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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이야기와 철학이 담겨있는 고전중의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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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고전작품인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는 예상과 달리 작품의 방대한 양에 읽기를 주저했으나 의외로 내용은 그리 지루하지 않고 흥미있게 읽어 나갈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끼의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책 속의 주인공이 자주 언급하여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었다. 상실의 시대와 작품의 분위기는 약간은 차이가 있지만 무라까미가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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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고전작품인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는 예상과 달리 작품의 방대한 양에 읽기를 주저했으나 의외로 내용은 그리 지루하지 않고 흥미있게 읽어 나갈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끼의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책 속의 주인공이 자주 언급하여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었다. 상실의 시대와 작품의 분위기는 약간은 차이가 있지만 무라까미가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흔적을 작품의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소설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은 결핵환자를 위한 한 요양소이며 한스카스토르프라 불리우는 이 책속의 주인공이 사촌인 요아힘을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지와 전혀 다른 색깔의 모습을 지닌 그곳 '마의 산'에서 주인공이 보고 느끼는 생활과 사람들의 여러 가지 형상이 이야기 하듯이 흥미있게 전개되어있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인간의 유형들을 비롯해서 그 안에서 우리 삶에 관한 여러 모습을 한가지씩 철학적으로 꼼꼼히 다루고 있다. 사랑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해서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념적인 논쟁의 대립등 여러 가지 대립적인 구조 아래서 주인공 한스카스토르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매우 중용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대립되는 여러 사상으로부터 자신의 통합된 논리를 밝히며 우리가 찾아 내어야 하는 정답에 가까운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다른 문학서적을 대했을 때보다 사랑과 사물, 여러 가지 관념에 관하여 훨씬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소설 속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작가의 사상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간과 죽음에 관한 철학이다. 누구든지 한 순간도 이 '시간'이라는 존재를 떼어놓고 살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에 대해서 그다지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깊은 사고를 한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의 감각인식기간에는 이 '시간'의 개념을 인지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고 한 사실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막연하게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주인공이 평지를 떠난 '마의산'에서 느끼는 시간의 개념이 평범한 일상사회에서 느껴지는 시간과는 매우 다른 것처럼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자체도 그 모습이 종종 다르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안에서 주인공의 가장 가까운 사촌 요아힘의 죽음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의 죽음을 보여주며 저자는 죽음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이란 우리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올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와 죽음 사이에는 어떤 현실적인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에 죽음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라는 흥미로운 논리가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의 얘기처럼 작가는 결국 죽음을 삶과 대립적인 개념이 아닌 우리 삶의 일부인 통일체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방대한 내용 탓에 한번 읽고서는 작품의 전체를 완전히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요약하여 내 나름의 감상을 적기에는 더욱 더 무리인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내가 여태 읽은 책 중에서 꼭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욕구가 가장 강하게 드는 작품이다. 거의 10여 년에 걸쳐 쓰여진 작품인 만큼 책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와 사상이 매우 풍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면 책 속의 주인공 한스카스트로프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k****a 2003.12.1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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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차원적인 시대 풍자 코미디
"가장 고차원적인 시대 풍자 코미디" 내용보기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에 대한 평을 썼을때에도 말을 한 바 있지만, 이 책은 "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라는 사회학자들의 인터뷰 모음집에서 독일출신 사회학자들이 가장 인상깊은 소설로 많이 꼽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 이 책의 제목은 꽤나 많이 들어봤을거라고 생각한다.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이. 내가 그 책을 먼저 본 이유는, 단순히 유명하지 않은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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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에 대한 평을 썼을때에도 말을 한 바 있지만, 이 책은 "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라는 사회학자들의 인터뷰 모음집에서 독일출신 사회학자들이 가장 인상깊은 소설로 많이 꼽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 이 책의 제목은 꽤나 많이 들어봤을거라고 생각한다.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이. 내가 그 책을 먼저 본 이유는, 단순히 유명하지 않은 것부터 봐 보자는 순간적인 취향에서 였다. 어쩔 수 없이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서 시작할 수 밖에 없겠는데,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손에 잡고서 1권 전반정도 읽을때까지 도무지 뭐하자는 얘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적어도 앞의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을 보고 대충 한 가문의 이야기라는 판단은 가졌고, 박경리의 토지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같은 이야기가 연상되면서 읽혀지기나 했지. 그러다가, 슬슬 이 책의 진가가 풍기는 묘한 마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론을 한마디로 하자면, 왜 독일의 지성들이 자기네 언어로 쓰여진 가장 최고의 작품중 하나로 꼽게 되는지 이해가 될만 하다. 특히 사회학자들이 말이다. 100년쯤 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언급한 그 사회학자들의 인터뷰들을 기준으로) 약 80여년전, 그러니까 20세기 초의 중산계급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냈는가? 