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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정래가 처음 [태백산맥]을 펴내기 시작할 때 그를 만나, 지금까지 그의 글들을 읽고 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의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그리고 [한강]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진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태백산맥]은
두,세번 읽은 까닭에 줄거리며, 등장인물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리랑]은 한,두 장면, 그러나 [한강]은 아예
그런 기억조차 없는 것 같다. 그 이후로 작가가 발표한 작품들은 꼬박꼬박 찾아서 읽고 있지만, 책을 읽고 나서 언제나 드는 생각은 그의 초기작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그의 초기작들을 시간이 나는 대로 한 권, 한 권 찾아서 읽고 있다.
이
작품 [비탈진 음지]는 [황토]와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중편으로 발표되었으나, 초기작품 개정판 출간작업을
진행하면서 장편으로 개작한 것이다. 1970년대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인구는 서울로, 서울로 몰려 들었다. 이른바 무작정 상경이다. 그 결과 농촌은 공동화되면서 붕괴되기에 이르렀고, 서울로 올라온
농민들은 도시빈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작품이 훗날 작가의 3부작 중 마지막 편인 [한강]의
모태가 되었지 않나 싶다.
가뭄이
심하던 해 마누라는 죽었다. 병원비며 약 값으로 논마지기나 있던 것은 거덜나고 집까지 잡혔지만, 심한 가뭄 끝에 비가 내리던 날 마누라는 죽었다. 전쟁 때 지주, 소작인 없는 세상을 만들어준다 길래 박수치고 환호성 지른 것 밖엔 없는데, 전쟁이
끝나고 5년 동안 감옥살이 하는 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
다한 마누라였다. 마누라 다리는 그때 논농사 지으면서 거머리에 뜯기고,
해충에 쏘이고, 종기가 나고 곪고 하는 동안 시나브로 병이 살 깊이 파고 든 것이었다. 그렇게 마누라가 죽자 살길이 막막해진 복천영감은 건넛마을 흥씨네 소를 빌려 몰래 장에 팔고 두 자식과 함께
서울로 야반도주했다. 무작정 상경한 복천영감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막노동일, 지게꾼, 땅콩장사 등을 해보지만,
이미 그런 일에도 먼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비벼보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발길질과 뭇매 뿐이다.
어렵사리
칼 갈이를 시작하여 6년째 골목골목 누비며 칼을 갈아주고 생활해왔지만 복천영감을 못 견디게 하는 것은
서울사람들이 하나같이 가지고 있는 몰인정과 매정함이었다. 그럴 때마다 역한 서울냄새가 올라왔고, 죽은 마누라와 고향이 생각나 복천영감을 괴롭혔다. 그나마 그를 견디게
해준 것은 이웃들이다. 처음 서울역에 도착하여 갈 곳 없는 그에게 지금의 산동네에 터를 잡게 해준 떡장수여인, 칼을 갈러 갈 때마다 살갑게 대해주던 식모살이 하던 아가씨, 그리고
복권 파는 소녀 등, 그에게 조금이나마 온정을 내 비추는 건 서울의 잘 난 사람들이 아니라, 다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그렇게 사회빈민으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생계를 이어가야 했고, 자식들을 가르쳐야 했기에 생을 포기하지 못했던 당시 도시빈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게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 부모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이웃들의 삶이었다. 아니 지금도 개발이 멈추어 버린 뒷골목에서 볼 수 있는 삶이기도 하다.
복천영감이
높은 담을 쌓아 올린 부자동네 부잣집들을 지날 때면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 것은 고향 땅의 악독한 지주가 하던 짓과 똑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 게다. 복천영감의 삶을 읽으면서 살아낸다는 것이 무엇을 뜻 하는지를,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은 가장의 피곤한 삶을 통해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도 생각해 본다.
