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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여,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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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하버마스가 좋아 푸코가 좋아?"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2대 장문인과 프랑스 아카데미공장의 CEO간의 선호도 조사인 셈인데 아마 장삼은 하버마스를. 이사는 푸코를 각각 선택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사결과가 별다를 건 없다. 하버마스냐 푸코냐? 나도 한땐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한 적이 있다. 초기엔 마르크스물을 먹은 이답게 하버마스의 체계적인 비판이론이 머리에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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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하버마스가 좋아 푸코가 좋아?"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2대 장문인과 프랑스 아카데미공장의 CEO간의 선호도 조사인 셈인데 아마 장삼은 하버마스를. 이사는 푸코를 각각 선택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사결과가 별다를 건 없다. 하버마스냐 푸코냐? 나도 한땐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한 적이 있다. 초기엔 마르크스물을 먹은 이답게 하버마스의 체계적인 비판이론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끝없이 우려낼 수 있는 사골과 같은 푸코의 담론과 매혹적인 글맛에 맘이 쏠렸다. 당초 하버마스를 적극 옹호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푸코가 분명 마르크스를 도용하면서도 마르크스를 까고 프로이트를 이용하면서도 프로이트에 반하는 행위에 치를 떨었기 때문이다. 내게 하버마스는 정직한 선비와 같았고 푸코는 사기꾼 기질이 농후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처음으로 맞장뜬 두 사상가는 기름과 물과 같은 얄궂은 운명이었다. 두 대가의 담론은 종합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가 서로의 담론을 오독하고 곡해했다.
 

이들의 담론을 전문적으로 견줄 수 있는 깜냥이 생기고 난 뒤에는 확연히 푸코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당시엔 하버마스의 두꺼운 저작을 읽는 후배들을 보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차라리 영어 원서로 보는 게 편하다'는 말은 하버마스를 논할 때면 늘상 하게 되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그러나 결국 푸코와도 확실한 결별을 짓게 되었다. 무한 반복되는 통조림 음식과 같은 푸코의 이론들이 언젠가부터 물리기 시작했다. 한때 푸코의 미완의 담론을 체계적으로 완성하거나 통섭적으로 심화하려는 의욕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이용하고 가공하고 변용할 뿐인 '푸코 통조림공장'에서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후 푸코의 점괘대로 들뢰즈를 파고들었지만 이 역시 '아듀'다. 아마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았을까.  

 

한창 푸코를 읽을 때 김현 선생의 <시칠리아의 암소>는 신선했다. 남들이 다들 규율권력이다, 생명권력이다, '인간은 죽었다'고 외쳐댈 때 차분하게 푸코의 문예비평을 소개한 선생의 안목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사회과학도라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푸코의 문학비평을 다루고 있는 <시칠리아의 암소>는 권력담론만 무성했던 학술시장의 레드오션을 벗어난 신선한 블루오션으로 들어왔다. 이번 글은 단지 이를 기념하고자 했다.

z***a 2012.02.18.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