라는 질문을 누가 던졌다라고 하면, 교수로써 혹은 학자로써, 대뜸 이 책을 던져주고나서 '이거 읽고나서 다시 찾아와 물어라'라고 할 수 있을만큼의 가치를 지닌 책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한국 근대시기 혹은 식민지 시기에 쓰여졌다는 장편소설 (무정이나 유정 말고는 모르겠다)을 제대로 읽어보질 않아서 판단을 확실히 내리긴 어렵지만, 어쨌거나 한 시대의 고민들을 이처럼 응축해서 소설로 표현하는 작품이 있다는거, 그건 독일인들의 복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응축이라는게 절대로 단편적,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는게 문제이자 강점이다. 역자의 해설에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이건 정말 '사실'이라고 할만 하다. "죽음에서 삶으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대립에서 통합으로, 이러한 모든 통로를 예시했다는 점에서 <마의 산="">은 '교육 소설'이며 '교양 소설'이요,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안식시키기 위해서 죽음과 질병으로 득실거리고 시간이 정지된 마법의 산으로 오른다는 점에서 '모험 소설'이며, 인간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는 점에서는 '비술 소설'이며, 작가의 사회 비평적인 세계관이 담겼다는 점에서는 '시대 소설'이며, 시간과 예술의 관계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는 '시간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게 뭔 무지막지한 소리인가? 한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소설로 모아놓았다는 얘기를 조금만 더 풀어쓴다면, 이런식이다. 일단 그 당시 평범한 이들의 일상, 그리고 역사의 격동 속에서의 변화와 난관극복을 그린 식은 아니다. 토지나 폭풍의 언덕이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아주 마법스러운 폐쇄된 공간에서, 제한적인 인물들 (물론 전체 등장 인물은 꽤 된다)의 대화와 사색을 통해서 당시의 의학과 생물학, 천문학과 (포괄적인 의미에서) 과학기술학, 예술과 문화, 사교계의 풍습, 유럽적인 다국가/다민족 사회의 관습, 종교적인 특성 - 개신교, 천주교 및 동양의 영향, 보수와 진보 등등에 대한 여러 분야의 단면들을 꽤 진지하게 늘어놓은 작품이라 하겠다. 그 시대 그 공간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진실성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 꼭지꼭지가 워낙에 진지했기 때문에 가히 한 시대의 '집대성' 적인 문학작품이라 불리워질 만 할 것 같다. 당연히, 이런식이다 보니 재미는 떨어지는게 사실이었고, 때문에 초반에 소설의 스토리전개에 대해 갈피를 못잡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한 묘한게... 등장인물들의 속사포같이 터져나오는 대사를 여러번 보다보니, 소설의 대사가 시나리오나 연극의 대본과 같이 들리게 되고, 나아가 배우들의 연기로 느껴지게 되었다. 이럴 수 있는게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가장 큰 강점 아닌가? 상상력의 자유로움 말이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건, 전체 스토리가 우디 알렌의 코미디 식으로 구성된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 다른 이들이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2권 전반부부터 난 이 책을 '코미디'로 인식을 하며 보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그 많은 분야에 대한 장대하기까지 한 사색과 대사라는 것들은, 분명 진지하긴 했지만 줏대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갈피없는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한스의 최종적인 결정을 기준으로 보면 개개의 이론 및 인물들, 그리고 장면들은 궁극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대상들이었기 때문에, 시대의 단편단편들에 대한 묘사나 서술이 코미디로 읽혀도 전혀 문제는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세템브리니(진보주의자)와 나프타(보수주의자) 사이의 논쟁은, 당시 유럽의 이념적 갈등을 상징하는 것이긴 했지만, 그것이 반복될수록 지난해지고 서로 상대방을 닮아가는 모순을 보이는 측면에서 진정한 블랙코미디의 진가를 드러냈다고 생각하고 (결론은 거의 엽기 컬트였다!), 그 둘을 무화시키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실제 소설속 정세의 흐름은 당시 무력한 이념지형에서 배태된 파시즘의 단초를 표현하는 날카로운 풍자로 읽혀질 수 있겠다. 그 밖에도 예술론이나 생물학 이론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어설픈 아마추어나 사이비에 대한 오히려 진지한 서술이 풍기는 유머러스함으로 코미디의 완성을 돕고 있다. 특히 강신술의 부류로 보이는 이벤트에 대한 설명 부분은, 말했던 파시즘의 대두와도 연결이 되면서 대략 50년 후가 배경이 된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드러나는 시대정신의 퇴행에 대한 풍자적 묘사를 선취한 것은 아닌가 하는 판단도 들었다. 이래 저래, 쉽게 읽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분명 상받을 만한 작품이었고 여러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할만한 놀라운 소설이라는 생각을 한다.
e****s 2005.03.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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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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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되는 듯 하다. 평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 몇권이나 될까? 그렇다면 어떤 책을 선별적으로 읽어야 할까?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자신은 최소 20~30년 지나서도 읽히는 책만 읽는다는 말처럼 고전은 그 나름 꾸준히 읽히는 이유가 있을 듯 하다. "명작을 읽을 권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오솔길이 있는 숲을 산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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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되는 듯 하다. 평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 몇권이나 될까? 그렇다면 어떤 책을 선별적으로 읽어야 할까?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자신은 최소 20~30년 지나서도 읽히는 책만 읽는다는 말처럼 고전은 그 나름 꾸준히 읽히는 이유가 있을 듯 하다.
"명작을 읽을 권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오솔길이 있는 숲을 산책하는 것과 같고 내가 어떤 오솔길로 가게 될지 그리고 그 풍경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소설은 한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고 이런 장편은 시대상, 사상, 인간의 다양한 모습 등등 정말 큰 숲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특히 장편이다 보니 책을 읽는 동안의 감상과 다 읽고난 후의 감상이 다를 수도 있다.
소설을 왜 읽는가?에 대한 답변 중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한다. 소설은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상과 동떨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어느 시대에 쓰여졌는지가 중요하기도 하다. 물론 동시대성을 느끼게 된다면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되고 소설과 동화되기 때문에 즐거움이 배가가 되겠지만 이것만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역자의 설명이 있다. 그 부분를 보면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나름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난 왜 그만큼을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할까? 그건 마치 큰 숲을 처음 한번 빠르게 지나는 것과 번역을 하자면 천천히 음미하면서 여러번 지나쳤을테니 그런 차이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한스가 스위스 요양시설에 3주 동안 휴양차, 사촌인 요하임을 방문하러 왔다가 7년을 머물렀다는 이 7년이란 시간도 거의 마지막 장에 언급하고 있기에 알수 있지 소설 속에서는 시간이란 흐름 자체도 몽환적인 듯 하다.