이 이야기는 불과 40년 전 국민소득이 150달러에 불과했던 시절, 산업화 바람을 타고 무작정 상경 1세대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는 지금도 우리 주위에 남아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비탈진 음지]를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는 작가의 말이 왠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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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졌지만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직업이 몇 개 있다. 바로 칼 가는 사람과 넝마주이, 그리고 ‘똥 퍼요’로 골목을 떠들썩하게 했던 똥 푸는 사람, 그리고 종소리와 함께 하는 두부 장수, 찹쌀~~~~떡, 메밀묵을 외치는 찹쌀떡 파는 사람까지. 이런 직업이 있었다고 말하면 지금의 아이들은 놀라겠지만 그때는 그 일이라도 있어야 했다. 내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떤 일도 해야 했으니까. ‘조정래의 시선’이라는 책을 읽다가 그가 쓴 초창기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장편급 중편으로 쓴 책인데 2010년부터 개정판 출간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책을 재조명 해 장편으로 개작했다고 한다. 주인공 복천은 서울에서 “카알 가아씨요”를 외치며 하루를 살아가는 칼갈이 꾼이다. 가난한 농사꾼이었던 복천은 고향에서 마누라가 죽자 서울로 올라왔다. 능력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복천이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처음 서울 역에 도착했을 때 복천은 다행히 마음 좋은 고향 사람을 만나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막노동판을, 시장에서 지게 짐을, 나중에는 땅콩장사까지... 하지만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칼갈이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행이 복천의 아이들은 철이 들어 딸은 제 밥벌이를 하고 막내아들은 공부를 잘해 복천에게 기쁨이 되었다. 그러나 복천의 큰 아들은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떠나 소식을 알 수 없다. 복천은 서울로 올라와 자신을 도와주었던 떡장수 여자를 만나고, 식모로 일하는 아가씨를 알게 되고 복권을 파는 소녀를 만나며 서울 생활에 적응한다. 열심히 일하지만 이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네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삶이다. 도시로 몰려들었던 사람들. 자의반 타의반으로 서울 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이 할 일은 뻔하다. 치사하지만 할 수밖에 없고, 힘겹지만 해야 하는 일. 혹 자식 중에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면 그 아이에게 올인 할 수밖에 없는 현실. 가끔 친정에 가면 부모님과 옛날이야기를 한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고생했던 일. 돈이 없었던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4남매를 키우며 울고 웃었던 일.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사달라는 걸 사주지 못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는 엄마.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부모님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처럼 나는 어린 나이에 직업을 갖고 일을 하진 않았지만 그 슬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지금 이 책에서처럼 힘든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힘듦의 강도와 사정이 다를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힘겨운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지금이 더 낫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보이는 것, 숫자로 나타는 것만 보고 훨씬 행복한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건 아마도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겠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지금 사람들은 더 외롭고 우울할지도 모르니까. 음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자발적 음지를 택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생각해 본다. 이 사회에 있을 음지의 이웃에 대해. 손을 내밀 수 없고, 내밀어도 외면하는 이 사회를. 배경은 1970년대를 말하지만 어쩜 지금 우리네 뒷골목 또한 이 책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어느 시대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을 테니까. 조정래 작가의 초창기 작품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재출간을 하면서 원고를 다시 다듬었다고 하니 보다 읽을 맛이 날 것 같다. 그때와 지금의 우리 사회가 또한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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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충청도가 본적이시지만 서울에서 자리잡으신지가 얼추 40년이 되어간다.