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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현대 시평의 기준점을 제시한 이가 김현(1942~1990) 선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선생의 실제 비평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다. 또한 선생이 눈여겨본 7080년대의 '젊은시인들'이 이제는 문단의 거목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청춘 시절이 조성한 상상 세계와 시적 욕망을 엿본다는 재미도 넉넉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저자가 시평에서 부분 인용하거나 짧게 언급한 시들은 시간이 이미 많이 흘렀기에 편집자가 주에서 풀어주거나 전문을 소개하는 친절함이 깃들어 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한마디로 말해서 좀더 상세한 편집과 해제가 요구된다.
김현 선생은 '젊은 시인'이 주는 이미지를 미결정의 불안, 낭만적인 열정과 끓어오르는 과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는 시대의 욕망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저자가 주목한 '젊은시인들'의 테마는 가난과 죽음 그리고 상실감이 대세였다. 70년대와 80년대에 명랑시와 핑크시, 환락시를 노래할 수 있었던 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시인의 존재가 순결과 희망 그 자체를 상징한다면 당시는 말그대로 '죽은 시인의 사회'였다. 시대의 우울과 불안을 그대로 반영한듯 젊은시인들의 시는 실존적 아픔과 번뇌를 어둔 이미지로 감싸안았다. 젊은시인들의 상상세계가 보인 감정적 색채는 늘상 가난, 아픔, 고뇌, 슬픔, 동정과 분노였다. 젊음은 일부러 초탈하려고 해도 초탈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얼마든지 염세할 수는 있었다. 예컨대 강창민의 시는 죽음·빛·외로움·바다·물 등의 이미지를 노래하고 김명인은 '더러운 그리움'과 비극적 세계관을 시에 담았고, 이하석은 광물질을 소재로 부패의 상상력을 보였다. 최승호가 보여준 거대한 변기의 세계관도 당시의 시대상, 실존상이 아니었나 싶다. <젊은 시인들의 상상세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의 욕망', 즉 욕망의 뿌리에 대한 인식탐구다. 김현 선생은 젊은시인들의 개인적 상흔으로부터 사회적 관계의 양태에 이르기까지 고루 살피고 있다. 김광규의 시는 "어려운 한자나 관념의 과시적 노출이 거의 없"는 산문의 리듬으로 일상의 소시민적 삶에서 시적 미학을 이끌어내고 있다. 반면에 최석하의 시는 사투리·비어·은어를 사용한 음악적 리듬이 특색이고 이는 '비진정성의 부정성'이란 시적 효과를 불러온다. 즉 상두꾼, 남사당패, 거지, 꼴꾼, 행상, 무당패들의 비공식 언어들은 교양없고 상스러운 한탄을 통해 헐벗고 병든 세계를 그려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