저자인 토마스만이 부인의 치료를 위해 스위스의 요양시설에 있었던 경험이 모티브가 되서 시작 되었지만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 스스로 바뀌게 된 사상이 세템브리니와 나프타간의 설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안에 이 소설을 교양소설로 분류하는 메시지가 있지만 이를 따라가기 쉽지만은 않다. 

히페에 대한 기억에서 소샤부인에 대한 사랑으로 바뀌고, 하루밤의 욕망의 실현후에 따른 오랜 기다림. 그러나 페페르코른과 돌아온 소샤에 대한 허무함. 그러면서 세속적이지만 왕자와 같은 페페르코른에 대한 연적임에도 불구한 끌림. 또 그의 자살. 소샤의 떠남. 연애소설적인 부분은 또 이렇게 끝이 나는 듯 싶다. 페페르코른에 대한 한스의 태도에서 돈많고 풍족한 호걸에 앞에서 느끼는 자신의 소시민적인 모습도 느낀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설전마저 희석시키고 주의력를 분산시키는 페페르코른의 무게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분위기. 요하임의 탈주와 같은 요양시설의 떠남과 병의 재발에 의한 복귀 그리고 죽음. 페페르코른의 갑작스런 자살, 세템브리니와 나프타간의 결투에서 예상치 못한 나프타의 자살, 그외에도 죽음이 나설지 않은 요양시설내 철저한 소독으로 표현되는 죽음들.

