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계발이 지나치면 자기학대가 된다. 아니, 자아실현은 이미 자학이 되었다. 수많은 자아에 대한 학설이 있지만 이제 우리는 '시달리는 자아' 혹은 '병든 자아'에 익숙하다. 자아실현 열풍과 시달리는 자아는 서로 일종의 악순환을 형성한다. 이런 자기계발문화는 자본주의를 굴리는 커다란 추동력이다. 자아에 대한 과도한 낭만주의적 이상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소명의식과 왜곡된 개인주의 문화와 뒤섞이며 자기계발산업이 하나의 소비트랜드로 자리잡았다. 가끔 매스컴에 소개되는 사이비종교의 문제도 사실 시달리는 자아와 관계가 깊은 현상이다. 사회학자 미키 맥기(Micki McGee)는 [자기계발의 덫](모요사, 2011)에서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끊임없이 자기계발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불안한 초상과 자기계발산업의 긍정 마케팅과 긍정 효과의 이면을 고발한다. 저자는 [긍정의 배신](부키, 2011)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와 마찬가지로 자기계발서나 자기계발프로그램은 현실변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은 언제나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우리 인생이 결코 동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살벌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 자란 성인들도 가슴 깊은 곳에 원하는 꿈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가 강박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물론 동화책만의 탓은 아니다. 이런 유아적이고 향수어린 행복론의 밑바탕에는 서구에서 건전한 문화적 가치로 평가받는 개인주의 문화와 자유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빈털터리에서 백만장자로 자수성가하는 이야기는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인데 이러한 드림이 고무하는 극도의 개인주의는 사람들을 공공의 선이나 복지 문제에 어둡게 만들고, 아울러 삶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개인의 성격이나 능력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자신을 불공평한 사회적 환경의 희생자로 보는 것을 오히려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벤저민 프랭클린, 앤드류 카네기, 빌 게이츠 같은 인물에게서 개인적 성공과 자아실현의 현실적 이상형을 발견하고 자극받는다. 자수성가한 사람들-더 최근에는 자수성가한 여성들-을 보면서 누구나 꾸준하게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 사회적, 개인적 성공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위안을 얻는다. 이런 환상은 상당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오류다. 만약 성공이 완전히 한 개인의 노력에만 달렸다면 어떠한 실패도 오직 개인적 단점이나 약점에서만 비롯된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이 도출된다."(23쪽)
자기계발 문화는 고도 자본주의 문화의 결과물이다. 착취의 폭과 크기를 키우기 위하여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생산 영역과 소비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상업적 영역과 개인적 영역의 구분이 와해되고, 남성적 영역과 여성적 영역의 구분이 와해되었는데 자기계발문화는 이러한 와해의 촉진제였다. 베버식으로 말한다면, 합리적이고 이해타산적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낭만주의적 윤리'가 상호보완적으로 자기계발문화를 움직이고 합법화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사회학자 로버트 N. 벨라는 개인주의 문화를 실용적 개인주의와 표현적 개인주의로 구별하는데 이 두 가지 개인주의 모두 자기계발 문화를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실용적 개인주의는 남성의 세계관으로 도구적 합리성에 기초하고 시장지향적이고 부와 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경쟁한다. 반면에 표현적 개인주의는 여성의 세계관으로 종교적 신비주의에 기초하고 예술지향적이고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획득을 목표로 한다.
