로 뽑은 걸까? 시적인 영문 제목이 아주 그저그런 한글 제목으로 탈바꿈 된 기분이다. (게다가 저자는 남편과 자녀가 멀쩡히 있는 사람인데;;)
싱글 독자를 낚으려는 의도가 다분한 출판사의 전략 같아 씁쓸하다. 책 제목도 작품의 일부라는 인식을 갖고 저자의 의도를 살려주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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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혼자 사는 즐거움》은 25년 동안 유력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한 사라 밴 브레스낙의 작품이다. 혼자 사는 즐거움보다는 혼자 있는 즐거움이 더 정확하다. 원제가 Simple Abundance이다. 어번던스는 풍요로움을 뜻하는 단어. 제목을 보면 싱글족의 자기계발서 같으나 꼭 그렇지는 않았다. 싱글과 독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고유한 자신만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혼자임을 오로지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팁들 79가지를 제시한다. 첫 조언이 「묘원 산책하기」인 것은 본서의 비범함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작가는 삶의 유한함을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소중한 추억 수집하기」에서는 취미로서 수집하기의 의미를 성찰한다. 사냥의 전율에 맞먹는 것은 『발견』뿐임을 말하며 수집 행위의 짜릿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맹목적인 수집광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킴을 말한다. 작가가 3년 동안 어떤 물건을 수집하다가 어느 순간 허탈해 지고서는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수집가는 눈가리개를 하고 다닌다. 수집하는 물건 외에는 아무것도 못 본다. 획득의 본능과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자세는 공존할 수 없다.' 원제의 직역인 '소박한 풍요'란 바로 이것이었다. 소박한 풍요는 우리가 진짜로 필요한 것을 모두 가졌으므로 이제 충분하다고 말할 때를 아는 것. 사라는 그런 Simple Abundance를 깨닫고는 인생이 보다 맑고 풍요로워졌다고 고백한다. 「눈의 눈을 뜨기」는 일상과 여행에서 어느 순간 문득, 직감적으로 맞이하는 경험을 말한다. 이같은 체험은 '계시'라고 부르거나 '깨달음'이라고도 한다. 작가는 덧붙여 '혼자 있는 즐거움'이라고 불렀다. 삶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비관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이 되라는 건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고 보통의 삶을 일궈가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과 체험을 통해 내면의 눈을 뜨라는 의미다. 헬렌 켈러는 말했다. '비관주의자 중에 인생의 비밀을 발견하거나 지도에 없는 땅으로 항해하거나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정지하는 법 배우기」도 해야 한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치는 음표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음표 사이의 정지, 그렇다, 바로 그곳에 예술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식과 일 사이에서 삶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의 요구와 자신의 기쁨 사이에서, 혼자 있는 순간과 우정이 필요한 순간 사이에서, 일과 놀이, 활동과 휴식에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 모든 조율과 조화는 결코 훈련 없이는 얻을 수 없다. <혼자 사는 즐거움>은 자신의 체험과 여러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친절한 조언을 해준다. 책이 처음 나온 1995년(국내에는 2011년)과 꽤 시차가 있음에도 사라 밴 브레낙스의 주옥같은 통찰들은 큰 설득력을 주고 있다.
삶은 확실하지 않은 형태다. 그래서 다음에 무엇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틀릴 수도 있지만 어둠 속에서 도약하고 또 도약한다. -발레리나 아그네스 드 밀
불안과 무질서는 절망의 징후가 아니라 에너지와 희망의 징후다.
영국 역사가 데임 베로니카 웨지우드
내 임무는 스스로를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신이 만든 그대로의 상태에서 완전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시인 Robert Brown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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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이질감이 있다.
단 한 가지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만족.
좋은 말이 많아서, 좋았다.