1차 세계대전이전의 시대상의 배경을 현대의 내가 쉽게 동화하기는 어려우나 시대를 초월해서 한스라는 개인이 겪는 정신적인 혼란 그렇지만 차츰 깨달아 가고 변모해 가는 모습에 공감을 할 수 있다면 소설은 나름 공명을 일으킨다. 책의 사상을 읽자면 1차 세계대전의 배경을 아는 것도 도움은 될 듯 하다.


7년이라는 몽환적인 꿈에서 깨어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저지대의 현실로 돌아오는 계기는 마지막 소단원의 "청천벽력"과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이다. 우리의 주인공 한스, 그리고 거기에 동화된, 나는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다. 이 7년은 유스케가 7년동안 자전거로 세계일주후에 돌아가야 하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꿈에서 현실로 가는 것도 마음속에서는 많은 거부감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계속 그런 꿈같은 상황에만 있을 수 없는 것이 또 인생이 아닐까도 싶다.


명산은 여러번 등반할 가치가 있듯이 마의산은 한번의 지나감에 의해 그 경치가 다 눈에 들어오기에는 산의 스케일이 큰 듯 하다. 언제고 다시한번 더 가야할듯 하다.


12/20/2011


a***k 2011.12.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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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카스토르프의 여정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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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은 오래전부터 읽으려 마음먹었으나 번번히 독서목록에서 빠진 책이었다. 이번에 큰 마음을 먹고 작정하고 읽게 되었고 이 책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사촌인 요하임의 병문안과 자신의 가벼운 요양을 위해 3주간의 일정을 예정하고 베르크호프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의 묘미는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개인에게 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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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은 오래전부터 읽으려 마음먹었으나 번번히 독서목록에서 빠진 책이었다. 이번에 큰 마음을 먹고 작정하고 읽게 되었고 이 책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사촌인 요하임의 병문안과 자신의 가벼운 요양을 위해 3주간의 일정을 예정하고 베르크호프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의 묘미는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개인에게 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마의 산, 즉 마력을 지닌 국제 요양소 베르크호프에 사로잡힌다. 그의 발병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그것은 그의 소망의 표출과도 같다. 산은 마력을 발휘해 그를 사로잡았고 한스 카스토르프란 존재는 산에 머무는 동안 여러모로 변화한다.

 

한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진 사람은 세사람이다. 세템브리니, 나프타, 페페르코른이다. 물론 한스를 이 마의 산에 사로잡는데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클라우디아 소샤를 들 수도 있지만 그녀의 영향은 앞의 세 사람과는 다른 것이다. 한스가 지닌 모호한 감정은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클라우디아 소샤가 한스의 영혼 한 부분을 사로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사로잡은 부분은 세 명의 각기 다른 남자들이 잡은 부분과는 본질적으로 틀리다. 그녀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평지에서의 탈출, 그리고 기약없는 긴 요양세월의 시발점이었을 뿐이다. 그것은 반대되는 감정의 충돌이기도 했다.

 

한스의 요양소 생활의 전반부부터 등장하여 마지막까지 함께 하게 되는 세템브리니는 현실적인 정치감각을 가진 위인이다. 물론 그의 사상은 모호하고 낭만적이기까지 하지만 다른 사람과 다른 섬세한 현실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한스의 영혼을 자신의 사상으로 감화시키려 애쓴다. 한스는 초기 한 동안 세템브리니의 충실한 학생으로 그에게 매혹당하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다. 그는 세템브리니의 영향을 받았으나 추종자가 되지는 않았다. 세템브리니로 인해 촉발당한 한스의 정신세계는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간다. 그것은 마력을 지닌 산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이 산에 무기력하게 빠져있는 자들과 달리 한스의 이성은 많은 분야로 옮겨다니며 점점 더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정체된 듯 한 요양소에서 한스는 성장했으며 그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 것은 나프타란 사람의 등장이다. 나프타는 세템브리니와 반대의 입장에 서서 한스의 영혼을 가지고 투쟁한다. 세템브리니가 문학가로 휴머니스트로 인식된다면 나프타는 반계몽주의자이며 종교 일원론자로 인식된다.