"합리적 차원에서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과 합리적이고 (칸트의 윤리적 명령의 전통을 따라) 윤리적인 인간 두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표현적 차원에서는 반근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유형과 점점 그 출현빈도가 늘어나고 있는 미학적 유형을 볼 수 있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에서는 거의 대부분 정글, 전쟁, 경쟁적인 스포츠, 그리고 비즈니스 등의 비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체계 안에서 자아는 동물, 전사, 경쟁자, 그리고 경영인이거나 세일즈맨 혹은 그 양자 모두로 이해된다.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자아는 여행자 혹은 겸손한 하인의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 또한 경제적 이해에 의해 지배되건 추상적인 윤리에 의해 지배되건 합리적 자아는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위해 프로그램될 수 있는 인공지능적 존재로 상정되기도 한다. 빛, 유동성, 흐름, 예술작품으로서의 삶 등의 비유를 수반하는 표현적 요소들은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여성을 겨냥한 서적들에서 출현한다. 양자 모두를 고려했을 경우, 이 유형들은 서로 보완적이면서 종종 상호모순되는 삶의 지침들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82-3쪽)
실용적 개인주의는 특히 정신적 소외감을 낳는다.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언(Richard M. Ryan)과 팀 캐서(Tim Kasser)는 인생의 열망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눈 바 있다. 부에 대한 열망, 명예에 대한 열망, 신체적 매력에 대한 열망,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열망, 공동체에 공헌하려는 열망, 성숙한 개인이 되려는 열망이다. 여기서 돈과 명예, 신체적 매력이라는 세 가지 열망은 외적 열망에 속하고 다른 세 가지 열망은 내적 열망에 속한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외적 열망이 강렬한 사람일수록, 다시 말해서 돈과 명예, 신체적 매력에 집착할수록, 더 많이 통제받고 정신 건강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바로 이런 정신적 소외감을 겨냥해 우리를 유혹한다.
"자기계발서는 독자들을 불완전한 존재로, 미, 건강, 부, 취업, 애정, 혹은 특정 분야의 기술적 지식 등 어떤 근본적 요소가 결여된 존재로 정의하면서 자신을 해결사로 자처한다. 그 결과 전염병처럼 확산된 결점에 의존해 자기계발 산업이 번창하고 영속적으로 재생산된다. 과거에는 구강청결제나 비듬샴푸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생활의 기본예의를 지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대신 사람들은 시간관리나 명상, 다이어트와 영적 탐험, 자기탐색과 자기확신 등의 일련의 체계, 즉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30-1쪽)
|
|
책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떠 오르는 생각을 메모했습니다.
|
||||||||||||
|
예전에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었지요. 누군가 신문 광고를 냈습니다. "저에게 10달러를 보내시면 백만장자가 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돈을 보냈더니, 백만장자가 되는 법이 편지로 날라왔습니다. "저처럼 광고를 내세요" ======== 자기 계발의 유혹역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계발해야 한다고, 자신을 계발하는 것에 게으름을 피우면 당신은 뒤쳐지고, 결국은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겁을 주는 사람들이야 말로, 사람들의 자기 계발로 진정한 득을 보는 사람일 지도 모르는 것이죠. 이 책은 요즘처럼 강박적으로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 계발의 궁극적 목적은 보다 효율적인,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그 쓸모라는 것은 개개인의 자신의 쓸모가 아니라, 취직한 뒤에, 직장에서의 쓸모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의문이 듭니다. 왜 고용자의 효율을 위한 노동자의 계발 비용을 노동자가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요? 회사에서는 영어관련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토익 점수를 그렇게 요구하는 것일까요? 원인은 아마, 생산의 효율성이 증가하면서, 노동력의 가치가 줄어들고, 그렇게 줄어든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동자 사이에서의 자기 경쟁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계발의 목적은, "경쟁자 보다 뛰어난 노동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이렇게, 스스로의 욕구를 위한 자기 계발이 아니라, 타인, 혹은 자본가를 위한 자기 계발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진정한 자기 계발은,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재능을 개발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계발의 목적을 확실히 한다면, 자기 계발의 과정에서도 또 설령 계발에 실패하더라도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책은 사실 좀 실망스럽습니다. 번역이 구글 번역기에 넣고 돌린 것 같은 느낌으로, 번역가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기계적으로 변환 시킨 듯한 느낌입니다. 출판사는 출간일의 덫에 걸려서 감수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발행시켜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
