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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베이컨과 홉스에게서 영국 경험론을 이어받아 완성한 사람입니다. 당대 철학은 과거 신앙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해 자연법 사상을 법과 도덕 체계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 본능을 가지며, 이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서슴치 않기 때문에,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탈피하기 위해 절대 권력에 자신의 권리를 양도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안전 보장을 받는 조건으로 개인은 국가에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기로 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의 상대편인 국왕에게 절대적 충성을 다 바쳐야 한다는 것이죠. 이에 반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다른 인간과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지낸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이성은 신이 주신 능력으로, 인간을 세계와 조화시키는 힘을 갖는다는 것이죠. 이성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세계를 변화시켜 편익을 증진시키는 힘을 부여합니다. 편익을 증진시키는 과정에서 사유재산이 축적되었고, 다시 그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라는 공동체에 자신의 안전을 의존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자연법에 대한 두 철학자의 다른 관점은 서로가 가진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홉스가 왕당파로서 청교도 혁명 때 파리로 망명을 가야했던 처지였던데 반해, 로크는 의회주의자로서 왕정복고의 시기에 암스테르담으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그는 이후 명예 혁명에 가담하여 입헌 군주제 정착에 큰 기여를 합니다. 이 차이가 자연법 사상을 지지하면서도 권력을 왕과 의회 중 어느 쪽이 가져야 하느냐는 생각의 차이를 낳은 것입니다. 로크는 홉스의 자연법 사상과 사회계약설, 주권사상을 한층 더 정교하게 다듬어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제도로 가는 초석을 닦습니다. 한편 베이컨으로부터 시작한 영국 경험론은 로크에 이르러 한층 성숙합니다. 베이컨은 목적인을 배제하고 형상인과 그것이 외부에 끼치는 영향력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순관념을 통해 복잡관념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죠. 로크 역시 이를 더욱 가다듬어 주장합니다. 로크는 관념을 베이컨처럼 둘로 나눕니다. 단순관념과 복잡관념이 그것이죠. 단순관념은 감각기관을 통해 수동적으로 지각되는 관념입니다.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세계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정신 안에 외부 세계의 사물에 대한 관념을 형성합니다. ‘저 벽은 하얀 색이다’라는 것이 단순관념이죠. 이처럼 단순관념은 크기, 형태, 색, 고성(固性)처럼 감각기관을 통해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념들을 뜻합니다. 복잡관념은 이러한 단순관념들이 모여 형성됩니다. "인간은 손과 발, 머리 등이 있고, 지성이 있고, 두 눈이 있고, 두 발로 서서 걸으며, 웃을 수 있다."는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여러 단순관념들이 모인 복잡관념입니다. 그리고 이 예에 포함된 '지성'은 복잡관념을 이루는 또다른 '복잡관념'입니다. 이처럼 복잡관념들은 단순관념이 모여 형성되기도 하고, 복잡관념들이 모여 형성되기도 합니다. 실체와 관련된 단순관념은 분명히 직관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물의 미세한 부분을 온전히 볼 수 없고, 또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부분이 다른 요인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 근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우주가 빅뱅에 의해 탄생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빅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실체에 대해 완벽한 관념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내성된 관념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복잡관념들은 다릅니다. 우정, 사랑, 영원 같은 단어들은 마음 속에 있는 관념들을 결합하여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 안에 그 부분이 모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어떠한 새로운 진리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지성을 가진 존재다'는 명제에는 '인간'이라는 복잡 관념 안에 부분으로서 포함되는 '지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지식도 새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다친다'는 '높은 곳’과, ‘떨어짐'이라는 관념과 연결되어 새로운 지식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지식은 관념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실체와 관련된 관념들이 서로 결합되는 부분에 대해 일치, 불일치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얻어집니다. 로크는 이처럼 복잡관념들에 대한 언어를 명확히 정의함으로써, 의사 소통의 혼란을 줄이고, 각 관념의 결합을 관찰함으로써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그러한 진리의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이성은 신이 주신 능력이었습니다. 데카르트처럼 그 역시 인간의 이성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나'를 바탕으로, 신의 존재를 비롯해 다른 많은 관념들에 대해서까지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는 반대했습니다. 