 

나로서는 두 사람 사이의 설전을 무척 흥미있게 읽었다. 그것은 서로 같으면서 다른 것이었고 거울에 비친 상과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의 대립되는 의견과 논박 속에 공통의 것이 숨어있었으며 두 사람의 혼란은 세상의 혼란이었다. 둘의 논쟁은 한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사상은 인문에서 과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었고 각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 논박은 단 한가지의 올바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다른 길에 한 발을 담그게 되는 사상의 영역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대단한 점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 두 사람의 의견을 각각의 입장에서 잘 표현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로 대표되는 이념과 사상의 표현은 한스 카스토르프의 정신세계를 무럭무럭 자라게 했으며 한스는 이 두 사람과는 다른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페페르코른이란 인물은 다른 방면에서 한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그가 세템브리니나 나프타와는 달리 감성과 감정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감을 표현한다. 이성과는 다른 존재감, 그로 인해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존재는 희미해지며 그는 냉철한 이성을 일시에 허물어트린다. 그런 그이기에 그가 선택한 자살이 그의 최후로 잘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면에서 본다면 나프타의 마지막은 페페르코른의 마지막과 다르다. 나프타의 마지막 또한 절망감과 도피에서 비롯되지만 그의 기질과 세템브리니와의 결투를 거치면서 타인의 손에 의지하고 싶은 회피감을 느끼게 한다. 나프타는 서서히 죽어가는 종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절대 권력의 지위를 잃고 어느새 정신 세계에서마저 부정당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거친 한스 카스토르프를 우리는 과연 책의 첫머리에서 말하는 단순한 사람이라 칭할 수 있을까? 그는 이미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진보와 보수의 성향을 모두 지닌 그는 자신의 그 두가지 기질의 대립 속에 마의 산에 사로잡혔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균형잡힌 채로 산에서 벗어났지만 그 벗어남은 요하임의 것처럼 자발적이지 못했다. 그는 세상에 의해 벗어나야만 했고 세상을 벗어난 그에게 펼쳐진 것은 전쟁이었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산을 내려가기를 세템브리니는 소망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어찌 보면 가망없는 자신의 소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스가 던져진 세상의 전쟁은 이미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하임이 살아서 그 전쟁에 참가했다면 과연 그는 그 전쟁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과학의 발달이 불러온 인간성의 상실, 요하임도 나프타도 세템브리니도 페페르코른도 그 세상을 살기에 충분하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한스는 인간성이 말살된 전쟁터로 당당히 사라진다. 그가 쓰러진 동료의 손을 밟고 전진하는 광경이 그래서 내겐 전율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한스 카스토르프의 운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의 삶과 죽음을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쉬운 결말이고 그가 살았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전쟁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단 한 번 읽는 것으로 부족한 이 책은 그래서 긴 여운을 지니는 지도 모르겠다.