바로 이 책에서 보여주는 ‘무작정 상경 1세대’가 우리 부모님께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는 언제나 신세를 한탄하고 돈 없어 괴로워하고 자식이 많아 괴로워하셨는데 어렸을 적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러나 내가 커서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서야 내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삶이란 것이 원래 그런것이더라 , 돈이 없으니 신세가 처량하고 돈 없어 보니 사는 게 녹록치 않음이다. 가끔씩 나와는 먼 이야기로 느껴졌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세상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화자는 복천영감이다. 복천영감은 아픈 아내가 죽고 나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시골을 버리고 서울가면 무조건 쌀밥을 먹는다는 꿈을 가지고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다. 그러나 서울에 꿈을 안고 왔지만 막상 서울은 눈감으면 코베갈까 걱정을 해야하는 두려움의 도시였다. 서울 사람들의 몰인정에 치를 떨고 냉정함에 질려가며 복천영감은 고향사람을 만나 도움도 받고 의지를 하는데 그네들의 삶 또한 복천영감보다 더 못하면 못했지 나은 사람은 없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만나게 된 떡장수 아줌마로부터 먹고 사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막노동판을 전전해보고 지게꾼일을 해보려다가 영역침범이라며 몰매맞고 땅콩장사를 하다가 리어카를 눈앞에서 도둑맞고 결국 밑천없이 장사하는 칼가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정들었던 떡장수 아줌마가 연탄가스로 일가족 다섯이 모두 죽게 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허망한 죽음에 슬퍼할 틈도 없이 칼을 갈러다닌다. 그러던 중 같은 고향 식모아가씨를 만나 의지하지만 그 아가씨 또한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다. 하루하루 벌어 먹고 살면서도 복천영감이 희망을 가지고 사는 이유 그것은 바로 자식들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자식이라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반면에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 하나 더 움켜지려 더 표독스럽게 더 악랄함으로 살아간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줏은 벽지로 아들의 사과궤짝 책상을 발라준 복천영감과 영수의 기쁨을 가진 자는 겪을 수 없는 기쁨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남의 삶을 함부로 짓밟을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 앞에서 없는 자들은 그렇게 삶의 밑바닥을 전전하게 되는 것을 빈민이라는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복천 영감에게 들을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는 그렇게 가난이라는 긴 터널이 지나왔다. 그러나 그 터널이 지난 뒤 밝은 빛은 잠깐이며 우리는 또 한번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여전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세상이고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며 빈민의 삶을 견뎌내고 있는 음지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 <비탈진 음지>는 우리부모님 세대의 가난과 아픔을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내어 애잔한 감동과 함께 마지막 복천영감의 말은 귓가에 울려 떠나질 않는다.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묵고 살아도 비렁뱅이 짓거리 허는 사람만 비렁뱅이제 그 자석들은 비렁뱅이가 아닌 법잉께. 비렁뱅이 되라고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멀여살리는 것이 아니랑께.평생얼 넘 발 밑에 깔려 비렁뱅이 진배웂이 산 한얼 풀게라도 훌륭한 사람이 돼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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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입원과 죽음 이후로 늘어나는 빚과 이자를 감당못한 복천 영감은, 건넛마을 홍씨네 소를 몰래 판 돈으로 딸 영자와 아들 영수를 데리고 도망쳐 상경한다. 먼저 떠나보낸 아내와 소식이 끊긴 큰아들은 가슴에 묻었다. 없는 살림이지만 부모 알아주는 자식과, 자식에게만큼은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으리라는 복천 영감의 굳은 의지가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서울 바닥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가난한 칼갈이는 복천 영감의 천직이 되었다. 제본소에서 1급 기술자가 된 기특한 딸 영자, 반에서 3등을 하고도 미안해 하는 아들 영수를 보면서 복천 영감은 적게 먹어도 배가 부르고 흐뭇했을 것이다. 복천 영감은 잘려나간 한쪽 발을 보면서도 비렁뱅이를 해서라도 자식들 먹여살릴 일만을 걱정한다. 새파랗게 젊은 것도 모자라, 자식같은 소년에게까지 욕설을 듣고 심지어 호되게 맞아 비틀거리고 고통이 잠시도 쉴 날이 없는 그를 보면서 마음이 저렸다.