|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조건을 쓴 저자가 파산했다는 코메디 같은 얘기를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냥 잠깐 저런 사람들도 파산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넘어갔다. 그런 책 쓴 사람이 파산한다고 그런 책을 사람들이 안 살 일도 없을 테고, 어차피 그런 책 안 읽는 나 같은 사람이야 관계 없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쉽게 잊혀진 것 같다. 마치, 담배 피는 사람이 몸에 나쁜 지 알면서 계속 피는 이치와 같은 것 같다. 그냥 중독일 뿐이다. 우리가 스트레스 받을 때 더 스트레스를 주는 담배를 찾듯이, 또는 술을 먹듯이, 사람들은 불안한 사회의 위안으로 자기계발서들을 찾는다. 문제는 이런 자기 계발 서들이 주는 해악은 담배나 술 보다 더 나쁠 수 있다는 데 있다. 자기 계발서들의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1)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개인에게로 돌린다. 2)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했던 얘기들을 재활용한다 3) 해결책이 쉽다. 최선을 다하면 된다. 첫 번째가 가장 큰 문제다. 경제 위기로 집안의 한 가장이 해고 되었다면 그것은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실패자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퇴근하고도 놀면 안 된다. 인맥을 쌓고 헬스클럽에 다니고, 피부 관리를 받아야 한다. 영어도 배워야 한다. 공책에도 자신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써 보고, 실천 방법도 구체적으로 써 봐야 한다. 눈을 감고 자신의 목표를 상상하는 명상도 해야 한다. 반복하다 보면 그것들이 머릿속에 박히게 되고, 그 꿈이 현실이 된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도 지녀야 한다. 참 쉽다. 문제의 원인을 타인이나 사회로 돌리면 정~말 패배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가 되나. 두 번째는 독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책들은 대부분 과거의 나온 종교서적이나 계발서의 재탕이다. 한 얘기를 또 한다. 한마디로 돈을 날로 먹는다. 그때 그때 시대 상황에 따라 표현 방법만 조금씩 바뀔 뿐이다. 우리 나라도 한때 자기계발서들이 유행했고, 지금도 유행하고 있으며, 요즘은 스님들까지 편승하고 있고, 여기도 일부 타종교인들까지 끼어들고 있다. 깨달으신 분들이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조언을 하는 게 나쁠 것은 없지만, 역시 자본에 의해서든 종교에 의해서든, 그런 류의 책들은 똑같은 의도된 혹은 의도되지 않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해결책이 너무 쉽다는 것이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도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지나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부처님 수행법의 요체는 팔정도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팔정도에 골방에 처 박혀서 노트에 감사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쓰라는 얘기는 안 나오고, 계산하에 사람을 만나라는 얘기도 안 나오고, 눈 감고 머리속으로 자신의 성공을 끊임없이 상상하라는 얘기도 나오지 않는다. 또 모든 너의 실패는 다 너가 멍청하기 때문이야, 라는 얘기도 안 나온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기계발서들은 이런 근거 없는 얘기를 남발한다. 책에서 말하는 해결책은 하나이다. 나와 너가 직장에서 짤린 것이 나와 너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또 새로운 직장을 얻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혼자서 최선을 다하는 데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혼자 최선을 다 했는 데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지금 나의 불행이 생겼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해결을 위해 개인적 원한으로 백주 대낮에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사회적 정치적 실천이다. |
|
서점에 가보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들이 자기개발서다. |
|
한때 스티브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도전하다가 포기한적이 있지만, 언제가는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목록으로 남아있었다. 저자는 서두에 코비의 딸이 육아에 시간을 빼앗기자 소위 시간관리 전문가인 코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p9'스케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달력따위는 잊어버려라' 라고 하는 코비의 모순성을 이야기한다. 자기사명서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모든 하루 순간을 체계화 하는 계획도구들을 쓴 책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그가 , 자녀양육에 종사하는 딸에게는 자신의 도구가 무용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모순을 이야기한다. |
|
요새 미친듯이 부는 자기계발 열풍에 일침을 가하는 책 근데 솔직히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이 책은 미국의 상황을 분석한것이라 우리나라와는 다소 맞지 않겠지만 어느정도 지금과같은 자기계발열풍은 정상이 아니라는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는 한다.
물론 자기계발을 한다는 것은 좋지만 누구나 다 영어를 잘해야 하고 누구나 다 미친듯이 공부를 해야하고 누구나 다 계획대로 엄청나게 열심히 사는것이 맞지는 않는다.
