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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내용보기
한때는 현재였던 그들의 일상까지도 역사로 껴안은 그곳 단성사 차이를 소멸시키고 모든 것을 통합하는 그럼으로써 문화를 획일화시키는 자본의 힘에 밀려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우리 영화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그곳 단성사. 단성사는 1907년 6월 경성의 실업가 지명근,박태일,주수영이 중부 파조교앞, 지금의 종로구 묘동 56번지에  설립한 조선인 자본에 의해 만든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내용보기

한때는 현재였던 그들의 일상까지도 역사로 껴안은 그곳 단성사

 

차이를 소멸시키고 모든 것을 통합하는 그럼으로써 문화를 획일화시키는 자본의 힘에 밀려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우리 영화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그곳 단성사.

 

단성사는 1907년 6월 경성의 실업가 지명근,박태일,주수영이 중부 파조교앞, 지금의 종로구 묘동 56번지에

 

설립한 조선인 자본에 의해 만든 최초의 극장단성사 우리는 사적으로 지정해야할우리 역사의 현장을

 

버렸다.

 

단성사에 얽히고 우리 영화계의 초창기 이야기들이 이렇게 재미있게  전개되다니 재미나게 읽었다.

 

단성사의 역사가 있고 그곳에서 일한 숨은 역사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류가 세계로 진출하나보다.

 

이 책을 쓴 시도가 아주 좋았다.

 

 

제목 :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

 

부모님에게 가서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야만이란말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만든 말로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명보다 우수함을


말하기위해 만든 말이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고 그 이후가 700년간의 무신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현재 천왕이 사는 도시 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가문의 수장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있는데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난립해 싸우는

 

전국시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청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현단위의 땅에 지배자인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영주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시킨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욕이라 알고있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6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소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일본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이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과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부는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고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이룬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께 논다는 겸손의 뜻이 원형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으로 부르던 정자를

 

지은후 그곳의 뜻이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나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녕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 담장의 일부,북촌을 밀어버리고 빌라단지를 만들자는 사람들,


창덕궁의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시원스럽게 밀어버린 사람들,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조선시대 세운 단성사가 헐릴때 우리 영화인들은 돈세는 일만했다.


돈에 미친한국영화인들,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씨의 집도 싹 밀어버리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바로 종로의 '피맛골'이다.


종로통 대로변 정승판서행차의'말을 피하다'에서 유래된 피맛골은 종로통의 뒷골목이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은 한국이 지닌 약점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법이지만 역사의 현장은 고이 보존되고 간직되어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하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국민들은 무관심하거나

 

부순사람을 지지한다.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떄

 

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우리는 이런 야만의 시대에 살아야하는가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서울, 북촌에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일생에 한 번은 독일을 만나라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내사랑 백석


맨큐의 경제학 페이지230 (역사적건물의 외부효과)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글제목 :  조선시대 세운 최초의 현대식극장 종로3가 단성사

 

용산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기념강연회에 갔었다.


 


'주류성'이란 책을 쓰신 동국대 사학과 이기동교수님이 나오셨다.


 


강의도중 무령왕릉발굴시 이틀만에 졸속으로 끝냈다고 한국사학계는 두고두고 애통해합니다.


 


도굴수준의 발굴이었다 하신다.


 


이때가 노무현대통령시기다. 그 바로 전 중앙청 철거할때를 보자 무령왕릉 발굴시보다 한 술 더 뜬다. 사


 


학계가 들고일어난다 '해체하라'고 후손들은 무얼보고 그 시대를 느끼며 배울 수 있을까.


 


미움보다 더한 건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조선의 대표적건축물이 경복궁이고 조선양반계층의 대표적거리가 지금 광화문앞 육조거리라면 서민들의


 


대표적거리는 종로1가부터 종로4가까지 있는 600년 된 피맛골인데 이골목 때려부수는데도 한국사학계는 조용하다.


 


이걸 부수는 시장님의 출신학교박물관에'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글을 올렸더니 바로 지워버린다.


 


시네마천국이란 명화가 있다. 맨마지막장면에서 마을어른들의 오랜추억이 담긴 극장이 철거된다. 자신들


 


의 추억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며 마을어르신들은 애석해하고 동네아이들은 철거되거나말거나 뛰어다니


 


며 놀기바쁘다.


 


보자! 이걸 문화재나 사적으로 지정할 수 있을까 그럼 그 뛰놀던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대표적인 무엇 또 


 


그 다음세대의 추억이 담긴 대표적인 무엇 하다보면 끝이 없다.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은 일경이 무서워 단성사 건너편 명월관이란 술집에서 독립선언서를 휴지에 써서 낭독한다.