복천 영감이 처음 상경해서 집터를 잡게 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언을 주던 떡파는 여인네 일가족은 연탄가스로 떼죽음을 당하고 여인의 시동생은 살림을 몽땅 뒤져 통장만 찾아내고 염도 하지 않은 채, 전셋방 돈까지 빼서 가버린다. "카알 가아씨요." 식모살이 온 지 한 달 남짓 됐다며 집 생각에 몸살나던 판에 복천 영감의 걸쭉한 고향말을 듣고 칼을 들고 나온 아가씨와 허물없이 친해지고, 보름 간격을 두고 들르면서 만나지던 아가씨가 나오지 않았다. 사나운 주인 여자가 하는 말, 돈이고 반지를 훔쳐 달아나서 생사람 죽게 생겼고 전라도 개똥쇠 종자들은 곤조통이 틀려먹었다며 당장 경찰서로 가잔다. 하지만 주인 여자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 후로 5년 뒤에 만난 아가씨는 주인 여자의 시동생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까지 했고, 아이를 뗄 수 없어 결국 시동생과 결혼해야 한다는 그녀를 외딴 여관에 남겨두고 사라지자, 여관비가 없던 그녀는 기지촌으로 끌려가 몸을 팔고 술집에서 일을 하기에 이른다. 막상 복수하려고 찾아나선 주인은 이미 이사를 하고 없었다.
생각할수록 서럽고 원통한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은 죄진 일이 없이 어쩌면 그리도 가혹한 벌을 받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닌데도 가난한 사람은 그리도 모진 설움과 학대를 벌로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P247>
척지고 산 부자덜이 시상 뒤집어지고 엎어질 때마동 승헌 꼴 그리 당허는 디도 정신덜 못 채리고 또 척지고, 또 웬수지고 허는 것 보면 사람 미련허기가 돼지 찜쪄묵을 판이요. 참마로 그놈에 욕심이란 것이 징허고 징헌 물건이단 말이오. <P276>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면서 농촌에 붕괴를 가져왔고, 무작정 상경한 농촌 인구는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폐휴지를 주워 팔아 하루벌이를 하는 70객의 노인들을 보면서 40여 년 전의 무작정 상경 1세대를 떠올리며, 작가는 <비탈진 음지>에 등장하는 칼갈이 복천 영감을 통해 굴곡있는 그들의 척박한 삶을 나직하지만 힘있는 음성으로 들려주고 있다.
<비탈진 음지>에서 바라본 서울이란 세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일자리를 찾아헤매는 복천 영감을 잡아먹을 듯 패고 욕지거리 하는 젊은이들의 이유인즉, 구조적으로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일거리는 없는데 노동자는 넘쳐나고, 인건비는 턱없이 싸다. 얼마 되지 않는 임금을 다른 사람과 나눠갖기엔 자신의 삶이 고달프다. 어쩌면 그들도 그들 나름의 생존권을 지켜내고자 했던 그들만의 본능이요, 욕구였을 것이다. 그만큼 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아니 살기 위해서라면 체면이고 뭐고 없던 세상이었다. 연탄으로 불을 때던 그 시절, 하루가 멀게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이 목숨을 잃는 사건은 비일비재 했다. 허술한 판잣집, 틈 많은 시멘트 블록, 신문지로 간신히 도배된 가난한 이들에게만 찾아오는 억울한 죽음이었다. 어느 나라든 빈부격차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강도는 훨씬 심해졌고 상대빈곤율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적 능력이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은, 윤리적 관념에서 보면 잘못된 인식이 라는 규탄을 받겠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한숨만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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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님의 글의 시작은 태백산맥었다. 이후 우리주위의 음지에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대변해주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있다. 비탈진 음지는 소작농으로 살던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생밑바닥에서 힘들어하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살기 힘든 이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들어올때는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하나를 가슴에 품고온다. 세상이 어디그렇게 호락호락한가 꿈은 물거품이되 오늘도 내일도 이들은 밑바닥 인생이다. 그래도 꿈을 버리지 못하는건 자신이 아니더라도 자식이라도 잘 살길 바라는 부모마음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주인공 복천또한 그렇다.