다 그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이고 그 만의 스타일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을 뭐라할수는 없는건데 요새 자기계발서들을 보면 사람들을 모두 획일화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런 자기계발 열풍이 경제적인 상황,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어떤 층을 겨냥하고 쏟아져나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에 동감했다. 여성의 경제적 진출이 많아지는 시기에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지하는 자기계발서가 나오고 청년실업이 한창일 때 청년들을 일깨우는 자기계발서가 나오는 것은 사회의 한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의 가장 큰 장점일수도 있고 문제일수도 있는 것은 그 책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반성을 하게 유도할수도 있지만 자괴감을 가질수도 있게 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문체를 보면 거의 명령조이고 다그친다. 왜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너는 노력을 하지 않느냐?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는 니가 부족해서 안되는 것이다. 이런말만있다.
막상 자신의 적성을 찾아보라던지, 자신의 꿈을 찾는 방법이라던지의 조언은 굉장히 상투적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책의 저자가 유명한사람이라던지 무언가에 성공을 한 사람이라면 그런 상투적인 말들도 굉장한 명언이 된다. 물론 성공한 사람들은 사소한 습관까지도 다 지켰기 때문에 성공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재 이시간에도 자기계발서들을 보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목적없는 자기계발에 정말 지친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저자가 책을 처음 출판하는 거라 그런지 책이 그렇게 재밌게 진행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참고문헌이라던지 주석을 보면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한 티가 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나중에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
|
나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는 편이었다. 적어도 내 또래 친구들 중에서는 그랬다. 초등학교 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부터 시작해서 미국산 자기계발서들을 제법 읽었다. 아니, 소비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까. 자기계발서의 실천지침대로만 하면 인생이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환상을 맛보곤 했다. 그럼에도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실천지침을 제대로 행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또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저자는 이렇게 '가능성의 환상'으로 독자들을 현혹하는 자기계발서들을 포르노그래피라고 단언한다.
내가 주로 읽었던 것은 이 책에서 '합리적인 자기통제'라고 부르는 종류의 책들이었다. (이 분야의 대표작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있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인생을 통제하고 싶었나보다. 이런 류의 책들은 주로 남성들의 성공신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제는 그런 성공신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80년대에 경제가 어려워지고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이 문제가 제대로 드러났다. 아빠도 엄마도 자기를 통제해서 성공하려 한다면 소, 아니 이 경우엔 애는 누가 키우냐는 것이다. 여성들도 직업적 성공을 원하게 된 상황에서, 이러한 자기통제의 신화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또다른 종류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묘사되는 '예술가-노동자' 모델은 돈에 개의치 않고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이미지를 내면화 하라고 요구하며, 노동자들을 저임금, 혹은 무보수노동으로 몰아낸다. 내가 '자아실현'이라고 믿었던 '일의 즐거움' 속에 이렇게 교묘한 착취구조가 숨겨져 있다니 충격이다.
또한 저자가 사회이론가 존 사벨을 인용하여 설명하는데 따르면, "공과 사, 일과 여가 간의 구분이 붕괴되는 것은" '열린 노동시장'의 특성이다. "자신의 고용 가능성을 위한 작업은 점점 더 확장되는 임무가 되는 반면에, 노동과 여가, 그리고 가족생활 사이의 구분은 흐릿해진다." 여기서 '자신의 고용 가능성을 위한 작업'이 곧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들이 묘사하는) 자기계발일 것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해야할 필요성에 부딪친다. 자기계발은 자신의 상품가치를 향상시키는 일이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판매 가능한 외양을 지니는 것과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자아에 진실한 것) 사이에 괴리가 존재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계발서들은 마음까지 관리하라고 조언한다. 여기가 '긍정'이 요구되는 지점이며 '감정노동'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실현하기 위한 자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성공을 위해 꾸며진 자아, 즉 '보여지는 자아'만 남는다. 내가 사라지고 상품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공이라고, 자기'계발'이라고 불러야 할까.
생각해보면 나는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어떤 노력을 해야 좋을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읽는 자체만으로 이미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은 방법이 많고,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도 저렇게 많은데, 왜 경제는 계속 어려운 것이며 사람들은 계속 힘들어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바로 그러한 자기계발의 아이러니였다. 노력할수록 더 빈곤해지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계발의 덫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