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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의 창립에 산파역할을 하였고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학의 거두였던 김현선생의 평론집이다. '상상력과 인간'은 한국시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의 글과 김춘수, 김구용, 고은, 정현종등의 시인에 대한 대략적인 시인론을 말하고 있다.
'시인을 찾아서'에서는 김춘수, 김수영, 김종삼, 전봉건, 박재삼, 방성룡, 황동규, 정현종 우리 현대시를 이끌어간 대표적인 시인을 직접 찾아가서 그 시인의 근황과 시인과 나눈 이야기, 문학과 시에 관한 이야기 등 서술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해 우리나라 현대시사를 우리가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시인과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김현의 섬세한 비평을 통해 문학을 새롭게 보는 방법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삶과 어떻게 싸우며, 그 싸움을 어떻게 개성있게 그리고 설득력있게 표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지적, 정신적 작업에서 떼어낼 수 없는 기본 명제이다. 시를 가능케 한 정신의 자리와 그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몫의 크기야말로 시평의 주된 탐구대상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 고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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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어떻게 싸우며, 그 싸움을 어떻게 개성 있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표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지적·정신적 작업에서 떼어낼 수 없는 기본 명제이다. 시를 가능케 한 정신의 자리와 그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몫의 크기야말로 시평의 주된 탐구대상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 고백한다."(11쪽)
광태연구에서 광태는 생물학적인 정의가 아니라 푸코식의 문화사적인 정의에 속한다. 쉽게 말하면 위대한 정신을 재현한 천재들의 광기를 말한다. 김현은 위대한 정신은 한 사회의 정신적 분위기를 폭넓고 첨예하게 제시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 그 문화의 모순으로 자기규정함으로써 그 문화의 완전한 원에 흠을 가게 만드는데, 이런 정신은 반드시 광태를 내포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죽림칠현에 비유되는 고려말 '해좌칠현(海左七賢)'중의 한 분인 임춘(林椿)과 프랑스의 미조네이슴이 광태연구의 분석대상이다. 저자가 고려말 천재시인 임춘을 일제 식민치 치하의 구인회(九人會)의 특성과 비교해가며 설명한 점이 독특하다. 김현에게 죽림칠현이나 해좌칠현이나 구인회나 모두 신구 문화의 접변시에 발생하는 고통과 좌절 속에서 태생된 문학적 양태였다. 가난과 하찮음에 대한 임춘의 탄식은 신분적 불평등에 의한, 보들레르식의 표현을 빌면, '저주받은 시인'의 실존적 탄식이었다. 구인회는 근대주의 문학관을 수입하여 받아들이지만 근대성의 현실인식과 비판력은 일제의 악랄한 문화정책에 의해 왜곡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그저 깔끔한 문장주의나 지나간 시대를 회고조로 그리는 체념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한편, 미조네이슴은 일종의 집단적인 광태로서 원시인들이 새것에 대해 보이는 미신적인 공포와 무턱대고 싫어하는 혐오증을 말한다. 새로운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의식이 자신의 상태를 최소한도로 축소시켜 다른 도전을 받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우러나온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수동성으로 자신을 최소한도로 감추어서 타인의 눈에 자신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으려는 바슐라르가 말한 '로트레아몽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김현은 미조네이슴을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시학의 문학적 코드로 간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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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비평의 정점, 김현의 전집 중 세 번째 권이다. 이 책의 편집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 "김현 전집 제 3권은, 그의 초기 시론·시인론 들을 모은 두 권의 저서, 『상상력과 인간』(일지사, 1973, 국판, 305면)과 『시인을 찾아서』(민음사, 1975, 신4·6판, 153면)로 엮어진다. 소설론 중심의 본 전집 제2권과 짝을 이루며 김현 비평의 초기 면모를 조감케 하는 이 3권은, 바로 그런 연유에 의해, 2권과의 상보적 관계 및 전집 전체의 구성을 고려하여 원본에 부분적인 변형을 가해 묶은 것이다. 여기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의 문학적 탐색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구체화되어가는가 하는 과정 속에 드러나는 현장 비평가, 치밀한 작품 분석가로서의 그의 첫모습이다."