복천은 서울에올라와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떡장수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땅콩장사를한다. 아마도 이때가 복천의 인생에 최고 잘나가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도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복천의 선택은 칼을 가는일 하루종일 뙈약볕에서 칼을 갈라는 말을 외치다보면 목구멍에서 비릿함이 진동한다. 시원한 콜라한잔을 먹고싶지만 그돈이면 이란 생각에 오늘도 물한잔을 얻어먹기위해 말을 건네보지만 서울인심이라니 서울 깍쟁이란말이 괜히 있겠는가 돈주고 사먹는 수돗물을 공짜로 달란다고 강짜를부리며 돌아선다. 인심이 야박하다해도 물인심까지 야박한 서울살이 돈벌어 고향에 내려가는게 꿈이지만 복천에게 요원한 일이다. 복천은 인심야박한 서울살이가 힘에겹다. 그래서 더 고양말을 잊고싶지 않다. 남들같이 빨리 서울말을 배워서 따라하기보다는 잊지않기위해 더욱 고향말을 왜치고 다닌다 복천은 고향에서 육자배기를 잘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하루종일 육자배를 불러제껴도 힘이 솟았는데 지금은 카아알갈아를 왜치다보면 목구멍이 비릿함이 가시지가 않는다. 그래서 서울을 떠날수 없는 복천은 행복하지 않다.
복천이 항상 하는 생각이 자신의 고향인심과 서울 인심이다. 고향이나 서울이나 못살기는 맞찬가지다 그런데 고향에서는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돕고 콩한쪽이라도 나눠먹는 인심이 있는데 서울은 각박한 인심이 물한잔인심도 박하다. 그러니 마음붙이 살기보다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옛날이나 현재나 없는 사람 살림은 나아진게 별반 없다. 다만 남들보기에 그래도 지금이 잘사는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복천같은 사람들이 본다면 그닥 나아진 세상이라고 말하지는 못할것이다. 복천이 그리워하는 나누는 정만은 남아있다고 믿고싶다.
양지인생보다는 음지인생을 주로 표현하는 조정래님의 글을통해 요즘 물질만능에빠진 젊은 세대들에게 과거를 배움으로 미래에 좀더 밝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단지 가상의 소설이 아니라 그 시절에는 그렇게 힘들게 살았다. 내 기억에 어린시절 70년대까지도 우리는 복천이 본 세상보다 더 나을것 없는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잘살게된게 아니다. 누군가의 눈물과 땀과 피가 더해져 지금의 우리가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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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나 요즘이나 지방에서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결국 주변의 친구들도 서울이나 타 지역으로 취업을 위해 떠난 경우가 수두룩 하다. 명절이나 되어야 한 번씩 얼굴을 보게 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역시나 타향살이는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불쑥 불쑥 생각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향수병이 되기도 하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정이 들지 않는 서울이란 땅을 언제쯤 떠날 수 있을까 아직도 그 생각 뿐이라고 한다. 과연 내 친구들은 다시금 내가 머무는 이 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때는 언제쯤일까?