로크는 진리가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신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의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이성이라는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그 능력에 모순되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기적과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여러 사람의 감각을 통한 경험과, 그리고 타인의 증언들을 종합해 이성을 통해 검증합니다. 이성 없는 맹목적 믿음은 광신에 불과한 것으로써, 그러한 계시가 정말 '신으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앙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스콜라 철학의 온갖 관념론적 명제들과, 제1물질 등의 개념들, 나아가서는 데카르트의 '세계는 실체들의 연장'이라는 주장까지, 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진리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철학자들은 신이 만드신 세계는 완벽한 것이기에, 결핍을 의미하는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전해온 '에테르'라는 가상의 물질을 상상해 모든 곳에 에테르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로크에게 그것은 경험되지 않는 '관념'에 불과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연장론은 그러한 에테르의 개념에 근거한 것이었고, 로크에게는 잘못된 진리 탐구의 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지성론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스콜라 철학과, 데카르트의 관념론을 실체가 없는 검증되지 않는 '복잡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그에게 세계는 경험하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었습니다. 로크에게 인간에게 경험되지 않는 세계는 알 수도 없고, 또한 인간의 관념 속에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24시간 동안 잠이 들어, 하루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에게 해당 시간에 대한 '지속'의 관념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시간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나중에 오직 경험만이 존재한다는 버클리와 흄의 철학으로 이어지는 씨앗이 됩니다. 그외에도 ‘주체의 동일성 문제’나, ‘도덕적 관념은 논증이 가능한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하나하나 해당 주제를 세분화하고, 세분화한 관념을 다시 직관함으로써 벽돌을 쌓듯 철학을 완성해 나갑니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베이컨, 홉스, 라이프니츠 등의 당대 철학자들이 '인식론'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이 로크에게 이르러 본격적으로 하나의 완결된 체계로 정립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회계약설이나 자연법 사상보다 그의 '관념'에 대한 체계적 사유를 더 높이 인정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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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베이컨과 홉스에게서 영국 경험론을 이어받아 완성한 사람입니다. 당대 철학은 과거 신앙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해 자연법 사상을 법과 도덕 체계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 본능을 가지며, 이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서슴치 않기 때문에,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탈피하기 위해 절대 권력에 자신의 권리를 양도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안전 보장을 받는 조건으로 개인은 국가에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기로 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의 상대편인 국왕에게 절대적 충성을 다 바쳐야 한다는 것이죠. 이에 반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다른 인간과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지낸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이성은 신이 주신 능력으로, 인간을 세계와 조화시키는 힘을 갖는다는 것이죠. 이성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세계를 변화시켜 편익을 증진시키는 힘을 부여합니다. 편익을 증진시키는 과정에서 사유재산이 축적되었고, 다시 그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라는 공동체에 자신의 안전을 의존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자연법에 대한 두 철학자의 다른 관점은 서로가 가진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홉스가 왕당파로서 청교도 혁명 때 파리로 망명을 가야했던 처지였던데 반해, 로크는 의회주의자로서 왕정복고의 시기에 암스테르담으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그는 이후 명예 혁명에 가담하여 입헌 군주제 정착에 큰 기여를 합니다. 이 차이가 자연법 사상을 지지하면서도 권력을 왕과 의회 중 어느 쪽이 가져야 하느냐는 생각의 차이를 낳은 것입니다. 로크는 홉스의 자연법 사상과 사회계약설, 주권사상을 한층 더 정교하게 다듬어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제도로 가는 초석을 닦습니다. 한편 베이컨으로부터 시작한 영국 경험론은 로크에 이르러 한층 성숙합니다. 베이컨은 목적인을 배제하고 형상인과 그것이 외부에 끼치는 영향력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순관념을 통해 복잡관념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죠. 로크 역시 이를 더욱 가다듬어 주장합니다. 로크는 관념을 베이컨처럼 둘로 나눕니다. 단순관념과 복잡관념이 그것이죠. 단순관념은 감각기관을 통해 수동적으로 지각되는 관념입니다.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세계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정신 안에 외부 세계의 사물에 대한 관념을 형성합니다. ‘저 벽은 하얀 색이다’라는 것이 단순관념이죠. 