김현을 읽고 싶다는 욕구는 그가 쓴 어떤 텍스트의 일부를 보고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를 우상에서 크게는 거의 신화적 존재로 보는 그의 제자와 후학들의 고백에서부터이다. 김현, 김현, 김현. 이 이름을 나는 그의 텍스트에서가 아닌 다른 텍스트에서 무수히 보고 또 봐야했다. 개인적으로 문체란 것이 실재하는 것임(!)을 알게 한 고종석의 글들에서 그의 문체와 사고의 메아리를 처음으로 들었으며, 다른 비평가들의 평문에서도 그의 위상은 전설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역시 모든 신화적인 이름들은 실제로 체험되거나 직접 맨 눈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별로 없다. 풍문에서 시작되어 풍문에서 끝나는 것이다. '고전이란 이름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잘 읽지 않는 것'이란 말처럼, 김현이란 한국 문학비평의 우상적 존재를 나는 풍문으로만 접해 왔었다. 이제, 그를 만난 것이다.
많은 평론집을 읽어보지 못해서 내 평론에 대한 측량술을 불신할 수밖에 없지만, 이 평론집에 나타난 그의 면모는 크게 보아 이렇지 않을까. 일단, 불문학도로서의 자의식. "유럽 문학, 특히 내가 도취되어 있었던 프랑스 문학을 나는 나의 정신의 선험적 상태로 받아들였고, 그 상태 속에서 모든 것은 피어나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닌 몇 해 동안도 그러한 정신 태도의 연장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보들레르와 랭보, 말라르메와 브르통, 그리고 프루스트와 쥘리앙 그린 들을 읽었고 그들의 정신 세계를 나는 나의 내부에서 거의 선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 프랑스 문학을 피부로 느낀다고 믿은 정신의 불구자였다. 정신의 불구자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16쪽) 「한 외국 문학도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이 글의 부분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평론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말라르메와 발레리, 랭보와 보들레르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한국 시인들의 뛰어난 가치를 말하지 못한다. 그가 처음으로 완전히 몰입하고 도취하여 읽은 것이 프랑스 시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극단적으로 사랑했던 문학적 연인은 프랑스 시였으므로, 그는 새로운 연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시들을 보고서도 항상 그 예전의 프랑스 시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 평론집이 초기작들을 묶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 이후의 김현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의 분석은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과 정신분석학에 많이 기대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상상력과 심리의 뿌리를 곱게 어루만지듯 꿰뚫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촘촘한 그물망을 치는 이론이라 할지라도 다채롭게 통통 튀어 다니는 현실세계를 그대로 포착해서 설명해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론과 문학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비평은 언제나 실패하는 다리 역할만을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인을 찾아서』의 에세이적인 평문들이 마음에 든다. 김현이 시도한 이 평문의 형식은 수많은 모방을 낳아서 그대로 하나의 평문의 유형이 되었다고 한다.(전에 읽었던 고종석이나 권성우의 시인론이 떠올랐다. 바로 이런 형식이었다. 특히 고종석이 쓴 황지우론은 글의 매듭 부분이 독특한 감성의 여운을 남기는 것인데 김현의 그것과 유사해서 흥임로웠다.) 실제로 시인을 찾아가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살아있는 대화를 잡아낸다. 시인과의 영혼을 다 드러낸 대화가 빼어난 평론의 정의라면, 이런 에세이 비평은 형식까지 평론의 의의에 다가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인상깊은구절] 우리에게는 깊이의 시가 없는 것이 치명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동양인의 사고가 분열을 모르기 때문인지 어쩐지 나는 모르지만,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분열을 통해서 인간은 성장하고 문학 역시 자란다는 그 사실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