조정래 작가의 <비탈진 음지>는 1960년대 급격히 진행된 도시화로 무작정 상경한 복천 일가를 통해 이른바 '무작정 상경 1세대'의 애환을 들려준다. 그런데 요즘도 구직난 때문에 이렇듯 서울로 무작정 떠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작가가 이야기 하는 '무작정 상경'은 비단 반 세기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이 작품은 조정래 작가가 과거 발표한 적 있던 중편 <비탈진 음지>를 개작하여 장편으로 다시 발표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돋보기로 들여다 보는 듯하면서도 그의 인생 너머로 보여지는 한 시대를 통찰하고 있는 조정래 작가의 필력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가난한 농사꾼이었던 복천은 그나마 남은 논 마지기마저 아내의 병원비로 모두 쓰고 결국 남의 소를 팔아 아들, 딸과 함께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온다.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 짓는 기술 밖에 없었으니 서울에서도 살 길이 막막했던 복천. 천만다행으로 마음씨 좋은 같은 고향 출신의 떡장수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 판자촌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맨 몸으로 하는 벌이가 괜찮을 리 없었다. 막노동에 지게꾼, 땅콩장사 등 살려고 발버둥치는 복천에게 서울은 매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나마 의지하던 떡장수 아줌마 가족은 연탄가스로 비명횡사 하고, 복천은 칼갈이꾼이 되어 매일 목이 찢어져라 “카알 가아씨요. 카알 가아씨요.”를 외치며 살아간다.
콜라 한 병만 마시면 칼칼한 목이 씻어 내린 듯 뚫리고 갈증이 가실 것 같은데 그는 단돈 50원도 아까워서, 그 돈으로 아들에게 사줄 수 있는 연필과 공책이 생각나서 꾹 참는 복천은 가난한 아버지의 애달픈 모습 그 자체이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복천도 서울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그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도 하게 되지만 복천의 이런 변화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인 듯 하다. 가진 자에게 핍박 받고 가난만을 대물림해야 하는 고향살이가 팍팍해 잘 살아보겠다고 서울로 왔건만 서울에서의 삶 역시 고향에서의 가난 못지 않게 고통스럽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 서울에서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이들의 비극은 지금의 농촌, 서울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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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왜 이리도 힘이드는지, 책을 읽으면서 행복하고 싶었다. 책속에서는 행복만 가득하길 바라면서 책을 읽으려 했다. 그런데 왜 조정래 선생의 책을 집었들었는지 모르겠다. 읽기 전부터 이책이 어떤 책인지 알면서도 책을 잡았다. 이렇게 가슴이 아플것을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읽고는, 이 짓누르는 무게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 삶도, 복천 영감의 삶도 왜 이리 힘이 들고 무거운지 모르겠다. 알면서도, 한줄기 희망이 있었다. 책장을 넘기기 몇 페이지 전에 내 눈에는 희망이 보였다. 그래, 이젠 이 영감님도 잘 살아야지. 소설인데. 소설 속에서라도 잘 살아야지 하고 희망을 했건만, <1973년 발표, 2011년 7월 전면 개작>이라는 <끝>을 대신하는 글귀 위에는 삶의 고단함만 남아있었다.
![]() 워디 죄럴 짓고 잡아 짓간디. 다 자석 새끼덜 먹여살릴랑께 죄도 짓고 못된 짓도 허는 것이제. 이 시상 부모넌 다 자석덜 땀세 뻔히 암스롱도 죄인이 되는 것잉께. 그 자석덜이 몸 성히 크고 잘되는 것으로 부모 죄가 씻어지는 것인디. 자석덜 위해 한평상 고상허고 애쓰다가 죽는 것이 부모가 헐도리고 보람이니께 요까짓 일임사 죄가 되면 을매나 될라고. p.179
칼갈이는 하는 복천영감은 서울 냄새를 싫어한다. 진저리치게 싫어한다. 서울로 올라오면 무언가 될 줄 알았다. 아무리 그가 어린시절 박진사 집 첩과 눈이 맞았어도, 남들 다하기에 인민군을 따라다니고 감옥에서 5년을 살았어도, 발이 썪어들어가는 아내를 위해서 몇마지기의 논을 다 없애고, 아내가 죽은 후 남의 집 소를 팔아서 도망을 쳤어도, 서울로 올라오면 열심히 일해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빚도 갚고, 팔아버린 소값도 치르고 사람답게 살 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서울살이는 쉬운게 아니었다. 지게꾼도, 땅콩장수도, 눈감으로 코 베가는 서울은 사람 살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복천 영감은 살아야 했다. 금쪽같은 자식들 때문에 살아야 했다. 과외 한번 안해도 공부잘하는 아들놈과, 아버지 생각에 가슴 저미면서 일을 하는 딸내미때문에 살아야 했다.