YES마니아 : 골드 e***h 2009.04.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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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님께 드리는 편지-마의 산에서
"수사님께 드리는 편지-마의 산에서" 내용보기
수사님,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은 토마스 만의 이라는 소설이에요. 문학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소설은 문학적인 기교보다 등장인물들 간의 토론이나 논쟁이 거의 대부분이라 읽고 있으면 토론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어요. 소설의 주된 내용은 '중세와 근대의 논쟁'이라고 요약할 수 있어요.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병든 사촌형 요하힘을 병문안하기 위해 '마의 산' 베르크
"수사님께 드리는 편지-마의 산에서" 내용보기
수사님,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라는 소설이에요. 문학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소설은 문학적인 기교보다 등장인물들 간의 토론이나 논쟁이 거의 대부분이라 읽고 있으면 토론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어요. 소설의 주된 내용은 '중세와 근대의 논쟁'이라고 요약할 수 있어요.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병든 사촌형 요하힘을 병문안하기 위해 '마의 산' 베르크호프 결핵요양소에 들렀다가 자그만치 7년 동안이나 머물게 되지요. 젊은이다운 치기와 열정을 가진 한스 카스토르프는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토론하기를 좋아해요. 한편으론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할아버지마저 폐결핵으로 돌아가시는 등 죽음과 질병에 익숙한 이여서인지 죽음을 앞둔 병자에 대해 거의 신앙에 가까운 경외심을 가지고 있지요. 그 점에 대해 교육자적인 휴머니스트 세템브리니에게 자주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끝까지 죽음과 질병의 마력, 금지된 중세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해요. 세템브리니는 르네상스의 발원지 이탈리아의 정기를 이어받은 대대로 인문주의적이고 진보주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거든요. 그는 철저한 인문주의자예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사상과 관습을 적대시하고, 오로지 인간의 이성과 덕에 의한 문명의 진보를 추구하지요. 죽음보다는 삶을, 질병보다는 육체적 건강이 더 가치 있다고 봐요. 얼핏 당연한 얘기 같지만, 예수회 일원이자 유태인인 나프타의 반론을 들으면 그렇지도 않아요. 그는 서양의 근대문명이 오늘날 이룩해놓은 인문주의적 패러다임을 철저히 배격하고, 중세적으로 음침하고 신비주의적인 이론을 펼치지요. 즉 그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는 감각적인 쾌락과 방종, 타락에 의해 더럽혀지기 쉬운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육체에 고통을 가하고 부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거예요. 따라서 병든 이나 죽어 가는 이는 건강한 육체로부터 오는 악한 유혹에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오히려 더 경건하고 신성한 존재, 숭배의 대상이라는 거지요. 여기서 죽음과 삶에 대한 논쟁은 화장(火葬), 사형에 대한 찬반논쟁으로 발전하지요. 정치적인 견해에서도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는 전혀 상반된 입장에 서 있어요. 세템브리니는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여서, 과학과 문명의 발전에 의한 인류의 무한한 진보, 인간 수명의 연장, 보다 인간다운 삶, 보다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만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나 나프타는 반계몽주의자로서, 현세에서의 인간의 삶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아요. 신의 아들인 인간의 얼(영혼)의 영원한 삶과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지요. 이승에서의 삶은 내세를 향한 아주 잠깐 동안의 여정일 뿐이라고 보지요. 참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는 거예요(책에서는 나프타의 이러한 견해가 스콜라 철학과 상통한다고 하지만, 저는 노장사상 내지는 다석 류영모의 사상과도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오히려 독재에 의한 신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하지요. 사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는 서로 양극단에 서 있다고 봐요. 이는 곧 철학의 오래된 논쟁인 육체와 정신의 논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죠. 사실 저자의 말처럼 이 소설은 서양 철학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자가 의도했던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대안을 제시했다고는 보기 힘들군요. 아무튼 서양에서는 철학적인 대안으로서 동양 쪽을 자꾸 넘겨다보는 것 같은데, 제 생각으로는 동양철학이 양극단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과 포괄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제 생각엔 동양철학은 대체로 정신적인 수양과 육체적인 금욕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대 물질문명의 대안은 될 수 있을지언정 육체와 정신 논쟁에 있어서 어느 쪽이 우위인가에 대해서 어떠한 해답을 제시한다고는 보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 문제란 영원히 해결하기 어려운 인류의 커다란 숙제인지도 모르겠어요. 분명한 것은 그 해답이란 최소한 적당한 절충주의는 아닐 거라는 것입니다.

[인상깊은구절]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의 양심은 얼마나 속기 쉬운 것인가!인간이란 의무의 소리 한가운데서도 정열에 몸을 맡기기 위한 구실을 교묘하게 가려낸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의무감에서 공평과 평형을 유지하고 세템브리니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거기서 어떤 감화를 받으려 했기 때문에 이성과 공화국과 아름다운 문체에 대한 세템브리니의 견해를 호의적으로 비판하였다.
s*****2 2001.01.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