다시 읽게 되다면,
좋은 글귀,
p. 68, 앨리스 워커,
p. 87, 멀리 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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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고, 유익했다고 느끼면서 읽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잘 하고 있다는 확인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확인이 꼭 이런 책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끔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자신감을 보이다가다 조금씩 의문을 느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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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 때는 뭔가 의미있는 방패막이가 필요하다. 왜 혼자 사냐라는 일반적인 질문에 그 나름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위장 발언이 필요하고, 자기 나름의 합리적인 답변을 갖고 있어야만 지루하고 고독한 삶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혼자 사는 남자이다. 혼자 산다는 의미에는 낭만성을 겸한 편견성이 다분히 묻어 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낭만적 자유 외에 성격적인 까탈로움. 경제적인 문제, 과거의 깊은 상처 등 남들은 임의적인 판단을 하고 추론을 한다. 그러나 남의 판단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자신만의 홀로 사는 의미와 재미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차피 결혼하지 않은 비혼의 삶이라면 즐겁게 살아야 한다. 남자의 의무, 가장의 의무에서 벗어난 것 만큼 그에 대응하는 재미를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억울한 삶이다.
혼자 사는 즐거움은 결국 행복의 문제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동안 나는 혼자라는 단어. 고독이라는 단어를 찾아 책을 선별해 왔다. 마라엘라 자르토리우스의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와 박상우의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로버터 컬의 '솔리튜드' 등 혼자라는 공통단어들 속에는 자기만의 재미와 가치가 있다. 이 책의 탐독도 마찬가지이다. 대체로 혼자 사는 것은 고독의 울타리안에서 오로지 자신 만의 시간을 향유하며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행하는 일이라고 한다. 내면의 깊은 대화. 그것은 혼자일 때 가능하다. '월든'의 작가 소로소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도 그러하다. 혼자 사는 것은 무위와 도식이 아니며 무료함도 아니다. 철저한 자신과의 대화이며 그 속에서 자신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그 자신을 위한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산과 숲 속으로 들어가고 땅으로 돌아갔다. 다분히 비문명적인 방법을 선택을 한다. 그러나 물질적 기반없이 혼자만의 즐거움은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아니면 통장의 잔고가 많든가.대부분은 한 달의 노동을 통해 월급을 받고 생활한다. 이런 기반이 없다면 혼자만의 생활은 궁핍하다. 아니면 자발적 가난을 선택을 해서 자급자족의 방식으로 생활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면서 혼자만의 절대 고독에 빠질 수 있는 최소한 물질적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허나 보통 사람들의 도교적인 수도원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현대 물질 문명의 생활 기반 위에서 향유할 수 있는 다양안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제목이 혼자 만~ 이라고 하여 비혼 혹은 독신주의자들 위한 생활 지침서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서문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싱글이나 독신으로 산다는 의가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속에서 고유한 자신만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대로 혼자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이라고 한다. 즉, 인생의 부름에 답하라이다. 본인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면의 깊은 우물에 감춰져 있는 삶의 보물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인 라라 밴 브레스낙 또한 인생의 부름에 답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일찍이 미국 주요 일간지에 인생과 행복에 관한 통찰력있는 칼럼을 싣기 시작한 그녀는 오프라 윈프라 쇼에서 자신의 책이 소개 되면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전체적으로 서구 문화적 가치관에 기반한 다양한 혼자 만의 즐거움이 다소 우리네 정서와 유리된 행동방식이라고 재단할 수 있으나 인간이라는 생물체의 공통점. 사회적 기반 속에서 살아가는 관계의 존재라 할 때 그리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중 몇 가지 나의 공감대를 살만한 재미거리를 서술해 본다. 저자의 첫 방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하루의 소중함을 감사히 여겨라는 점이다. 이는 즐거움을 찾기 위한 행동방침으로 묘원 산책하기를 들고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하루는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날임을...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어떤 즐거움도 누릴 수 없다고 한다. 하루에 대한 소중함은 남에 대한 생각을 지배하는 하루가 아니라, 온전히 본인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나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물음..