생각할수록 서럽고 원통한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은 죄진 일이 없이 어쩌면 그리도 가혹한 벌을 받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닌데도 가난한 사람은 그리도 모진 설움과 학대를 벌로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옛날 자신이 그러했고, 지금 그 아가씨가 또 당하고 있었다. p.247
조정래 선생이 이야기를 한다. 40년의 시공이 무색할 만큼 변한 것이 없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의 기록이라고 말이다. 아이들 밥그릇 싸움으로 정신이 없던 오늘, 이 변함 없는 삶의 애환이 가슴을 누른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라고 선생이 이야기를 한다. 그런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복천영감과 같은 삶이, 식모살이를 했던 아가씨와 같은 삶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무작정 상경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복천 영감. 가슴이 먹먹함은 복천 영감 때문이 아니었다. 남겨진 오누이를 어찌 할까? 이 아이들 생각에 소설임을 알면서도, 지금은 이렇게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너지듯 가슴이 아팠다. 이 녀석들을 어이할까. 이 심성 고운 녀석들을... 조금만 살펴주고 조금만 힘을주면 일어설 수 있는 이 아이들을... 다 체념한 복천영감의 말이 심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비렁뱅이 짓거리 허는 사람만 비렁뱅이제 그 자석덜언 비렁뱅이가 아닌법잉께. 비렁뱅이 되라고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랑께. 이 애비는 무신 짓얼 혀서라도 느그덜 밥 안 굶기고 살릴 팅게. ... 허기넌 사람 사는 한평생이 이러나저러나 빙신응 빙신인디. 그려도 배부른 빙신이 낫고 권세 있는 빙신이 난 법잉께. P.282~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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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작품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글 혹은 영상으로 이미 보고 들은 역사라서 낯설지는 않지만 내가 직접 체험한 역사가 아니기에 간절한 감정은 결여되어 있다. 그런데 소설로 그려진 역사와 마주치면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책 속에서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과 주인공이 겪는 상황이 마치 내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느낌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지금의 풍요로움을 우리 민족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만들어냈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건전하고 정당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우리는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와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이 느낌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70년대의 서울 거리를 걸은 것과 같다고 할까. 아마도 누군가는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인 소설에서 너무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찾으려 한다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정래의 작품은 우리 민족의 삶과 한을 고스란히 되살려 낸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비탈진 음지(2011.7.27. 해냄)》는 서울에서 칼갈이 장사를 하는 복천 영감이 주인공이다.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물 한잔 얻어 마시려고 들어간 구멍가게에서 공짜 물은 줄 수 없다는 계집애의 모진 말에서 서울 냄새를 맡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는 복천 영감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마누라의 병 수발 때문에 논, 집 모두 팔아버리고 나니 죽을 때까지 머슴살이를 해도 갚을 수 없는 빚만 남았다. 마누라는 죽고 큰아들 영기는 돈 벌러 서울로 떠난 뒤 소식이 끊긴지 오래, 복천 영감은 건넛마을 홍 씨네 소를 빌려 장에 나가 판돈을 가지고 고향 마을을 도망 나온다. 서울로 올라 온 뒤 돈벌이 할 일거리를 찾으러 다니면서 복천 영감은 두려움을 느낀다. 