 


교과서에서 배운다 우리민족이 하나되어... 웃기는 소리 그때 왕조를 다시 세우자는 '복벽운동'이 빠져있


 


어 가장 큰 세력이었던 유림이 참여를 거부했는데도 하나 되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정권찬탈을 당할까봐 이승만대통령은 영친왕의 귀국을 거부했겠는가 그곳엔 피카디리극장이


 


들어섰고 길 건너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대중문화인들이  우리힘으로 세운 최초의 건물인 단성사가 있다.


 


피카디리극장 서울극장 동암극장 미아극장 육림극장 동네마다 극장있다. 이걸 다 시네마천국처럼 보


 


존하자면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나라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산증거인 단성사를 부수는건 백제문화의


 


상징인 금동용봉향로나 고려문화의 상징인 금속활자를 부수는거와 다를바 없다.




유럽인들이 새것을 몰라서 옛것을 보존하고 사랑하는가




아무리 역사와 전통이 있어도 이를 자각하고 계승하려는 의식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선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경복궁이다 만약 어떤 지도자가 이곳을 헌다고 했을때 국민들은 들고 일어날 것이고 



가장 앞에 선 사람들은 유림들일 것이다.



신라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불국사일 것이다. 만일 어떤 지도자가 불국사를 헌다는 발표를 한다면 국민들은 들고 



일어날 것이며 가장 앞에 선 사람들은 스님들일 것이다.



한국 현대대중문화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덕수궁 석조전과 비슷한 시대에 만든 단성사일 것이다.



전직 서울시장이 이것을 헐었다. 단성사가 헐릴때 국민들은 이불 차고 일어나 일터로 갔고 가장 앞에 서야할



연예인들은 TV에 나와 수다만 떤다.



딴따라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바탕위에 돈이라는 문양을 넣은 장막이 단성사와 연예계 사이를 장막으로



가로막고 있었기에 단성사가 헐릴때 연예계에 종사하는 그 어떤 사람도 관심을 안가졌던 것이다.


 


단성사를 부술때 가수는 더 노래 잘 부르려고 노력했고 평론가는 글 더 잘 쓰려고 노력했고 영화인은 영


 


화더 잘 만들려고 개그맨은 더 잘 웃기려고 연기자는 연기 더 잘하려고 스탭은 드라마나 영화작가는 연극


 


인은 사회부 문화부,연예부기자는 아무도 관심없다. 자기마을의 당산나무격인 단성사를 부수는데도...


 


한국시골마을엔 마을을 상징하는 수령500~700년된 당산나무가 있다. 어느 벌목업자가 마을사람들이 지


 


켜보는 앞에서 백주대낮에 거기 과수원을 만든다고 나무를 자르고 있는데 마을사람들이 아무 감정없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면 골이 비었다고 해야할까 착하다고 해야할까.


 


중앙청이 헐리기1년전 한국사강의시간에 강사님께서 중앙청 견학하고 입장권 붙여서 리포트써 내라고해 등떠밀려 보고왔다.



인천에는 개항기때 건물들이 즐비하다고한다.



이걸 박물관처럼 꾸며서 한사람당 500원정도만 받고 견학코스로 개방한다면 유럽에선 엥겔스생가에서 결혼식도 한다는데



 조촐하게 결혼하는 장소나 연예인들회의장소 연극인들 모임 초중고학생들 무료영화관람장소등 다체로운 행사를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유지도되고 조상의 정신을 계승할 수도 있을텐데 찾아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다 무조건 부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않을까.


 


70년대 '워터게이트사건'이 있었고 청문회때 범인이 증인석에 나와 한마디한다. "여기 도청되지 않죠?"


 


온 좌중에 폭소가 터져나온다. 이걸보고 동양의 한 학자는 문화적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유머를 중시한 로마문화가 그 뿌리다.


 


왕조문화가 발달한 동양을 보자 엄숙하다. 정권의 마음에 안들면 가수나 연기자 활동할 수가 없다.


 


그곳이 그들의 밥줄인데 또 하나는 '잘 살아보세' 너무 가난하게 살다 겨우겨우 살만하니 그 맛에 취해 모


 


든 사람들이 좋은 차 좋은 집에만 관심 있지 문화재는 관광지 정도만 잘 보존하면 그뿐이라 생각한다.


 


노태우대통령시절 전교조가 이슈가 되었고 난리가 났었다. 외국어대에 강연을 간 정원식총리가 봉변을


 


당하고 어떤 이는 차 위로 뛰어올라 격분한다. 이러면 안된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고를 떠나 격분한 그 모습. 왜 문화재파괴될 때 어느 누구도 격분한 그 모습을 하


 


지 않는걸까?

 

 리뷰 - 페이지191 일본인 전촌시가 그 전에 살아 있을 때에도 단성사만은 기념관으로 보존하겠다고 한 것이요.  그 미망인도 단성사만은 역시 기념관으로 둘예정입니다. 물론 팔지도 안치만은 만약 판다면 더 큰 황금좌(일본인글장)를 팔지언정 단성사는 팔지 안흘 것입니다. - 그리고 우리는 단성사를 헐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6 2018.0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