이처럼 단순관념은 크기, 형태, 색, 고성(固性)처럼 감각기관을 통해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념들을 뜻합니다. 복잡관념은 이러한 단순관념들이 모여 형성됩니다. "인간은 손과 발, 머리 등이 있고, 지성이 있고, 두 눈이 있고, 두 발로 서서 걸으며, 웃을 수 있다."는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여러 단순관념들이 모인 복잡관념입니다. 그리고 이 예에 포함된 '지성'은 복잡관념을 이루는 또다른 '복잡관념'입니다. 이처럼 복잡관념들은 단순관념이 모여 형성되기도 하고, 복잡관념들이 모여 형성되기도 합니다. 실체와 관련된 단순관념은 분명히 직관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물의 미세한 부분을 온전히 볼 수 없고, 또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부분이 다른 요인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 근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우주가 빅뱅에 의해 탄생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빅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실체에 대해 완벽한 관념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내성된 관념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복잡관념들은 다릅니다. 우정, 사랑, 영원 같은 단어들은 마음 속에 있는 관념들을 결합하여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 안에 그 부분이 모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어떠한 새로운 진리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지성을 가진 존재다'는 명제에는 '인간'이라는 복잡 관념 안에 부분으로서 포함되는 '지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지식도 새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다친다'는 '높은 곳’과, ‘떨어짐'이라는 관념과 연결되어 새로운 지식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지식은 관념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실체와 관련된 관념들이 서로 결합되는 부분에 대해 일치, 불일치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얻어집니다. 로크는 이처럼 복잡관념들에 대한 언어를 명확히 정의함으로써, 의사 소통의 혼란을 줄이고, 각 관념의 결합을 관찰함으로써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그러한 진리의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이성은 신이 주신 능력이었습니다. 데카르트처럼 그 역시 인간의 이성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나'를 바탕으로, 신의 존재를 비롯해 다른 많은 관념들에 대해서까지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는 반대했습니다. 로크는 진리가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신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의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이성이라는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그 능력에 모순되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기적과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여러 사람의 감각을 통한 경험과, 그리고 타인의 증언들을 종합해 이성을 통해 검증합니다. 이성 없는 맹목적 믿음은 광신에 불과한 것으로써, 그러한 계시가 정말 '신으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앙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스콜라 철학의 온갖 관념론적 명제들과, 제1물질 등의 개념들, 나아가서는 데카르트의 '세계는 실체들의 연장'이라는 주장까지, 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진리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철학자들은 신이 만드신 세계는 완벽한 것이기에, 결핍을 의미하는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전해온 '에테르'라는 가상의 물질을 상상해 모든 곳에 에테르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로크에게 그것은 경험되지 않는 '관념'에 불과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연장론은 그러한 에테르의 개념에 근거한 것이었고, 로크에게는 잘못된 진리 탐구의 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지성론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스콜라 철학과, 데카르트의 관념론을 실체가 없는 검증되지 않는 '복잡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그에게 세계는 경험하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었습니다. 로크에게 인간에게 경험되지 않는 세계는 알 수도 없고, 또한 인간의 관념 속에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24시간 동안 잠이 들어, 하루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에게 해당 시간에 대한 '지속'의 관념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시간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나중에 오직 경험만이 존재한다는 버클리와 흄의 철학으로 이어지는 씨앗이 됩니다. 그외에도 ‘주체의 동일성 문제’나, ‘도덕적 관념은 논증이 가능한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하나하나 해당 주제를 세분화하고, 세분화한 관념을 다시 직관함으로써 벽돌을 쌓듯 철학을 완성해 나갑니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베이컨, 홉스, 라이프니츠 등의 당대 철학자들이 '인식론'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이 로크에게 이르러 본격적으로 하나의 완결된 체계로 정립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회계약설이나 자연법 사상보다 그의 '관념'에 대한 체계적 사유를 더 높이 인정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