집 짓는 곳에서 등짐 하는 사람들도, 시장에서 지게로 짐 나르는 사람들도 모두 패거리로 뭉쳐 자신들의 구역에 복천 영감이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력에 복천 영감은 난생 처음 등골이 오싹해진다. 복천 영감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렵사리 다시 시작한 땅콩 장사에서 리어카를 통째로 도둑맞은 것이다. 훔친 소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시작했던 장사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복천 영감은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 뒤 시작한 칼갈이 장사로 세 식구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매정하고도 쌀쌀맞은 서울 사람들에게 당하기 일쑤다. 다른 날보다 배 가까운 수입을 올린 재수 좋은 어느 날 복권을 사고 셈을 치르다가 돈을 빼앗긴 복천 영감은 도둑을 뒤쫓다가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비탈진 음지》는 다섯 개의 소제목으로 나뉜다. ‘서울 냄새’로 시작해서 ‘그래도 내일’로 끝나는 소설은 복천 영감의 고단하고도 쓸쓸한 삶을 오롯이 보여준다. 또한 복천 영감의 삶 속에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상경할 수밖에 없었던 서민의 서글픈 삶이 투영되었다. 모두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니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 할 수 없는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생각할수록 서럽고 원통한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은 죄진 일이 없이 어쩌면 그리도 가혹한 벌을 받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닌데도 가난한 사람은 그리도 모진 설움과 학대를 벌로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p247 |
카알 가아씨요. 카알 가아씨요. 복천 영감이 시원하게 소리를 쭉 뱉을 때부터 속이 시원했다. 토속적인 단어는 줄을 어찌나 잘 섰는지 맛깔나기 그지 없었고 신이 얼쑤 났다. 복천 영감이 골병이 들어가면서 칼을 갈기 시작했던 내력을 들려주었는데 그 한탄은 시골과 다르게 일일이 값을 매기는 매정한 서울의 세태로부터 시작 되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옛말처럼 시골에서 갓 상경한 어린 촌뜨기들은 기껏 훔쳐 온 밑천마저 이삼일만에 떼이기 일쑤였고, 복천 영감의 젊은 시절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쌀쌀해진 가을 바람따라 구르는 낙엽처럼 이렇게 저렇게 구르다가 칼갈이로 정착한 복천 영감이었다.
우렁차게 내뱉는 복천 영감의 소리를 듣고 같은 고향씨의 말이구나 반가워 그네를 붙잡은 사람이 바로 금자였다. 씨가 많은 가난한 집안에서 서울로 올 수 밖에 없었던 구구절절한 사연은 한달음에 내놓고 같은 말씨를 지닌 복천 영감을 그렇게 반가워했다. 금자만큼 반가움을 표했던 복천영감이었다. 몇날이 지나고 그 마을을 다시 돌면서 카알 가아씨요, 를 외치던 복천영감은 금자가 일하는 집을 기웃거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술집에서 일하게 된 금자를 다시 만났을 때 역시 눈 감고 코 베인 금자의 구슬픈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주인집 삼촌에게 성적으로 농락당하고 순결을 빼앗긴 금자가 결혼을 해 달라고 떼를 부리자 소문이 무서웠던 주인집에서는 그녀를 속인 채 결국 빚을 떠민채 술집에 보낸 것이다. 역시 고달픈 인생이었다.
복천 영감에 들러붙은 지독스러운 가난 이야기가 참 많다. 일찍이 아내의 병을 발견하지 못한 의사때문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아내와 가난한 환경 아래에서도 의젓하고 똑똑하게 자라는 딸애와 막내. 시골에 살 때 일찍감치 서울에 상경한다고 집을 떠나버린, 여지껏 소식이라도 알았으면 하는 큰애. 우연스럽게 도와 줄 수 있었던 며느리 삼고 싶은 복권 처녀. 서울에 상경한지 얼마 안되는 복천 영감네 가족을 도와 주던 떡 팔고 장사하는 내외. 그러다가 결국 연탄가스로 싱겁게 눈물나게 생을 마감한 친철했던 그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복천 영감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온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달려온 오누이는 이제 비렁뱅이로 살면 된다고. 아비가 비렁뱅이라고 자식까지 비렁뱅이는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서로의 울음을 나눈다. 조정래가 절절하게 전해준 시대의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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