그리고 오래된 사색 뒤에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깨달음의 환희. 나의 생각으로 충만한 하루. 이 하루에 대한 감사. 그것이 즐거움의 첫 걸음인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기'를 주문한다. 순간. 순간. 육체와 정신의 조화. 내 안의 육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감각에 집중하고 감각이 일으키는 다양한 느낌과 반응. 그에 따른 생각에 집중하는 육체와 정신의 조화. 이를 몰입이라고 한다. 이런 몰입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기를 간절히 갈구한다. 일찍이 정현종 시인은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저자는 1930년대 니어링 부부의 회고록에서 제안한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는데, '어떤 일이 생기든 최선을 다하라', 좋아하는 직업을 찾아라','걱정하지 마라. 하루하루에 충실해서 살아라'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중 '자신과 화해하라'라는 말은 하루에 충실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조건이다. 화해는 사랑이며. 자신을 사랑해야만 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자칫 하루의 순간동안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천국에 있는들 그곳에 천국이겠는가. 자신과 화해. 혹은 사랑은 '나 자신을 마음껏 축하해주기'로 연결된다. 각고의 노력과 헌신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자신에 대한 칭찬. 성취에 대한 축하의 댓가를 스스로에게 지불하는 것. 이런 즐거움이 없다면 누가 자신에게 축하를 해줄 것인가? 그렇다고 하여 이를 위해 워크홀릭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또 경쟁과 과다한 업무로 지쳐가는 현대인을 위해 '완전히 소진하기 전에 피로 깨닫기'를 제안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섹스를 할 마음이 전혀 안 든다면. 늘 짜증이 나고 조그만 건드려도 눈물이 흐르거나 불같이 화를 낸다면 즐거운 일이 없거나 매사가 불만스럽다면 소진된 상태라는 것이다. 혼자 사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가 완전히 소진되기전에 스스로를 관찰하여 모든 행동을 중지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외 저자는 혼자 사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일상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부분은 깊이 음미하며 자신의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는가 하면 그냥 쓰윽 읽고 넘어 갈 수 있는 가벼운 방법도 있다. 이 중 본인의 상황과 고민의 일부분과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면 좋은 의미의 독서가 될 것이다. 결국 혼자 사는 즐거움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위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방법들을 하나둘씩 찾아 나가는 일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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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로 분류된 책은 잘 사서 읽지 않는데, 누군가 이 글의 서평을 진정 맛깔나게 써서 주문해 읽어보았다.79개의 주제로 나누어진 "나만의 행복찾기"미션들이라 차례대로 읽지 않고, 우울하거나 심심하거나 화장실 갈 때 들고들어가 찬찬히 읽어보았다. 결론은 글보다 서평이 낫다? 이지만, 그래도 자기계발서로 나온 책들 중에서는 가장 추천할 만하다.
얼마전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 별로 친하지 않은 누군가와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나는 자기계발서가 판치는 사회는 불행과 실패를 개인의 나태와 무능력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고, 그 상대방은 개인의 실패는 일부 나태의 탓도 있기 때문에 자기계발서를 강요하는 사회는 비판받을 껀덕지가 없다고 했다. 19세기 빈민법을 공부하고, 스마일스의 <자조론>을 읽으며, 나는 그 전까지 어렴풋하게만 느끼고 있던 자기계발서에서 느끼던 불편함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며,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 모든 식사를 다른 사람들과 먹기를 권유하는 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10시간을 일해도 하류층의 선을 넘어서지 못하는 삶은 여전히 많고, 성공의 수단으로 사람관계를 맺는 것은 적어도 내 가치관에서는 옳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책이 출판이 되고, 잘 팔리며, 또 거꾸로 이 책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자기계발서가 유행하는 시대에 대해 한번쯤 깊이있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게을러서 영어학원에 결석하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내탓이나 어릴 때부터 외국연수의 기회와 원어민 과외선생을 둘 환경에서 태어나 영어공부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인식하는 것이 시대의 진실된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더 가깝다고 본다. 나는.
아,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나 잘살기' 위한 책이었지! 이런 맥락에서 자기 행복을 위해 이런 종류의 책을 선택한다면 나는 '혼자사는 즐거움'을 적극 추천하겠다. 이 책은 적어도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곧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매우 건강하며, 밝고, 재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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